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튀르키예 | 이란 |
1. 개요
튀르키예와 이란의 관계. 양국은 종교, 문화적으로 가깝지만, 역사적인 이유로 인해 사이가 좋지는 않은 편이다.적지 않은 튀르키예인들이 가지고 있는 이란에 대한 이미지는 "꽉막힌 이슬람 원리주의의 본산" 정도로 요약되는데 튀르키예에서 이슬람주의자들이 튀르키예의 세속주의를 훼손하려하는 움직임이 보일때마다 등장하는 단골 비판 멘트가 "이슬람주의자 때문에 튀르키예가 이란화 되어간다.", "이스탄불이 테헤란이 되어가고 있다."일 정도로 이란은 튀르키예와 대척점에 있는 무언가의 상징으로 비유되는 경우가 많다. 반대로 음주의 자유, 개방적인 이미지의 튀르키예 대중 문화 때문에 이란 젊은이들은 튀르키예를 굉장히 부러워하는 경우가 많다.[1]
튀르키예의 상대적으로 자유롭고 세속적인 분위기와 이란의 부족한 일자리 문제가 맞물려 튀르키예로 이민을 희망하는 이란인들이 많아 튀르키예로 이민가는 이란인들의 수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튀르키예와 이란 양국은 상호사증면제를 실시하고 있다.
더불어 친미 외교정책을 취하고 있는 튀르키예와도 국경 외에도 여러 가지 문제를 빚고 있는데, 원수까진 아니어도 그렇다고 우호관계라고 부르기도 애매하다. 물론 수니파와 시아파간의 갈등, 이슬람의 세속화, 서방세계에 대한 입장 등 현대의 문제가 가장 큰 이유이지만, 역사적으로도 골이 깊다. 이란인들과 튀르크인들의 투쟁은 5~6세기 사산 왕조와 돌궐의 전쟁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페르시아의 신화 서사시인 샤나메(شاهنامه)[2]에서 이것을 이란과 투란(중앙아시아 투르크)의 전쟁으로 형상화했을만큼 오래된 것이지만, 현대 이란과 튀르키예의 악감정은 근대 시절 오스만 제국과 사파비 왕조, 카자르 왕조 등이 박터지게 싸우던 것에서 기원한다.
이란은 튀르키예와 역사적 사건으로 이를 가는 아르메니아와 사이가 좋은 편이다. 사실 원래 아르메니아가 범 페르시아권의 일부였다가 서방(그리스-로마-기독교)의 영향을 오랫동안 강하게 받아 독자적인 정체성을 갖게 된 것이다. 아르메니아가 과거 조로아스터교를 믿으며 페르시아인이랑 거의 형제처럼 지내던 역사도 있고 이란에서 더 좋게 봐주는 점도 있고, 되려 중세 근대를 거치며 아르메니아인들을 많이 받아주고 심지어 호메이니 정권조차도 아르메니아계를 우대했다.
2. 역사적 관계
2.1. 현대 이전
셀주크 제국과 페르시아 문화권은 교류가 활발했다. 양쪽 모두 이슬람교를 믿었고 셀주크 제국 및 뒤를 이은 오스만 제국 내에서 페르시아어는 매우 중요한 언어였고 오스만어는 페르시아어에 영향을 많이 받았다. 오스만 제국은 동로마 제국의 문화 등 여러 문화외에도 페르시아 문화를 받아들이면서 페르시아의 영향을 받았다. 그러나 사파비 왕조의 영향으로 페르시아 일대가 시아파 지역이 되면서 오스만 제국과 페르시아는 심각하게 사이가 벌어졌다. 사파비 왕조는 자국 내 순니파 상당수를 오스만 제국으로 추방했으며, 오스만 제국 역시 자국 내 시아파들을 상당수 사파비 제국으로 추방했다. 근세 오스만 제국은 사파비 왕조와 여러 차례 전쟁을 치렀으며 사파비 왕조의 시아 이슬람으로부터 순니 이슬람을 보호하는 정권이라 주장하며 지배 지역 내 순니 무슬림들에게 오스만 제국 지배의 정당성을 홍보할 수 있었다.[3]둘은 1514년에 처음으로 무력충돌을 벌인 이래 사파비 왕조가 멸망하는 1736년까지 싸웠다가 잠시 화해했다가를 반복했으며, 사파비 왕조의 뒤를 이은 아프샤르 왕조, 카자르 왕조도 오스만 제국이라고 하면 이를 심하게 갈았던 나라들이었다.
2.2. 20세기
20세기에 들어서면서 오스만 제국이 몰락한 뒤에 신생 튀르키예 공화국이 들어서고 페르시아도 카자르 왕조가 멸망한 뒤에 팔레비 왕조가 들어서면서 양쪽 모두 세속화를 추진했다.[4]비록 정치체제는 다르더라도 세속주의를 추구하던 동지로서 형제애를 과시한 적도 있었으며[5] 중앙조약기구[6]라는 군사동맹의 일원이기도 했다.
튀르키예 공화국은 초대 대통령 아타튀르크의 영향으로 세속주의 정책을 받아들였고 지금도 세속적인 면이 강한 반면, 이란은 팔레비 왕조때에도 세속주의 정책을 받아들였지만, 튀르키예에 비해선 약하다보니 이슬람 근본주의 세력이 존재하고 있었다.[7] 결국 70년대 말에 팔레비 왕조가 혁명으로 왕정폐지되면서 이란은 이슬람 공화국 체제가 들어선 뒤 이슬람 근본주의 국가가 되면서 양쪽 모두 정치적으로 달라졌으며 이 과정에서 많은 이란인들이 튀르키예로 건너오게 되었다.
2.3. 21세기
현대에는 경제적인 교류가 많은 편이면서도 문화 교류도 많은 편이다. 이란과 튀르키예간의 경제 교류가 활발한 편이고 이란산 원유를 튀르키예에서도 수입하고 있다. 양국은 이슬람 협력기구의 회원국들이다. 쿠르드족문제의 경우 양국은 협력하면서 쿠르드족들을 탄압하고 있다.[8]튀르키예가 에르도안 체제내에서 이슬람 근본주의 성향이 드러나기 시작하면서 튀르키예내 세속주의 세력들은 튀르키예도 이란처럼 되는 거 아니냐며 반발하고 있다. 여담으로 이란에서 가장 인기있는 맥주가 튀르키예의 에페스 맥주라고 한다.
2018년 5월 11일에 튀르키예의 경제장관은 미국이 이란을 제재해도 이란과는 계속 사업을 하겠다고 밝혔다. #
2018년 7월 30일에 러시아와 튀르키예, 이란은 쌍방 죄수교환에 합의했다. #
2018년에 튀르키예와 이란은 미국의 경제제재를 받자 서로 협력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
러시아와 튀르키예, 이란은 시리아 사태를 종식시키기 위해 2018년 9월에 논의하기로 합의했다. # 그리고 2019년 2월 14일에 소치에서 러시아, 이란, 튀르키예는 시리아 사태 해결 방안을 논의했다. #
미국의 이란제재이후에 이란 회사들의 튀르키예내 법인설립이 두드러졌다. #
튀르키예 경찰이 이스탄불 주재 이란 총영사관 직원을 이란 반체제 인사 암살 사건과 관련해 체포했다.#
3. 문화 교류
튀르키예는 비교적 친서방 국가에다 국민 대다수가 이슬람 수니파이고 이란은 반서방 국가에다 국민 대다수가 이슬람 시아파라 서로 앙숙일 듯하지만, 혁명 이후에도 의외로 큰 충돌은 별로 없다.[9] 오히려 이란과 서로 앙숙인 이라크, 아랍에미리트[10], 사우디아라비아, 이스라엘과의 관계에 비하면 튀르키예와 이란의 관계는 그나마 좋은 편이라고 할 수 있다. 이란으로 밀수입 되는 술의 원산지는 거의 튀르키예이고, 반대로 이란인들은 튀르키예 내에 있는 이슬람 성지에 순례를 가기도 하고, 중동 지역에서 인기인 튀르키예 드라마를 이란에서도 적지 않게 보기도 한다. 경제제재로 이란이 직접 수입할 없는 서방제 상품의 상당수가 튀르키예를 통해 이란에 들어오며, 이 때문에 이란 내에서도 코카콜라와 아이폰 등이 팔리고 있다.이란에서는 튀르키예 드라마 등 튀르키예의 대중문화 컨텐츠의 인기가 많다. 튀르키예의 문화 컨텐츠는 세속적이고 (이란 기준으로) 주제와 장르의 다양성을 갖추고 있고 종파는 다르지만 종교, 문화적으로 어느정도 공통 분모가 있어서 통하는게 있기 때문. 물론 종교계와 보수적인 남성들의 반발도 있어 튀르키예 드라마를 보는 아내와 딸이 타락할까봐 안테나를 뽑는 사례도 있다.
4. 관련 문서
- 튀르키예/외교
- 이란/외교
- 이슬람 협력기구
- 튀르키예/역사
- 이란/역사
- 튀르키예/경제
- 이란/경제
- 튀르키예인 / 페르시아인
- 튀르키예어 / 페르시아어
- 이슬람교 / 순니파 / 쉬아파 / 수피즘
- 대국관계일람/유럽 국가/남유럽 국가
- 대국관계일람/아시아 국가/서아시아 국가
[1] 튀르키예와 함께 이란 젊은이들이 부러워 하는 대표적인 나라들은 레바논과 바레인이다. 레바논은 튀르키예와 마찬가지로 대중 문화가 발전했기 때문이고 바레인은 술을 판매하기 때문.[2] 튀르크인들이 페르시아 문화의 상당부분을 흡수하면서 심지어 오스만 제국에서도 페르시아어를 주요 학술 용어 중 하나로 사용했을 정도였다.[3] 북아프리카 모로코 등이나 중앙아시아의 튀르크계 국가들은 물론 무굴 제국이나 동남아 일대의 이슬람 국가에 이르기까지[4] 튀르키예는 아타튀르크의 영향으로 세속 국가가 되었다.[5] 팔레비 1세 국왕과 케말 아타튀르크 대통령이 호형호제, 어깨동무하던 시절이었다.[6] 전신은 1955년 이라크 왕국 바그다드에서 체결된 바그다드 조약기구였으나, 1958년 이라크 왕정 붕괴로 해체 위기에 놓인 것을 미국의 중재로 튀르키예, 이란, 파키스탄을 회원국으로 하여 재출범했다. 1979년 해체했다.[7] 세속주의/탈종교화 정책이 국민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아 세속주의 체계가 완전히 정착한 튀르키예, 튀니지 등과 달리 이란은 그마져도 전무했다.[8] 참고로 이란은 똑같이 갈등이 있는 파키스탄과도 발루치스탄 분리독립 문제에서는 협력하며 발루치인들을 탄압한다.[9] 다만 튀르키예 젊은이들 사이에서 이란을 이슬람 근본주의의 대명사로 취급해서 이란과 이란 정부를 광신도 또라이 집단 취급하는 경향은 있다고 한다.[10] 이라크와 이란, 이란과 사우디의 대립관계에 가려져서 그렇지 아랍에미리트와 이란도 아부 무사, 툰브 제도등 페르시아만 해상 섬들의 영유권 문제로 사이가 좋지 않다. 다만 샤트 알 아랍강의 영유권 문제로 전쟁을 벌였었던 이라크와 이란 관계와 달리 이 두 나라들은 전쟁까진 가지 않았다. 자세한 건 아랍에미리트의 외교 문단을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