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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423E3A><colcolor=#fff> 와다 아키코 [ruby(和田, ruby=わだ)] アキ[ruby(子, ruby=こ)] | Akiko Wada | |
본명 | [ruby(飯塚, ruby=いいづか)] [ruby(現, ruby=あき)][ruby(子, ruby=こ)] (이이즈카 아키코)[1] |
한국명 | 김복자 → 김현자 |
출생 | 1950년 4월 10일 ([age(1950-04-10)]세) |
오사카부 오사카시 덴노지구 | |
국적 | [[일본| ]][[틀:국기| ]][[틀:국기| ]] |
직업 | 가수, 탤런트, 사회자 |
소속사 | 호리프로 |
레이블 | 유니버설 뮤직 재팬[2] |
활동 | 1968년 – 현재 |
링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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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일본의 여성 가수이자 방송인.부모가 모두 한국 출신인 재일교포이며 한국명은 김복자(金福子)였다가 지금은 김현자이다. 이 사실은 데뷔한지 40년만에 밝혔다. 본업은 가수로, 현재까지도 음반을 꾸준히 발매하고 있다.
예능 등 방송에서 발언을 할 때 생각을 여과를 안하고 말하는 부분이 있어 구설수도 많지만 데뷔 50년이 넘은 현재 시점까지도 어느정도 감각을 잃지 않으며 가창력, 실력, 예능감, 경력 하나 빠질 것 없는 일본 연예계의 거물급 연예인 중 한 명이다.
2. 경력
그녀의 압도적인 가창력. 대단한 성량을 보여준다. |
오사카에서 학교를 나왔고, 소학교 때 음악에 심취, 15살이 되자 재즈 카페나 고고장을 드나들었다고 한다.
한국계 출신이다. 데뷔 당시 173cm라는 큰 키가 프로덕션 사장의 눈에 띄어 스카우트되었다고한다. 이는 요즘 기준으로도 압도적으로 큰 키이며 1940-50년대생 일본 여성 중엔 키 150cm 미만도 굉장히 많았다. 물론 동세대 한국인 여성들도 150초중반대가 많았으며 160대는 적었다.[3] 스카우트 된 이후에는 데뷔 시기부터 훌륭한 성량으로 실력파로 주목 받았다. 데뷔 시절 붙은 광고 문구가 '일본 리듬&블루스의 여왕' 이었다. 첫 음반은 1968년에 발매.
여담으로 북한 김정은의 모친 고용희의 어릴 적 단짝이었다. 고용희는 태어나서 1963년까지 일본 오사카에서 살았는데, 와다 아키코의 아버지가 운영하는 유도장에서 친해졌다는 이야기가 있다. 한국계 및 재일교포들은 일본인들에 비해 평균 신장이 크다.
와다 아키코의 아버지는 유도장을 운영하였고 어린 그녀를 심히 훈육했다. 반항심에 아키코는 중학생 때부터 담배를 피우고 오토바이로 폭주족을 하는 등, 엇나가는 행동을 보였고, 심지어 그 지역을 주먹으로 평정해 불량배 집단을 구성해 오사카 미나미 일대를 누비고 다녔다고 한다. 여자임에도 '유도로 단련된 완력 + 타고난 피지컬' 덕분에 또래 남자 불량배까지 포섭해 그 지역에서는 굉장히 유명했다고. 고등학교는 다닌지 3일만에 자퇴. 그녀의 어머니는 오사카에서 김치장사를 하였다.
어찌된 영문인지 한국에서는 방송인으로 더 잘 알려져 있지만 사실은 위에 언급한대로 소울, R&B 가수로 유명하다. 2015년 11월에는 WADASOUL 앨범을 발매하면서 샘 스미스의 Stay With Me를 커버한 영상을 유튜브에 올리기도 했다.
2015년 시점의 레이블은 유니버셜 뮤직 재팬. 실제로 70년대를 대표하는 가수로 그 시절 음악을 이야기 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가수이다. 히트곡도 많고 후배가수들에 의해 아직도 리메이크 되는 노래들도 많다.
여성인데도 목소리가 매우 저음이다. 그냥 걸걸한 정도가 아니라 중년 남성 목소리 수준이다.
엄청난 성량으로도 유명한데 98년 한번만 맡아도 가문의 영광이라는 홍백가합전 맨 마지막 순서(오오토리)가 되었을때 마이크 없이 노래를 불러서 박수를 받았고 가창력으로는 까는 사람이 없다.
1970년에 닛카쓰 영화사를 통해 첫 영화 주연을 달성. 또 이 해 NHK 홍백가합전에도 첫 출연했다. 이후에도 쭉 영화를 찍었는데 주로 본인의 캐릭터를 살린 스케반(여자깡패) 배역으로 자주 등장했다.
1973년 니혼테레비의 버라이어티 <금요일 10시! 소문의 채널!!(金曜10時!うわさのチャンネル!!)>에 출연하면서 '갓언니(ゴッド姉ちゃん)'라는 별명을 얻으며 예능인으로도 유명해졌다. 이 별명은 영화 갓파더, 즉 대부를 패러디한 것.
2008년에는 일본 모터보트 경주회 주관으로 경정 대회의 마스코트가 되었다. 같은 해 데뷔 40주년 기념으로 뉴욕에서 콘서트를 열었다.
1970년에 NHK 홍백가합전에 첫 출장, 이후 1978년까지 9회 출장했고, 1986년에 홍백에 복귀한다. 87년, 88년에는 2년 연속으로 홍조 사회를 맡았다. 와다 아키코의 진행능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 수 있는 부분. 그리고 2015년까지 꾸준히 출장하여 출장횟수가 39회로 홍팀 최다였다. 그러다가 2016년 홍팀 최초로 40회 출장이라는 대기록을 눈앞에 두고 홍백가합전에 초대받지 못하는 일이 벌어진다. 이에 와다 아키코는 NHK의 결정을 존중한다고 밝혔고, 이후 그대로 홍백에서 하차했다. 참고로 2016년은 2015년까지 연속48회 출장이라는 대기록을 세운 모리 신이치[4], 39회 출장으로 와다 아키코와 타이 기록을 세운 호소카와 다카시[5], 당해년도에 해산한 SMAP[6]까지 불참하는 등 홍백에 물갈이가 대대적으로 이뤄진 해였다. 홍백 양팀 합쳐 19팀이 물갈이되었다.
3. 비호감 연예인
안티 많은 연예인 하면 독보적으로 거론되는 연예인. 일본 연예계에서 꼰대(上から目線[7])하면 대표적으로 거론되는 연예인이다. 방송에서 나오는 특유의 고압적인 태도와 듣는이를 생각하지 않는 언행때문에 싫어하는 이들이 굉장히 많다. 무려 1968년 데뷔라서 현역 중엔 선배 연예인도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연예계의 마당발로도 유명하며 미소라 히바리, 마츠다 세이코등과 친하다고 알려져 있고 SMAP과도 친분이 있다고 알려져 있다. 사실 어찌보면 당연한게 애당초 마츠다 세이코와 SMAP는 와다보다 아득히 먼 세대에 데뷔한 후배연예인들이다. NHK 홍백가합전같은 곳에서 마주친 회수로만 따져봐도 서로 안면이 없을 수가 없다.게다가 30년 넘게 자신 메인의 방송진행과 여자연예인 예능분야에서는 원탑급이며, 웬만한 연예인들도 그녀 앞에서는 거만하게 못군다고 전해진다. 대략 우리나라에서는 양희은이나 패티김 급 여가수가 예능한다고 생각하면 된다. 굳이 비유하자면 조영남 정도가 딱 지금의 와다 아키코 평판에 합당한 위치라고 봐야할 듯. 의외로 히트곡이 많다는 점, 비슷한 시대에 활동하였고, 대중음악계에 크게 족적을 남겼다는 점과 안좋은 언행과 인격 등등 여러모로 공통점이 많다. 조영남이 지금 시대와서는 각종 구설수 때문에 평판이 안좋아서 그렇지 나름 70년대까지는 알아주는 스탠다드 팝 가수였다. 나이 지긋한 중장년 층은 아직도 조영남을 가창력 좋은 가수로 인식하고 있다. 매해 여는 디너쇼도 관련 순위 1, 2위를 다툴 정도로 꽤 잘 나가는 편.
와다 아키코를 싫어하는 이들은 "주변사람을 자신의 하수인인 양 다룬다.", "부하를 거느리는 듯한 태도", "평소에는 오만하게 굴면서 어쩔 때는 마음 여린 척 하는데 그게 더 꼴뵈기 싫다"등을 이유로 거론한다. 연예계에서 무슨 사건사고가 터질때마다 꼭 한마디 하고 싶어 안달이 난듯이 악담을 하는 편이며, 오히려 칭찬받을 일에서조차 비꼬면서 깎아내리는 언행을 보여주는 지라 뒷담화 하는거 좋아하는 여자라며 까인다. 악담가로 유명한 키스 리처즈, 노엘 갤러거, 쟈니 로튼조차도 와다 아키코와 비교하면 애들 장난 수준의 악담이다. 이들은 악담가로 유명하지만 그 악담들 중에서도 맞는 말들의 비중도 굉장히 많으며, 와다 아키코 수준의 망언 제조기랑 비교하기에는 미안한 수준이다. 무엇보다 와다가 자기 선배나 친한 동료, 후배 등에게는 굉장히 관대한 모습을 보이는 반면에 이들은 그런거 없다.
일례로 2011년도 토호쿠 대지진 당시 거액을 기부했던 팝가수 레이디 가가를 두고 "아니, 돈도 많은 사람이 뭐 그거밖에 기부 안 함??"이라고 막말을 내뱉는 바람에 엄청나게 까였다. 가끔 바른말을 할 때도 있기는 하지만 워낙 망언의 비율이 압도적인지라 이미지에 크게 도움이 된 적은 없다.
일본의 가십지 주간문춘에서 주최하는 '여자가 싫어하는 여자 랭킹'에는 사실상 원탑수준으로 어지간해서는 탑3에서 내려오는 일이 없다. 만약 이 사람을 추월해서 랭크에 등극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백퍼 그 해 무슨 사고를 쳤거나 하는 경우밖에 없다. 일례로 여자들뿐만 아니라 남성들에게도 비호감인 지라 '주간 여성' 에서 주최하는 '남자가 싫어하는 여자 랭킹'에서도 항상 톱3에 등극. 이쯤되면 비호감으로 먹고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
재밌는 건 본인도 이러한 평판에 대해 잘 안다는 점. 인터뷰로 오랜기간 연예계 생활을 하면서 자신을 지적해주던 선배들이 연예계를 많이 떠났고, 이 때문에 언행이 과격해진 듯 하다고 밝힌 바 있다. 물론 이 말을 곧이 곧대로 믿는 사람은 별로 없다. 실제로는 학창시절부터 수많은 부하들을 거느린 남자 불량그룹의 리더였으며, 젊은 시절에도 같은 프로그램에 출연할 예정인 남자 아이돌이 지각을 한 후에 사과도 하지 않고 녹화에 들어가려하자 바로 멱살잡고 팰 뻔했던 걸 스탭들이 겨우겨우 말렸던 일이 있을 정도로 예전부터 불같은 성격으로 악명이 높았다.
그러나 방송에서의 언행을 보면 딱히 알고는 있는데 그다지 시정할 생각은 없는 듯. 오히려 자신의 다혈질적인 성격과 언행을 소재삼아 예능에서 활용하는 경우도 많다. 특히 돗키리 같은 곳에서 이런면모가 잘 드러나는데, 일반적인 스토리를 보면 보통 후배나 주변 스텝진을 마구 꾸짖고 겁주다가 껄껄껄 웃더니 뻥이야!! 하는식으로 마무리 되는 식. 가장 압권은 2007년 2월에 방송했던 드라마 <와다 아키코 살인사건>. 무려 담당 매니저가 제안해서 만들어진 코미디 드라마로, "와다 아키코가 살해당했다면 대체 범인은 누구일까?"라는 내용으로 용의자 수만 1,000명 이상, 그것도 전부 실명 공개로 나오며 직접 등장하는 용의자만 해도 오와라이 Big3부터 미노 몬타, 쿠로야나기 테츠코, 이이지마 나오코, 쿠도 시즈카, 코다 쿠미, 데가와 테츠로, 히사모토 마사미등 거물들이 상당히 많다. 드라마 내에서도 와다에 대한 온갖 불평불만을 늘어놓으며 "근데 이거 방송해도 되는거예요?"라던가 "(이런 말을 했으니) 내일부터 방송국 어떻게 나가냐.."라며 걱정하는 대사들이 나올 정도로 와다를 까는 내용 천지. 이런 걸 만들 정도로 본인도 자신의 악평에 대해 아는데다 그걸 잘 이용하는 편이다. 물론 애초에 와다 아키코와 해당 연예인들이 서로 가까운 사이이기 때문에 이런 꽁트가 가능한 것이다. 대중적인 평판은 최악인데 자기 사람한테는 평판이 좋은 스타일일 수도 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업계에서 위치와 관계없이 대중들의 평판은 싸늘하기 그지없다. 일례로 베츠니 사건 때만 봐도 우리나라에서는 '사와지리 이제 큰일났네' 이런 반응이 많았는데, 실제 일본에서는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 나무라고 있네' 같은 시니컬한 반응만 넘쳐났다. 게다가 이 후 코다 쿠미의 '양수 사건' 때 옹호하는 모습과 대비해서 오만하기만한 줄 알았는데, 사람 가리면서 쉴드치는 졸렬한 여자라며 욕을 바가지로 먹었다. 또 정작 대중들의 반응은 차갑기만 한데, 업계에서 유독 거물인 것 마냥 떠받들어 주는 모양새가 싫다는 의견도 있다. 연예계 커리어가 탄탄한 사람이 와다 한 명만 있는 것도 아니고, 딱히 존경받을 만한 인성도 아닌데도 그녀를 신격화해주는 분위기가 이해 안간다는 것.
경박한 언행 때문에 사이가 안 좋기로 공인된 연예인들도 많다. 이시하라 사토미, 코바야시 사치코, 마츠다 세이코 등이 대표적. 심지어 이 관계들도 대부분 와다 아키코가 먼저 선빵쳐서 사이가 나빠진 케이스들인데 자기 토크쇼에서 엄한 사람 하나 이야기가 나오면 누구누구는 연기를 못한다. 뚱뚱하다 같은 식으로 디스를 하고 다녀서 서로 사이가 나빠지게 된 것이다. 특히 마츠다 세이코와는 한때 엄청난 앙숙으로 연예계 안팎으로 유명했다. 대놓고 '그런 여자랑 상종하기 싫다' 며 일갈하기도. 근데 또 정작 세이코 면전에서는 한마디도 안 했다고 하며, 이 때문에 '일부러 센 사람 앞에서는 말 안하는 거냐' 는 비아냥을 받기도. 이후엔 관계가 좋아졌는지 홍백가합전 같은 무대에서 듀엣도 하고 사이도 좋다고 하긴 하지만.
하지만 경험 많은 불량배 출신이라는 점 때문인지 자기 밑의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의외로 챙겨주는 일면도 있으며, 특히 가수임에도 개그맨들과는 사이가 좋다. 일본 가수들 중에서도 코미디 애호가로 유명하다고 할 정도고 그녀와 친한 걸로 유명한 사람들을 열거할 때 타모리, 아카시야 산마, 비트 타케시의 3인이 가장 먼저 거론되는거나, 그녀의 패밀리[8]라고 불리는 사람들도 데가와 테츠로, 카츠마타 쿠니카즈, 마츠무라 쿠니히로, 컨닝 타케야마, 마스다 오카다, 아리요시 히로이키, 진나이 토모노리 등 개그맨들이 다수를 차지할 정도로 매년 호화롭게 열리는 그녀의 생일파티 에피소드는 이런 개그맨들의 단골 이야기 소재중 하나일 정도.
특히 시마다 신스케[9]의 경우 같은 불량배 출신이라 처음엔 사이가 험악했지만 그의 개그맨으로서의 재능을 알아보고 먼저 나서서 키워준 것은 꽤 유명한 일. 또한 일본 활동 당시 호리프로 소속이었던 조혜련도 와다가 집에 초대해 새해요리를 해주었을 정도로 사이가 좋았다고 한다. 아무래도 개그맨들은 그녀의 경박한 발언도 개그로 받아쳐 주거나 스리슬쩍 커버해 주는데다가 군기 쎄기로 유명한 곳이다 보니 와다의 철권제제도 웃음 소재로 만드는 등 부딪히는 일이 잘 발생하지 않기 때문으로 추측된다. 그 외에도 마음에 드는 후배들이 있으면 집에 데려다 손수 요리를 해 준다. 방송에서 보이는 이미지와는 달리 요리를 좋아하며, 실력도 수준급이라고 한다. 그리고 같이 술을 마시고 놀기를 좋아한다고 하며, 이 정도로 친한 사람의 경우 그 특유의 독설이 발동되지 않는다고 할 정도. 즉 전형적인 자기 부하들만 아끼고, 외부에는 험악하게 대하는 불량배 여두목 타입인 셈.
사실 이런 부분이 아직도 와다 아키코가 방송에서 쓰이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연예계에서는 보기 드문 장신의 여성 + 무식하다 싶을 만큼 거친 언행 + 남 눈치 안보고 막 내뱉는 말과 같은 조합 때문에 오히려 일종의 캐릭터화되어 소비되고 있는 것. 어쨌든 수준낮은 언행과 특유의 꼰대스러움 때문에 대중적인 호감도는 최악을 달리고 있고, 특히 40대 이하의 젊은 세대들은 정말 극악맞게 싫어한다. 이미 90년대 앙케이트 때부터 비호감 순위를 달리던 분이시니 그 때부터 티비에서 봐왔던 사람들은 충분히 싫어할 만도. 애초에 와다의 전성기 자체가 60~70년대 한참 소울 뮤직이 유행하던 시절이라 이후 세대들부터는 호불호가 갈릴 수 밖에 없기는 하다. 반대로 이러한 정서가 어느 정도 통하는 중년세대부터는 그렇게 까지 비호감으로 보는 분위기는 아니다. 오히려 가창력 좋고 노래 잘하는 가수로 평가가 좋다. 실제로 '2020 도쿄 올림픽 개회식에서 보고 싶은 가수 순위' 에서 TOP 10에 등극하기도 하는 등 실력 하나는 인정할 만 하다는 평. 게다가 YONA YONA DANCE라는 곡에서 젊은 세대가 선호하는 현대풍 곡도 소화할 수 있다는 걸 증명했다. 그야말로 악마의 재능.
넷우익 성향이 강한 일본 커뮤니티에서는 그녀의 출신이 재일 한국인이라는 점을 이유로 '역시 한국 놈들은 쯧쯧쯧' 하는 식으로 혐한성 드립을 치는 경우도 있다. 사실 재일 한국인 상에 대한 고정관념(감정적이고 거친 언사 + 불량배 경력을 포함하는 폭력적 성향 + 동양인치고 우람한 체형 등등)을 몸소 구현하는 인물이라서 넷우익들이 씹어먹기 매우 좋은 대상이기도 하다. 그래도 원체 선배인지라 대놓고 까진 못하고 몸을 사리는 것도 사실이다. 일본의 방송국 국장급들이 폴더인사부터 하고 보는 유명 가수 야자와 에이키치보다도 데뷔년도가 빠르다. 야자와하고는 트러블 없이 잘 지내는데, 야쿠자를 제외하면 한국계 일본인끼리는 서로 싸우지 않는다는 불문율도 은근히 있고, 야자와부터 일본 넷우익들이 대놓고 까지 못하는 거물이다.
3.1. 실언 목록
- 우타다 히카루 망언으로 비난받은 직후, 일본 문학상인 2015 아쿠타가와 상을 수상한 개그맨 마타요시 나오키의 작품 <불꽃>을 읽고 "이게 순수문학이라고? 문장만 그럴싸 하고 별론데..." (아쿠다가와 상은 일본에서 최고의 권위 있는 문학상). 하지만 이 발언은 마냥 망언이라고 볼 수만은 없는데, <불꽃>의 아쿠다가와상 수상은 일본 내에서도 논란이 많았다. "그냥 범작 수준인데, 마타요시 나오키라는 개그맨이 쓴 독특한 스토리텔링을 갖춘 작품이라 유명세를 얻어서 상을 수상했다"는 여론이 우세하다. 한국 독자들 사이에서도 역시 호불호가 갈리는 작품이다. 이런 평범한 작품이 어떻게 권위 있는 문학상을 수상했는지 모르겠다는 혹평도 적지 않다.
- 후배 야스다 미사코 결혼식 피로연 현장에서는 "피로연 왜 이렇게 길어? 2시간 안으로 잘라. 존나 재미없네." 라며 빈정거림. 하도 지루하다고 찡얼대는 덕분에 피로연곡 부르기로 했던 밴드 BUMP OF CHICKEN의 축가를 줄여야 했다고. 원래 2곡을 부르려고 했으나 와다가 깽판을 놓는 바람에 1곡만 부르고 말았다고 한다. 이후 출산으로 방송을 쉬었다가 복귀한 야스다 미사코한테 불륜을 주제로 얘기하는 바람에 또 까였는데, 이 때 일부 일본 네티즌은 장훈과 비슷하게 쓸데없는 말만 한다는 비판을 했다. 재일교포 출신이며(장훈은 현재도 한국 국적을 유지하고 있다.) 한 분야의 무시 못할 원로지만 거침없는 언행으로 구설수를 자주 낳는다는 점이 비슷해서 그랬던 것으로 보인다.
- 팝가수 레이디 가가가 도호쿠 지방 태평양 해역 지진 피해 성금으로 많은 돈을 기부하자 "왜 그거밖에 기부 안 해? 돈도 많으면서?" 정작 자신 포함 호리프로 전체 기부금은 가가에 한참 못미치는 액수였다고.
- 사상 최연소로 홍백의 사회를 맡은 마츠 다카코가 마음에 들지 않아 당시 여러 프로그램에서 마츠 다카코를 비난. 실제로 96 홍조는 다카코가, 97 홍조는 앗코가 맡았다. 다만 마츠 다카코는 일본 가부키 4대 명문가 중 하나인 코라이야의 막내딸로, ‘연예계의 공주’나 다름없었기 때문에 다카코 본인의 외모와 능력도 훌륭했으나 일본 연예계가 저자세로 나가던 상황이였다. 일단 가부키 명가의 딸들 자체가 데뷔를 하면 집안 빽으로 고급스럽고 품위있는(?) 커리어를 쌓아간다.
- 오구라 유코를 방송에서 직접 양아치라고 말하고 다녔다고. 신형 텔레비전 때의 발언은 삐소리로 처리했지만 생방송 "임의"는 그대로 흘러 버렸다. 결국 오구라가 눈물을 보인 적도 있다고 함.
- 아야세 하루카가 데뷔 직후보다 훨씬 살이 찌자 대놓고 뚱뚱하다고 망언.
- 고인이 된 배우 이토 토시히토의 타계소식을 알리는 방송에서 웃는 모습을 보여 맹비난 받음.
- 음란 사건을 일으켜 의원을 사직 한 나카니시 가즈요시를 옹호하는 듯한 발언을 했다. 참고로 나카니시 가즈요시는 술에 만취해서 밤중에 지나가는 여성의 맨가슴을 주무르는 추태를 벌였다고.
- 소속사 후배인 아비루 유우가 퀴즈 프로그램에서 "과거에 집단 절도를 벌인 덕분에 그 가게가 폐점했다"고 발언한 사건에 대해 와다는 일절 말하지 않고, 모르쇠로 일관. 참고로 와다 아키코는 본인과 친한 후배나 소속사 식구에 대해서는 아무말도 안하는걸로 유명하다.
- 한참 뉴스에서 납치 문제가 심각하게 보도되고 있던 와중에 "히카와 키요시를 납치합시다!"라고 발언.
- 1989년 여고생 콘크리트 살인사건의 피해자 후루타 준코에 대해 "도망칠 수 있었는데 안 도망 친 거 아니냐" 이라고 말했다.
- 일본의 개그맨 데가와 테츠로와 같은 호텔의 다른 방에 숙박하고 "인간이 추위에 어디까지 견딜 수 있을까 하고 바지 한장에 발코니에서 하룻밤 지내게 강요." 데가와가 휴대폰으로 연락 해오고 도 매니저와 한패가되어 무시하고 그를 동사 직전까지 몰아 넣었다.
- 더 드리프터즈의 리더인 이카리야 쵸스케가 사망하고 난 얼마 이후의, 대표 방송이었던 "8시라고! 전원집합"에서의 드리프터즈의 활약상을 담은 추모방송을 진행했다. 이 때 아키코가 VTR로 출연했다. 이때 나온 아키코를 보고 있는 드리프터즈의 나머지 멤버들과 당시 어렸을 때 해당 방송에서 게스트로 자주 출연한 여성 패널들은 전부 벌레 씹은 표정을 짓고 있었으니, 아키코가 그들에게 어떻게 보이는지 알 만하다. 그런데 아키코가 전원집합에서 자신이 게스트로 출연했던 방송분의 녹화분을 보고 난 후 "이카리야의 빈 자리는 내가 대신 맡았으면 좋겠다"라고 발언해서 관객은 물론 출연진 전부 싸늘해졌다.
- 인기 보이그룹 SMAP가 해체 소식을 알리자 "왜 하필 2016 리우 올림픽으로 중요한 이 시기에 해체를 하냐?" 라며 비꼼. 거기다 리더 나카이 마사히로 에 대해서는 "여우같고 교활하다" 라며 대놓고 저격하였다. 하지만 둘은 97년도에 홍백 사회를 맡았다.
- 2015년 젊은 나이로 숨진 아나운서 '카와시마 나오미' 의 소식이 본인 레귤러 프로그램인 "앗코에게 맡겨둬!" 의 뉴스 랭크 코너에 올랐지만 본인은 애도의 말을 하나도 하지 않아 논란.
4. 기타
}}} ||<width=25%> ||- 2020년 예능 프로그램 '수요일의 다운타운'에서 일본 유명인 인지도 랭킹을 실시했는데 무려 6위를 기록했다. 여성 부문 2위. 여성 1위는 쿠로야나기 테츠코. 가수로 한정하면 와다 아키코가 인지도 1위다.#
- 2000년에 교통사고를 당해서 병원에 입원했는데, 구급대원에게 30대 전반 남자로 오인받았다고 한다. 사실 그런만 했던 게, 신장 173cm는 우리나라 여성 기준으로도 굉장히 큰 장신에 속한다. 거기다 일본 20~30대 남성 평균 신장이 170cm 남짓이다.
- 사진은 1973년도 앨범 자켓. 여담으로 걸그룹 디바의 멤버 비키를 닮았다.
- 엄청난 독설가인데다 특유의 거칠고 과격한 입담으로 유명하지만 선배인 나카오 미에(후쿠오카현 키타큐슈시 출신의 배우) 한테는 쪽도 못 쓰고 발리는 듯. 실제로 일본 연예계에서 독설로 유명한 이들도 나카오 미에와 와다 아키코가 붙으면 나카오 쪽이 압승이라고 점칠 정도. 밑의 사와다 켄지가 더 타이거스로 GS붐 속에 막내로 데뷔했을 때, 나카오 미에는 GS계의 선두주자이자 엄청난 대선배인 더 스파이더즈와 함께 와다 아키코 데뷔 한참 전에 TV에서 같이 공연하기도 한 대선배로, 애초에 와다가 기수나 연배상으로 덤빌 짬 자체가 못 된다.
- 물론 쿠로야나기 테츠코와 같은 대선배 앞에서는 얌전해진다. 실제로 쿠로야나기 테츠코가 데뷔하던 시기에 와다는 3살이었다. 비공식적으로 와다가 얽힌 트러블에 쿠로야나기 테츠코가 중재를 서서 넘어간 적도 꽤 있는데 데뷔 70년이 다 되어가는 쿠로야나기 테츠코에게 일단 짬으로 덤빌 수 있는 연예인은 현존하는 일본 연예인 중에 거의 없기도 하며 쿠로야나기 테츠코는 개인 에세이 창가의 토토에서 보여지는 2차 세계대전때의 체험과 도쿄 대공습으로 아오모리까지 피난가 본 경험에다 재일 한국인들을 이웃으로 지낸 경험도 있고, 제도권의 군국주의 교육과 거리가 먼 교육을 시행하던 대안학교 토모에 학원의 졸업생인지라 진정한 의미의 친한파 중 하나다. 매년 정월마다 쿠로야나기와 와다는 같이 파칭코를 하는데 주로 쿠로야나기가 이긴다.
- 쿠로야나기 외에도 1960년대 일본 그룹사운드의 혜성이었던 원로가수 사와다 켄지(우리나라에서는 재일동포로 잘못 알려진 적도 있다)앞에서는 특히 얌전해진다. 젊은 시절의 사와다가 워낙 정의감이 투철한 사람이다 보니 불량배 출신의 와다에게 항상 주의를 주고 군기를 잡아서 나이가 든 지금도 그 앞에서는 꼼짝을 못한다고.
- 2007년에 출연한 예능 はねるのトびら에서 쿵쿵따와 비슷한 게임을 하는데, 제시어를 주면 두 사람이 리듬을 타면서 번갈아가며 제시어의 끝말에서 이어지는 단어를 말해야 하는 게임이다. 예를 들어 제시어가 おせち(오세치)라면 'おせち おせち おせチーズ(오세치 오세치 오세치즈). 이 때 제시어는 각각 おせち, おもち인데 와다 아키코가 단어로 ちんこ를 2번이나 말 한 일이 있다. 이게 10년 뒤인 2017년 3월에 갑자기 니코동 필수요소에 올라 며칠 만에 100여 개가 넘는 영상이 만들어질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일명 おせちんこ(오세칭코). #
- 호탕하다 못해 폭력적으로 보일 정도로 당당한 성격인데 비해, 의외로 동물을 무서워 한다. 벌레나 파충류는 물론이고 개도 무서워 한다고.
- 의외로 외로움을 잘 타는 성격이라 친한 후배들을 집으로 불러들여 호탕하게 먹고 마시는 걸 즐긴다고 한다. 문제는 술을 아주 좋아하는데 비해 술이 그리 강한 편은 아닌지라 높은 빈도로 필름이 끊긴다고. 게다가 해당 후배들의 이후 증언에 의하면 연예계에 돌아다니는 와다 공포전설의 상당수(그리고 피해자는 높은 빈도로 데가와 테츠로)가 이 필름 끊긴 후에 벌어진 일들이라는 듯.
- 후배들이 도시전설처럼 이야기 하다가 나중에 본인이 직접 사실임을 인증했던 사건 하나가, 처음 CD가 등장했을 때 "이걸 대체 어떻게 열라는 거야?"라며 방법을 몰라서 결국 '''주먹으로 케이스를 깨고 CD를 꺼냈다"라는 것이 있다. 워낙 단단히 밀봉되어 있어서 일반적인 식품포장들 처럼 찢거나 깨서 열어야 하는 것으로 오해했다고 한다. 그래도 플라스틱 케이스를 손으로 깨는건 본인도 아팠기 때문에 이후엔 가위 같은 걸로 깼다고 하며 집에 놀러온 후배가 "선배, 뭐하시는 겁니까?!"라며 놀라 알려준 후에야 제대로 여는법을 터득했다고.
- 데뷔 초기에 연예계에서 당한 이지메 때문에 마음고생을 심하게 했다고 밝혔다. 그녀가 데뷔했던 60년대 일본 연예계는 지금처럼 소속사가 다양하지도 않았고 활동하는 연예인 역시 많지가 않아, 업계풀이 굉장히 좁았다고 한다. 자연히 선후배 간의 서열관계가 매우 엄격했고 짬 안되는 후배가 온갖 수모를 당하는 일은 흔한 일이었다고 한다. 아무리 성깔 드럽고 센 와다라고 해도 업계에서 찍히면 가수활동에 지장이 생기는 건 당연한 일이다. 완력으로야 다 죽여놓는다 쳐도, 그 바닥에서 살아남기 위해 일부러 성질을 죽이고 살았다고 보는게 좋을 듯. 게다가 대놓고 외모를 지적당하는 일은 기본에다가 온갖 수모를 겪고 울면서 화장실 거울 앞에서 메이크업을 하는 일도 다반사였다고 한다. 심지어 72년 '그 종을 울리는 것은 당신' 이라는 노래로 최우수상을 수상했을 때는 시상식 직전에 축하화환을 누군가 흰 국화꽃으로 바꿔버렸다고 한다. 일본에서도 국화꽃은 장례식에서 조문할 때나 쓰는 꽃이라는 인식이다. 그럼에도 아무것도 모르고 화환을 그냥 받아버렸다고 한다. 정작 수상한 게 즐거워서 본인은 눈치도 못 채고 있었는데 집에 와서 부모님이 '너 왜 국화꽃 들고 있니?' 라고 물어봐서 알았다고.
- SASUKE에도 관심을 가졌는지 38시즌과 39시즌에는 앗코 군단 아카토라라는 팀을 만들어서 2시즌간 도전자들을 지원해준 적이 있었다. 촬영 당일에는 본인도 응원차 합류. 그러나 원래부터 사스케 고인물로 유명했던 이사 요시노리를 제외하면 전원이 1st 스테이지를 탈락하면서 별다른 소득은 없었다. 이후 40시즌도 참여를 준비했던 것으로 보였으나 40시즌에는 나오지 않아 팀이 해체된 것으로 보인다. 해체 후 열린 사스케 40시즌에는 앗코 군단 출신 중 이사 요시노리만이 개인 자격으로 참가하였다.
- 굉장히 드센 성격이지만 의외로 남편과 금슬이 좋다. 실언으로 욕을 퍼먹는 그녀지만 개인 결혼생활로는 잡음이 난적 없다. 1981년 결혼한 남편과 지금까지 결혼생활을 하고 있으며, 방송에서도 종종 언급한다.
[1] 방송에서 활동하는 이름은 和田アキ子이지만 귀화와 결혼, 재혼을 할 때마다 이름이 다르다. 귀화 전에는 金海福子(가네우미 후쿠코). 귀화 후에는 和田現子(와다 아키코). 현 남편과 재혼 후에는 남편의 성을 따라 飯塚現子(이이즈카 아키코)로 읽는다.[2] 2021년 4월, 테이치쿠 엔터테인먼트에서 유니버설 뮤직으로 이적.#[3] 아무리 커도 150후반이나 160초반이었는데 이정도도 드물었다.[4] 이미 2015년에 "올해가 마지막 출장"이라고 선언했다.[5] 홍백에 세대교체가 필요하다며 NHK에서 출장교섭이 오기 전에 사퇴를 선언했다.[6] 1997년에 해산한 X-JAPAN과 1999년에 해산한 SPEED의 경우 그 해 홍백에 출연한 바 있다. 이미 해산한 그룹을 마지막으로 볼 수 있는 기회여서 시청률을 올리는 효과가 있었다.[7] '우에카라 메센'은 직역하면 "위에서 아래를 내려보는 듯한 시선"이라는 의미로 주로 거만하고 고압적인 태도를 뜻하는 의미. 의역한다면 "깔보는 시선" 정도.[8] 일본에선 XX패밀리, XX군단 등의 이름으로 유명인 한명을 중심으로 뭉쳐 교류하는 집단을 부르는 경우가 있다.[9] 87년에서 90년까지 니혼테레비의 노래의 톱 텐(歌のトップテン)의 mc를 맡았다.[10] 1978년 TBS 가요 프로그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