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朴鍾和
1901년 10월 29일 ~ 1981년 1월 13일
1. 개요
일제강점기~대한민국의 소설가, 시인, 교육자. 본관은 밀양(密陽), 아호는 월탄(月灘)이다.간송 전형필은 그의 고종사촌 동생이다.
2. 생애
1901년 10월 29일 한성부 남부 반석방 자암동(현 서울특별시 중구 봉래동1가)에서 아버지 박대혁(朴大赫)과 어머니 안동 김씨 사이의 3형제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1920년에 휘문고등보통학교(현재의 휘문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그 해 발간된 문학 동인지 문우에 참여하면서 문학계에 발을 들였다. 이후 시 전문지 장미촌에 <오뇌의 청춘> · <우유빛 거리>를 발표하며 문단에 데뷔하였다. 1922년에는 문학잡지 백조의 발간에 참여했으며, 이때 <밀실으로 돌아가라>라는 작품을 발표했다. 이 잡지에서 그는 홍사용·박영희 등의 시인들과 만나게 되었으며, 이들은 곧 "백조파"라는 동인팀을 결성하기도 했다.
당초에는 현실과 거리가 먼 시를 발표했지만, 차츰 한국의 역사와 문화유산에 대한 관심과 창작욕구가 높아지면서 시인으로서의 활동을 접고 소설가로 전향하게 된다. '금삼의 피'가 박종화의 첫 장편 역사소설로, 1936년 3월 20일부터 12월 29일까지 매일신보에 연재되고 1938년 박문서관#에서 단행본으로 간행되었다. 1924년의 처녀시집 <흑방비곡>과 1946년에 낸 시집 <청자부>를 제외한 그의 모든 작품은 1940년에 매일신보에 연재하고 1942년에 단행본으로 간행된 <다정불심>을 비롯한 대부분이 역사소설이다.1945년에 광복을 맞이하던 시점에 그는 전 조선문학가협회# 부회장을 맡았으며, 1946년 동국대학교 교수 겸 연세대학교 강사를 거쳐 1947년에는 성균관대학교 국어국문학과의 교수로 임명되었고, 서울특별시 예술위원회장을 겸임하기도 했다. 이후 1957년에 성균관대학교로부터 명예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1962년 성균관대학교에서 정년퇴임했다.
1964년 문인협회 이사장을 역임했다. 1966년 제1회 5.16 민족상을 수상하고, 그 상금을 재원으로 자신의 호를 딴 월탄문학상을 만들었다. 1969년 마지막 작품인 <세종대왕>을 발표했으며, 그 뒤로도 문학계의 원로로 대접받으면서 통일원 고문,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을 지냈다. 문화훈장 대통령장과 국민훈장을 받았다.
1981년 1월 13일 서울특별시 종로구 평창동 자택에서 숙환으로 세상을 떠났다. 향년 80세.
3. 평가
광복 전후의 한국 문단은 일제의 민족말살정책으로 인해 한국의 순수문학이 크게 약화되어 있었고, 조선의 역사를 가르치는 것을 금지했기 때문에 민간의 설화나 일부 가문에 전해오는 사찬 역사서를 제외한 조정의 역사기록(조선왕조실록, 승정원일기 등)은 웬만큼 실력있는 집안의 인물이 아니면 접할 수 없었던 터라 국민들의 역사의식이 약해져 있었다.이런 가운데서도 붓을 꺾지 않고 한국의 역사를 소설로 담아낸 그는 광복 이후의 한국 문단에 역사 소설의 부활탄을 쏜 몇 안되는 인물이었다. 물론 조선왕조실록 같은 관찬사서를 열람하기 힘들었던 당시에 나온 작품들이라, 조선왕조실록이나 승정원일기같은 관찬 역사서를 인터넷으로 쉽게 열람할 수 있는 오늘날의 우리들이 보기엔 고증이 잘못되었거나 잘못 알려진 사례를 그대로 인용하는 등의 자잘한 오류가 있긴 하지만, 월탄 박종화의 역사 소설은 그 자체로 한민족으로서 우리가 일제치하에서 잊고 있었던 역사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데 큰 공헌을 했다고 할 수 있다. 진짜 문제는 그의 소설 설정[1]이 이후 어린이 위인전기나 역사만화 등에서 무차별적으로 차용하면서 사서를 쉽게 열람할 수 있게 된 2010년대까지 대중들에게 그대로 수용되었다는 것.
반대로 그 한학 실력 덕분에 세간의 오해를 뒤집는 사실들을 소설에 반영한 사례도 있다. 대표적인 부분이 소설 세종대왕에서 한글 창제가 세종의 비밀 프로젝트였다는 묘사. 창제 단계에서 집현전 역할은 소장파 학자들이 세종의 음운론 정리 떡밥에 낚여 부지런히 자료를 긁어다 바치는 정도이며, 본격적인 역할은 훈민정음 반포 이후의 정리 작업에서 두드러진다. 이 과정에서 벌어진 최만리를 비롯한 집현전 보수파들의 반발 역시 실록에 근거해 충실하게 묘사되어 있다. 순빈 봉씨의 동성애 스캔들을 대중적으로 널리 알린 장본인이기도 하다.
월탄 박종화의 소설들은 후에 미디어화된 작품들이 적지 않은데, 그의 첫 역사 소설인 금삼의 피는 1962년 신상옥 감독의 <연산군>, <폭군 연산>의 2부작 영화와 1987년 이혁수 감독의 <연산군>으로 만들어졌고, 다정불심은 1967년 신상옥 감독의 영화로 제작되었다.
1966년 작품인 양녕대군과 1969년 작품인 세종대왕은 1996년에 큰 인기를 누린 KBS 대하드라마 용의 눈물의 베이스로 미디어 믹스화가 되었고, 2001년 SBS에서 방송되어 큰 인기를 누렸던 대하드라마 여인천하도 월탄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제작된 미디어 믹스다. 2003년부터 2004년에 걸쳐 방송된 SBS의 대하드라마 왕의 여자 또한 월탄의 역사 소설인 <자고 가는 저 구름아>를 원작으로 만들어졌다.[2] 2005년부터 2006년에 걸쳐 방송된 MBC의 대하드라마 신돈 역시 월탄의 역사 소설인 <다정불심>을 원작으로 만들어졌다.
삼국지연의의 번역으로도 유명하다. 이문열, 황석영 역이 요즘 세대에게 가장 유명한 번역이라면 한 세대 정도 전에는 가장 유명한 번역이 박종화의 월탄 삼국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번역이라기보다는 저술이라고 하는 게 맞겠다.
월탄 박종화의 사돈이 바로 <운수 좋은 날>의 작가인 빙허 현진건으로, 박종화의 외아들 박돈수는 현진건의 막내딸인 현화수의 남편이다. 즉, 박돈수는 현진건의 사위가 된다. 현재 고려대학교에서 교수로 재직 중인 박동건이 바로 이 부부의 아들이다. 박종화에겐 손자, 현진건에겐 외손자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