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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정부 퇴진 운동 | ||
<colbgcolor=#0047a0><colcolor=#fff> 시기 | 2016년 10월 26일[1] ~ 2017년 4월 29일 | |
지역 | 대한민국 전역 및 기타 국가 | |
원인 | 박근혜-최순실 게이트[2] 박근혜 정부의 각종 사회적 문제 | |
목적 | 박근혜의 대통령직 사퇴 황교안의 국무총리직 사퇴 박근혜 정부 국무위원들의 전원 사퇴 최순실 등 국정농단 관계자들의 처벌 헌법재판소의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 인용 특검 연장 특검법 개정 | |
참여 인원 | 약 1,656만 명 (주최 측 추산 누적 연인원)[3] 약 180만 명 (경찰 측 추산 누적 연인원) | |
종류 | 항의, 집회, 서명운동, 파업, 동맹휴학, 피케팅, 시국선언, 행진, 농성, 시위, 시민 불복종 | |
충돌세력 | <rowcolor=#fff> 시위대 | 정부 |
박근혜정권퇴진 비상국민행동 더불어민주당 국민의당 정의당 새누리당 비박계 | 박근혜 정부 대한민국 경찰 새누리당 친박계[4] 자유한국당 일부 | |
주요 인물 | 문재인 추미애 우상호 박지원 김동철 주승용 심상정 노회찬 | 박근혜 황교안 이철성 이정현 정진석 김진태 인명진 정우택 |
결과 | 박근혜 대통령 탄핵 박근혜, 최순실 및 관련 관계자 다수 구속 | |
영향 | 19대 대선 조기실시 친박세력의 몰락 새누리당 분당(보수의 대분열) |
1. 개요2. 참가 인원3. 2016년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이전4.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이후5. 어떻게 폭력 사태 없이 성공했나?
5.1. 민주화 이후 헌정체제의 확립5.2. 최악으로 치달은 박근혜에 대한 이미지5.3. 목적의 정당성과 힘을 확보한 투쟁5.4. 국가 안보에 대한 인식5.5. 시민의식과 시위 문화의 성장5.6. 시민 질서에 협조하는 경찰들5.7. 탄핵 심판에 대한 법조인들의 극명한 대조5.8. 박근혜로부터 등을 돌린 언론
6. 영향[clearfix]
1. 개요
제18대 대통령 박근혜의 하야 또는 탄핵을 요구한 시민운동이며, 언론에서는 통상적으로 촛불집회라는 명칭을 사용하여 이를 지칭한다. 주도 세력들 중에서 운동권 세대인 86세대의 자녀 세대들이 가장 비율이 높았으며, 집회와 시위 이외에도 서명운동, 정치인이나 시민 개인의 선언, 집단적인 시국선언 등의 방식으로 벌어졌다.2016년 12월 9일, 국회에서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통과되면서 성과를 봤고, 2017년 3월 10일, 헌법재판소가 재판관 전원의 일치된 의견으로 대통령 박근혜에 대한 파면을 선고함으로써 결실을 맺었다.
2. 참가 인원
2016년- 2017년 박근혜 대통령 하야 / 탄핵 요구 집회 연 참가인원(전국) | ||||||||
연도 | 일시 | 차수 | 경찰 추산* | 주최 측 추산** | 누적 연인원(주최 측 기준) | 비 고 | ||
<colbgcolor=#c9c9c9,#363636> 2016년 | <colbgcolor=#dddddd,#212121> 10월 29일 | <colbgcolor=#dddddd,#212121> 1차 | 12,000 | 50,000 | 50,000 | 민중총궐기 주최측 주도 | ||
11월 5일 | 2차 | 48,000 | 300,000 | 350,000 | ||||
11월 12일 | 3차 | 280,000 | 1,060,000 | 1,410,000 | 6차 민중 총궐기 | |||
11월 19일 | 4차 | 272,000 | 960,000 | 2,370,000 | ||||
11월 26일 | 5차 | 330,000 | 1,900,000 | 4,270,000 | ||||
11월 30일 | 총파업 | 8,000¹ | 60,000¹ | 60,000¹ | 1차 총파업 *** | |||
12월 3일 | 6차 | 430,000 | 2,320,000 | 6,590,000 | 경찰 추산 최대규모 촛불집회 정부 수립이래 사상 최대규모 | |||
12월 10일 | 7차 | 166,000 | 1,040,000 | 7,630,000 | 전날(12월 9일) 대통령 탄핵소추안 가결 | |||
12월 17일 | 8차 | 77,000 | 770,000 | 8,400,000 | ||||
12월 24일 | 9차 | 53,000 | 702,000 | 9,102,000 | ||||
12월 31일 | 10차 | 83,000 | 1,104,000 | 10,206,000 | 누적 연인원 1,000만명 돌파 | |||
2017년 | 1월 7일 | 11차 | 38,000 | 643,380 | 10,849,380 | |||
1월 14일 | 12차 | 비공개 | 146,700 | 10,996,080 | 경찰 추산 '비공개' 전환 | |||
1월 21일 | 13차 | 352,400 | 11,348,480 | |||||
1월 28일 | - | - | 11,348,480 | 설 합동 차례로 대체 | ||||
2월 4일 | 14차 | 425,500 | 11,773,980 | |||||
2월 11일 | 15차 | 806,270 | 12,580,250 | |||||
2월 18일 | 16차 | 844,860 | 13,425,110 | |||||
2월 25일 | 17차 | 1,078,130 | 14,503,240 | 7차 민중 총궐기 | ||||
3월 1일 | 18차 | 300,000 | 14,803,240 | |||||
3월 4일 | 19차 | 1,050,890 | 15,854,130 | |||||
3월 11일 | 20차 | 708,160 | 16,562,290 | 전날(3월 10일) 대통령 박근혜 탄핵 인용(파면) 결정 | ||||
최종 누적 연인원 (공식 누적 연인원) | 16,562,290명 (16,581,160명) | 괄호 안은 평일집회 등을 모두 포함한 주최측 공식 누적인원 | ||||||
2017년 | 3월 25일 | 21차 | 비공개 | 102,400 | 16,664,690 | |||
4월 15일 | 22차 | 109,600 | 16,774,290 | |||||
4월 29일 | 23차 | 50,000 | 16,852,360 | |||||
* 순간최대인원으로 추산 / ** 연인원으로 추산 / *** 촛불집회 인원과는 별도로 집계 |
3. 2016년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이전
사실 이미 대선 전에 유시민의 예언이 있었다. # 이와 비슷한 발언은 2007년에 김해호 당원와 장광근 전 대변인도 말한 바 있다. 야당인 유시민은 그 사태는 잘 몰라도 최소한 여당에서는 심심치 않게 문제점을 알았던 것으로 보인다.따지면 초기의 퇴진운동은 2012년 대선 결과에 불복하는 반발적 움직임으로 시작하였다. 이때부터 박근혜의 매우 부실한 행적으로 좋게보지 않는 시민들은 당연히 존재했기 때문이다. 물론 당시에는 새 정부가 출범하면 인정하지 않는 반대 진영의 일부에서 벌이는 불복 행위 정도의 규모였다.
2014년 청해진해운 세월호 침몰 사고 당시 시위 |
박근혜 정부의 한일 위안부 협의 반대 시위 |
2015년 역사교과서 국정화 반대 시위 |
2016년을 기점으로 박근혜의 레임덕이 시작되었고[6]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여당 새누리당이 참패하면서 여당측에서도 정부의 실책들을 일축하기에는 사태가 너무 커지게 되었다. 특히 재임기간 중 세월호 침몰 사고를 기점으로 국정교과서 사태, 위안부 합의, 주한미군 사드 배치, 임금피크제 도입, 성과급제 도입, 비정규직법, 테러방지법[7] 등 사회 계층의 반발이 일어날 때마다 시정 요구의 목소리가 커졌고, 일각에서는 퇴진 요구도 나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때까지는 일련의 흐름이기보다는 이념에 상관없이 항상 있는 정책 혹은 정부에 대한 비판성 시위에 불과해보였다. 이러한 퇴진 요구와 시위는 지난 정부들에서도 찾아볼 수 있었고, 앞으로도 어느 정부든 나타날법한 평범한 현상으로 생각되었다. 권력자들의 비리에 대한 언론의 탐사 보도는 전혀 실행되지 않았고, 때문에 청와대는 물론, 새누리당의 내홍이 수면 위로 적나라하게 드러나지 못했다. 조중동 등의 메이저 언론은 시민들의 불만을 단순한 좌우 이념 갈등 정도로 축소시키고자 하였다.
그러나, 2016년 10월 24일 JTBC의 뉴스 보도로 이후의 상황은 통째로 바뀌어버리고 만다.
4.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이후
2016년 10월 24일 JTBC를 통해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 관한 단독 뉴스가 보도되자 대한민국은 그야말로 발칵 뒤집어졌다. 그리고 이 보도로 인해 박근혜 퇴진 운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10월 26일 저녁 서울 도심에서 첫 촛불집회가 열렸으며[8], 2016년 박근혜 대통령 하야 촉구 촛불집회와 2016년 11월 민중총궐기를 통해 본격적으로 진행되었다.
2016년 11월 5일 촛불집회에서는 광화문 주변에 경찰서 추산 5만여명, 주최측 추산 20만여 명의 집회에 참가를 하고 지방 각지에도 집회가 진행이 되면서 박근혜 하야 요구가 빗발치게 되었다. 이와 같이 하여 국회/종교/교육/문화계 각지에서 시국선언 등을 통한 하야 요구가 빗발치고 CNN 등 외신을 타면서 하야 요구 집회는 본격화되었다.
2017년 3월에도 광화문 광장에서는 촛불집회가 열렸다. 예를 들어, 2017년 3월 2일엔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의 시국미사, 서울대의 시국선언, 일일 촛불집회 등 지속적으로 퇴진운동을 이어갔다.
4.1. 시국 선언
정부의 부정부패가 만천하에 드러나자 사회 각계각층에서 시국선언이 빗발치기 시작했다.
시국선언의 대다수가 박근혜의 퇴진을 요구했지만 거국중립내각 등의 해결안을 제시하는 경우도 있었다.
대통령 연설문을 포함해 외교, 안보, 심지어는 해외 정상과의 통화 내용까지 모두 최순실 씨에게 보고됐다. 미국에서는 힐러리 클린턴이 국가 관용 메일이 아닌 개인 메일을 썼다는 이유만으로도 선거 기간 내내 국가 안보를 위협했다는 비판을 받아왔는데, 한국에서는 국가 지도자인 대통령이 민간인에게 극비 자료들을 보내주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고작 녹화방송으로 국기문란 사태를 넘어가려고 하고 있다. 성역없는 진상 조사를 실시하고, 박 대통령은 이 사태에 대해 온전히 책임지고, 국민들이 받아들일 수 없다면 물러나야한다. 최순실·박근혜 게이트의 썩어빠진 실체가 드러나고 있다. 도대체 누가 최순실 씨에 권한을 줬고, 그 권한은 누가 인정한 거냐? 청년들은 매일같이 토익, 토플에 시달리는 등 바늘 구멍을 뚫어보기 위해 아등바등거리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더 이상 청년들을 우롱하지 말라.
- 대한민국, 최순실의 꿈이 이루어지는 나라입니까?' 이화여대 최은혜 총학생회장 시국 선언문
- 대한민국, 최순실의 꿈이 이루어지는 나라입니까?' 이화여대 최은혜 총학생회장 시국 선언문
10월 26일, 이화여자대학교를 시작으로 경희대학교 등 서울 주요 대학 총학생회와 부산대학교가 연이어 시국선언을 하고 책임자 처벌과 대통령의 하야를 촉구하는 성명도 나왔다. # #2 오후 늦게 서울대학교 총학생회가 시국선언에 동참하였다.[9]# 10월 27일 오전 2시경에 나온 기사에 따르면 현재 시국선언에 동참한 학교는 총 13개교인 것으로 확인되었다.#
10월 27일 오후 3시에 한국과학기술원 총학생회가 시국선언을 하였다. # 오후 8시에는 서울교육대학교 총학생회가 시국선언문을 인준하였다. 연세대학교 총학생회 또한 시국선언을 발표하였다. #
대통령의 모교인 서강대학교는 10월 26일, 시국선언에 빠르게 참여하여 언론의 많은 관심을 받았으나, 총학생회가 한 것이 아니라 '최순실 게이트 해결을 바라는 서강대학교 학생들'이라는 모임에서 한 것으로 알려졌다. 시국선언 과정에서 학생들에게 제대로 알리지도 않고 여론수렴과정이 전무했으며, 정체불명의 모임에서 마치 자신들이 학교대표인 것처럼 시국선언을 하자 학생들 사이에서 불쾌하다는 의견이 대다수를 이루고 있다. 총학생회 및 단대별 학생회는 10월 28일 공식적으로 시국선언을 내놓았다. 10월 29일 경기도대학생협의회에서 11개교[10]가 연합하여 10월 31일에 시국선언문을 개제하였다.
10월 28일에 단국대학교 죽전캠퍼스가 시국선언을 하였고 이어서 11월 1일에 단국대학교 천안캠퍼스가 시국선언을 하여 양 캠퍼스[11] 모두 시국선언을 하는 대학에 합류하였다.
정치와는 별로 상관이 없을 것 같은 신학대학[12] 학생들도 시국선언에 참여하고 있다. 개신교 계열에서는 10월 27일, 감리교신학대학교 학생들의 시국선언을 최초로 10월 28일, 내부의 의견을 수렴한 장로회신학대학교 신대원 학우회[13][14]에서 시국선언 발표를 하였다. 가톨릭 계열에서는 10월 28일, 수원가톨릭대학교의 신학생들이 시국선언에 참여하면서 1987년 이후 30년 만에 처음으로 가톨릭계 신학생들이 시국선언에 참여하였다. 이러한 시국선언은 10월 30일 부산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10월 31일 인천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의 신학생들이 시국선언을 발표하면서 점점 퍼지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뭔가 신학대와 대척점에 있어 보이는 공대, 그중에서도 특히 이공계 중점대학들까지 한 목소리로 시국선언에 동참하고 있다. 10월 27일에 일찌감치 시국선언 대열에 참여한 한국과학기술원은 원래 이공계 중점대학들 중에서도 정치 참여가 활발한 편이었으니 차치한다고 하더라도 거의 신생 학교나 다름없는 대구경북과학기술원이 10월 29일에 개교 이래 첫 시국선언을 진행한 데 이어 10월 31일과 11월 1일에는 각각 포항공과대학교와 울산과학기술원이 시국선언에 동참했다. 울산과학기술원의 경우 울산과학기술대 시절부터 합칠 경우 2009년 개교 이래 최초의 시국선언이고, 포항공과대학교는 대구경북에서도 최고의 보수 강세 지역 중 하나인 포항시에 위치한 것은 차치하더라도[15] 무려 1987년 개교 이래 최초의 시국선언을 했다. 남은 것은 광주과학기술원[16]뿐이다.
한편, 고려대학교 총학생회의 시국선언에 백남기 농민 관련 내용이 포함된 것을 중심으로 하는 반발이 제기되었다. 또한 민중연합당 고려대지부가 시국선언에 연서한것과 민중연합당 활동중인 고려대 학회 구성원 등이 시국선언문에 개입했다는 것에 대한 반발 및 비판이 제기된다. 결국 이전의 총학생회의 다양한 삽질과 맞물려 고려대 총학생회장단에 대한 탄핵이 제기되었다. 총학은 불통정부/로봇정부를 미러링하는 불통 학생회/로봇 학생회라는 비판이 고파스 중심의로 강하게 일어났다. 다양한 사건사고 끝에 탄핵은 무효가 되었고, 새로운 시국선언을 작성하여 다시 시국선언을 진행하였다.
11월 2일에 전국대학생시국회의 선포식을 각 대학에서 개최하다가 5일에는 동시다발 시국 대회를 개최한다. 이런 와중에도 시국선언 가지고도 대학 서열을 따지는 일도 있어서 지잡대는 시국선언 하지마라라는 글이 있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한 배재대 학생이 올린 SNS 글이 화제를 모았다. #
진보통합정당 창당 추진기구 민중의 꿈(새민중정당 창당준비위원회 전신)은 여의도 전역에 #새누리도_공범이다 현수막을 걸었다. #
대학가가 아닌 청소년 층에서도 시국선언이 일어나는 등 엄청난 확산 속도를 보이고 있다. 대표적으로 수능 20일을 앞둔 고3 학생들이 시위에 참여했다는 점과 원광고등학교, 충주여고 역사동아리, 북원여고에서 대자보가 붙어있다. 지역적으로도 부산 청소년 104인 시국선언 등이 이루어졌다.
대검찰청의 한 현직 검사는 비선실세를 제대로 수사하지 않는 일부 검찰을 비난하는 글을 써서 화제를 모았다. #
편의점 알바도 시국선언을 하고 있다. # 미국 뉴욕과 워싱턴 D.C에서 박근혜 퇴진 시위가 열었다.#
대구의 한 여고생이 11월 5일 대구에서 열린 #내려와라_박근혜 집회에서 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 씨의 국정농단 파문에 대해 조목조목 문제점을 지적한 연설을 한 영상이 누리꾼들 사이에서 화제를 모았다.#
고양시의 한 고등학교는 학생들이 시국선언을 한 것을 놓고 학교 측이 교칙에 어긋난다며 주도한 학생에게 징계를 언급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논란이 일어났다. #
그 전부터 동맹휴학이 올라왔지만 박근혜 대통령의 피의자 확정이 되자 서울대와 숙명여대 총학생회가 동맹휴업을 결정했다. #
2016년 11월 7일, 서울대 교수들은 시국선언을 열고 박근혜 퇴진을 요구했다. 선언문에서는 "박 대통령과 집권 세력에 대한 국민의 분노가 온 나라를 뒤흔들고 있다"며 "우리 국민은 현 정권이 단순히 비리와 부정부패에 물든 정도가 아니라 민주공화국의 가장 기본적인 질서마저 유린하고 파괴했음을 깨닫고 있다"며 새누리당 지도부의 즉각 총사퇴와 검찰 수뇌부의 교체, 검찰 개혁 방안 마련 등의 시국선언을 발표했다. #
동일, 스포츠문화연구소, 체육시민연대 등 체육 시민단체들은 '체육인 시국선언'을 발표했다. “청와대 발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몸통인 박근혜 대통령은 스스로 특별검사 조사를 청하고 국정에서 완전히 손을 뗄 것”을 요구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조사가 지속되면서 평창올림픽과 승마관련 비리가 밝혀지면서 체육인의 명예를 실추에 대하여 강하게 반발했다. #
2016년 11월 11일, 서울변호사회는 박근혜 퇴진을 요구하는 시국선언을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서울변회의 총회원은 1만 5924명(2016년 10월 14일 기준)이다. 이 중 1만 3120명이 개업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모임으로 변호법조계의 가장 최대 회원을 보유하고 있는 곳이다. 회장은 “대한민국 헌법은 우리 대한국민이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계승했음을 자랑스럽게 밝히고 있으나, 그 어떤 정당성도 갖추지 못한 몇 명의 인물들이 헌법을 난도질했다”라고 밝히며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 대하여 평가를 했다. #
박근혜-최순실의 검찰 조사 결과 대기업이 연루되는 등 경악할 결과가 공개되고 있다. 이에 경실련 등 시국선언을 통해 박근혜 정권 퇴진을 요구하던 단체들은 대기업에게 화살을 돌리고 있다. 대기업들이 전경련을 통해 지원한 자금이 미르 K 스포츠 재단, 대한민국어버이연합 등에 사용되고 있고 이들을 전용한 박근혜에게 책임과 함께 대기업에게도 묻겠다는 것이다. 실제로 11월 8일 검찰은 삼성그룹을 압수수색을 하였고 현대차, 롯데그룹에게 자금의 용처를 위해 관계자들을 소환하는 등 박근혜-최순실의 관계에 관련된 모든 조사를 하고 있다. 불법적 특혜/자금 모집이 드러나면서 박근혜 퇴진과 함께 대기업의 성찰을 요구한다는 것이다. #
정치/학계뿐만 아니라 서울/부산/대구 등 지역단체에서도 시국선언과 함께 정권퇴진운동이 지속되고 있다. 또한 한국지엠노조 등 기업체내 노조에서도 시국선언과 함께 퇴진운동을 펼치고 있어 정치/학계뿐만 아니라 사회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다. #
무용가 김윤진 씨는 눈을 가린 선녀복장으로 박근혜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1인 시위를 하였다. 사진 또, 한국춤비평가협회도 시국선언을 하였다. #
우리만화연대서 시국선언에 동참했다. #
만화가 협회장인 이충호 작가가 개인적인 차원에서 시작하여 총 124명의 작가/지망생들이 자신의 만화 캐릭터가 촛불을 들고 있는 그림을 보내고 그것을 모으는 방식으로 진행했다. #
홍대 뮤지션 등이 주축이 된 음악인들도 페이스북에 시국선언을 개시했다. 페이스북 링크
11월 8일에 신대철, 권진원 등 음악인 2,300여 명은 '민주공화국 부활을 위한 음악인 시국선언'을 발표했다. #
4.1.1. 법조계
전국 각지의 변호사들이 시국선언을 하였다.
- 11월 8일 전라북도지방변호사회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사임을 요구하는 시국선언문을 발표했다.# 회장 포함 129명이 참여하였으므로, 해당 지방변회 소속 변호사 중 43%가 위 시국선언에 참여한 셈이다. (이하의 참여비율에서 지방변회 소속 변호사 총인원은 대한변호사협회 홈페이지의 통계에서 준회원까지 포함하여 본 것이다.)
- 제주지방변호사회 소속 변호사 33인이 박 대통령의 사임을 촉구하는 시국선언을 하였다.# 회장도 참여하였으며, 해당 지방변회 소속 변호사 중 30%가 위 시국선언에 참여한 셈이다.
- 대구지방변호사회 소속 변호사 101인이 박 대통령의 사퇴를 촉구하는 시국선언을 하였다.# 회장도 참여하였으며, 해당 지방변회 소속변호사 중 16%가 위 시국선언에 참여한 셈이다.
- 부산지방변호사회 소속 변호사 101인이 박 대통령의 퇴진을 촉구하는 시국선언을 하였다.# 회장은 참여하지 않았으나, 전회장이 주축이 되었으며, 해당 지방변회 소속 변호사 중 12%가 위 시국선언에 참여한 셈이다.
- 11월 11일 8개 지방변호사회 회장들(즉, 경기북부, 경기중앙, 강원, 대전, 충북, 부산, 경남변회를 제외한 나머지 지방변회의 회장들)이 공동으로 의장이 되어 전국에서 3288명(11일 오전 10시 기준)의 변호사들이 박 대통령의 퇴진 등을 촉구하는 시국선언을 하였다.# 위 수치는 대한변협에 등록한 변호사 수의 15%에 해당한다.
서울변회에서는 2203명(13%), 경기중앙변회에서는 104명(10%), 충북변회에서는 101명(51%), 대전변회에서는 110명(21%), 경남변회에서는 19명(5%), 광주변회에서는 226명(43%), 전북변회에서는 141명(47%)이 참여하였다.
4.1.2. 대학가
4.1.2.1. 학생
- 10월 26일 - 이화여대, 부산대, 건국대, 한성대[17].[18]
- 10월 27일 - 한국외대[19], 숙명여대, 한양대, 성균관대(인문사회캠퍼스)[20], 경희대, 중앙대[21], 카이스트, 한남대, 상명대, 조선대, 서경대, 국민대, 대진대, 동덕여대, 성공회대, 제주대, 총신대, 감리교신학대, 서울신학대, 인천대, 한국예술종합학교(일명 시굿선언)[22]
- 10월 28일 - 서울대, 서울대 로스쿨, 고려대 로스쿨, 연세대, 동국대, 홍익대, 인하대, 서울교대, 서울과기대[23], 서강대[24][25], 세종대, 전북대, 장로회신학대, 단국대(죽전캠퍼스)[26], 가톨릭대, 서울여대, 한국전통문화대, 전주대, 충남대, 충북대, 서울시립대, 한신대, 성공회대, 신학생시국연석회의[27]
- 10월 29일 -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한동대,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28], 경기도대학생협의회[29], 공주교대X공주사대, 전국 대학원 총학생회 협의회[30]
- 10월 30일 - 강원대 법학전문대학원, 전남대 법학전문대학원, 부산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안동대, 목포대[31]
- 10월 31일 - 포항공과대학교[32], 인천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명지대 인문캠퍼스, 서울여대, 덕성여대, 한양대 ERICA, 한국공대, 한남대, 대전대,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전남대, 경북대,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동국대 경주캠퍼스, 경상대, 경인교대, 순천대, 경기도대학생협의회, 영남대, 한국교원대, 군산대, 호원대, 부산외국어대학교, 한국복지대[33], 동아대[34]
- 11월 1일 - 한국항공대[35], 울산과학기술원[36], 단국대(천안캠퍼스)[37], 청주교대, 숭실대, 동덕여대, 고신대, 원광대, 목원대, 성신여대, 나사렛대[38]
- 11월 2일 - 가천대, 청주대, 충북대, 서원대, 충청대, 꽃동네대[39], 우석대, 계명대, 제주대 법학전문대학원, 대구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광주가톨릭대학교[40], 선문대, 고려대 세종, 홍익대 세종[41]
- 11월 3일[42] - 강원대, 한국교통대, 동의대[43], 성균관대(자연과학캠퍼스), 고려대 총학생회, 인제대[44], 전남대 여수캠퍼스, 대구교대, 부산교대, 광주교대, 제주교대 한일장신대 신학대학원, 한양대, 전주교대, 대전가톨릭대, 중앙대[45], 아주대, 동명대, 신라대, 부산여대, 울산대[46], 성결대, 추계예대[47]
- 11월 4일 - 충북대 법학전문대학원
- 11월 5일 - 백석대, 상명대, 순천향대, 한국기술교육대
- 11월 7일 - 부경대[48], 평택대
- 11월 8일 - 극동대
- 11월 9일 - 배재대[49], 경남대[50]
- 11월 10일[51] - 동서대, 한국해양대, 호서대, 창원대, 부산대, 경성대, 동명대, 한림대, 진주교대, 동아방송예술대[52]
- 11월 11일 - 강릉영동대학교
- 11월 17일 - 건국대 글로컬캠퍼스
- 11월 18일 - 대구·경북 10개 대학 연합[53]
- 11월 29일 - 한세대
- 12월 6일 - 경상대[54]
- 11월 4일 - 하버드
- 11월 7일 - 상하이 둥화대학교
- 11월 9일 - UCLA 한인 학부생, 대학원생 30여명
- 11월 10일 - 베이징대 한국 유학생 98명, 싱가포르, 홍콩대학 한인 교수 67명, 스탠퍼드 대학 학부와 대학원생 161명, 위스콘신 대학교 한인 학생 122명 관련 기사 및 시국선언문 전문
- 11월 11일 - MIT, 코넬, 일리노이대학교, 워털루 대학교
- 11월 12일 - 오타와 의대
- 11월 15일 - 홍콩대학 한인학생회 관련 기사
- 11월 16일 - 런던 정치경제대학교 한인학생회 시국선언문 전문, 존스 홉킨스 대학교 한인 136인 관련 기사
- 11월 19일 - 미시간대 한인 유학생 307명
- 11월 21일 - 조지아텍
- 11월 24일 - 교토대, 도시샤대 유학생과 연구자 79명
4.1.2.2. 교수
10월 27일 - 성균관대, 경북대10월 28일 - 전남대, 충남대
10월 31일 - 광운대, 한신대, 덕성여대, 한양대, 인하대, 부산대, 광주여대, 순천대, 조선대, 목포대, 호남대, 광주대, 동신대, 경상대(명단비공개한 반쪽짜리 시국선언문), 가톨릭대
11월 1일 - 원광대, 인천대, 동아대
11월 2일 - 한남대, 서강대, 창원대, 강원대
11월 3일 - 건국대, 충북대, 동국대 경주캠퍼스, 위덕대, 경주대, 서라벌대, 경남대, 연세대 미래캠퍼스, 제주교수네트워크[55], 중앙대, 한양대, 전주교육대학교, 부경대, 경성대, 서원대
11월 4일- 성공회대, 아세아연합신학교
11월 7일- 서울대[56], 목원대, 안동대
11월 8일 - 세명대, 신라대, 영남대, 침례신학대
11월 9일- 고려대
11월 10일- 한국해양대, 한국교원대, 호서대, 창원대, 부산대, 한림대, 한신대
11월 11일- 한국과학기술원, 울산과학기술원, 국민대, 이화여대, 강릉원주대
11월 15일- 한국외대, 연세대, 배재대
11월 17일- 전주대
11월 18일 - 단국대
12월 1일- 홍익대
4.1.3. 그 외
- 21세기 청소년공동체희망-중고생혁명
-십대들의 민주주의 틴즈디모(TeensDemo)
- 50개국 재외동포 일동
- 민주주의 광주행동 활동가 및 시민들
- 12개 언론단체[57]
- 전남지역 22개 시·군 261개 시민사회단체
- 사무금융노조
- 불교단체 공동행동
- 원주지역 24개 시민사회단체
- 전남 광역단위 34개 단체와 시·군단위 227개를 합한 26개 단체[58]
- 제천시국촛불공동행동[59]
- 강원지역 시민사회단체 회원 100여 명[60]
-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 노동인권실현을 위한 노무사모임
- 공공산업노동조합연맹
- 4·16세월호참사 가족협의회, 4·16연대
- 재외동포언론협회
-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
- 대학 YMCA 전국연맹, 대학·청년 YWCA 전국연합회
- 경기도 파주시 31개 시민단체, 정당, 노동조합 회원 30명
- 평택시민행동
- 경기진보연합[61]
- 민주주의 경남연대
- 충남·세종지역 단체
- 중동고등학교[62]
- 보건의료인 3,000여 명[63]
- 문화연대가 주축이 된 문화예술계 인사들, 서울연극협회
-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
- 한국기독교총연합회[64]
- 역사학회와 한국사연구회 등 역사학계 47개 학회·단체
- 민주노총 금속노조·화학섬유연맹과 한국노총 금속노련·화학노련 등 양대노총 제조부문 공동투쟁본부
- 새로운 한국을 위한 국민 행동
- 김제중학교[65]
- 문화연대,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민예총), 한국작가회의, 예술인소셜유니온
- 청소년 시국선언[66]
- 보건의약 학생대표 협의체[67]
- 민족문제연구소, 한국사연구회 등 47개 단체와 학회
- 부산기독교교회협의회종교대화위원회, 원불교부산시민사회네트워크, 천주교 부산교구 정의구현사제단, 평화통일부산불교포럼
- 백남기 원주·횡성 투쟁본부
- 국가안보와 민생안정을 바라는 종교·사회·정치 원로들의 시국선언[68]
- 충북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 충북지회,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충북지회 등 충북 시민단체
- 한국환경회의, 한국사교과서국정화저지네트워크,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공공운수노조,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 민중총궐기투쟁본부, 민주주의국민행동,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등 각계 단체 1,553곳
- 전국사범대학단과 전국 예비교사들, 전국 교육대학생연합 등 교육·사범대학 34개 단체, 전국 단위의 사회과학대 연합
- 한일 일본군 '위안부' 합의 무효와 정의로운 해결을 위한 전국행동,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 전국여성연대,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등 40여 여성단체
- 한국여성단체연합
- 노년유니온, 노후희망유니온 등 노인단체
- 전국금속노동조합 한국지엠지부
- 음성지역 군민·사회단체·농민단체로 구성된 음성군민시국연대
- 울산에 있는 현대중공업 노조, 현대자동차 현장 노동조직
- 정의당 강원도당, 노동당 강원도당, 민중연합당 강원도당, 녹색당 강원도당
- 원불교시민사회네트워크
- 태고종 전국종무원장협의회
- 사천시국회의[69]
- 더불어민주당 여주·양평지역위원회
- 늘푸른한국당 광주·전남도당
- 전북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 민주주의 광주행동
- 광주의 기독교 단체
- 박근혜 하야 인천행동
- 박근혜 퇴진을 위한 의정부 시민 공동행동
- 충북만들기운동본부
- 용인지역 40여개 시민단체로 구성된 ‘박근혜 하야를 촉구하는 용인시민'
- 인천지역 7개의 여성단체가 모인 인천여성연대
- 전국공무원노조, 전교조
- 전국사무금융서비스노조
- 안양, 군포, 의왕, 과천의 100여개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박근혜 퇴진 경기중부 비상시국회의’
- 국민의당 충남도당
- 부산기독시민연대
- 변화를 꿈꾸는 과학기술인 네트워크
- 더불어민주당 경남도당, 국민의당 부산시당
- 전북지역 언론단체[70]
- 익산참여연대
- 한국천주교 여자수도회장상연합회, 한국 남자수도회 · 사도생활단 장상협의회
- 우리만화연대
- 혜윰
- 안산 지역 시민 · 사회단체
- 한국YWCA
- 전국청소년정치외교연합
-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전국민주택시노동조합 광주본부
- 경주시민행동
- 전국 전·현직 대학언론인
- 체육인 592명
- 연극평론가 55명
- 천주교 광주정의평화위원회
- 천주교정의구현 청주교구사제단
- 천주교 전주교구
- 참여자치 군산시민연대 등 41개 시민사회단체
- 경남지역 학부모 2344명
- 중국 상하이 교민 30여명
-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 총연합회
- 강릉시 경실련, 강릉시 노동당, 강릉시민행동 등 강원 강릉지역 13개 시민사회노동진보정당
- 노숙인 등 빈민을 지원하는 빈곤사회연대
- 박근혜정권 퇴진 투쟁에 나서는 비정규직 노동자 일동
- 서울지방변호사회
- 용인시의회 민주당 의원
- 산청간디학교
- 전국국공립대학교수회연합회(국교련), 한국사립대학교수회연합회(사교련)
- 건보공단 노동조합
- 한국YMCA 경남협의회
-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회사목국 빈민사목위원회, 대한성공회 정의평화사제단·나눔의집협의회,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인권센터 등 범 그리스도교 사회단체
- 창원 작은교회모임
- 서울대 85학번 543명, 고려대 85학번 동문 370명[71]
- 광주시의회
- 경제민주화 실현 전국네트워크(경실련)
- 대중음악, 국악, 클래식을 아우른 음악인 2천300여 명
- 재영한인 유학생과 워홀러(워킹홀리데이 비자 소지자), 사업가 등
-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부설고등학교
- 대진고등학교
- 대학노동조합정책연대
- 청주외국어고등학교 80명
- 전국 각 지방변호사회 소속 변호사 3288명
- 거창고등학교
- 홍익대학교사범대학부속여자고등학교
- 대원외국어고등학교 졸업생 910명+(늘어나는 중이다)
- 시국선언을 위한 제주지역 청소년 모임
- 재핀란드 한국 교민 100여명
- 정신장애와 인권 파도손
- 고려대86학번동기(1차)151명
- 제주불교연합회, 전북 순창군민 665명
- 성균관 영주청년유도회
- 러시아 · CIS한인회총연합회
- 만화캐릭터 시국선언 이충호 작가외 124명의 작가,지망생 [72]
- 기독교대한감리회 #
- 조계종 비구니회
- 한국을 걱정하는 재동티모르 한인 모임
- 조계종 승려 2648명 #
- 경기고등학교
- 남원주중학교[73]
- 고양시, 파주시
- 중화권 교민[74]
- 성남동중학교
4.2. 동맹 휴학
인권을 고민하는 대학생이 모여 만든 대학연합체 ‘사람들’은 오는 10일을 ‘동맹휴학의 날’로 정하고 대학 사회에 참여를 독려하기 위해 동맹휴학 동참을 호소하는 내용의 대자보를 대학 곳곳에 붙이고 있다.# 동맹휴학이 현실화되면 지난 광우병 촛불집회 이후로 8년만에 동맹휴학이다.11월 8일, 충북대에서는 시국선언 대자보가 누군가에게 뜯기어 경찰에 신고를 하였다. 경찰은 CCTV 조사를 통해 해당 범인을 색출할 것이라고 밝혔다.#
4.3. 퇴진 서명 운동
박근혜 퇴진을 요구하는 온오프 서명이 진행 되었다.안철수 의원이 공개적으로 퇴진 서명 운동을 밝히면서 퇴진 서명 운동이 본격화되고 있다.#
11월 8일, 전북에서는 박근혜 퇴진 서명 참가자가 7200여 명을 넘어섰다고 밝혔다. 당초 목표는 1만여 명이었으나 주말을 거치며 서명 참가자가 늘어 조기 달성할 것으로 밝혔다. 주최 측은 목표치를 달성하더라도 지속적으로 퇴진 서명을 받을 것이라고 밝혔다.#
워싱턴 DC, 뉴욕, 런던, 베를린에서도 박근혜의 퇴진을 요구하였다.#
4.4. 집회
초기 대학가와 소규모 사회단체를 중심으로 박근혜 퇴진을 요구하는 집회가 시작되다. 이후 점차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내용이 점차 박근혜의 국정농단으로 발전함에 따라 박근혜 퇴진 범국민행동으로 나타나게 되었다. 관련 문서를 참조하도록 하자.초기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 대한 항의 집회로 인식이 되었으나 점차 박근혜 정부의 폐해가 드러남에 따라 박근혜 하야/탄핵으로 발전했다는 점을 인식하자. 최순실을 처벌을 요구하는 게 아니라 박근혜 하야 혹은 탄핵을 요구하는 것이다.
4.5. 관련 민중가요
* 하야가 - 개사 버전
4.6. 하야냐, 탄핵이냐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이후 박근혜 대통령이 자리에서 물러나야 한다는 의견에는 일부 소수를 제외하면 공통된 의견이지만, 당시에는 그 방식이 하야인지 탄핵인지는 의견이 엇갈리고 있었다. 일단 광화문에 모인 시위대나 야당 주류의 의견은 하야를 요구하고 있으나, 청와대의 버티기 의지가 완고하고 박근혜 대통령의 성격상 절대 자진 하야는 없을것이라며 하야만 요구하다가는 시간이 차일피일 미뤄지며 결국 임기를 다 채우고 내려오게 될 것이므로 탄핵을 해야한다는 의견도 만만치 않았다.
탄핵의 경우에도 난관은 있는데 대표적으로 우려되는 부분은 이 정도로 간추려 볼 수 있겠다.
- 탄핵소추에 필요한 국회의원 정족수가 새누리당의 협조 없이는 채워지지 않는다는 것.(2016년 12월 9일 234표로 가결)[75]
- 탄핵안이 통과되었다는 가정하에, 헌법재판소 심판 과정에서 검사격인 탄핵소추위원을 뽑아야 하는데 이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위원장이 맡아야 한다. 문제는 법사위 위원장이 새누리당 권성동 의원인데[78]과연 새누리당 의원이 대통령을 강력하게 탄핵하여야 한다는 주장을 할 수 있겠으며, 근거를 제시할 수 있겠느냐는 의구심이 가져지는 것.
- 결정적으로 탄핵이 국민투표가 아니라 헌법재판소에서 결정을 하기 때문에 만에 하나라도 탄핵소추가 헌재에서 기각될 경우[79] 청와대에 버티기 명분을 가져다 주게 되며 정국은 더 안개 속으로 빠져들게 된다.
- 또한, 탄핵안이 통과 되고 대통령이 직무정지가 된다고 하더라도 국무총리가 대통령의 권한을 대행하게 되는데 과연 국민들이 대통령이 탄핵된 정권의 연장선상을 받아들일 수 있겠느냐가 의문점으로 남기도 하는 부분이다.[80] 이에 야3당이 대통령 퇴진에는 의견을 같이 하면서도 총리를 먼저 뽑아놓고 대통령을 탄핵할지, 아니면 대통령을 우선 탄핵하는 절차에 돌입할지에는 이견이 있는 상황이라 우선 의견 조율부터 우선시 되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2016년 11월 14일 JTBC 뉴스룸 팩트체크 코너에서는 대통령 탄핵에 대한 어려움을 소개했다.
이렇듯 탄핵이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대통령의 하야를 요구하고 있으나, 청와대 내부에서는 '하야는 못하겠으니 차라리 탄핵을 하라'라는 감정적인 대응까지 하고 있고, 대통령 자신은 시간이 지날 수록 국정을 정상적으로 운영하려는 의지를 보이고 있어 하야 또한 현실적인 장벽에 부딪힌 것이 아니냐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결국 하야를 유도하든, 탄핵안을 통과 시키든 이는 야3당의 적극적인 공세와 시민 단체와 국민들의 지속적인 요구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이기도 했다.
사실 탄핵소추가 가결될 경우, 그때부터 대통령은 원하더라도 사임할 수 없다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대통령은 임명직이 아니기 때문에 그렇지 않다는 해석과 엇갈리고 있다.
탄핵사유에 대해서는 지난번 노무현 대통령 탄핵소추 및 심판에서도 문리적으로 대통령이 사소한 법률을 위반해 탄핵사유가 인정되는 모든 경우에 자동적으로 파면결정을 하도록 규정하고 있다고 해석해 노무현 탄핵에 찬성한 재판관이 세명이나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다가, 이번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인해 받고 있는 행위는 부정부패행위로서 지난번 노무현 탄핵 사건에서 다수재판관들이 탄핵이 가능한 사유로 제시한 사유에 ‘헌법수호의 관점에서 중대한 법위반’이나 ‘국민의 신임을 배반한 행위’에 포함된다는 시각이 우세해 가결될 것이라는, 즉 단순히 자기가 보수성향 재판관이라고 박근혜를 편들기 어려울 것이라는 인식이 우세한 상황이다. 현실적으로 거의 모든 국민이 대통령에게 등을 돌린 상황이고 대통령의 위법행위 자체도 개연성이 높기 때문에, 헌법재판관들이 그저 대통령에 대한 충성심이나 성향의 문제로 탄핵을 기각시킨다면 헌법재판소는 그때부터 국민의 신뢰를 완전히 잃게 되고, 국회에서 추진 중인 개헌 이슈와 맞물리면 조직 자체의 존속이 위태로워질 수도 있다. 이런 상황을 뻔히 알면서 무작정 대통령의 편을 들 거라고 보기는 어렵다.
2016년 11월 20일 검찰의 최순실 국정개입 수사결과 발표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상당 부분 공모를 한 정황이 드러났음을 밝히고, 공소장에도 박근혜 대통령의 공모한 정황 등을 적시함과 동시에 대통령을 피의자로 입건하여 수사를 한다는 점을 밝힘으로써 앞으로 대통령 탄핵 정국에 탄력이 붙을 것으로 전망이 되고 있다. # 이후 박근혜 대통령 탄핵 소추안이 국회에서 가결되고, 헌재가 만장일치로 탄핵안을 인용하면서 박근혜 대통령을 파면시켰다.
5. 어떻게 폭력 사태 없이 성공했나?
5.1. 민주화 이후 헌정체제의 확립
1987년 민주화 이후 공권력은 시위나 집회를 더 이상 제4공화국이나 제5공화국처럼 탄압하지 못했다. 민주화 이전 세대의 시위는 시민 불복종과 저항권이 당연하게 수반되었을만큼 격렬했다. 그만큼 대응하는 공권력도 유형력을 동반한 진압을 가하였음은 자명한 사실이다.그러나 시대가 발전하며 확립된 자유민주주의 체제와 시민의식의 성장은 더 이상 국가의 시스템이 권력자 일방을 향하여 맹종하지 않게 되었다. 시위를 대응하는 경찰도 과거와 달리 적법한 절차를 준수하여야 한다는 인식을 중요시 여기게 되었으며 구성원이 다양화되며 무조건 친정권성향만 존재하는 것도 아니다.
결국은 헌정질서가 권력자의 권위보다 우선시된다는 당연한 상식에 입각해 체제가 안정화됐다는 점이 중요한 요인이 된 것이다.
5.2. 최악으로 치달은 박근혜에 대한 이미지
박근혜의 평가가 최악으로 치달았고 지지율 또한 날이 갈수록 추락에 추락을 거듭해 역대 최저 기록을 경신하기에 이르렀다. 그 전까지의 역대 최저 지지율 기록은 김영삼이 정권 말기의 IMF 외환 위기 당시 기록한 6%였는데 박근혜는 후반 4%까지 떨어지며 이 기록을 깨버렸다. 대선 결과에 대한 불복과 반발 움직임에서 시작해서 박근혜의 매우 부실한 행적까지 점점 지지율이 내려가고 있었는데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결정타가 돼서 이 지경이 된 것이다.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터져서 탄핵까지 나오게 된 것은 바로 국회가 여소야대 형국이 되었기 때문이고 이는 제20대 국회의원 선거 문서 참조. 그리고 박근혜가 결백했었다고 해도 지지율 회복하기에는 너무나도 많은 지지층을 잃었다.
5.3. 목적의 정당성과 힘을 확보한 투쟁
퇴진 운동의 주체인 시민들의 목소리는 누가 봐도 확실하고 힘 있는 목소리였다. 이 때문에 오히려 탄핵 반대 집회가 폭력사태를 일으키면서도 전혀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또한 목적이 헌법 수호 운동이었다는 점도 작용하였다.[81] 헌법 수호가 목적이라면 질서를 지키는 건 당연하다. 그러니 폭력사태는 그만큼 적은 게 당연한데 이번에는 특히 더 그러했기에 폭력사태가 없었던 것이다. 이 운동이 폭발적인 돌풍으로 이어진 사건이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이다. 민간인에게 극비자료를 보여준 것도 문제였고 그뿐 아니라 헌법을 어긴 부분이 한둘이 아니기에 이에 대한 법의 심판을 받아야 한다는 시민들의 의식과 법은 약속이며 질서를 위한 것이라는 부분, 그리고 대한민국 헌법 1조 1항의 근거가 복합적으로 작용해서 청와대 앞까지의 시위가 허락된 것으로 보인다.5.4. 국가 안보에 대한 인식
극비 자료를 민간인에게 보여줬다는 문제는 매우 심각했다. 막말로 최순실이 적국에서 보낸 첩자이기라도 했다면 범국가적인 비상사태가 도래했을 것이 자명했다. 한 마디로 '대통령이 지키지 않는데, 안보는 개뿔!'이다. 만약 비슷한 방법으로 적에게 넘어간다면 어떻게 되냐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시민들이 분기탱천한 까닭도 이것이다. 지금의 젊은 세대들은 천안함 피격 사건, 연평도 포격전 등으로 인해 안보 측면에서는 다른 세대보다 보수적인 부분이 조금 있다. 그래서 국가안보 사항에 굉장히 예민했다. 보수측에서도 탄핵 찬성 세력이 괜히 나온게 아니다. 탄핵소추 표결에서 299표 중 '가'(탄핵 찬성) 표가 234표인 데서 알 수 있듯이 새누리당 내 비박은 물론이고 친박 의원 중에서도그리고 이러한 안보 인식으로 인해 퇴진 운동에 대한 '종북', '색깔론'이란 폄하가 전혀 힘을 발휘하지 못하였다.[82] 마침 북한에서도 남한의 시국 상황에 대해서는 의례적인 반응만 나타내고, 단순히 '남조선에서 대통령 퇴진을 주장하는 운동이 벌어지고 있다'라는 식의 내부 보도를 간략하게 했을 뿐 이를 이용한 대남 선전 및 도발 등의 가시적인 움직임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따라서 '북풍'도 사실상 전혀 작용할 수 없었다. 사실 북한의 현 상황을 생각해보면 당연히 이 상황을 선전용으로 쓸 수는 없다. 외부선전은 이미 외신이 극찬을 하고 있는 마당이고, 내부선전도 무리일 수밖에 없는 게 일단 데모(demo)라는 말과 비슷한 단어인 데모크라시(democracy)를 생각해보면 이걸 인민들한테 보여주는 건 북한 정권으로선 당연히 자폭행위였다.[83]
5.5. 시민의식과 시위 문화의 성장
그전부터 있어온 민주화 운동의 역사와 현대에 와서는 굳이 유혈사태를 각오하지 않아도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인식과 그 증거가 확실하게 자리잡았다. 법원에서도 청와대까지 행진을 허락하고 경찰들도 시민들과 협조했던 걸 보면 이를 쉽게 알 수 있다.그리고 이 운동의 주체인 시민들의 협조를 통한 질서 유지가 가능했다. 특히 전부터 있어 온 집회에서 벌어지는 폭력 사태에 대한 부정적 시각도 작용했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폭력사태가 없었다는 점과 오히려 반대 측이 폭력을 행사했을 뿐만 아니라 친박단체는 여기저기서 민폐를 저지른 회원들이 있었고 이에 불만을 터뜨린 시민들이 많았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이해가 빠를 것이다. 이후에는 좌우를 막론하고 법질서를 무시하고 폭력을 휘두르는 행위는 아무리 의도는 좋았다고 해도 시민들의 호응을 얻기 어렵다는 전례를 남기게 되었다. 물론 이것은 그만큼 국민들의 비폭력 문화에 대한 열망이 컸으며 폭력시위에 대한 불만 역시 많이 커져 있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도 있으며 딱히 폭력시위가 필요하지 않을 만큼 목소리도 컸고 참가인원도 많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시민 측에서도 과격시위자가 발생할 경우 "비폭력", "법질서"를 외치며 과격시위를 자제할 것을 요청했고, 그래도 불응하면 시민들이 과격시위자를 붙잡아서 경찰에 넘기는 행동을 보이기까지 했다.[84] 이것을 그것이 알고싶다에서는 '이전 시위에 대한 학습효과'라고 언급했다. 좀 더 이야기 하자면 폭력시위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폭력시위가 일어날 위험성을 억제하는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민족의 암흑기인 일제강점기를 지나서 대한민국의 성장속도는 정말 놀라울 만했을뿐더러 민주주의의 발전도 충분히 대한민국의 국민으로서 긍지를 가질 만한 부분이다. 그리고 전세계 민주화 운동의 역사에서 시민들이 가장 크게 열망하고 있는 것은 폭력 없이, 혁명 없이 충분히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세상인 것이다. 이번 집회의 경우 시민들이 충분히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세상이었고 또한 사건도 이미 충분히 커졌으니 설사 "범죄가 없었다" 할지라도 박근혜 대통령이 책임져야 할 부분과 행동이 분명하게 드러나 있었고 이것을 모르는 사람이 없기에 이것이 서로 간의 신뢰를 형성해서 충분히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것이 분명했기에 폭력사태가 없었던 것이다. 거기다가 이번 집회는 폭력사태를 줄이면서 문화행사처럼 진행하고 시간을 최대한 지키고 경찰과 협조하는 등의 성의를 보였기에 그만큼 호응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이다. 즉, 폭력시위가 정말 필요없었기 때문이라는 것. 실제로 '국뽕'들도 주요 요인을 빠른 속도로 이루어낸 민주화를 들기도 한다. '국뽕'에 반대하는 사람들조차도 아시아에서 높은 수준의 민주화를 이루었다는 것만은 국뽕에 취해도 된다, 자랑스러워해도 된다는 말을 한다. 이는 윗동네는 말할 것도 없는 데다, 중국은 공산당 일당 독재이며, 일본은 자민당 독재에 가까운 수준이라는 것과 대비된다.
거기다가 이전 정부부터 발전해 온 정책들도 한몫했는데 이로 인해 모르는 사람들조차 박근혜의 처신에 문제가 있는 거 아니냐는 의견들도 있었다. 즉, 이전 정부에 비하면 떨어진다는 것이다.
5.6. 시민 질서에 협조하는 경찰들
시민들이 질서를 유지하자 경찰 측 역시 협조해주는 모습을 보였다. 일부 과격 시위대가 버스 위로 올라가는 행동을 보이자 경찰 측이 비폭력을 외치며 제지했고, 일부 경찰관들은 시위 참가자의 기념 사진을 대신 찍어주거나 쓰러진 시민에게 핫팩을 건네주기도 했다. 또한 부상을 당하거나 쓰러진 시위대의 일원들이 무사히 구급차에 실려갈 수 있게 도와주는 등의 모습을 보였다. 이는 경찰 측 역시 시민의 질서 유지에 대한 노력에 응답하듯이 도움을 주었기에 가능한 것이다. 그 덕에 비폭력 유지를 위한 뼈대가 튼튼했다.이는 이전부터 국가를 막론하고 시위 진압의 선봉에 항상 경찰들이 존재했음을 생각하면 굉장히 이례적인 일이었다. 시위는 헌법에 명시된 국민의 지당한 권리이고, 이를 경찰들이 인지하고 진압이 아닌 질서 유지에 그 초점을 맞췄다는 것이 비폭력의 핵심적인 기둥이 될 수 있었다. 경찰들이 나서서 시위를 건전하게 유지하고 있으니 상부에서는 유혈 사태를 계기로 강제적인 개입을 시도할 수조차 없게 되었다.
5.7. 탄핵 심판에 대한 법조인들의 극명한 대조
박근혜 측 대리인들이 거칠고 무례한 표현을 남발하기도 했는데 이런 태도는 법조인들에게 있어서 피고인을 변호할 생각이 없다.라고 큰소리로 외치는 것과 같다. 김평우 변호사가 탄핵 결정 일등 공신이라는 조롱까지 나왔을 정도이다. 물론 노무현 때도 막말이 있긴 했지만 이번에는 거의 기행이라고 할 만큼 너무 심했다. 판사 입장에서도 결코 변호사들이 곱게 보일 리가 없는 게 좀 나쁘게 말하는 것일지 몰라도 여론에 편승해 탄핵심판이 나오는 것만으로도 재판에서는 결코 곱게 보일 리가 없다. 그런데 그런 탄핵심판에서 피청구인의 변호인들이 저렇게 나온다면? 불에다가 휘발유를 붓는 꼴이된다. 오죽하면 주심 재판관이 피청구인 측 대변인에게 "피청구인의 의사나 의중은 알고 있는지 모르겠다.'' 라는 말을 했을 정도였다.이렇게 안하무인으로 나오는 피청구인 측에 비하면 헌법재판관들은 정말 신기할 정도로 침착했다고 볼 수 있으며 많이 참아준 것에 가깝다.[85] 결국 대통령 탄핵심판이라는 전례없이 엄중해야 할 자리에서 저런 태도를 보였으니 헌법재판관들의 입장에서 보면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물론 이 탄핵 심판을 다루는 헌법재판관들은 이 대리인들과 분노가 느껴지는 설전을 교환하기는 했으나 이러한 기행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침착함과 공정성을 잃지 않았다. 물론 재판관들도 일단은 사람인지라 이런 침착함과 공정성을 유지한 것과는 별개로, 이정미 소장대행은 비유가 아니라 정말로 변론 중 뒷목을 잡기도 했다. 비단 이정미 소장대행뿐만 아니라 이날 변론을 종결한 헌법 재판관들은 술집에서 위로주를 엄청 마셨을 정도였다고 한다. 이것만 봐도 헌법재판관들이 받은 스트레스가 상당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는 탄핵 심판의 과정 및 결과에 대한 시민들의 절대적인 신뢰로 이어질 수 있었다. 탄핵 심판 직후의 여론조사에서도 '탄핵 심판을 수용한다'는 여론이 압도적으로 높은 것은 물론이고 오히려 '대통령 탄핵을 찬성한다'는 여론보다 그 수치가 더 높을 정도였다. 즉 대통령 탄핵에 반대하는 사람들도 '그래도 탄핵 심판이 이루어졌으니 수용해야 한다'라는 의견으로 돌아섰다는 뜻이다.
5.8. 박근혜로부터 등을 돌린 언론
정치인을 대변하던 언론들조차 시민의 편으로 돌아섰으며 그 전부터 정치인들에 관해서 무슨 게이트가 터졌다 하면 대서특필하는 언론들이 있어 왔는데 이번에는 특히 더 강했던 성격이 있었다.[86]6. 영향
Demokratie und Asien – das soll nicht zueinander passen? Im Augenblick sieht es eher so aus, als könnten Amerikaner und Europäer von den Koreanern lernen, wie man die Demokratie mit Mut und Leidenschaft verteidigt.
Democracy and Asia – that should not be compatible? For the moment, it seems that Americans and Europeans are learning from Koreans how to defend democracy with courage and passion.
민주주의와 아시아, 이 둘은 서로 맞지 않는 것인가? 현 시점에서 아메리카인들과 유럽인들은 한국인들로부터 용기와 열정을 갖고 민주주의를 어떻게 지켜내는지 배워야 할 것으로 보인다.
디 차이트, 2016년 12월 14일. ##, 전문 번역
Democracy and Asia – that should not be compatible? For the moment, it seems that Americans and Europeans are learning from Koreans how to defend democracy with courage and passion.
민주주의와 아시아, 이 둘은 서로 맞지 않는 것인가? 현 시점에서 아메리카인들과 유럽인들은 한국인들로부터 용기와 열정을 갖고 민주주의를 어떻게 지켜내는지 배워야 할 것으로 보인다.
디 차이트, 2016년 12월 14일. ##, 전문 번역
South Korea just showed the world how to do democracy.
대한민국은 전 세계에 민주주의가 무엇인지 똑똑히 보여주었다.
워싱턴포스트, 2017년 5월 10일. ##
대한민국은 전 세계에 민주주의가 무엇인지 똑똑히 보여주었다.
워싱턴포스트, 2017년 5월 10일. ##
한국에서 돌아올 때 도쿄의 야경을 보고 한국의 촛불 시위로 반짝거리던 그 날을 떠올렸습니다.
일본에서도 촛불 혁명을 반드시 해내야 한다고 다시 한 번 생각했습니다.
모리토모 스캔들을 규탄하기 위해 거리로 나온 시민 운동가 히시야마 나호코.
일본에서도 촛불 혁명을 반드시 해내야 한다고 다시 한 번 생각했습니다.
모리토모 스캔들을 규탄하기 위해 거리로 나온 시민 운동가 히시야마 나호코.
박근혜가 탄핵되고 문재인 정부가 들어섰다. 또한 2017년 10월 촛불집회에 참여했던 대한민국 국민들이 올해의 ‘프리드리히 에버트 인권상’ 수상자로 선정되었다.
이 사건을 통해 한국의 민주주의는 건재하며 합당한 시민의식이 있다는 생각이 퍼졌다. 당시는 헬조선 등의 단어가 유행하는 비관적인 분위기가 사회를 지배하는 상태였는데, 촛불 집회와 대통령 탄핵 과정은 많은 사람들이 한국인으로서 자존심을 회복하는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특히 서로 신경 많이 쓰는 옆 나라인 일본은 원인이 질투에 있다며 폄하하는 보도를 내기도 했는데, 이를 본 한국인들은 오히려 "일본의 정치 수준은 처참하고 한국은 동아시아에서 최고다"라는 인식이 보편화 됐을 정도다. 저런 인식이 원래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대통령 탄핵 집회라는 매우 극적인 사건이 일어나는 중이었던 한국에 비해 이를 부정적으로 보도하기 바쁜 일본을 보며 이러한 인식이 퍼진 것이다. 그도 그럴게 정상적인 민주주의 국가들은 모두 칭찬하는 반면, 비판하거나 침묵하는 국가들은 정치적으로 뭔가 문제가 있는 곳들 뿐이니.
그래서인지 스페인어를 쓰는 나라들은 대부분 이 문제에 침묵했다. 스페인어권 국가들은 민주화 부분에서 나사가 하나씩 빠졌기 때문이다. 일단 스페인부터 왕정 국가인데 이 쪽은 바스크, 카탈루냐의 독립 문제로 시끄러웠고, 그렇지 않더라도 왕정 폐지 및 공화국 헌정 복귀를 주장하는 시민들도 다수 있으며[87], 이쪽도 민주화 자체는 한국보다 10년 빨랐어도 과거 프랑코 정권 시절 군사 독재 유산 청산은 오히려 한국보다 더 미흡한 면도 많기 때문이다.[88][89] 그리고 멕시코를 비롯해 중남미 여러 국가들이 이 소식을 알고 부정부패와 장기 집권에 대해 들고일어날 게 뻔하기도 했고. 스페인을 제외한 대부분의 스페인어권 국가의 국민들이 영어를 할 줄 모른다는 것도 영향을 미쳤다.[90] 반대급부로 페루와 브라질[91]은 탄핵을 추진하기도 했다.
외신들은 "한국의 정치는 후진적이지만 시민들은 선진적이다."라던가 "한국의 시민들은 서방에게 진정한 민주주의가 무엇인지 가르쳐주었다."라는 등의 논평을 내놓았다. 이는 중국과 러시아 같은 독재국가의 약진과 더불어 민주주의 세력의 대표지인 서방 세계에서 각각 브렉시트와 도널드 트럼프의 미국 대통령 당선으로 대표되는 고립주의 포퓰리즘이 유행하기 시작하여 '민주주의의 위기'를 느꼈기 때문이다. 이렇게 민주주의 국가들에서 혼란이 일어나는 데 반해 비민주국가들은 약진하는 역설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평화적인 방식으로 시민들의 정치참여가 이루어지고, 민주적으로 정식 절차를 거쳐 부패 대통령이 쫓겨나는 나라가 나타났으니 상당히 고무적일 수밖에 없었다.
대통령제를 운영하는 국가에서 지지율이 안 좋으면 항상 한국을 언급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한국에서 일어난 정치 운동이 세계적으로 영향을 끼치는 사건 중 하나가 되었다. 그래서 이 퇴진 운동과 한류의 성격을 결합해서 한국의 촛불집회, 민주화와 민주주의 체제 또한 한류의 한 형태가 되고 있다는 진지한 주장도 나오고 있다. '촛불 한류'(한국일보 칼럼)
도널드 트럼프가 퇴임을 앞두고 내려오자 워싱턴 포스트에 '한국을 배워야 한다'라는 시론이 기고되었다.#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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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공교롭게도 이 날은 박근혜의 친아버지가 사망한 날짜이다. 역사의 우연인 셈.[2] 이것이 기폭제가 되어 터져나왔고 다른 문제들도 부각된 것이다.[3] 6월 항쟁보다 약 3배 많은 수치이다.[4] 대부분의 비박계 의원들은 탄핵 가결 이후 바른정당을 설립하여 새누리당에서 탈당을 했다. 이후 바른정당 의원들은 정치인의 집회 참여가 부적절하다고 판단했는지 촛불 집회ㆍ태극기 집회 모두 참석하지 않았다. 하지만 박근혜 탄핵 이후 바른정당 탈당 사태를 생각해보면 여전히 박근혜 정부 옹립의 책임이 없지 않다.[5] 2017년 계엄령 문건 사건에 의하면 본래 5.18 민주화운동 때처럼 시위진압을 위해 계엄령을 선포하고 군을 투입할 계획까지 있던 것으로 드러났다. 탄핵이 인용될 수밖에 없어서 망정이지 탄핵 기각 후 폭력 시위가 일어났으면 이를 빌미삼아 친위 쿠데타가 일어난 후 독재정권이 부활할 가능성도 있었던 것이다. 물론 말이 그렇지 실현 가능성은 전무했다.[6] 좋게말해서 레임덕이지 그냥 개같이 멸망이다.[7] 일명 마국텔이라고 불렸던 국회 필리버스터가 나오게 된 법안이다.[8] https://news.joins.com/article/20784986[9] 성명 내용에 시국을 처음 시작한 이화여대가 배제되어있고, 다른 학교들이 먼저 시국을 했음에도 선봉을 자처하고 있어 다소 비판이 있다. 그러나 이화여대를 언급하자는 의견 역시 본 시국선언의 주체가 엄연히 서울대이고 다른 학교를 언급하는 것은 주체성 면에서 부적절하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이렇듯 여러 비판이 있었기 때문에 시국선언문 역시 한 번 수정을 거쳐서 발표된 것이다.[10] 강남대학교, 경기대학교, 명지대학교 자연캠퍼스, 서울예술대학교, 수원대학교, 수원여자대학교, 안양대학교, 중앙대학교 안성캠퍼스, 한국공학대학교, 협성대학교, 한양대학교 에리카[11] 단국대학교는 두 캠퍼스가 이원화 캠퍼스로 성균관대처럼 모두 본교이다.[12] 편견이다. 대학마다 다르겠지만 대개 신학대 학생회는 급진적인 경우가 많다. 독재, 군사정권 시절에도 거세게 저항하던 대학에 한신대 감신대가 늘 포함되어 있었다.[13] 신학대학원은 학우회가 총학생회의 역할을 대신한다.[14] 장신대는 학부보다 신대원의 비중이 더 크다. 인원수부터 한 학년에 학부는 150여 명이지만 신대원은 400명이 넘는다. 실제로 교계에도 전도사로 활동하는 사람들 다수가 신대원생이기에 권한과 역할이 클 수밖에 없다.[15] 학생들의 경우 외지인이 많지만 지역 분위기를 아예 무시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리고 포항공과대학교는 무려 정치활동 금지 교칙이 2020년 지금까지도 버젓이 남아있으며, 이 당시에는 이 규정을 근거로 '촛불집회에 학교의 이름으로 참여하는 학생들을 제적하겠다'고 대학본부 측에서 엄포를 놓기도 했을 정도.[16] 학교전체를 대표할 시국선언은 신중을 기한다는 이유로 부결되었으나, 총학생회만의 비공식적 시국선언문은 공개되었다.[17] 성명서 발표. 시국선언문은 31일에 발표되었다.[18] 여담으로 이날은 박정희가 김재규의 총탄에 서거한 날이다.[19] 외대답게 무려 9개 국어(한국어, 영어, 중국어, 일본어, 프랑스어, 이탈리아어, 스페인어, 포르투갈어, 스웨덴어)로 시국선언을 하는 모습을 보였다.[20] 자연과학캠퍼스와 협의를 거치지 않고 독자적으로 진행했다.[21] 서울, 안성캠퍼스 총학생회가 통합으로 진행.[22] 오후 6시30분, 서울 성북구 석관동 한국예술종합학교 예술극장 앞에서 ‘비선실세 최순실 개입 사태에 대한 시국선언문’을 낭독하고 시굿선언 퍼포먼스로 동해안 별신굿 공연을 펼쳤다. #[23] 총학생회 외에도 공과대학 학생회, 인문사회대학 학생회 등 단과대학별 학생회도 각자 시국선언을 발표했다.[24] 당초 10월 26일에 시국선언이 되었다고 나와있지만 상술된 대로 총학생회가 아닌 여론을 제대로 수렴하지 않은 정체불명의 조직이 시국선언을 한 것이다. 총학생회와 단대의 공식적 시국선언은 10월 28일에 나왔으므로 10월 28일 항목으로 옮긴다.[25] 참고로 박근혜 대통령은 서강대 졸업 동문이다.[26] 천안캠퍼스와 협의를 거치지 않고 독자적으로 진행했다.[27] 감리교신학대학교, 서울신학대학교, 성공회대학교, 수원가톨릭대학교, 연세대학교, 장로회신학대학교, 총신대학교, 한신대학교의 학생회, 신학회 및 교회연합운동 단체가 모여 결성되었다. #[28] 개교이래 첫 시국선언[29] 강남대학교, 경기대학교, 명지대학교 자연캠퍼스, 서울예술대학교, 수원대학교, 수원여자대학교, 안양대학교, 중앙대학교 안성캠퍼스, 한국공학대학교, 협성대학교, 한양대학교 에리카가 협의하여 발표한 성명, 29일 페이스북등 SNS상에 게시후 10월 31일 발표, 발표장소는 한양대 에리카 캠퍼스 본관 사자상 앞. 모두 개교 이래 첫 시국 선언이다.[30] 고려대, 동국대, 서강대, 서울대, 연세대, 이화여대, 중앙대, 카이스트, 한양대, 홍익대[31] 시국선언문은 10월 30일에 공개되었지만 개교기념일이 끼어 있어 11월 1일 공식 선언문을 낭독했다.[32] 27일 긴급 전체학생대의원회를 거쳐 시국선언에 합의하고 10월 29일 선언문 공개, 31일 선언했다. 1987년에 포항공대가 개교한 이래 첫 총학생회 시국선언으로 기본적으로 정치 활동에 한 발 떨어져있는 경향을 보이는 포스텍 치고는 대단히 이례적인 일이다.[33] 총학생회가 미온적 태도를 보이자 대의원회 주도로 압박하여 선언했다.[34] 10월 31일 부산 청년학생 시국선언단이 승학캠퍼스에서 시국선언문을 발표하였고, 11월 1일 부민캠퍼스에서 교수와 재학생이 공동으로 시국선언을 하였다.[35] 10월 31일 선언문 공개, 11월 1일 발표.[36] 10월 27일 전체 학생투표안을 가결하고 투표를 통해 여론을 수렴, 9할 가까운 찬성을 통해 10월 31일 선언문 공개, 11월 1일 발표 예정. 이쪽도 개교 이래 첫 시국선언을 하였다.[37] 천안캠퍼스 총학생회에서 각 단과대학의 지지투표를 통해 동의를 얻어 시국선언을 하였다.[38] 장애인을 위해 수화도 같이 진행했다.[39] 청주권 5개 대학 총학생회는 전국에서 처음으로 공동 시국선언문을 채택했다.[40] 대구가톨릭대와 광주가톨릭대 신학생들은 공동으로 5개조의 시국선언을 발표하였다. 특히 대구가톨릭대 신학생들의 시국선언은 개교 이래 처음이다.[41] 두 학교는 거의 지리상 서로 가까운 학교여서 세종정부청사에서 합동으로 진행했다.[42] 학생독립운동기념일을 맞아 동시다발적인 시국선언이 있었다.[43] 총학생회와 별개로 학생들이 1147명의 서명을 받고 시국선언을 진행하였다. 총학생회는 11월 5일 별도로 부산 지역 대학 총학생회와 연합하여 시국선언을 진행한다.[44] 중립을 선언한 총학생회와 별개로 시작되었다.[45] 양 캠퍼스 총학생회, 중앙운영위원회, 단과대학 학생회, 학과(부) 학생회의 릴레이 형태로 진행되었으며, 선언 전에는 안성캠퍼스 예술대학 전통예술학부가 창작곡으로 넋을 기리는 음악을 진행하였고, 선언 후에는 안성캠퍼스 예술대학 음악학부 성악전공 학생회장, 전통예술학부 음악예술전공 학생회장의 선창으로 레 미제라블 삽입곡 'Do You Hear the People Sing''를 제창하였다.[46]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611031547001&code=940100[47] https://m.facebook.com/story.php?story_fbid=695039143982782&id=100004301072972[48] 2052명의 서명을 받았으며, 본래 일반 학생들 차원에서 진행되고 있었지만 미온한 태도를 보이던 총학생회가 뒤늦게 합류하여 재학생 및 총학생회의 이름으로 시국선언을 하였다.[49] 총학생회가 정치적 성향의 색을 띤다는 이유로 시국선언을 하자는 학생들의 의견을 묵살해서 학생들이 자체적으로 시국선언을 하였다.[50] 배재대와 마찬가지로 총학 차원이 아니라 학생들이 1182명 경남대 학생들의 서명을 받아 자체적으로 시국선언을 하였다.[51] 이 날을 기점으로 부산에 대학본부를 두고 있는 모든 4년제 대학교들이 시국선언을 선언하게 되었다.[52] 예술대 학생들이 보신각 앞에서 "Do You Hear the People Sing"을 개사하여 부르며 시국선언을 하였다. #영상[53] 경북대 총학생회, 경일대 민주동문회, 대구경북과학기술원 학생회, 대구대 시국선언 추진단, 대구가톨릭대 민주동문회, 동국대 경주캠퍼스 총학생회, 시국해결을 위한 계명인 모임, 안동대 총학생회, 영남대 대학생 시국선언단, 포항공대 총학생회 직속 시국대책[54] 배재대와 비슷하게, 총학생회가 정치적 성향의 색을 띤다는 이유로 시국선언을 하자는 학생들의 의견에 페이스북 선언문 한장으로 퉁치는 만행을 져지르자, 일부 학생들이 서명받아서 자체적으로 시국선언을 하였다. 2일 뒤에는 교수회, 공노조들이 모이는 대규모 시위를 집행하였다.[55] 제주대, 제주국제대, 제주한라대 등 교수 115명[56]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32&aid=0002740617[57] 한국기자협회, 한국PD연합회, 전국언론노동조합, 한국방송기술인연합회,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 자유언론실천재단, 80년해직언론인협의회, 민주언론시민연합, 언론개혁시민연대, 새언론포럼,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언론위원회, 표현의자유와언론탄압공동대책위원회[58] 순천 홈플러스·이마트노조, 광양 참여연대, 민중연합당 여수시 위원회, 구례군 농민회, 정당 시민사회단체 등[59] 민주노총 제천단양지부, 농민회 등 지역 11개 시민사회단체와 정당 등[60] 강원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민주노총 강원지역본부·전국농민회총연맹 강원도연맹 등[61] 경기경제정의실천시민엽합, 경기남부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 경기민주언론시민연합, 경기민예총, 경기평화기독교행동, 경기여성연대, 노동당 경기도당, 민주노총 경기도본부, 민중연합당 경기도당, 전국교지원노동조합 경기지부, 정의당 경기도당, 참교육학부모회 경기지부 등 32개 단쳬[62] 첫 고등학교 이름을 건 시국선언이다[63] 간호사, 약사, 의사, 치과의사, 한의사, 보건의료학생과 보건의료노동자들[64] 다만 이쪽은 그 유명한 개헌지지 성명 사건 때문에 NCCK에게 맹폭에 가까운 비난을 받은 마당이라, 그 진정성이 의심받는 상황.[65] 첫 중학교 이름을 건 시국선언이다.[66] 21세기청소년공동체 희망, 청소년 행동 '여명',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십대섹슈얼리티인권모임, 청포도, 국정교과서 반대 청소년행동 Vol.2, 사람숲 등[67] 전국간호대학생연합, 전국약학대학생연합, 전국치과대학치의학전문대학생연합, 전국한의과대학한의학전문대학원학생회연합[68] 박관용·김원기·임채정·김형오·정의화 전 국회의장, 정운찬 전 국무총리와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 김덕룡 전 한나라당 원내대표, 이종찬 우당기념관 관장, 손봉호 나눔국민운동 이사장, 김명혁 한국복음주의협의회 회장, 법륜 스님, 박종화 경동교회 원로목사, 박남수 한국종교연합 상임대표, 인명진 갈릴리교회 원로목사[69] 새누리당 여상규 의원 사무소 앞에서 시국선언했다.[70] 전북민주언론시민연합·전북기자협회·전북PD협회·전국언론노조 전북지역언론노조협의회 등[71] 6월 항쟁 이끌었던 세대였다.[72] 이충호 작가가 개인적으로 진행한 사안으로, 참가자들이 촛불을 들고있는 캐릭터를 보냈고, 그것을 한곳에 모았다.[73] 11월 30일, 남원주 중학교 학생회 주최로 열린 박근혜 탄핵 요구 집회에서 시국선언을 했다. 이 집회에는 원주 지역 200여 명의 중고등학생이 참여하였다.[74] 홍콩, 마카오, 중국, 싱가포르, 대만, 말레이시아 등 중화권의 교민들이 시국선언에 동참했다!# 특히 홍콩 및 싱가포르의 대학들에서 교수 재직하는 학자들이 앞장섰다. 안그래도 홍콩과 싱가포르에서 2015년 대한민국 메르스 유행과 청해진해운 세월호 침몰 사고 이후 또 한번 한국에 대해 비정상적인 관심이자 무시가 많아지는 세태에 나온 시국선언이다.[75] 대통령 탄핵안이 통과하기 위해서는 국회 총 의석의 3분의 2 이상이 찬성을 해야 하는데 야3당의 총 의석과, 무소속 의석수를 모두 합친다 하더라도 탄핵소추를 통과 시키기 위한 의석수가 부족한 상황이라서 새누리당에서 반란표가 나와야 한다. 그런데 이 부분은 오히려 야3당보다 새누리당 비박계가 탄핵 여론을 주도하고 있어, 탄핵안 통과 자체에 있어서는 의외로 어렵지 않을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76] JTBC 뉴스룸 팩트체크에서 다루어 본 결과 특검 시작 시점부터 헌재의 최종 결정까지 최장 360일까지도 소요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이 시점은 차기 대통령 선거 시기와 맞물려 실질적으로 탄핵의 효과가 있겠느냐는 의문이 드는 대목이다.[77] 물론 하야 안 하고 버티나 탄핵 판결에 시간이 걸리나 피차일반이라는 의견도 있다. 다만 탄핵은 박근혜 대통령의 권한을 빼앗는다는 점에서 어느 정도 긍정적인 면도 있다.[78] 이후에 탈당하고 바른정당으로 당적을 옮겼고 99일만에 새누리당의 후신인 자유한국당으로 복당했다.[79] 일부에서는 헌법 재판관을 임명하는 주체를 보면 헌법 재판소도 믿을 수 없다고 주장한다. 탄핵이 통과되려면 헌법 재판관 9명 중 찬성이 6명 이상 되어야 하고, 심지어 이 기간동안 헌법 재판관 2명의 임기가 끝이 나기 때문에 7명의 재판관이 탄핵안을 다루게 되므로 재판관 2명 이상이 반대를 하면 탄핵안은 통과되지 않는데, 헌법재판관은 권력분립의 원칙의 따라 행정부 3명, 입법부 3명, 사법부 3명 나눠서 추천을 해 임명하고 입법부 3명도 여당 1명, 야당 1명, 여야합의 1명이다. 이들의 주장에 따르면 행정부와 여당 측이 임명한 헌법 재판관들이 박근혜한테 유리한 판결을 내릴 수도 있다는 것. 다만 후술하듯이 이는 억측에 가깝다.[80] 하지만 대통령 탄핵 이후의 국무 총리가 과연 힘을 제대로 쓸 수 있겠는가? 하는 반론도 있다.[81] 헌법 1조 2항[82] 왜냐면 종북, 색깔론이 힘이 발휘할때는 그 대상이 안보상에도 문제가 있을 때에다가 외치는 쪽이 일단 겉으로 보기는 안보에 대해서는 깨끗한 이미지라서 그렇다. 그런데 그 안보에 대해서 깨끗해 보이던 이미지까지 완전히 박살이 났기에 힘을 완전히 잃은 것이다.[83] 그런데 북한은 박근혜 탄핵의 교훈을 잊었는지 2024년 기준 윤석열 정부 퇴진 운동, ,윤석열 탄핵 청원을 로동신문에 꾸준히 보도하고 있다.(...)[84] 6.29 선언 이전 시위에서 소위 말하는 "프락치"가 과격행동을 선동하여 충돌을 야기한 것에 대한 학습효과로 보기도 한다. 그래서 시민들의 순수한 뜻을 거스르는 자는 일단 프락치 아닌가 하는 의심을 하게 만들었다.[85] 김평우 문서에도 나와있지만 이 정도 무례는 명백히 법정 모욕 혐의에 해당하며, 감치나 형사고발 조치를 받을 수도 있는 심각한 사항이다.[86] 단, MBC는 제외한다. MBC는 오히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은폐보도를 하려는 정황이 있었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탄핵인용이 되고 나서야 말바꾸기를 시전하다가 들통났다. 이 후 정권이 바뀌고나선 기존 사측에 반대하던 노조가 자리잡으면서 친민주당-친이재명계의 언론이 됐다. 박근혜 당시의 MBC 역할을 지금은 KBS가 잡았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87] 심지어 바스크, 카탈루냐를 독립시키지 않는 대신 미국처럼 공화국 + 연방제로 바스크부터 안달루시아까지 모든 주를 독립에 준하게 하자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일부 있다.[88] 당장 스페인이 왕국이라는 사실이 과거사 청산이 미흡했다는 분명한 증거다. 원래 스페인은 20세기 초에 왕실을 폐지하고 공화국이 되었는데, 프란시스코 프랑코가 집권하여 독재가 된 뒤에 멋대로 공화정을 다시 폐지하고 왕실을 부활시켜 그게 민주화 이후에도 그대로 유지되었다.[89] 박근혜 탄핵을 북한과 종북 세력의 '모함'으로 주장하는 태극기 부대들과 비슷하게 오늘날 스페인에서도 스페인을 민주화한 후안 카를로스 1세를 반역자 취급하는 프랑코 지지자들이 적지 않다.[90] 당장 멕시코만 봐도 영어 할 줄 아는 사람들은 집이 부유하거나 아니면 몇몇 고급인력 뿐이다. 이마저도 부유하지 않은 사람들은 가정 형편상 나중에 영어를 배우게 된다.[91] 단, 브라질은 포르투갈어를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