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0-03-09 14:02:21

목동(서울)

파일:Yangcheon-Gu_CI_White.png 서울특별시 양천구 관할 법정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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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목동과거모습.png 파일:목동현재모습.jpg
좌측은 1970년대, 우측은 2003~2005년 사이[1]의 시기.
목동
木洞 / Mok-dong


1. 개요2. 문화재3. 각 행정동별
3.1. 목1동
3.1.1. 행복주택
3.2. 목2동3.3. 목3동3.4. 목4동3.5. 목5동
4. 연계 교통
4.1. 연계 지하철역4.2. 연계 버스

1. 개요

서울특별시 양천구에 있는 . 인구는 157,155명(양천구 2019년 1월 인구 및 세대현황.)

행정동으로는 목1-5동까지 있으나, 일반적으로 목동이라 하면 목동신시가지아파트와 그 주변 지역(신정동 일부)을 일컫는다.

'버블 세븐' 중 한 지역, 타 지역보다 학구열이 높은 곳으로 유명하다. 사방에서 학원을 목격할 수 있다. 자세한 내용은 양천구 항목으로.

과거 넥센 히어로즈의 홈 구장이었던 목동 야구장이 이곳(목1동)에 있었다.

강남3구도 그렇듯, 이 동네가 처음부터 잘 사는 곳이 아니였다. 빈민운동가 제정구 전 의원의 증언에 따르면 이 지역은 1963~65년까지 영등포구 시절 후암, 대방, 이촌 등지에서 온 철거민들이 쓰레기차에 실려져 해당 지역 갈대밭으로 이주된 곳이다. 당시 서울시장이던 동산 윤치영은 이들에게 "이곳만은 손대지 않을 터이니 재주껏 살아보라"고 했다.[2] 이들은 갈대를 뽑고 땅을 고르고 루핑쳐서 서민들의 거주지로 변모했고, 1970년대 들어서 아현동 등지 철거민들이 더 이주해왔다.


1960~1970년대까지만 해도 이 지역은 판자촌과 둑방에 늘어선 상습 침수지역[3], 채소밭, 그리고 화교 지주의 존재로 인근 지역민들에게 기억되고 있고, 신정동에 거주하는 아이들에게 목동하면 깡패 동네라는 단어가 먼저 떠오르는 지역이었다고 하니 상전벽해가 따로 없다. 하지만, 그 신정동도 처음에는 엄청난 시골마을이였다. 목동 동네 자체가 개발 전의 마곡동보다 교통편이 더 안 좋았다. 아스팔트를 깔고, 곰달래길로 교통편이 생기면서, 다 옛말이 되었지만.

예전의 마을 이름이 현재에도 고정 지명으로 쓰이는 경우가 있는데, 바로 월촌중학교월촌초등학교가 그 예. 목2동의 옛 이름이 달거리마을이였는데, 용왕산에서 떠오르는 달을 가장 먼저 볼 수 있는 동네라고 붙여져 월촌(月村)이 되었다. 이 마을에서 공동으로 사용하던 연자방아가 현재까지 남아 있다.

그러나 지나치지 말아야 할 아픈 역사가 있는데, 1983년 서울시가 토지공영개발방식을 시도하며 목동 및 신정동 등지에 140만 평을 조성한다고 발표하자 기존 주민들이 저항했다. 원래 목동 신시가지 재개발은 서민주택 대량공급이 목적이었으나, 올림픽 재원마련을 위해 중산층과 부유층 등 가진 자들이 살 고급 아파트 조성계획으로 변경됐기 때문이다. 기존 목동 주민들은 모임을 만들어 저항했으나 공권력의 초전박살식 진압으로 와해되자, 이들은 양화대교까지 점거해 경찰과 대치했다.

이런 식으로 대책 없이 진행된 목동 공영개발은 2년 간 크고 작은 주민시위를 발생할 단초를 마련했으나 저항은 실패했다. 특히 1984년 8월 이후 기존 주민들의 시위 및 농성, 당국과의 충돌이 벌어졌는데, 특히 여성들이 많이 참여한 8.27 철거반대투쟁은 빈민여성운동의 잠재력 및 가능성을 보여주었고, 1985년 1월에 시청 앞까지 유혈농성이 벌어졌지만, 힘없는 서민들은 중산층 및 투기꾼들과 야합한 5공 정권을 이길 순 없었다. 1985년 봄 들어 서울대 등 일부 대학에선 목동 철거민 대책을 주장하는 대자보까지 나붙었으나 파급력이 약했다.[4] 결국 정부는 서민들을 무시한 밀어붙이기식 정책으로 현재의 목동신도시를 개발해 1990년 기준 1조 원을 챙겼다. 바로, 이 목동신도시가 목동신시가지아파트다.

목동아파트의 가장 큰 특징은 일방통행. 위에 있는 지도에서 아래쪽에 있는 오목공원(목동 SBS 신사옥 바로 밑)을 중심으로 남북으로 나있는 길 두 개가 목동의 중심도로인데, 둘 다 일방통행으로 되어 있다. 덕분에 초행자들이 접근하기가 좀 어려운 편. 하지만 익숙해지면 이 길보다 편한 길이 없다. [5]아니 이 쉬운 길을 왜 헤매 이 길 가다 보면 꼭 한 두 차량 정도는 역주행(...)을 시도한다. 타 지역 사람들이 보기에 과장이라고 생각될 수도 있지만, 오목로 쪽에서 사는 사람들은 실제로 일주일에 한두 차례는 오목로에서 목동서로/동로의 잘못된 방향으로 진입하려는 역주행 시도 차량을 볼 수 있다. 어렸을 때부터 여기서 살았던 애들은 일방통행이 딴 곳에선 흔치 않다는 사실 자체를 모른다 심지어 길도 아는 경우도 있다. 학원 버스 너무 많이 타서. 근데 사실 역주행하는 차량을 보면, 외부인들이 일방통행이 헷갈려서 하는 것보단, 목동 주민이 너무나 길을 잘 알아서 하는 경우가 많다.

2. 문화재

양천구 전체로 봐도 없는 편이긴 한데, 그나마 목2동의 달거리마을 시절부터 전해내려오던 연자방아와 연립주택 사이에 있는 향나무가 문화재로 꼽힌다. 연자방아가 그냥 연자방아가 아니라, 마을 전체가 공동으로 사용하던 연자방아였는데, 하루종일 소가 돌면서 방아를 찧었다고. 하지만, 방아가 시간이 갈수록 쓸모 없게 되면서, 그냥 방치되었다가 한 주민에 의해 보존되고 있다.

좀 더 오랜 역사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면, 철곶포가 있다. 조선시대 당시 무수히 많은 한강의 포구 중 하나이긴 한데, 이 포구는 단순한 포구가 아니라, 김포군/강화군에서 서울로 넘어가려면 필수로 넘어가야 하는 관문이기 때문에 이 곳을 왕래하는 관선이 하루에 2척이 있었다고 한다. 그 뒤로 통행량의 증가로 인해, 나무다리가 놓이게 되었고, 김포공항이 생기면서, 시멘트 교량으로 바뀌었는데, 이 게 현재의 양화교다. 현재에도 김포/강화에서 양화교를 넘어가는 이많으니,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한 지? 단, 양천구 것이라고보기에 조금 애매한 것이 목동에서 절반 정도, 양화동에서 절반 정도, 그리고 염창동에서도 일부를 갖고 있다.

목4동 정목어린이공원 쪽에 느티나무가 하나 서 있는데, 이 게 160년이 넘은 느티나무다. 조선시대 시절(양천군) 한 나말(목4동의 옛 이름) 주민이 심고 가꾸었다고. 한국전쟁 때 폭격을 받아, 고사 상태였는데, 소생하여서 잘 자라고 있다고 한다. 현재는 아예 양천구에서 관리하는 문화재 중 하나이며, 주로 목4동 동사무소에서 관리하고 있다.

사실 이 정도 문화재는 다른 동네에도 흔하다 서울 서남권은 문화재가 정말 없는 곳인데 양천구는 그 정도가 심하다 그래도 갈산대삼각본점과 평범한 고개인 정랑고개와 평범한 바위인 우렁바위가 문재라고 자랑하고 다니는 신정동보다야 낫다

3. 각 행정동별

3.1. 목1동

목동에서 목동신시가지아파트가 존재하는 두 개의 동 중 하나로, 목동아파트 7단지가 이곳에 위치해있다. 국회대로(경인고속도로) 남단지역과 오목로 일대를 포함한다. 목동역오목교역이 위치하고 현대백화점 목동점, 행복한백화점, 홈플러스 스페셜 목동점, 메가박스 목동점이 있는 목동의 최고 상업지이면서 목동 하이페리온, 목동 하이페리온 2차트라팰리스, 파라곤 등 초고층 아파트들이 존재하는 곳이다. 방송국인 SBS 방송센터와 CBS도 위치하고 있다. 양천소방서, 목동종합운동장(목동 야구장)과 오목공원도 있다. 학교로는 서정초등학교, 목운초등학교, 목운중학교, 진명여자고등학교가 있다. 위의 내용을 종합한다면 목동의 중심지.

3.1.1. 행복주택

박근혜의 공약이었던 행복주택 사업 부지가 이 곳으로 결정되었다만 주민들이 거세게 반발하여[6] 양천구 차원에서 행정법원에 지정취소 소송을 냈으나 기각되었고 다시 항소한다고 한다.# 소송근거로 호우를 대비한 유수지에 1000가구가 넘는 고층 아파트를 짓는 것은 안전성에 우려가 있다는 점[7][8]을 들고 있지만 목동 특성상 학군에 대한 자부심도 좀 있는 편이라 임대아파트 사는 아이들이랑 같이 교육을 시킬 수 없다는 천박한 주장도 일부 있다. 사실 이것보단 안 그래도 미어터지는 학교가 더 미어터지는 게 더 문제다.[9][10] 게다가 목운초등학교 학생 대부분이 목동 하이페리온, 목동 트라팰리스에서 등교하는 학생들인데 그런 아이들과 임대아파트 아이들을 같은 학교에 보낸다고 하는 게 전형적인 탁상행정이라는 비판도 있다.

행복주택에 반대하는 근거로 교통체증 심화가 있다.[11] 현재 해당 지역인 목1동은 일방통행을 적용하고 있는데, 문제는 하필 행복주택이 들어서는 장소가 새벽빼곤 항상 막히는 현대백화점 바로 옆인데다가 오목교역까지 있다는 점이다. 현대백화점은 영업시작시간부터 양쪽 차선의 거의 절반씩을 틀어막으며[12] 바로 맞은편(...)에 오목교역이 있어 승객들을 노리는 택시들이 한 차선을 점거한다. 이분들은 24시간 내내 점거중이시다 좌회전 하자마자 눈앞에 택시 행렬이... 즉 7개 차선중 진입로 2개 차선+택시용 1개 차선을 제외하면 4차선만 남는다. 중요한 것은 이건 6차선과 5차선이 만나는 도로라는 점이다. 아무리 신호가 나뉜다지만 4개 차선으로 6차선과 5차선의 물량을 막는다니 흠좀무...[13] 거기에 하필 짓는다는 곳이 공용주차장에 빗물펌프장, 유수지라서 안그래도 모자라는 목동의 주차장을 줄여버리게 되어서 주차난이 심각해질 수도 있다.[14][15]

그리고, 제물포로(구 경인고속도로) 인근. 목동4단지 건너편인 800번지 일대가 싹 개발되어서 (계획 상으로는) 3쌍둥이 아파트가 들어설 예정이라, 안 그래도 그 일대의 교통편은 미칠 정도인데, 더 터져나가게 생겼다.

두번째 이유는 역시 집값(...)[16] 상기된 바대로 목동 하이페리온, 트라팰리스 같은 고급 주상복합 아파트가 들어서 있는 동네에, 그것도 도로 바로 건너편에 백화점이 있는 부지에다가 임대아파트를 짓겠다고 하니 주민들로써는 마음에 들지 않을 것이다.제 3자가 보면 돈없는 사람들이 입주한다고 싫어하는 지역 이기주의[17]겠지만. 심지어 비슷한 가격대를 형성하는 목동 신시가지 아파트도 목1동에 있는 7단지는 학군이 좋아 1억원정도 가격이 높을 정도니...[18] 그리고 솔직히 목동 7단지가 인근의 브랜드 아파트들보다 연식이 오래됐는데도 튼튼하다.

여담이지만 행복주택논란이 커질 당시 평소엔 시위라면 영 탐탁잖게 여기던 여당 지지자들이 자신들의 이득을 위해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하지만 일부러 그런건지 어쩌다 그런건지 현대 백화점과 행복한 세상 백화점 사이 횡단 보도에 시위 참여자들이 양쪽 인도에 마주보며 시위를 벌였다. 바로 뒤에 SBS에서 자주 인터뷰를 하러 오는 넓은 광장이 있음에도 유동인구가 많은 곳에 길을 막고[19][20] 꽤 자극적인 플랜카드[21] 를 들고 시위를 하다보니 영(...) 사정을 잘 모르는 사람들에겐 그냥 불편하고 자기 이득만 생각하는 걸로 인식되기 충분한 모습이었다. 물론 집값생각이 없던건 아니다. 한마디로 핌피. 심지어 새누리당 소속 정치인과 새정치민주연합 소속 정치인들이 모두 반대 의견을 내는 좌우합작 진풍경도 펼쳐졌다.[22]

어쨌든 현재에는 거의 취소되었다.

여담으로, 사실 이 부지는 행복주택 전에 목운고등학교가 세워질 부지였으나 이것도 역시 주민들의 반발로 지어지지 못하게 되었다.

3.2. 목2동

공항대로를 경계로 강서구 염창동과 마주한다. 염창역신목동역이 있는 북부를 제외하면 대중교통 접근성이 매우 나쁘다.[23]동 내부를 지나가는 버스는 서울 버스 양천01, 서울 버스 양천02 뿐이다. 그 만큼 조용하다. 주거용 건물로는 빌라가 많다. 오래됐거나 새로지은 단독주택이 드문드문 있고 아파트로는 목동e편한세상아파트, 건영아파트, 효성아파트, 두산위브아파트, 금호베스트빌아파트 등이 있는데 모두 소규모이다. 양화초등학교가 있으며 용왕산이 동쪽에 있다.

예전 지명은 월촌[24]으로 아직도 월촌 노인정, 월촌 주차장 등의 흔적이 남아 있다. 이 이름이 목동아파트 단지가 들어서면서 목5동의 월촌초등학교 월촌중학교 이름으로 쓰이고 있다.(반대로 옛 양천현 영역이던 양화나루(선유도부근)의 지명이 목2동의 양화초등학교 이름으로 쓰이고 있다. 참고로 학원도 주변에 없어서 목동아파트를 건너 가야한다. 건너갈려면 걸어서 15분(...) 자전거 5~10분

용왕산 남쪽한가운데에 위치한 우성아파트도 목2동에 해당된다.(예전 지명은 엄지미) 목동에서 중요하게 여겨지는 학군은 횡단보도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는 1단지와 같이 배정되는데, 행정구역만 목2동 소속인 아파트 단지. 동사무소에 가려면 산을 넘어가야 한다

여담이지만, 이 동네가 집값이 목동 중에서 제일 저렴하다. 이웃 염창동이나 가양동은 아파트로 성을 짓는 통에 여긴 우장산동 보다 개발이 덜 되어 있는 편. 어느 정도냐면, 우장산역에 나오면 현대 아이파크라는 거대한 단지가 들어서 있는데, 여긴 그 흔한 아파트 단지도 없다(...)

3.3. 목3동

북쪽은 공항대로를 경계로 염창동과, 서쪽은 등촌로를 경계로 등촌동과 접한다. 등촌역이 동의 북서쪽 끝에 있다. 양동중이 있다. 목동 롯데캐슬위너아파트[25]를 제외하면 역시 빌라가 많지만 바로 옆 630번지가 재건축 지역 지정으로 인해 2018년 롯데캐슬 마에스트로가 새롭개 들어섰다. 등촌로 구간을 지나는 버스의 의존도가 높다.

이 동네는 사실상 강서구 생활권이다.
지하철역도 목동역보다는 등촌역이 훨씬 가깝다.

흔히 등촌시장이라고 불리는 목3동시장(목동깨비시장)이 존재한다. 등촌역에서 두세블록 안쪽에 위치해있다.

목2동과는 행정구역을 매우 애매하게 갈라놓았다. 목동중앙본로? 즉 큰 도로를 기준으로 가른게 아니라 언덕을 기준으로 갈라놓았기에 벽 하나 두고 바로 옆에 붙은 두 주택건물이 행정구역상 2동과 3동으로 달라지는 마술을 볼 수 있다.[26]

목동 지역 5개 행정동들 가운데 가장 인구 고령화 현상이 심각한 동네이기도 하다. 때문에 연립주택들이 많은 동네들 치곤 보수정당(주로 자유한국당) 지지세가 꽤 강한편이다. 물론, 롯데캐슬 위너, 롯데캐슬 마에스트로 주민은 반 반이다.

3.4. 목4동

서쪽은 등촌로를 경계로 등촌동, 화곡동과 접한다. 정목초, 영도중, 강서고, 목동시장이 있다. 목동에서 유일하게 전철역과 접하지 않는다. 등촌로와 모새미로 목동중앙로[27] 구간을 지나는 버스만 믿고 가는 실정이다.

목동 신시가지 아파트에서 화곡동으로 바로 가야한다면 꼭 거쳐가야 하는 곰달래길(현재는 목동중앙서로)이 그 시절의 유물. 예전에 대원칸타빌3단지 입구에는 엄청나게 큰 하수도 뚜껑이 있었는데, 이것은 이 곳이 개발되기 전에 하천이였다는 것을 증명해주는 자료가 된다. 물론 아스팔트를 깔면서 다 메워버렸고, 목동아파트 개발 직전에는 당시 하천의 급수가 매우 안 좋았기 때문에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그 쪽으로 가지 않길 당부했다고. 그 하수도 뚜껑도 대원칸타빌 공사 때 없애버렸다.

이 동네를 정말 제대로 표현하는 건 곰달래길의 일부분인 곰달래고개가 대표적이다. 인터넷에서는 곰달래고개를 검색하면, 경기도 부천시 고강동에 있는 고개라고 설명하지만, 부천시 주민들도 곰달래고개 하면, 목동의 곰달래고개를 얘기할 정도로 인지도가 이 쪽이 더 높다(...) 아예 정류소 이름도 곰달래고개였으니까. 현재는 금호어울림.대원칸타빌아파트로 바뀌었지만, 이 동네를 유일하게 지나가는 6620번 버스 기사에게 "곰달래고개 가나요?" 라고 물어보면 다 알아듣는다(...) (실제 곰달래 마을이 있던 곳은 신월IC, 신월야구공원 부근이다) 물론 674번 기사님은 모른다 [28]

80년대 후반부터 마을버스를 필두로 교통편이 생기고 나서도 곰달래고개는 지금까지 대표적인 난코스로 꼽힌다. 시내버스가 올라가다 마력이 딸려서 멈춰버리고 저단기어로 엉금엉금 기어가던 곳이 여기였으니까. 현대 에어로, BF101이나, 대우 BS106 하이파워가 엄청난 매연을 뿜으면서 최대기어로 올라가거나, 중간에서 멈춰버리고 한동안 멈춰있다가 저단기어로 바꾸고 버스가 뒤로 밀리는 경우도 있었다. 마을버스는 말할 것도 없었고. 겨울철에는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목동 3, 4단지 사거리랑 황제아파트, 대원칸타빌아파트가 들어선 일대가 개발하기 전에는 1980년대 풍의 판잣촌이 형성되어 있으나, 모두 철거 되었다. 재밌는 건 저 황제아파트의 건설년도는 은마아파트 보다 늦다(...) 황제아파트가 철거되고 나서 들어선 게 금호어울림, 목4동주민센터 인근에 만들어진 게 대원칸타빌아파트. 문제는 곰달래고개 인근의 주택은 하나도 침수가 안 되었는데, 그 아래 동네는 지대가 낮아서 목4동주민센터를 포함해 침수되던 지역이라서, 대원칸타빌아파트의 공사 당시에는 지대를 좀 올리기도 했었다. 목4동주민센터와 대원칸타빌아파트의 고도차가 있는 건 이 때문.

참고로, 영도중학교강서고등학교가 이 동네에 있다.[29] 국회대로가 지나가기도 하는데, 현재는 이 구간이 고속도로에서 해제가 되어, 국회대로가 되었지만, 해제 직후 한동안 제물포로의 일부였었다. 국회대로 구간이 확장되어서 신월IC까지의 길까지 모두 편입되었을 뿐. 과거에는 경인고속도로였던 지라, 그냥 경인고속도로로 아는 사람도 많고, 현재도 올림픽대로 수준의 고속화도로로 취급되고 있다. 탈 수는 없지만 인천시 광역버스와 광역급행버스가 이 지역을 지나간다. 정확히 말하면, 합정역에서 당산동 일부를 거쳐가는 광역버스들은 양천세무소를 거쳐서 목동 야구장 뒤에 있는 길로 진입, 신월 IC까지 이어져 있는 구간을 반드시 거쳐야 경인고속도로로 진입할 수 있기 때문.

참고로 강서구 소속이던 시절부터 이 동네에는 단 한 번도 철도가 지나가거나, 철도가 지나가는 계획이 세워진 적이 없었다. 국회의원 공약이 매년 걸리는데, 계속 예비 타당성 조사에서 B/C값이 미달이라 탈락하는 바람에... 대부분의 인도가 좁고, 역을 만들 곳도 흔치 않다. 그 좁디 좁은 논현동 가구거리 인근에 서울 지하철 7호선이 지나가긴 하지만.. 그냥 목동역까지 버스를 타는 게 훨씬 편하다. 근데 이런 예시가 생겨서 이떻게 될 진 모른다. 당장 버스철로도 감당이 안 된다. 미어터지는 수준을 떠나서 못 타는 수준이다

그나마 인구밀집으로 따지면, 목동사거리가 있고, 양천구 구의원이 공약으로 매번 목동사거리를 거쳐 파리공원으로 가는 양천지선을 만들겠다는 공약을 내밀지만, 실질적으로 이 곳에 지하철공사가 시작된다면 헬게이트가 열려버린다. 새벽 시간대를 제외하고 항상 헬게이트다. 동방주유소사거리에서 막히고, 목동사거리에서 또 막히고, 좀만 가면 경인고속도로 진입로가 나와서 또 막히고, 목동오거리에서 또 막히는 삼단콤보의 시작점이다(...) 등촌로를 완주하는 시내버스인 654번, 6620번, 6623번의 목4동의 표정속도가 개판(...)인 것도 신호등이 엄청나게 많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이 지역의 780~800번지 일대에 오래된 주택가들이 많았는데, 790번지 일대는 재개발 되어서 대원칸타빌아파트가 들어섰다.

목동신시가지아파트의 재개발 소리가 나오는데 이 지역의 주택가는 그 목동아파트 지을 때부터 있었다. 옛날 집들의 특징인 빨간벽돌이 촘촘히 박힌 집이라던가, 구멍이 송송 뚫린 돌담벼락 등의 80년대 풍경이 790 번지 일대에는 2000년 초반까지 그대로 있었다. 그래서 엄청난 이질감이 있었지

남은 주택가 밀집지역은 780번지 일대와 800번지 일대인데 800번지 일대도 재개발이 예정되어서 30층이 넘는 주상복합아파트가 들어설 예정이다. 쉽게 말하면 목동사거리에서 국회대로가 있는 지역 일대가 모조리 재개발이 잡혀 있다는 것이다. 45층 주상복합 아파트가 들어선다고. 2019년부터 삽을 떴다. 그 것도 45층 한 동만 들어오는 게 아니라, 세 쌍둥이 아파트가 생긴다. 조감도로만 보자면 메타폴리스인데, 국회대로 일대를 그 일대를 아예 일산 두산위브 더 제니스처럼 개발할 생각인 듯 하다. 따라서 마천루 확정 일단 이름은 《목동 신시가지 휴엔하임》이고, 특이하게 지역주택조합 아파트라 조금 저렴하긴 할 듯. 201910월 착공, 2021년 준공 예정이다.관련기사 기사에는 경인고속도로 지하화로 목동 일대 교통 체증이 해소될 전망이라고 하지만, 그럴 일이 없다(...)

780번지 일대도 서서히 개발될 분위기다. 여기 있는 건물들이 최소 30년은 다 되어가는지라...

목5동과 함께 학군이 좋은 편이다. 영도중학교야 일제강점기 때인 1930년대부터 존재하던[30] 학교에다 축구로는 상위권으로 오른다.[31] 시험 난이도도 매우 빡센 편이라 경쟁이 피가 튀긴다. 외국어고등학교 진학률도 높은 편에다 강서고등학교의 경우, 서울대학교의 합격률이 의외로 높은 편이다. 이렇다 보니, 여기 지역으로 오기 위해 위장전입 하는 비율도 꽤 높다. 광명시 등지에서 오는 경우도 있고[32] 축구선수를 꿈꾸는 자녀를 둔 부모들은 아예 중3 쯤 되면 부산에서 전학 오는 경우도 왕왕 있는데 영등포공업고등학교 축구부에 들어가겠다고 이러는 거다.

2017년 11월 21일 현재, 국회대로 옆에 위치한 지역 일대가 부지 매입이 한창 시작되고 있다. 조만간 개발이 시작될 듯 보이는데, 현재는 목4동 지역에 전철이 없다. 그런데 이제는 부지가 없다고 할 수 없는 게 우이신설선이나 인천 2호선의 경우가 생겨버렸다(...) 때문에, 공사를 한다면, 어떻게든 부지 매입을 이래저래 해서 할 듯 하다. 실제로 목4동의 중심지라고 할 수 있는 목동사거리 일대의 상권이 롯데리아를 제외하고선 거의 침체된 거나 마찬가지여서.. 괜히 오목교 이쪽으로 빠지는 게 아니다 근데 거긴 타 지역 주민들이 더 많지 현재도 출근길에는 버스로 감당이 안 되는 수준이라..[33]

3.5. 목5동

목1동과 마찬가지로 목동에서 목동신시가지아파트가 존재하는 동. 원래 목5동과 목6동[34]으로 나뉘어 있었으나 서울시의 행정동 통합대상이 되어 목5동으로 통합. 엄마 우리 동사무소가 없어졌어요 목동신시가지아파트가 밀집되어 있는 곳으로 이곳의 학군을 최고로 쳐준다.[35][36]양천우체국, 양천도서관, 파리공원, 목마공원, [이화여자대학교 의과대학부속 목동병원]], 서울에너지공사(열병합발전소), 서울지방 식품의약품안전청이 위치하고 있으며 신목동역이 목2동과 목5동사이에 위치하고 있다. 관내에 위치하는 목동신시가지아파트로는 목동아파트 1~6단지가 있다. 사실상 목동아파트 앞단지의 알파이자 오메가인 동네. 거기에 1단지와 작은 차도 하나를 사이로 접하고 있는 한신청구아파트 단지까지 더하면 인구가 만만치 않다.

아파트 단지 내부 도로가 좁고 거미줄처럼 복잡한데다 메인도로는 전부 일방통행(...)[37]이기 때문에 이곳을 처음 온 사람들이 멋모르고 아무 도로로 들어갔다가 이 심히 지랄맞은복잡한 도로망에 걸려 애를 먹는일이 흔하다고. 심지어 타지역에서 온 구급차까지도 역주행을 하는 경우도 있다...근데 익숙해지면 엄청 편하다는게 함정 게다가 그 좁은 도로 양편으로 주민들이 주차를 해 놓는 바람에 이 곳을 운전해서 가다가 마주오는 버스랑 마주치기라도 하면 난감하다. 그런데 주차공간이 부족해서 벌어지는 일이라 구청에서도 재건축하기 전에는 별 수가 없는 듯하다.

동네도 아이 키우기 좋고 깨끗한데다 교육열로 매우 유명한 동네다보니 어린이, 특히 청소년 인구 비율이 높다고 할 수 있다.[38][39]실제 서울 평균보다 5% 이상은 높다. 학원가는 파리공원 옆 쪽에 분포되어 있다.[40]

아파트로만 이루어진 동네여서 그런지 같은 신시가지 아파트로만 이루어진 신정6동과 함께 서울특별시 지역 선거 투표율이 가장 높다. 원래는 중산층, 고소득층이 많이 살고 있어 보수 계열 정당 지지도[41]가 매우 높은 동네[42]였다. 예외적으로 2006년 목동 쓰레기소각장 광역화 건으로 이를 반대하는 주민들과 서울시와의 대립을 중재하지 못하고 반발[43]을 산 적은 있었다. 물론 자유선진당도 보수는 보수라서 이후 부동산 가격 하락과 주민 물갈이, 지역 유권자층 구성의 변화[44]를 겪고 옆 동네인 목1동의 행복주택 논란까지 겹치면서 보수성향이 점차 옅어져갔다. 다만 이 문서의 이전 버전에서 나온 말처럼 더불어민주당의 지지가 보수 정당 지지보다 더 강한 지역으로 변한지 오래 되었다거나 민주당 우세지역이라고 보기는 아직 어려운 면이 있는 편[45][46]이며 양천구 내에서 아직까지는 가장 보수정당 지지세가 가장 강한 동네이기도 하다.

4. 연계 교통

4.1. 연계 지하철역

서울 지하철 5호선: 목동역, 오목교역
서울 지하철 9호선: 등촌역, 염창역, 신목동역

4.2. 연계 버스

동의 경계 부분만을 지날 경우에는 ※표시.
추가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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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우측 사진의 좌측 하단을 보면 하이페리온 2차가 아직 지하층 부분만 공사중이며 오늘날 트라팰리스가 있는 장소는 기존 부지의 건물들이 완전히 철거되지 않았음을 볼 수 있다.[2] 원 출처: <가짐없는 큰 자유: 빈민의 벗, 제정구의 삶> - 제정구를 생각하는 모임 저. 학고재. 2000. p191.[3] 작성자의 초등학교 시절 학교 영어교사가 개발 이전의 목동 출신인데 어린시절에 홍수로 집안이 침수되어 오빠와 물장구를 친 적이 있었다고 한다.[4] 대신 이 과정에서 나온 용어가 '도시빈민운동'이었다.[5] 국내의 일방통행길은 주로 이면도록(골목)을 예상해서 불편하고 후진적인 느낌이지만, 사실 일방통행은 교통안전 및 교통흐름에 상당히 효율적인 체계이다. 목동중앙(파리공원을 사이로)을 따라 각 4차선의 일방통행 도로가 있는데 따지고 보면 총 8차선의 왕복도로인 셈이다. 이를 2+2차선 양방통행으로 만들었더라면 신호체계 등으로 교통혼잡이 지금보다 더 심화되었을 것이다[6] 시위는 물론이고 각종 반대 현수막을 붙여놓기도 하며, 해당 부지 옆에 컨테이너 사무실까지 차리고 정부 관계자들의 출입을 막을 정도.[7] 하지만 이것도 신정차량기지 위에 지은 양천아파트라는 모범사례가 있어서 설득력이 떨어진다.그럼 양천아파트처럼 밑에 공동을 만들고 유수지로 쓰는 건가[8] 단 이 주장이 무조건 설득력이 떨어진다고만은 할 수 없다. 요새는 전혀 그렇지 않지만 목동아파트 단지가 지어지던 시절에는 물에 잠기는 지역이었다고 한다. 목동아파트 단지에 지하 주차장이 없고, 지상 주차장만 있는 이유가 바로 그 것 때문이라고. 사실 이 시기는 5공 시절인 데다, 아파트도 없었고, 이 문서 최상단 왼쪽 사진처럼 허허벌판이였었고, 배수 시설도 개판... 어느 정도냐면 아예 역류해서 저 일대가 1995년만 해도, 목동사거리에 헬게이트가 터졌다. 뻑하면 목동역이 잠기지를 않나(...) 용산전자상가 일대가 매번 물에 잠길 때, 뉴스에 가끔 나오는데 여기도 그랬었다. 아무튼, 프리미엄 아파트 짓겠다고, 무허가건물에 사는 주민 내쫓고, 제방을 높이 쌓는 거 말곤 답이 없었다. 오목교역 앞으로 흐르는 안양천 뚝방길 한 쪽이 유난히 높은 이유가 바로 홍수 막으려고 했던 흔적이다. 물론 요즘엔 배수 시설도 완전히 개선되어서 전혀 그럴 일이 없다.[9] 이 지역에 있는 목운초등학교와 목운중학교(서로 붙어있다.)는 초등학교 8층(!!), 중학교 9층(!!!)이라는 높이를 자랑하며 엘리베이터가 있을 정도이다. 그럼에도 한 반에 40명 정도 들어가는 수준. 이런 상황에 행복주택까지 지어진다면 헬게이트가 벌어지는 건 확정. 부지 내에 학교를 따로 만들어야 해결될 듯.[10] 부지 인근에 위치한 신목중학교를 보면 학생 및 교직원을 합해 총 2,000명이 넘는 인구가 살고 있다. 그런데 집을 짓겠다고 하니 목동 주민들로써는 황당하기 짝이 없다. 답은 영도중학교 확장 뿐인데, 여기도 전교생은 700명이 넘는다. 오죽하면 남녀공학썰이 매년 돌까 싶다[11] 사실 아침 출근길만 해도 여기서 강북지역으로 가는 양화대교와 성산대교가 연결된 도로다보니 목1동까지도 미어터진다. 그나마 일방통행을 적용하고 있어서 아슬아슬하게 버텨오고 있는 중이다.[12] 'ㅓ'자형 도로(각각 6차선과 5차선,합류후엔 7차선)인데 현대백화점은 왼쪽 위에 위치해 있어서 꺾어서 들어가려는 차량과 직진해서 들어가려는 차량이 동시에 엉킨다(...) 겨우 백화점에 진입차선이 2개나 되는데도 막히는 이유가 있다 그래서인지 유독 경찰관들이 많이 배치되는 곳 중 하나이다.[13] 행복주택 지을거면 차선을 늘려달라는 주장이 있긴 했는데, 공간창출도 아니고 어디서 공간을(...)[14] 물론 행복주택 내에 주차타워를 지어서 해결하는 방안도 있겠지만.[15] 목동아파트 단지는 지어진지 꽤 오래된 곳이기에 최근 건설되는 아파트들과 달리 지하주차장이 존재하지 않는다. 즉, 모든 차들이 지상에 주차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며, 주차공간 부족으로 차량통행이 뜸한 심야에서 새벽에는 도로변에 주차된 것을 쉽게 볼 수 있다.[16] 행복주택의 건설목적상 입주민들은 상대적으로 소득이 적을수밖에 없고 막상 목동 주거민들 다수는 중산층이지만 괴리감이 생기지 않을 수가 없다.[17] 실제로 몇몇 목동 주민들의 자부심은 강남의 그것 이상이다.인터넷상에서 지역 떡밥이 돌 때 목동이 강남 어지간한 곳들 이상이라는 주장을 하는 어그로꾼들도 몇몇 있을 정도(특히 부동산 갤러리 등지에 많다.). 목동은 사방이 서민 거주지인 신월동, 강서구 화곡동, 구로구 등지로 둘러싸여 있어서 대비가 더 큰 편이다.[18] 27평이 단지아파트들중 5단지와 함께 유이하게 9억을 돌파했다.[19] 오목교역에서 현대백화점으로 올라와 밖으로 나가는 곳이라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곳이다.[20] 지우면 반달같아서 내비뒀는데, 그 광장 유동인구가 저 횡단보도보다 훨씬 많다(...) 그리고 상인들의 항의가 있어 시위는 오히려 횡단보도 쪽에서 하는 경우가 더 많다. 아니면 cbs옆이라던가.[21] 빨간색 배경에 검정색 글씨라던가, 흰색 배경에 빨간색 글씨같은 눈에 잘 들어오는 문구를 도로변이나 아파트 벽에 붙였다. "헐!" 이란 말만 써져 있는 것도 있다. 사진은 헐 문서(3번 문단)에 있으니 참고할 것.[22] 이 경우는 두 진영 모두 팀킬이라고 할 수 있는 상황인데, 여당새누리당은 같은 당의 대통령의 정책에 반대하는 꼴이 되고, 야당새정치민주연합은 자신들이 주장하는 복지 정책에 대해 반대하는 꼴이다. 사실 지역구 국회의원들은 중앙당 노선보단 자기 지역구 표심이 더 중요하긴 하다.[23] 그렇다고 걸어가긴 또 엄청 넓다(...) 한 정거장이래서 걸었는데 30분을 내리 걷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24] 이 동네를 관통하는 도로가 한자명인 월촌을 우리말로 풀이한 달마을길→달마을로였는데 도로명주소 시행으로 달마을로로 바꾼지 몇 달 안되어 주민들의 강력한 요구로 목동중앙본로로 또 바뀌었다(...).[25] 롯데캐슬로 재건축 하기 이전에는 구(舊) 동신아파트 자리였으며 1980년에 지어질 당시 이 지역에서는 드문 10층 높이의 고층아파트였다. 이후 2002년경 철거되었다.[26] 양동중학교도 목2동과 목3동 경계에 있다. 주소지는 목3동이지만 목2동으로 착각하는 경우도 있다.[27] 그런데 여기 주민들이 모새미로, 목동중앙로라고 하면 못 알아 듣고, 곰달래길이라고 하면 알아 듣는다. 도로명 주소의 실패 사례 목동사거리에서 4단지로 가는 방향의 고개를 넘으면, 곰달래 고개가 나온다. 거기에다 땅값 올리는데 환장한 일부 주민들의 민원과 양천구청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져서 길 이름이 〔목동중앙로〕로 이름이 또 바뀌었다. 무슨 지거리야[28] 왜냐면, 신길운수보광교통이 이 노선을 공동 배차 하면서 목동에 진출했기 때문이다. 그 전에는 살짝 등촌역 ~ 염창역 정류소로 정말 훑고만 가는 수준이였으니[29] 이 두 학교는 같은 재단의 학교로 학교끼리 바로 붙어있으며, 목4동 시장 끝부분에 존재한다.[30] 그 땐 당산동이였다.[31] 2002 한일월드컵한국인 주심 중 한 명이였던 이상용 주심이 이 학교 체육교사.[32] 이 건 기사도 나서 위장전입을 한다고 매우 까이기도 했었다.[33] 그 사람들의 목적지는 대개 목동역 아니면, 염창역이다. 왜 염창역이냐면, 급행열차 때문이다.[34] 목동1~2단지와 목동6단지, 이화여자대학교 의과대학부속 목동병원 등이 여기에 속해 있었다.[35] 초등학교 4곳(영도초, 경인초, 월촌초, 목원초), 중학교 3곳(신목중, 월촌중, 양정중)과 고등학교 2곳(양정고등학교, 한가람고등학교)이 위치해 있다.[36] 학력고사가 있던 시절, 월촌중은 전국 모의고사 1위를 밥먹듯이 했었다.[37] 엄청난 인구밀도때문에 벌어지는 교통체증 문제때문에 일방통행을 적용했다. 이러고도 출퇴근 시간이나 주변 학교 등하교 시간에는 도로가 미어터진다.[38] 매일 저녁 현대월드타워와 법안정사 주변 학원가에 가보면 학원에 오가며 간식 사먹는 학생들의 모습을 지겹도록 볼 수 있다.[39] 서울 중계동, 구반포, 대치동, 오륜동, 잠실2동 등과 함께 유소년 인구 비중이 매우 높다.[40] 파리공원 길건너 '목동광장'에는 주상복합 건물5~6채가 광장을 둘러싸고 있는데 1~2층의 일부 식당, 병원 등을 제외하고는 전부 학원이 포진해있다. 최근에는 지하상가에 학생들의 트렌드를 반영해서인지 동전 노래방이 입주(2곳)하였다[41] 1980년대 후반, 아파트가 들어선 때부터 보수세력 지지도가 매우 높았으며 2000년부터 출마한 원희룡의 인기가 높은 것도 한 몫했다. 사법시험 수석 출신이라 더 끌리는 거였을수도 그래서 원희룡이 지역구 의원이었을 때 학부모 상대로 공부 방법에 대한 특강을 가지기도 했다.[42] 이전 버전에서는 보수정당이 좋았다기 보다는 원희룡에 끌렸다는 분석도 있지만 총선은 물론 대선, 지방선거 꾸준히 신한국당, 한나라당 계열 정당 득표율이 강남, 서초, 여의도, 동부이촌동 등지의 다음으로 높은 동네였다.[43] 설상가상으로 제18대 국회의원 선거김영삼의 측근인 강삼재 전 의원이 본인은 고향은 경상남도 함안군이지만 양천구에서 20년간 산 사람이라며 자유선진당 공천을 받고 출마했다. 당시 보수세력 지지가 가장 절정에 달했을 때여서 열병합발전소와 함께 있던 쓰레기소각장 주변이었던 목6동 일부 투표소에서는 민주당이 아닌 강삼재의 표가 더 나왔을 정도였다.[44] 이 지역의 유소년층과 청소년층 인구가 절정에 달했던 2000년대 중후반~2010년대 초반에 이 지역의 중학교들(신목중, 월촌중)은 한 학년 당 700명대 중후반에서 800명대 초반의 학생들을 수용하고 남중인 양정중도 한 학년당 300명대 초반 정도에 육박할 정도로 지역의 유소년층과 청소년층 인구가 많았다. 성인이 된 이후 이들이 민주당계 정당을 주로 지지하면서 자연히 지역의 진보 성향 유권자층이 증가하는데 기여한 것.[45] 예를 들어 제19대 대선에선 문재인 후보가 이 지역에서 득표율 40%를 넘긴 곳은 관내사전투표함과 제9투표소(한신청구아파트가 있는 투표소) 뿐이었으며, 그 이외 지역에서는 30%대의 득표율만을 기록했기 때문이다. 특히 9개 투표소들 중 4군데 정도에서는 30%대 초반~중반의 득표율 밖에 올리지 못했다. 게다가 국정농단이라는 특수한 상황 직후에 치러진 선거이기도 했고. 그리고 국정농단 전에 치러진 제20대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은 비례대표 득표에서 새누리당보다 1,600여표나 더 적게 받았다. 비록 당시에 같이 치러진 지역구 국회의원 선거에선 이 지역에서도 더불어민주당 소속 황희 후보가 새누리당 후보를 이기긴 했으나 이는 경선 당시부터 이 지역의 새누리당 후보군이 좋지 못했던데다가 황희 후보가 동네 토박이라는 걸 강조한 영향이 컸기 때문이며, 그가 이 지역에서 얻은 득표율(49%)도 양천구 갑 관내에서 제일 저조했다. 19대 대선으로부터 약 1년 후에 치러진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의 경우, 이 지역에서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의 정당득표율(광역비례 기준) 차이가 8%(각각 38%와 30%)에 불과했다.[46] 그리고 박원순 시장 때부터 시작된 제물포터널 공사나 목동 1~3단지의 용적률 문제, 목동아파트단지에 대한 재건축 안전진단 연기 문제 등으로 인해 이 지역 주민들의 민주당계 정당에 대한 시선도 곱지만은 않은 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