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0-13 22:36:12

전폐제(유송)

유자업에서 넘어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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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3F51BA><colcolor=#ece5b6>
유송 제5대 황제
전폐제 | 前廢帝
파일:유송전폐제.webp
출생 449년 2월 25일
유송 팽성군 서주현
(現 장쑤성 쉬저우시)
즉위 464년 7월 12일
유송 단양군 건강현
(現 장쑤성 난징시)
사망 465년 11월 30일 (향년 16세)
유송 단양군 건강현 화림원 죽림당
(現 장쑤성 난징시)
능묘 단양군 말릉현 남교 단서
재위기간 유송의 황태자
453년 5월 20일 ~ 464년 7월 12일
유송의 황제
464년 7월 12일 ~ 465년 11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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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3F51BA><colcolor=#ece5b6> 본관 팽성 유씨
자업(子業)
부모 부황 세조
모후 문목황후
형제자매 28남 8녀 중 장남
배우자 노황후, 헌황후
아명 법사(法師)
제호 전폐황제(前廢皇帝)
연호 영광(永光, 465년)
경화(景和, 46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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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생애
2.1. 어린 시절2.2. 패륜적 불효2.3. 근친 겁탈 패륜2.4. 근친 능욕 패륜2.5. 근친 살해하다 자기도 죽다
3. 평가4. 매체에서의 등장5. 둘러보기(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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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중국 남북조시대 유송(劉宋)의 제5대 황제. 휘는 유자업(劉子業). 자는 법사(法師). 효무제의 장남으로 사치와 향락에 빠져 약 1년여 동안 지속적인 악행을 선보였다. 폐위됐기 때문에 묘호와 시호가 없어서 폐황제(廢皇帝)로 부른다. 송명제 유욱의 아들도 폐제가 됐기 때문에 유자업을 전폐제, 명제 유욱의 아들 유욱을 후폐제로 구별한다.

짧은 치세 동안 초기 5개월간은 효무제의 대업, 중반 465년 음력 정월부터 8개월간은 영광(永光), 후기 2개월간은 경화(景和)라는 연호를 사용했다.

실제 16살이 저렇게 수염이 많이 나고 늙어 보이게 생겼을 리는 없으니 저 초상화는 후대에 폭군이자 괴상한 인물임을 강조하기 위해 과장되게 묘사한 것으로 보인다.

2. 생애

2.1. 어린 시절

원가 26년(449년) 정월에 효무제 유준과 왕헌원(王憲嫄)[1] 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났다. 4살 때 큰아버지 유소의 난으로 감옥에 갇혀 죽을 뻔했다가 난이 평정된 후 구출되었다. 어릴 때부터 독서를 좋아해 지식이 많고 똑똑했으며 문장도 곧잘 지었다. 당시 그는 사서를 즐겨 읽었다고 하지만 정작 전대의 선행은 배우지 않았고 오히려 조조가 만든 공식 도굴꾼 자리인 발구 중랑장[2]과 모금 교위[3]에 관심을 뒀다고 한다. 실제로 계모이자 당고모인 은귀비(殷貴妃)의 무덤을 파헤치고 부장품을 싹쓸이하기도 했다.

2.2. 패륜적 불효

그는 눈매가 날카롭고 입이 튀어나왔으며 목이 긴 흉하고 기이한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 성질이 급하고 실수가 많아 아버지인 효무제 유준의 질책을 많이 받았다. 이에 황제가 된 후 보복심에 아버지의 능을 파헤치려고 하다가 신하들의 강력한 간언으로 그것은 관두고 결국 찌질하게 아버지를 코주부라고 욕하며 을 능[4]에 뿌리고 돌아갔다.[5] 뜻을 이루지 못한 그는 당고모이자 효무제의 총애를 받았던 계모 은귀비의 묘를 파헤쳐 버렸다. 다만 의외로 정상인 같은 언동도 이때 했다. 그는 화공에게 역대 황제의 초상화를 그리라고 명했는데 초상화가 완성되자 둘러보기 시작했다. 아버지 효무제 유준은 초대 황제인 무제 유유에 대해 디스만 했으나 그는 유유가 천자 몇 명의 목을 딴 대단한 영웅이라고 추켜세웠고 문제 유의륭에 대해서도 자식에게 당한 것만 빼면 훌륭한 인물이라고 하는 등 그야말로 인생을 고려해 보면 놀라운 언행도 몇 가지 했다. 다만 그렇게 하면서도 아버지 유준의 코가 붉게 칠해지지 않아 고증이 덜 되었다면서 붉게 칠하라고 지시하며 욕하는 등 뭔가 갑자기 정상인 같아 보이는 행동을 하다가 끝을 보면 역시나였다.[6]

그런 다음 자신의 이복동생이자 육촌 동생이기도 한 효무제 유준의 8남 유자란(劉子鸞)에게 사약을 내려 죽였는데 이유는 유준이 사랑하던 아들이었기 때문이다. 유자란은 유준과 은귀비의 근친상간으로 태어난 아이였다. 효무제 유준은 숙부인 남군왕(南郡王) 유의선(劉義宣)의 딸이자 사촌여동생이었던 유씨를 취한 다음 은씨로 성씨를 바꿨는데 그렇게 사촌을 후비로 삼은 뒤 낳은 아들이 유자란이었다. 유자란은 당시 10살도 되지 않은 나이였지만 죽음을 앞두고 "내세에는 황가에서 태어나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고 말했다. 어떻게 보면 유송의 마지막 황제인 순제 유준의 상황과 매우 비슷하다.

그러면 그가 생모인 태후에게 효도했느냐면 그것도 아니다. 그가 즉위한 지 몇 달 뒤에 어머니 왕씨(왕헌원)가 아파서 그를 불렀는데 그가 "환자들이 있는 방에는 귀신들 천지라는데 내가 어떻게 가겠는가?"라면서 가지 않자 왕씨는 "칼을 갖고 와서 내 배를 가르거라. 내가 어떻게 저런 비린내나는 애를 낳았는지!"라며 분통을 터뜨리다가 얼마 뒤인 464년 음력 8월 23일에 사망했다. 465년, 효무제 때의 중신인 대법흥(戴法興)마저 축출하고 곧 그를 죽였으며 행실이 꺼릴 것 없이 더욱 방자해졌다.

2.3. 근친 겁탈 패륜

그에게는 아내 하영완(何令婉)이 있었는데 아버지는 하우(何瑀)였으며 어머니는 무제 유유의 딸 예장공주 유흔남(劉欣男)이었다. 그가 유유의 증손자이므로, 유유의 딸의 딸인 외손녀와 혼인한 것은 5촌 당고모하고 혼인한 것이다. 예장공주는 원래 서교와 결혼했다가 서교가 요절하자 하우와 재혼했으며 하매와 하씨를 낳았다. 하매의 아내가 유의륭의 친딸인 신채공주[7]인데 그에 의해 처남이자 당숙인 하매는 살해당하고 당숙모이자 친고모인 신채공주는 그의 첩이 되었다.

그런데 하영완은 대명 5년(461년)에 죽어서 남편이 황제가 된 후 헌황후로 추존되었다. 따라서 그는 즉위 당시 본처가 없었다. 황후가 없는 황제인 그는 아버지보다 도를 넘어선 황음무도한 생활을 했는데 송문제 유의륭의 10녀이자 효무제 유준의 친동생인 친고모 신채공주[8]겁탈하고 궁중의 한 여종을 살해해서 신채공주가 죽었다는 소문을 내며 장사까지 치렀다. 물론 진짜 신채공주는 귀빈으로 삼아 성을 사씨(謝氏)로 고쳤으며 후환을 방지하기 위해 고모부 겸 당숙부 겸 前 처남 하매는 자신을 죽이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그를 죽이고 하매가 세우려고 했던 유자훈을 사사하려고 했다. 신채공주가 그 후 어떻게 됐는지에 대해서는 기록이 없다.

게다가 일찍이 친누나 산음공주(山陰公主)도 근친상간 했다.[9] 어느 날 "폐하는 육궁에 후궁이 많으면서 신은 겨우 부마 하나밖에 없습니다. 이는 매우 불공평합니다."라는 식으로 산음공주가 불만을 품자 그는 산음공주에게 면수, 즉 아름다운 남첩 30명을 선물했다. 산음공주는 남편 하집이 미남이었고 남첩 30명이 생겼음에도 불구하고 만족하지 못했는데 의원을 유혹해 음욕을 채우고 당대의 미남이었던 이부랑 저연(褚淵)을 유혹했다. 문제는 저연은 남군공주의 부마였는데 이 남군공주는 산음공주의 고모였다. 즉, 저연은 산음공주의 고모부였다.

차마 고모부를 대놓고 유혹하긴 그랬는지 그녀는 조서를 내려 저연이 무조건 자신에 집에 오도록 했다. 산음공주는 저연이 오자 끊임없이 유혹하고 온갖 추태와 교태를 다 부렸지만 저연은 당대의 인재답게 유혹을 거부했고 결국 포기했다. 이를 들면서 저연이 고결한 인물이라고 평하는 사람도 있지만 저연도 나중에 소도성이 찬탈할 때 그에게 붙어서 온갖 추태를 부렸다. 이런 음란한 산음공주는 전폐제가 죽은 후에 바로 처형됐는데 이때 남첩 30명도 같이 순장되었다. 당시 산음공주의 나이는 만 19세에 불과했다(446-465).

산음공주의 외동딸이 바로 제나라 울림왕 소소업의 음란한 황후 하정영이었다. 하정영이 산음공주가 아니라 하집의 첩 송씨의 소생이라는 설도 있지만 공식적인 기록에 따르면 산음공주의 소생이었다.

그는 유휴인의 어머니이자 할아버지의 후궁이었던 양씨[10]에게 온갖 음란한 짓을 하도록 강요했다. 즉, 의붓할머니인 어른을 강간교사한 것이다. 좌우 심복들에게 양씨를 범하도록 했는데 이때 그들 중에서 유도륭이 환심을 얻으려고 온갖 추악한 짓을 하며 양씨를 강간했다. 거기에 유휴인의 아내 은씨는 병이 들어 진찰하려고 미남 의원 조번이 오자 병 치료는 제쳐두고 조번과 간음했지만 이게 누설되자 조번은 죽임을 당했다.

2.4. 근친 능욕 패륜

제3대 문제 유의륭의 9남 의양왕 유창은 송 황실의 종친 가운데 가장 강한 인물이었다. 유창의 자는 '휴도'로, 원가 13년(436)에 문제 유의륭과 용화 사씨 사이에서 9남으로 태어났다. 원가 22년(445) 3월에 의양왕에 봉해지고 식읍 2,000호를 받았다. 원가 27년(450), 임보장군, 남패태수, 하비태수에 임명되었으며 원가 30년(453)에는 동중랑장이 더해졌다. 효건 원년(454) 8월에는 이복형인 제4대 효무제 유준이 동양주 자사로 임명했다.

대명 8년(464) 8월, 유자업이 즉위했을 때 정북장군, 서주 도독, 연주, 남연주, 청주, 기주, 유주, 예주를 감독하며 서주 자사가 더해졌으니 권세가 막강했다. 유자업이 황제가 되자 유창은 조카의 즉위를 경하하기 위해 마땅히 수도로 가려고 했지만 유자업은 오직 자신의 힘을 과시하기 위해 숙부 유창을 죽이려고 했다.

그리하여 경화 원년(465) 8월, 유창은 가만히 죽기 싫어서 수도 건강에 가지 않고 그날로 자신의 가족을 버린 채 홀로 적국 북위로 망명했다. 유창이 망명한 후 남겨진 유창의 처 오씨와 아들 유사원, 유회원은 모두 죽임을 당했다. 유창은 북위로 망명하고 나서 북위 문성제(북위 제5대 황제)에 의해 단양왕에 봉해지고 정남 장군에 임명되었으며 문성제의 딸 무읍공주 탁발씨와 결혼해 부마 도위가 되었다.

유창은 무읍공주가 죽자 건흥장공주를 다시 아내로 맞아들였고 건흥장공주가 죽자 다시 평양공주를 아내로 맞아들였다. 태화 17년(493), 북위 효문제(문성제의 손자로 헌문제의 아들)는 유창을 제공으로 봉하고 송왕의 칭호를 더했으며, 태화 18년(494) 8월에는 그를 대장군에 임명하였다. 유창은 태화 20년(497) 6월에 팽성에서 62세 나이로 숨을 거뒀으며 '명'(明)이라는 시호를 받고 태부, 영(領) 양주 자사가 추증되었다.

유창은 내란을 피해 적국 북위로 망명해서 선전용으로 이용당했지만 유창의 자손들은 계속 살아남아 유송이 멸망하고 고제 소도성에 의해 유씨가 모두 도륙당한 상황에서도 대를 이어 나갔다. 유창은 북위에서 다시 가정을 꾸려 유승사, 유문원, 유휘를 낳았으며 유창의 적자 유승사가 유창의 작위를 잇고 문성제의 딸 팽성장공주와 결혼하여 부마 도위가 되었다. 그러나 이 시점에 북위도 혼란해지기 시작하여 유창의 자손들은 정쟁에 휘말리다가 가문이 몰락해 이후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없게 되었다.

그런데도 그는 정신을 못 차리고 일부러 만만하거나 의심스러운 숙부들을 골라 함부로 대했는데 숙부들을 벌거벗기고 참대 나무로 만든 우리에 가두어 머리만 내밀게 한 적도 있었다. 그들을 저울로 재기도 하고 곤장을 치기도 했고 나무 그릇에 담은 여물을 먹게 하기도 하는 등 온갖 모욕과 능욕을 가했다. 그 숙부들이란 바로 제3대 문제 유의륭의 11남 상동왕(湘東王) 유욱(劉彧), 유의륭의 12남 건안왕(建安王) 유휴인(劉休仁), 유의륭의 13남 산양왕(山陽王) 유휴우(劉休祐), 유의륭의 8남 동해왕(東海王) 유의(劉褘)였다.

그는 그들을 순서대로 각각 돼지왕, 살인왕, 도적왕, 나귀으로 봉했다. 유의는 머지않아 석방되었으나 유욱, 유휴인, 유휴우는 계속 대나무 우리에 갇혀 있었다. 이들이 이렇게 엄청난 칭호를 받은 이유가 있다. 돼지왕 유욱은 매우 뚱뚱해서[11], 살인왕 유휴인은 매우 인상이 험악해서, 도적왕 유휴우는 매우 탐욕스러워서, 어리석어서 다른 황족들도 무시한 나귀왕 유의는 매우 어리버리해서였다.

그는 숙부들 중에서도 특히 유욱을 가장 미워했다. 자기 첩 중 하나가 아들을 임신했다는 소식을 듣게 되는데 유자업은 그의 첩들을 심복들과 공유(?)했기 때문에 아기가 유자업의 자식인지, 심복들 중 누군가의 자식인지 알 수 없었다. 그 뱃속의 아기를 황태자로 삼고 기념잔치에 쓸 제물 겸 유희 유욱을 잡으려고 했다. 이에 유휴인이 "태자가 태어나야 기념으로 돼지를 잡는 겁니다."라고 말하자[12] 유자업은 "오오, 그런가? 그럼 아껴두었다가 나중에 잡아먹어야지."라며 잡는 것을 유보했다.

2.5. 근친 살해하다 자기도 죽다

그러다가 고조 무제 유유의 4남이자 작은 할아버지였던 강하왕(江夏王) 유의공(劉義恭)을 추대하려던 음모가 포착되자 유의공을 죽여 시체를 8조각으로 자르고 배를 갈랐으며 눈알을 뽑아 꿀에 넣어서 '귀목종'(鬼目粽; 귀신 눈깔떡)으로 만들었으며 유의공의 남은 네 아들까지 모두 죽였다. 유의공은 아들이 16명이었는데 이전에 원흉 유소[13]에게 12명의 아들을 잃었다. 따라서 이때 유의공의 대는 끊기고 말았다. 대대로 세 번째 아들이 황제가 됐다는 이유로 종실의 셋째 아들들을 골라 죽이기도 했다. 실제로 유자업의 할아버지 문제 유의륭과 아버지 효무제 유준이 셋째 아들이다.

이렇게 기괴귀축한 삶을 살던 유자업의 최후도 황당했다. 어느 날 꿈속에서 어떤 여자가 자신을 저주하자 그 여자와 비슷한 여자를 잡아 죽였지만 그의 계속된 폭정에 참다못한 유욱과 신하들이 그를 죽이기로 결정했다. 그 와중에 유자업은 죽림당에서 궁녀들과 알몸 숨바꼭질을 하고 있었는데 이때 궁녀 1명이 거부하자 바로 그녀를 참수하기도 했다.

유자업은 꿈에서 본 그 여자 귀신을 보고 귀신 잡으러 다니다가 유욱과 신하들의 지시를 받고 대기하고 있던 환관 수적지와 그의 부하들에게 살해되었다. 수적지가 근위병들이 없는 틈을 타 숨겨두었던 칼을 빼들어 죽이려고 하지만 유자업이 도주하여 실패했다. 그러나 사전에 지시를 받은 수적지의 부하들이 유자업을 붙잡았고 유자업은 바로 수적지의 칼에 찔려 죽었다. 유자업은 죽은 뒤 단양 말릉현 남교단 서쪽에 매장되었다. 여기서 알아둬야 할 것은 유자업의 이 폭정들은 겨우 1년 안에 이루어진 것들이며 그가 죽었을 때의 나이는 고작 중학교 3학년 정도의 나이인 16살이었다는 점이다.

3. 평가

무왕이 나열한 주왕의 잘못은 폐제의 잘못의 만 분의 일도 되지 못하며, 곽광이 기록한 창읍왕의 잘못은 폐제의 잘못에 비한다면 보잘 것 없다. 가령 중간 정도의 재주를 지닌 군주라 하더라도 이 중 하나의 죄라도 있어서 사직을 무너뜨리고 종묘를 더럽히기에 충분한데, 하물며 두 가지의 죄악을 모두 한 사람에게 집중하겠는가! 폐제가 죽은 것 또한 다행이로다.
― 《송서》의 <전폐제 본기> 사론

중국사에서도 손에 꼽히는 암군이자 폭군으로 평가의 여지조차도 전혀 없다. 어지간한 암군에게조차도 안 붙이는 폐제를 받은 것만으로도 그의 진가를 알 수 있으며 전폐제에 이어 후폐제까지 등장하면서 소도성이 유송을 멸망시키고 남제를 건국할 때 아무도 거기에 이의를 제기하는 게 없을 정도였다.

4. 매체에서의 등장

2018년 드라마 봉수황(鳳囚凰)에서는 배우 장일걸(張逸傑)이 유자업을 맡았다. 유자업의 만행이 잘 묘사되어 있는 편이지만 방송 가능할 수준으로 수위를 낮추다 보니 실제 역사에 비하면 너무 심하게 미화되어 있다. 극초반에만 등장한다.

역사적 상황과 비슷하게 누나 산음공주의 남첩 요구를 잘 들어주는 등[14] 누나바라기라고 할 만한 면모를 보이지만 사람 죽이기를 자기 멋대로 하는 등 실제의 폭정을 잘 묘사한 편이다. 어릴 때 은귀비에게 학대를 너무 심하게 당해서[15] 자신을 도와주지 않은 친족들, 신하들, 궁인들에게 갖고 있는 복수심이 엄청나다. 사실상 누나 빼고 전부 복수의 대상일 정도이다. 여주이자 누나인 산음공주는 이러한 그를 개과천선시키려 노력하기도 한다.

퇴마식 도중에 반란이 일어났고 도망쳤지만 결국 5명의 병사들에게 칼로 난도질당해 죽는다. 그 후 유욱이 화풀이로 칼로 유자업의 시체를 난도질했고 시체를 갈아서 돼지의 먹이로 주게 했다.

5. 둘러보기(계보)

송서(宋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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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준(劉駿) 유자업 유욱(劉彧)
9권 「후폐제기(後廢帝紀)」 10권 「순제기(順帝紀)」
유욱(劉昱) 유준(劉準)
※ 11권 ~ 40권은 志에 해당. 송서 문서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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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권 「은일전(隱逸傳)」
대옹 · 종병 · 주속지 · 왕홍지 · 완만영 · 공순지 · 유응지 · 공기(龚祈) · 적법사 · 도잠 · 종욱지 · 심도건 · 곽희림 · 뇌차종 · 주백년 · 왕소 · 관강지
94권 「은행전(恩倖傳)」
대법흥 · 완전부 · 왕도륭 · 양운장
95권 「삭로전(索虜傳)」 96권 「선비토욕혼(鮮卑吐谷渾)」
삭로 토욕혼
97권 「이만전(夷蠻傳)」
임읍국 · 부남국 · 가라타국 · 가라단국 · 반황국 · 반달국 · 사파파달국 · 사자국 · 가비려국 · 고구려 · 백제국 · 왜국 · 형옹주만 · 예주만
98권 「저호전(氐胡傳)」 99권 「이흉전(二凶傳)」
구지 · 저거몽손 유소(劉劭) · 유준(劉濬)
100권 「자서전(自序傳)」
심약
(1) 본명이 사유(謝裕)로 유유의 휘를 범하여 자인 경인(景仁)으로 표기되었다.
(2)본명이 저유지(褚裕之)로 유유의 휘를 범하여 자인 숙도(叔度)로 표기되었다.
(3) 본명이 장유(張裕)로 유유의 휘를 범하여 자인 무도(茂度)로 표기되었다.
(4) 본명이 왕유지(王裕之)로 유유의 휘를 범하여 자인 경홍(敬弘)으로 표기되었다.
(5) 본명이 왕욱(王彧)으로 유욱의 휘를 범하여 자인 경문(景文)으로 표기되었다.
||<tablealign=center><tablebordercolor=#3f51ba><tablebgcolor=#3f51b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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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 style="margin: -0px -10px; margin-top: 0.3px; margin-bottom: -6px"
{{{#ece5b6 {{{#!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min-width:25%"
{{{#!folding [ 본기(本紀) ]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7px 10px"
1권 「송본기상(宋本紀上)」 2권 「송본기중(宋本紀中)」 3권 「송본기하(宋本紀下)」
유유(裕) · 유의부 유의륭 · 유준(駿) · 유자업 유욱(彧) · 유욱(昱) · 유준(準)
4권 「제본기상(齊本紀上)」 5권 「제본기하(齊本紀下)」
소도성 · 소색 소소업 · 소소문 · 소란 · 소보권 · 소보융
6·7권 「양본기상·중(梁本紀上·中)」 8권 「양본기하(梁本紀下)」
소연 소강 · 소역 · 소방지
9권 「진본기상(陳本紀上)」 10권 「진본기하(陳本紀下)」
진패선 · 진천 · 진백종 진욱 · 진숙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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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전(列傳) ]
||<-6><tablewidth=100%><tablebgcolor=#000000> 11·12권 「후비전(后妃傳)」 ||
조안종 · 소문수 · 장애친 · 장궐 · 사마무영 · 호도안 · 원제규 · 노혜남 · 왕헌원 · 은숙의 · 하영완 · 심용희 · 왕정풍 · 진묘등 · 강간규 · 진법용 · 사범경 · 진도정 · 유지용 · 배혜소 · 왕보명 · 하정영 · 왕소명 · 유혜단 · 저영거 · 왕순화 · 장상유 · 치휘 · 왕영빈 · 정영광 · 완영영 · 서소패 · 장요아 · 심묘용 · 왕황후 · 유경언 · 심무화 · 장여화
13·14권 「송종실급제왕전(宋宗室及諸王傳)」
유도린 · 유도규 · 유의경 · 유준고 · 유의진 · 유의강 · 유의공 · 유의선 · 유의계 · 유소 · 유준(濬) · 유삭 · 유굉 · 유탄 · 유위 · 유창 · 유혼 · 유휴인 · 유휴우 · 유휴무 · 유휴업 · 유휴천 · 유이부 · 유휴범 · 유휴약 · 유자상 · 유자훈 · 유자방 · 유자욱 · 유자란 · 유자인 · 유자진 · 유자원 · 유자우 · 유자맹 · 유자운 · 유자사(劉子師) · 유자소 · 유자사(劉子嗣) · 유찬 · 유우 · 유홰 · 유숭 · 유희
15권 「유목지등전(劉穆之等傳)」 16권 「왕진악등전(王鎮惡等傳)」
유목지 · 서선지 · 부량 · 단도제 왕진악 · 주령석 · 모수지 · 부홍지 · 주수지 · 왕현모
17권 「유경선등전(劉敬宣等傳)」
유경선 · 유회숙 · 유수 · 손처 · 괴은 · 상정 · 유종 · 우구진 · 맹회옥 · 호번 · 유강조
18권 「조륜지등전(趙倫之等傳)」 19권 「사회등전(謝晦等傳))」
조륜지 · 소사화 · 장도 사회 · 사유 · 사방명 · 사령운
20권 「사홍미전(謝弘微傳)」 21권 「왕홍전(王弘傳)」 22권 「왕담수전(王曇首傳)」
사홍미 왕홍 왕담수 ,왕훈,
23권 「왕탄등전(王誕等傳)」 24권 「왕유지등전(王裕之等傳)」 25권 「왕의등전(王懿等傳)」
왕탄 · 왕화 · 왕혜 · 왕욱 왕유지 · 왕진지 · 왕소지 · 왕열지 · 왕준지 왕의 · 도언지 · 원호지 · 장흥세
26권 「원담전(袁湛傳)」 27권 「공정등전(孔靖等傳)」 28권 「저유지전(褚裕之傳)」
원담 공정 · 공림지 · 은경인 저유지
29권 「채곽전(蔡廓傳)」 30권 「하상지전(何尙之傳)」 31권 「장유전(張裕傳)」
채곽 하상지 장유 ,장승,
32권 「장소전(張邵傳)」 33권 「범태등전(范泰等傳)」 34권 「안연지등전(顔延之等傳)」
장소 범태 · 순백자 · 서광 · 정선지 · 배송지 · 하승천 안연지 · 심회문 · 주랑
35권 「유담등전(劉湛等傳)」 36권 「양흔등전(羊欣等傳)」 37권 「심경지등전(沈慶之等傳)」
유담 · 유열 · 고침 · 고기지 양흔 · 양현보 · 심연지 · 강이 · 강병지 심경지 · 종각
38권 「유원경전(柳元景傳)」 39권 「은효조등전(殷孝祖等傳)」 40권 「노상등전(魯爽等傳)」
유원경 은효조 · 유면 노상 · 설안도 · 등완 · 종월 · 오희 · 황회
41권 「제종실전(齊宗室傳)」
소도도 · 소도생 · 소요광 · 소요흔 · 소면 · 소경선 · 소적부 · · 소탄 · 소탄지
42·43권 「제고제제자전(齊高帝諸子傳)」
소억 · 소영 · 소황 · 소엽 · 소고 · 소장 · 소삭 · 소감 · 소봉 · 소예 · 소갱 · 소구 · 소현
44권 「제무제제자·제문혜제자·명제제자전(齊高帝諸子·文惠諸子·明帝諸子傳)」
소장무 · 소자량 · 소자경(卿) · 소자향 · 소자경(敬) · 소자무 · 소자륭 · 소자진 · 소자명 · 소자한 · 소자륜 · 소자정 · 소자악 · 소자문
소자준 · 소자림 · 소자건 · 소자하 · 소소수 · 소소찬 · 소보의 · 소보현 · 소보원 · 소보인 · 소보유 · 소보숭 · 소보정
45권 「왕경칙등전(王敬則等傳」 46권 「이안인등전(李安人等傳)」
왕경칙 · 진현달 · 장경아 · 최혜경 이안인 · 대승정 · 환강 · 초도 · 조무 · 여안국 · 주산도 · 주반룡 · 왕광지
47권 「순백옥등전(荀伯玉等傳)」 48권 「육징등전(陸澄等傳)」
순백옥 · 최조사 · 설연 · 우종 · 호해지 · 우완지 · 유휴 · 강석 육징 · 육혜효 · 육궐
49권 「유고지등전(庾杲之等傳)」 50권 「유환등전(劉瓛等傳)」
유고지 · 왕심 · 공규 · 유회진 유환 · 명승소 · 유이 · 유규
51·52권 「양종실전(梁宗室傳)」
소경 ,소매 소발 소앙 소욱, · 소의 · 소부 · 소창 · 소융 · 소굉 ,소정인 소정의 소정덕 소정립, 소수 · 소위 · 소회 · 소담
53권 「양무제자전(梁武帝諸子傳)」
소통 · 소종 · 소적 · 소속 · 소윤 · 소기
54권 「양간문제자·원제제자전(梁簡文帝諸子·元帝諸子傳)」
소대기 · 소대심 · 소대관 · 소대림 · 소대련 · 소대춘 · 소대성 · 소대봉 · 소대아 · 소대장 · 소대균 · 소대위 · 소대훈 · 소대구 · 소대흔 · 소대지 · 소대원 · 소방등 · 소방제 · 소방구 · 소방략
55권 「왕무등전(王茂等傳)」
왕무 · 조경종 · 조의종 · 석천문 · 하후상 · 길사첨 · 채도공 · 양공칙 · 등원기 · 장혜소 · 장징 · 풍도근 · 강현 · 창의지
56권 「장홍책등전(張弘策等傳)」 57권 「심약등전(沈約等傳)」 58권 「위예등전(韋叡等傳)」
장홍책 · 유역 · 정소숙 · 여승진 · 악애 심약 · 범운 위예 · 배수
59권 「강엄등전(江淹等傳)」 60권 「범수등전(范岫等傳)」 61권 「진백지등전(陳伯之等傳)」
강엄 · 임방 · 왕승유 범수 · 부소 · 공휴원 · 강혁 · 서면 · 허무 · 은균 진백지 · 진경지 · 난흠
62권 「하창등전(賀瑒等傳)」 63권 「왕신념등전(王神念等傳)」 64권 「강자일등전( 江子一等傳)」
하창 · 사마경 · 주이 · 고협 · 서리 · 포천 왕신념 · 양간 · 양아인 강자일 · 호승우 · 서문성 · 음자춘 · 두즉 · 왕림 · 장표
65권 「진종실제왕전(陳宗室諸王傳)」
진의 · 진상 · 진혜기 · 진창 · 진담랑 · 진백무 · 진백산 · 진백고 · 진백공 · 진백인 · 진백의 · 진백례 · 진백지 · 진백모
진숙릉 · 진숙영 · 진숙견 · 진숙명 · 진숙경 · 진숙헌 · 진숙제 · 진숙문 · 진숙달 · 진숙탄 · 진숙표 · 진숙웅 · 진숙중 · 진숙엄 · 진숙신 · 진숙우 · 진숙평 · 진숙오 · 진숙흥 · 진숙선 · 진숙목 · 진숙검 · 진숙징 · 진숙소 · 진숙광 · 진숙순 · 진숙모 · 진숙현 · 진숙륭 · 진숙영
진심 · 진장 · 진윤 · 진억 · 진언 · 진경 · 진건 · 진념 · 진지 · 진전 · 진번
66권 「두승명등전(杜僧明等傳)」
두승명 · 주문육 · 후진 · 후안도 · 구양위 · 황법구 · 순우량 · 장소달 · 오명철
67권 「호영등전(胡穎等傳)」
호영 · 서도 · 두릉 · 주철무(1) · 정령세 · 심각 · 육자륭 · 전도집 · 낙문아 · 손창 · 서세보 · 주부 · 순랑 · 주경 · 노실달 · 소마하 · 임충 · 번의
68권 「조지례등전(趙知禮等傳)」
조지례 · 채경력 · 종원요 · 한자고 · 화교 · 유사지 · 사기 · 모희 · 심군리 · 육산재
69권 「심형등전(沈炯等傳)」
심형 · 우려 · 부재 · 고야왕 · 요찰
70권 「순리전(循吏傳)」
길한 · 두기 · 신념 · 두혜도 · 완장지 · 견법숭 · 부염 · 우원 · 왕홍궤 · 심우 · 범술증 · 손겸 · 하원 · 곽조심
71권 「유림전(儒林傳)」
복만용 · 하동지 · 엄식지 · 사마경 · 변화 · 최령은 · 공첨 · 노광 · 심준(峻) · 공자구 · 황간 · 심수 · 척곤 · 정작 · 전완 · 장기 · 고월 · 척곤 · 왕원규
72권 「문학전(文學傳)」
구영국 · 단초 · 변빈 · 구거원 · 왕지심 · 최위조 · 조충지 · 가희경 · 원준 · 유소(昭) · 종영 · 주흥사 · 오균 · 유협 · 하사징 · 임효공 · 안협 · 기소유 · 두지위 · 안황 · 잠지경 · 하지원 · 서백양 · 장정견 · 완탁
73·74권 「효의전(孝義傳)」
공영 · 유유(瑜) · 가은 · 곽세통 · 엄세기 · 오규 · 반종 · 장진지 · 구걸 · 사각수 · 왕팽 · 장공 · 서경 · 손법종 · 범숙손 · 복천여 · 허소선 · 여제인 · 손극 · 하자평 · 최회순 · 왕허지 · 오경지 · 소예명 · 소교처양 · 공손승원 · 오흔지 · 한계백 · 구관선 · 손담 · 화보 · 해숙겸 · 한영민 · 유풍 · 봉연백 · 오달지 · 왕문수 · 악이지 · 손법종 · 유도민 · 등담공 · 도계직 · 심숭소 · 순장 · 길분 · 견염 · 조발호 · 한회명 · 저수 · 장경인 · 도자장 · 성경준 · 이경서 · 사린 · 은불해 · 사마고 · 장소
75·76권 「은일전(隐逸傳)」
도잠 · 종소문 · 심도건 · 공순지 · 주속지 · 대옹 · 적법사 · 뇌차종 · 곽희림 · 유응지 · 공기 · 주백년 · 관강지 · 어부 · 저백옥 · 고환 · 두경산 · 장영서 · 오포 · 서백진 · 심인사 · 완효서 · 등욱 · 도홍경 · 제갈거 · 유혜비 · 범원엽 · 유선 · 장효수 · 유승선
77권 「은행전(恩倖傳)」
대법흥 · 서원 · 완전부 · 기승진 · 유계종 · 여법량 · 여문현 · 여법진 · 주석진 · 육험 · 사마신 · 시문경 · 심객경 · 공범
78·79권 「이맥전(夷貊傳)」
임읍 · 부남 · 중천축국 · 사자국 · 고구려 · 백제국 · 신라 · · 부상국· 하남왕국 · 탕창 등지 · 무흥국 · 형옹주·예주만 · 고창 · 쿠처 · 우전국 · 파사국 ·연연
80권 「적신전(賊臣傳)」
후경 ,왕위, · 웅담랑 · 주적 · 유이 · 진보응
(1) 본명이 주철호(周鐵虎)로 당태조로 추존된 이호(李虎)를 피휘하여 무(武)로 개칭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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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동진 간문제 사마욱의 증손녀이다.[2] 역대 황제의 묘를 파헤쳐 부장품을 도굴하는 벼슬.[3] 관료들과 백성들의 무덤을 파헤쳐 금은보화를 도굴하는 벼슬.[4] 경녕릉(景寧陵)[5] 남사 권2[6] 자치통감 권130 송기12[7] 사실 이쪽도 근친혼이다. 하매는 유유의 외손자, 신채공주는 유유의 친손녀다. 즉 사촌오빠와 혼인하였다.[8] 新蔡公主, 유영미(劉英媚)[9] 전폐제 유자업이 친누나인 산음공주랑 근친상간을 했다는 기록이 있으나 이건 확실하지 않다.[10] 제3대 문제 유의륭의 후궁으로 수의라는 후궁 직급을 받았다.[11] 유의를 제외하면 모두 뚱뚱했는데 유욱이 제일 뚱뚱했던 모양이다.[12] 여담으로 유휴인은 유탄(문제 유의륭의 6남)과 더불어 문제 유의륭의 아들들 중에서 비교적 멀쩡한 인물이었다. 중국어 위키백과에 따르면 유자업은 여러번 세 사람을 죽이려고 했는데 이 때마다 유휴인이 기분을 맞춰주어 셋 다 죽지 않았다고 한다. 이 때도 아마 유자업의 비위를 맞춰주면서 유욱이 죽지 않도록 하기 위해 그런 말을 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정작 유욱은 황제가 되고 나서 유휴인을 죽여버렸다.[13] 아버지인 송문제 유의륭을 살해하는 패륜을 저질렀다.[14] 여기에는 비밀이 있다.[15] 선황에게 사랑받는 이복형제에게 골든 샤워까지 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