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03 11:26:42

파블로 네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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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버나드 쇼 그라치아 델레다 앙리 베르그송 시그리드 운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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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스 만 싱클레어 루이스 에릭 악셀 카를펠트 존 골즈워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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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만 헤세 앙드레 지드 토머스 스턴스 엘리엇 윌리엄 포크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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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스타인벡 요르기우스 세페리스 장폴 사르트르(거부) 미하일 숄로호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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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blo Neruda
파일:5d211f16c4bfbe7aee4283eb8984cbc7.jpg
[[노벨문학상|{{{#white 1971년 노벨문학상 수상자}}}]]
본명네프탈리 리카르도 레예스 바소알토
Neftalí Ricardo Reyes Basoalto
출생1904년 7월 12일
칠레 파랄
사망1973년 9월 23일 (향년 69세)
칠레 산티아고
국적
[[칠레|]][[틀:국기|]][[틀:국기|]]
직업시인, 정치가
서명파일:파블로 네루다 서명.png


1. 개요2. 일생3.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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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라틴아메리카 대륙의 운명과 희망을 생생하게 전달하는 설득력을 갖춘 시 - 노벨문학상 수상 사유 중 일부
어떤 언어로 보나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시인이다. -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확신컨대, 나는 이 땅에서 그 나이에 그만한 높이에 다다른 시인을 따로 알지 못한다. - 페드로 프라도
칠레의 국민적인 지지를 받는 시인이자 사회주의 정치가. 본명은 네프탈리 리카르도 레예스 바소알토(Neftalí Ricardo Reyes Basoalto)이다.

남미 역사를 소재로 한 서사시, 사랑을 노래한 서정시, 일상적인 사물에 바치는 송시, 현실의 부정적인 요소를 비판하는 초현실주의 시 등 다양한 종류의 시들을 남겼다. 사회주의자였기 때문에 평생 동안 여러 군데로 정치적 망명을 다녔다. 1971년에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네루다 특유의 시법을 일컫는 네루디스모(nerudismo)라는 개념이 있다. 그 특징은 참신한 이미지 활용을 통한 다채로운 메타포, 과감한 정치적 선동성과 관능적 선정성, 형식 구사의 파격성 등이다.

2. 일생

1904년에 칠레 중부의 파랄에서 철도 노동자의 아들로 태어난 네루다는 태어난 지 2달 만에 어머니를 여의었다. 그는 13살때 그의 첫 작품을 발표했다. 아들이 시인이 되는 것을 반대한 부친의 눈을 피하기 위해 필명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체코의 작가인 얀 네루다의 성과 성경의 바울에서 영감을 얻은 파블로라는 이름을 합쳐 필명을 만든 것이다. 이 '파블로 네루다'라는 이름은 1946년부터는 아예 법적인 이름이 되었다.

그는 문학적인 재능을 발휘해서 1921년 〈축제의 노래〉를 발표해서 시단의 인정을 받았고 2년 뒤에는 그의 첫 시집 <황혼 일기>를 출판했다. 그 이후 그의 문학적 행보는 거칠 것이 없어서 <무한한 인간의 시도>, <열렬한 투척병>, <지상의 거처>를 출판한다. 그 사이 그는 버마의 양곤의 주재 명예영사로 임명되고 특히 그가 마드리드 주재 영사로 부임 할때 스페인 내전을 겪은 것이 그가 공산당에 입당하고 반 파시즘 시를 쓴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이 시절에 스리랑카에 머무를 때 하층민 타밀 여인을 강간하고 그 사실을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자기 자서전에 적은 것이 요즘 논란이 되고 있다. 이는 한국어 번역본에도 그대로 실려있다.

그는 귀국 이후에 상원의원에 당선되면서 본격적인 정치 활동을 시작한다. 1946년 대통령에 취임한 가브리엘 곤살레스 비델라 대통령이 칠레 공산당과 체결한 협약을 파기하자 파블로 네루다는 격렬하게 비판했다. 특히 1948년 1월 6일의 의회 연설은 <나는 고발한다>라는 제목으로 출판되기도 했다. 이에 대법원은 네루다의 상원의원 면책특권을 박탈하고, 2월 5일 국가원수 모독죄로 체포영장을 발급했다. 그 후 칠레 공산당이 비합법 단체로 인정되자 그의 망명생활이 시작된다. 1950년 멕시코 망명 시절에 서사시 <모두의 노래>를 출간했다.

그는 1952년 귀국한 이후 창작에 몰두한다. 1969년도에 칠레 공산당의 지명으로 대통령 후보가 됐지만 살바도르 아옌데를 추대하고 후보에서 사퇴했다.

1971년에는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

1973년도에 아우구스토 피노체트의 쿠데타로 아옌데 정권이 무너지자, 병상에서 격렬하게 항의하는 시를 쓰다가 1973년도 9월 23일에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네루다의 죽음에 관하여 그의 측근과 칠레 공산당을 비롯한 좌파 논객들은 오랫동안 피노체트 정권에 의한 독살설을 주장했는데, 2010년대에 들어 결국 칠레 내무부에서 장기적으로 내부 조사를 한 결과 2015년 11월에 스페인어권 최대 신문 중 하나인 엘 파이스 지를 통해 실제로 제3자의 개입을 통해 독살 되었을 가능성이 유력하다고 시인하였다.

3. 기타

네루다가 등장하는 <일 포스티노>라는 영화가 있다. 원작소설은 안토니오 스카르메타가 쓴 소설 <네루다의 우편배달부>.

미국 중앙정보국의 지원을 받은 피노체트가 쿠데타로 살바도르 아옌데 대통령을 쫒아내자, 네루다는 해외 망명을 계획했다. 그런데 그는 칠레를 떠나기 전날에 갑작스럽게 사망했다. 공식적인 사인은 암으로 인한 심정지였지만, 최근에 칠레 정부가 군부에 의한 타살 가능성을 인정했다.출력

네루다가 한 말 중에 '모든 꽃을 꺾을 수는 있어도, 봄이 오는 것을 막을 수는 없다.'라는 말이 있는데, 김영삼의 닭의 목을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는 말과 꽤나 느낌이 비슷하다.[1]

2016년 재키(영화)로 유명한 파블로 라리안이 감독한 전기 영화인 네루다가 공개되었다.

문학가 이태준은 1951년에 조선대표단의 일원으로 중국 북경을 방문했을 당시, 파블로 네루다를 본 적이 있었다.[2]

The Dreamer이라는 파블로 네루다의 인생이 담긴 책이 있다. 이 책은 청담어학원 Par 레벨에서 사용되고 있는 책이다.


[1] 물론 네루다쪽이 훨씬 먼저 나왔다.[2] 쏘련기행 중국기행 외 p.2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