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8-20 16:40:34

조오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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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131230><colcolor=#ffffff> 조오련
趙五連 | Jo O-ryeon
파일:조오련 젊은시절.jpg
출생 1952년 10월 5일
전라남도 해남군 해남면 구교리 학동마을[1]
사망 2009년 8월 4일 (향년 56세)
전라남도 해남군 계곡면 법곡리 자택
묘소 국립대전현충원 국가사회공헌자 묘역-47호
국적
[[대한민국|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대한민국
]][[틀:국기|
파일: 특별행정구기.svg
행정구
]][[틀:국기|
파일: 기.svg
속령
]]
본관 한양 조씨 (漢陽 趙氏)[2]
학력 해남고등학교 (중퇴)
양정고등학교 (졸업 / 55회)
고려대학교 상과대학 (경영학 / 학사)
고려대학교 문과대학 (사학 / 학사)[3]
종목 수영
주 종목 자유형
가족 아내 이성란(1965년생)[4], 장남 조성웅[5], 차남 조성모

1. 개요2. 생애3. 기록4. 수상 기록5. 방송 출연6. 기타

[clearfix]

1. 개요

바다를 사랑할 때, 바다를 사랑한 만큼 바다가 저한테 사랑을 주더라고요. 그러니까, 언제가 제일 좋냐고 하면 저는 배는 좀 나왔지만 수영복 입을 때가 제일 행복합니다.
- YTN 인터뷰 中 #

대한민국의 前 수영 선수.

2. 생애

1952년 전라남도 해남군에서 10남매(5남 5녀) 중 10번째로 태어나[6] 가난한 환경때문에 1968년 10월 10일 해남고등학교를 중퇴하고 그해 11월 3일 상경해 누나 집에서 지냈다. 곧 그는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2가에 있던 한 간판가게에 취업해 알바를 하게 되었는데, 간판가게 근처에 마침 당시 한국 내 유일의 실내 수영장이었던 YMCA 관광호텔 수영장이 있어 우연히 이 수영장의 존재가 눈에 띄었다. 조오련은 이에 11월 7일 등록했는데, 당시 중동고등학교 야간부 학생들의 텃세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열심히 수영 연습에만 매진했다. 그리고 이듬해인 1969년 6월 제50회 전국체육대회 서울 예선에서 수영복도 없이 사각팬티만 입은 채 자유형 400m와 1,500m에 출전했는데, 뜻밖에도 두 부문에서 모두 1위를 차지했고 경기가 끝난 뒤 서울 양정고등학교(55회)에 스카웃되어 입학하게 된다.

하지만 조오련은 1970 방콕 아시안 게임에 출전하기 전까지만 해도 큰 주목을 받지 못했고, 손발이 남달리 커서 수영을 하기 좋은 몸이라는 평가는 있었지만 아무도 그가 국제대회에서 금메달을 따리라고는 예상치 못했다. 그러다 양정고등학교 2학년 재학 중이던 1970년, 그는 방콕 아시안 게임 자유형 400m에서 1위를 차지해 금메달을 땄다. 이때 예상치 못한 금메달 소식에 뒤늦게 기자들이 몰려와 수영복 차림으로 호텔 복도에서 사진을 찍었다. 이어 자유형 1500m에서도 1위를 차지해 금메달을 목에 걸자 조오련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이 눈에 띄게 달라졌다. 이에 대한 재밌는 일화가 있는데 처음 경기에 나섰지만 당시 여건상 선진 체육 기술을 배울 여건이 되지 못했고 결국 조오련은 늘 하던대로 자신에게 익숙한 준비운동을 했는데 이를 두고 다른 나라 선수들이 비웃을 정도였다. 그러나 경기가 시작되자 조오련은 무서운 속도로 금메달을 거머쥐었고 이후 경기에서 조오련의 준비운동을 비웃던 선수들이 힐끔힐끔 훔쳐보면서 따라했다.

1972년 양정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그해 고려대학교 상과대학 경영학과에 입학했다. 1972 뮌헨 올림픽 수영에도 참가했다. 1974 테헤란 아시안 게임에서 자유형 400m와 자유형 1,500m에 출전하여 모두 1위를 차지, 대회 2연패를 달성했고, 또한 자유형 200m에서는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고려대학교 졸업 직전인 1975년 7월 산업은행입사했고, 1976년 졸업 후 경상남도 의령군에 있던 산업은행 지점에서 근무했으나 얼마 안 가 사직하고 수영선수로 복귀했다. 현역 시절 마지막 국제대회였던 1978 방콕 아시안 게임에서는 접영 200m에서 동메달을 획득했고, 그해 수영 부문 한국 신기록을 누적 50회째 수립했으나, 그와 동시에 은퇴했다.

은퇴 후 1979년 고려대학교 사학과학사편입1981년 졸업했으며, 수영에 대한 열정 또한 멈추지 않아 1980년 맨몸 수영으로 48km의 대한해협을 횡단했다. 소요시간은 13시간 16분이었다. 1982년 34km의 영국 도버 해협을 9시간 35분만에 횡단했다. 한편, 1989년 조오련 수영교실, 1993년 조오련 스포츠센터를 세워 후진 양성에도 주력하였으며, 1998년 2월부터는 대한수영연맹 이사를 맡았다. 다만 연맹 이사직은 차남 조성모의 대학 문제 때문에 맡았던 거고 조직이나 틀에 박힌 형식을 싫어했던지라 이사직 내내 반목했던 탓에 오래가진 못했다.

또한 2002년 다시 한 번 대한해협을 횡단했고, 2003년 한강 700리 종주에 성공했다. 2005년 8.15 광복 60주년을 맞이해 장남 조성웅, 차남 조성모와 함께 울릉도에서 독도까지의 93km 거리를 18시간 만에 횡단했으며, 2008년에는 민족대표 33인을 기리고자 하는 의미로 독도 33바퀴 헤엄쳐 돌기 프로젝트를 성공하였다.

하지만 2001년 아내가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고, 이 때문에 큰 충격을 받아 성황을 이루던 수영교실 사업까지 완전히 접었다. 이후 2009년 4월 두번째 아내 이성란을 만나 사랑을 싹틔우고 재혼해 도전을 위한 훈련 준비를 하는 등의 모습도 방영된 바 있을 정도였고, 적지 않은 나이에도 2010년 대한해협 2차 횡단에 도전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제주도에 캠프를 차려 준비하기도 했다. 하나 끝내 이는 이루지 못했는데 2009년 8월 4일 오전 11시 32분, 전라남도 해남군 계곡면 법곡리에 있는 자택에서 심장마비로 쓰러졌기 때문이다. 급하게 해남종합병원으로 이송되었으나, 낮 12시 45분에 결국 사망했다. 향년 56세. 재혼한 지 고작 몇 달 만에 전처와 같은 사인으로 생을 마감하게 된 것이다.

당초 전라남도 해남군 계곡면 선산에 안장되었으나, 2021년 5월 6일 국가보훈처 국립묘지 안장대상 심의위원회에서 조오련이 '국가사회공헌자'로서 국립묘지 안장 대상자에 해당한다고 결정했다. 이에 국립대전현충원 안장을 의결해 2021년 6월 12일부로 국립대전현충원 국가사회공헌자 묘역에 먼저 사망한 첫 번째 아내와 함께 이장되었다. 이는 손기정·민관식·서윤복·김성집·김일 등에 이어 스포츠인으로는 6번째 국립묘지 안장자가 되는 것이다.[7]

3. 기록

4. 수상 기록

아시안 게임
금메달 1970 방콕 자유형 400m
금메달 1970 방콕 자유형 1500m
금메달 1974 테헤란 자유형 400m
금메달 1974 테헤란 자유형 1500m
은메달 1974 테헤란 자유형 200m
동메달 1978 방콕 접영 200m

5. 방송 출연

  • 1982년 원비디 광고에 출연했다.
  • 대한해협횡단-20년 전의 약속(SBS)[11] - 2000년에는 대한해협을 횡단한 그의 업적을 기리는 차원에서 수영 잘하는 연예인들을 모아 조오련과 함께 릴레이로 대한해협을 횡단하는 프로젝트를 SBS에서 방영하기도 했다. 이때 활약했던 연예인이 이훈, 최종원, 소지섭, 정유진(前 국가대표 수영 선수), 베이비복스이희진 등이 있다.
  • 인간극장(KBS)
  • 아이스 에이지 2 - 잠깐 나오는 조역인 거북이 목소리를 더빙한 바 있다. 하일성이나 엄홍길같은 다른 스포츠 유명 인사들과 같이 그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유일한 작품이다.
  • 본인이 직접 나온 것은 아니고 영화 친구 초반부에 그의 이름이 등장한다. 등장인물들의 어린 시절 때 부산 앞바다에서 수영을 하던 장면에서 나오는 대사다. 말죽거리 잔혹사에서 주인공이 이소룡이 롤 모델이었듯이 친구에서 주연들의 롤 모델이었던 듯 하다.
    "상택아. 니는 아시아의 물개 조오련하고 바다거북이하고 둘이서 헤엄치기 시합하면 누가 이길 것 같노?"

    "조오련!"

    "거 봐라!"

    "아이다. 바다거북이가 이길낀데"
  • 위기탈출 넘버원(KBS) - 10회부터 19회까지 고정 게스트로 출연했다.
  • 슈퍼 TV 일요일은 즐거워-출발 드림팀(KBS) : 고려를 건국하라편에서 스포츠 올스타팀 선수로 출연했다.
  • 시트콤 여고시절

6. 기타

  • 현역 시절 별명은 “아시아의 물개”였다.
  •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4개나 소유한 스포츠인. 위에 있는 별명처럼 물개보다 빠른 수영 실력을 지냈다고 하며, 금메달을 딸 때는 상어라는 별명이 붙기도 했다.
  • 대한체육회에서 선정한 2020 대한민국 스포츠 영웅으로 선정되었다.


[1] #[2] 양절공후 한풍군파 25세손 '衡' 자 항렬이다.[3] 경영학과는 1976년 졸업했으며, 1979년 사학과로 학사편입해 1981년 졸업했다.[4] 전처와 사별 후 재혼했다.[5] UDT/SEAL 하사였다. UDT/SEAL 동기들이 3부자의 수영 시 안전요원으로 참가했다.[6] 조오련은 막내 아들로 태어났는데 형 4명을 포함 자신까지 5명의 아들이 연달아 태어났다고 해서 五連이라는 이름이 주어졌다고 한다. 즉 딸 다섯을 줄줄이 낳고 아들 다섯을 줄줄이 낳아서 10남매인 것이다. 첫째~다섯째는 딸, 여섯째~열째는 아들.[7] 인용된 기사가 잘못 기록했다. 순서상 실제로는 7번째이며 인용 기사에서는 1995년 사망한 송성일 선수를 누락한 것으로 보인다.[8] 직선 거리 51km, 실제 수영거리 약 74km. 13시간 16분 소요[9] 직선 거리 33km. 9시간 35분 소요. 당초 왕복 계획을 당일 조류와 수온 문제로 편도로 종료[10] 직선 거리 88km, 3부자 실제 수영거리 110~120km. 교대시간 포함 18시간 소요[11] 뷰티풀라이프의 한 코너로 방영되었다.[12] 박태환의 활약상은 이미 길게 말할 필요가 없는 수준이고, 유이도 학창 시절 전국체전에 다수 출전했던 촉망받는 수영 선수였다. 즉 이들에게 조오련은 한국 수영 역사의 한 획을 그은 대선배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