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 자크 뒤클로(Jacques Duclos) |
출생 | 1896년 10월 2일 |
사망 | 1975년 4월 25일 (향년 78세) |
소속 정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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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프랑스의 정치인. 192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무려 50년간 프랑스 공산당의 2인자였다.2. 상세
1896년 출생하였다. 1914년 제1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자 강제 징집되었고 베르됭 전투에서 부상을 입은 바 있다. 독일군의 포로로 잡히기도 했다. 전쟁이 끝난 1920년, 새로이 창당된 공산당에 입당해 본격적인 정치인으로서의 커리어를 시작했다.1926년, 공산당 중앙당 위원회 위원으로 선출되었다. 또 동년도 치러진 총선에서 파리 제20구에 출마했는데 공교롭게도 그와 대적한 인물이 레옹 블룸이었다. 그는 레옹 블룸을 꺾고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었다.
1939년,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그는 코민테른의 지시에 따라 파리에 남았고 모리스 토레즈가 모스크바로 망명하며 사실상 프랑스 공산당을 이끄는 인사가 되었다. 코민테른은 공산당과 나치당의 관계가 나빠지는 것을 원하지 않았고, 따라서 뒤클로는 나치당과 프랑스 공산당 간의 모종의 협상을 이루려고 하였으나 결국 실패하였다. 이는 프랑스인들에게 프랑스 공산당에 대한 인식을 크게 악화시킨다.
그러나 1941년, 독소전쟁이 발발하자 뒤클로는 항독 레지스탕스를 조직하여 프랑스 국내에서의 좌익 레지스탕스 운동을 실질적으로 지도하는 역할을 맡게 되며 이미지를 개선시켰다. 당시 프랑스 레지스탕스의 50%가 공산당과 관련된 조직이었고 30%정도는 기타 사회주의와 관련된 조직이었는데, 그중 대부분을 뒤클로가 책임지고 이끌었다. 1945년 전쟁이 종전되자 자크 뒤클로는 모리스 토레즈 당수와 엇비슷한 인기를 누리고 있었다. 모리스 토레즈는 자기가 레지스탕스를 이끌었다고 거짓말을 했지만 당연히 미친듯이 까였다.
그럼에도 전후에 모리스 토레즈에 밀려 별로 두각을 드러내지 못하다가, 모리스 토레즈 사후에는 토레즈가 남긴 유산들을 정리하는 역할을 맡았다. 최후로 보여준 기력은 1969년 프랑스 대통령 선거에서의 출마였는데 약 23%의 지지를 받으며 상당히 선전했다. 그러나 알랭 포에르 후보에 근소하게 뒤쳐져 결국 3위로 그쳤고 이후 정계를 은퇴, 1975년 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