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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FFE5C3><colcolor=#000000> 스페인-포르투갈 왕국 펠리페 2세의 왕비 오스트리아의 안나 여대공 Erzherzogin Anna von Österreich | ||
이름 | 독일어 | 오스트리아의 안나 (Anna von Österreich) |
스페인어 | 오스트리아의 아나 (Ana de Austria) | |
출생 | 1549년 11월 2일 스페인 왕국 시갈레스 | |
사망 | 1580년 10월 26일 (항년 30세) 스페인 왕국 바다호스 | |
배우자 | 펠리페 2세 (1570년 결혼) | |
자녀 | 페르난도, 디에고, 펠리페 3세 | |
아버지 | 막시밀리안 2세 | |
어머니 | 스페인의 마리아 | |
형제 | 루돌프 2세, 에른스트, 엘리자베트, 마티아스, 막시밀리안 3세, 알브레히트 7세, 벤첼, 마르가레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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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스페인 펠리페 2세의 세번째 왕비이자 네번째 아내로, 펠리페 3세의 어머니다. 신성 로마 제국 황제 막시밀리안 2세와 스페인의 마리아[1]의 장녀다.2. 생애
2.1. 어린시절
스페인에서 태어나 4살 때까지 자라다가 이후로는 오스트리아 대공국의 빈에서 여동생 엘리자베트, 남동생 마티아스와 함께 성장하였다. 아버지 막시밀리안 2세는 어머니 마리아, 그리고 외삼촌이자 이후 남편이 되는 펠리페 2세과 서로 사촌이었다.이름이 같은 친할머니 언너의 외모와 성격을 닮아 쾌활했던 어린 시절의 안나는 아버지 막시밀리안 2세가 가장 사랑하는 딸이였다. 막시밀리안 2세가 업무로 바쁠 때에도 안나가 아프자, 일을 미루고 직접 딸을 돌봤을 정도였다.[2]
2.2. 결혼
신성 로마 제국 황제의 장녀였던 안나는 유럽의 모든 왕가에서 탐내던 1등 신부감이였다. 그러나 오스트리아와 스페인으로 나뉘어진 합스부르크 왕가는 아버지인 막시밀리안 2세와 어머니인 마리아가 그랬듯 두 국가간의 혼인 동맹을 맺을 생각이였다. 이 때문에 안나는 자신의 사촌오빠가 되는 돈 카를로스와의 결혼이 예정되어 있었지만, 돈 카를로스는 끝내 아버지인 펠리페 2세와 대립하다가 탑에 유폐되어 사망했다. 게다가 돈 카를로스의 아버지이자 안나의 삼촌인 펠리페 2세도 3번째 부인인 이사벨까지 출산 후 1년 뒤에[3] 사망하면서, 2명의 어린 딸과 함께 홀아비가 되어 버리자 또 다시 급히 결혼해야만 했다. 결국 안나는 시아버지가 될 뻔했던 외삼촌 펠리페 2세의 4번째 부인이 된다. 결혼 당시 안나는 21살이었고 남편이 된 외삼촌 펠리페 2세는 43살이었다. 안나는 2명의 남동생을 데리고 스페인으로 시집을 갔다.[4]2.3. 스페인의 왕비
이후 안나는 스페인에서 아나라고 불리게 된다. 그녀는 어머니인 마리아가 스페인 출신인 만큼 스페인 관습에 익숙했고 스페인어에도 능숙했다.펠리페 2세는 이사벨 왕비때처럼 어린 후처인 아나를 아끼며 애첩을 들이지 않고 오로지 부인에게만 충실했다고 한다. 아나 또한 펠리페의 3번째 부인이 낳은 2명의 의붓딸들인 이사벨 클라라 에우헤니아, 카탈리나 미카엘라에게도 좋은 새어머니가 되어줬다. 안나는 펠리페 2세와의 사이에서 5명의 자녀를 낳았는데, 그들 중에는 훗날 펠리페 2세의 뒤를 이어 즉위한 펠리페 3세도 있었다. 아나는 활발한 성격의 소유자로 칙칙한 스페인의 궁정을 발랄하게 이끌어 나갔다고 한다.
2.4. 사망
왕비가 된지 10년 만에 아나는 향년 30세의 젊은 나이에 인플루엔자에 걸려 사망했다. 아나가 사망하고 3년 후에는 그녀의 어머니이자 펠리페 2세의 여동생이 되는 마리아가 스페인으로 돌아와서 아나가 낳은 아이와 또다시 왕비를 잃은 스페인 궁정을 돌봤다.펠리페 2세는 안나의 여동생이자 또 다른 조카인 엘리자베트나 마르가레테와 재혼할 의사도 있었으나 상대방측이 거절하여 무산되었다.
3. 가족관계
3.1. 조상
본인 | 부모 | 조부모 | 증조부모 |
오스트리아의 안나 (Anna of Austria) | <colbgcolor=#fff3e4,#331c00> 막시밀리안 2세 (Maximilian II) | <colbgcolor=#ffffe4,#323300> 페르디난트 1세 (Ferdinand I) | |
펠리페 1세 (Felipe I) | |||
후아나 1세 (Juana I) | |||
보헤미아와 헝가리의 언너 (Anna of Bohemia and Hungary) | |||
울라슬로 2세 (Vladislas II) | |||
푸아캉달의 안[5] (Anne of Foix-Candale) | |||
오스트리아의 마리아 (Maria of Austria) | |||
카를 5세 (Karl V) | |||
펠리페 1세 (Felipe I) | |||
후아나 1세 (Juana I) | |||
포르투갈의 이자벨 (Isabel of Portugal) | |||
마누엘 1세 (Manuel I) | |||
아라곤의 마리아[6] (Maria of Aragon) |
3.2. 자녀
자녀 | 이름 | 출생 | 사망 | 배우자 / 자녀 |
1남 | 아스투리아스 공 페르난도 (Fernando, Prince of Asturias) | 1571년 12월 4일 | 1578년 10월 18일 | |
2남 | 아스투리아스 공 디에고 (Diego, Prince of Asturias) | 1575년 8월 15일 | 1582년 11월 21일 | |
3남 | 펠리페 3세 (Felipe III) | 1578년 4월 14일 | 1621년 3월 31일 | 오스트리아의 마르가레테 슬하 3남 2녀[7] |
[1] 남편 펠리페 2세의 여동생이다.[2] 이 시기에는 유아 사망률도 높았고 특히나 왕족 같은 경우 직접적인 육아를 부모가 하지 않고 유모에게 일임하며, 현재의 부모 자식 개념과는 약간 관계가 달랐기 때문에 막시밀리안 2세의 행동은 매우 특별한 일이였다.[3] 둘째 딸 카탈리나 미카엘라의 첫번째 생일 일주일 전에 사망했다.[4] 이 중 한명인 알브레히트 7세 대공은 안나의 의붓딸인 이사벨 클라라 에우헤니아와 결혼하게 된다. 의붓딸이자 사촌여동생인 이사벨 클라라 에우헤니아는 원래 안나의 다른 남동생인 루돌프 2세와 약혼했었는데, 루돌프 2세가 결혼을 안 한다고 내빼는 바람에 닭 쫓던 개가 되었다.[5] 레오노르 1세의 외손녀다.[6] 페란도 2세와 이사벨 1세의 3녀다.[7] 프랑스의 왕비 안, 펠리페 4세, 신성 로마 제국의 황후 마리아 안나, 카르디날 인판테 페르난도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