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1-30 11:14:42

보치커이 이슈트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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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생애3.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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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에르데이 공국헝가리인 공작.

2. 생애

그의 가문은 대대로 헝가리 왕국 동부 에르데이에 영지를 가지고 있던 귀족 가문이었으며, 어린 시절을 신성 로마 제국 황제이자 합스부르크 제국의 수장 막시밀리안 2세 궁정에서 보냈다.

에르데이 공국으로 돌아가 조카인 에르데이 공작 바토리 지그몬드(Báthory Zsigmond 1573~1613)[1]를 보필했으나 지그몬드가 친 오스만 제국 귀족들의 압력으로 퇴위하자 합스부르크 가문을 끌어들여 친 오스만 귀족들을 몰아냈다. 그러나 루돌프 2세가 에르데이 공국에 대한 야욕을 드러내며 바토리 지그몬드를 압박하자 허이두크(hajdúk)[2]를 이끌고 오스트리아군을 몰아냈다. 1605년 12월 21일, 에르데이 공작으로 선출되어 오스만 제국의 승인을 받아냈으나 오스만 제국과 합스부르크 제국 사이에서 평화를 유지할 필요가 있다고 여겨 1606년 6월 23일 빈 조약으로 평화를 맺었고 합스부르크 제국으로부터 에르데이 공국의 주권과 레세크(Részek)[3] 지역의 영유권까지 인정받았다.

양도받은 합스부르크령 헝가리 도시들에 종교의 자유를 인정하는 한편 지트바토로크 조약이 체결되는데 공헌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커셔에서 사망했다. 유해는 줄러페헤르바르 대성당에 안장되었다.

3. 기타

부다페스트 영웅 광장(Hősök tere) 14인의 동상 위인 중 1명이다.
[1] 폴란드-리투아니아 국왕 스테판 바토리의 조카.[2] 16~17세기의 헝가리 비정규 용병.[3] 오늘날 헝가리 동부 미슈콜츠, 데브레첸슬로바키아 동부 코시체 일대를 아우르는 역사적인 지역. 보통은 라틴어인 파르티움(Partium)으로 알려졌는데 중세 헝가리 왕국의 공용어가 라틴어였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