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4-12 15:19:56

양정고등학교(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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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전경
양정고등학교
養正髙等學校
YANGCHUNG HIGH SCHOOL
파일:양정고 투명로고주황색.png
교훈 하나! 우리는 진실한 인간생활을 하자.
하나! 우리는 배움을 실천하자.
하나! 우리는 심신을 단련하자.
상징 <colbgcolor=#ff8224> 창학
이념
蒙以養正 養心正己
깨우쳐서 바름을 기르고
심신을 길러 자신을 바르게 한다
교조 까치
교화 개나리
교색
주황색
개교 1905년 5월 12일 양정의숙
유형 자율형 사립고등학교
성별 남자고등학교
형태 사립학교
학교법인 학교법인 養正義塾
교장 제10대 도익수
교감 박윤근[1]
재학생 1,020명(2023년)
교직원 72명(2023년)
관할 교육청 서울특별시교육청
주소 서울특별시 양천구 안양천로 1039
(목5동 911-2)
웹사이트 파일:홈페이지 아이콘.svg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1. 개요2. 학교 역사3. 교훈 및 상징
3.1. 교표3.2. 교가3.3. 응원가 및 구호3.4. 교목, 교화, 교조3.5. 교색
4. 학교 시설
4.1. 본관4.2. 별관4.3. 중학교 교사(校舍)4.4. 강당4.5. 춘정기념도서관4.6. 생활관4.7. 정원4.8. 운동장4.9. 손기정기념체육관4.10. 양정 창학 100주년 기념탑4.11. 100주년 기념관
5. 학교 생활
5.1. 주요 행사5.2. 국제교류
6. 운동부7. 출신 인물8. 이용 가능한 대중교통9. 사건 사고
9.1. 2023학년도 신입생 합격여부 번복사건
10. 기타

[clearfix]

1. 개요

서울특별시 양천구 목동에 소재한 자율형 사립고등학교이자 남자고등학교이다. 영문 약칭은 YC.
1905년에 설립된 양정고등학교는 서울의 종로구 도렴동, 중구 만리동을 거쳐 1988년부터 목동에 교사를 이전하여 현재 118년의 전통을 가진 명문사학이다. 2011년 이후 자율형사립고등학교로 전환하여 현재 강서 및 양천지역의 유일한 자사고이다. 럭비, 농구, 육상부가 유명하고, 남고이며, 중학교와 고등학교가 한 부지 안에 있다.

2. 학교 역사

파일:춘정 엄주익.jpg
설립자 춘정(春庭) 엄주익

파일:20190827154930900_FCA2NRFO.jpg
양정고등학교 창학이념

1905년 2월 11일 춘정(春庭) 엄주익[2][3]이 양정의숙을 설립하고 초대 숙장으로 취임했다.[4] 같은 해 3월 숙사를 서부 적선방 도렴동에 증축하고, 4월에 학부로부터 본숙의 정식 설립 인가를 받아 개교하였다. 춘정 엄주익은 순헌황귀비 엄씨의 7촌 조카로, 순헌황귀비와 그녀의 친정 엄씨 가문은 교육사업에 관심이 많아 이듬해인 1906년 진명여학교숙명여학교도 설립했다.

'養正'이란 교명은 주역에 나와 있는 蒙以養正, 養心正己에서 따온 것. 어떤 연유로 몽이양정 양심정기(蒙以養正 養心正己)를 건학이념으로 내세웠고 어떤 과정을 거쳐 '양정'으로 채택했는지는 아직까지 불명이다. 이에 대해 조선 말기의 학자 '윤경규'가 왕세자 교육에 관련된 내용을 모은 양정록(養正錄)에서 유래를 찾는 견해도 있다.

현재 공식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5월 12일이란 날짜는 2004년, 교사 2명이 1905년 5월 15일 황성신문에 나와있던 입학일자를 찾아 변경되었다. 양정고등보통학교로 자진 격하 이후 10월 1일이란 개교기념일을 사용한 지 91년 만이었다.

[ 학교 약력 - 펼치기 · 접기 ]
||<tablebordercolor=orange>1905년 ||춘정 엄주익이 서울 종로구 도렴동에 양정의숙이라는 이름으로 법학과 창학[5]||
1907년 순헌황귀비가 양정의숙에 약 200만평을 하사함
1908년 경제학 전문과 설치. 4월 15일 양정의숙 1회 졸업 (26명)[6]
1913년 조선교육령에 의해 폐지 후 양정고등보통학교로 인가.[7]
1915년 양정창립 10주년 기념식
1918년 서울 중구 만리동으로 교사이전
1922년 조선교육령 개정에 의해 5년제로 변경
1924년 교지 '養正' 창간
1925년 양정창립 20주년 기념식
1931년 초대 교장 엄주익 선생 사망, 학교장으로 장례식 거행. 제 2대 교장 안종원 선생 취임
1935년 양정창립 30주년 기념식
1936년 양정고보에 재학중이던 손기정, 남승룡이 베를린 올림픽에서 각각 마라톤 금, 동메달을 차지
1938년 조선교육령에 의하여 양정고등보통학교를 양정중학교로 학칙개정
1941년 제 3대 교장 서봉훈 선생 취임
1945년 양정창립 40주년 기념식
1946년 제 1회 양배전 개최
1947년 제 4대 교장 엄경섭 선생 취임
1948년 양정타임스 (현 YangChung Times 영자신문) 창간
1949년 학도호국단 발족
1950년 중학교 4년제로 변경. 6월 25일 북한의 남침으로 임시 휴교 후 서울 수복과 동시에 개교
1951년 대구와 부산에 임시 개교하였고 중학교 3학년, 고등학교 3학년으로 분리 개편
1952년 양정염전[8] 개발공사 착수
1953년 대구, 부산의 임시학교 서울로 복귀
1955년 양정창립 50주년 기념식
1960년 양정고등학교 학우회'를 창설하여 4.19 혁명에 참여
1965년 양정창립 60주년 기념식
1973년 당시 교장 엄경섭 선생이 국회의원으로 선임되며 제 5대 교장(현 이사장) 엄규백 선생 취임
1975년 양정창립 70주년 기념식
1983년 대만 타이베이시 '항의고급중학교'와 자매결연, 양정이 자랑하는 국제교류의 시작이다
1985년 양정창립 80주년 기념식
1988년 교사를 현재의 위치인 서울 양천구 목동으로 이전, 기존의 만리동 교사는 손기정 체육공원으로 조성
1995년 양정창립 90주년 기념식
2001년 제 82회 전국체육대회에서 양정고 럭비팀 2회 연속 우승
2002년 신관 증축
2005년 100주년 기념관 준공식 및 양정창학 100주년 기념행사
2006년 뉴욕주립대학교 제네시오 대학과 협력학교 약정
2008년 제 6대 교장 김창동 선생 취임
2011년 자율형 사립고로 전환
2014년 제 95회 전국체육대회에서 양정고 럭비팀 우승, 양정고
산악부 동아리 우승
2014년 제 95회 전국체육대회에서 양정고 럭비팀 우승, 양정고 산악부 동아리 우승
2015년 제 7대 교장 김정수 선생 취임, 양정창립 110주년 기념식, 음악회
2017년 100회 졸업식
2021년 제 9대 교장 이범희 선생 취임

학교의 역사가 긴 만큼 이런저런 야사들이 많다. 태평양 전쟁 시기 설립자 동상과 럭비부 우승 트로피 등 교내의 모든 쇠붙이가 공출당하기도 했고[9], 학생들도 강제 징용되어 당시 경성부 내 건설 현장에 동원되기도 했다. 또 6.25 전쟁을 거치며 당시 물리 교사 한 명이 제자에게 총살당한 아픈 역사도 가지고 있고[10], 전쟁을 거치며 학교 본관의 거의 모든 기물이 털리다시피 하기도 했다.[11] 다행히 당시 학교 경비원이 학적부를 전부 땅 속 항아리에 묻어서 동문 자료만은 보존될 수 있었다. 1983년에는 학생들이 야자를 하다 추워서 피운 불이 건물에 옮겨붙어 본관이 전소되는 일도 있었다.

3. 교훈 및 상징

3.1. 교표

교표
파일:양정고 투명로고주황색.png

교표에 '養正高'가 전부 들어가 있다. 단순하지만 고급스러운 디자인이 특징. 1918년 심전(心田) 안중식 화백에 의해 제작되었다.[12]

양정중·양정고 통합 교표
파일:yc100anniversarylogo.png

양정 창학 100주년 기념으로 양정중·양정고 통합 교표가 만들어졌다. 주로 두 학교를 모두 홍보해야 할 때 사용된다.

3.2. 교가

파일:양정고 투명로고주황색.png
양정고등학교
교가
파일:ychssong.gif


교가는 육당 최남선이 작사하고 [13] 작곡가 김인식이 작곡하였다. 교가 처음에 나오는 '은혜'는 대한제국 황실의 은혜를 의미한다고 한다.

제창하는 동안 오른손으로 3/4박자에 맞춰 삼각형을 그리는 율동이 존재하는데, 학생들 사이에선 여기에 더해 교가의 21마디와 22마디, 23마디와 24마디의 쉬는 부분[14]어이! 하는 추임새를 넣는 전통이 있다.[15] 원래 작곡가의 의도는 8분의 6 박자 노래였는데, 이유는 모르겠으나 현재의 4분의 3 박자 노래로 만들어져 전해지고 있다.

3.3. 응원가 및 구호

파일:양정고 투명로고주황색.png
양정고등학교
응원가
파일:ychscheer.gif

응원가는 작곡가 윤이상이 양정고에서 음악교사로 근무할 때 작곡하였다. 양배전 같은 학교 간 대항전에서 대표 응원가로 부르며 통상 제2응원가로 칭하고 있다.
  • 제 1 응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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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사 - 좋구나 빅토리 빅토리~
우리 양정 선수는 실력 발휘 빅토리
닐리리 좋구나 빅토리 빅토리~
우리 양정 선수는 전통 지켜 빅토리
V I C T O R Y 양정 양정 빅토리 야||

  • 제 3 응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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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간다 양정의 건아들 - 아 ~ 밀물같은 기세
뭉치고 힘을 합쳐 자신도 만만
이어받은 전통이어 빛내어 떨치련다
이긴다 이긴다 우리 양정 이긴다
오렌지 깃발은 우승의 상징 빅토리 빅토리
YC 양정||

  • 봉래산의 왕독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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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 래! 산! 의! 왕!독!수!리! 쿵짜라 쿵짜 쿵짜라 쿵짜
나가신다 양정 나가신다 양정 양정이 나가신다
물럿거라 섯거-라 양정이 나가신다
(빠르게)나가신다 양정 나가신다 양정 양정이 나가신다
물럿거라 섯거-라 양정이 나가신다||

[ 가사 - 펼치기 · 접기 ]
||닐리리아 닐리리 닐리리 맘보
닐리리아 닐리리 닐리리 맘보
양정의 독수리 닐리리 날개 펴던날
배재의 고양이 닐리리 날쌔게 도망가야지
도망갈 곳을 알아야 알아야지
고양이 굴로 가야지 보내드리지
닐리리아 닐리리 닐리리 맘보
닐리리아 닐리리 닐리리 맘보||


* 교호
입실렌 체이홉 카시카시 케시코[16] 칼마시 케시케시 양.정.양.정 빅토리 야!!
이 구호에는 분명한 유래가 있으며, 모두 인물 이름으로 지어졌다. 입실렌은 그리스의 독립운동가 알렉산드로스 입실란티스의 이름에서 따왔으며, 체이홉은 러시아의 유명한 문호 안톤 체호프, 카시코시 코시코는 폴란드 혁명가 타데우시 코시치우슈코에게서 따온 것이고, 칼마시는 카를 마르크스를 말하는 것이며 케시케시는 (마르크스가) '계신다'라는 뜻의 라틴어다. 즉 번역해서 구호를 외치면 입실란티스, 체호프, 코시치우슈코, 마르크스 이 네 명이 있으니 양정양정 만만세

이 교호는 고려대학교의 교호와 마지막 부분을 제외하면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똑같다. 양정의숙은 1905년 보성전문학교와 같은 해에 전문학교로 설립되었으나, 재정상의 이유로 1913년 양정고등보통학교로 자진 격하하였다. 이때 양정의숙은 전문학교 재학생 전원을 보성전문학교로 전학시켰고, 이때부터 보성전문이 양정의숙의 역사를 함께 공유하게 되었다. 그것이 이어져 내려오면서 두 학교의 교호가 같아진 것이다.

더 자세한 내용은 고려대학교에서 만든 영상을 참조할 것.
고려대학교 교호

3.4. 교목, 교화, 교조

파일:양정고 투명로고주황색.png
양정고등학교
교목 교화 교조 학교상징
파일:ycgam.jpg 파일:ycgaenari.jpg 파일:까치 나무.jpg 파일:yceagle.jpg
감나무 개나리 까치 독수리

교목(校木)은 감나무, 교화(校花)는 개나리, 교조(校鳥)는 까치이고, 학교상징은 독수리이다. 다만 교목과 상징을 제외한 교화와 교조까지 모두 아는 학생은 많지 않다.

교목이 감나무인 이유는 학교가 만리동에 위치해 있던 시절 학교 뒷산에 감나무가 많이 자라서였다고 한다. 학교 상징색 또한 감나무 열매의 색인 주황색이 되었다. 만리동의 추억을 재현하려고 하는 것인지, 학교 정문 앞으로 흐르는 안양천로 길가엔 무수히 많은 감나무가 심어져 있다.[17] 이는 후술할 양빤과 관련이 있다.

3.5. 교색

양정고의 교색은 주황색, 정확히는 감색으로 만리동 교사시절 학교 주변에 감나무가 우거져있었다는 이유로 교색으로 정해졌으며 본교 체육복에 그대로 교색이 들어가 있다.
양정 체육과 관련해서 우선 머리에 떠오르게 되는 강렬한 오렌지색 팬티는 1922년 무렵 첫선을 보였다.
그 강렬한 색깔의 운동복은 오늘날까지 양정 육상선수들의 영광과 위력을 대변해 주는 상징물처럼
한국 체육사에도 그 명성이 높다.
오렌지색 팬티는 당시 체육교사이던 미네기시 선생의 아이디어였다고 한다.

당시 봉래동 교사 터의 땅이름은 감나무골이었다.
그 만큼 감나무가 우거져 있던 곳이었다.
1921년 모교에 부임해 온 일본인 교사는 가을날 학교 앞뒤로 울창하게 둘러서 있는
감나무 열매의 강한 빛깔에 매혹 당했던 듯 하다.
특히 맑고 푸른 가을 하늘 아래 알알이 영글어 있는 주홍빛 감은
미네기시 선생으로 하여금 오렌지색 운동복을 구상케 했던 것 같다.
그 당시는 백색이라도 짧은 반바지 운동복 팬티 차림이 어색하던 무렵이었으나,
미네기시 선생은 반바지면서 색깔마저 한눈에 드러나는 오렌지색 육상부원용 운동복을 택하는 파격을 시도했다.

- 양정백년사, "오렌지색 운동복의 유래"[18]

학교의 상징색인 주황색 반바지 체육복이 있는데 학생들은 이를 보통 양빤(스)라고 부른다. 주황색의 아스트랄한 디자인이지만 여름철엔 학생들이 교복보다도 자주 입고 다닌다.[19] 선명한 주황색은 일제강점기 때부터의 전통이었다고 한다. 당시 친조선 성향의 일본인 체육 교사 미네기시 선생이 만리동 교정 근방에 많이 자라던 색깔에서 따왔다고 하며, 그래서인지 주황색보다는 붉은색이 섞인 주황색에 가까운 기묘한 색이다. 이 이야기는 손기정 선수 자서전에도 나온다.

여담으로 이 체육복을 만든 미네기시 선생은 1921년에 양정학교에 부임, 1931년까지 10년 동안 근무하며 적극적으로 운동부들을 창설해, 괄목할 만한 실적을 거두었다.[20] 그 이후 만주의 신경으로 이주하였다고 한다.

4. 학교 시설

파일:ychsfacility.png
양정고등학교 교내 약도

양천구 관내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만큼 그 시설도 크고 아름답다.

1학년 교무실은 본관 3층(1반~6반)과 별관 2층(7반~12반)에 있고, 2학년 교무실은 본관 5층(A・B)에, 3학년 교무실은 본관 2층(A・B)에 있다. 학년중심제로 운영되는 2017학년도부터는 학년 교무실에 모든 담임교사들의 자리가 마련되었다.

4.1. 본관

파일:ycmainbuilding.jpg
양정고등학교 본관

고등학생들이 수업하는 장소다. 1학년 8반부터 12반까지를 제외하면 모두 이곳에서 수업을 한다. 총 지하1층, 지상 5층으로 구성되어 있다.
  • 지하 1층 : 학생회실 및 여러 동아리실과 환경미화원 휴게실이 위치하고 있다. 유일하게 학생회실에만 에어컨, 히터가 있다. 참고로 조명은 매우 어둡고, 청소는 오랫동안 하지 않았으며, 여름엔 덥고 겨울엔 춥다.
  • 1층 : 재단 이사장실, 교장실, 교무실[21], 회의실 등이 위치하고 있다. 1층 중간 로비에는 양정고등학교의 축소 모형이 있다. 로비 오른쪽 벽면에는 6.25 전쟁에 참전한 양정고 동문들을 기리는 기념판이 있다.[22] 그리고 로비 왼쪽에는 럭비부와 농구부의 트로피, 각종 동아리의 외부상장, 그리고 국제교류를 진행한 학교에서 준 기념품들이 전시되어 있는 장식장이 있다. 로비 양쪽으로 양정의 인물 등 판넬이 붙어있고, 복도에는 본교 출신인 장욱진 작가의 작품이 전시되고 있다.
  • 2층 : 3학년 교실과 화학실, 3학년부 A・B교무실이 있다. 수능 이후 3학년이 학교를 오지 않기 때문에, 빈 교실에서 월계축전을 2층에서 실시한다.
  • 3층 : 1, 3학년 교실과 1학년부 A교무실, 물리실이 있다. 3학년만 응시하는 모의평가를 치를 때는 교무실 앞 복도에 책상으로 벽을 설치한다. 그리고 본관에서 별관으로 이동할 수 있는 구름다리가 있다. 유리로 되어 있어 온실효과를 제대로 느끼게 해준다.
  • 4층 : 1, 2학년 교실들과 생물실[23]이 있다.
  • 5층 : 2학년 교실과 지구과학실, 2학년부 A・B교무실이 있다. 걸어 올라가기 싫어서 엘리베이터를 타는 학생들이 매우 많다.
  • 옥상 : 아주 좁은 옥탑방 하나가 있다.

4.2. 별관

파일:ycannexe.jpg
양정고등학교 별관[24]

지상 5층으로 이루어진 양정고등학교의 별관. 1학년 교실과 각종 교과교실이 위치해있다.

원래 별관 자리는 교사들의 주차장 자리였는데, 2002년 CJ그룹에서 학교에 급식을 대주기 시작하며 CJ 급식 모범 사례로 홍보할 요량으로 별관을 지어준다. 그런데 CJ 급식 도중 노로바이러스 사태가 터지고, 다시 다른 업체인 JJ라는 업체에서 급식을 대기 시작하며 또 상기한 이유로 별관과 신관을 잇는 구름다리를 지어준다.[25] 그런데 또 법이 개정되어 자체 급식으로 변경되었고, 교육청 지원금을 받아 5층까지 증축하며 현재의 별관이 완성되었다.

부지의 특성상 건물의 가로 세로 비가 잘 맞지 않아 교실이 옆으로 넓은 기형적인 구조다. 학생들이 별관을 선호하지 않는 대표적인 이유 중 하나. 이 때문인지 교실 분위기가 왠지 어색해서 본관에서 넘어온 학생들은 잘 적응하지 못한다.
  • 1층 : 학생식당, 조리실, 여자 화장실이 위치하고 있다.[26]
  • 2층 : 1학년 8반~11반, 1학년부 B교무실, 컴퓨터실이 있다. 이 반들은 좌우로 넓다.
  • 3층 : 사회과교실, 교사휴게실, 교과협의부실이 있다. 사회과교실은 복도 끝으로 들어갈수록 역사교실, 윤리교실, 일반사회실, 지리교실 순으로 이루어져 있다. 참고로 지리교실을 제외한 나머지 사회과교실은 교내 토론대회 때 대회장으로 사용되며, 역사교실은 통일골든벨 준비 모임, 지리교실은 부정기적으로 열리는 대학교 입시설명회 때 사용된다.
  • 4층 : 국어교과실, 수학교과실. 교실은 많은데 교실 한두 개를 빼고 텅텅 비어있다시피하다. 화장실도 가장 깨끗하다. 1학기 한정으로 1학년 자율학습실이 운영된다. [27]
  • 5층 : 외국어교과실과 일본어실, 중국어실이 있다. 원래 외국어교사실 (원어민 교사 2명, 일본어 교사 1명)이 있었으나 지금은 1학년 원어민 영어 말하기 수행평가 시험실로 쓰인다. 참고로 일본어 교과실이 만들어진 데에는 슬프고 감동적인 역사가 담겨 있는데, 자세한 것은 일본어 교사에게 물어보도록 하자.
  • 중,고 연결회랑: 중, 고연결회랑이지만 고등학교가 다 차지하고 있다.
  • 2층 : 방송반 스튜디오, 보건교육실이 있다. 다만 보건교육실에서는 보건 수업이 이뤄지지 않고, 2학년 세계지리,생명과학과 3학년 세계지리, 생활과 윤리 수업 장소로 이용된다. 다만 교실이 환기가 잘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에, 공기 질은 양정고 전 시설을 통틀어 최악을 자랑한다. 이런 교실에서 수능 모의평가를 치른다 점심시간과 방과후 1시간 한정으로 자습실로도 사용된다. 이 옆에는 진학지도부가 있었으나, 2019학년도에 3학년부A로 부서 기능이 통합됨에 따라 현재는 방치되고 있다.
  • 3층 : 국제교류부와 영어 도서관이 있다. 영어 도서관은 2학년 영어 수행평가 때 사용되며, 국제교류 면접이나 교내 영어말하기 대회 예선 시험장으로 쓰인다.
  • 4층 : 컴퓨터실, 진로상담부, 상담실이 있다. 학생들이 중학교 교사에 있는 음악실이나 미술실에 가기 위해 가장 많이 통과하는 곳이다.

4.3. 중학교 교사(校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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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정중학교 본관

원래라면 양정중학교 문서에 기술해야 하지만 고등학교 시설도 있으므로 그 내용을 간략하게 기술한다. 4층에 음악실이 있고 5층에는 미술실이 있다. 1층에는 보건실이 있다.[28] 주말에 책을 가지러 학교에 갔는데 만약 건물이 잠겨 있다면 가끔씩 중학교 건물을 통해서 넘어오기도 한다.[29] 반대로 중학교 학생이 고등학교 교사를 통해서 오기도 한다.

4.4. 강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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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당

안양천로에 맞추어 지어진 학교라 건물 사이에 여유 공간이 많던 것을 기가 막히게 활용해서 만든 강당이다. ~심지어 반지하다.~ 가히 공간활용의 끝판왕이라 볼 수도 있을 듯. 전학년이 전부 들어올 수는 없고, 700석의 규모라 오케스트라를 빼면 자리를 꽉꽉 채워 앉을 수 있는 규모다. 보통 3학년은 강당에 오는 일이 거의 없으니 큰 불편은 없다. 예전에는 한 학년당 600명이 넘어서 한 학년이 강당에 들어가면 전체가 꽉 찼었는데, 이제 400명을 전후하는 한 학년이 되었으니 축제 때와 양배전 연습을 제외하면 꽉 찬 강당을 볼 수 없게 되었다. 강당 로비는 평상시 탁구장으로 사용되고 있고, 학교 운영진의 행사가 있을 때 이곳에서 만찬을 가진다. 신년조회도 이곳에서 하고 체육복도 이곳에서 사는 등 굉장히 다양한 용도로 사용되고 있다.

참고로 목동 내 앵간한 공연장보다 더 많은 수용인원을 자랑하는 곳이다. 목동청소년수련관 대극장이 320석, kt체임버홀이 403석 규모인 것을 감안했을 때, 입석이나 복도 수용인원까지 감안하면 700명 이상을 수용할 수 있다.

4.5. 춘정기념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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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정기념도서관

외부인들이 오면 멋있다고 하는 건물 중에 하나. 양정고등학교의 도서관으로 만리동의 옛 본관을 참조해 똑같은 사이즈로 지었다고 한다.[30] 최초의 민족사학에 일본식 벽돌 건물이 있다고 학교의 역사선생님들에게 매번 까이는 존재. 옛날에 어떤 일제강점기 배경 드라마도 이곳에서 찍었다고. 처음에 설립되었을 당시에는 2층의 멀티미디어실이 없었고, 2003년에 증축 공사를 해서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그래서 2층 학습실 바깥에 창문이 있는 것이다. 원래는 그 창문이 외부와 연결된 창문이었다. 도서관 앞에는 양정의숙 설립자인 춘정(春庭) 엄주익 선생의 동상이 있다. 1층 로비에 거울이 하나 있는데, 자세히 보면 "양정창립 50주년 기념"이라고 쓰여져 있다.
  • 1층
    • 도서관 : 5만여권의 책을 보유하고 있다. 찾아보면 1988 서울 올림픽 화보집이나 절판된지 한참 되어서 찾아보기 힘든 연려실기술 번역본 같은 서적들도 나온다. 고서도 가득해 책을 좋아하는 학생이라면 하루 종일 있을 수도 있는 곳이다. 독서를 좋아하는 학생들은 더없이 좋은 공간이다.
    • 양정역사전시관 : 창학 100주년을 기념해 만든 공간이다. 안으로 들어가면 고종황제가 하사한 현판, 1908년 졸업장부, 양정의숙 졸업사진과 졸업장, 역대 교장 초상화 등 학교의 역사와 관련된 여러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다.[31] 평소에는 개방하지 않고 재학생에게는 2학년 '양정의 역사'시간때 개방한다. 그 이외에는 국제교류 방문단들이 이 곳을 들르기도 한다.
    • 화석, 암석 전시관 : 창학 110주년을 기념하여 지구과학 교사가 만든 공간이다. 이곳은 원래 독서실로, 굳이 하고 싶은 사람만 남아서 공부를 할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었다. 날씨가 추울 때는 뼈속까지 얼어붙는게 특징. 관리가 소홀해 창문이 잠겨있지 않아 온실쪽에서 넘어가 친구들과 밤샘 시험공부를 할 수도 있었다.
  • 2층
    • 멀티미디어실 : 방송제, 교내 리더십 캠프 등 다양한 행사가 열린다. 국제교류 참가자들의 외국어 회화 교육은 겨울방학에 이곳에서 열린다.
    • 학습실 : 남북학습실을 합쳐 240석 정도가 있는데 본래는 지정좌석제로 운영되다가 이제는 자유석으로 운영되고 있다. 북학습실은 3학년이 쓰고 남학습실은 1,2학년이 쓴다. 자리가 푹신하고 에어컨과 히터를 세게 틀어놔서 편하다. 북측자습실 실내에는 저명한 서예가인 손재형 선생(양정 9회)이 쓴 '양심정기' 서예가 걸려 있다. 양정 곳곳에 방치되어 있는 예술품들 중 하나.[32]

4.6. 생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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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관

기숙사처럼 만들어놓은 건물. 꽉꽉 채우면 50여명 정도가 숙박을 할 수 있다.[33] 1층에는 회의실이 있어 교사회의를 제외한 월계축전회의, 국제교류 회의등 학생이 주체가 되는 회의들을 진행한다. 모든 1학년들은 1박 2일로 생활관 교육이라는 것을 받게 된다. 생활관 교육은 사실상 1박 2일로 학교에서 자며 고기도 구워먹고 축구도 밤새 하며 재미있는 추억을 남길 수 있는 활동이다. 2학년도 담임에 따라 시행하는 경우가 있다. 이외에도 다른 학교에서 단체로 방문하면 여기서 묵는 경우가 종종 있다. 생각보다 시설은 준수한데, 1층에는 회의실과 주방, VIP실 몇 개가 있고, 2층에는 학생들이 생활관 교육 때 사용하는 방들이 있다. 계단을 올라가서 오른쪽에 있는 방들은 2층 침대가 있는 침대방이고, 왼쪽으로는 온돌방이 위치하고 있다. 가운데에는 소파가 갖추어진 라운지가 있다.

4.7. 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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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목동으로 교사를 이전한 직후의 정원. 정면에 도서관 건물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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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 뒷편 온실에 피어 있는 능소화.

학교 면적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공간으로, 식물을 좋아하는 교사들과 관리인들의 노력으로 여러 종류의 약 500여 그루의 나무들이 자라고 있다. 봄이 되면 본관 앞 교정에 벚꽃이 예쁘게 피어 단체사진을 찍으러 나오기도 한다. 버찌, 아카시아, 등 그런대로 먹을 수 있는 과실들도 많이 열려서 굶주린 남고생들의 식량창고가 되기도 한다. 과일나무들은 이것들 외에도 더 있는데, 별관 주변에 호두나무, 남문 주차장 옆의 복숭아나무[34]와 식당과 강당 사이 정원에 배나무[35], 살구나무 등이 있다.

2017년 여름방학에 정원의 보도블럭을 갈아엎는 작업을 했다. 대리석을 깐다는데 실제로 실행될지는 미지수. 정작 학생들 중에는 멀쩡한 보도블럭을 왜 굳이 교체하는지 모르겠다는 사람들이 많았다.[36]

교정에는 조오련 기념비, 양정 럭비 60주년 기념탑, 4.19 혁명 기념비[37], 설립자 엄주익 선생 동상, 창학 100주년 기념탑, 외 각종 시비 등 여러 기념비와 조형물이 세워져 있다.

운동장과 도서관 사이 교정에는 온실이 있는데, 학생이 들어가기는 어렵다. 밖에서 보면 상당히 많은 원예식물들이 자라고 있는듯하다. 테니스장에서 매점에 이르기 까지 메타세콰이어 길이 100m 넘게 있는데, 원래 이 곳에다가 지압판과 세족장 등 산책길을 만들려고 했는데 무산되었다고 한다. 여름에 가보면 온실 벽이 온통 능소화로 뒤덮여 무척 아름답다.

4.8. 운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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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장

양천구에선 독보적으로 넓은 학교 운동장이다. 원래는 모래밭이었으나 2012년 교육청의 지원을 받아 인조잔디와 트랙을 갖춘 지금의 모습으로 바뀌었다. 특이하게 럭비부 훈련을 위해 축구 골대 위에 럭비 골대처럼 수직 기둥 2개가 달려있다.

이외에 농구대와 철봉과 멀리뛰기용 모래밭이 있다. 남문 옆에는 배구 코트[38]가 있으며 100주년 기념관 옆에는 테니스장도 있어 테니스반과 교직원이 이용한다. 원칙적으로 야구를 하는 것은 금지되지만, 점심시간에 보면 무시하고 하는 학생들이 많다. 그래도 최근에는 야구나 캐치볼을 하는 학생들이 거의 사라졌다. ~운동장은 고등학생이 거의 차지하며, 축구와 농구를 주로 한다.~

공사 이후 한동안 잘 사용되던 운동장은 결국 2016년 여름, 잔디 속에 들어있던 작은 고무 알갱이들이 더위로 엉겨붙으면서 거대한 고무판이 되어버렀다. 그 이후 학생들은 울며 겨자먹기로 더 이상 의미가 없어진 잔디 운동장을 사용하고 있었으나 2017년 지역구 국회의원이 예산 6억원을 할당받아 운동장을 교체해 주기로 하여 여름방학 중에 설치를 완료했다. 하지만 이후 운동장의 손상을 염려하여 공식적으로는 축구화를 신지 않은 학생들의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

신입생이 들어오면 이곳에서 대면식을 한다. 운동장 끝과 도로 사이에 가건물이 하나 있는데 검도부에서 검도장으로 이용한다. 원래는 그 자리에 헬스장이 있었는데 100주년기념관으로 헬스장을 옮기면서 많은 학생들이 애용하게 되었다. 헬스장에서는 여름방학과 겨울방학에 진행하는 방과후 프로그램인 <웨이트 트레이닝>을 진행한다. 웨이트 과목의 경우 매년 담당 교사가 바뀌는 편. 운동장 쪽에도 남문으로 불리는 입구가 있는데 자동차용 출입구여서 아침에 학생들이 다니는 것은 금지되어있다. 물론 학생주임이 없으므로 뭔가 결격 사유가 있는 학생 또는 셔틀버스[39]에서 내려서 정문까지 돌아가기 귀찮은 학생들이 이용했다. 남문으로 다니는 학생들이 자주 목격되면서 요즘은 선도부원 1명을 등교 시간에 세워두는 편이다.

4.9. 손기정기념체육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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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기정기념체육관

양정고등학교의 체육관. 원래 별도의 이름이 따로 없었으나 양정 창립 110주년을 기해 체육관이 손기정기념체육관으로 명명되며 외벽에 손기정 동판을 달았다. 내부는 농구장과 관중석으로 구성되어 있다. 지은 지 30년이 다 되어가지만 바닥재료가 캐나다산 원목이라서 아주 질이 좋다. 비가 올 때 체육 수업은 이곳에서 하는데 여러 반이 있게 되면 체육할 맛이 안 난다. 농구나 배구, 체조 등을 배우며 나름 스탠드도 있는 규모 있는 경기장이라 이렇게 정식 대회가 열리기도 한다. 학교에서 유일하게 샤워장이 있어서 점심시간에 축구를 한 학생들이 여기서 샤워를 하기도 한다.

2001년 겨울에 폭설로 쌓인 눈을 견디지 못하고 지붕이 무너져 내린 적이 있었다. 마침 무너진 시점에 농구부가 체육관에서 훈련을 하다가 잠시 밖에 모여있었기에 인명피해는 없었으나 하마터면 큰 사고로 이어질 뻔했다. 예전 체육관의 지붕은 평평했지만 사고 이후 피라미드꼴로 경사를 두고 다시 지었기 때문에 현재는 안전하다. 여기도 지하가 있는데 농구부, 럭비부 숙소가 있으며 운동부 전용 식당도 있다. 2017년 장학퀴즈 촬영을 이곳에서 했다.

4.10. 양정 창학 100주년 기념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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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정 창학 100주년 기념탑

외부인들이 보면 멋있다고 하는 2번째 작품이다. 양정의 로고 모양으로 탑을 세웠는데 가운데가 뻥 뚫려있다. 이것을 보고 학생들은 '양정워프존', '양정포탈', '양정게이트', '양정반지', '게이트웨이', '스타게이트' 등으로 부르고 있다. 기념물 받침대는 세계지도를 양각으로 새겨놓았다. 날씨 좋은 날엔 뜨끈뜨끈하게 데워져서 자기 딱 좋다. 야자가 끝나고 11시 즈음에 이 위에 누워서 하늘을 보면 별자리가 아주 잘 보인다. 주변의 빛이 건물로 차단돼서 그런 듯. 원래 이 자리에 큰 느티나무가 3그루 있었다고 한다. 그늘이 엄청 크고 아름다워서 학생들이 밑에 앉아서 이야기도 나누고 쉬고, 외부인들이 정원을 보면서 부러워했다고.

4.11. 100주년 기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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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주년 기념관

양정 창립 100주년을 기념해 건립된 건물. 옛날에는 토플 수업과 논술 수업도 했었다.[40] 지금은 장학재단 사무실로 쓰고있는 모양이다. 원래는 100주년 기념으로 양정 사이버 대학을 설립하려 했고 기념관은 사이버 대학 운영용 건물이었는데 인가가 떨어지지 않았고, 그대로 방치된 것. 양정高 사이버스쿨 내년 개교 1, 2, 3층에는 수업을 할 수 있는 현대적 교실이 있으며 4, 5층에는 사무실과 자습실이 있다. 1, 2, 3층에도 자습할 수 있는 공간이 있는데 사실 도서관에서 쓰는 칸막이 책상 수만 따져도 도서관 좌석수와 큰 차이 없다. 다만 도서관 좌석수도 크게 부족한 것은 아니라 본관 건물과 멀기도 해서 굳이 운용할 이유가 없는 듯. 3층 교실의 경우 양정 졸업생 중 나름 유명한 사람의 이름을 따 붙였다.학교 측에서도 이 건물을 놀리기에는 조금 아까웠는지, 이사장이 이 건물에 영재유치원을 건립하려고 했으나 무산되었다. 몇 년 안으로 건물을 새로 리모델링하여 수업에 사용할 예정임을 밝혔다.

2017학년도 종업식에서 교장이 100주년 기념관에 헬스장, 태권도장, 검도장 등을 만든다는 계획을 발표했고 2018학년도 2학기부터 이 계획이 실현되었다. 헬스장과 탁구장, 그리고 태권도장이 100주년 기념관 안으로 들어왔으며 검도장은 기존에 헬스장이 있었던 컨테이너 공간을 활용하게 되었다. 컨테이너 안에 있는 검도장은 생각했던 것보다 시설이 꽤 좋다.
그러나 2023학년도를 시작으로 검도장은 컨테이너 안에서 본래의 계획대로 100주년기념관 지하로 이전했다.

5. 학교 생활

5.1. 주요 행사

  • 대면식 (3월) : 온 학생이 운동장에 나와서 1학년 대 2, 3학년으로 맞인사를 하는 행사이다. 이 때 2, 3학년들이 교가의 숨겨진 비밀을 후배들에게 전수한 어이! 다. 어이! 코로나19로 인해 전통도 끊길 위기이다
  • 학급별 교외 체험활동 (4월) : 반별 소풍. 담임의 취향에 따라 반별로 차이나타운, 선유도, 광장시장, 창덕궁 비원 등 별의별 곳을 가게 된다. 등산을 좋아하는 나이 지긋한 교사가 담임이라면, 북한산이나 인왕산을 가게 될 수도 있다. 2016년에는 파리공원에서 플래시몹을 진행한 담임 교사도 있다.
  • 교내 육상대회 (5월) : 매년 목동운동장을 빌려 육상대회를 연다.[41] 1학년들에겐 대면식 때 배운 교가의 비밀을 처음 써먹는 곳이기도 하다. 아주 흥미진진한 그들만의 리그가 벌어지고 관객석에 앉아있는 학생들은 그냥 자기들끼리 놀든지, 점심을 먹기도 한다. 이 대회에서 가장 재밌는건 사제 간 축구경기인데, 대표교사 팀과 학생회가 서로 맞붙는 축구경기이다. 일단 체력으로 교사들을 제치고, 축구쟁이가 있다면 교사를 능욕하는 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 그러나 종종 교사 팀이 우승하는 경우도 발생한다.
역대 5대 사립 페스티벌 개최 현황
회차 개최일 개최 장소 주최 학교
제 1 회 2011년 11월 5일 배재고등학교 아펜젤러기념예배당 배재고등학교
제 2 회 2013년 10월 30일 보성고등학교 강당 보성고등학교
제 3 회 2015년 5월 22일 잠실학생체육관 공동 주최
제 4 회 2016년 11월 2일 양정고등학교 강당 양정고등학교
제 5 회 2017년 5월 26일 잠실학생체육관 공동 주최
역대 5대 사립 UCC 페스티벌 개최 현황
회차 개최일 개최 장소 대상 수상 학교
제 1 회 2012년 6월 14일 중앙고등학교 강당 중앙고등학교
제 2 회 2013년 6월 12일 휘문고등학교 체육관 ?
제 3 회 2014년 6월 18일 중앙고등학교 강당 중앙고등학교
제 4 회 2015년 5월 22일 잠실학생체육관 등수를 부여하지 않음.
제 5 회 2016년 6월 8일 중앙고등학교 강당 양정고등학교
제 6 회 2017년 5월 26일 잠실학생체육관 등수를 부여하지 않음.
  • 졸업 50주년 기념 모교 방문 행사 (5월) : 졸업 3, 40주년 기념식과 다르게 50주년 기념행사는 1학년들이 직접 정문부터 도서관까지 이어지는 길에 서서 박수를 쳐준다.
  • 교내 마라톤대회 (9월) : 학교 옆의 안양천 주위 약 6km를 뛰는 행사. 2000년대에는 과천 서울대공원과 서울랜드 사이에서 8km를 뛰었다.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손기정의 영향으로 90년이 넘게 이 행사를 진행해오고 있다. 빨리 뛰면 30분 안으로 끝나지만 뛰는 사람의 비율은 학년이 올라갈수록 줄어든다. 3학년이 되면 걷는 사람의 비율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그렇지만 상위권에서는 치열한 접전이 펼쳐진다. 빨리 뛴 순서대로 시상을 하며, 평균 등수가 가장 높은 반에게도 시상을 한다. 50등 안에 들면 양정 5품제의 일환으로 1품이 등록된다. 코스는 양정고 앞 안양천 부지에서 오목교 방향으로 출발해 신정교에서 반환점을 돌아 희망교(양평교 가기 조금 전에 있는 인도교)에서 다시 돌아 학교 앞 부지로 돌아오는 코스이다.
  • 과제학습답사 (1학년, 10월) : 1980년대에 시작된 제도로, 맨 처음에는 학생들이 반에 상관 없이 자신이 가고 싶은 곳[43]을 골라서 가는, 좋게 말하면 자유롭고 나쁘게 말하면 중구난방인 제도였다. 그러나 2000년대 초에 정비되어, 두세반씩 모여 5개 정도의 문화권역으로 떠나는 과제학습답사로 바뀌었다. 많은 학교들이 벤치마킹했다고 알려진 과제학습답사는 한려해상권, 영산강권, 태백권 등으로 이루어져있고 각 권역은 과년도 만족도와 교사회의 등 종합적인 절차를 거쳐 매년 변경된다. 많은 학생들은 수학여행을 목적으로 각 권역에 '관광'을 가지만, 사실 학생이 가게 된 권역의 문화를 탐구하는 진정한 '여행'을 바라고 있다. 그 점에서 각 반마다 조를 짜서 특정 주제를 가지고 탐구하여 보고서를 쓰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2017년에는 사상 최초로 KTX로 이동했다. 2018년에는 전교생 제주도 여행이다!
  • 농촌체험활동 (2학년, 10월) : 1학년 때 전교생이 지역의 문화를 체험했다면 2학년 때는 농촌을 체험한다. 전국의 정보화된 농촌마을을 찾아서 농사 흉내만 내고 온다. 농촌이라고 하지만 모두 꾸며진 농촌이어서 인위적인 티가 많이 나는 마을들이지만 신기해하거나, 혹은 농촌이 싫거나 둘 중 하나의 마음으로 농사 흉내만 낸다. 사실 2박 3일의 체험기간 중 정말 농사체험이라고 하는 시간은 기껏해야 하루 한두 시간이다. 2000년대 전에는 진짜 말 그대로 농활로 죽어라 농사만 짓고 왔지만[44], 과제학습답사의 정비와 함께 쉬어가는 체험으로 바뀌었다.
  • 양배전 (양정배재럭비정기전) (11월) : 이 행사를 논할 때 양정고 출신 앞에서 '배양전'이라 칭한다면 눈총을 받을 우려가 높으니 조심하길 바란다. 자세한 사항은 항목 참조.
  • 수능장행례 (수능 전날) : 1990년에 고3 교사들이 강화도에 놀러갔다가 한번은 고3들 학력고사 잘 보게 해달라고 기원제를 지낸 적이 있는데 그 해 마침 서울대학교 수석이 나왔다. 다음 해에 또 해봤는데 고려대 수석이 나왔다. 그 이후로부터 매년 기원제를 해오고 있으며 2007년부터는 수능 전날 학교를 떠나는 고3들을 위해 1, 2학년들이 강당부터 정문까지 쭉 서서 박수를 쳐주는 행사도 시작되었다. 후배들이 쳐주는 박수로 뒤덮인 길을 걸으며 고3들은 내심 기분이 좋다고 한다. 박수쳐주는 고2는 다음해에 이 길을 걸을 두려움에, 고1은 오늘 빨리 집에 간다는 즐거움으로 여러가지 기분들을 느낄 수 있는 행사이다.
  • 양정음악회 (11월) : 1학년 중 음악선생이 듣기에 그 소리가 괜찮다 싶으면 학급 오케스트라로 양정음악회에 참석시킨다. 그리고 YWO와 중학교 관현악반의 정기연주회도 같이 한다. 참고로 의무 참석 행사는 아니다.
  • 월계축전 (12월 말) : 양정고등학교의 축제를 칭하는 다른 이름이다. 이틀동안 진행하며, 첫날은 흔히 말하는 '자축'으로 교내 학생들만 참가할 수 있고, 둘째 날부터는 외부 학생들도 관람이 가능하다. 1부는 동아리 별 부스를 꾸며 진행하며 2부는 공연이다. 남고라는 특성상 여학생들이 많이 온다.
  • 교내 경시대회: 정말 많다.
  • 1인 1악기
양정고가 미는 오케스트라의 지도교사와 장학사 출신의 전 교장의 합작이다. 일본 선진학교들은 고등학교 졸업과 함께 악기를 하나씩 다룰 수 있다. 그런 일본의 선진학교를 본받기 위해 양정이 벤치마킹한 제도이다.
트럼펫을 불 수 있는지 여부에 따라서 금관악기와 목관악기로 나뉜다.(플룻 제외) YWO를 제외한 보통 학생들은 금관악기로는 트럼펫, 트럼본, 플룻, 목관악기로는 색소폰, 클라리넷 등을 1년동안 연주하게 된다. 3년동안 계속하면 일본의 선진문화를 받아들일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고작 1년, 그것도 일주일에 두시간을 악기연습을 한다고해서 악기를 연주할 실력이 되지 않는다. 간단한 선율의 짧은 악곡이라면 모를까.
악기들이 보통 부피가 크기 때문에 가격이 비싸다. 특히 색소폰의 경우는 가장 싼 국내산이 40만원을 웃돌기 때문에 몇몇 아이들이 너무 비싸다고 한다.

1년 동안 악기연습을 하고 나서 2학기 말쯤 되면 '악기인증시험'이라는 것을 치게 되는데, 여기서 합격을 받게 된다면 양정1품(예·체능 부문)을 받게 된다.[45] 악기인증시험은 쉬운 곡들 4개 정도를 추려서 치르게 된다
  • 양정5품제
고등학교 재학 중에 5개 분야에서 특출한 능력을 보이는 것을 증명할 수 있을 때 3학년 1학기말에 5품을 수여한다. 상은 3품, 4품, 5품 인증서가 있으며 5품의 항목은 다음과 같다. 3품 소유자는 100명이 넘을 정도로 숫자가 꽤 되나, 4품, 5품은 거의 없다.
2018년에 대대적인 개편이 이뤄졌다.
  • 1. 인문 정보 영역 : 하위 조건 중 1개 이상 조건을 만족하면 1품 수여
    • 5품제-독서 (2년간 책 20권 이상 독서 기록)
    • 컴퓨터 활용능력 2급 이상
    • 워드프로세서 2급 이상
    • 정보처리기능사 자격증
    • 정보기기운용기능사 자격증
    • 인터넷 정보관리사 2급 이상
    • 아마추어 무선기사 3급 이상
  • 2. 경시대회 영역 :
    • 올림피아드 또는 전국 규모 경시대회 입상시
    • 광역자치단체규모 경시대회 동상 이상 입상시
    • 교내경시대회 동상 이상 입상시
    • 교내각종 보고서(1인 2과제, 과제학습답사, 농촌체험보고서) 동상 이상
  • 3. 인성 영역 :
    • 3개년간 150시간 이상 봉사활동 이수시
    • 재학 중 선행활동으로 교내외에서 표창을 받을 시
    • 3개년간 학생회, 학급, 동아리 임원[46]으로 3학기 이상 활동할 시
  • 4. 예체능 영역 :
    • YWO 단원이거나 대외 음악경연대회에서 입상시
    • 1학년 말에 실시되는 악기인증시험에서 합격 시
    • 교내외 미술실기대회에서 입상시
    • 1인 1도자기 작품 중 전시자격을 인정받을 시
    • 교내 공모전 동상 이상 수상시[47]
    • 교내외 체육대회에서 입상시 (교내마라톤은 50등 이내)
  • 5. 외국어 영역 :
    • 영어경시대회 은상 이상, 영어말하기대회 동상 이상, 영어퀴즈대회 금상 이상 수상

5.2. 국제교류

대한민국 고등학교 최초로 국제교류를 시작하였고, 현재 다수의 학교와 자매결연을 맺고 교류하고 있다. 그렇기에 국제교류 활동이 상당히 많으며, 많은 학교들이 양정고의 국제교류 시스템을 벤치마킹하였다. 이 국제교류에는 엄규백 이사장의 상당한 공헌이 있었다. 현재 스포츠 교류, YWO의 음악 교류를 제외하고, 일반 학생이 참여 가능한 국제교류활동은 총 9개가 있다.

출국 두세 달 전에 서류심사를 보아야 하고, 경쟁이 치열하면 면접까지 봐야 한다. 보통 면접을 보지 않고, 영어 성적에서 밀린 지원자들이 프랑스, 이탈리아에서 탈락하여 일본, 대만으로 밀리는 구조다. 그러므로 경쟁은 아시아권보다 유럽권이 더 치열하다. 어찌보면 심사가 당연한 것이 영어 의사소통이 자유롭지 못한데도 유럽권을 가게 되면 아주 고통이 크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만과 일본은 영어를 못하는 파트너가 걸릴 수 있다. 제2외국어에 특출나지 않아 파트너와 영어로 대화를 해야 한다면 영어 회화 실력이 필수이며, 파트너 선정 운도 따라야한다. 자칫하다가는 구글 번역기를 사이에 두고 대화해야 할 수 있다.

보통은 양정고 학생들이 자매 결연을 맺고 있는 해외 학교에 방문하면 몇 달 후 해외 학교에서 양정고를 방문하는 형식으로 진행되고 있다. 자매 학교의 방문 시기는 보통 겨울방학 기간 동안 진행되지만, 일본 자매 학교와의 교류는 학기 중에 이루어진다. 기본적으로 홈스테이, 관광지 탐방, 학교 수업 참관 등의 활동을 하며, 세부 사항은 국가마다 다르다. 국제교류의 가장 큰 장점은 호텔이나 기타 숙박 시설에서 머무르는 게 아닌 그 나라 학생의 집에서 머문다는 점이며, 그 덕에 그 나라 문화를 아주 깊게 느낄 수 있다. 그러므로 그 나라로 떠 나기 전에 해당 국가의 식사 예절 정도는 배우고 가는 것이 현명한 행동이다. 비행기 값만 내고 일주일 가량을 외국에서 지내는 구조라 일본, 대만 등 아시아권 국가일 경우는 50만~60만원 대에 1주일 정도 국제 교류가 가능하며 프랑스, 이탈리아유럽 국가는 160만-170만원 선에서 10일 가량 교류를 진행할 수 있다. 이게 다 비행기 값이다. 기념품을 제외하곤 호스트 가정에서 부담하는 경향이 크다.

반대로 해외 자매 학교에서 양정고로 왔을 때, 부담이 될 수도 있지만 부담되는 비용은 개인에 따라 다르다. 보통 다른 페어들과 단체 행동하는 경우가 많다. 둘이서만 다닐 수도 있다. 보통 주중에 학교 수업이 끝나거나, 주말이면 놀이코스를 정하는데 몇가지 기준이 있다. 보통 남산 - 한강 - 롯데월드가 표준 코스이지만, 가끔은 북촌한옥마을에 가는 팀도 있고, 목동아이스링크장에 가는 팀 등 서울의 다른 여러 군데를 구경시켜주기도 한다. 다만, 특정 국가 국민이 원하는 장소는 꼭 데려가야 한다. 그들의 한국 투어 주 목적이기 때문이다. (ex : 대만 - 명동)

국제교류가 종료된 후 며칠 동안 후유증이 있는 것이 보통이다. 일정 문제와 국제교류 친구와의 우정 쌓기 등등으로 국제교류 기간 동안 공부 따위 하지 않게 되고, 그만큼 이후에도 연필을 손에서 잡기 힘들게 된다. 대부분의 사람이 평생에 두 번 볼까 말까 한 외국 친구와 십중팔구는 정이 들게 되는데 그러면 큰일난다. 귀국 후 며칠 동안은 보고 싶다고 징징대기도 한다. 물론 아닌 경우도 많다.

2015년 국제교류는 이탈리아, 대만, 일본의 학교의 학교들과 진행되었다. 프랑스는 2015년에 일어난 IS 공격으로 인해 취소되었다. 프랑스 정부에서 3개월 동안 모든 국제교류 활등을 금지했는데, IS의 공격이 11월, 모든 국제교류가 1월이었기 때문에 전부 취소되었다. 당연히 원래 프랑스에 가기로 되어 있었던 학생들은 격분했고, 아마도 2016/17년 국제교류 선발 시에 우선권이 주어질 확률이 높다

  • 대만
파일:changjung.jpg
長榮高級中學
장영고급중학 (타이난 시)

장영고급중학 홈페이지


1885년 타이난 시에 설립된 대만에서 가장 오래된 학교로 인문계, 상업계, 직업계 중·고등학교로 이루어져있다. 덕분에 전교생이 6,000여명에 달한다. 학교의 면적이 매우 넓어 대학교 못지않아, 이곳으로 국제교류를 가는 사람들은 한낱 고등학교 캠퍼스에 취하고 만다

매년 1월 대만에 방문한다. 타오위안 국제공항에 내려서 차를 타고 3시간 30분을 들어가야 한다. 공항은 타이베이 근처로 국토 북쪽에 있지만 타이난시는 국토 남쪽에 있어 남북을 종단해야한다.

공식일정으로 공자묘, 대만역사박물관, 적감루, 녹색터널 등 자연과 역사로 이루어진 투어를 진행한다. 사실 거의 모든 사람은 대만의 명물 야시장을 가려할 것이다. 대만 친구들도 우리가 야시장에 가고 싶어하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거의 대부분 야시장으로 놀러간다. 야시장에 가서 대만 파트너가 소개해주는 음식을 먹으면 진정한 중화요리의 맛을 느낄 수 있다. 다만 자칫하다간 매일 야시장에 갈 수 있다. 중국 특유의 향신료를 싫어하는 사람은 좀 고달플 수도 있다. 특히 취두부가 그런데, 대만 사람들도 취두부가 해외에서 악명이 높다는 걸 잘 알기에 한번씩 시서 먹여주기도 한다.

주말엔 보통 친구들끼리 가오슝 해변[48]으로 놀러가는 것이 가장 무난한 놀이코스다. 대만 식품 물가가 한국보다 저렴하므로 공차와 동과차를 실컷 맛볼 수 있다. 또한 지리적 특성상 지진이 자주 일어난다. 그러므로 대만에 머무르는 동안 지진 경험을 할 수 있다.

  • 이탈리아
파일:enricotosi.jpg
I.T.C Enrico Tosi
엔리코 토시 고등학교 (부스토 아르시치오 시)

이탈리아 북부 밀라노 근처에 있는 공립학교다. 남녀공학으로 학생 수는 600명 남짓이다. 휴일 또는 관광일에 밀라노를 방문하여 밀라노 대성당 등을 관광하며, 꼬모라는 휴양도시도 방문한다. 원래 이탈리아는 서구권 학생들과 교류는 하고 싶지만 프랑스의 높은 경쟁률을 피하고 싶을 때 선택하는 후보군 비슷한 위치였는데, 2015년에 발생한 파리 테러로 인해 프랑스와의 국제교류가 모조리 취소되며 졸지에 서구권 단독 교류 학교가 되어버렸다. 참가해 본 학생들에 의하면 밀라노와 꼬모 관광, 홈스테이는 재미있으나 부스토 아르시치오 시가 워낙 작은 곳이라 시내 관광은 전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는 듯.


아자부고등학교 홈페이지
스바루학원고등학교 홈페이지
칸토국제고등학교 홈페이지
게이오기주쿠대학 부속고등학교 홈페이지


주로 한국어과에서 공부하고 있는 학생들과 교류한다. 그렇기에 모든 국제교류 학교 중 의사소통의 불편함이 가장 적은 학교다. 학생과 가족 모두 한국어가 어느정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아자부 고등학교는 남고라서 인기가 많은 편은 아니다. 하지만 학교의 명성과 지위는 현재 양정고와 교류하는 학교들 중 최고를 자랑한다. 매년 도쿄대 합격자 top 10을 유지하며, 자타가 공인하는 도쿄 3대 명문고등학교로 일본 사람들은 아자부라는 말만들어도 자지러진다고 한다.[53] 매년 입시결과로 학년당 6~70명이 도쿄대를 간다는 우수한 학교. 또한 아자부는 도쿄의 대표적인 부촌에 자리잡고 있어서 학생들의 집안과 재력도 만만치않다. 아무래도 피지컬이 비슷하고 동성이라 그런지 잘 어울리고 한국으로 치면 민사고 학생들이랑 일본어로 대화하면서 노는 것이라서 만족도가 높고 자신도 명예 아자부생이 된 듯한 프라이드가 생긴다.

스바루학원고교는 주부 국제공항에서도 버스로 2시간이 걸리는 깡촌 미에현에 위치하고 있다. 시골이라서 모두가 기숙사 생활을 한다. 다른 나라에 가면 새벽까지 놀 수 있는데 여기는 소등시간 때문에 그럴 수도 없다. 교기가 조정인 학교라서 조정체험을 한다는 것이 특별하다. 그런데 너무 시골이라 놀 것도 별로 없고, 즐길거리가 적다는 것은 흠.

  • 프랑스
파일:francs.jpg 파일:loquidy1.jpg 파일:camille.jpg
Lycée Francs - Bourgeois
프랑부르주아 고등학교 (파리 시)
Lycée Saint-Joseph du Loquidy
생 조셉 뒤 로퀴디 고등학교 (낭트 시)
Lycée Camille Saint-Saëns
카미유 생상스 고등학교 (루앙 시)[54]

프랑부르주아 고등학교 홈페이지
생 조셉 뒤 로퀴디 고등학교 한국 교류 소개 홈페이지
카미유 생상스 고등학교 홈페이지


명실상부 최고의 경쟁률을 보이는 학교들이다. 특히 많은 학생들이 프랑부르주아 고교를 목표로 지원하는데, 학교가 파리 시에 위치하고 있어 주말에 친구들과 에펠탑, 개선문 등 파리 관광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얻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것을 노리고 가는 학생들이 많다.[55] 그리고 학교 방문 시 공식 일정에 관광이 포함되어 있는데, 일례로 낭트의 로퀴디 고등학교에 가게 되면 몽생미셸을 방문한다. 비슷하게 프랑스 학생들이 서울에 와도 경복궁이나 봉은사, 템플스테이 등이 일정에 들어간다. 현지에서 홈스테이를 하게 되면 프랑스 특유의 우월함에 빠져들게 되는데 프랑스 요리가 입에 안 맞아 깨는 경우가 있다. 보통 한국을 올 때 아주 싼 현지 마카롱을 사오는 경우가 많다. 생상스 학교는 학풍이 매우 자유로워 평생 오지 않을 자유로운 영혼을 만끽하길 바란다.[56]

세 개의 학교 중에서 유일하게 2022년 현재까지 학생교류가 진행중인 낭트의 로퀴디 고등학교와는 2014학년도부터 교류가 시작되었는데[57] 참가 학생들의 평이 굉장히 좋다. 유일하게 파리 샤를 드골 국제공항에서 낭트행 프랑스 국내선으로 한 번 환승한다. 파리와는 고속열차 TGV로 3시간 정도 거리인데 호스트 가족들과 함께 주말을 이용해서 파리에 다녀오기도 한다. 학교는 중학교와 붙어있는 기독교 계열 고등학교로 남녀공학이다. 낭트 안에서도 꽤 알아주는 사립 고등학교이니만큼 학생들은 평균적인 프랑스 고등학생들보다 매우 착하고 학구열도 높은 편이다. 또한 현재 한국어교사가 있어서 1, 2, 3학년 모두 선택과목으로 한국어 수업이 진행 중으로 한국어반 학생들은 정말 좋아서 한국어를 선택한 사람들이기에 다들 한국어에 대한 열정이 넘친다. 다만 한국어로 대화가 가능할만큼 능통한 학생들은 3학년이 아니고선 잘 없는 편이라 국제교류에 참가할 때 간단한 정도의 프랑스어 회화와 영어를 겸비하면 좋다.

2015년에 IS에 의한 파리 테러가 일어난 후 모든 교류가 중단되었으나, 2016/17년부터 제한적으로 로퀴디 고등학교와의 국제교류가 재개되었다.[58] 나머지 학교들과는 언제 교류가 재개될지 미지수이다.

이후 17/18, 18/19년까지 낭트의 로퀴디 고등학교와 국제교류가 원활하게 진행되었으나 2020년 초반 전 세계를 강타한 코로나 시국의 영향으로 1월에 양정고등학교 학생들이 프랑스에 가긴 했으나 결국 프랑스 학생들이 한국에 오지 못했다. 이후 2년간은 양정과 로퀴디 학생들이 영상통화를 하는 형식으로 비대면 국제교류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있다.

현재 양정에서 프랑스어 수업이 지속적으로 줄어들고 있는 탓에 위태위태하긴 하지만 그에 반해 프랑스를 휩쓴 한류 열풍과 높아진 한국어 교육열로 인해 양정을 방문하고 싶어하는 로퀴디 학생들의 수요는 계속해서 늘어나는 중이다. 또한 2022년 현재 양정고등학교의 국제교류부장 선생님과 로퀴디고등학교의 한국어 선생님 모두가 학생교류 재개에 매우 긍정적이라 코로나 19가 진정된다면 프로그램이 재개될 확률이 매우 높다. 2022년 11월에는 로퀴디고등학교에서 교장 명의로 이태원 참사 위로문을 양정고등학교에 보내는 등 학교차원에서의 교류 역시 이어지고 있다.

  • World School Forum
파일:wsf.jpg
World School Forum (세계교실) 로고

1997년부터 일본 도쿄의 칸토국제고등학교[59]에서 주최하고 있는 전세계 20여개 학교가 모여 진행하는 포럼이다. 주최 학교가 칸토국제고등학교이다 보니 한 해는 칸토, 다른 해는 해외의 학교에서 개최되고 있다. 양정고등학교에서는 매년 학생들을 3명씩 뽑아[60] 개최국으로 가고 있다. 근데 이 개최국 중에는 일반적인 국제교류로 갈 수 없는 지역들[61] 이 많기 때문에 지역에 따라 경쟁률이 달라진다. 프로그램은 크게 현지 관광, 각국의 문화 교류 및 홍보[62], 그리고 메인인 회의로 구성되어 있다.[63]

회의에 참석하는 대표학생의 선발 과정은 크게 세 단계로 나뉘어진다. 첫번째는 영어 에세이 작성, 두 번째는 원어민 교사 면접, 그리고 세 번째는 부장교사의 면접이다.[64] 또한 (표면적으로는) 성적을 보지 않는다는 일반 국제교류와는 달리 월드스쿨 대표 학생을 뽑을 때에는 성적이 공식적으로 평가 기준에 들어간다.[65]

2010년에는 양정고등학교가 개최학교였는데, 주제는 'Housing Culture (주거문화)'였다. 자세히 찾아보면 이 회의의 잔재가 아직까지도 남아 있는데, 이 회의 직전에 창설된 국제교류부는 아직도 양정고등학교의 주요 부서로 남아 있고, 식당 앞 정원에 기념식수가 심어져 있으며, 도서관 2층 자습실 앞 복도에 이 회의 당시 세계 각국의 참가 학교들이 선물한 기념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양정고등학교가 한국을 대표해서 이 회의에 참가하게 된 계기가 나름 특이하다. 이 회의가 처음 시작된 90년대 후반, 칸토국제고등학교는 각 나라의 대사관에 연락을 돌려 각국을 대표할 만한 고등학교를 추천해 달라고 부탁하였는데, 그 당시 '세계사립학교협회'의 협회장이었던 현 이사장의 덕을 봐서(?) 한국 대사관이 양정을 추천하게 되었고 그 이후로 계속 참석하게 된 것이다.

6. 운동부

손기정으로 대표되는 육상부와 함께 럭비부와 농구부도 운영되고 있다. 특히 럭비부는 국내에서도 손꼽히는 명문으로 자리하고 있다. 과거에는 축구부, 야구부, 아이스하키부, 수구부, 정구부 등 정말 다양한 종목의 운동부를 운영한 바 있다.

7. 출신 인물

  • 자랑스런 양정인
양정 창학 100주년 기념사업회에서 학교 발전에 뚜렷한 업적을 남긴 21인의 동문을 선정, 헌양했다. 선정위원회는 양정 역사에서 학교의 위상을 드높인 공로를 인정받은 동문 출신 인사들 가운데 '양정의 얼굴 21人'을 엄선했으며, 선정 기념식장에서 '양정의 얼굴' 기념패를 당사자 또는 가족들에게 전달했다.

다음은 양정의 얼굴 21인 명단과 선정 사유이다.[66]

파일:양정고 투명로고주황색.png
양정고등학교
자랑스런 양정인
성명 기수 업적
박상진 양정의숙 대한광복회 초대 총사령
안희제 양정의숙 독립운동가, 중외일보 사장
이병규 2회 화가, 국전심사위원장
김현철 3회 대한민국 내각수반
장덕창 3회 공군참모총장
김진섭 4회 수필가, 서울대학교 교수
박병래 7회 보건부 장관, 성모병원장
박진 7회 국립극단 단장
진헌식 7회 제헌 국회의원
손재형 9회 서예가, 한국예총회장
배정현 11회 대법관
윤석중 14회 아동문학가
서옹 16회 대한불교 조계종 종정
류달영 17회 재건국민운동본부장
김영상 21회 동아일보 편집국장, 서울600년사 편찬위원장
손기정 21회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우승
장욱진 23회 화가,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교수
김기령 29회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교수, 세계이비인후과 학회 고문
송범 29회 국립무용단 단장
강신호 30회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
홍일식 38회 고려대학교 총장

  • 그 외
가나다순으로 정렬해주시기 바랍니다.
나무위키에 등재될 정도의 저명성 있는 인물만 기록 가능합니다.
  • 종교인
    • 송두용 : 무교회주의 기독교 사상가 (8회)

8. 이용 가능한 대중교통


양정고등학교
연계 교통
파일:양정고 투명로고주황색.png

도시철도
  • 위의 5개의 역이 그나마 가까운 지하철역이지만 그 마저도 1km이상 멀리 떨어져 있고, 당산역영등포구청역은 다리 건너에 있기 때문에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오려면 버스를 타거나 지하철역에서 따릉이를 타고 와야한다. 도보 이동시 모든 역이 20~30분 정도가 걸린다.[78]
  • 추후 목동선이 개통하면 학교 바로앞에 목동종합운동장역이 생기면서 이 학교에서 버스나 자전거를 타지 않고 지하철을 이용할수 있게 된다. [79]







시내버스
이대목동병원.목동6단지앞 (15154)
  • 6637번 버스는 다음 정류장인 양정고등학교 정류장이 이곳에서 더욱 더 가깝다.

파일:서울특별시 휘장.svg 서울특별시 시내버스




파일:부천시 CI.svg 부천시 시내버스


파일:서울특별시 휘장.svg 서울특별시 공항버스


양정고등학교 (15158)[80]

파일:서울특별시 휘장.svg 서울특별시 시내버스


목동5,6단지사잇길.경인초교/목동아파트601동앞.이대병원 (15156/15155) [81]

파일:서울특별시 휘장.svg 서울특별시 시내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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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사건 사고

9.1. 2023학년도 신입생 합격여부 번복사건


광역 자율형 사립고등학교인 양정고등학교는 2차 면접 후 예정대로 2023년 1월 2일, 학교 홈페이지를 통해 2023학년도 신입생 합격 명단을 발표하였다. 그런데 다음날인 1월 3일, 학교 자체조사 결과 일반 전형 396명[82]의 일반 전형 지원자 중 약 6분의 1에 해당하는 60여 명의 지원자의 합격 여부를 번복시켰다.[83] 양정고는 "수험번호를 시험장 번호로 변동하는 과정에서 오류가 생겼다"며 "결과에는 오류가 없음을 확인했다"고 해명했다.

학부모들은 400명도 안 되는 면접 대상자 처리과정에서 어떻게 오류가 날 수 있냐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결국 이 사건으로, MBC, SBS, JTBC 정치부회의까지 보도되었다.

10. 기타

  • 배재고와는 지리적으로 만날 일도 없는 먼 사이지만[84] 양배전 등을 통해 왠지 모를 라이벌 의식이 형성되어있다. 2015년 치뤄진 2015 5대사립 Festival에서도 양정고의 성적은 저조했으나 배재고를 상대로 한 경기는 모두 이겨 '다른 학교는 못 이겨도 배재만 이기면 됐다!' 라는 분위기로 훈훈하게 끝났다.
  • 매년 배재고등학교와 양배전[85]이라는 럭비 정기전을 가진다. 양정고 홈그라운드인 목동경기장과 배재고 홈그라운드인 잠실경기장이 해마다 번갈아 개최지로 선정된다. 그러나 요즘에 잠실경기장 대여요금이 많이 올라서 성남경기장을 쓴다는 말도 있다. 2014년에 세월호 참사로 인해 개최되지 않아서 본의 아니게 양정 홈그라운드인 목동 운동장에서 2회 연속 개최되었다. 그리고 2018년,2019년 양배전도 목동운동장에서 개최되었다.
  • 양정고등학교, 진명여자고등학교, 숙명여자고등학교에는 '백선'이라는 표식이 있다. 양정의 창학은 순헌황귀비 엄씨가 조카인 양정 창학자 엄주익 선생에게 대한제국 황실의 자금을 대주고 민족사학을 기르라는 조언에서 시작되었는데, 그렇게 황실의 지원을 받아 세워진 학교가 양정학교, 진명여학교, 숙명여학교이고 이 학교들의 교복에는 황실의 표식인 하얀 선, 즉 백선이 남아 있다. 양정-진명-숙명 순으로 창학되었기에 양정고는 1줄, 진명여고는 2줄, 숙명여고는 3줄. 현재 양정고의 백선은 외투(마이) 이름표 밑에 남아 있다.[86]
  • 겨울 교복의 경우 원래 바지, 셔츠, 재킷의 심플한 구성이었으나 2014년 들어오면서 학생회에 의해 와인색 조끼가 도입됐다. 구입은 필수이나, 착용은 선택이다.
  • 양빤에 대비되어 체육복 윗옷은 진한 남색과 양빤과 똑같은 주황색이 가로 줄무늬로 들어가있다. 윗옷 디자인은 양배전 항목의 사진을 보면 알겠지만 럭비부의 복장 디자인에서 차용한 것. 실제로 보면 옷깃 부분이 럭비부 운동복은 흰색인데 반해 학생 체육복은 해당 학년의 이름표 색깔이 들어간다. 색감도 조금 다르다. 몇몇 학생들은 꿀벌이나 죄수복이라고도 부른다. 이 체육복을 입고 밖을 활보할 일은 극히 드물기 때문에 타학교 학생들은 의외로 이 디자인을 잘 모른다. 매년 가을 안양천에서 진행하는 교내 마라톤대회때 수백명이 하복 체육복 차림으로 길을 건너는 장면은 지나가던 시민들에게 컬쳐쇼크를 선사하기도 한다.
  • 운동부로는 럭비부와 농구부가 있다. 럭비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깊은 전통의 명문이라고 하나, 국내에서는 럭비 자체가 워낙에 비인기 종목이라 인지도는 낮다. 농구경복고, 휘문고 같은 전통의 명문팀에는 미치지 못하더라도 최근 들어 프로 선수[87]들을 여럿 배출하며 떠오르는 강호가 되고 있는 듯. 또 손기정을 배출한 육상부도 선수 수급 문제로 한동안 문을 닫았었다가 2016년 부활했다.
  • 대한민국에서 최초로 수학여행을 시작한 학교이다. 1920년대 후반에 시작하여 전국으로 퍼져 나갔다고 한다. 실제로 자료관을 찾아보면 평양을밀대, 만주의 봉천, 백두산천지 등등 지금은 상상도 못할 곳을 1930년대에 다녀온 기록사진이 남아있다. 현재는 1학년은 과제학습답사, 2학년은 농어촌 활동 체험으로 이름이 바뀌어 차별화를 꾀하는 중이다. 모든 반이 같은 곳에 가는 것이 아니라 여러 그룹으로 나누어서 여행을 떠난다.
  • 한국사의 굵직한 사건들의 주인공까진 아니어도 참여를 자주 한 학교이다. 한국광복군 박상진이 양정 출신이며, 심훈의 명시를 남기고 일제 치하의 조선에 희망을 준 상술한 손기정도 양정 출신이다. 또한 광주학생항일운동의 도화선이었던 열차 희롱 사건의 당사자 박준채는 광주제일고등학교 중퇴 후 많은 학교들이 일제의 보복이 두려워 다른 학교에 편입하지 못했으나 양정고에 편입해 졸업했고, 이후 와세다대학에 진학한 뒤 조선대학교 법학과 교수로 재직하다가, 2001년 노환으로 별세하였다. 광주학생항일운동 당시 양정고에서도 항일운동이 일어나 30여명이 퇴학 또는 무기정학 처분을 받았다. 그리고 4.19 혁명 때도 양정고 학생들과 선생들이 참여해 5명이 혁명 지도자로 인정받아 1963년에 포상을 받았다. 4.19혁명 참여 기념비는 정문으로 들어오면 바로 우편에서 볼 수 있다. 일제시대에는 양정고등학교 학생들 몇 명이 교내에서 비밀 항일운동 조직을 만들어 활동하려다 일제에 검거되는 일도 있었다. 다만 정확한 명수나 활동내역등은 기록이 소실되어 알 수 없다.
  • 100년 넘는 시간 동안 유명인사들을 많이 배출한 학교다 보니 희한한 전시물들이 곳곳에 숨어 있다. 대표적으로 이 학교 도서관에는 방망이 깎던 노인에 나오는 윤오영의 실제 다듬잇방망이가 전시되어 있다. 그렇다고 관리를 잘하고 있냐면 그것도 아닌 게, 그냥 유리 상자에 대충 짱박아둔 게 전부다. 실제로 양정고 학생도 모르고 지나칠 정도로 책장들 사이에 무심하게 전시해놓았다. 이것 말고도 담배, 펜 등 윤오영의 생전 유품을 볼 수 있다. 윤오영의 유품 말고도 본관 1층 복도에 놓여있는 실러캔스 화석이라던가 이런 유물들을 모아 도서관 1층에 양정 역사관을 만들었는데 평소엔 개방하지 않는다. 2015년엔 학교 도서관 1층에 화석 박물관이 생겼다. 동시에 실러캔스 화석도 여기로 옮겨졌다.
  • 뭐 학교 본관을 이전한 어느 학교나 안 그러겠으나 1988년 만리동에서 목동으로 이전할 때 재학생들이 엄청나게 고생했다는 후문이 있다. 지금이랑 다르게 당시 목동은 막 개발에 들어간 진짜 아무것도 없는 곳이었고 당연히 전철도 없어 만리동에서 버스로 1시간 반을 통학해야 하는 지옥의 통학이었다고.
  • 2005년 양정 창학 100주년을 맞이해 각종 행사와 동시에 100주년 기념탑 제막, 100주년 기념관 건립이 있었다. 100주년 기념탑은 나름대로 상징성도 있고 해서 단체사진 등의 배경이 되곤 한다. 그런데 100주년 기념관은 기껏 지어놓고 10년 넘게 주차장 겸 창고로 무의미하게 쓰다가 2018년도부터 100주년 기념관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1층: 헬스장(럭비부 체력 운동)
2층: 산악반실, 태권도장, 탁구장
3층: 양정장학재단이 사용 중이다.
  • 엄규백 전 이사장 생전에는 가뜩이나 뭐 하는 곳인지 모르겠던 백주년 기념관 지하1층에 이사장의 은밀한 오징어 양식장이 위치한다는 이야기가 돌았다(…)
  • 손기정 선수가 양정 출신이어서 이에 관련된 행사와 이름이 많다. 1921년 시작된 교내 마라톤 대회는 2015년 기준 95회를 맞이했고, 월계관에서 모티브를 얻어 축제의 이름은 '월계축전'이다. 다른 학교와 다르게 축제를 수능과 내신이 모두 끝난 12월 말에 하는 게 특징.[88]
  • 초대 교장 엄주익 선생(1905 ~ 1930년 역임) 이래로 2대 안종원 선생(1931 ~ 1941년 역임), 3대 서봉훈(1941 ~ 1947년 역임)선생[89] 이후로는 4대 엄경섭 선생[90](1948 ~ 1972년 역임), 5대 엄규백[91][92](1973 ~ 2007년 역임) 선생에 이르기까지 계속 엄씨가 학교의 최고직을 맡았다. 6대부터는 교장이 김창동 선생(2008년 ~ 2014년)[93]으로 바뀌며 엄씨가 일선에서 물러나는가 싶었으나, 결국 이사장 직을 차지하는 것으로 되었다. 사립학교에서 한 가문이 계속 교장이나 이사장을 맡는 것이 이상한 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100년 가까이 요직을 차지하고 있으니 학생들 사이에서는 독재라는 말도 많이 나오고 있다. 엄규백 전 이사장은 2020년 10월 22일 숙환으로 타계했다.
  • 엄규백 전 이사장은 경기고등학교 재학 시절 한국전쟁에 학도병으로 참전했는데, 그래서인지 ‘부대찌개’란 명칭을 끔찍하게 싫어했다. 옛날에 미군부대에서 먹다가 버린 걸로 만들었던 것인데 학생들에게도 절대로 그 이름으로 부르지 말라고 얘기했을 정도. 그래서 양정고등학교 식당에서는 “햄모둠찌개“라고 불린다.
  • 제2외국어로 중국어, 일본어, 한문이 대다수인 최근의 트렌드에 반해서 일반고등학교로서는 드물게 제2외국어 선택과목으로 프랑스어 수업을 운영 중이다. 이는 프랑스 낭트에서 석사를 했던 엄규백 전 이사장의 취향이 강하게 반영된 것으로 한국의 대표적인 친불인사로 유명했다. 양정에서의 프랑스어 교육은 전 이사장이 교장으로 취임했던 1973년에 시작되어[94] 2001년 독일어 수업이 없어지던 와중에도[95] 꿋꿋하게 현재까지 지속되고 있다. 이에 지속적인 프랑스어 수업 운영과 한불간 학생교류 프로그램에 이바지한 공로로 2014년에는 프랑스의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받기도 했다.#[96] 다만 이사장 타계 이후[97] 제2외국어 선택이 자율로 바뀐 현재는 지속적으로 선택자가 감소해 위태로운 분위기이다.
  • 학교 역대 이사장, 교장들 중에 각각 친러, 친일, 친미, 친불파가 다 있고 박정희 때 통일주체국민회의 교육부 인사로 뽑힌 인물들도 있다.
  • 이사장 집안이 친일반민족행위자는 아니지만 창씨개명을 한 적이 있다. 1938년도 교무일지를 보면 양정 교사들이 단체로 창씨개명을 한 사실이 나오는데, 거기 현 이사장의 부친인 엄경섭 전 교장이 奈城儆燮(내성경섭)[98]으로 개명했다고 나와 있다.
  • 면학 분위기도 좋은 편이고 집단 따돌림과 같은 학교 폭력 문제도 거의 발생하지 않으나,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이 아닐 뿐 간간히 존재한다. 다만, 도난 사건은 어느 정도 발생하는 편이니 물건 간수 잘 하자.
  • 2014년에는 2015학년도 수능 만점자와 함께 포켓몬스터 월드챔피언 박세준을 배출하였다.
  • 여느 남고가 그렇듯이 이과문과의 비율이 극악 수준이다. 2 대 1 수준. 게다가 문과는 한 반 정원이 30명 조금 안 되는 정도이고, 이과는 정원이 36명 정도이다. 2016년 3학년은 문과반 3개, 글로벌반 1개, 이과반 8개로 구성되어 있다.[99]
  • 자율형 사립고등학교로 전환한 2011년부터 2017년 신입생까지 "글로벌반"을 운영한 적이 있었다. 취급은 문과로 들어갔으나 일반적인 문과 과정과는 다르게 연세대학교언더우드 국제대학 및 기타 특기자 전형 입시에 특화되어 일주일에 영어가 무려 8시수였다. 하루에 영어만 두 교시인 날도 많았던 셈.[100] 거기다 제2외국어도 2학년은 주당 3시간, 3학년은 주당 2시간인 등 여러모로 언어에 특화된 커리큘럼이었다. 특성상 학년당 한 반으로 운영됐기에 2-3학년 2년동안 반이 바뀌지 않고 그대로 올라갔다. 그러다 2017년 신입생인 양정 103기 학생들을 끝으로 문과와 이과가 통합되며 자연히 글로벌반도 없어지게 되었다.
  • 서울에 소재한 고등학교 치곤 야자를 그렇게 안 시키는 편이다. 이유인즉슨 학원에 가야 하니까. 물론 진담이고 양정고 자체가 크게 살벌하거나 건조한 분위기가 아니다. 150등까지만 야자실 이용권한을 준다거나 하는[101] 물론 3학년이거나 엄한 선생님 반에 걸리면 얄짤없다.
  • 교정과 운동장이 정말 넓다. 교정에는 조오련 기념탑, 양정 럭비 기념탑, 시비 등등 여러 비석들이 세워져있고 나무들이 많아 그늘에서 쉬기 좋다. 운동장은 자사고 전환 당시 지원금을 받아 인조단지로 바꾸고 트랙도 깔았다. 양천구 관내의 고등학교 중에서는 제일 큰 운동장이다.
  • 양정고등학교 정문은 과거 만리동 교사의 정문을 그대로 가져왔다. 이는 대한민국에서 제일 오래된 고등학교 정문이라고 한다.
  • 파일:ycnimby.jpg 파일:ycnimby2.jpg

    2005년, 6단지 주민들이 컨테이너로 후문을 봉쇄한 모습.
  • 학생들은 학교 정문보다 학교 후문을 많이 이용하는데 학교 후문을 나서자마자 바로 왼편에 철제 울타리가 쳐져있다. 그 철제 울타리의 설립주체는 6단지쪽인데 양정고 학생들의 후문 이용을 굉장히 싫어한다. 교사 이전을 하면서 후문을 6단지쪽으로 나갈 수 있도록 만들자, 양정고 학생들이 후문 앞에서 많이 시끄럽게 굴었나 보다. 그리하여 2000년대 초, 후문 바로 앞에 컨테이너박스를 설치하여 6단지가 양정인들의 후문출입을 강제로 금하였다. 이대목동병원과 양정고 사이의 공터는 6단지 소유의 땅이라서 학교 측이 뭐라 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다가 타협하여 철제 울타리를 설치하여 좁은 문 하나만 열어놓았다. 그 결과 등교, 하교 시간에 병목 현상이 일어나게 되고 움푹 파인 블럭이 많아 비가 오는 날에는 더욱 심각한 병목현상에 징검다리 건너듯 돌들을 하나씩 밟으며 등교해야 한다. 그 철제 울타리는 변색될 때마다 6단지가 페인트칠을 하고 있어 관리를 잘하고 있다. 매년 학생회장 공약으로 하나씩 나오는 것이 철제울타리 철거이지만 20년동안 공약에 머물러 있고 철거는커녕 6단지와의 알력만 심화되고 있다. 2015년에 학생회 측에서 진지하게 철거 제안을 하자 "그러면 양정 학생들이 6단지에서 환경미화활동을 해 주세요" 라는 말을 남겼다. 6단지 측은 "양정학교가 그 공터를 사면 된다"는 말도 나오고 있지만, 정작 이대목동병원이 장례식장 방문객을 위한 주차장을 설치하려고 땅을 사려고 하자 반대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실 6단지 주민들도 양정 학생들이 6단지에서 담배를 피거나 몰려다니며 노는 등 탈선 장소로 쓰이기 때문에 막으려는건 이해가 가지만. 다만 2018년도에 이 철제 울타리를 철거하고 새로 화단을 조성하였다. 여전히 병목 현상은 발생하지만 보기에는 더 나아졌다는 평.
  • 정문의 경우 통행하기가 불편한 자동차 도로와 면해있어, 자전거 통학 학생이나 자동차-셔틀버스 이용 학생, 6637 이용 학생만 가끔 이용한다.[103] 후문에 비하면 한산한 편이다. 정문 근처 30m 가량은 안전사고 위험으로 주정차를 금지하였는데도 꿋꿋이 정문 바로 앞에 차를 세워 학생을 내리는 진상 부모들이 있다.[104]
  • 2011년에 자사고로 전환할 때, 서울시 교육청에서 "남녀공학으로 바꾸면 어떻겠냐"는 제의가 들어왔다고 한다. 하지만 동창회의 반대로 무산되었다.
  • 2017년에 방송에 가급적이면 출연하지 않는다는 기존의 원칙을 깨고 EBS장학퀴즈에 출연했다. 촬영은 학교 체육관에 세트를 설치하여 진행했고, 결과는 별 126개로 장학금 획득 성공. 현 EBS사장이 양정고 출신이라는 것이 출연에 영향을 미쳤다는 이야기가 있다. 프로그램 중간에 동문이 출연하는 순서에서 진중권 교수가 나왔다. 그동안 모교에 대한 언급이 별로 없었던 터라 모교에 대한 애정이 별로 없나 생각하던 사람들도 꽤 있던 차에 진 교수가 출연해서 놀라움이 컸다. 보고 싶은 사람은 여기로. 사실, 처음 출연한 것은 아니고 장학퀴즈가 이전 포맷으로 진행했을 때엔 개인 혹은 팀 단위로 출연했던 과거 양정고 학생들은 꽤 있었다. 2015년만 해도 총 4명이 출연하였다.
  • 학교 부지 면적이 총 12,000평 정도로 매우 넓다. 현재 공시지가로 환산하면 학교 부지가 약 1,890억 원이 나온다.[105]
  • 2024년 3월 29일 행정실 연수로 행정업무가 중단되었다.

[1] 경희대학교 출신[2] 대한제국의 군인이자 관료. 최종 계급은 육군 참장이다. 한성부판윤, 군부협판, 법부협판을 역임하였다.[3] 협판(協辦)은 오늘날의 차관에 해당하는 직위이다.[4] 1904년 군부협판으로 재직하던 시기 근대적인 군사제도를 시찰하기 위해 일본에 다녀왔는데, 이때 근대교육의 보급이 국가 발전의 핵심임을 깨달았다고 한다.# 이는 양정의숙 창학의 주요한 계기가 되었다.[5] 실제로 창학 터 기념비가 세종문화회관 뒷길에 남아있다.[6] 1909년 4월 24일 2회 19명 졸업, 1910년 3월 3회 법학과 31명, 경제과 27명 졸업, 1911년 7월 9일 4회 28명 졸업, 1912년 7월 6일 5회 졸업하였으나 졸업생수와 명단이 확인되지 않음.[7] 2017년 기준 창학 112주년인데도 2017년 졸업생이 100기 졸업생인 이유가 이 조선교육령 때문이다.[8] 선배들의 기금을 제외한 돈을 대부분 이곳에서 마련한다. 양정 재단의 전신으로서 현재까지도 본 학교에 큰 도움을 주고 있다.[9] 현재 1층 중앙현관에 학교 운동부 및 동아리가 수상한 트로피들이 전시되어 있는데, 유리 전시장 가운데 위쪽을 자세히 보면 오래된 흑백 사진이 하나 있다. 이게 바로 공출당하기 전 일제시대에 수상했던 트로피들을 찍어놓았던 사진이다.[10] 당시 담임을 하던 학생 한 명이 좌익 운동을 하다가 수감되자 그의 동료들이 감옥에서 빼내달라고 부탁했으나 이를 거절했고, 결국 그 학생은 옥사하였다. 이후 전쟁이 터지자 보복으로 친구들이 교사를 산으로 끌고 가서 총살했다고 한다.[11] 책상과 의자는 물론이고, 각종 교무행정 자료들과 피아노까지 싹 다 없어졌다. 심지어 일제강점기 비행사였던 서웅성 동문이 기증한 비행기까지 털렸다고.[12] 1902년 어진 화사(畵師)로 선발되었을 만큼 당대 최고의 실력명성을 갖춘 화가다. 이후 1911년 이왕가의 후원으로 서화미술원(書畵美術院)이 설립되자 이곳에서 후진 양성에 힘을 기울였으며, 1918년 민족 서화가들을 중심으로 서화협회(書畵協會)가 결성되자 초대 회장으로 선출되었다. 1919년 3.1운동과 관련해 내란죄로 재판을 받았으나 석방되었고, 그 해 쇠약해진 몸을 회복하지 못한 채 사망하였다. #[13] 최남선은 중앙고등학교휘문고등학교의 교가도 작사하였다.[14] 가사에서 양정이 4번 연속 나오는 부분이다.[15] 원래는 양배전에서 배재고등학교 학생들이 양정고 교가를 부를 때 조롱하려는양정! 우! 의미로 넣은 건데 어느 순간 양정고 학생들도 넣어서 부르게 되었다. 다만 이사장과 여러 임원들이 참석한 공식행사장에서는 하고 싶어도 하지 말 것. 교사들이 교가 제창 전 미리 주의를 준다.[16] 폴란드의 혁명가 타데우시 코시치우슈코[17] 사실 이건 양정과는 상관 없는 것이, 공교롭게도 양천구의 구목(區木)도 감나무여서 양천구 전역에 감나무가 심어졌기 때문이다.[18] 120쪽[19] 생활복이 따로 없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다. 여름철에 교복바지 안에 땀이 차면 지옥이 따로 없다. 이 때문에 복장과 관련해서 엄격한 교사들도 이 부분은 어느 정도 묵인해 준다. 2018년 공모전을 통해 새로운 생활복이 제정되긴 했는데, 재학생들에게 '양정유치원 원복', '아저씨 골프복'이란 소리를 듣는다. 그러고 잘만 입고다닌다[20] 참고로 저 당시 운동부에는 아이스하키부, 수영부, 야구부, 정구부, 수구부 등등 지금으로선 상상도 못할 온갖 종목들이 개설되어 있었다.[21] 교무기획부, 연구기획부, 창의체험부. 생활기획부는 1층에 있으나 떨어져 있다.[22] 사실 양정고등학교는 단일학교 단위로 6.25 전쟁에 가장 많이 참전한 유서깊은 학교다.[23] 2학년 생명과학 I 시간에 사용한다.[24] 2014년 4, 5층을 증축하기 전의 사진이다. 1층의 통유리로 된 곳이 학생식당.[25] 참고로 이걸 당시 교장이었던 전대(前代) 이사장이 보기 안 좋다고 매우 싫어했다.[26] 처음 별관이 생겼을 때는 1층이 그대로 주차장이었으나, 이후 1층을 개조해서 식당을 만들었다. 참고로 이곳을 만들기 전에는 급식을 도서관 로비에서 배식했다. 그런 이유로 식당 사방이 통유리이다.[27] 2학기 때에는 도서관 남측 학습실을 이용해야 한다.[28] 1층에 중학교 보건실과 고등학교 보건실이 모두 존재한다. 고등학교 보건실이 좀 더 크다.[29] 이전에는 1층의 양정 식당 옆 식자재 운반용 문도 열려 있는 경우가 많았으나, 2015년 여름 이후로는 잠가두는 편이다.[30] 사실 가보면 알겠지만 만리동의 본관이 좀 더 크다. 이 건물은 현재 손기정기념공원에서 헬스장 및 독서실로 사용되고 있다.[31] 등록문화재에 등재를 시도하고 있다는 소문이 있다.[32] 손재형 선생의 작품은 주로 3~400만원 선에서 거래되고 있다.[33] 양정 창학 110주년 기념으로 대만에서 합창단이 왔을 때 이곳에서 생활하였다.[34] 물론 야생 복숭아라 평소에 먹는 복숭아 열매같은 건 안 열린다.[35] 이것도 야생 돌배.[36] 다만 길이 조금 평탄해졌다.[37] 정확히는 정원이 아니라 학교 정문 경비실 옆에 위치하고 있다.[38] 네트는 없다.[39] 학교에서 공식적으로 운영하는 셔틀버스는 없고 학원버스(일명 노란 버스) 기사들이 운영하는 셔틀.[40] 자사고 1기인 2011년 입학생이 이 수업을 들었다. 2013년까지는 어찌어찌 이어갔지만 그 이후로는 감감무소식. 토플 수업의 경우 배치고사 영어 성적 상위권자에게 우선 수강권을 준 것으로 예상된다. 그런데 보통 방과후 수업처럼 8교시 수업이 아닌 석식 후의 9교시 수업이라 안 들으려 했던 사람이 꽤 많았던 모양.[41] 2023년에는 교내 운동장에서 시행됐다.[42] 2년에 한 번씩 이곳에서 열린다.[43] 대략 10곳을 학교에서 미리 선정해놓는다.[44] 2000년대 초반에 한 학생이 낫에 다리를 베이고 나서부터는 농촌체험으로 바뀌었다고 한다.[45] 체육을 아주 잘하지 않는 이상 예·체능 품 중에서 가장 쉬운 편이다.[46] YWO 단장을 제외하고 동아리 반장만 생활기록부에 등재되므로 동아리 부반장으로 활동하면 인정이 안 된다.[47] 2017년 열린 생활복 공모전 등. 공모전은 잘 안 열리는 편이다.[48] 한국으로 치면 부산[49] 남자고등학교. 일본 3대 명문고로, 도쿄대학 합격자수 베스트10의 자리를 1954년부터 지켜왔다. 그런데 비해 교풍은 상당히 자유로워 교류하러 간 양정 학생들이 놀라기도.[50] 남녀공학, 미에현에서도 정말 깡촌에 있다.[51] 남녀공학...이지만 성비가 3:7정도로 여학생이 많다.[52] 농구 교류 한정.[53] 실제로 아자부 입시용 문제집이 시중에 판매되고 있다[54] 학교가 시내 한복판에 위치한다. 서울로 치자면 명동 거리에 학교가 있는 셈.[55] 프랑부르주아 고등학교와의 교류는 특이하게 양정중학교 3학년 학생도 한 명씩 선발했었는데, 이후 그 학생이 양정고등학교가 아닌 다른 고등학교에 갈 경우 홈스테이 호스트가 한 명 비어버리는 문제로 인해 중단되었다. 불가피한 사정으로 호스트가 프랑스 파트너를 받지 못하게 되는 경우 기타 학생들 중 지원자를 받은 후 추후 국제교류 선발시에 가점을 주는 방식으로 진행된다.[56] 학교 학생들이 쉬는 시간에 교문 앞에 삼삼오오 모여서 담배를 태운다던가(…) 하는 분위기이다. 다만 학생들은 좋은 편.[57] 원래 교류중이던 파리의 프랑부르주아 고등학교와 로퀴디 고등학교의 재단이 합쳐지게 되어 프랑부르주아 출신 교감이 로퀴디로 옮겨가며 교류가 시작되었다.[58] 엄규백 전 이사장이 2016년 학교를 방문해 강연을 한 파비앙 페논 전 프랑스 대사에게 강연장에서 직접 "프랑부르주아 교류 재개시켜주세요!"라고 요구했는데 결국은 재개되지 못했다.[59] 현재 양정과 교류하고 있는 그 칸토[60] 1학년 1명, 2학년 2명[61] 대표적으로 뉴욕, 블라디보스토크, 브리즈번 등등이 있다.[62] 각국의 홍보 부스를 설치하고, 문화공연을 한다. 참고로 이거 준비하는 게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 걸린다.[63] 회의는 주로 모의재판(Mock Trial) 형식으로 한다.[64] 보통 글로벌리더부 부장, 교무부장, 그리고 연구부장이 면접을 본다.[65] 물론 진짜 중요한 건 성적이 아니라 영어 실력이다. 사실 성적보다는 영어 실력이 비중을 더 많이 차지한다.[66] 양정고 홈페이지에 나온 내용을 기준으로 적는다.[67] 친일반민족행위자에 이름이 올라와있다.[68] 비타500 사태로 유명한 최단기간 재임 총리이다.[69] 모래먼지 빵야빵야로 유명한 본교 농구부 코치. 코치직 수행 도중 간암으로 2022년 1월 12일에 세상을 떠났다.[70] 양배전에 와서 부채춤을 추었다.[71] 양정고 재학 시 교내에서 스트리킹을 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온다.[72] 그런데 스스로의 모교를 자랑스러워하며 항상 긍지로 여기는 다른 동문들과 비교했을 때 이상할 정도로 자신의 모교를 언급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양정고의 전반적인 분위기를 생각해보면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지만. 그런데 2022년 6월 6일 현충일손기정 동상 앞에서 찍은 사진과 “선배님과...진중권 리즈시절 벌써 40년 지났네 ㅠㅠ”라는 글을 페이스북에 올렸다. #[73] 2005년에 대한민국을 불편하게 하는 남자, 진중권 이라는 기사에서 자신의 고교생활에 대해서 언급한 적이 있는데, 생물반이었으며 폭행으로 1번, 흡연으로 2번 정학을 당했다고 한다.[74] 헤비메탈 그룹 블랙홀의 리더, 1989년 데뷔한 이래 30년이 넘는 세월동안 오로지 헤비메탈 음악 한 길 만 파온 살아있는 전설이다. 80년대를 주름 잡았던 3대 락그룹인 백두산, 부활, 시나위에 비교해봤을 때도 전혀 꿀리지 않는 역사를 지닌 그룹이고 기타 연주능력도 작곡능력 모두 국내에서 최상급에 속하나 소수의 락 매니아들을 제외하고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졸업년도를 정확히 모르나 주상균이 64년생인 것을 감안해보면 대략 82년 내지 83년에 졸업했을 가능성이 크고 그렇게 되면 64회나 65회 졸업했을 것으로 추정됨. 정확한 정보를 아는 분들은 문서 편집과 수정 요망. 주상균은 중학교는 중앙중학교를 나왔고 중앙중 3학년 때 부터 기타를 치기 시작하였으며 양정고 3학년 재학 당시 스쿨 밴드 블랙홀을 결성했다. 밴드 이름인 블랙홀은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우주의 블랙홀과 같이 음악을 빨아들이겠다'는 의미를 담았다. 여러모로 스쿨밴드로 시작해 한국의 기라성 같은 전설의 밴드로 까지 장족의 발전을 거둔 사례임. 이 블랙홀이라는 밴드가 주상균이 고교 졸업 후 진학한 강남대 교내밴드로 이어진 것을 보면 학교 동아리 밴드가 아닌 순수하게 락음악을 하기 위해 주상균이 결성한 밴드라고 추정됨. 동시대에 활동한 보성고 출신 신해철 (우리가 아는 그 마왕 신해철 맞다)은 주상균을 일컬어 "우리나라에서 노래하는 사람 중에 기타를 가장 잘 치는 사람이고 기타치는 사람 중에 노래를 가장 잘하는 사람"이라고 했을 정도로 높게 평가했다. 음악 실력도 한국 락계에서 손가락에 꼽을 정도로 출중하지만 훌륭한 인성과 나무랄 데 없는 매너, 서정적이면서 사회문제의 정곡을 찌르는 가사 등으로 이른바 개념 있는 뮤지션으로 정평이 나 있다.[75] 1992학년도 학력고사 전체수석, 서울대 전체수석을 하신 분이다.[76] 100주년 기념관에 이 분의 이름을 붙인 교실도 있다. 하지만 건물 자체를 쓰지를 않아서(...)[77] 워낙 큰 대회라 졸업식날 단독시상하였다!! 보수적인 학풍에 비쳐볼 때 정말 놀라운 이야기. 연로한 교사분들 중에서는 게임 우승자를 시상한다고 투덜되는 분도 계셨지만.[78] 사서 고생을 하고싶은 사람이 아니라면 무조건 버스타자, 어차피 버스-지하철 환승할인 되어서 추가요금은 따로 없다.[79] 문제라면 개통이 빨리되어도 2030년이라는게 함정[80] 영등포구청역 방향[81] 목동7단지 방향[82] #[83] 최초 기사[84] 과거에 두 학교가 이전하기 전에는 정말 가까웠다. (양정은 중구 만리동, 배재는 중구 서소문동) 걸어서 20분 정도면 가는 거리. 양정은 현재 지하철 2호선 충정로역 근처, 배재는 다음역인 시청역 근처로 대략 지하철 한 정거장 정도의 거리였다. 그래서 양배전도 처음 시작되게 된 것이다.[85] 물론 배재고등학교에서는 배양전이라고 부른다. 마치 연고전연세대고려대의 마스코트처럼 양정고와 배재고의 마스코트도 각각 독수리호랑이로 대비된다. 참고로 양배전이 먼저 시작했다.[86] 이 백선의 영향을 받아 진명여자고등학교의 축제 이름이 '백선제'인 것이다.[87] 배재중학교, 양정고등학교, 경희대학교를 거쳐 원주 동부 프로미에서 뛰고 있는 두경민, 모래반지 빵야빵야로 유명한 표명일, 양정고 - 경희대의 차바위 등.[88] 2012년 이전에는 여름에도 월계축전을 했었지만 2013년부터 겨울에 진행하고 있다.[89] 안종원 선생과 서봉훈 선생의 집안도 학교 설립 시 자금을 출원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안종원 선생과 서봉훈 선생은 모두 학교의 교사 출신으로 이 중 서봉훈 선생은 초창기 양정의숙 시절 동문이기도 하다.[90] 엄주익 선생의 아들, 교장 재임시 통대유신정우회 의원으로 임명되어 교장 업무 수행에 지장이 생기자 아들인 엄규백 선생에게 이임[91] 1932-2020. 서울대 식물학과 교수 재직 중 교장으로 취임하였다. 양정고가 아닌 경기고를 졸업했는데 그래서 경기고등학교-양정고등학교 양교간 산악회 교류에 이바지하였다. 또한 80년대 후반 서울시장이었던 염보현 전 시장과 경기고등학교 동기인데 이게 당시 새롭게 조성중이던 목동 신시가지로 학교를 이전하는 데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1974년 고교 입시 평준화 이후로 상대적인 중산층 거주지에 위치해 있어 나날이 입시 실적이 떨어져가던 양정고등학교와 신시가지에 명성있는 고등학교를 유치해 지역 선호도를 높이고자 했던 서울시의 이해관계가 정확하게 맞아떨어졌기에 발생한 일이다.[92] 2007년 사립학교법이 개정되며 교장의 임기를 4년, 최대 연임 한번까지 총 8년으로 제한하여 교장직에서 은퇴하고 재단의 이사장으로 취임했다. 엄규백 전 이사장은 총 34년간 교장직을 맡아서 현재까지 대한민국에서 가장 오랫동안 재임한 고등학교 교장의 타이틀을 가지고 있다. 법이 개정되며 이 또한 앞으로 깨지지 못할 기록이 되었다.[93] 이후 상문고등학교 교장으로 재직하고 있다.[94] 당시에는 남학교는 독일어, 여학교는 프랑스어를 가르치던 분위기였는데 드물게 프랑스어 수업을 시작해서 양정 출신 프랑스어 전공자들이 대거 양성되었다. 그래서 한동안 양정 졸업생들이 서울 시내 대학교 불어불문학과 교수 자리를 많이 차지해서 교수들 사이에서 “양정 카르텔”로 불렸었다고.[95] 당시 독일어 교사로 계시던 분이 아직도 영어교사로 학교에 계신다.[96] 등급은 다섯개 중 뒤에서 두번째인 오피시에 등급으로, 2018 러시아 월드컵에서 프랑스 팀 우승의 주역이었던 디디에 데샹 감독과 같은 등급이다.[97] 원래는 2015년 신입생(양정 101기)부터 제2외국어별로 신입생에 쿼터를 배정해 어떻게든 신입생의 1/3은 프랑스어를 들어야 하는 식으로 운영되었었다. 방과후학교 신청 시스템을 통해 선착순으로 정했는데, 일본어와 중국어가 먼저 차고 나머지 학생들이 전부 프랑스어반으로 갔던건 당연지사.[98] 당시 창씨를 할 때 본관의 지명을 따오는 일이 매우 흔했는데, 영월 엄씨의 본거지인 영월 내성군에서 유래된 성으로 보인다.[99] 2016년 글로벌반은 총 인원이 25명인데, 이 중 농구부가 6명(!)이라 수업을 듣는 인원은 19명밖에 되지 않는다. 이과 편향이 심함을 알 수 있다.[100] 추가된 영어는 “심화영어회화”등의 과목으로 올라갔는데, 전부 영어 원어민 수업에 이수인원이 20명 언저리이다보니 1등급 한명, 2등급 한명이라는 극악의 성적경쟁이 펼쳐졌었다. 또한 영어를 꽤나 한다는 사람들 사이에서 변별력을 가져야 하다 보니 시험 문제들이 매우 까다롭게 출제되어 평균이 60점대(…)를 찍는 경우도 있었다. 영어 시험인데 말 그대로 시간이 모자라서 못 푸는 정도.[101] 양정의 경우 1주일 중 야자를 하는 요일수가 가장 많은 사람부터 야자실 이용권한을 준다. 요즘은 1주일에 2번 하는 사람도 야자실 이용권한을 준다.[102] 정확히 말하자면 양정중학교는 같은 재단 안에 있어서 학교 건물이 양정고 건물이랑 이어져 있고, 경인초등학교는 말 그대로 붙어있다.[103] 6637도 후문에 면해있는 6단지 상가 정류장이 있고, 러시아워 때에는 이대목동병원 앞의 우회전 커브를 도는 데에 시간이 꽤 걸려 대다수의 경우 후문을 이용한다.[104] 양정고등학교 버스정류장의 영문이름은 Yangchung이 아니라 Yangjung으로 되어 있다.[105] 중학교와 고등학교 본관이 있는 목동 911-2번지가 면적 19,886.6㎡에 4,656,000원/㎡이고, 운동장인 911-3번지가 면적 19,869.1㎡에 4,847,000원/㎡로 지가를 합산하면 1,888억 9,474만 3,700원이라는 엄청난 지가가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