최근 수정 시각 : 2024-11-30 12:05:35

민경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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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삼의 수상 경력 / 역임 직책 / 역대 등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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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O 리그 한국시리즈
우승반지
1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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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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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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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 와이번스 대표이사 · SSG 랜더스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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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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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청룡 / LG 트윈스 등번호 10번
김봉기
(1984~1985) 
<colbgcolor=#000><colcolor=#fff> 민경삼
(1986~1991)
송구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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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 트윈스 등번호 6번
송구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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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삼
(1992~19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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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훈
(1994~1996)
민경삼
(1997~2000)
이철성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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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민경삼.jpg
민경삼
閔庚三|Min Kyeong-sam
출생 1963년 2월 24일 ([age(1963-02-24)]세)
충청북도 청주시
국적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학력 신일중 - 신일고 - 고려대 (학, 석사[1])
신체 178cm | 82kg
포지션 유격수
투타 우투우타
프로 입단 1986년 1차 지명 (MBC)
소속팀 MBC 청룡-LG 트윈스 (1986~1993)
지도자 LG 트윈스 1군 수비코치 (1997)
LG 트윈스 2군 수비코치 (1998)
LG 트윈스 1군 수비코치 (1999~2000)
프런트 LG 트윈스 매니저 (1994~1995)
SK 와이번스 운영팀장 (2002~2007)
SK 와이번스 운영본부장 (2007~2009)
SK 와이번스 단장 (2010~2016)
SK 와이번스-SSG 랜더스 대표이사 (2020~2024)
경력 KBO 육성위원회 부위원장 (2017)
KBO 자문위원 (2018~2022)
KBO 상벌위원 (2019~2020)
본관 여흥 민씨[2]
가족 사촌동생 민경욱, 아들 민선홍

1. 개요2. 선수 경력3. 지도자 경력4. 프런트 경력
4.1. FA 시즌 행보4.2. 대표이사 사장 취임
5. KBO 임원6. 논란
6.1. 이창욱 계약금 미지급 논란6.2. 김진성 계약금 미지급 논란
7. 기타8.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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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파일:민경삼 야구.jpg
SSG 랜더스의 대표이사. SK 와이번스 역사상 마지막 대표이사이자 SSG 랜더스 초대 대표이사이다. KBO 리그 최초의 KBO 선수 출신 대표이사이며[3] SK 와이번스에서 단장을 역임한 적이 있다.

또한 현역 선수-1군 선수단 매니저-프런트 오피스 부장-프런트 오피스 본부장-단장-사장 자격으로 각각 한국시리즈 우승을 경험했다는 이색 기록이 있다.

2. 선수 경력

신일중학교, 신일고등학교, 고려대학교[4]를 졸업하고[5] 연고 팀 MBC 청룡의 1차 지명을 받아 입단했다. 이 시절은 전형적인 수비형 내야수였는데, 수비는 그럭저럭 했지만 타격이 최악이었다. 나름 고려대에서 이름을 날린 유격수였지만 그 자리에 김재박이 있었고, 유고웅과 김인식 또한 수비력이 강한 선수였기 때문에 자리가 없었다.

결국 1993 시즌이 끝나고 일찌감치 은퇴해 프런트가 되었다. 1994년 홈 개막전에서 김동재, 김정준과 같이 야생마도 못 해본 은퇴식을 치렀다.[6] 그래도 1990년 한국시리즈 LG 엔트리에 포함되어 우승을 경험했던 게 다행. 특히 1차전에서는 대타로 기용되어 2루타로 타점을 올리기도 했다.[7]

강명구, 유재신 이전에 전문 대주자로 활약한 최초의 선수이다. 대주자로 나가면 득점하는 경우가 많아서 러키 보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3. 지도자 경력

LG에서 1994~1995 시즌에 매니저로 근무하다가 1997년 천보성 감독이 취임하면서 코치를 맡아 1, 2군에서 수비코치를 2000년까지 역임했다.

4. 프런트 경력

2001년 프런트 연수를 떠났고, 2002년부터 SK 와이번스 운영팀장에 취임했다. SK는 2000년 4월 이후로 단장 자리가 공석이었는데[8], 이 때문에 운영팀장에 부임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단장 직무대리를 겸했다. 이런 특성 때문에 다른 구단들에게 무시 당하는 상황도 겪었다고 한다.

2003년 최종준이 단장으로 부임하면서 운영팀장직만 맡았고, 2007년부터 프런트 직제 개편에 따라 운영본부장으로 승진[9]했고[10], 이후 2010년부터 단장에 취임했다. 이 시기 신영철 구단 대표이사와 더불어 김성근 감독과의 관계가 껄끄러웠고, 2011년 8월 18일 김성근 감독을 전격 경질하였다. 당시 팬들은 충격에 빠졌고, 몇몇 팬들은 제대로 빡친 나머지 문학구장 소요 사태를 일으키고 말았다. 더군다나 경질 직후 시즌이 끝나지 않아 아직 감독 대행의 신분인 이만수가 감독 취임식을 하는 등 황당한 행보를 보여 주었고, 특히 여러 차례 부적절한 인터뷰로 이만수 감독 대행과 더불어 논란 거리를 만들면서 같이 까였다. 결국 2013년 성적이 6위로 추락하자 2014 시즌부터 현장의 권한이 확대되었다.그거나 그거나 그리고 2014년 시즌 후 이만수 와의 재계약을 안 한 덕분에 SK팬들은 기쁨을 느꼈고, 내부 FA인 최정, 조동화, 김강민을 잔류시키며 간만에 좋은 평가를 받았다.만수 감독님을 재신임할까 생각하기도 했다는 발언은 무시하자

4.1. FA 시즌 행보

2013년 정근우가 구단의 제시액을 걷어차고 한화로 이적할 무렵, 민경삼은 정근우가 70억을 걷어찼다라고 발표했다. 이로 인해 갈팡질팡하던 SK 팬덤의 공격 목표를 친히 지정해주는 한편, 다른 구단이 정근우에게 최소 70억 이상으로 베팅할 수 있도록 밑밥을 깔아주는 역할을 했다. 그리고 한화 이글스는 정근우에게 70억원을 안겨주었다.

2014년에는 이만수 감독과의 재계약을 포기하고, 최정, 김강민, 조동화를 잔류시킨 다음에 중요도가 떨어진 나주환[11]이재영을 쿨하게 보내 버림으로써[12] '14민경삼 카드는 엘리트다' 라는 드립이 생겨났다.

2015년에는 200억을 준비했다는 언플로 SK 팬들이 FA 6명 전원 잔류의 꿈을 꾸게 하였으나 과도하게 불펜투수 정우람에게만 집중하는 정책으로 박정권채병용을 각각 30억, 10.5억으로 협상 기간 종료 직전에야 잡아냈고 윤길현, 정상호는 각각 롯데에 38억, LG에 34억으로 이적하게 되는 뼈 아픈 결과를 만들었다.

정우람 계약 불발 직후에는 '정우람이 미쳤고 민 단장은 최선을 다했다'는 여론이 팬들 사이에서 대세였지만, 윤길현정상호가 40억 미만의 금액으로 이적하자 '도대체 어떻게 대우를 했으면 저 금액으로 타 팀에 가느냐'는 이유로 여전히 극딜을 먹고 있다. 그런데 SK의 제안을 박차고 나간 윤길현, 정상호가 모두 사이좋게 망하면서 그의 짠돌이 기질이 승리했다는 식으로 재평가를 받고 있다. 게다가 정상호보상선수로 데려온 타자는 롱런 하지는 못 했지만 단기간에 초대박을 쳤다. 이쯤 되면 제2의 빌리 빈

그리고 전병두에 대해서 보인 태도[13], 그리고 이어진 인터뷰[14] 덕분에 재 평가되고 있다. 관련기사 오오 킹갓삼 오오

그러나 2016년 10월 28일, 미스터 인천 김경기가 SK 2군 감독에서 물러났다는 소식이 전해지며 그동안의 쉴드나 좋은 평가는 전부 사라지고 욕을 푸지게 얻어 드시고 있다가 11월 1일, 투수 용병 메릴 켈리의 재계약이 긍정적으로 급물살을 탔다는 소식과 염경엽은 물 건너가고 본인이 직접 데려온 트레이 힐만 감독을 비롯한 코칭스태프 조각이 거의 다 끝났다는 김태우 SK 담당 기자의 언질이 있자 다시 갓경삼으로 칭송 받고 있다. 롤러코스터

11월 2일, 넥센 히어로즈에서 평가가 좋았던 정수성 코치를 주루코치[15]로 영입하는 데 성공하여 다시 한번 갓경삼으로 찬양 받고 있다.

11월 28일 프랜차이즈 스타 좌완투수 김광현마저 보장 85억(옵션 비공개) 원의 이름값에 비하면 꽤나 합리적인 가격에 잡아서 찬양을 받았다. 김광현의 팔꿈치 부상 때문에 안 좋은 소리를 좀 들었으나, 프랜차이즈 선수에 대한 대우로써는 훌륭하다는 평.

그리고 2016년 12월 26일, 사의를 표명하면서 오랫동안 머물렀던 SK 와이번스를 떠났다. 노리타를 제외한 팬들은 외부 FA에 인색했던 점은 아쉽지만 괜찮은 마케팅과 내부 FA 단속, 김성근의 파행 저지 등의 공로는 인정하며 시원섭섭해하고 있다. 그런데 직후 2017년 1월 17일 염경엽 전 넥센 감독을 3년 계약이라는 파격적인 조건에 신임 단장으로 영입하면서 이 역시 민경삼의 큰 그림이 아니냐는 이야기가 도는 중.[16] 하지만 그 선택은 염경엽이 감독으로 바뀌고 난 뒤 최악의 선택이 되었다.

결과론적 이야기지만 그가 직접 영입한 트레이 힐만 감독은 KBO 리그에 여러모로 화제, 선풍을 일으키면서 2010년 이후 8년 만에 팀을 우승으로 이끌었고, 힐만 감독이 가정사로 인해 본국으로 귀국하자 염경엽이 자연스럽게(?!) 감독 자리에 앉을 수 있었기에 SK의 챔피언 탈환에 민경삼이 상당한 효과를 냈다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17]

2023년 4월 2일자 보도기사에서, 2007년 드래프트에서 지명된 이창욱 선수에게 계약금 절반을 지급하지 않은 사건이 수면 위로 떠오르면서 논란이 되고 있다. 2014년 나머지 절반의 계약금이 선수에게 지급되기까지 상당한 시간 동안 은폐되어 있었고, 드래프트 신인 선수 계약금 미지급이라는 초유의 불법적인 사건의 당사자이다. 당시 민경삼은 구단 운영본부장으로서 대표이사 - 단장 - 운영본부장으로 이어지는 구단 지휘부 중에서 서열 3위인 운영본부장을 맡고 있었다.

4.2. 대표이사 사장 취임

파일:민경삼 2024년 1월 21일 팬 페스티벌.jpg
2020년 10월 14일 SK 와이번스 구단 대표이사 사장으로 선임되면서 약 4년만에 SK 구단으로 복귀하게 됐다.

KBO 리그 선수 출신이 야구단 사장이 된 건 최초이며 야구인 출신 사장은 김응용삼성 라이온즈 사장 이후 두 번째다. 아울러 SK 창단 이후 SK그룹 계열사 임원 출신이 아닌 사람으로서도 최초로 사장에 올랐다.[18]

2020년 11월 6일, 두산 베어스 투수코치이자 팀 프랜차이즈 출신 김원형을 감독으로 선임했다. SK팬들 사이에서는 의외의 선택이라는 평이다.

9년 만의 외부 FA 영입인 최주환의 영입에도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 2차 협상 이후 최주환에게 직접 저녁식사를 대접하면서 선수 본인에게 FA 영입의 절실함을 역설했고 이것이 최주환의 마음을 움직이게 했다고 한다. 밥값하는 갓경삼

2021년 1월 26일 SK 와이번스가 공식적으로 신세계그룹에 매각되고 선수 및 프런트 100% 고용 승계를 밝힘에 따라 새 구단의 초대 사장으로 취임할 것으로 보인다.

이로써 민경삼 사장은 SK 와이번스의 마지막 사장이 된 동시에 새로운 팀 SSG 랜더스의 초대 사장이 됐다.

그러나, 2022년 시즌 종료 후 SSG 랜더스 구단 운영 비선실세 개입 의혹김성용 단장 선임 건으로 좋지 못한 소리를 들었다. 그러나 비선실세 개입 의혹에서 보듯이 민경삼은 이미 어떠한 실질적인 영향력이 없는 바지 사장으로 보인다. 이후 일처리에 있어서도 논란을 많이 일으키는 운영을 보였는데, 특히 김강민의 2차 드래프트 피지명건은 과거 전병두를 예우했던 그의 행태와 맞지 않는다.

결국 김강민 이적 사태로 인해 구단에 대한 여론이 급속하게 악화됐고 시장의 여론 변화에 누구보다 민감하게 반응하는 모기업 신세계그룹이 나서서 김성용 단장을 경질하고 그를 R&D센터장으로 좌천시켰다.[19] 구단에서 새 단장을 선임하기 이전까지 민경삼 대표이사가 임시 단장을 겸하게 되었다. 얼마 안 가서 SK 시절 외야수 출신 김재현을 단장으로 영입했다.

2024 시즌 종료 후 인적쇄신의 일환으로 대표이사 자리에서 물러났다. 후임 대표이사는 김재섭 이마트 기획관리 담당이 임명됐다.

5. KBO 임원

2017년 1월 17일 KBO 육성위원회 부위원장으로 위촉되었다. 이후 자문위원과 상벌위원을 역임했다.

6. 논란

6.1. 이창욱 계약금 미지급 논란

그가 구단 운영본부장으로 재임하던 시절이던 2007년, 당시 2차 1라운드 지명자였던 이창욱과 계약하면서 "너는 아파서 계약금을 줄 수 없다"며, 계약금의 절반만 지급하고 나머지 계약금은 무려 8년 뒤에나 "어쩔 수 없이 줬다."며, 늑장 지급을 한 사실이 스포츠춘추에 의해 폭로되어 충격을 주고 있다. #

6.2. 김진성 계약금 미지급 논란

상기와 같이 이창욱은 뒤늦게라도 계약금 전액을 받았지만, 김진성은 스포츠춘추와 인터뷰 때 SK로부터 계약금 자체를 전혀 받지 못했음을 털어놓았다. 2005년 김진성은 가정 형편 상 대학보다 프로팀을 선택했는데 이 때 김진성을 지명한 팀이 SK 와이번스였다. 하지만 김진성은 구단 협상 담당자가 자신은 팔 부상이 있어 계약금을 줄 수가 없다고 밝혔고 20대 초반에 프로에 가서 돈을 벌어야 할 생각 말고는 몰랐던 김진성은 그게 맞는 줄 알고 사인했다고 한다. 원래대로 라면 선수협에 말하고 도움을 받을 수 있었지만 그 조차 몰랐다고 하는데, 이때 당시 협상을 진행했던 담당자가 진상봉 스카우트팀장과 민경삼 운영팀장으로 알려졌다.

김진성은 SK에서 방출당한 후 넥센 히어로즈NC 다이노스에서 선수생활을 이어갔는데 이적한 팀의 한 코치에게 계약금 미지급 사실을 알리자 그 코치는 불같이 화를 내며 "요새 10라운드 선수들도 최소 2천만원은 받는데 그게 말이 되냐. 내가 대신 계약금을 받아주겠다" 라고 펄펄 뛰었지만, 끝내 받아내지는 못한 것으로 보인다. #

7. 기타

  • 2013년에는 뉴욕 메츠에서 인턴으로 일하던 아들 민선홍 군을 희귀병으로 보낸 안타까운 사연도 있었다. 이에 뉴욕 메츠 구단은 인상 깊었던 인턴이었던 민선홍 군을 기리기 위해 팀에서 인턴으로 일한 학생들에게 '민선홍 장학금' 을 수여하기로 했다.
  • 계약이 굉장히 좋지 않게 끝났음에도 의외로 김성근 감독과의 사이는 나쁘지 않은 모양. 어릴적부터 은사님이자 가족끼리 매우 긴밀했다고.[23] 경질 이후 2년간 연락을 주고받지 않다가 아들 민선홍 군의 투병 소식을 아내가 문자로 김성근에게 알리자 늦은 밤중에 김성근이 한걸음에 달려와 셋이서 붙잡고 울었다고 한다. 게다가 이는 김성근 본인이 말한 게 아닌 민경삼 본인이 직접 말한 이야기이다. 단장직을 그만둘 때에도 김성근이 '건강 잘 챙기고 계속 연락합시다'라고 문자를 보냈다. 악연으로 바뀌었지만 참척의 변을 앞둔 옛 제자내외가 연락을 드리자 인간적인 감정으로 화해를 했다. 이후에는 계속해 연락을 주고 받는듯.[24]#
  • 고려대 동문으로 박노준 안양대학교 총장과 농구 전창진 감독 등이 있다.

8. 관련 문서


[1] 석사 학위 논문 : 프로야구 선수의 구단 마케팅에 대한 역할 인식과 참여 태도 연구(2015. 2).[2] 삼방파 32세 경(庚) 항렬. 연령대에 비해 항렬이 낮은 편이다. 24살 연하의 전 야구선수 민병헌의 손자뻘.[3] 야구인으로는 김응용 전 삼성 라이온즈 사장의 이어 두 번째.[4] 학사석사 모두 고려대학교에서 다녔다.[5] 민경삼이 신일고등학교에 다니던 당시의 감독이 바로 김성근.[6] 같이 은퇴식을 치른 김정준은 LG와 SK에서 줄곧 함께 일했지만, 2011년 한때 결별했다가. 10년 후 SSG에서 함께 했다.[7] 점수 차가 크게 나서 교체된 것이다.[8] 동년 6월부터 명영철 운영팀장(부장)이 2001년까지 단장 직무대리를 겸했다. 2002년에는 단장 자리가 아예 공석이었다.[9] 다만 후임자 인선 이전까지 한동안 운영팀장을 겸했다.[10] 2008년 1월부터 단장 자리가 폐지되면서 실질적으로 민경삼 운영본부장이 단장 포지션이 되었다.[11] 나주환 말로는 거의 당시 연봉 그대로 계산해서 제시했다고 한다[12] 사실 이재영도 SK 입장에서는 그리 중요한 선수는 아니었다. 나이는 중반을 거쳐 후반으로 흐르고 있었고 보여주던 모습도 평범한 추격조 1 수준인 선수였기 때문.[13] 5년 간 재활하느라 1군 등판이 없던 선수를 기다려주었다.[14] "없는 자리를 만들어서라도 전병두를 SK에 있도록 하겠다."[15] 김태우 SK 담당 기자의 기사로는 1군 주루코치가 유력하다고 하는데 그러면 드디어 SK 팬의 숙적 김인호 주루코치를 치워 버릴 수 있는 빅 찬스이기 때문. 하지만 김인호 코치는 외야수비코치로 이동하며 SK에서 잘리지 않았다. 2017 시즌 후 잘리긴 했지만....[16] 민경삼과 염경엽고려대학교 선후배 관계이고 본인의 후임자이기 때문에 단장 영입 과정에서 상당한 노력을 했다는 이야기가 있다.[17] 그 때문인지 트레이 힐만 감독은 이임사를 하면서 민경삼에 대한 고마움을 언급하기도 했다.[18] 초대 안용태 사장부터 5대 류준열 사장까지 모두 SK그룹 고위 임원 출신이며 특히 2대 정태수 사장부터는 줄곧 SK텔레콤 전직 임원이 사장으로 왔다.[19] 김성용 센터장은 얼마 지나지 않아서 이 자리도 사임하면서 구단을 완전히 떠났다.[20] 감독으로는 염경엽, 조범현, 김경문, 코치로는 김태룡, 장광호, 장재중. 이 외에 현 선린인터넷고등학교 야구부 코치인 조충열도 이 엔트리에 포함된다.[21] 참고로 링크의 명단에 없는 심재원도 은퇴 후 1994년 사망 전까지 프로야구 코치였다.[22] 같은 1963년생이긴 하나 민경삼은 빠른이고 민경욱은 그냥 1963이므로 민경삼 쪽이 형이다.[23] 사실 민경삼과 김성근 감독의 인연은 오래 전부터 시작되었다. 김성근 감독이 신일고등학교 야구부 감독으로 재직 중일 때 지도했던 선수 중 하나가 민경삼이기 때문이다. 즉, 민경삼은 김성근의 제자란 얘기고 김성근은 민경삼의 스승이란 얘기. 실제로 민경삼은 프런트 생활을 하는 동안 꼭 김성근을 감독으로 모시겠다는 다짐을 했고 SK 단장으로 취임한 이후 그 다짐을 이뤄냈다. 그렇게 프런트와 감독으로 SK에서 재회했는데 안타깝게도 신경전 끝에 본인의 손으로 스승을 경질하게 된 것.[24] 1월 21일자 인터뷰에서 본인은 김성근 감독이 자신의 '짝사랑'이라고 생각한다고 얘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