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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자개(태조 왕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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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 중 아자개의 모습으로 고려 귀부를 환영하며 왕건이 벌인 연회에서 즐거워하는 모습이다.

1. 개요2. 극중 행적

[clearfix]

1. 개요

KBS 대하드라마 <태조 왕건>의 등장 인물로 배우는 원로 배우 김성겸이 맡았다. 이 드라마가 진행되던 중 2001년 9월 2일 시작된 동시간대 SBS 일요시트콤 <여고시절>에 학교장 역으로 캐스팅되면서 중도하차했으며 드라마 최후반인 2002년 1월 27일에 잠시 재등장했다. 이후 2002년 2월 18일부터 2년 동안 어린이 드라마 <매직키드 마수리>에 수리 할아버지(마파람) 역으로 출연하며 후후속작 <마법전사 미르가온>에도 특별출연한다.

해당 배우는 2003년 KBS 드라마 <무인시대>에서는 경대승의 아버지이자 청주 경씨의 시조 경진 역, 2005년 MBC 드라마 <제5공화국>에서는 최규하 대통령 역, 2006년 SBS 드라마 <연개소문>에서는 수 문제 양견 역으로 나왔는데 작가도 똑같아서인지 양견의 묘사가 <태조 왕건> 속 아자개의 이미지와 너무 오버랩된다는 반응이 나왔다.

2. 극중 행적

작중에서의 생몰년은 837년 ~ 935년.[1]

극 중의 아자개는 제멋대로에 주책스러운 노인으로 설정되어 있으며, 김성겸이 아자개의 캐릭터를 상당히 개성적이고 코믹하게 연기하여 화제가 되었다. 극중 등장한 박술희애술과 함께 개그 캐릭터의 한 축을 차지한다.[2] 등장 초기에는 아직 코믹하게 망가지지는 않았고 다소 언행이 거치면서도 완고한 면이 있는 호족이었다. 처음 견훤이 조정의 명을 받고 서라벌을 떠나 금성으로 도적떼를 토벌하러 가기 전 잠시 고향 상주에 들렀을 때 첫 출연했다. 아자개는 자신이 장군이 되었으니 이제 신라에 그만 충성하고 본인 휘하로 들어오라고 권유했지만 견훤은 "세상에 많은 도적들이 일어나 스스로를 장군으로 칭하고 있습니다. 아버님은 그저 도적에 불과합니다."라는 말로 팩폭을 날려버렸다.[3][4][5] 당연히 아자개는 길길이 날뛰었고, 견훤이 끝내 본인 밑으로 들어오지 않자 더더욱 아들을 미워하게 된다.[6] 다만 그렇다고 아자개가 아주 우물 안 개구리 마냥 무능하고 무식한 일개 호족은 절대로 아니었고, 일자무식에 바깥 사정에도 어두운 양길과 달리 최승우가 찾아왔을 때 "쯧쯧쯧. 아깝구만. 자네처럼 이름 높은 사람이 뭐가 아쉬워서 견훤이 같은 놈 밑에 있는가?"며 핀잔을 줬고, 박술희를 처음 만났을 때도 "천자문은 아냐?"라고 물어보며 도발한 것은 그가 최소한의 학식과 견문은 갖춘 사람임을 증명한다. 그런 그가 본격적인 개그캐가 된 것은 바로 43회에서 그 박술희를 만난 후였다.

견훤은 아자개의 장자이지만, 계모와 사이가 나빠서 계모와 그 자식들을 총애하는 아자개와 대립하게 되었다는 가설을 채택했다. 그 후에 나온 대중 교양서인 임용한의 《전쟁과 역사》에서는 견훤의 동생들 이름에는 전부 'ㅐ'가 공통적으로 들어가나, 유독 견훤의 이름에만 유일하게 'ㅐ'가 없는 점으로 미루어 보아 견훤만 어머니가 다른 자식이었을 것이라고 추정하고 있다. 이 때문에 아자개는 아들 견훤이 자신과 갈라서고 성씨도 갈아버렸다면서 화를 내고 미워하고 있는 것으로 나오지만, 한편으로는 나름 대견스럽게 생각하는 장면도 있다.[7]

극의 설정상 전처의 호칭은 '상원부인', 후처는 '남원부인'으로 설정되어 있다. 계모 남원부인과 이복동생 용개는 견훤을 특히 싫어하는 것으로 나오는데, 극중에서 남원부인은 대주도금에게 말하기를 자신들이 상주를 떠나 완산주에 들어가게 되면 견훤의 신하가 될 것이고 그리 되면 변방으로 쫓겨나며, 목숨을 내놓으라면 내놓아야 할 처지가 될 것이므로 가면 절대 안 된다고 한다.[8] 용개의 경우에는 설령 형 견훤이 계모와 이복동생들을 잘 대해주려고 하더라도 주변사람들까지 그렇지는 않을 것이라며 매우 불신하는 입장에 있었다. 대주도금의 동생으로 나오는 보개의 경우에는 견훤을 따르는 누나의 입장을 생각해서 온건하게 말은 하지만, 보개 역시 별로 견훤을 좋게 생각하는 입장은 아니다. 아자개의 고집에다가 주변사람들이 이러하니 견훤의 설득이 먹혀 들어갈 구석이 없다시피하다.[9] 견훤의 입장에서 보면 남원부인은 그야말로 가정불화를 조장하는 만악의 근원악역이나 다름없지만 의붓아들을 괴롭히는 나쁜 계모와 남편에게 일편단심이라는 지고지순한 캐릭터성이 섞인 캐릭터로 왕건과 충주부인의 결혼식에 참석했을 때 아자개는 "이 부인이 항상 날 이렇게 추켜세워주니 어떻게 좋아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라고 말했고 아자개가 중병에 걸려 앓아누웠을 때는 손수 대소변을 받아내며 헌신적으로 간호하고 100살이 다 되어 귀신처럼 늙어버렸을 때에도 아자개를 이용하거나 떠나지 않고 항상 곁을 지키면서 백년해로하는 닭살 부부의 모습을 보여주는데, 남편 쪽이 주책이 없어서 문제다.

견훤은 산세가 험준하지만 교통의 요지인 상주 지방의 전략적 이점을 확보하기 위해서 아버지와 화해하려고 시도하지만 계모와 그 아들들이 견훤을 싫어하여 방해하는데다가 무엇보다 아자개 본인부터가 오래전부터 아들 견훤과 사이가 안 좋았으니 일이 잘 풀릴 리가 없다. 사실 아자개는 장남 견훤이 자신의 밑에서 함께 하기를 원했으나, 견훤이 성씨를 바꾸고 독자적인 세력까지 이뤄버리자 이에 크게 섭섭해해서 오래 전부터 일찌감치 사이가 좋을 래야 좋을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거기에 계모가 옆에서 뻐꾸기까지 날려대니 더 버틸 재간이 있을 리가 없다. 최승우가 찾아와 태황제로 모시러 왔다고 했을 때는 후백제에 상주까지 합치면 삼한의 절반이니 괜찮다며 은근히 욕심을 내기도 했지만, 견훤과 자신은 부딪치면 싸우기만 할 거라고 생각해서 곧 포기해 버린다. 아자개 말로는 견훤과 자신은 성격이 똑같기 때문에 같이 있으면 서로 충돌만 할 게 뻔하니 차라리 따로 지내는 게 양쪽 모두에게 낫다는 것이다.[10] 이 와중에 형을 대신해 매번 아버지를 설득하러 오는 능애는 늘상 아버지에게 욕을 먹고 벼루에 머리까지 맞는다.

비록 장자 견훤과는 서로를 애증하는 부자관계이자 물과 기름 같은 사이로 살았으나, 현실의 조부모들이 흔히 그렇듯이 손주들에게만큼은 꽤나 따뜻한 편이다. 물론 견훤에 비해서고 사실 견훤만큼은 아닐지라도 이들에게도 꽤 냉랭한 편이었다. 실제로 견훤이 아자개에게 손녀인 자기 딸들을 소개하려고 하자 됐다며 일방적으로 물려버렸다.[11]

그런 와중에 왕건이 대주도금을 연모하던 박술희를 상주로 보냈는데[12] 박술희는 놀라운 친화력으로 아자개의 비위를 맞춘다. 아자개는 예전에 한 번 대주도금이 이끄는 자신의 상주 군대와 박술희, 신숭겸이 이끄는 고려국 척후대의 교전을 들면서 박술희보고 산도적같이 생긴 게 천자문이라도 뗐냐고 비아냥 댄다. 이에 박술희가 <대학>의 구절[13]을 들어 '사람을 겉보기만 보고 미워하지 말라'라고 재치있게 응답하자 '무식한 줄 알았는데 제법 유식하다'라며 인식을 바꿔간다.

이 만남 직후에 열린 연회에서 아자개는 박술희를 매우 마음에 들어하며 한층 풀어진 모습을 보여준다.[14] 생각해보면 정말 놀라운데, 박술희 1명이 아자개를 살살 꼬셔 급 친해지는 동안 친자가 세운 나라인 백제에서는 단 1명도 아자개의 비위를 맞춰 그 대항마로 떠오른 사람이 없었다는 사실을 보면 박술희의 엄청난 친화력을 알 수가 있다. 견훤과의 사이가 워낙 좋지 않았다고는 하지만, 박술희 역시 위에 적혀 있는 것처럼 아자개가 보자마자 공부는 했냐고 비아냥거렸을만큼 첫 대면은 상주를 침공한 적국의 장수였던 만큼 좋은 편은 아니었다. 견훤의 친동생이자 아자개의 또다른 아들인 능애도 물론이거니와 후백제 최고의 브레인 최승우조차 아자개의 마음을 돌리지 못했다. 다른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적국의 장수'였기 때문에 오히려 아자개와 친분을 쌓기 유리한 점도 있었는데, 능애가 아자개에게 오건 최승우가 오건 아자개가 견훤을 경멸하고 무시했던 이유인 '근본을 부정했다'라는 것은 도저히 바꿀 수가 없었기 때문. 그런데 박술희를 경계했던 이유는 '적국의 장수=영토를 빼앗고자 하는 나쁜 놈'이라는 것 하나뿐이었고, 박술희는 이라는 선물 공세를 퍼부어 그 공식을 단번에 깨버렸다. 거기다 후백제의 능애나 다른 인물이 오면 후백제와 함께 하자느니, 상주에 병력을 주둔하겠느니, 충주를 치는데 사벌성을 좀 빌려달라느니[15] 같이 아자개가 싫어하고 머리 아파할 발언만 하는 반면에 박술희는 어떤 요구 조건 없이 그야말로 무조건 아자개의 비위를 맞춰주니 아자개가 박술희에게 친근감을 느끼는 게 당연지사였다. 이를 잘 알 수 있는 부분 중 하나가 아자개가 산삼을 먹고 완쾌된 후 박술희와 장기를 둘 때 박술희가 계속 져주자 "자네는 왜 자꾸 일부러 져주는가?"라는 말이다.

이런 사실을 안 왕건과 박술희는 원체 지형적으로 공략하기도 어려운데다 지역의 맹주 아자개 일가도 만만치 않은 집안이라 상주를 군사력으로 점령하는 건 무리라는 걸 첫 상주 전투를 통해 깨닫고 방향을 전환해 아자개를 '상보'[16]라 부르고 선물 공세까지 펼치며 철저하게 아자개의 비위를 맞추었고 사벌성을 왕건 측에 우호적인 중립지대로 만드는데 성공한다. 견훤은 피가 거꾸로 솟을 지경해서 "대체 이 자식과 무슨 원한이 있으시길래!/아버님만 아니었으면 그냥 다 싹 쓸어버려야 속이 시원할 터인데...!"[17]라고 경악하다가 파진찬 최승우에게 진시황여불위의 고사를 언급하면서 공격을 하면 어떻겠느냐고 언급한 적도 있었다. 아자개는 이후에도 백제에서 온 사람이면 친족이든 신료이든 가리지 않고 푸대접했는데, 친아들 능애는 벼루까지 맞고서는 끌려서 쫓겨나는 수난을 당했고, 공직은 왕건의 군사에 패해 조령을 빼앗기고 도움을 요청했으나 사벌성에 들어가보지도 못하고 성루에서 문전박대를 당했다. [18] 반면 (왕건과) 박술희에 대해서는 정반대로 크게 후대하다가 급기야 왕건과 충주부인의 결혼식에 박술희의 요청을 승낙하고 하객으로 참석하기에 이른다.[19] 이 시점이 되면 대주도금만큼은 아니더라도 이들의 우호적인 행동을 의심스럽게 바라보던 용개와 보개마저 정말로 이들이 자신들을 가족처럼 대하고 있다고 생각할 정도가 된다.

아지태가 처형당하고 궁예가 도인의 약을 먹고 깨어나 강 장자를 쳐 죽일 시점에서는 아자개는 아예 1달에 1번 박술희를 보는 걸 인생의 낙으로 여길 정도였다. 그때쯤에는 완전히 광인이 된 궁예가 무조건 살인으로 사건을 해결하려고 하는지라 철원 황궁에서는 긴박하고 심각하고 엉망이고 살벌한 분위기의 장면들이 나오거나 사람이 줄줄이 죽어나가는 전개까지 나오는 반면에 유독 상주 지역을 보여주는 씬에서는 주로 박술희와 아자개가 같이 노는 장면으로 인해 코믹하고 편안하고 평화로운 분위기가 연출된다.[20] 그러다가 왕건이 철원을 빠져나가고자 나주로 발령 나갔을 때 박술희 역시 나주로 불려가게 되었는데, 아자개는 이제 뭔 낙으로 살아야 하냐며 매우 아쉬워한다. 그 동안 박술희 덕분에 지역이 평온했는데 앞으로 상주 지역이 시끄러워지지 않을까 걱정하는 건 덤. 박술희의 후임으로는 이흔암이 왔는데, 이흔암은 아자개를 별볼일 없는 늙은이 취급했고 아자개 역시 이흔암을 푸대접한다. 그동안 박술희는 물론이고 태봉실세이자 황제의형제인 왕건에게 '상보' 소리를 듣고 산 아자개에게 이흔암은 첫 대면에서부터 다짜고짜 '노인장'이라고 불러 가족들 전원의 심기를 건드린데다 박술희와 달리 이흔암은 일자무식에 태도까지 오만불손하니 아자개가 이흔암을 맘에 안 들어 하는 건 당연지사였다.[21] 그 와중에 강비와 두 태자들까지 끔찍하게 살해한 궁예는 빨리 삼한을 통일하려면 상주를 점령하고 곧바로 신라와 후백제를 공격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그 전에 왕건이 쿠데타를 일으켜 궁예를 몰아내고 태봉이 멸망하며 고려가 건국된다. 아자개 입장에서는 다행이라 할 수도 있겠지만, 종간이 언급했듯이 멸망 직전의 태봉국은 그렇게 힘든 전쟁을 전개할만한 여력이 없었다. 그리고 설령 전쟁이 가능했어도 백제가 가만 있을 리가 없고, 아자개로서도 결국 백제에게 의지하면서 결국 상주가 백제에게 넘어가버리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을 것이다.

왕건이 즉위한 이후 갑자기 육종에 걸려서 고생할 때[22] 왕건이 박술희를 통해 보내온 천년 묵은 산삼을 먹고 운좋게 완전 회복하는데, 이게 그냥 천년 묵은 산삼도 아니고 '봉삼'이라고 따로 이름까지 붙어 있는 네임드였다.[23] 이때 견훤도 부랴부랴 전국을 수소문하여 오백년 묵은 산삼을 구하여 최승우를 통해 보냈으나, 이미 아자개는 천년 묵은 산삼을 먹고 회복한 뒤였으며, 아자개는 최승우를 비롯한 다른 이들을 구박해서 보내버린다. 아자개는 내심 견훤이 본인을 찾아오기를 기대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기다리던 견훤은 오지 않고 그 신하들만 오는데다가 남원부인의 말처럼 이미 고려에서 산삼을 보내 온 탓에 마지못해 부랴부랴 찾아 보낸 것으로 보이니 기분이 상할 수밖에 없다. 아자개가 의식했는지는 나오지 않지만,[24] 백제 측 사람들은 자기들 쪽의 산삼이 올때까지 시간을 끌겠답시고 아자개가 사경을 해메는데도 멀쩡한 산삼을 가짜로 몰아 복용을 못하도록 방해하기도 했다. 여러모로 정 떨어질 짓을 했었으며 결국 이 일이 결정적인 계기가 되어 아자개는 고려로 귀순하게 되는데, 이전부터 박술희와 왕건에게 아무 조건 없이 늘상 은혜를 입어왔고 이제는 왕건의 덕으로 목숨까지 건졌기에 그 은혜 때문에라도 고려로 귀순하는 선택을 하게 된 것. 또 고려에서는 황후가 중병을 앓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봉삼을 아자개에게 보냈다는 점까지 알게 되고, 이미 늙은 아자개가 죽은 뒤를 생각해도 '내가 나이도 많고 오래 살긴 어려울 것 같은데, 백제로 갔다가 죽으면 견훤이랑 사이가 최악인 계모와 그 자녀만 남는데 그들이 좋은 꼴 보겠냐'는 생각을 했고,[25] 결국 고려로 귀순을 택한다. 이를 막기 위해 견훤은 군대를 상주 지역으로 출병시켰지만 공격 명령을 내리지 못했고 아자개는 철원으로 떠난다. 그 동안 까지 토하면서 속을 썩여오던 견훤은 이 소식을 듣자 결국 "아버님! 아버님! 정녕 우리가 부자간이 맞사옵니까!"하고서는 피를 토하고 까무러치고 말았다.

고려 귀순 이후 수십 년을 더 사는데, 견훤이 폐위당할 때쯤 후반부 다시 한 번 더 등장한다. 고려가 도읍송악으로 옮겼을 때 따라가지 않고 부인과 그대로 철원에 남았는데, 비록 귀는 먹기는 했지만 그래도 정신은 멀쩡한 데다 견훤의 계모와는 애정이 두터운지라 초야에 묻혀 한가로이 사는 것에 만족하고 있었다. 고려는 견훤과 접촉하고자 박술희를 아자개에게 보내는데, 이때 박술희는 대주도금과도 잠깐 재회하였고[26] 그 후 아자개에게 견훤의 폐위 소식을 알려준다.
견훤이가... 그 견훤이 놈이... 헌테 쫓겨나? 손주놈헌테 말이야...? 하하...으하하하하하!
미련한 놈! 결국 그리 됐구나! 황제란 놈이 그렇게 됐어! 하하하! 꼴 좋다! 꼴 아주 좋게 됐다!
그렇게 기세가 등등하더니마는 꼴 좋게 됐다! 하하하하하!

(한참 웃더니 갑자기 탁자에 엎드려 통곡한다.)

으이그... 못난 놈 같으니라고... 내 비록 고려에 와 있지만, 그래도 제놈이 황제라고 해서 한쪽 마음은 그럴 듯 했는데,
이이...멍청한 놈!! 제 자식놈에게 쫓겨났다고?! 제 자식놈에게 쫓겨나?? 아이고, 아이고...
성까지 견 씨로 바꿔간 놈이지만, 그래도 제놈이 백제의 황제라고 해서 내 마음이 그럴싸했는데...
아이고, 그렇게 됐어...!

100세에도[27] 정치적 감각은 대단하여 견훤의 이야기가 나올 때는 예전의 기상을 찾기도 했다. 견훤이 본인의 아들에게 쫓겨난 소식을 듣고 처음에는 황제랍시고 거들먹거리더니 꼴 좋게 됐다며 웃다가 곧바로 통곡을 한다. 비록 성씨까지 바꾼 아들이지만 그래도 황제라서 아무 걱정 안 하고 있었는데 이내 너무 불쌍하다며 눈물을 펑펑 쏟는다. 연을 끊고 사는 듯해도 여전히 견훤을 아들로 생각하고 인정하고 있다는 증거. 사실 견훤이 궁궐을 짓는다는 소식에 '그놈이 제법 하기는 하는 모양이다'라며 내심 뿌듯해하는 표정을 짓기도 했고(제30회), 고려로 귀순했을 때 그를 상보로 모시는 왕건과 함께 말을 타면서 '고려 왕과 백제 왕이 다 내 아들들이다'라고 말하기도 하는 등 이런 모습은 은근히 비춘 적이 있다. 아예 작중 인물들은 아자개 - 견훤 부자의 이런 모습을 두고 애증이 섞인 거라고 하기도 한다. 일생 동안 견훤과 대립했던 계모마저도 견훤의 소식을 듣자 어찌 그런 일이 벌어질 수 있냐며 안타까워하는 반응을 보였다. 사실 아자개 본인 입장에서도 그의 생전부터 사후를 더해 나레이션에만 언급된 막내 손자 견능예와 손녀 쇠복이를 제외하고 아들 견훤과 차남 능애, 견훤 소생의 다른 손자 넷을 한꺼번에 잃어버린 셈이 되었다. 게다가 본인은 하술하지만 괴로움으로 인해 무리하게 과음하다 결국 하루만에 세상을 떠나는 등 사실상 자살에 가깝게 삶을 마감한데다 훗날 고려 왕조에서 도적이라고 조롱받는 등 오래 산 만큼 말년에 마음고생을 정말 심하게 한 격이다. 영상 18:40부터 보면 알겠지만, 김성겸의 절륜한 연기력이 빛을 발한다.

견훤에게 보낸 서신에도 그동안의 잘못에 대한 이해를 구하고 아들을 걱정하는 내용이 가득하다. 그렇찮아도 경보대사의 설득에 서서히 마음이 약해져 가고 있던 견훤은 서신을 보고서는 여러 복잡한 감정에 눈물을 흘렸고 그 후 고비의 간언까지 더해져 며칠 간의 고민 끝에 자신이 세운 제국을 자신이 거두기로 결심하는데 서신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아들아, 황제가 되어 그동안 백제를 잘 다스려 왔음을 안다. 허나 너는 나의 아들이다. 내가 너를 미워했던 것은 네가 황제가 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너의 핏줄을 부정하고 갔기 때문이었다. 이 늙은이는 어느덧 백 살이 다 되어 간다. 그 동안 네 속을 무던히도 썩였다. 허나 견훤아, 너의 소식을 들으니 참으로 가슴 아프게 되었구나. 내가 너를 떠났는데, 너의 아들이 또한 너를 버렸다 한다. 이 얼마나 비통한 일이냐. 어차피 너는 자식도 잃었고, 나라도 잃었다. 고려 황제는 덕이 있는 사람이야. 너의 일신을 부탁하여 보마. 깊이 생각하길 바란다."

아자개의 재등장 이후 왕건, 경보 대사, 장화왕후, 충주부인(신명순성왕후) 등은 아자개 상부가 아직도 살아계셨느냐며 감회에 젖는 장면을 보인다.[28] 박술희는 직접 아자개를 만나는 내내 눈물을 지었으며, 이 때 왕건은 아자개의 장수를 기원한다며 다시 수백 년 된 산삼을 박술희를 통해 전달했지만, 아자개는 제199회에서 견훤이 고려로 귀순한 직후 사망하는 것으로 나온다.[29] 견훤의 환영 연회 직전 황궁으로 가는 길에 복지겸과 내군 부장의 대화가 잠시 나오는데, 일부러 밤낮으로 머루주를 계속 마시고 죽었다는 내용으로 언급. 이에 복지겸은 노환으로 운명한 것이라며 불문에 부치라고 명령한다. 물론 이건 극중의 창작으로, 실제 아자개는 언제 죽었는지는 불명이다. 아마도 정황상 대우는 받고 있었지만 국가의 지도자에서 몰락해버린 늙은 아들을 다시 직접 재회하기에는 괴로웠던 모양이다.[30]

방영 당시 견훤까지 고려로 넘어온 시점에서 견훤이 철원에서 아자개를 만나는 장면을 바라는 사람들이 많았으나 결국 성사되지 않아 아쉬워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제작진에 따르면 본래 견훤과 아자개가 대면하여 아자개가 이놈아, 아들이란 원래 다 그런 놈들이다라고 말하는 장면까지 구상했다고 하지만, 지나친 역사 왜곡을 피하기 위해 결국 집어넣지 않았다고 한다. 드라마 마지막의 극적인 장면을 기대한 시청자의 입장에서는 아쉬운 부분일 수도 있겠으나, 반대로 제작진이 지나친 역사 왜곡을 피하려고 노력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사실 그렇게 방영했다면 끝물인 드라마 불씨 제대로 살릴 수 있는 컷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어느 정도 선은 지켰다 할 수 있다. 극중에선 견훤이 고려로 귀순했을 때 전령이 복지겸에게 아자개의 사망 소식을 전하는 것으로 짧게 지나간다.[31]

작중 아자개 하면 떠오르는 아이템은 단연 머루주. 묘사를 보면 상주 쪽 특산물로 보이는데, 아자개는 오직 이 만 마신다. 아자개와 친해진 박술희는 늘 얻어 마셨고, 나중에는 본인이 따로 구해서 찾아오기도 했다. 박술희 후임으로 상주에 왔던 이흔암도 몇 동이 얻어서 가족들과 나눠 마셨다. 머루포도과라 머루주도 일종의 포도주인데, 다른 인물들은 투명한 곡주를 마시는 반면 아자개 쪽만 유독 포도주를 마시니 눈에 잘 들어온다.[32] 이 술을 마실 때 유리잔으로 마시는 것도 포인트. 당시 시대적으로 유리는 서역까지 교역해서 얻는 값비싸고 사치스런 수입품으로, 박술희가 아자개에게 선물한 물건이었는데, 유리라는 투명하고 질좋은 물건에 감탄하며 흡족해하는 모습이 극에서 1~2번 나왔다. 드라마에서의 인기 때문에 실제 아자개가 장악하였던 경상북도 상주시의 현재 영농조합법인의 이름도 '아자개'이며, 상주에서 생산하는 도 “아자개 쌀”이라는 이름으로 판매하고 있다. 이 덕분에 김성겸은 냉동식품 떡갈비의 CF에도 출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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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견훤이 고려에 귀부할 즈음에 박술희가 아자개를 찾아가 수 백년 된 산삼선물하는데, 이 때 아자개는 크게 기뻐하며 "그럼 날더러 백 년을 더 살란 얘기야? 내 나이가 백 살이 가까워! 구십 하고도 아홉이야!"라고 한다. 실존인물 아자개의 생몰년도는 불분명하나, 일단 장남 견훤이 867년에 태어났기에 태조 왕건 설정으로는 둘이 30살 차이다. 현대에는 부모와 자식의 나이 차가 30살인 게 그다지 이상하지 않지만, 조혼이 당연하던 먼 옛날 고대를 기준으로는 아자개가 좀 늦게 결혼해서 자식을 봤거나 아니면 혼인 자체는 일찍 했지만 오랫동안 안 생기다가 뒤늦게 생겼거나 둘 중 하나일 것이다. 아자개가 유독 견훤을 못마땅하게 여긴 건 서로 성격이나 생각이나 가치관이 안 맞기도 했지만, 30살 되어서야 어렵게 얻은 장남이 자신을 따르지 않으니 더욱 욱해서였을 것이다.[2] 2010년대에 태조 왕건을 처음 접한 사람들은 (아자개의) 별명을 '아자개그캐'로 붙였다.[3] 다만 이 말은 상주 땅은 너무 좁고 지형적으로 산으로 둘러싸인 곳이라서 큰 뜻을 펴기는 어려우니 상주 땅 차지해놓고 너무 들뜨지 말라는 조언에 가까운 말이었지만 표현하는 방법이 너무 직설적이어서 문제였다.[4] 작품에서는 고려가 아자개를 끝까지 상부로서 존중하는 걸로 나오나, 실제 《고려사》에서 아자개를 수식하는 단어가 도적 괴수다. 즉 정치적 이유로 아자개를 겉치레로 대우했을 뿐 실제로는 도적 무리라며 조롱했을 뿐이다. 작중 아자개는 백제 유민의 정체성을 가진 인물이라서 백제의 후손이 신라 왕실을 위해 일한다는 걸 매우 탐탁지 않게 여겼다. 그러나 아자개는 오히려 300년 넘게 신라 근위대 및 정예부대에 장병을 공급해온 가문 출신일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이는 고증에 맞지 않다. 실제 역사로 본다면 아자개는 신라에 충성심이 그래도 어느 정도는 있는 인물로서 견훤에 대한 관점은 신라 왕실이 그를 보았던 관점과 크게 다르지 않았을 개연성이 크다.[5] 물론 아자개는 신라가 경명왕-경애왕 아래에서 그래도 영토 국가로서 위신은 있었던 때도 딱히 신라를 적극적으로 도운 사실이 없으며 918년도에 그 일대에선 가장 먼저 고려에게 자발적으로 귀부하였으나 그건 그 당시 신라가 여러모로 지방 세력을 도울 실력이 되는지 안되는지 확신이 안 설 정도였던 사정을 감안해야 한다. 신라를 적극적으로 도왔던 경상도 일대 호족들은 다름아닌 서라벌을 포함해 견훤에게 철저하게 보복당하고 말았고, 그건 끝내 견훤에게 함락되었던 문경-상주 일대도 예외가 아니었다.[6] 당연히 견훤은 아자개보다 훨씬 원대한 꿈과 비전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들어오지 않은 것이었다. 만약 견훤이 아자개 밑으로 들어가 후계자가 되었다면 훗날의 후백제 황제 견훤은 없었을 것이다.[7] 견훤이 서남해로 발령받아 떠나던 도중 상주에 잠시 들르는 것으로 첫 등장을 하는데, 본인의 뒤를 이어서 상주를 잘 관리할 만한 재목이라곤 견훤 단 하나 뿐이며, 아들이 아버지를 내버려 두고 떠나는 게 말이 되냐는 식의 발언을 한다. 그러나 마침내 견훤이 기어이 떠나버리자 매우 섭섭한 반응을 보이는데, 이를 보면 아버지로서 나름 견훤을 아끼고 믿음직스러워 했음을 알 수 있다. 현대에 비유하면 부친은 장남이 꼭 가업을 잇기를 원했지만 장남은 본인이 꿈꾸던 다른 일을 하겠다며 가업 잇기를 거부해 사이가 틀어진 격이다. 견훤이 백제를 건국한 후 아자개를 찾아와 태상왕이 되어달라고 간청하자 매몰차게 쫓아냈지만, 혼자 있을 때 살짝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나름 인정하는 분위기도 보였다.[8] 비슷하게도 왕건의 아버지인 왕륭도 송악을 궁예에게 바쳤지만 금성(지금의 나주가 아닌 강원도 김화군)태수로 좌전된적이 있다.아자개는 어쩌면 이걸 간파했을지도..[9] 물론 대주도금처럼 다 같은 백제국 황족이라는 입장으로 보면 꽤나 괘씸하기 그지없는 발언들이지만, 호족들이 이합집산을 거듭하는 후삼국시대의 혼란 속에서 수십 년 후에 벌어질 신검의 난이라는 참극이라던가 후삼국 통일 직후 고려 호족들간의 황위 쟁탈전을 생각해 본다면 이들의 선택이 전혀 틀리지 않았음이 증명된다. 이와 관련하여 용개의 대사 중 128화에서 "형님이 우리를 잘해주려고 해도 그 주변이 그렇지가 않을 것."이라는 말은 역사를 전지적 시점에서 알고 있는 시청자들에게 아자개 가족들이 중립을 고수하는 이유로 설득력을 준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봐도 아무리 배다른 동생이라도 여자인 대주도금이나 아버지인 아자개 정도야 견훤이 봐 줄 수 있어도 남동생들인 용개, 보개나 새어머니인 남원부인은 견훤 밑에서는 편하지 못할 일들이 너무 많으니 저 설정이 상당히 상식적이기도 하다. 아자개가 설정상 장수해서 그렇지 언제 죽어도 이상할 것 없는 고령의 나이인 마당에 아자개의 사후에는 견훤이 언제든지 마음 먹고 이복형제들이나 새어머니를 제거하는데 걸림돌도 전혀 없어지는데다 설령 견훤이 그런 마음을 안 먹더라도 견훤 본인의 주변사람들(특히 능환)이나 부인과 그 아들들이 굴러온 돌들을 놔둘거라 낙관하기는 힘들었다. 이러니 대주도금보다도 오빠들이나 어머니가 더 강경할 수밖에 없는 입장이 당연한 것이었다. 실제로 백제 쪽 사람들 중에는 젊었을 때부터 집안의 집사 출신으로 아자개와 견훤을 모셔온 능환부터 며느리 왕후 박씨부터가 아자개를 점점 노망났다고 호박씨를 까댔으며, 신하들의 전체적인 반응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아자개의 자식들 중 유일하게 견훤을 따라나선 능애도 갈수록 매정한 아버지에게 불만을 드러냈고, 심지어 견훤 자신도 아자개가 본인의 뒤통수를 치는 행보를 접했을 때 비록 홧김이라지만 노망났다고 했을 정도였다. 신검을 위시한 양검과 용검 등도 아자개에 대해 "할아버님이 왜 저러시는지 이해가 안 된다" 라는 발언을 하는 장면이 있는데, 그도 그럴 것이 찾아갈 때마다 냉대당한 기억만 있고 어머니 박씨를 포함하여 능환과 능애 등 가깝게 지내던 사람들로부터 안 좋은 이야기만 들었기 때문이다.[10] 작중 견훤의 어린 시절이 안 나와서 별 시덥잖은 이유로 보일 수 있으나, 이런 사람을 옆에 둔 사람이라면 이게 무슨 뉘앙스의 말인지 금방 감이 올 것이다. 부자지간이 어릴 때부터 성인이 될 때까지 사사건건 부딫혀 옆에 있기만 해도 짜증이 솟구치는 지경까지 사이가 벌어졌다는 것이다.[11] 다만 이 때 아자개는 견훤이 직접 군사를 끌고 사벌주를 정복하러 왔다고 오해하고 있었기에, "걔네에게는 인사 받을 필요 없으니 생략하고 본론으로 넘어가자." 한 것이다. 실제로 후삼국 시대는 남녀를 차별하던 시대였음을 감안하면 이런 모습은 크게 무리가 없으며, 이 손녀 둘이 대주도금처럼 극중에서 비중이 있었다면 모를까 이 장면에만 등장하는 엑스트라들이니 작가로서도 딱히 장면을 할애해 줄 이유가 없다. 더 따지자면 극 최후반에 국대부인이 잠깐 등장하기는 하지만, 본방송으로 보던 시청자들 대다수가 이런 장면이 있었다는 걸 잊어버렸다고 해도 무리가 없을 정도로 간격이 길다.[12] 사실 박술희 문서에서 나오지만, 이는 왕건이 시켜서 한 것이 아니라 박술희 개인이 자청해서 한 일이다. 물론 그녀에게 빠졌던 터라 주위 사람들은 '적정을 살피러 가는 것보다 처갓집 간다.'라고 놀리기는 했다.[13] 대학 8장 '수신제가' 의 구절로, 원문은 '所謂 齊其家在修其身者 人之其所親愛而辟焉 之其所賤惡而辟焉 之其所畏敬而辟焉 之其所哀矜而辟焉'. 풀이하면 다음과 같다. '집안을 가지런히 하는 것이 몸을 정갈히 하는 데에 있다는 것은 사람은 친하고 아끼는 것들에 치우치고 사람은 천하게 여기고 싫어하는 것에 치우치며 두려워하거나 공경하는 것에 치우치고 애달프게 여기고 가엾게 여기는 것에 치우치며 거만하고 게으른 것에 치우친다.'[14] 이때부터 서서히 개그캐가 되기 시작했다.[15] 물론 아자개가 점령한 곳 외의 빈 지역들에 병력을 주둔시켜 궁예군의 남하를 대비하겠다는 얘기였지만, 부자 갈등이 전혀 해결되지도 않은 상황에서 다짜고짜 상주의 빈 땅들을 접수한다고 하니 아자개가 좋게 볼 여지가 없었으며, 결국 분노한 아자개는 아들 능애에게 벼루를 던졌다(제33회). 물론 아자개 역시 자신의 세력의 한계를 알고 있었으므로 결국 후백제가 상주의 빈 땅들을 접수하는 것을 묵인해주기는 했으나, 후백제에 대한 아자개의 불안감과 적대감은 더욱 강해지게 된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최승우의 계책은 결과적으로 후백제가 상주를 얻는데 도움이 되지를 않았다. 후백제의 우려와 달리 정작 궁예와 왕건측은 조령의 험준함 때문에 상주를 당분간 가만히 놔두기로 결정했고, 오히려 안 좋은 두 부자 사이를 이용하기로 결정했기 때문이었다. 하술하지만 점점 타락하여 막장으로 치닫던 궁예는 한때 상주를 무력 점거하자는 헛소리를 해대기도 했지만, 왕건은 상주에 대한 유화책을 유지했다.[16] 尙父. 극 중에서는 '상부'라고 부르지만, 원래는 '상보'로 읽어야 한다.[17] 실제 역사에서는 927년도에 견훤이 결국 참지 못하고 이 짓을 저지르고야 만다. 공산 전투에서 고려군을 대파한 후 대군을 동원해 문경과 상주 일대를 강제로 후백제 판도에 집어넣어 그간 쌓인 울분을 해소하고야 만 것. 후백제 건국 후 27년, 아자개 귀부 시점 기준에서는 9년 후였다. 그러나 견훤의 이복동생들 후손이 성을 견훤의 성씨인 견씨로 바꾼 걸로 봐선, 후백제 편입 후 어떻게든 견훤 일가와는 화해한 것으로 보인다. 문경-상주 일대 일개 호족보다는 백제 왕가로 행세하는 게 생존을 물론 가문 위신면에서도 훨씬 유리했을 거라는 건 불을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18] 아자개는 왕건과 중립을 약속했단 이유로 그 자리서 내쫓아 버렸다. 공직은 아들이 아니라 원수의 자식이라도 이리 하실 수 없다고 절규했으나 아지개는 요지부동이었다.[19] 당연히 견훤은 이 소식을 보고받고, 조령과 죽령을 내준 것도 원통한데 아버지와 자신의 사이가 나쁘단 건 세상 사람들에게 알린다며 분노했다.[20] 맨날 '견훤이가 뭘 또 하려다가 실패했다지!'라며 비웃는 게 저 양반과 남원부인의 낙이었다. 아들 일인데 맨날 팝콘 튀기고 있는 걸 보면 딸 대주도금은 그야말로 환장해 미칠 노릇이지만, "가족간에 그래서야 되겠느냐?"는 대주도금의 말은 항상 남원부인이나 아자개의 쿠사리로만 돌아오고야 만다.[21] 아자개는 그냥 머루주나 한 동이 던져주고 보냈고, 이흔암은 아니꼽지만 사이가 틀어질 필요는 없으니 그냥저냥 지내면 되겠지 하고 대충 퉁치고 만다.[22] 이때 의원들이 치료하는 씬에서 "아갸갸갸갸갸갸갸갸!" 하는 소리로 비명을 질러 심각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보는 시청자들에게 웃음을 주었었다. 그래서인지 아자개 역의 김성겸태조 왕건 종영 무렵부터 새로이 방송되기 시작한 매직키드 마수리에 출연했을 때도 "아그......" 하고 한숨을 쉬는 장면이 자주 나온다.[23] 고려나 백제측 의원들 모두 직접 보는 건 생전 처음이라고 할 정도로 상당히 귀한 것이었다.[24] 애초에 박술희를 의심한 적이 없었던 아자개가 대주도금과 백제 의원들이 산삼에 트집을 잡는 행동에 약이 왔는데도 못 먹게 한다고 원통해하긴 한다.[25] 물론 아자개는 백 살 가까이 장수하지만, 이건 작중 누구도 예상치 못했다. 도선대사의 수제자이자 최응을 만나고서는 그가 요절할 것임을 예측했던 경보도 견훤이 쫓겨난 뒤 아자개가 아직 살아 있다는 사실에 감탄할 정도였다.[26] 그녀는 불교에 귀의하여 '무상스님'이라는 법명을 받았고, 철원에 있던 도피안사에 머물고 있었다. 비구니가 된 상태에서 그녀와 재회한 박술희의 표정이 참 씁쓸하다.[27] 견훤이 사망할 시점에 70세였으니 이로써 둘의 나이 차는 30살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견훤이 장자임을 감안하면 당대로서는 상당히 늦게 자식을 본 셈이다.[28] 사실 이건 아자개라는 캐릭터가 수십 화 동안 나오지 않다가 갑자기 꽤나 중요한 역으로 재출연하는 것을 보정하는 의미로 볼 수도 있다. 실제로 사소한 부분이기는 하지만, 작중 오류라고 해도 될 만한 부분이 하나 있는데, 왕건이 철원에서 송악으로 천도를 할 때 박술희를 따라가겠노라고 굳게 약속했던 아자개가 끝내 철원을 떠나지 않는 것으로 그려진다. 하지만 마냥 설정 오류라고만 볼 수 없기도 한데, 비록 아자개가 건강을 회복하고 100세까지 살았다지만 상대적으로 따뜻한 남쪽의 상주에서 추운 북쪽의 고려에 귀부하면서 환경 적응 시기도 있었을 테고, 또한 이때나 지금이나 노인들은 건강을 회복해도 갑자기 도로 몸 상태가 악화되는 가능성이 높았던 만큼 다시 장거리 이동을 하기에는 무리가 있어 어쩔 수 없이 철원에 계속 그대로 머물렀다고 여길 수 있다.[29] 케이블 재방영 때는 이 장면이 편집되었는데, 사실상 아자개가 견훤에게 보낸 서신의 내용이 아자개의 마지막 대사라고 볼 수 있다.[30] 아자개의 입장에서는 충분히 그럴만 했다. 자신이 보낸 서신에도 이야기 했듯 오랜 세월 동안 아들과 제대로 화합한 적도 없었고 내내 발목을 잡다시피 했다. 그런 아들이 다 늙고서 가정사 때문에 몰락해 적국이었던 고려로 귀부를 하러 오는데 마음이 편할 리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아자개는 견훤이 고려로 귀부하기 전 날 밤낮으로 머루주를 들이마시다가 결국 최후를 맞는다.[31] 그러나, 꽤 감동적이고 잘 만든 일화긴 한데 이는 오늘날 시점에서 보면 고증에 맞지 않다. 실제로는 견훤이 물리력을 동원해 좀처럼 말을 듣지 않는 고향 사람들을 927년도에 찍어눌러서 후백제에 강제 편입한 다음 후백제가 망하는 그날까지 영토로 유지했기 때문이다. 굳이 역사에 맞게 극화했다면 아자개가 공산 전투 직후에 분개한 견훤과 후백제군을 맞이한 직후 어쩌는 수 없이 상주를 넘겼거나, 혹은 그 전에 자연사한 상태에서 견훤의 이복동생들 일가와 견훤 일가가 화해하는 장면이 되었을 것이다.[32] 머루 항목에 나와 있지만, 실제로는 와인보다 리큐르에 가까운 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