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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준일/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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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준일|JOHN Y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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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기타

1. 개요

양준일여담을 정리한 문서.

2. 기타

  • 데뷔 이전 뉴욕에서 모델 연합회 탈렌트 댄싱 대회에서 3위로 입상한 경력이 있다. 또한 기계체조, 태권도, 스키를 좋아하는 만능 스포츠맨이라고 토토즐 당시 소개된 바 있다. 또한 가수가 하고 싶었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일단 모델 학교에 입학해서, 기본적인 매너 등을 익혔다고 한다.
  • 작은 얼굴, 긴 목, 긴 다리, 큰 키, 반짝이는 눈망울이 사람들 사이에서는 꽃사슴을 연상시킨다고 한다.[1] 그런데 실제로 태몽에 꽃사슴이 나왔다고 한다. 그의 아버지의 꿈에 꽃사슴이 달려들었었는데, 아버지가 양손으로 뿔을 잡았다고. 이로 인해 양준일의 어머니는 기분이 좋을 때 종종 양준일에게 "꽃사슴"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 고등학교 때 별명이 조용필이었다고 한다. 춤은 중학교 때부터 췄었지만 노래도 하게 된 건 고등학교 때부터였는데, 그 당시에는 동네에서 노래를 좀 한다는 사람한테 조용필이라고 부르던 시절이었다고. 하지만 양준일 본인은 아무도 자기 앞에서 그렇게 부르지 않아 전혀 몰랐으며, 이 사실도 대학교에 들어가서야 알았다고 한다.
  • 양준일의 어머니는 양준일과 관련된 유튜브 영상에 종종 댓글을 달으며, 계정명은 'Won Yang'이다. 현재 미국에서 양준일의 아버지와 거주 중인 것으로 추정되며, 댓글을 영어로 단다.[2] 양준일 팬을 자처한 어느 유튜버에게 남긴 댓글에 따르면, 양준일의 얼굴을 본 지 6년[3]이나 되었다고 한다.[4]
  • 옥외 광고 제작에는 많은 비용이 들다 보니, 팬덤에서는 업체에다가 맡겨서 제작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하지만 양준일의 컴백을 기념하여 제작된 옥외광고의 경우, 그의 팬을 자처한 현직 광고 에디터, 광고 영상 감독, 광고 기획자 등 업계 관계자들의 무료 재능기부로 제작되었다.
  • 팬미팅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토토즐에서 있었던 첫 리베카 무대에서의 헤어스타일[5]은 당시에는 망한 머리였다고 한다.[6] 하지만 나중에는 잘 어울렸다고 생각했는지, 자신의 머리를 해준 원장에 대해 실력 있는 분이라고 칭찬했다.[7]
  • 흔히 '리베카'를 데뷔곡으로 알고 있는데, 이는 사실과는 다르다. 원래 데뷔곡은 '겨울 나그네'였다고 한다. 다만 당시 방송국에서 급하게 댄스곡이 필요하다 하여 댄스곡을 하게 되었고, 그 때 부르게 된 곡이 리베카라고 한다. 실제로 토토즐 첫 리베카 영상에 양준일의 어머니가 양준일이 리베카 이전인 1991년 1~2월경에 '겨울 나그네'로 MBC에 이미 출연을 했었다고 언급한 댓글이 있다. 관련 영상 & 댓글 보기 [8] 하지만 지금까지 나온 과거 영상들만 놓고 봤을 때, 양준일이 처음 방송에 나와 선보인 곡이 리베카였기에 공식적인 데뷔곡은 리베카다. 이 사실을 배철수 잼에서 언급하자, 배철수는 만약 겨울 나그네로 알려졌다면, 지금의 양준일은 없었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당시를 기억하던 한 네티즌에 의하면 재즈발레 퍼포먼스가 인상적이었다고 한다.
  • 어렵게 만든 1집을 방송국에 들고 갔지만, '음원의 음질이 좋지 않아 못 튼다'며 거절당한 비화를 방송에서 공개했다. 1집의 굴욕을 반면교사 삼아, 2집은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없는 멋진 음질의 음반을 만들겠다는 다짐으로 미국에 갔다고. 우여곡절 끝에 2집을 완성했지만, 활동 자체도 쉽지 않았다.[9]
  • 1990년대 당시 리베카 무대를 보면 무대 내내 도도한 무표정을 지었지만, 위에 언급된 동갑내기 김완선과의 합동 무대를 앞둔 리베카 무대에서는 유일하게 무대 내내 방긋방긋 웃었다. 영상 보기
  • 외모며 행동이며 1990년대 당시로서는 튀는 모습이었던 탓에 여러차례 방송정지를 당했었다. 대표적으로 1993년 윤종신의 라디오 방송인 SBS 라디오 '기쁜 우리 젊은 날'에 고정출연 했을 당시에 영어를 많이 썼다는 이유로 방송정지를 당했고,[10] 같은 해 연예계에 대마초 파동이 불었을 때, 그의 외모와 무대매너만 보고 대마초를 필 것 같아서 방송정지를 받았으며, 토요대행진에서 '나의 호기심을 잡은 그대 뒷모습' 무대를 꾸밀 당시에 입었던 옷이 노출이 심하다는 이유로 또다시 방송정지를 당했다. 즉, 현재 기준은 물론 당시 기준으로도 말도 안 되는 이유로 방송정지를 당했으니 양준일 입장에서는 억울한 셈이다.[11] 심지어 리베카 표절 판정 또한 당시 보수적이었던 윗사람들 눈에 자유분방한 양준일이 마음에 들지 않았을 것이며, 그로 인해 표절 판정을 받았을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 팬미팅 기자간담회와 배철수 잼 출연 당시, 1990년 초반 데뷔 이후 방송계에서 친한 동료가 없어서 힘든 시간을 보냈을 때, 노사연, 민해경, 신해철 등 가요계 선배들이 양준일을 도와 주었다고 한다. 이 중 노사연은 슈가맨 3에 제보자로 등장했으며, 양준일이 복귀한 이후에는 해피투게더에 동반 출연까지 했다. 신해철 또한 당시 미국에서 온지 얼마 안 돼 한국식 예절문화가 익숙하지 않았을 양준일을 위해 방송국 PD들에게 인사하기 등 한국식 예절문화를 알려주었으며, 훗날 신해철이 넥스트를 결성했을 때에는 양준일에게 넥스트 멤버들을, 넥스트 멤버들에게 양준일을 소개시켜 주기까지 했다고 한다.[12] 이후 오후의 발견에 출연했을 때에는 자신과 인연이 있는 가수들의 노래를 선곡하면서, 넥스트의 도시인을 선곡하였다. 노사연 언급 신해철 & 민해경 언급
  • V2로 재데뷔할 당시의 모습을 보면 1990년대 당시에는 없었던 쌍꺼풀이 생겼다. 이에 대해 일각에서는 기존의 양준일의 이미지를 숨기기 위해 기획사에서 강요했다는 말이 있었으나, 나중에 2집 활동 전에 의료 목적으로 한 것으로 밝혀졌다.[13] 다만 V2 시절에는 몸을 키워 살이 찐 상태였기 때문에 쌍커풀이 더 진해지고 두꺼워진 것이라고 한다. 라디오 스타 출연 당시에도 쌍커풀 수술을 한 이유를 다시 한 번 언급했으며, 1990년대 당시에 눈을 자주 꿈뻑거린 것도 눈커풀이 자꾸 내려왔기 때문이라고 털어놓기도 하였다.
  • 1990년대 당시에 마른 체형, 춤추는 모습, 패션 스타일 때문에 그를 언급할 때, 종종 마이클 잭슨이 같이 나오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팬미팅 전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마이클 잭슨을 좋아한 적은 있지만, 오래 좋아하지는 않았다고 한다. 오히려 자신은 노래에 있어 가사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좋아하는 가수는 엘튼 존, 조지 마이클이라고 한다. 특히 엘튼 존 콘서트는 1년에 한 번씩은 갔을 정도라고.[14] 이후에 배철수 잼에 출연했을 때에도, 자신의 춤은 마이클 잭슨보다는 토요일 밤의 열기존 트라볼타에게서 영감을 얻었으며, 자신과 마이클 잭슨이 같이 언급되는 것 자체가 마이클 잭슨에게는 죄송한 일이라고 했다. 게다가 마이클 잭슨을 누군가와 비교하는 행위 자체가 미국에서는 따돌림당하는 행위라고 하며, 이에 대한 예시로 MC 해머가 마이클 잭슨에게 댄스 배틀을 신청했다가 욕을 먹은 사례를 들었다.
  • 성장 과정에서 한국에 체류했던 시간이 그리 길지 않아서인지, 1990년대 예능에 등장했던 양준일의 발음이나 단어 선택이 동년배보다는 그 윗세대가 썼던 서울 사투리를 구사하는 모습을 보여준다.[15] 계란, 흰자, 노른자를 '겨란', '하얀자', '노란자'로 쓰는 등.# '가나다라마바사'에 나오는 "떠오르는 말이 있걸랑~"으로 작사한 것도 마찬가지 맥락으로 볼 수 있는데, 현재 기준으로 세련된 외향과 달리, 말투와 억양에서 오는 '옛 사람' 분위기에서 오는 차이도 양준일의 매력에 한 몫을 하고 있다. 이로 인해, 양준일의 팬들은 서로를 '겨란이'(혹은 소리나는대로 '겨라니')로 부르고 있다. 그 외에도 월남, 불란서 라던가, 남부 캘리포니아 ,뼈다귀를 '남가주', '뼈다구'라 하는 등 어르신들이 자주 쓰던 단어를 주저않고 사용하기도 했고[16], '~할 에' '직금'(지금), '실질적으로' 등 양준일의 특유의 말투가 있다.
  • 유튜브에서의 재조명과 슈가맨 출연으로 인해 과거에 비해 팬이 많이 유입이 되었으며, 이로 인해 1990년대에 팬이었던 이들도 덩달아 재조명이 되었다. 양준일의 팬임을[17] 유명인으로는 영화감독 오인천,[18] 개그우먼 김숙,[19] 가수 이지혜,[20] 아나운서 출신 방송인 조수빈,[21] 중견배우 김창숙,[22] 김영란[23] 등이 있으며, 이 중 오인천 감독과 김숙은 양준일이 재조명되기 전부터 팬이라고 여러차례 언급한 바 있다.[24] 또한 유명인에 속하지는 않지만, 쇼! 음악중심백파더의 연출을 맡았던 최민근 PD 또한 양준일에게 팬심을 드러낸 바 있다.[25]
  • 팬덤이 웬만한 아이돌 수준으로 결집력이 크다. 팬미팅 '양준일의 선물' 당시의 티켓팅이 3분 만에 매진되었으며, 네이버 댓글에서도 어마어마한 단결력을 보여준다. 또한, 100% 투표로 결정되는 SBS '이달의 스타' 투표에서 2월, 3월, 4월, 5월, 6월, 7월, 8월, 9월, 10월, 11월, 12월 11개월 연속 이달의 스타로 선정되었으며,[27] 역시나 100% 투표로 결정되는 뮤빗 어워즈 이달의 스타 왕중왕전에서도 우승을 차지했다. 또한 양준일이 광고를 찍으면 그 제품에 대한 충성도도 상당하다.[28] 양준일의 선물 이후 2년만에 개최될 예정인 팬미팅 'Reboot - 우리만의 여행'도 티켓오픈 3분만에 매진되었다.
  • 2020년 1월 16일 방탄소년단에 이어 가온소셜 차트 2위를 기록했다.#
  • 1990년대 활동 당시 무대에서 손가락 하트를 한 듯한 모습을 보여 손가락 하트의 원조가 양준일이라는 얘기가 있었다. 이에 양준일은 해피투게더에 출연해 핑거 스냅을 하려 했던 것이라고 해명했다. 해당 영상
  • 2020년 1월 27일 한국기업평판연구소에서 실시한 2020년 1월 남자 광고모델 브랜드 평판 순위에 공유, 백종원에 이어 3위에 올랐으며, 이에 대해 다룬 유튜브 영상 썸네일을 캡처해 자신의 SNS에 자축 메세지와 함께 올리기도 했다. 영상 원본[29]
  • 해피투게더를 비롯해 여러 방송에서 아들에 대해 언급했다. 성격은 활발한 편인 듯.[30] 이름과 모습은 양준일이 가족 공개를 원치않아 공개되지 않았으나, 양준일이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올린 그림과 2021년 4월 26일자 OFFICIAL양준일에 올린 플로리다 거주 당시에 촬영한 것으로 추정되는 영상을 시작으로 뒷모습이나 목소리 정도만 노출해 최대한 얼굴 노출은 자제하는 중이다.[31]
  • 양준일의 아들은 양준일을 '프렌치프라이'라고 부르고, 엄마가 있을 때만 아빠라고 불렀다. 그 이유는 양준일이 퇴근할 때마다 프렌치프라이를 사 갔기 때문이라고 한다.
  • 패스트푸드 브랜드들 중에서 버거킹을 선호하는 듯 하다. 1990년대 당시 팬미팅(당시로서는 팬과의 소소한 만남에 가까운)을 하면 2차로 버거킹에 갔었고, 지난 12월에 있었던 팬미팅에서도 팬들의 규모를 보고, 옛날처럼 버거킹에서 소소하게 하는 줄 알았다며 놀랬다고 한다.[32] 또한, 2020년 2월 17일 유튜브를 통해 공개된 출근길 영상에서 차를 타고 가던 중, 버거킹이 보이자 반가워하는 모습을 보였으며, 4월 2일과 4월 6일 공식 유튜브 채널을 통해 올라온 슈가맨 준비 영상 속에서도 버거킹에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이를 다룬 한 팬의 SNS 게시물에 버거킹에서 좋아요를 눌러주기도 하였다.[33][34]
  • 과거 한 예능프로그램 출연 당시 머리 크기를 잰 적이 있었는데, 두루마리 휴지 5칸 반(약 62.7cm)이 나왔으며 출연자 중에 1등을 했다고 한다.[35] 하지만 얼굴 자체는 작은데다가 목마저 긴 편이어서, 키가 178이라고 본인이 밝혔음에도 워낙 비율이 좋아 180 이상으로 보는 사람들이 많으며, 앉아 있으면은 더 커 보인다.[36] 다만 그가 자신이 머리가 큰 편이라고 언급한 것으로 보아, 그의 두형이 뒤통수가 긴 장두형일 가능성이 높다. 또한 머리가 큰 탓에 일반 야구 모자 스타일의 모자를 썼을 때 한 번 쓰면 잘 안 벗겨지기 때문에 특수 제작한 빵모자를 쓰고 다닌다고 한다.
  • 슈가맨에 출연했을 때, 한국말이 서툴렀을 당시 양아치란 단어를 짱아찌와 동의어로 알았다고 한다. 그런데 오히려 이게 유행처럼 번지면서, 사람들 사이에서는 누군가가 양준일에게 어그로를 시전하거나 안티들이 꼬이는 등 양준일과 관련해서 나쁜 사람들이 나타날 때, 양아치란 말 대신 짱아찌라는 말을 쓴다.
  • 2020년 2월 6일 자신의 SNS에 싸인하고 있는 옆모습이 담긴 짧은 영상을 올렸다. 기존의 브라운 컬러+웨이브펌+포니테일이 아닌 흑발+단발 생머리로, 이에 네티즌들 사이에서는 '여자인 줄 알았다', '리베카 시절이 떠오른다', '어려보인다' 등 반응이 폭발적이다.[38] 그리고 다음날인 2월 7일 양준일과 의상 작업을 한 디자이너의 SNS를 통해 정면샷이 공개되었다. 하지만 나중에 양준일과 작업한 이들의 SNS를 통해 가발이었음이 간접적으로 드러났다.[39] 그리고 2020년 2월 19일에 팬들에 의해 공개된 라디오스타 출근길 직캠과 자신의 SNS에 올린 퇴근길 영상 등을 통해 또 다시 단발머리를 선보였다.[40]
  • 대학 입학이 싫었던 고3 시절에 UNI(Universal Novelty Inc.)라는 회사를 차려 비치타월과 셔츠가 합쳐진 물건을 고안하고, 직접 판매하는 대신 맥도날드해피밀 같은 개념으로 대형 프랜차이즈 음식점과의 제휴로 물건을 판매할 계획을 세웠다고 한다. 실제로 위의 아이디어를 가지고 모국인 한국을 찾아 제작하려 했으나 1988 서울 올림픽으로 제작단가가 올라가 추진에는 실패했다고 한다. 이 때 창업했던 UNI는 훗날 양준일이 가수로 데뷔했을 당시 2집까지 양준일의 1인 기획사로 남았다.기사 세 번째 컴백 때도 다른 기획사에 들어가지 않고 양준일만을 위한 기획사인 XBe를 가족을 통해 설립한 것 역시 당시의 경험을 살린 것이다.
  • 헤드윅의 원작자로 유명한 존 카메론 미첼이 자신의 SNS에 양준일을 언급하였는다. 그는 “90년대 ‘G드래곤’이라고 불리는 양준일”이라고 그의 과거에 대한 이해를 명확히 하며 “90년대 한국계 미국인 가수인 양준일은 화려하고 양성적인 스타일 때문에 당시 보수적인 힘에 눌려 활동을 중단했다”고 그의 이력마저 정확하게 꿰차고 있었다. 이어 최근 한국에서 번진 신드롬에 가까운 양준일의 인기에 대해 “그는 지금 돌아왔고, 대중의 큰 함성을 받고 있다. 그가 잘되길 바란다”고 적었다. #
  • 어린 시절 집이 부유했다고 한다. 첫 앨범 제작비도 집에서 대줬다고 방송에서 언급했다.[41] 배철수 잼에서 말하기를, 동생이 중학교를 1등으로 졸업하면 부모님이 소원을 들어준다 했는데, 1등을 하고 보니 소원이 포르쉐를 사 달라는 것이었다. 부모님은 갓 고등학교에 들어가는 놈이 그러니 어이없어 했지만 약속은 약속이니 사 줬고, 형은 승용차를 타는데 동생만 스포츠카를 타면 말이 안 되니 양준일에게도 한 대를 사 줬다고 한다. 하지만 동생의 생일이 지나지 않아 운전을 못 하는 바람에 동생의 포르쉐는 방치되었고, 고장나는 걸 막기 위해 굴리려고 자기 것과 동생 것을 번갈아 타고 다니다 보니 고등학교에서 포르쉐 두 대를 돌려 타는 금수저라고 소문이 났다고 한다.[42] 또한 1992년 당시 잡지에 팬들에게 보내는 편지와 함께 실린 사진 중에는 빨간색 랜드로버 레인지로버와 함께 찍은 사진이 있었다.[43]
  • 본인 말에 의하면 '19'를 특별한 숫자로 여긴다고 한다. 일단 그의 생일은 8월 '19일'이고, 20'19년'에 컴백했으며, 그가 출연했던 라디오스타 녹화일은 2월 '19일'이었다. 또한, 토토즐에서 참가번호 '19번'으로 무대에 올랐으며, 그의 데뷔년도인 1991년에서 91의 십의 자릿수와 일의 자릿수를 서로 바꾸면 19가 된다. 또한 양준일이 새로 발매한 앨범 또한 V2 이후 '19년' 만에 나오는 앨범이며, 그의 서울 단독콘서트 예정 날짜 또한 9월 '19일'이었다.
  • 태어나기를 베트남에서 태어나다 보니, 분유도 과거 베트남을 지배했던 프랑스에서 생산한 분유를 먹었다고 한다. 심지어 한국에 돌아와서도 프랑스 분유를 계속 먹었다고 한다.
  • 1991년 3월 30일 토요일 토요일은 즐거워 출연 당시, 오프닝 무대에서 '리베카'를 당시 MC였던 이덕화의 이름을 넣어서 불렀으며, 이로 인해 방송정지를 당했다는 루머가 있었다. 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며, 오히려 방송국에서 부탁했었다고. 또한 이 무대 직전에 MBC 식당에서 비빔밥을 먹었다고 한다.
  • 2020년 2월 27일 활동하면서 타고 다닐 차를 구입했다는 기사가 나왔다. 그 전까지는 택시나 타다 같은 차량 공유 서비스, 지인의 차를 이용했다고 한다.[44] 하지만 며칠 뒤인 3월 1일 자신의 SNS에 아직 차가 없으며, 여전히 택시를 이용한다고 해명했다. #[45] 이어 해피투게더에서 이 기사에 대해, 친한 지인이 차를 보러 간다기에 따라간 자리에서 우연히 만난 어느 유튜버와 사진을 찍고 하는 과정에서 그런 얘기가 나온 것 같다며 다시 한 번 해명했다. 해당 영상 그러던 2020년 6월 25일 비디오스타 출연 당시, 팬들이 찍은 퇴근길 영상 속에 양준일이 직접 운전을 하고 퇴근하는 모습이 포착되었고, 이를 몇몇 팬들이 알아본 결과, 현대 팰리세이드로 밝혀졌다.
  • 원조 패셔니스타답게 방송 출연 등 공식적인 자리에서의 스타일링은 세련됨 그 자체이지만, 평소에는 아디다스의 옷을 즐겨입는다고 한다. 심지어 슈가맨 제작진과의 미팅 자리에서도 그 옷을 입고 나갔을 정도라고 한다.[46] 그래서인지 양준일이 뉴스룸에 출연한다고 했을 때에도, 또 평소처럼 입고 나올까봐 걱정하던 팬들도 있었지만, 실제 뉴스룸 출연 당시의 스타일링을 보고 환호성을 질렀다고 한다.
  • 배철수 잼에 출연했을 때, 데뷔 전에 이장희로스앤젤레스에서 '로즈가든'이라는 카페를 운영할 당시, 무작정 찾아가 "선배님, 저 가수 하고 싶어요."라고 했다고 한다. 그러자 이장희는 자신의 짐을 양준일에게 맡기고, 양준일의 집에 악기들을 갖다 놓은 뒤에 앨범 작업을 하자고 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장희가 당시에 미국 생활이 너무 바빴는지, 나타나지는 않았다고 한다. 해당 방송분
  • 여러 명품 브랜드들 중 아르마니를 특히 좋아한다. 1993년 쇼 서울서울 출연 당시에 선보인 리베카 무대에서 입은 아르마니 니트는 현재도 소장하고 있으며, 이를 팬미팅에 가져오기도 했다. 쇼 서울서울 리베카 영상 보기.(1:36~2:32)[47] 복귀한 이후에 있었던 신세계백화점 워크샵 당시에는 신세계에서 선물한 아르마니 수트를 입고 공연을 하기도 했다. 양준일이 신세계인터내셔날 전속모델로 발탁된 것 또한 한국에서 아르마니 브랜드를 유통하고 있는 곳이 바로 신세계인터내셔날이기 때문인 것도 있다.
  • 2019년 말 컴백 이후, 여러 기획사에서 러브콜이 들어왔으며, 실제로 양준일이 제시하는 조건을 수용해주는 기획사가 있었고 계약 직전까지 성사되었으나, 계약서 서류를 받은 순간 호흡곤란 증세 등의 몸 이상을 느꼈다고 한다. 이는 옛날에 활동하던 당시 기획사와의 계약으로 여러모로 손해를 받았던 기억 탓에 트라우마가 생겨서라고 한다. 그리하여 양준일은 기획사와의 계약을 원만히 잘 취소하고, 1인 기획사를 설립하게 되었다.[48]
  • 살이 잘 안 찌는 체질이라고 한다. 심지어 운동도 안 한다고 한다.[49] 다만 V2 시절에는 몸을 만들기 위해 벌크업을 하고, 단백질 파우더 3000kcal를 섭취하는 등 근육량 늘리기에 열중했으며, 심지어 그 몸매를 영어강사 시절에도 유지했다고 한다.[50] 하지만, 영어강사를 그만두고 미국으로 돌아가면서 생계유지를 위해 물류창고 정리, 한식당 서빙 등 주로 몸 쓰는 일, 힘 쓰는 일을 많이 하다보니 저절로 살이 빠졌고,[51] 그러다 보니 의도치않게 90년대의 몸매로 돌아가게 되었다. 하지만, V2 시절 만들었던 근육+일하면서 생긴 생활근육이 생겨서 그런지 포토 에세이, 메이킹 필름 등을 통해 공개된 모습을 통해 마냥 마르기만 했던 1990년대와는 달리, 몸에 근육이 붙은 이른바 마른 근육형 몸매가 된 것을 알 수 있다.[52]
  • 먹는 것 또한 조절해가면서 먹는 편이다. 미국에서 일할 당시에 밥 먹을 시간 없이 바쁘게 일했고, 체질 자체가 배가 차면 머리가 안 돌아가고, 몸도 무거워져 졸린 기분이 들기에 일할 때만큼은 먹는 것을 최소해가면서 먹었으며,[53] 무엇보다 아들이 태어나면서부터 설탕을 먹지 않고 탄수화물도 줄이고 있다고 밝혔다.[54] 여하튼 이러한 식습관 또한 양준일이 과거의 몸매로 돌아가는데 본의 아니게 도움이 되었다. 이후 해피투게더에 출연했을 때에도 몸매 관리 비결에 대해 '무엇을 먹는가' 보다 '무엇을 먹지 않는가'가 중요하다며 이 사실을 다시 한 번 언급했다. 또한 고기를 먹을 때 지방이 많은 부위를 먹는다며 밝혔고, 이를 상어에 비유해서 설명했다.[55] 이후 이엘이 매거진과의 인터뷰에서 4년 전 키토제닉 식단으로 바꾼 뒤부터는 군살도 없어졌고 피부 트러블까지 줄었다고 했다.
  • 라디오 스타 출연 당시에 한국에 와서 태어나서 처음으로 보톡스 시술을 받았다고 털어놓았다. 이에 MC들이 티가 안 난다며 어디에 했냐고 묻는 질문에, 본인도 정확하게는 모르고 그냥 여기저기에 맞았다고 털어놓았다. 해당 방송분
  • 한창 새끼손가락에 매니큐어를 칠하고 다닌 적이 있었는데, 이는 제니하우스와의 화보 촬영 당시에 뱀파이어 느낌을 주기 위해 핏빛으로 칠한 것이라고 언급했다.
  •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 영어로 된 별명을 지어주곤 한다. 이유는 한국 이름을 잘 기억하지 못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어느 정도 대화를 나누면서 상대방에게서 느껴지는 영어 별명을 지어주면, 다음에 만났을 때 그 이름이 떠오르기 때문이라고 한다. 실제로, 팟캐스트 '오은의 옹기종기' 출연 당시에 오은 시인에게 Dizzy('어지러운'의 뜻을 지닌 영어단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으며, 임백천의 백뮤직 출연 당시에는 임백천에게 'Back'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고, 옥탑방의 문제아들 출연 당시에는 민경훈 - 윈터스, 김용만 - 부부, 김숙 - 스킵, 송은이 - 아스닥, 정형돈 - 캐시란 이름을 지어주었다.[56] 심지어 재부팅 양준일에서는 아예 구독자들을 위해 양준일이 직접 영어이름을 지어주는 콘텐츠를 기획하기도 했다.
  • 그의 또 다른 유튜브 채널 '재부팅 양준일'의 제작팀 '풀하우스' 개개인의 애칭 또한 양준일이 직접 지었다. 1화 사전미팅 영상을 통해 공개된 내용에 따르면, 다이아 TV의 모기업인 CJ그룹 측에서 담당PD를 에이스로 소개했고, 이에 에이스의 또 다른 의미를 떠올린 양준일이 에이스(담당PD)를 시작으로 듀스,[57] 트립스,[58] 잭스로 직접 닉네임을 지어주었다.[59] 다만 풀하우스라는 팀명은 양준일이 지어준 자신들의 닉네임을 듣고 있던 스태프 중 한 명이 지은 것이다.
  • 라디오 스타 출연 당시에 동갑내기 박준형과는 초면이었음에도 남다른 케미로 화제를 모았다. 그런데 신세계인터내셔날 공식 유튜브 채널인 449tv를 통해 공개된 라스 후일담 2탄에서 박준형 누나와의 과거 인연을 소개했다. 양준일이 1992년 미스코리아 남가주 예선 당시에 축하가수[60]로 참석했는데, 옆자리에 박준형 누나가 앉아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얘기가 너무 재미있었는지, 양준일은 같이 갔던 일행이 있었음에도 박준형 누나의 얘기에 몰입을 했다고 한다. 그런데 박준형의 누나가 후보들이 한 명씩 나올 때마다 안 된다며 그 이유[61]를 함께 들었다고 한다.[62] 훗날 박준형의 누나가 양준일에게 동생도 연예인 하러 한국에 갔다며 박준형에 대해 얘기했고, 양준일은 자신처럼 이름에 '준'이 들어간 박준형을 기억하고 있다가, 나중에 OB라거 CF를 통해 박준형을 접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던 지난 5월 30일 용인의 어느 동네에서 두 사람이 프로그램 촬영을 하는 것으로 보이는 목격 영상이 짤막한 글과 함께 동네 주민 SNS를 통해 공개되었다.[63]
  • 1세대 VJ 출신 방송인 최할리는 자신의 유튜브 채널을 통해 1990년대 당시에 있었던 양준일과의 추억을 털어놓았다. 영상을 통해 최할리는 양준일 뿐만 아니라 당시 양준일과 종종 무대에 같이 섰던 뮤지컬배우 최정원에 대해서도 얘기했으며,[64] 자신이 방송 활동을 하기 전에 평범한 음학도였던 시절, 양준일이 미국으로 돌아가기 전에 있었던 마지막 콘서트에서 자신에게 첼로 연주를 부탁했었다는 얘기도 털어놓았다.[65] 그리고 며칠 뒤에 올라온 최정원과 만난 영상에서 양준일 덕에 최정원을 알게 되었으며, 덕분에 최정원과 30여년 간 인연을 이어오고 있다고 언급했다.
  • 양준일이 패셔니스타가 되었던 것에는 그의 미적 감각도 한몫하는 듯 하다. 실제로 양준일은 유치원 때 국제 미술 드로잉 대회 은상, 중학교 때 순수미술 과목에서 A+을 받았다. 하지만 양준일은 어머니에게 이 사실을 비밀로 해달라고 부탁했다. 이유는 자신이 남들과 다르다는 것이 알려지는 게 싫어서라고 하지만 이는 훗날 양준일 어머니의 유튜브 댓글을 통해 팬들에게 알려졌다.
  • 양준일이 2000년대에 활동했던 그룹 V2의 이름 뜻은 '양준일 Version 2' 즉, 양준일의 두 번째 버전이라는 뜻이다. 훗날 양준일이 복귀하게 되면서 팬들 사이에서는 V2를 기준으로, 90년대 당시의 양준일은 'V1', 현재의 양준일은 'V3' 라는 애칭으로 불린다.
  • 1990년대 당시, 세련된 패션과 남다른 춤 실력은 일반 대중들에게는 어필되지 못했으나, 오히려 나이트클럽에서는 인기가 많았다고 한다. 어느 날, 나이트클럽에서 만난 여자가 양준일에게 쪽지를 건냈고, 양준일이 쪽지에 적힌 번호로 전화를 걸자, 그 여자가 자기 친구와 함께 차를 타고 양준일을 픽업하러 왔다고 한다. 그런데 양준일이 차에 타자마자 뒷자리에 앉은 여자의 친구가 양준일에게 스킨십을 했고, 이에 열이 받은 여자가 그 자리에서 바로 유턴을 해 버리는 바람에 차 사고가 나 구급차가 출동하는 일까지 벌어졌다고 한다. 해당 영상
  • 앞서 얘기했다시피 1990년대 당시 양준일의 서툰 한국어 실력[66]은 방송에서 희화화의 대상이 되었다. 하지만 양준일이 재조명이 된 후에는 오히려 팬들에게 있어 입덕 요소로 작용하고 있으며, 심지어 서툰 한국어를 선보이는 그 때 당시의 영상들은 유물로 여겨지고 있다. 물론 현재는 V2 활동 이후에 영어강사 생활을 하면서 한국에서 체류한 시간이 길어져서인지, 대화하는 데에 있어 아무런 문제가 없을 정도로 한국어가 많이 늘었다. 다만 성장 과정에 있어서 바이링구얼로 자라다 보니, 한국어 쪽이든 영어 쪽이든 단어 선택에 있어서 쉽고 단순한 것들 위주로 말하며, 읽고 쓰는 것 또한 외국에서 살다 온 게 티가 날 정도로 아직은 서투른 편이다. 또한 작사를 할 때에도 영어로 먼저 생각을 하고 쓴다고 한다.[67]
  • 뉴스룸 출연 당시만 하더라도 한국에 정착하고 싶지만, 미국에서 급하게 온 거라 따로 한 번 더 정리하러 돌아가야 된다는 얘기를 했었다. 하지만 해피투게더 출연 당시에 팬미팅이 확정되었을 때만 하더라도 팬미팅만 하고 미국으로 돌아가려 했지만, 그 사이에 롯데홈쇼핑 CF를 찍었고, 모델료로 보증금을 마련해 한국에 집을 마련했으며, 현재는 미국 생활을 다 정리를 하고 온 상태라고 언급했다. 해당 영상
  • 과거 한국에서 활동을 했었고, 심지어 V2 활동 이후 영어강사 일을 하며 한국에서 오래 살았음에도, 몇몇을 제외하고는 한국 연예인들을 많이 모른다고 한다. 섹션TV와 잡지 인터뷰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샵에서 헤어·메이크업을 받던 중, 김희선이 사진을 찍어 달라고 해서 얼떨결에 같이 사진을 찍었는데, 김희선이 얼마나 유명한 배우인지 나중에 집에 가서 알았을 정도라고. 섹션TV 해당영상 (1:07~1:34)[68] 또한, 449tv에서 공개된 해피투게더 의상준비 당시에 박명수가 해투 MC에서 하차한 사실과[69] 양배추조세호로 활동명을 변경한 것 조차 MC인 한석준을 통해 처음 알았을 정도였다. 심지어 2020년 4월 6일에 449tv에 올라온 패톡 영상에서도 김수로를 보고 댄서라고 했으며, 옥탑방의 문제아들 출연 당시에는 정형돈에게 래퍼라면서 'G-DRAGON 멘토'라고 했다.
  • 해피투게더 당시에 아들에 대해서 언급했으며, 특히 아들이 자기 못지 않게 끼가 넘친다고 털어놓았다. 아들이 두 살이 됐을 무렵에 비디오를 찍던 중, 아들이 갑자기 머리를 박았다고 한다. 이에 양준일이 아들을 자세히 보니 옆에서 '반짝반짝 작은 별'이 흘러나오면서 거기에 맞춰 춤을 추기 시작했다고. 뿐만 아니라 2020년 4월 6일에 공개된 슈가맨 연습 영상 2탄에서 연습 영상 뒤에 올라온 짦은 영상에서 양준일이 노래[70]를 부르자 앞에서 화음을 넣는 듯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 팬들을 대하는 마음이 남다르다. 일단 팬들에 대한 애칭으로 대표적인 애칭인 'My Queens & Kings'를 비롯, '부동산',[71] '왕녀',[72] '희망상'[73] 등 다양하다. 또한 앞서 언급한 1992년 당시 잡지에 실린 편지의 내용에 따르면, 1집 활동을 끝내고 미국에 갔다가 비자 문제로 잠깐 한국에 왔는데, 팬들에게 인사는 하고 가야겠다 싶어서 전화를 돌렸다고 한다. 하지만 당시에 학생이었던 팬들의 부모님한테 공부를 방해한다고 혼나자, 그 당시에 서툰 한국말+당황스러운 말투로 "잘못했습니다"하고 전화를 끊었고, 전화 돌리는 것도 그만두었다고 한다.[74] 하지만 연락이 닿은 몇몇 팬들과 함께 자장면[75]을 먹으며 당시 준비 중이던 2집 데모테이프를 같이 들었다고 한다.[76]
  • 어렸을 때 꿈은 스파이더맨이었다고 한다. 애초에 슈퍼맨은 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스파이더맨은 거미에게 물리면 가능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 양준일이 재조명되면서 그의 알려지지 않았던 곡들 또한 재발견이 되는데, 그 중 리베카와 마찬가지로 1집에 수록된 '헬프미 큐핏'은 리베카에서의 섹시한 매력과는 또 다른 귀여운 매력으로 사랑받는 곡이다. 하지만 정작 양준일 본인은 활동 당시에 이 노래를 싫어했으며, 그 때 당시에 그 노래를 불렀던 걸 다행으로 여기고 있다. 노래 특유의 강아지 같은 귀여운 느낌은 그 때 밖에 낼 수 없기 때문이라고. 이에 팬들은 50대가 된 양준일이 헬프미 큐핏을 부르는 것을 기대하고 있다. 그러던 9월 10일 공개된 재부팅 양준일 양준일 생일 기념 콘텐츠에서 양준일이 1991년 쇼 토요특급에서 헬프미 큐핏 무대를 꾸몄을 당시의 의상을 재현한 것은 물론, 직접 노래까지 부르면서 팬들의 바램이 이루어졌다. 또한 헬프미 큐핏에서 양준일 목소리 뒤에서 흥얼흥얼거리며 코러스를 넣는 목소리가 있는데, 이는 당시 앨범의 프로듀서이자, 해당 곡의 작곡가인 이범희 작곡가의 목소리이다.[78]
  • 술·담배를 전혀 하지 않는다. 대신 물과 탄산수를 즐겨마신다고 한다. 특히 그의 SNS를 보다 보면 탄산수가 자주 나오는 것을 볼 수 있다. 애용하는 브랜드는 트레비로 보이나, 라디오쇼 출연 당시에는 웅진식품의 빅토리아 탄산수를 마셨다.[79]
  • 한국어, 영어 외에도 약간의 스페인어를 할 줄 안다. 시원스쿨 광고 비하인드 영상에서 스페인에서 7년을 살다 온 스태프와 스페인어로 대화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학창시절에 배워서인지 본인 말로는 한 마디 밖에 못한다고는 하지만 꽤 유창하게 대화를 한다.
  • 배철수 잼 출연 당시, 출연하게 된 이유가 배철수를 만나고 싶어서 출연했으며, 1990년대 당시에는 만난 적이 전혀 없었다고 털어놓았다. 그러나 팬들에 의해 1992년~1993년 경 배철수가 SBS에서 인기가요[80]를 진행할 당시에 두 사람이 만난 영상이 발굴되었다. 다행인 것은 이 사실을 배철수 또한 기억하지 못한 듯 하다.
  • 과거 V2 활동 당시, 크게 교통사고를 당했지만 안전벨트를 한 덕에 전치 3주의 부상을 입었다. 훗날 양준일의 말에 의하면, 오히려 그 사고로 인해 V2 활동 통틀어서 유일하게 신문에 났다고 한다. 당시 기사 하지만, 안전벨트 덕에 큰 부상은 면하긴 했어도, 당시 기획사에서는 제대로 된 조치없이 활동을 강행시켰으며, 가슴에 있는 흉터는 그 때 생긴 것으로 추정된다.[82]
  • 데뷔 30여 년 만에 처음으로 공식 색이 생겼다. 명칭은 '데님 블루'로, 팬톤 코드는 293C이다. 색깔은 양준일이 팬덤 연합과 상의해서 직접 선택한 것이다.[83]
  • 양준일이 토요대행진 당시 선보인 리베카 무대를 보면 혼자만 유독 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훗날 양준일이 재부팅 양준일에서 밝힌바에 따르면, 당시에 방송의 테마가 우주[84]였어서, 당시 제작진이 리우 카니발처럼 꾸미길 부탁해서 제작진이 부탁한대로 메이크업[85]까지 했으나, 다른 가수들은 평범하게 꾸민것에 비해 본인만 잔뜩 꾸미고 가서 억울했다고 털어놓았다.[86]
  • 양준일의 에세이에 공동 저자로 이름을 올린 '아이스크림'[87]은 현재 양준일의 매니저 일을 맡고 있다. 양준일이 비디오스타에서 언급한 바에 따르면, 그녀는 양준일이 데뷔 당시부터 팬이었으며, 그녀는 기자로, 양준일은 V2로 활동하던 시절에 'Fantasy'를 듣다가 노래에서 양준일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을 알고 V2가 양준일인 것을 알아채기도 했다. 이후에는 기자로 인터뷰를 하게 되면서 양준일과 인연을 맺었고, 양준일이 세 번째 컴백을 한 이후에는 책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양준일과 함깨 다니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양준일의 일을 봐 주게 되었고, 그렇게 매니저 일을 하게 된 것이다. 양준일이 프로덕션 이황과 전속계약을 체결한 이후에도 양준일의 스케줄을 동행하는 듯 하다.
  • 영화 포레스트 검프를 감명깊게 본 듯 하다. 카카오와 함께한 '카카오 프로젝트 100'를 비롯 2020년 7월 9일 공개된 재부팅 양준일 영상에서도 포레스트 검프에 대해 언급했으며,[88] 이번에 나온 미니앨범 'Day By Day' 'Thanks to' 속 팬들에게 보내는 메세지에서도 자신의 애칭인 'Jiy'를 붙여 'Jiy Gump'라고 소개했다.
  • 양준일의 신곡 'Rocking Roll Again'의 가사 중에 '먹고 싶은 건 떡볶이'란 가사가 있다. 이에 대해 양준일이 미스터 라디오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실제로 어린 시절 미국으로 이민을 갔을 때 제일 먹고 싶었던 것이 떡볶이였다고 한다. 학교 끝나고 사 먹었던 떡볶이가 그리웠다고 한다.
  • 'Rocking Roll Again'의 또다른 가사 중에 '왠지 나는 싫어 same song'이란 가사는 얼핏 들었을 때 '왠지 나는 싫어 생선'으로 들린다. 이에 처음 노래가 나왔을 때 팬들은 양준일이 생선을 싫어한다는 내용을 가사에 담았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실제로 양준일이 과거 인터뷰에서 생선을 싫어한다고 얘기했기 때문이다. 그 이유로는 가시 발리는 게 귀찮아서라고 한다.
  • 2020년 9월 3일자 재부팅 양준일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1990년대 한국에 왔을 당시에 연세대학교 한국어학당에 다녔다고 한다. 하지만 그 곳에 외국인들 밖에 없었고, 그러다 보니 한국어 발음이 더 안 좋아져서 그만두었다고 한다.
  • 학창시절에 아버지의 차를 세차해서 받은 용돈 2달러를 조금씩 모아서 그 돈으로 비 지스의 <Saturday Night Fever Soundtrack>를 샀는데, 이는 양준일이 10대 시절 생애 처음으로 산 앨범이다.
  • 앞서 언급된 성장사에서도 보듯이 베트남에서 태어나 이후에 한국에서 살다가, 초등학생 때 미국으로 이민을 가 한국과 미국의 두 곳의 문화를 경험했기에 TCK에 속한다.[89] 그리고 양준일의 아들 또한 한국에서 태어났으나, 양준일이 영어강사 생활을 접고 미국으로 돌아가면서 같이 갔으며, 이후에 양준일이 가수 복귀를 위해 다시 한국으로 오면서 같이 왔기에 역시 TCK에 속한다.
  • 오후의 발견 출연 당시, 자신과 인연이 있는 가수들의 노래를 선곡하면서 김경호금지된 사랑을 선곡하였다. 그 이유에 대해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김경호의 소속사인 프로덕션 이황이랑 계약했는데, 정작 김경호와 만난적이 단 한 번도 없다고 한다. 심지어 그 회사에 김경호가 있는지조차 의심된다고 한다.[90] 결국 2020년 9월 15일 양준일의 SNS프로덕션 이황 정환균 이사 SNS에 두 사람이 만난 모습이 올라왔다.
  • E,L.E 매거진을 통해 진행된 제프 벤자민과의 인터뷰에서 유니버설 뮤직과 계약한 사실을 밝혔다. 매니지먼트 계약은 프로덕션 이황과 했음에도, 음반 발매사로서는 유니버설 측과 계약한 것으로 보인다. 계약하게 된 사연은 이엘이 매거진 편집장을 통해 유니버설 뮤직을 소개받은 게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 과거 SBS에서 개최되었던 올해의 스타상 '예쁜오빠상'에 현진영, 이덕진, 이현우와 함께 후보로 올랐다. 결과는 현진영이 9표로 1위를 차지했으며, 양준일은 6표로 2위에 그쳤다. 훗날 양준일이 옥탑방의 문제아들에 출연했을 때 예쁜오빠상에 대한 문제가 나왔다.
  • 앞서 언급한 사실이지만, 양준일이 영어강사로 활동할 당시의 영어 교육법과 학습 프로그램[92]은 큰 인기를 끌지 못했다. 하지만 이를 알아본 몇몇 교육업체에서 양준일의 콘텐츠를 사들이기를 원했으나, 업체 측에서 가수였던 양준일이 개발했다고 하면 학부모들의 신뢰도가 떨어질 것이라 판단해, 콘텐츠만 빼돌리고 양준일 대신 박사 출신 전문가가 개발한 걸로 속이려 하는 바람에 성사되지 않았다.
  • 사용하는 휴대폰은 갤럭시 S20이다. 2020년 10월 8일 재부팅 양준일을 통해 공개되었다. 참고로 배경화면은 본인사진이다.
  • 슈가맨이 발굴한 대표적인 스타라 그런지, 슈가맨 제작진이 만든 프로 싱어게인에서도 직·간접적으로 그가 언급이 되곤한다. 아이돌 그룹 임팩트태호[94]는 1차 오디션에서 '리베카'를 선보였고,[95] 1990년대 초반에 미니데이트라는 곡으로 인기를 끌었던 가수 윤영아[96]는 아예 자신을 '여자 양준일'[97]로 소개했다.[98]
  • 최근 목에 있는 혹 제거 수술을 받았다. 그래서인지 당시 촬영한 걸로 추정되는 영상들을 보면 어느 정도 목소리가 잠긴 것을 볼 수 있다. 양준일이 직접 밝힌바에 따르면 수술 받은 부위가 완전히 아물려면 1년 정도는 있어야 하며, 조금씩 나아지고는 있지만 신경쪽도 건드렸다보니 아직도 목이 마비가 된 느낌이라고 한다. 물론 지금은 목소리가 거의 돌아온 상태이다.
  • 중학교 때 연상녀를 짝사랑한 적이 있다고 한다. 한국에서 온 무용을 전공하던 대학생으로, 같은 교회에 다녔었다고 한다.
  • 일반적으로 다이아마켓에서 판매되는 상품은 채널명이 곧 브랜드명이지만, 양준일이 다이아마켓과 협업하여 출시한 가방과 키링은 재부팅 양준일의 이름이 아닌 '클래프'라는 이름으로 출시되었다. 이름은 음악에서 음자리표를 뜻하는 영어 단어 'clef'에서 따왔으며,[99] 양준일이 직접 지었다. 다만 가방과 키링 이전에 출시된 맨투맨 티셔츠는 채널명인 재부팅 양준일의 이름으로 출시되었다. 이후 출시된 비치타월, 우산, 시스루 셔츠도 클래프 이름으로 출시되었으며, 이에 따라 향후 출시될 상품들도 클래프의 이름으로 출시될 예정이다.
  • 미국에서 살았을 당시 처음으로 접한 한국노래가 구창모희나리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OFFICIAL양준일에 양준일이 희나리를 부르는 영상이 차례나 올라왔다.[100][101]
  • 슈가맨 출연 당시 넒은 이마와 독특한 헤어스타일 탓에 일부 네티즌들로부터 뜻하지 않게 탈모 의혹을 받았는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사실이 아니다. 일단 이마는 1990년대 당시에도 넒었으며, 헤어스타일은 '양준일 91.19'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워낙에는 짧은 머리를 유지했으나, 서버로 일하면서 당시 식당 사장[102]이 양준일에게 머리가 긴 게 나을 것 같으니 한 번 길어보라고 권했다. 허나 양준일은 식당에서 일하는 탓에 위생상의 문제로 처음엔 거절했으나, 설득 끝에 머리를 기르기 시작했으며, 어느정도 머리가 길어졌을 때, 슈가맨에 출연하게 된 것이라고 한다. 슈가맨 출연 당시의 모습을 자세히 보면 헤어밴드를 착용하고 있다.
  • 최근 '김흥국의 백팔가요'에 출연해 DJ인 김흥국과 90년대 당시에 대한 얘기를 나누었다. 그러면서 자신이 활동하던 당시에 인기 탑 3중에 김흥국이 있었으며, 자신에게 있어 가장 큰 연예인은 심형래라고 언급했다. 이에 대한 보답으로 심형래는 자신의 유튜브에 양준일 관련 영상들과 함께, OFFICIAL양준일과 재부팅 양준일의 구독을 독려하는 댓글을 달았으며, 이 사실은 안 양준일의 팬들이 감사 댓글을 달은 것으로 모자라 일부는 구독까지 하는 광경이 보여졌다.
  • 노래 부를 때, G-DRAGON과 외모만 그런 게 아니라 목소리가 꽤 흡사하다. 모르는 사람이 들으면 지디 노래인줄 알았다는 사람들도 있다. 리베카랑 FANTASY를 처음 들은 사람들은 지디인줄 알았다는 모양. 이렇다 보니 탑골GD라는 말이 괜히 붙은 게 아니다.


[1] 실제로 슈가맨 출연 당시, 제보자로 나온 노사연이 양준일을 자신과 같은 가요계의 꽃사슴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2] 코로나 19가 터지면서 한국으로 돌아왔다는 말이 있으나, 확인되지 않았다.[3] 글이 쓰여진 2020년 기준으로는 5년.[4] 양준일이 여러 방송에서 가족들과 함께 미국으로 돌아간 뒤, 물류창고 알바, 한식당 서버 등 여러가지 일을 하며 살았다고 언급했던 만큼 뵈러 갈 시간이 없었을 것이다. 실제로 슈가맨 당시에도 출연하는 것에 대해서 미국에서의 서버일을 비우고 가야하다 보니 아무래도 자신의 생업이 걸린 만큼 출연을 망설였다고 했으니 말이다. 심지어 그가 신드롬급 인기를 끌기 시작할 때 즈음에 코로나 19가 터져 이동하기가 힘든 탓에 부모님을 찾아뵙기 더더욱 힘들어졌을 것이다.[5] 파일:양준일 토토즐.jpg[6] 당시 신인 가수들은 무대에서의 헤어와 의상을 갖춘 상태에서 노래를 부른 뒤, 방송국의 심사위원들에게서 합격 사인을 받아야지만 무대에 설 수 있었다. 하지만 양준일만 머리가 너무 길어서(본인 말로는 1년 이상 길렀다고 함.) 합격하지 못하자 어쩔 수 없이 머리를 잘라야만 했고, 결국 부부가 원장으로 있는 압구정동 유명 미용실로 머리를 하러 갔다. 하지만 결과물을 본 양준일은 자신의 머리를 한 원장에게 참고용으로 가져간 잡지를 보여주며, "선생님, 이 머리랑 제 머리가 어떻게 똑같죠??"라며 항의를 하자, 원장은 무책임한 태도를 보였고, 또 다시 항의를 했지만, 결국 어머니 손에 이끌려 미용실에서 나와 그 머리로 토토즐에 출연한 것이다. 훗날 양준일이 본격적인 한국 활동을 위해 부모님과 함께 기획사를 구하던 중, 지인의 소개로 알게 된 임하룡에게서 대표가 압구정동에서 미용실도 운영 중이라며 소개를 받았는데, 알고 보니 그 미용실이었다. 이에 양준일의 아버지는 양준일이 그 미용실에서 난리를 피워 안 된다고 했으며, 임하룡은 원장에게 그 이야기를 전했다. 그러자 원장은 오히려 "아~ 그 머리 긴 애?? 나 걔 좋아. 개성 있어."라며 반색했으며, 심지어 만남까지 성사되었다. 하지만 제시한 계약금이 생각보다 많았고, 양준일의 부모는 혹시나 양준일이 하기 싫다며 갑자기 미국으로 가 버릴 상황이 염려되었는지 거절했다고 한다.[7] 이 내용을 바탕으로 그린 웹툰이 어느 웹툰작가 인스타그램에 4탄까지 연재되어 있으며, 배철수 잼과 해피투게더에서 또 다시 언급하기도 하였다. 웹툰작가 인스타그램 배철수 잼 해피 투게더[8] 그렇지만 이 무대가 나온 회차는 MBC 아카이브에는 없고 있어봤자 MBC 내부에서 유실된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도 일부 팬들은 MBC에 겨울 나그네 영상 공개를 지속적으로 요청하고 있으며, 요청에도 답이 없자 양준일의 팬덤 내에서는 양준일의 동의하에 1집이 발매된 1990년 11월 30일을 잠정적인 데뷔일로 지정했다.[9] 현재는 멜론 한정으로 V2 앨범을 포함한 그의 전집이 음질 개선이 된 상태이다.[10] 참고로 진행자 윤종신 또한 청소년이 주 청취층인 방송에서 일부다처제를 논의했다는 이유로 방송정지를 당했다. 슈가맨 관련 영상[11] 다만 마지막 사례는 그나마 납득이 되는 것이, 현재에도 지상파에서 남자 가수가 상체 노출을 할 때 한 쪽만 하는 것이 원칙이며, 만약 양쪽 다 할 경우에는 경고감이다. 게다가 지금보다 훨씬 보수적인 1990년대 당시에는 악세사리 착용, 염색, 여자들의 배꼽노출 또한 금지되어 있었다.[12] 이는 당시에 미국에서 온지 얼마 안 된 양준일이 보수적이었던 당시 한국 사회와 정서적으로 안 맞았던 것도 있지만, 주로 술자리에서 친분을 쌓는 한국 사회의 특성상 술·담배를 안 하는 양준일이 누군가와 어울리는 것이 쉽지 않았을 것이다. 당시 그의 주변에 선배 가수들(특히 선배 여가수들)이 많았던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13] 1992년도 당시, 미국에서 앨범 제작을 마치고 한국으로 온 양준일은 호텔에 머물면서 앨범을 내줄 음반사를 찾아다녔다. 하지만 앨범이 나오기도 전에 방송 섭외가 쏟아지고, 결국 양준일은 앨범을 발매하기도 전에 방송 활동을 하게 되었다. 이 때까지는 쌍커풀이 없었으나, 방송 활동 이후에 음반사와도 계약을 하게 되었고, 이후에 미국으로 돌아가 쌍커풀 수술을 한 뒤,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앨범을 내고 본격적인 2집 활동을 하게 된 것이다. 실제로 2집 활동 당시 모습을 보면 쌍커풀이 있는 모습과 없는 모습이 섞여있다. 양준일 또한 판타쟈이 게시판에 남긴 글에 눈꺼풀이 무거운 느낌 때문에 수술을 하고 싶어 스스로 선택한 것이며, 수술 결과에도 만족한다고 한다.[14] 실제 양준일이 배철수 잼 출연 당시에 마지막 곡으로 부른 곡이 엘튼 존의 'Sorry Seems To Be The Hardest Word'였다.[15] 서울 방언, 미주 한인어 문서에도 쓰여 있지만 1970년대 이후는 많은 서울 출신들이 미국으로 이민을 가던 시기였기 때문에 재미 동포의 발음에서 서울 방언의 흔적이 현대 한국어보다 더 많이 짙게 배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16] 사실 이는 양준일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재미교포들에게서 찾아볼 수 있는데, 미주 한인어 문서에도 쓰여있듯이 1960년대 ~ 1970년대에 이민을 간 재미교포들이 이민 이후 한국의 신조어를 배울 기회가 적다보니, 기존 한국에서 쓰던 말을 미국에서도 여전히 쓰고 있어서 생긴 것이다. 실제로 미국 현지 한인사회에서는 아직도 소캘지역을 남가주라고 지칭하며 월남또한 베트남 이라는 단어와 1대1로 혼용가능한 의미로 쓰이고 있다.[17] 혹은 양준일에게 팬심을 고백한[18] 그의 다수의 영화에서 양준일과 리베카가 종종 언급되었다. 자세한 내용은 오인천 문서 참조.[19] 무한걸스에서 '숙이는 열일곱'(무한도전 '명수는 12살' 패러디 콩트. 실제 김숙이 17살이던 1991년을 배경으로 함. 2010년대 후반의 팬덤 대규모 유입 이전이었다.) 당시에 처음으로 양준일을 언급했고, 콩트에서 양준일 2집 LP판을 인증한 적이 있다. 이후 님과 함께에서도 양준일의 1집 LP판을 보자 반가워하는 모습을 보였다. 양준일이 소환된 이후에는 팬미팅에 MC로 섭외가 되었으나, 예정된 스케줄로 인해 거절할 수 밖에 없어 아쉬웠다고 비밀보장에서 언급했다. 그 뒤에 자신이 진행하는 비디오 스타옥탑방의 문제아들에 양준일이 게스트로 출연하면서 두 사람의 만남이 성사되었다.[20] 양준일이 뉴스룸에 출연했을 당시에 시청소감과 인증샷을 자신의 SNS에 올렸으며, 양준일이 지난해 8월 'Rocking Roll Again'으로 컴백했을 때에는 '우리 준일오빠 신곡 나오셨냐. 한 번 모셔야 되는거 아니냐'며 언급했고, 실제로 양준일이 오후의 발견에 출연해 두 사람의 만남이 성사되었다. 이후에도 양준일이 지난 2월 미니앨범 'Day By Day'로 컴백했을 때에는 양준일이 선물한 앨범을 들고 찍은 사진이 오후의 발견 SNS에 올라왔다.[21] 자신의 유튜브에 양준일의 팬미팅 후기 영상을 올리기도 했으며, 이후 멜론 스테이션에 MC와 게스트로 만났다.[22] 지난 6월 있던 김원준과의 합동콘서트에 절친인 성우 송도순과 함께 다녀간 사실이 알려지기도 했다.[23] 같이 삽시다 3에서 양준일에게 팬심을 고백했으며, 직접 전화통화까지 했다. 이후 다음주인 9월 29일 방송분에 양준일이 사선녀에게서 받은 옥수수를 인증했다.[24] 특히 김숙은 양준일의 데뷔 초, 즉 자신이 고등학생 때부터 팬이었다고 한다.[25] 실제로 최민근 PD는 섹션TV와의 인터뷰 당시 해당 사실을 언급했으며, 그가 쇼 음악중심을 담당했을 당시에 리베카를 시작으로 'Dance with me 아가씨', 'Fantasy'까지 양준일의 과거 곡 3곡으로 일명 '양준일 3부작'을 기획한 것 또한 이러한 이유에서 라고 볼 수 있다. 또한 백파더 마지막 재방송 당시에는 크레딧과 함께 양준일이 지난 2월 발매한 미니앨범 'Day By Day'의 타이틀곡 'Let's Dance'의 뮤직비디오를 삽입해 양준일 팬덤으로부터 폭발적인 호응을 얻었다.[26] 사실 이은혜 작가 또한 앞서 언급된 인물들과 마찬가지로 양준일의 팬으로, 그녀의 또다른 작품인 '늑대와 함께 춤을'에는 아예 양준일을 찬양하는 대사를 넣었다. #[27] 이 중, 2월은 나중에 참여한 팬들이 많았음에도, 엄청난 화력 끝에 1위였던 강다니엘을 제치고 선정되었으며, 4월은 임영웅과의 접전이 기사화가 될 정도로 치열한 대결 끝에 선정되었다.[28] 실제로, 양준일이 베로카 모델로 발탁되었다는 기사가 나자마자, 팬들은 앞다투어 베로카 구입 인증샷을 올렸고, 이로 인해 제품이 품절되는 사태까지 일어나 결국 광고 출시가 연기되는 해프닝이 일어나기도 했으며, 신세계인터내셔날과 콜라보한 굿즈는 전체 수량 449개 중 30% 정도에 해당되는 298개(패키지 종류 2종. 한 종류 당 149개)만 온라인 선판매를 진행했음에도, 3분 만에 매진되기도 했다.[29] 해당 유튜버는 또 다시 자신의 유튜브에 양준일이 인증했단 사실을 감사 영상 형식으로 공개해 양준일에게 감사함을 전했다.[30] 슈가맨 녹화 당시 방송국을 뛰어다녔었는데, 투명 유리문에 부딪혀서 울었다고 한다. 그런데 울면서 또 뛰어다녔다고 한다. 심지어 산후조리원에 있을 당시에 별명이 'Wild'였는데, 우는 소리가 남달라서 주변에 다른 아기들이 다 깼을 정도라고 한다. 게다가 자주 웃통을 벗고 뛰어다니는데다가 목소리마저 크다고 한다. 이런 점 때문인지 별명이 '타잔'이다.[31] 그런데 양준일이 SNS에 자신의 생일 선물 인증샷을 올릴 당시 선물 받은 액자에 비친 모습을 통해 간접적으로 얼굴이 공개되었다. 아마 의도치않게 노출된 것으로 보인다.[32] 전해지는 썰에 의하면 "30년 전에는 제가 돈을 직접적으로 크게 벌지 못했기 때문에 팬들이랑 아쉽지만 자장면을 먹었는데, 이제는 제가 다 사 줄 수 있어요. 맘껏 드세요~"라는 말과 함께, 버거킹 햄버거+감자튀김+콜라 세트를 돌렸다고 한다.[33] 양준일의 미주팬클럽 쟈이더스에서 양준일이 다녔던 글렌데일 하이스쿨 (Glendale high school)과 USC 탐방을 했었으며, 이 중, 글렌데일 하이스쿨로부터 한 블록 정도 거리에 버거킹이 있다고 한다. 이에 쟈이더스에서는 양준일이 학창시절의 추억 때문에 버거킹을 선호하는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영상 보기[34] 하지만, 원래 꿈은 맥도날드 사장이었다고 한다. 맥도날드에 사람이 많은 것을 보고 장사도 하고, 햄버거도 원없이 먹으니 본인 입장에서는 윈윈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35] 이는 인터넷에 떠돌고 있는 '두루마리 휴지로 머리 크기 재기'이며, 두루마리 휴지 5칸을 기준으로 4칸이면 소두, 4칸에서 5칸 사이이면 머리가 작은 편, 5칸은 보통, 5칸에서 6칸 사이이면 머리가 큰 편, 6칸 이상은 대두로 분류한다.[36] 실제로 뉴스룸 출연 당시에 손석희 앵커가 앉은 키가 크다는 얘기를 하자, 당시 앉아있던 의자가 높이 되어있었다며 너스레를 떨었고, 사람들이 자신을 실제 키보다 크게 본다는 얘기와 함께 실제 키를 밝히자, 손 앵커가 자신과 비슷(177cm)하다며 놀라기도 했다. 또한 뉴스룸 출연 직후, 네티즌들에 의해 찍힌 코엑스에 게시된 자신의 옥외광고와 함께한 인증샷에서도 178이라는 키가 믿기지 않는 모델 비율을 자랑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37] 해당 영상에 달린 양준일 어머니의 댓글에 따르면 그 당시에, 어머니가 양준일에게 최정원에 대한 그의 생각을 물어보자, 양준일 왈 : "무슨 말씀하시는 거에요?? 나도 그녀가 좋아요. 하지만...너무 우리 가족하고 닮아서 마치 누나나 막내이모 같아요. 혹시 그녀가 날 남자로서 좋아하나요??" 라고 대답했다고. 아마 어머니는 최정원과 같이 일하기에 어떠냐는 의도로 물어본 것이지만, 양준일은 최정원을 이성으로서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한 질문으로 이해하고 대답한 듯하다. 참고로 두 사람은 1969년생 동갑내기이며, 심지어 태어난 달도 같다.[38] 한편 해당 영상이 화제가 되면서 기사화까지 되자, 네이트 POLL에서는 양준일의 장발 펌과 단발머리를 두고 투표를 진행하였다. 결과는 단발머리의 승리. 네이트 POLL[39] 나중에 제니하우스 블로그에 올라온 뒷이야기에 따르면, 팬들에게 추억을 선물하고 싶어서 깜짝 공개한 것이며, 훗날 공개된 베로카 CF 영상을 통해 그 때 당시의 모습을 재현한 것으로 밝혀졌다.[40] 담당 헤어스타일리스트의 말에 따르면, 양준일 본인 또한 이 날 선보였던 단발에 대해서 만족했으며, 양준일이 한창 머리를 기르고 있는만큼 다양한 헤어스타일을 선보이고 싶다고 밝히기도 했다. 인터뷰 기사[41] 1집 앨범 재발매 논란 당시에 나온 기사를 통해 당시 기준 8,000만 원 정도인 것으로 밝혀졌다.[42] 실제로 부모님이 미국에서 부동산 사업을 하셨는데, 사업이 성공해서 덕분에 어린 시절을 유복하게 보냈다고 한다.[43] 흑백사진이라 색깔이 나오지는 않았지만, 편지에 빨간색 레인지로버라고 언급이 되었다.[44] 차종은 현대 제네시스 GV80으로 알려졌으며, 옵션 유무에 따라 6500만원~7000만원 정도라고 한다.[45] 이에 한 기사에서는 양준일이 철이와 미애에게 준 곡인 '뚜벅이 사랑'에 빗대어 표현했다. 관련 기사[46] 실제로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가정을 꾸리며, 가장으로써의 삶을 살면서 패션에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으며, 서빙할 때도 유니폼이 있다 보니 패션에 신경을 안 써도 돼서 편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양말을 살 때에도 똑같은 게 여러개 있는 번들 양말을 좋아하며, 팬들 사이에서는 '애착 쫄티'라 불리는 남색 티셔츠 또한 똑같은 셔츠가 무려 8벌이라고 고백했다.[47] 현재는 세월이 세월인지라, 옷이 낡고 헤져서 입기는 힘들다고 한다.[48] 기획사를 세우기는 했지만 사실상 무소속에 가까우며, 훗날 양준일과 관련된 여러 논란들이 연이어 터지자, 팬들 중에는 양준일이 제대로 된 소속사가 없다는 사실에 대해 안타까워하는 팬들도 꽤 있었지만, 프로덕션 이황과 계약하면서 그런 걱정은 안 해도 될 듯 하다.[49] 예전에 운동하다가 어깨를 다친 이후부터 안 하게 되었다고 한다. 다만 스트레칭은 한다고 한다.[50] 실제로, 양준일이 영어강사 시절 만났던 아내와 연애 당시에 자신이 과거에 가수였음을 밝혔음에도, 아내는 자신이 알던 양준일이 아니라며 아리송해 했다고 한다.[51] 서빙할 당시에 많게는 하루에 16km까지 걸었다고 한다.[52] 파일:양준일 상반신 탈의.jpg[53] 그래서인지 '양준일 91.19.'을 통해 공개된 뉴스룸 출연 준비 당시 모습에도 삶은 계란+고구마로만 끼니를 때우는 모습을 볼 수 있다.[54] 허나 1990년대에는 먹는양이 많았다고 한다. 일단 김밥으로는 성에 안 찼으며, 알다시피 미국은 1인분도 양이 워낙 많아, 한국에서 자장면을 먹어도 미국에 비해 양이 적어 2~3인분을 시키는 게 기본이었으며, 심지어 지인들은 양준일과 밥을 먹을 때에는 많이 먹을 수 있는 메뉴를 골랐다고 한다.[55] 상어는 주로 물개 같이 지방이 많은 먹이를 먹어야지만 생존에 유리하다고 한다. 이런 상어가 물개에 비해 상대적으로 지방이 적은 사람을 먹으면 소화불량이 생기고 에너지도 부족해지는 악순환이 발생하기 때문에, 상어가 사람을 물어도 물기만 할 뿐 바로 놔 준다고 한다.[56] 민경훈 - 녹화 당시 입고 있던 겨울 느낌의 티셔츠 때문에, 김용만 - 얼굴이 부동산 중개인 같이 생겨서, 김숙 - 일단 스킵하고 (건너뛰고) 나중에 생각한다는 의미였는데 김숙이 이를 이름으로 오해하고 마음에 든다하여 그대로 굳어짐, 송은이 - 양준일이 생각한 똑똑한 여자에게 어울리는 이름, 정형돈 - 이름에 '돈'= 'cash'[57] 현재는 다른 팀으로 옮겼는지 더 이상 나오지 않는다.[58] 현재 애칭은 '피비'이다. 양준일이 지어준 자신의 이름을 듣던 해당 스태프가 이름이 발음하기 어렵다며 바꾸길 원했고, 이에 해당 스태프를 보던 양준일이 프렌즈피비가 떠오른다며, 피비로 이름을 바꾸어 주었다.[59] 하지만 담당작가는 예외이다. 2화 영상에서 새로 합류하게 된 작가가 양준일에게 인사를 하러 왔고, 닉네임을 지어달라는 부탁에 담당작가 이름이 '우주'인 것을 알게 된 양준일이 작가의 본명에서 유래한 '우쥬'라는 닉네임을 지어주었다.[60] 이 때 당시 불렀던 노래가 이선희의 곡을 리메이크해서 나중에 자신의 앨범에 수록한 'J에게'이다.[61] 화장이 너무 진해서, 키가 작아서, 발목이 두꺼워서 등[62] 참고로 박준형의 누나는 현재 박준형의 코디로 박준형과 스케줄을 같이 다닌다고 한다. 이렇듯 평소에 스타일에 민감했는지, 당시에 양준일과 처음 만난 사이였음에도 양준일에게 그런 얘기를 한 것으로 보인다.[63] 현재 원본 피드는 삭제된 것으로 보이나, 일부 팬들에 의해 리그램 형식으로 올라와있다. 해당 영상[64] 세 사람은 1969년생 동갑내기이다.[65] 연주를 부탁받았던 곡에 대해, 영상 촬영 당시에는 가사가 생각이 안 났는지 허밍으로 대신했으나, 나중에 유튜브 댓글을 통해 '겨울 나그네'라고 직접 언급했다.[66] 한국을 빛낸 100명의 위인들→한국을 빚는 100년의 위인들, 현진영흐린 기억속의 그대→흐린 기억력의 그대 등.[67] 실제로 여성시대 출연 당시, 라디오 DJ를 맡아보는 게 어떻겠냐는 청취자의 질문에 자신의 한국어 실력이 초등학생 실력이라 안 될 것 같다고 했으며, 팬미팅 기자간담회에서도 자신과 관련된 미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는 기자의 질문에 미담이란 말 자체를 몰라 기자간담회 MC였던 김이나에게 물어보는 일이 있었으며, 그의 또 다른 유튜브 채널 '재부팅 양준일'의 경우 구독자 애칭이 '도둑자'인데, 티저 영상을 보던 제작진이 양준일에게 직접 물어본 결과, 양준일 본인이 '구독자'란 말을 처음 들어보다 보니 그와 비슷한 단어로 해서 '도둑자'로 정했다고 한다.[68] 훗날 옥탑방의 문제아들에 출연했을 때 이 에피소드를 다시 한번 언급했으며, 김희선에 대해서 몰랐던 이유에 대해 김희선에 대해서 이름은 많이 들어 봤지만, 다른 배우와 매치를 잘못했다고 털어놓았다.[69] 박명수는 2018년 10월 개편을 맞아 해피투게더에서 하차했으나, 이미 이 시기에 양준일은 한국에서의 영어강사 생활을 마치고 미국으로 돌아가 있었다.[70] 성진우의 '너의 얘기를'. 미스터 투의 곡을 리메이크했다. 이후 2021년 5월 24일자 OFFICIAL양준일에 양준일이 이때 당시를 다시 한 번 언급하며 노래를 부르면서 가사를 낭독하는 영상이 올라왔다.[71] 팬들이 자신이 서 있을 수 있는 땅이라서.[72] 양준일이 뒤란 출연 당시에 '여왕님'이라고 하려고 했던 것을 한국말이 서툴러서 '왕녀'라고 했다고 직접 밝혔다.[73] 시원스쿨 광고 메이킹필름 5자 토크 당시, '(양준일에게 있어) 팬의 존재란?'이란 질문에 양준일이 '나의 희망상'이란 답을 하면서 처음 쓰이기 시작했다.[74] 이 때 당시 잡지에 실린 편지에 따르면, 자신의 이러한 행동에 대해 '불량소년이 되었다'하고 언급했다.[75] 서울신라호텔 중식당이었다고 한다.[76] 훗날 진행되었던 팬미팅에서 이 일화가 다시 한번 소개되었으며, 당시 같이 자장면을 먹었던 팬들 중 일부가 팬미팅에 참석하면서 감격스러운 상황이 연출되기도 했다. 해당 영상[77] 이는 같은 교회에 다니던 오순택의 제안으로, 양준일의 어머니는 처음엔 자신이 성모 마리아와 어울리지 않는다며 거절했으나, 오순택의 설득 끝에 성모 마리아 역을 맡았다.[78] 훗날 1집 재발매 논란이 일어나면서 관련 기사들에서 '당시 앨범에 참여한 작곡가'란 부연 설명이 붙자, 팬들은 이를 근거로 이범희 작곡가를 지목했으며, 이 사실을 알게 된 몇몇 팬들 사이에서는 '알지 말아야 할 것을 알아버렸다'는 얘기가 나오기도 했다.[79] 커피도 안 마시는 것으로 알려졌으나, 공식 유튜브에 올라온 영상에서 커피를 마시는 모습이 포착되었다.[80] 당시 인기가요는 지금처럼 가수들 무대와 MC와의 간단한 인터뷰가 아닌, 무대 이후에 토크쇼처럼 MC와 토크하는 시간을 가지기도 했다.[81] 슈가맨과 팬미팅 때 있었던 '가나다라마바사' 무대에서 여자 나레이션 파트를 담당해 양준일과 호흡을 맞췄던 그 댄서이다. 여러 음악방송에서 가졌던 'Rocking Roll Again' 컴백 무대와 재부팅 양준일 할로윈 특집으로 공개된 Dance with me 아가씨에서도 호흡을 맞췄다.[82] 노출있는 옷을 입었을 때에만 보이며, 'Maybe 너와 나의 암호말'에 들어갈 사진을 촬영 당시에는 해당 부위를 반창고로 가렸다.[83] 원래는 그의 시그니쳐 아이템인 에르메스의 숄 색깔에서 유래한 주황색을 사용하려 했으나, 이미 후배 가수그 팬덤의 공식 색이기에 충돌을 피하기 위해 '데님 블루'로 정한 것이라고 한다.[84] 대전 엑스포의 개최를 기념하여 진행되었다. 사실 대전 엑스포는 문서에도 나와 있듯이 워낙에는 1991년에 개최 예정이었으나, 당시 여야에서 당시로서는 역대급 규모의 행사를 개최하는 예산을 편성하는 것에 있어 반대가 심했고 결국 2년 뒤인 1993년에 개최되었던 것이다.[85] 영상을 보면 알겠지만, 양 옆에 쉐딩을 했다. 해당 쉐딩에 대해 본인은 '해골처럼 메이크업을 했다'라고 했으나, 실제로는 박쥐모양으로 쉐딩을 했다.[86] 훗날 KBS joy 랭킹 프로그램 이십세기 힛트쏭에서 MC인 김희철이 이때 당시의 양준일의 모습을 재현했다.[87] 본명은 이덕진. 가수와는 동명이인이며, 한양대학교 신문방송학과 94학번으로, 웨딩잡지 마이웨딩 (2018년 9월 폐간)의 편집장을 역임했다. 참고로 가수쪽은 남성인데 비해 이쪽은 여성이다.[88] 실제 해당 영상에서 양준일이 '팬들은 제니 같은 존재'라 언급한 뒤, 팬들은 자신들을 '제니'라고 칭하고 있으며, 양준일 또한 팬들을 '제니'라고 부르고 있다[89] 다만 그의 어머니가 나중에 한국으로 돌아와 출생신고를 한 사실로 미루어 봤을 때, 베트남에서는 그리 긴 시간을 체류하지 않았을 것으로 추정된다.[90] 실제로 그 다음날 히든싱어6에 김경호가 연예인 패널로 등장하자, 양준일 팬들의 SNS에 '양준일 좀 만나달라'는 글이 올라왔고, 이에 김경호의 팬들이 좋아요를 누르는 등 훈훈한 광경이 연출되었다.[91] 심지어 양준일이 다녀간 과는 관광서비스과로, 이에 팬들 사이에서는 '술도 잘 못하는 사람이 왜 거기 가 있어', '술잔드는 모습이 저리도 어색할 줄이야'라는 반응이 많다.[92] 아내와 공동개발.[93] 해당 영상 업로드를 위해 개설되었다.[94] 37호 가수로 출연.[95] 선곡 이유에 대해서는 양준일이 리베카를 통해 재조명을 받은 것처럼, 자신 또한 싱어게인을 통해 재조명을 받고 싶다는 의지를 보이기 위해 선곡했다고 한다.[96] 50호 가수로 출연.[97] 그녀는 이러한 닉네임을 붙인 것에 대해, 양준일과 자신이 열정과 마인드가 닮았다고 생각하며, 양준일이 슈가맨 출연 당시 식당 서버로 일했던 것처럼 본인도 마트 캐셔 일을 한다고 고백했다. 게다가 둘 다 제 나이보다 젊어보이는 외모인 것도 덤.[98] 공교롭게도 두 사람은 2라운드에서 한 팀이 되었으나, 3라운드에서 상대로 만났고, 결국 태호가 올 어게인으로 승리하며 윤영아가 탈락하고 말았다.[99] 음악에서 음자리표들은 음표가 어떤 위치에 있든지 같은 위치에서 자신의 역할을 하고 있다. 하지만 음자리표들이 높은음자리, 낮은음자리 등 위치에 따라 모양도 다르고 읽는 방법도 다르듯, 사람들이 살면서 어떤 위치에 있어야 할지, 어떤 인생을 그려나갈지에 대해 상관없이 그 무엇이든 모두 나의 음자리표가 될 수 있다는 의미이다.[100] 첫번째 영상은 양준일이 유튜브 촬영 이전에 연습삼아 부르는 것으로 추정되는 영상이며, 두번째 영상은 양준일이 인터넷에서 노래방 영상을 찾은 뒤, 거기에 맞춰서 가사를 낭독하며 부르는 영상이다.[101] 그런데 양준일이 V2 당시 출연했던 도전천곡에서 양준일이 불러야 했던 곡 중에 희나리가 있었다.[102] 양준일이 슈가맨과 뉴스룸 출연 때 '써니 누나'라고 언급했던 그 사람이다.[103] 원래는 '춤꾼 특집'으로 마이클 잭슨으로 분장했으나, 옆에 있던 에 의해 양준일로 바뀌었다.[스포일러] 아버지가 과거 '시대를 앞서가는 가수'로 불렸으나 음악, 패션 등이 당시 대중들에게 전혀 먹히지 않았다는 점, 공연을 해도 호응이 없었고 심지어 계란까지 맞았었다는 점, 가수활동을 접고 영어강사를 한다는 점, 영어강사 활동 중에 엄마를 만나 주인공을 낳았다는 점, 아버지가 쌍커풀 수술을 했었는데 쌍커풀 수술을 한 이유가 속눈썹이 자꾸 눈을 찔렀다는 점 등이 있다.[105] 오타가 아니라 실제로 이름이 '어썸.'이다.[106] 사실 이 소설 내용 중 일부가 실제에서 따온 것이 몇몇 있다. 그 중 하나가 주인공이 태어난 2001년도에 PD가 육아 예능을 제작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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