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0-09 16:38:09

하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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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uby(秦氏,ruby=はたうじ)]
하타씨
파일:하타 가몬.jpg
<colbgcolor=#000> 하타 가문의 가몬?
카고메[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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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성 하타노 키미(秦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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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宗氏)

1. 일본의 성씨
1.1. 1.2. 기타 성씨1.3. 실존 인물1.4. 가상 인물
2. 일본의 지명 幡多

[clearfix]

1. 일본의 성씨

1.1.


일본의 성씨 중 하나로, 과거에 한반도에서 일본 열도로 이동한 도래인계가 뿌리인 성씨이다. 가쓰라 강에 제방을 쌓아 농지를 넓히는 등, 아직 수도가 되기 전이던 교토 지역을 개척하는 데 큰 공을 세웠다고 한다. 지금도 교토 서쪽의 고류지, 마츠노오타이샤부터 동남쪽의 후시미이나리타이샤까지 교토 각지에 하타씨의 유산이 많이 남아있다.

특히 고류지 근처는 '우즈마사'(太秦)라는 지명으로 그 흔적이 남아있다..우즈마사는 숙자훈 읽기라서 일반적인 일본어 한자 읽기와 다르기 때문에 일본인들도 太秦을 우즈마사라고 읽는 줄 모르는 사람도 많다. 《일본서기》에 의하면 우즈마사의 어원은 '우두모리 마좌'(禹豆母利麻佐)라고 하는데,# 한국어의 우두머리와 음운상 연관성이 제기되기도 한다. 전철역도 우즈마사코류지역이고, 이 동네에 있는 우즈마사 영화촌도 교토의 유명한 관광지이다.

하타씨의 출신에 대해서는 큰 줄기는 같지만 기록마다 조금씩 다르다. 《일본서기》에서는 하타씨의 선조인 궁월군백제 도래인으로 서술되어 있지만 한 • 일 학계에서는 신라에서 온 것으로 보고 있다. 아래에 설명하듯 '진'(秦)이란 글자는 신라와 많이 엮이는 글자였고, 그 외에 많은 정황 증거가 있기 때문이다.
이 해 궁월군(弓月君)이 백제로부터 와서 귀화하였다. 그리고 아뢰기를, “신은 우리나라 120현의 사람들을 이끌고 귀화하려 하였습니다. 그러나 신라인이 방해하여 모두 가라국(加羅國)에 머물고 있습니다”라고 하였다.
일본서기 권10 오진 덴노 14년(283)#
일본서기》에서는 제15대 오진 덴노 치세인 283년[2] 백제에서 120현의 백성(百二十県の民)을 이끌고 귀화한 궁월군(弓月君, 유즈키노키미 ゆづきのきみ/유츠키 ユツキ/윤즈 ユンヅ)이 시조라고 했다.

이들은 우여곡절 끝에 가야 지역을 거쳐서 일본으로 이주했고, 도래 이후 견직물을 다루는 일에서 종사했는데 이들이 만든 견직물이 피부(肌, 하다)처럼 부드럽고 따뜻해서, 또는 바다를 건너왔기 때문에 波多(하타)라는 성씨를 얻었고, 훗날 씨성(氏性)에게 登呂志公, 秦酒公, 禹都萬佐(太秦)을 하사했다고 한다. 일본 학계에서는 하타가 고대 한국어로 바다를 뜻한다는 견해도 있다. 波多를 현대 한국한자음으로 읽으면 파다라고 발음하며, 네이버 한자사전 기준 波多는 바다라는 뜻이라고 나온다.

후대에는 '진'(秦)이라는 한자로 표기했기 때문에 중국의 첫 번째 통일제국인 진나라의 '진', 즉 중국계 성씨라는 주장이 있으나 부정되고 있다. 훗날 만들어진 《신찬성씨록》에는 '하타'(秦)라고 하여 진시황 영정의 후손으로 기록되어 있으나 궁월군(弓月君)이 백제에서 일본으로 도래했을 때는 秦씨나 진시황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었다. 《일본서기》에서는 중국이 아닌 백제에서 건너왔다고 서술되어 있다. 그리고 실제 진시황을 비롯한 진나라 황족의 성씨는 영(嬴)성, 조(趙)씨였다.

또한 '하타'라는 성씨에서 이후 秦이라는 한자를 사용했고, 신라의 제31대 신문왕 또한 문무왕릉비 비문에서 자신의 선조로 '진백'(秦伯)을 언급했다. 그 이유는 《삼국지》 <동이전>에 한 노인이 신라인은 진나라에서 피난을 온 사람들이라고 말한 오류가 서술되어 있어 중국인들은 신라인들을 진나라의 후예로 믿고 있었고 이 잘못된 오류 서술이 신라와 일본에도 전해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문무왕릉비 원문의 뜻은 '진백(秦伯)의 터전을 다시 일으켰다'이며, 이를 자신의 선조로 언급했다고 볼만한 근거는 없다. 이는 모화사상 및 숭조사상 씨족중심주의에 의한 7세기 신라인들의 역사왜곡이다. 고려 태조 왕건이 서해 용왕의 후손이라고 자칭했던 것과 비슷한 개념이다. 다만 여기서 당시 신라인들이 그렇게 '믿었다'는 것을 알 수 있으며, 이는 일본으로 넘어간 그들의 한 갈래인 하타씨가 자신들의 성씨로 '진'(秦) 자를 쓴 이유가 된다.

신라의 사실상 전신인 진한(辰韓)을 한자를 다르게 써서 秦韓이라고도 부른다고 《진서》에 써 있을만큼 이런 '오류'는 신라때부터 그 역사가 길었다. 그런데 후대 신라인들이 완전히 지어낸 얘기까진 아닌 것이, 《사기》 <조선열전>에서 진나라가 무너질 때, 그 유민이 대규모로 고조선에 유입되었다고 했고, 《삼국사기》 <신라본기>에서는 신라를 건국한 경주 6촌이 고조선의 유민 출신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즉 모든 신라인이 통일제국 진나라 출신은 아니라도 일부 인적 연결성은 기록에 명시되어 있긴 하다. 다만, 《사기》는 중국의 책이고 《삼국사기》는 한국의 책이다. 서로 인식이 다른 국가들의 책들을 비교할 땐 매우 신중해야 한다. 참고로, 삼국사기는 진나라 유민들의 유입에 대해 일절 언급이 없다. 진나라의 서복이 일본에 정착했다는 것이 중국 내에서 정설이 된 것도 같은 《사기》로부터 나온 이야기 때문이다. 카더라 천지인 중화사상

즉 후대에 성씨의 권위를 기록하기 위해 만들어진 《신찬성씨록》에서 하타씨가 진시황 영정의 후손이라고 조상을 거창하게 윤색한 서술 때문에 일부 중국인들은 《일본서기》나 《신찬성씨록》에 전혀 나오지도 않는 인물인 서복에 대해 언급하면서 하타씨를 서복과 관련시키기도 한다. 그런데 이것 때문에 실제 중국에서는 《일본서기》나 《신찬성씨록》 등 일본 문헌에서도 서복이 하타씨의 선조로 나온다고 착각하는 경우가 일어나고 있으나 일본 문헌에는 전혀 없는 기록이며, 서복 전설은 중국에서만 나타나는 기록으로 신빙성이 없다.

하타씨의 기원을 신라(진한) 울진 출신으로 보기도 한다. 그 근거로 울진 봉평리 신라비에서 보이는 '파단'(波旦)이라는 지명을 일본식 발음으로 읽으면 '하타'라고 하는 점, 교토에 있는 고류지의 경우, 쇼토쿠 태자의 명령으로 하타씨가 세운 것인데 고류지에서 소장하고 있는 일본의 국보 1호 목조각상인 반가사유상 불상의 재질이 한국의 경상도에서 흔한 목재라는 점, 《일본서기》 기록상 623년 7월에 신라에서 전해준 불상이 이 반가사유상이라는 점 등이# 하타씨가 신라계 도래인이라는 주장에 힘을 실어 주었다.

사실상 하타씨가 백제계나 중국계가 아닌 신라계라는 것은 정설이 되었다. 여우 신사라는 별명과 무수히 늘어선 토리이들로 유명한 교토 이나리 신사는 하타씨의 씨족신을 모시고 산에서 제사지내던 것에서 비롯했는데 공식 홈페이지 설명에서는 신라 출신이라고 언급하고 있다. 교토시 공식 홈페이지 역시 '하타'는 고대 한국어로 '바다'라는 뜻이며 5세기 중반 신라에서 도래했다고 언급하고 있다.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일본>편 중 3편인 -교토의 역사- 편에서도 하타씨가 신라에서 건너온 도래인이었음을 주장함과 동시에 그 이유에 대한 설을 이야기하고 있다. (위 문단 대부분의 내용이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해당 부분을 많이 참조했다.)

1.2. 기타 성씨

기타 성씨로는 하타케(畑), 하네(羽) 등이 있다. 대중적으로는 이쪽이 좀 더 익숙하다고 한다. 2018년 기준으로 秦 씨보다 살짝 많은 정도로 존재한다. 羽田라고 쓰고 하네다가 아닌 하타로 읽는 성씨도 있다.

1.3. 실존 인물

1.4. 가상 인물

2. 일본의 지명 幡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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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육각성과 비슷하게 생겼지만 이스라엘 유대교의 상징 다윗의 방패가 아니라 바구니의 결을 묘사한 것이다. 일본 열도 곳곳에서 사용되는 이 문양은 일본사 음모론자들이나 유사역사학자들에 의해 유대인과 자주 엮인다(...).[2] 이주갑인상으로는 고구려 광개토대왕과 싸우는라 국력이 쇠락해졌던 백제 제17대 아신왕 치세 말기인 403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