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투갈의 축구선수에 대한 내용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문서
, 호나우두와 같은 이름을 가진 브라질의 축구선수에 대한 내용은 호나우지뉴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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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 style="margin: -0px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word-break: keep-all;" | <colcolor=#fff><colbgcolor=#002776> 상징 | 국기 · 국장 · 국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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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나우두의 수상 이력 | ||||
{{{#!folding [ 펼치기 · 접기 ] | | 1997 · 2002 | ||
| 1996 · 1997 · 2002 | |||
| 1996 · 1997 · 2002 | |||
| 1997 · 2002 | |||
| 1996-97 · 2003-04 | |||
| | | | |
1998 FIFA 월드컵 골든볼 | 2002 FIFA 월드컵 실버볼 | 2002 FIFA 월드컵 골든슈 | 2006 FIFA 월드컵 브론즈슈 | |
| ||||
베스트팀 | ||||
| 1996-97 · 1997-98 | |||
| | | |
1996 Ballond'or | ||
수상 마티아스 자머 | 2위 호나우두 | 3위 앨런 시어러 |
1998 Ballond'or | ||
수상 지네딘 지단 | 2위 다보르 슈케르 | 3위 호나우두 |
1998 FIFA 올해의 선수 | ||
수상 지네딘 지단 | 2위 호나우두 | 3위 다보르 슈케르 |
2003 FIFA 올해의 선수 | ||
수상 지네딘 지단 | 2위 티에리 앙리 | 3위 호나우두 |
Player of the Year 1998 | ||
수상 지네딘 지단 | 2위 마이클 오언 | 3위 호나우두 |
1997 코파 아메리카 MVP | ||
호나우두 |
FIFA 월드컵 우승 멤버 | |
발롱도르 다회 수상자 | |||
<rowcolor=#c18e33> ★★★★★★★★ | ★★★★★ | ||
리오넬 메시 |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 ||
<rowcolor=#c18e33> ★★★ | ★★★ | ★★★ | ★★ |
요한 크루이프 | 미셸 플라티니 | 마르코 반 바스텐 | 알프레도 디 스테파노 |
<rowcolor=#c18e33> ★★ | ★★ | ★★ | ★★ |
프란츠 베켄바워 | 케빈 키건 | 카를하인츠 루메니게 | 호나우두 |
FIFA 올해의 선수 다회 수상자 | |
<rowcolor=#c8ab37> ★★★★★★★★ | ★★★★★ |
리오넬 메시 |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
<rowcolor=#c8ab37> ★★★ | ★★★ |
호나우두 | 지네딘 지단 |
<rowcolor=#c8ab37> ★★ | ★★ |
호나우지뉴 | 로베르트 레반도프스키 |
}}} ||
호나우두의 기타 정보 | |||||
{{{#!folding [ 펼치기 · 접기 ] | 연도별 전 세계 축구 이적료 1위 | ||||
1996 앨런 시어러 (2100만 유로) | → | 1997 호나우두 (2800만 유로) | → | 1998 데니우송 (3150만 유로) |
선정 위대한 브라질인 | |||||
{{{#!wiki style="margin:0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6px -1px -11px" | ※ 2012년 7월 11일 브라질의 민영 방송사 SBT가 BBC의 BBC 선정 위대한 영국인을 바탕으로 브라질 국민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를 바탕으로 ‘가장 위대한 브라질인 100명’을 선정 | ||||
TOP 10 | |||||
<rowcolor=#ffdf00> 1위 | 2위 | 3위 | 4위 | 5위 | |
시쿠 샤비에르 | 아우베르투 산토스뒤몽 | 브라질의 이자베우 황태녀 | 제툴리우 바르가스 | 주셀리누 쿠비체크 | |
<rowcolor=#ffdf00> 6위 | 7위 | 8위 | 9위 | 10위 | |
아일톤 세나 | 오스카르 니에메예르 | 페르난두 카르도주 | 펠레 | 치라뎅치스 | |
11위~100위 | |||||
<rowcolor=#ffdf00> 11위 | 12위 | 13위 | 14위 | 15위 | |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 | 이르마 두우시 | 에지르 마세두 | 시쿠 아니지우 | 호나우두 | |
<rowcolor=#ffdf00> 16위 | 17위 | 18위 | 19위 | 20위 | |
데르시 곤사우베스 | 지우다 아른스 | 호베르투 카를루스 | 주제 알렝카르 | 네이마르 주니오르 | |
<rowcolor=#ffdf00> 21위 | 22위 | 23위 | 24위 | 25위 | |
에이키 바치스타 | 후이 바르보자 | 프레이 가우방 | 마누에우 자싱투 코엘류 | 오즈와우두 크루스 | |
<rowcolor=#ffdf00> 26위 | 27위 | 28위 | 29위 | 30위 | |
실라스 말라파이아 | 페드루 2세 | 치쿠 멘지스 | 루이스 곤자가 | 헤나투 후수 | |
<rowcolor=#ffdf00> 31위 | 32위 | 33위 | 34위 | 35위 | |
헤르베르트 지소자 | 파드리 시세루 | 지우마 호세프 | 탄크레두 네베스 | 루시아누 후키 | |
<rowcolor=#ffdf00> 36위 | 37위 | 38위 | 39위 | 40위 | |
바우데미르 산치아구 | 에우데르 카마라 | 헤나투 아라강 | 호드리구 파루 | 슈샤 | |
<rowcolor=#ffdf00> 41위 | 42위 | 43위 | 44위 | 45위 | |
마샤두 지 아시스 | 루앙 산타나 | 이베치 상갈루 | 엘리스 헤지나 | 마우아의 자작 | |
<rowcolor=#ffdf00> 46위 | 47위 | 48위 | 49위 | 50위 | |
하우 세이샤스 | 레오네우 브리조우라 | 치리리카 | 구구 리베라투 | 호제리우 세니 | |
<rowcolor=#ffdf00> 51위 | 52위 | 53위 | 54위 | 55위 | |
주제 지파이바 네투 | 카를루즈 드루몽 지안드라지 | 줌비 | 호미우두 히베이루 소아리스 | 파울루 프레이리 | |
<rowcolor=#ffdf00> 56위 | 57위 | 58위 | 59위 | 60위 | |
이비 카마르구 | 몬테이루 로바투 | 호베르투 마리뉴 | 마르쿠스 | 마르셀루 로시 | |
<rowcolor=#ffdf00> 61위 | 62위 | 63위 | 64위 | 65위 | |
지쿠 | 아마시우 마자로피 | 데데 | 울리시스 기마랑이스 | 헤이나우두 지아니키니 | |
<rowcolor=#ffdf00> 66위 | 67위 | 68위 | 69위 | 70위 | |
카를루스 샤가스 | 조나스 아비비 | 카시아스 공작 | 안토니우 에르미리우 지모라이스 | 칸지두 론돈 | |
<rowcolor=#ffdf00> 71위 | 72위 | 73위 | 74위 | 75위 | |
루아 블랑쿠 | 미셰우 텔로 | 가린샤 | 람피앙 | 클라우지아 레이치 | |
<rowcolor=#ffdf00> 76위 | 77위 | 78위 | 79위 | 80위 | |
루이스 카를루스 프레스치스 | 마르쿠스 폰치스 | 페르난두 콜로르 | 주제 세하 | 소크라치스 | |
<rowcolor=#ffdf00> 81위 | 82위 | 83위 | 84위 | 85위 | |
주제 루이스 다테나 | 호나우지뉴 | 조엘마 | 치쿠 부아르키 | 샤크리냐 | |
<rowcolor=#ffdf00> 86위 | 87위 | 88위 | 89위 | 90위 | |
아마두 바치스타 | 윌리암 보나르 | 카주자 | 안토니우 카를루스 조빙 | 앤더슨 실바 | |
<rowcolor=#ffdf00> 91위 | 92위 | 93위 | 94위 | 95위 | |
호베르투 랑데우 지모라 | 호마리우 | 조르지 아마두 | 호나우지 골리아스 | 이타마르 프랑쿠 | |
<rowcolor=#ffdf00> 96위 | 97위 | 98위 | 99위 | 100위 | |
호베르투 주스투스 | 아나 파울라 발라당 | 비탈 브라질 | 조 소아리스 | 마리아 다페냐 | |
출처 | |||||
같이 보기: 위대한 인물 시리즈 |
[br]FC INTERNAZIONALE MILANO HALL OF FAME |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a4905a,#a5915a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 GK | DEF | MID | ST | |
2018 | [ruby(쳉가, ruby=발테르)] | [ruby(사네티, ruby=하비에르)] | [ruby(마테우스, ruby=로타어)] | ㅤㅤㅤㅤ 호나우두 [ruby(ㅤㅤㅤㅤ, ruby=루이스 나자리우 지리마)] | |
2019 | [ruby(톨도, ruby=프란체스코)] | [ruby(파케티, ruby=자친토)] | [ruby(스탄코비치, ruby=데얀)] | [ruby(메아차, ruby=주세페)] | |
2020 | [ruby(세자르, ruby=줄리우)] | [ruby(베르고미, ruby=주세페)] | [ruby(캄비아소, ruby=에스테반)] | [ruby(밀리토, ruby=디에고)] | |
2021 | [ruby(팔리우카, ruby=잔루카)] | [ruby(마테라치, ruby=마르코)] | [ruby(스네이더, ruby=웨슬리)] | [ruby(에투, ruby=사무엘)] | |
2022 | [ruby(보르돈, ruby=이바노)] | ㅤㅤㅤ 마이콘 [ruby(ㅤㅤㅤ, ruby=도글라스)] | [ruby(마촐라, ruby=산드로)] | [ruby(비에리, ruby=크리스티안)] |
FIFA 월드컵 역대 득점 순위 |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003768 {{{#!folding [ 펼치기 · 접기 ] | 득점 수 | 선수명 (국적) |
16 | 미로슬라프 클로제 (독일) | |
15 | 호나우두 (브라질) | |
14 | 게르트 뮐러 (독일) | |
13 | 리오넬 메시 (아르헨티나) 쥐스트 퐁텐 (프랑스) | |
12 | 킬리안 음바페 (프랑스) 펠레 (브라질) | |
11 | 위르겐 클린스만 (독일) 산도르 코츠시스 (헝가리) | |
10 | 토마스 뮐러 (독일) 가브리엘 바티스투타 (아르헨티나) 게리 리네커 (잉글랜드) 헬무트 란 (독일) 테오필로 쿠비야스 (페루) 그제고시 라토 (폴란드) |
3R | ||
호나우두 | 히바우두 | 호나우지뉴 |
}}} ||
레알 바야돌리드 CF | ||||
Real Valladolid Club de Fútbol | ||||
<colbgcolor=#63257e><colcolor=#ffffff> 이름 | 호나우두 Ronaldo | |||
본명 | 호나우두[1] 루이스 나자리우 지 리마 Ronaldo Luís Nazário de Lima | |||
출생 | 1976년 9월 18일 ([age(1976-09-18)]세)[2] | |||
리우데자네이루주 이타구아이 | ||||
국적 | [[브라질| ]][[틀:국기| ]][[틀:국기| ]] | [[스페인| ]][[틀:국기| ]][[틀:국기| ]] | |||
신체 | 키 183cm / 체중 111kg[3] | |||
주발 | 오른발 (양발) | |||
직업 | 축구 선수 (스트라이커 / 은퇴) 축구 경영인 | |||
소속 | <colbgcolor=#63257e><colcolor=#ffffff> 선수 | 크루제이루 EC (1993~1994) PSV 에인트호번 (1994~1996) FC 바르셀로나 (1996~1997) 인테르나치오날레 (1997~2002) 레알 마드리드 CF (2002~2007) AC 밀란 (2007~2008) SC 코린치안스 (2009~2011) | ||
경영 | 레알 바야돌리드 CF (2018~ / 회장 겸임) 크루제이루 EC (2021~ ) | |||
국가대표 | 98경기 62골[4] (브라질 / 1994~2011) | |||
SNS | | | | |||
정보 더 보기 {{{#!wiki style="margin: 0 -10px -6px; min-height: 26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 <colbgcolor=#63257e><colcolor=#ffffff> 통산 득점 | 414골 | ||
종교 | 가톨릭[5] | |||
등번호 | 9번[6] |
[clearfix]
1. 개요
브라질의 前 축구 선수이자 現 레알 바야돌리드 CF, 크루제이루 EC의 구단주.[7] 선수 시절 포지션은 스트라이커였다.
현역 시절 브라질 대표팀에서 두 번의 월드컵[8]을 포함해 다섯 번의 국제 대회 우승[9]을 달성하고, 클럽에서는 바르셀로나, 인테르, 레알 마드리드를 거치며 각각 컵위너스컵, UEFA컵, 라리가 우승을 한 차례씩 차지했다.
또한 발롱도르 2회, FIFA 올해의 선수 3회, 라리가 득점왕 2회, 에레디비시 득점왕, 월드컵 골든볼 · 골든슈, 코파 아메리카 MVP · 득점왕, UEFA 올해의 클럽 축구 선수 등의 개인 커리어를 보유하고 있다.
2. 선수 경력
2.1. 클럽 경력
자세한 내용은 호나우두/클럽 경력 문서 참고하십시오.2.2. 국가대표 경력
자세한 내용은 호나우두/국가대표 경력 문서 참고하십시오.3. 플레이 스타일
자세한 내용은 호나우두/플레이 스타일 문서 참고하십시오.4. 평가
호나우두에 대한 전문가들의 평가와 수상 이력- [ 펼치기 · 접기 ]
- * 2024 인도 MPL 선정 역대 최고의 선수 8위 링크
- 2024 영국 Sports Mole 선정 역대 최고의 선수 9위 링크
- 2024 영국 Sportsnaut 역대 최고의 선수 8위 링크
- 2024 인도 TechnoSports 선정 역대 최고의 선수 7위 링크
- 2024 영국 90Min 선정 역대 최고의 선수 6위 링크
- 2024 영국 데일리메일 선정 역대 최고의 선수 7위 링크
- 2024 영국 기브미스포츠 선정 역대 최고의 선수 9위 링크
- 2024 영국 스포츠바이블 선정 역대 최고의 선수 7위 링크
- 2024 영국 라디오타임스 선정 역대 최고의 선수 9위 링크
- 2024 Sportshubnet 선정 역대 최고의 선수 8위 링크
- 2024 인도 Howzat 선정 역대 최고의 선수 7위 링크
- 2024 인도 KreedOn 선정 역대 최고의 선수 7위 링크
- 2023 영국 포포투 선정 역대 최고의 선수 9위 링크
- 2022 독일 Sport1 선정 역대 최고의 선수 9위 링크
- 2020 발롱도르 드림팀 센터 포워드 부문 1위 링크[10]
- 2020 스페인 마르카 주관 역대 최고의 선수 투표 3위 링크
- 2019 스페인 마르카 주관 1990년대 최고의 선수 투표 1위
- 2019 영국 인디펜던트 선정 21세기 최고의 선수 6위 링크
- 2019 영국 포포투 선정 지난 25년간 최고의 선수 4위 링크
- 2018 골닷컴 선정 1990년대 최고의 선수 1위
- 2017 영국 포포투 선정 역대 최고의 선수 10위 링크
- 2017 네덜란드 SportWereld 선정 에레디비지 역대 용병 2위 링크
- 2017 네덜란드 부트발 선정 역대 최고의 선수 6위 링크
- 2017 스페인 카데나세르 선정 지난 25년간 베스트 11 링크
- 2017 브라질 글로부 주관 '호나우두 vs 호마리우' 투표 승리 (16년 투표와 다른 것) 링크[11]
- 2017 아스날 '호나우두 vs 호날두' 투표에서 승리 링크[12]
- 2016 유로스포르트 주관 '호나우두 vs 호날두' 투표 승리 링크[13]
- 2016 골닷컴 기자단 '호나우두 vs 호날두' 투표 승리 링크[14]
- 2016 파시온리베르타도레스 주관 '호나우두 vs 호마리우' 투표 승리 링크
- 2016 브라질 글로부 주관 최고 대 최고 투표 '호나우두 vs 호마리우' 승리 링크
- 2016 프랑스 풋볼 주관 역대 최고의 선수 투표 3위 링크
- 2016 프랑스 풋볼 주관 '호나우두vs호날두' 투표 승리 링크
- 2016 전 세계 전문가 71명을 대상으로 한 '호나우두 vs 호날두 vs 호나우지뉴' 조사에서 1위 링크
- 2016 유로스포르트 기자단 선정 역대 최고 레전드 종합 5위 링크[15]
- 2015 이탈리아 칼치오메르카토 주관 '호나우두 vs 호날두' 투표 승리 링크
- 2015 스페인 문도 데포르티보 주관 역대 최고의 선수 투표 6위 링크
- 2015 프랑스 레키프 선정 역대 최고의 남미 선수 5위 링크
- 2015 코린치안스 구단 역대 레전드 21인 선정[16]
- 2014 독일 브라보 선정 역대 최고의 선수 TOP 9(랭킹 없음) 링크
- 2014 골닷컴 명예의 전당 입성(5인) 링크
- 2014 브라질 ME 선정 역대 베스트 11 링크
- 2014 영국 데일리 메일 스포츠 명예의 전당 입성 링크
- 2014 브라질 글로부에서 도시 상파울루에서 조사한 '자국 역대 최고의 스포츠 스타' 투표 3위[17][18]
- 2014 브라질 글로부 선정 '역대 브라질 베스트 11 선정' 투표 전체 3위[19]
- 2014 프랑스 레퀴프 선정 월드컵 역대 최고의 선수 3위[20]
- 2014 스페인 마르카 선정 '1982–2010년 월드컵 역대 베스트 11 선정' 투표 전체 1위 링크
- 2014 영국 가디언 선정 월드컵 역대 최고의 선수 4위
- 2014 영국 월드 사커 선정 월드컵 역대 최고의 선수 6위
- 2014 영국 데일리 메일 선정 월드컵 역대 최고의 선수 3위
- 2013 영국 월드 사커 주관 역대 베스트 11 공격수 4위(베스트 11 제외) 링크
- 2012 브라질 플라카르 주관 역대 베스트 11 선정 링크
- 2012 브라질 현역 선수들이 뽑은 최고의 우상 1위[21]
- 2012 스페인 골닷컴 주관 역대 최고의 선수 투표 1위 링크
- 2012 이탈리아 가제타 주관 역대 최고의 선수 투표 4위 링크
- 2012 미국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 주관 역대 최고의 선수 투표 19위 링크
- 2012 영국 타임즈 선정 월드컵 역대 최고의 선수 8위 링크
- 2011 브라질 글로부 주관 자국 역대 최고의 스포츠 스타 1위[22]
- 2011 스페인 마르카 스포츠 명예의 전당 입성 링크
- 2011 스페인 마르카 투표 '호나우두는 역대 최고의 공격수입니까? Yes 75%' (09년 투표와 다른 것) 링크
- 2010 ESPN 사커넷 선정 역대 최고의 레전드 TOP 20(랭킹 없음) 링크
- 2010 영국 가디언 주관 역대 베스트 11 투표 공격수 부분 1위 링크
- 2010 독일 빌트 주관 역대 최고의 선수 투표 9위
- 2010 피파 캐스트롤 인덱스 선정 월드컵 역대 최고의 선수
- 2010 영국 더 선 선정 월드컵 역대 베스트 11 링크
- 골닷컴 선정 2000년대 최고의 선수 링크
- 2009 스페인 마르카 역대 최고의 공격수 투표 1위링크
- 2009 피파 공홈 '역대 가장 위대한 월드컵 득점왕은?' 투표 1위[23]
- 2007 AFS 선정 역대 최고의 선수 2위
- 2007 프랑스 풋볼 선정 지난 60년간 베스트 11
- 2005 브라질 플라카르 선정 월드컵 역대 최고의 선수 5위
- 2005 경제 매체 포브스 선정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72위[24]
- 스페인 AS 선정 지난 40년간 라리가 최고의 공격수
- 1999 영국 월드 사커 선정 20세기 최고의 선수 13위
- 1999 이탈리아 구에린 스포르티보 선정 20세기 최고의 선수 19위
- 1999 브라질 플라카르 선정 20세기 최고의 선수 83위(1999년 기준)
- 1999 포브스 선정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72위[25]
축구 역사상 최고의 선수를 평가할 때 10위권 내에 자주 들어가는 선수이자 요한 크루이프, 에우제비우, 게르트 뮐러, 마르코 반 바스텐과 함께 축구 역사상 최고의 스트라이커 중 한 명으로 평가받는다. 특히 2020년에 선정된 발롱도르 드림팀에서는 퍼스트 팀의 센터포워드 자리를 차지하면서 그 위상을 입증했다.[26]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의 축구계는 정말 춘추전국시대라 불릴 만큼 뛰어난 선수들이 많았지만, 그 중에서도 호나우두는 지네딘 지단과 더불어 당대 최고의 선수로 여겨졌다.
게다가 1999년과 2000년에 발생한 무릎 부상으로 인해 평가가 꺾인 게 저 정도이며, 부상 이전의 호나우두는 펠레, 마라도나와 비견될 정도의 페이스를 보여주었다. 1960년대에 펠레, 1970년대에 크루이프, 1980년대에 마라도나가 있었다면 1990년대에는 호나우두가 역대 최고 반열에 오를 수 있는 선수로 평가받았다.[27] 국대 활약이 거의 없는 상태[28]에서 바르사 데뷔 시즌 전반기만 보내고도 월드 사커, 프랑스 풋볼과 같은 축구 전문지에서는 고작 20살의 나이인 그가 이미 역사상 최고의 선수가 아니냐는 평가까지 내렸으며, 전 세계 언론들이 '축구의 왕', '갈락티코', '마라도나 이후 최고의 카리스마'와 같은 수식어를 붙여가며 펠레, 마라도나, 크루이프 등 역대 최고 반열의 선수들과 직접적으로 비교했을 정도였다.[29] 원투펀치에서 한준희와 장지현은 이 시기 최전성기 호나우두의 기량을 최전성기 호날두, 호나우지뉴보다 높게 평가하였다.
상기했듯이 1990년대 후반~2000년대 초반을 춘추전국시대라고 부르지만, 무릎 부상 이전의 호나우두는 당대에 적수가 없는 독보적 1인자로 평가받았고[30] 단순 클럽에서의 퍼포먼스뿐만 아니라 국가대표 경기에서도 이에 못지않은 활약을 보여주며[31] 고작 20대 초반의 나이로 전 세계 언론으로부터 펠레, 마라도나를 소환할 정도의 임팩트를 자랑했다. 이러니 세계 축구 팬들과 전문가들은 앞다투어 호나우두가 펠레, 마라도나를 넘어서 GOAT가 될 것이라 예상했으며, 이 기대치가 최고조에 다다른 1998 월드컵은 호나우두의 대관식 무대가 될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하지만 결승전을 앞두고 원인을 알 수 없는 발작[32]을 일으킨 호나우두는 결승전 명단에 제외되었다가 본인의 간절한 의지로 간신히 선발 명단에 포함되어 출전했으나 튀랑에게 집중마크 당하며 극도로 부진했고, 결국 지단이 원맨쇼를 펼친 프랑스에 우승을 내주고 만다. 이후 월드컵 결승전 패배의 충격으로 인한 슬럼프에 빠지면서 예전만한 경기력이 안나오기 시작하더니[33] 1999년 11월 21일 레체와의 경기에서 입은 치명적 무릎 부상으로 인한 수술과 재활 이후 코파 이탈리아 결승 1차전에서 복귀했지만 또다시 무릎 부상이 재발하면서 전성기가 완전히 끝나버리고, 이 날의 쇼크에 전 세계 뉴스가 호나우두의 이 장면을 보도하면서 이제 축구의 신은 끝났다고 애도하는 특집방송들까지 내보내기도 하였다. 이 공백기 동안 월드 사커가 선정한 20세기 축구 선수 순위에서는 13위로 평가받았다. 당시 호나우두의 공백기 동안 1인자에 오른 지단은 호나우두와 달리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28위로 호나우두와는 꽤 차이가 있었다.
이후 2002 한일 월드컵에서 우승과 월드컵 득점왕, 실버볼, 발롱도르, FIFA 올해의 선수를 휩쓸며 화려하게 복귀했지만, 회복되었어도 다시는 예전과 같은 플레이를 할 수 없는 무릎과 2년간의 공백기, 자기관리 실패와 갑상선 기능 저하가 겹쳐 일어난 비만으로 호나우두는 다시는 예전같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였고, 과거 역대 최고의 선수가 될 것이라는 평가에서 당대의 월드클래스 스트라이커 중 한 명 정도로 평가가 떨어졌다.[34] 이 때 호나우두의 공백기 동안 1인자의 자리를 차지했던 지단은 2006 독일 월드컵에서의 화려한 라스트 댄스로 결국 위상을 역전시키기에 이른다. 특히 1998 월드컵 결승전의 설욕을 하지 못하고 8강에서 또 다시 지단에게 침몰하여 프랑스는 브라질의 천적이라는 인식이 생긴게 컸다. 호나우두는 현역 시절이나 은퇴 직후의 평가들, 예를 들면 2007년 프랑스 풋볼에서 실시한 지난 60년간 세계 베스트 11 투표에서도 펠레에 이은 역대 공격수 2위에 선정됐고, 2009년 스페인 마르카 역대 최고의 공격수 투표 1위, 2012년 스페인 골닷컴 역대 최고의 선수 1위를 차지하는 등 현역 버프가 존재했던 시절에는 매우 높은 위상을 자랑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기량이 만개하기도 전에 끝나버린 짧은 전성기와 말년의 기량 하락으로 인한 부족한 누적 커리어 때문인지 평가가 점점 내려오고 있고, 역대 TOP 10 수문장으로 굳어졌다.
이처럼 전성기의 엄청난 임팩트와 롱런하지 못한 짧은 퍼포먼스 때문에 평가에서도 명과 암이 명확히 갈리는데, 그의 역대 최고 수준의 재능과 고점에서의 임팩트, 기량을 중시하는 이들에게는 고평가를 받지만, 반대로 너무나 짧은 전성기로 인해 많이 떨어지는 클럽 커리어와 특히 최상위 클럽대항전인 UEFA 챔피언스 리그에서의 저조한 기록(40경기 14골) 때문에 꾸준함과 챔스 활약도를 중시하는 이들에게 저평가를 받는 편이다. 특히 한국에서 호불호가 엄청 갈리는 감이 있는데, 최전성기였던 인테르 첫 시즌까지는 아예 뛰지도 못했던 챔스 기록으로 인해 전성기까지 폄하되기도 한다.[35][36] 또한 그의 전성기를 직접 본 축구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더욱 고평가받는 선수임에도 불구하고 2002 월드컵으로 인해 한국에서만 신격화된 선수라는 다소 무리한 주장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37]
어쨌거나 이처럼 짧은 전성기에도 불구하고 국가대표팀에서는 펠레, 마라도나, 메시에 버금가는 활약을 펼쳤으며, 그 기간 동안 절대다수의 선수들은 쳐다보지도 못할 커리어를 쌓았다.[38][39] 또한 잘 부각되지 않는 기록도 있는데 바로 국대 메이저 대회 토너먼트 최다 공격포인트 2위(14골 3어시스트)의 소유자로, 비록 전체로 따졌을 땐 메시에게 밀렸으나 득점 한정으로는 여전히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의 조국인 브라질에서의 평가는 가린샤와 함께 펠레 바로 다음 가는 레전드로 평가받고 있으며 세계적으로는 비록 너무 짧은 전성기로 인해 동시대의 지단에게 위상이 역전당하며 종합적으로 약간 밀리는 평가를 받고 있으나, 골닷컴이 선정한 1990년대 최고의 선수와 공격수에서 모두 1위를 차지하였고 마르카의 시대별 최고의 선수 투표에서 65%를 득표하면서 28%를 득표한 지단을 크게 따돌리고 1990년대의 1인자로 선정되는 등 짧고 굵은 전성기를 보낸 1990년대의 1인자로 평가받고 있다. 역대 축구 선수 순위를 정할 때도 평가 기관마다 차이는 있을지언정 아무리 못해도 최소 15위 이내이며, 웬만하면 10위권에 들어가는 경우가 많은데, 2017 부트발 인터내셔널, 포포투 선정 역대 랭킹에서는 각각 역대 6위와 역대 10위에 선정되었다. 보통 역대급으로 평가받는 선수들이 오랜 기간 동안 기량을 유지하며 활약해온 것을 생각하면, 짧은 전성기에도 불구하고 대다수의 축구 전문가와 언론사에서 이 정도의 평가를 받는다는 것은 그 전성기의 기량이 웬만한 역대급 선수들의 전성기를 능가하는 임팩트를 던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2017년 각국 축구 전문지에서 매긴 순위 합산 2020년 각국 축구 전문지에서 매긴 순위 합산 2022 월드컵 직후 각국 축구 전문지에서 매긴 순위
5. vs 지네딘 지단
자세한 내용은 지네딘 지단 vs 호나우두 문서 참고하십시오.6. 기록
6.1. 대회 기록
- 크루제이루 EC (1993~1994)
- 캄페오나투 미네이루: 1994
- 코파 두 브라질: 1993
- PSV 에인트호번 (1994~1996)
- KNVB 베이커: 1995-96
- 요한 크루이프 스할: 1996
- FC 바르셀로나 (1996~1997)
- 코파 델 레이: 1996-97
- 수페르코파 데 에스파냐: 1996
- UEFA 컵위너스컵: 1996-97
-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 (1997~2002)
- UEFA컵: 1997-98
- 레알 마드리드 CF (2002~2007)
- SC 코린치안스 (2009~2011)
- 캄페오나투 파울리스타: 2009
- 코파 두 브라질: 2009
- 브라질 축구 국가대표팀
- FIFA 월드컵: 1994, 2002
- 코파 아메리카: 1997, 1999
-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 1997
- 브라질 U-23 축구 국가대표팀
- 올림픽 동메달: 1996
6.2. 개인 수상
- 발롱도르: 1997, 2002
- 발롱도르 드림팀[40]: 2020
- FIFA 올해의 선수: 1996, 1997, 2002
- 월드 사커 올해의 선수: 1996, 1997, 2002
- UEFA 올해의 클럽 축구 선수: 1997-98
- UEFA 올해의 공격수: 1997-98
- UEFA 올해의 팀: 2002
- 유니세프 유럽 올해의 축구 선수[41]: 1996-97
- FIFA 100: 2004
- 유러피언 골든슈: 1996-97
- FIFA 월드컵 골든볼: 1998
- FIFA 월드컵 실버볼: 2002
- FIFA 월드컵 골든슈: 2002
- FIFA 월드컵 브론즈슈: 2006
- FIFA 월드컵 도움왕: 1998
- FIFA 월드컵 올스타팀: 1998, 2002
- FIFA 월드컵 결승전 MOTM: 2002
- FIFA 월드컵 올타임 드림팀: 2002
-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 브론즈슈: 1997
- 코파 아메리카 MVP: 1997
- 코파 아메리카 득점왕: 1999
- UEFA컵 결승전 MOTM: 1998
- UEFA 컵위너스컵 득점왕: 1996-97
- UEFA 컵위너스컵 결승전 MOTM: 1997
- 인터컨티넨탈컵 MOTM: 2002
- 에레디비시 득점왕: 1994-95
- 라리가 득점왕: 1996-97, 2003-04
- 라리가 최우수 외국인 선수[42]: 1996-97
- 세리에 A 올해의 선수: 1997-98
- 세리에 A 올해의 외국인 선수: 1997-98
- 세리에 A 올타임 XI: 2017
- 수페르코파 수다메리카나 득점왕: 1994
- 수페르코파 수다메리카나 올해의 팀: 1994
- 캄페오나투 미네이루 득점왕: 1994
- 캄페오나투 미네이루 올해의 팀: 1994
- 캄페오나투 파울리스타 MVP: 2010
- 옹즈도르: 1997, 2002
- 옹즈 드 옹즈: 1997, 1998, 2002, 2003
- 브라질 축구 명예의 전당: 2006
- 이탈리아 축구 명예의 전당: 2015
- 레알 마드리드 명예의 전당: 2011
- 인테르 올해의 선수: 1998
- 인테르 명예의 전당: 2018
- BBC 올해의 월드 스포츠 스타: 2002
- 프랑스 풋볼 60년간 베스트 XI: 2007
- ESM 올해의 팀: 1996-97, 1997-98
- 라우레우스 스포츠 어워드 올해의 컴백: 2003
- lFFHS 세계 최고 득점자: 1997
- lFFHS 최고의 골: 1997
- IFFHS 레전드: 2016
- IFFHS 올타임 월드 드림팀[43]: 2021
- IFFHS 올타임 남아메리카 드림팀[44]: 2021
- IFFHS 올타임 브라질 드림팀: 2021
- 골든풋: 2006
- 마르카 레전드: 2011
- 브라보 상: 1997, 1998
- 트로페오 EFE: 1996-97, 2003-04
- FIFA XI: 1997, 1998
- 글로브 사커 어워즈 플레이어 커리어 어워드: 2018
-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 10년의 팀: 2009
- 돈 발롱 21세기 드림팀: 2010[45]
6.3. 클럽 통계
시즌 | 클럽 | 소속리그 | 리그 | 지역리그 | FA컵 | 대륙대회 | ||||
경기 | 득점 | 경기 | 득점 | 경기 | 득점 | 경기 | 득점 | |||
1993 | 크루제이루 | 세리 A | 14 | 12 | 2 | 0 | - | - | 4 | 8 |
1994 | - | - | 18 | 22 | - | - | 8 | 2 | ||
시즌 | 클럽 | 소속리그 | 리그 | FA컵 | 대륙대회 | |||||
경기 | 득점 | 경기 | 득점 | 경기 | 득점 | |||||
1994-95 | 에인트호번 | 에레디비시 | 33 | 30 | 1 | 2 | 2 | 3 | ||
1995-96 | 13 | 12 | 3 | 1 | 5 | 6 | ||||
시즌 | 클럽 | 소속리그 | 리그 | FA컵 | 대륙대회 | |||||
경기 | 득점 | 경기 | 득점 | 경기 | 득점 | |||||
1996-97 | 바르셀로나 | 라리가 | 37 | 34 | 4 | 6 | 7 | 5 | ||
시즌 | 클럽 | 소속리그 | 리그 | FA 컵 | 대륙대회 | |||||
경기 | 득점 | 경기 | 득점 | 경기 | 득점 | |||||
1997-98 | 인테르 | 세리에 A | 32 | 25 | 4 | 3 | 11 | 6 | ||
1998-99 | 19 | 14 | 2 | 0 | 6 | 1 | ||||
1999-00 | 7 | 3 | 1 | 0 | - | - | ||||
2000-01 | - | - | - | - | - | - | ||||
2001-02 | 10 | 7 | 1 | 0 | 5 | 0 | ||||
시즌 | 클럽 | 소속리그 | 리그 | FA컵 | 대륙대회 | |||||
경기 | 득점 | 경기 | 득점 | 경기 | 득점 | |||||
2002-03 | 레알 마드리드 | 라리가 | 31 | 23 | 1 | 0 | 11 | 6 | ||
2003-04 | 32 | 24 | 5 | 2 | 9 | 4 | ||||
2004-05 | 34 | 21 | 1 | 0 | 10 | 3 | ||||
2005-06 | 23 | 14 | 2 | 1 | 2 | 0 | ||||
2006-07 | 7 | 1 | 2 | 0 | 4 | 2 | ||||
시즌 | 클럽 | 소속리그 | 리그 | FA컵 | 대륙대회 | |||||
경기 | 득점 | 경기 | 득점 | 경기 | 득점 | |||||
2006-07 | AC 밀란 | 세리에 A | 14 | 7 | - | - | - | - | ||
2007-08 | 6 | 2 | - | - | - | - | ||||
시즌 | 클럽 | 소속리그 | 리그 | 지역리그 | FA컵 | 대륙대회 | ||||
경기 | 득점 | 경기 | 득점 | 경기 | 득점 | 경기 | 득점 | |||
2009 | 코린치안스 | 세리 A | 20 | 12 | 10 | 8 | 8 | 3 | - | - |
2010 | 11 | 6 | 9 | 3 | - | - | 7 | 3 | ||
2011 | - | - | 2 | 0 | - | - | 2 | 0 |
7. 호나우두에 대한 헌사
자세한 내용은 호나우두/관련 언사 문서 참고하십시오.8. 극성 팬덤과 비판
8.1. 악성 팬덤
자세한 내용은 호나우두/악성 팬덤 문서 참고하십시오.8.2. 비판과 반박
자세한 내용은 호나우두/비판과 반박 문서 참고하십시오.9. 선수 은퇴 후
그 뒤로 조용하다 2012년 9월 뜬금없이 TV 쇼 프로그램에 출연했다. 그런데 나온 프로가 다이어트 프로그램... 갑상선 기능 저하로 인해 선수 시절부터 체중조절에 애를 먹었던 호나우두는 118kg 뚱보가 되었던 것. 어쨌든 다이어트에 성공한 모습을 보였다. 허나 그것도 잠시 2013년 여름께부터 서서히 살이 붙는 것처럼 보이더니 2013년이 끝나갈 무렵 살이 더 찌고 말았다. 갑상선 질환과 폭식 습관, 그리고 줄어든 운동량으로 인해 체중조절은 불가능해진 것으로 보인다.이 불어난 체중 때문에 알렉스 퍼거슨 감독과 신경전이 벌어지기도 했다. 퍼거슨 감독이 호날두가 늙고 뚱뚱해진 호나우두보다 낫다고 한 적이 있는데 이에 격분한 호나우두는 2012-13 시즌 UCL 16강에서 맨유가 홈에서 레알 마드리드에 역전패하며 탈락하자[46] 퍼거슨 감독을 비웃으며 '그렇게 오랜 프로 경력에 기사 작위까지 있는 자가 상대방을 존중하는 예절도 모르는 것이 놀랍다. 난 세계 최고 중 하나였던 내 선수 시절 커리어에 더할 수 없이 만족하고, 그런 자에 대해서는 할 말이 없다. 그가 지휘하는 팀이 언제나 지길 바란다는 것 빼고 말이다.'라고 반격했다. 이에 퍼거슨 감독은 '단지 농담일 뿐이었고, 자신은 호나우두를 언제나 경외해 왔다.'며 수습했다.
그 외 브라질 축구 리그 캠페인 홍보 대사와 2014 월드컵 조직 위원장, 축구 해설 위원을 맡았는데, 자국이 독일한테 7:1로 깨진 그 날에도 호나우두는 해설을 했는데 공교롭게도 그 경기에서 클로제가 득점에 성공해 자신의 기록이었던 월드컵 최다 득점(15골)을 16골로 추월당했다(...). 잔인하게도 방송국 카메라는 경기 도중 필드 대신 자신의 기록이 깨져 착잡한 듯 한 그의 얼굴을 비추기도 했다. 그런데 4년 후 클로제 또한 관중석에서 자국 국대가 무너지는 광경을 실시간으로 지켜보게 되었으니, 인생사 새옹지마다.
에이전트 공부도 해서 9ine이라는 에이전시 회사를 설립했는데, 첫 고객이 브라질 국대 에이스 라인을 잇는 후배 네이마르였다고 한다. 이후로 고객 명단에 다미앙, 앤더슨 실바, 브라질 가수, 포커 세계 챔피언 등도 합류했다.
브라질 월드컵 조 추첨식 때 오래간만에 브라운관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SBS 통역사에 의해 졸지에 축구공 취급을 받았다.# 지금은 에이전트 회사 9ine을 운영하는 동시에 미국 NASL팀 스트라이커스 운영진으로 근무 중이다. 호나우두의 영향으로 인해 팀에는 브라질 선수들이 많다. 참고로 2015시즌 NASL MVP 역시 브라질 출신의 스트라이커스 선수 스테파누였다.
레알 마드리드의 앰버서더로 임명되었다.
2017년 2월 3일 브라질의 e스포츠팀인 CNB의 지분 절반을 인수했다는 기사가 떴다.# 그리고 기자화견에서 공약을 내세웠는데 CNB가 브라질 리그 오브 레전드 리그 대회 즉 Circuito Brasileiro de League of Legends에서 우승을 하면 선수들을 한국에서 전지훈련을 시켜주겠단 공약을 내세움으로써 호나우두의 방한을 기대할 수 있게 되었다.[47] 2017년 5월 21일(현지기준)에 있었던 리그 오브 레전드 MSI 2017에 깜짝 등장하여 우승팀인 SKT T1 멤버들에게 금메달 시상을 하였다.[48] 이 때 언론들이 호나우두가 페이커에게 직접 메달을 걸어주는 장면을 인용하며, '두 세계 최고가 만났다'라며 대서득필하기도 했다.
2018년 8월 10일에 휴가지(스페인)에서 감기 및 급성 폐렴이 의심되어 병원에 입원했다고 한다. 다행히 잘 회복한 뒤 13일쯤 퇴원했다고 한다. 다만 당초 알려진 것과 달리 위급한 상황은 아니었으며 중환자실 입원도 부인했다.#2018년 8월 28일 레알 바야돌리드를 3천만 유로에 인수하여 회장에 취임하게 되었다고 스페인의 한 일간지에 보도되었다. 그러나 인수 후 바야돌리드 팬들의 여론은 좋지 않은데 투자를 안하고 구단이 재정난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호나우두도 이러한 여론을 인식해서 그런지 2024-25 시즌 발렌시아의 에이스 젠크 외즈카차르를 임대로 데려오는 깜짝 스타 영입을 성사시켰다.
2021년 친정팀인 크루제이루를 인수했고, 8개월 만에 세리 A로 다시 복귀시켰다.
살을 빼기 위함인지 빠델이라는 테니스와 비슷한 운동을 즐겨하고 있는 모습을 보인다.
10. 여담
- 한국 한정 별명으로 호돈(호나우두+돼지 돈(豚)), 호돈신이 있다. 그 밖에 호나우두를 찬양한다는 뜻으로 호나우두에 아멘을 합성해서 호멘이라는 별명도 있었는데, 매주 일요일 아이러브사커에는 호멘을 찬양하며 기도하는 글이 올라오던 시절도 있었다. 그리고 호두가 한때는 호돈을 능가하는 범용성을 자랑하기도 했지만 전부 정리되고 호돈으로 통일됐다. 사실 2000년대 호나우두의 체중 증가와 더불어 고점 대비 지지부진한 경기력에 대한 비판의식을 지닌 별명이었기 때문에 200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호돈 사용에 반발하는 팬들도 많았지만, 지금은 부정적인 의미 없이 호나우두를 상징하는 애칭으로 자리잡은 상황이다. 사실 은퇴 이후 살이 더 쪄서(...) 부정적인 뉘앙스로 얘기할 땐 호돈보단 호뚱으로 불리는 편이다.
- 한국이 아닌 해외에선 오 페노메노(O Fenômeno)라는 별명으로 불린다. 뜻은 놀라운, 훌륭한, 경이로운 자 쯤 된다. 2000년대 중반 이후에는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와 이름이 겹치기 때문에 호나우두 페노메노(Ronaldo Fenômeno)로 더 많이 불리기도 한다. 아님 브라질리언 Ronaldo 등. 또 다른 별명이었던 축구 황제가 한국에서만 쓰인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이는 틀린 말로, 이미 20살이었을 때부터 돈 발롱, 마르카, 프랑스 풋볼 등 여러 축구지에서 'O Rei', 축구의 왕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였다. 그런데 이 수식어를 한국 언론들이 갖다 붙이면서 축구의 왕이 아닌 축구 황제로 통용된 것이며 진짜 축구 황제라 불리는 펠레 또한 'O Rei do Futebol', 'O Rei'라는 수식어로 불리기도 한다. 다만 호나우두는 오 페노메노(O Fenômeno)라는 별명이 전 세계적으로 더 많이 쓰였을 뿐이다. 직역했을 때 황제라는 뜻을 별명으로 지닌 선수는 펠레(Undisputed Emperor), 프란츠 베켄바워(Der Kaiser), 아드리아누(Imperátor), 다니엘 파사레야(El Gran Capitán)[49] 정도로, 보통의 인식과 다르게 극소수에 불과하다.
- 한국 축구 팬들 사이에서 흔히 떠돈 '2000년대 4대 스트라이커' 중 한 명으로, 호나우두 외에는 안드리 셰브첸코, 티에리 앙리, 뤼트 판니스텔로이가 있었다. 물론 공신력 있는 매체에서 선정한 4대라기보단 그냥 팬들이 선정한 것에 가깝다.
- 스페인과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라이벌리인 FC 바르셀로나-레알 마드리드/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AC 밀란에서 모두 뛰었다.
- 어렸을 때 몽유병이 있었다. 몽유병에 더해 잠꼬대까지 습관적으로 해서, 그가 어렸을 때 친형 넬리우가 베게로 얼굴을 치는 등 잠꼬대를 제지하기 위해 여러 가지 수를 써보았으나 결국 완전히 고치지는 못했다고 한다. 이 몽유병은 수면 장애인 파라소니아(parassonia) 중 하나다.
- 전매특허인 헛다리 짚기는 당시 많은 축구 꿈나무나 선수들이 따라하기도 했다. 다만 호나우두가 은퇴한 2010년대 이후엔 이전보다 빈도가 적어진 편.
- 당시 '10번 = 에이스'였던 시대에 10번 대신 '9번'을 대유행시켰던 선수이기도 했다.
- 지금도 치아가 많이 튀어나와 있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어린 시절에는 심각하게 앞니가 벌어진 부정교합이었는데, 어렸을 때 집이 워낙 가난해 교정을 받지 못했다. 그런데 호나우두가 크루제이루에서 뛰던 시절, 호나우두에게 에우스타키우 아라우주(Eustaquio Araujo)라는 크루제이루 광팬 치과의사가 '무상으로 교정기를 달아 줄 테니 아틀레치쿠 팀을 상대로 몇 골만 넣어달라'라는 제안을 했고, 호나우두는 승낙했다. 그리하여 지금의 치열을 가지게 되었다.
- 은퇴 후에 민트색의 뿔테 안경을 자주 쓰며 2023년 기준 유튜브에서 자주 착용한다. 수염으로 부정교합이 가려지고 살이 오른 얼굴도 안경으로 커버가 되니 상당히 잘 어울린다.
- 호나우두가 2002 한일 월드컵 4강전에서 깻잎머리 헤어스타일을 한 이유는 예선과 토너먼트를 치르면서 부상을 당했는데 모든 기자들이 부상에 관한 질문만 해서 기자들의 관심을 돌리기 위해서 였다고 밝혔다. 실제로 터키전 당시 정상적인 슈팅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부상이 심했었다고 한다. 그래서 호마리우의 1994 미국 월드컵 스웨덴전 토킥을 따라해서 기습적인 슈팅을 때렸고 이는 결승골이 되었다.
- 팬 사인회에 상당한 시간을 들이는가 하면, 훈련 일정 때도 사인 요청에 일일이 응해주느라 다음 일정에 다소 지각하는 일이 잦는 등 유독 사인에 엄청난 신경을 썼는데 이는 어렸을 적 브라질 리그를 보러 갔다가 어떤 선수에게 사인을 요청했으나 거절당했던 트라우마 때문이라고.[50]
- FC 온라인에서는 좋은 성능을 자랑한다. 공중전에 약했던 실제 호나우두와 달리 FC 온라인의 호나우두는 헤더 골도 어느 정도 넣을 수 있으며, 온갖 개인기를 뽐내며 상대 수비수를 농락하는 플레이도 가능하지만 무엇보다도 순식간에 오프사이드 라인을 돌파하는 고속 침투가 가능하다. 아무래도 피파 엔진의 한계상 실축 호나우두를 제대로 구현해내지 못한 측면이 있다.
- 2002 한일 월드컵 당시 일본 공항에서 피켓을 들고 환영하는 직원 앞에서 손가락으로 두 눈을 찢는 동양인 인종차별 행위를 한 전적이 있다. 다만 당시
사실 지금도남미 특유의 무지(...)로 이게 인종차별이란 인식조차 못했을 가능성은 있다.
- 월드컵 통산 골 기록을 미로슬라프 클로제가 깨는 것에 대해 불만을 드러낸 적이 있었다. "기록은 깨지라고 있는 것"이라며 자신의 월드컵 통산 최다골 기록 경신 여부에 대해서 그다지 신경을 안 쓴다는 태도를 보여왔으나 막상 월드컵 개최 시기가 다가오자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다.
호돈도 인간.브라질 월드컵 직전 평가전에서 해설자로 독일전을 해설하는데 마르코 로이스가 부상을 당하자 "클로제였다면 좋았을 텐데(...)라는 진담 섞인 농담을 던져 구설에 오르기도 했다. 그리고 어차피 클로제가 깬다 해도 의미 없다, 토마스 뮐러가 얼마 안 가 클로제 기록을 갈아치울 것이라며 옹졸함인지 토마스 뮐러 칭찬인지 알 수 없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그리고 클로제는 2014년 월드컵 직전에 14골로 15골인 호나우두 보다 한 골 뒤쳐져 있었는데 조별 예선 가나전에서 동점골을 작렬해 타이를 이뤘고 그리고 공교롭게도 브라질을 상대한 4강전에서 클로제는 자신의 월드컵 마지막 골을 넣어 호나우두의 기록을 깨버렸다.[51]'다이렉트로 보고야 말았다'''.] 물론 4회차 출전이라 사실상 3회차 출전인[52] 호나우두에 비해 많이 뛰긴 했다.
미로슬라프 클로제의 월드컵 15골 타이 기록 때 비교한 이미지다.
- 토니 크로스가 2017년 새해에 1과 7을 각각 브라질 국기와 독일 국기로 치환하여 브라질 축구 참극을 풍자하는 사진을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렸을 때, 이를 2017의 2와 0을 각각 브라질 국기와 독일 국기로 치환하여 맞받아치기도 했다. # 그리고 1년 뒤 이것의 변형판으로 한국 국기 2, 독일 국기 0 버전이 등장했다.
이래서 도발은 신중해야
- 2012년 SBT 선정 위대한 브라질인 순위에서 15위에 뽑혔다.
- 심슨 가족에 까메오로 나오기도 했다.
(영상 3분00초부터 등장한다)
- 모국어인 포르투갈어를 비롯하여 이탈리아어, 스페인어 3개 국어를 유창하게 한다. 뿐만 아니라 PSV 시절 네덜란드어 인터뷰도 존재하며[53], 사업가로 탈바꿈한 이래 영어를 구사하는 영상도 찾아볼 수 있다.
- 이탈리아 인테르에서 뛰던 이반 사모라노는 호나우두가 자신의 오랜 등번호인 9번을 원하자,[54] 재치를 발휘해 한때 1+8라는 등번호를 달고 활동한 적이 있었다고 한다. 물론 공식적인 등번호는 어디까지나 18번이며 1과 8 사이에 임의로 + 표시를 넣은 것 뿐이다.
- 모터스포츠에도 관심이 많으며[55], 같은 국적의 포뮬러 원드라이버인 브루노 세나와도 친분이 잘 알려져 있다. 레이싱 경기도 종종 즐긴다고 한다. 심지어 갓 신인시절이자 아일톤 세나가 작고한 1994년에 공항에서 같이 찍은 사진도 있다.#
- 한편 그의 이름이 들어간 N64게임인 "Mundial Ronaldinho Soccer 64"[56]의 오프닝이 2020년의 새로운 밈으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 골닷컴에서 시대별 최고의 선수, 공격수 5인을 선정했는데, 1990년대 선수와 공격수들 중 1위에 이름을 올렸다.
- 코로나로 취소된 2020 발롱도르 대신 프랑스 풋볼에서 선정한 올타임 발롱도르 드림팀의 퍼스트 주전 센터포워드로 선정되었다. 전체 평가에선 보통 더 높은 순위에 위치하는 경우가 많은 요한 크루이프를 제치고[57] 호나우두가 선정되어 논쟁이 있기도 했으나, 월드컵 스탯이나 센터포워드라는 포지션만 놓고 보면 이상할 것 없다는 의견 역시 상당했다. 펠레와 마라도나 모두 공격형 미드필더에 배치된 탓에 반사이익을 본 것도 있을 것이다.[58]
2021년 겨울에는 ICON 클래스 호나우두의 출시를 예고하며 호나우두 본인이 출연한 멋진 광고도 찍었다. 아이콘 클래스의 전반적인 오버롤 버프 이후 동일 강화 기준 피파 온라인 4에서 가장 비싼 카드가 바로 아이콘 호나우두로 1강 기준 약 1조 4천억 BP이다. 당연히 5강 정도만 가도 수십 단위로 오른다.
- 자국의 2020 도쿄 올림픽 스케이트보드 은메달리스트 하이사 레아우와 사인 교환을 했다.#
- 2022년 카타르 월드컵에서 우승한 리오넬 메시에게 SNS로 축하한다는 말을 했다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에게 인스타 언팔로우를 당했다(...).#
11. 같이 보기
1 타파레우 · 2 조르지뉴 · 3 히카르두 호샤 · 4 호나우당 · 5 마우로 실바 · 6 브랑쿠 · 7 베베투 · 8 둥가 ⓒ · 9 지뉴 10 하이 · 11 호마리우 · 12 제티 · 13 아우다이르 · 14 카푸 · 15 마르시우 산투스 · 16 레오나르두 · 17 마지뉴 18 파울루 세르지우 · 19 뮐레르 · 20 호나우두 · 21 비올라 · 22 히날디 |
마리우 자갈루 |
1 타파레우 · 2 카푸 · 3 아우다이르 · 4 바이아누 · 5 C. 삼파이우 · 6 R. 카를루스 · 7 지오바니 · 8 둥가 ⓒ · 9 호나우두 10 히바우두 · 11 에메르송 · 12 제르마누 · 13 제. 카를루스 · 14 곤살베스 · 15 크루스 · 16 제. 호베르투 · 17 도리바 18 레오나르두 · 19 데니우손 · 20 베베투 · 21 에드문두 · 22 지다 |
마리우 자갈루 |
1 마르쿠스 · 2 카푸 ⓒ · 3 루시우 · 4 호케 JR · 5 에드미우송 · 6 R. 카를루스 · 7 히카르지뉴 · 8 지우베르투 · 9 호나우두 10 히바우두 · 11 호나우지뉴 · 12 지다 · 13 벨레티 · 14 A. 포우가 · 15 클레베르송 · 16 주니오르 · 17 데니우손 18 밤페타 · 19 주니뉴 · 20 이지우송 · 21 루이장 · 22 R. 세니 · 23 카카 |
루이스 펠리페 스콜라리 |
1 지다 · 2 카푸 ⓒ · 3 루시우 · 4 주앙 · 5 에메르송 · 6 R. 카를루스 · 7 아드리아누 · 8 카카 · 9 호나우두 10 호나우지뉴 · 11 제. 호베르투 · 12 R. 세니 · 13 시시뉴 · 14 루이장 · 15 크리스 · 16 지우베르투 · 17 G. 시우바 18 미네이루 · 19 주니뉴 · 20 히카르지뉴 · 21 프레드 · 22 줄리우 세자르 · 23 호비뉴 |
카를루스 아우베르투 파헤이라 |
[1] 브라질 포르투갈어에서 l은 자음 앞이나 어말에 오는 경우에는 ‘우’로 적도록 규정함. 이는 포르투갈어의 음절 말 /l/이 dark 'l', 즉 [ɫ\]에 가깝게 발음되는데, 브라질 포르투갈어에서는 아예 [w\]로 발음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와는 표기와 발음이 다르다. 하지만 영어로는 호날두와 호나우두 모두 Ronaldo이므로 호나우두를 Ronaldo Brazil, Ronaldo Nazario, Ronaldo 9라고 검색해야 호나우두가 나온다.[2] 제임스 모슬리가 쓴 "호돈신: 천재의 모험"에 따르면 호나우두는 9월 18일생이지만, 9월 22일에 출생 신고를 한 것으로 나와 있다. Mosley, James (2006). 《Ronaldo : the journey of a genius》. Mainstream Publishing. ISBN 1-84018-964-9.[3] 선수 시절 77kg에서 체중이 계속 증가하였고, 100kg까지 증가했었다. 오죽하면 마지막 월드컵 출전이었던 2006년 월드컵에서 브라질이 탈락한 후엔 한 브라질인에게 "호나우두 당신은 살부터 빼야 돼!"라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이 월드컵에서 당시 월드컵 역대 최다 득점을 경신한 건 함정. 은퇴 이후엔 겉모습만 봐도 알 수 있듯 체중이 더 불어났으며, 당연히 100kg 이상 나갈 것으로 추정된다.[4] 브라질 대표팀 역대 득점 3위.[5] 2023년 9월 12일 화요일에 세례성사를 받았다.#[6] 항상 9번만 달았던 것은 아니다. 팀에 이미 임자가 있는 경우에는 10번이나 11번도 달았다. 물론 다른 사정이 없다면 무조건 9번을 달았다.[7] 레알 바야돌리드 회장직도 겸임하고 있다.[8] 다만 1994 월드컵 우승 당시에는 단 한 경기도 출전하지 못했다.[9] 1994ㆍ2002 월드컵, 1997ㆍ1999 코파 아메리카, 1997 컨페더레이션스컵[10] 전문가 투표 170명과 팬 투표 14만여명 두 가지로 투표가 진행되었는데 두 가지 결과에서 모두 1위[11] 2016~17년 브라질과 남미에 각각 40, 50세 생일을 맞이한 호나우두와 호마리우를 비교하는 분위기가 존재했다.[12] 만장일치 호나우두[13] 67대66으로 승리[14] 13대8로 승리[15] 1위 마라도나, 2위 메시, 3위 펠레, 4위 크루이프, 5위 호나우두, 6위 디 스테파노, 7위 호날두, 8위 베켄바워, 9위 지단[16] # 코린치안스에서 활약 기간이 길지는 않지만, 암흑기에 빠졌던 팀을 호나우두가 다시 정상으로 끌어올림. 실제는 사정이 조금 다르지만, 이러한 '암흑기 극복'의 아이콘인 것은 맞다.[17] # 1위는 F-1 레이서 아일톤 세나 하지만 이것은 아일톤 세나가 특히나 사랑받는 고향 상 파울루에서만 실시한 것이며 이 투표 결과로만 아일톤 세나가 브라질 역대 최고의 스포츠 스타라고 하면 곤란한다. 왜냐하면 이는 여론조사의 변수를 고려하지 않은 결과이기 때문이다. 대부분 이 투표 결과가 한국에 기사가 나서 각종 커뮤니티, 카페, 블로그 등에 이 투표 결과가 가장 많이 보인다[18] https://www1.folha.uol.com.br/internacional/en/sports/2014/05/1448179-ayrton-senna-is-the-greatest-sporting-legend-according-to-poll-by-datafolha.shtml[19] 참고로 이거 지금 투표해도 집계된다.[20] # 밑의 2014년 월드컵 역대 최고의 선수 링크는 모두 이곳 참조[21] 2위 지쿠, 3위 호나우지뉴, 4위 호마리우, 5위 카카, 6위 펠레, 7위 메시[22] # 브라질 주요 도시 시민을 대상으로 약 7개월간 진행한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순위 책정: 2위 네이마르, 3위 펠레, 4위 호나우지뉴, 5위 아일톤 세나[23] 2위 펠레, 3위 쥐스트 퐁텐, 4위 게르트 뮐러[24] 72위만 2번[25] 축구선수로 첫 랭킹 진입[26] 심지어 존재만으로 축구 전술 역사에 큰 영향을 미친 요한 크루이프를 앞서는 순위를 기록하며 논쟁이 있었는데, 굳이 따지면 크루이프는 정통 스트라이커와는 거리가 먼 플레이메이커였다는 점에서 표 손해를 본 감이 없잖아 있다.[27] 대부분의 축구 선수들이 20대 중반부터 전성기를 맞이하기 때문에 축구사 삼대장이라 평가받는 메시, 펠레, 마라도나를 제외하고 20대 초반의 어린 나이에 세계 최고가 된 경우는 역사상 거의 없는데, 호나우두는 FIFA 올해의 선수와 발롱도르 모두 역대 최연소로 수상하면서 21세의 나이에 세계 최고의 자리에 올랐다. 발롱도르 수상연령을 보자면 역대 최연소는 21세의 호나우두이며, 그 뒤는 22세의 오언, 메시, 베스트가 있고 그 뒤는 23세의 호날두가 있다. 거의 모든 선수들이 20대 중후반에 전성기를 맞이하는 상황에서 21세에 발롱도르를 탄 재능을 생각하면, 결국 IF에 불과하다 해도 '부상없는 20대 중후반의 호나우두는 어땠을까?'하는 안타까움이 생길 수 밖에 없다. 호나우두만큼 이른 나이에 세계 최정상에 오른 선수가 역대 최고를 다투는 삼인방인 메시, 펠레, 마라도나 정도밖에 없음을 생각하면 커리어를 너무 일찍 불태운게 치명상으로 작용하고 만 셈이었다. 물론 역대급 재능이다 화제를 모으다 기대치만큼 성장하지 못하는 사례는 수두룩 하기 때문에 결국은 안타까운 IF에 불과하긴 하지만.[28] 1994 미국 월드컵 명단에 들어 우승멤버가 되었지만 단 한 경기도 출전하지 못했고, 이듬해 펼쳐진 코파 아메리카는 교체로 1경기 출전했지만 팀은 준우승에 그쳤다.[29] 바르샤 시절 호나우두를 조명하는 스페인 언론들, 마라도나, 크루이프보다 낫고 펠레와 같은 반열에 오를 것이라는 호주 조간 신문 기사, 인테르 첫 시즌의 호나우두와 전성기의 마라도나를 비교한 언론[30] 당시 호나우두는 단순한 1인자를 넘어서 포브스가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72위에 선정되는 등 당대 '축구의 상징'과 같은 이미지였다. 후대에 소위 춘추전국시대라고 불리는 이 기간의 1인자를 놓고 호나우두와 다투는 지네딘 지단은 당시 발롱도르 3위에 막 오르면서 당대 최고의 미드필더 중 한 명으로 인정받고 있었을 뿐 호나우두와 대등한 경쟁자로 여겨지지는 않았다. 쉽게 감이 안온다면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라는 라이벌조차 몇 수 아래의 선수로 보이게 만들었던 발롱도르 4연패 전성기의 리오넬 메시를 생각하면 된다. 스탯을 떠나 당대에 던진 임팩트가 그러했다는 것.[31] 1997 코파 아메리카와 1997 컨페더레이션스컵 및 월드컵 라이벌인 독일전과 이탈리아전도 모두 압도적인 퍼포먼스로 휩쓸었다.[32] 후일 밝혀진 바로는 심각한건 아니고 그냥 자다가 몸을 부르르 떠는 일종의 몽유병이었다.[33] 득점력이 감소했을 뿐만 아니라 평점도 100위권으로 추락하고, 이 기간에 출전한 챔피언스 리그에서도 6경기 1골밖에 넣지 못하는 등 심각한 슬럼프를 겪었다.[34] 2002 월드컵을 드는 사람들이 있기도 하지만 대다수는 그의 천부적인 골 감각으로 8골을 넣었지만 무릎 부상으로 인해 예전과 같은 특유의 폭발력을 보여주지 못했다고 평가한다. 플레이 스타일도 1996~98년 시절의 단독 드리블 돌파보단 동료와의 연계를 통한 마무리 작업과 라인 브레이킹 위주로 바뀌었다.[35] 바르사에서는 코파 델 레이, UEFA컵 위너스컵을 연달아 제패하였으나 레알에 승점 2점차로 밀려 리그 우승이 좌절됐고, 인테르에서도 UEFA컵을 우승시키며 팀에 4년 만에 메이저 트로피를 선사했지만 역시 유벤투스에 밀려 리그 우승에 실패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호나우두를 인테르로 보내고 히바우두를 영입한 바르사는 바로 다음 시즌에 리그 우승을 이뤄 챔스에 나갔고 거기에 리그 2연패를 달성하게 된다. 때문에 팀이 수준 낮아서 챔스를 못나갔다 vs 마라도나처럼 지가 캐리해서 리그 우승 했어야지? 라는 키배가 팽팽하다. 호나우두의 첫 리그 우승은 전성기가 한참 지난 레알 마드리드 갈락티코 1기에서의 2002-03 시즌.[36] 다만 최전성기인 바르샤와 인테르 첫 시즌엔 호돈이 팀을 캐리하든 못하든 관계없이 애초에 챔스 출전권이 없는 팀으로 이적을 하는 바람에 못 나간 거라 이걸로 까이는 것은 상당히 억울할 만하다. 챔스가 최상위 클럽 대항전인건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사실이지만, 챔스는 지금보다 진입장벽이 높고 유럽 대항전이 지금보다 평준화돼있었기 때문에 컵위너스컵과 UEFA컵이 현재의 유로파 리그보다 위상이 높았고, 월드클래스 선수들이 챔스 대신 컵위너스컵, UEFA컵에 나가는 경우가 많았다. 물론 헤이젤 참사로 잉글랜드 리그가 몰락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3개 유럽 대항전을 모두 못 나가는 것은 당시에도 타격이 컸다.[37] 그의 짧은 전성기에도 불구하고 그를 직접 본 현지 전문가들은 역대 5위 안까지 두는 경우도 있으며, 현지로 갈 것도 없이 역대 최고 선수 논쟁 등과 같은 해외 유튜브 영상 댓글만 봐도 해외 호돈빠들이 자주 출몰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한국에서 유독 저평가-고평가가 극명하게 갈리는건 호나우두의 전성기였던 90년대 말 당시 라리가 중계가 KBS 위성스포츠에서 97년에 막 시작했지만 인터넷도 없고 아직 해축팬덤이 형성되기 전이라서 보는 사람 자체가 거의 없었고(인터넷에는 직접 봤는데 쩔더라/거품이던데? 하는 소리가 넘쳐나지만 실제론 양쪽 다 구라일 확률이 높다) 90년대 라리가와 세리에를 라이브 생중계로 볼 정도의 해축 매니아 자체가 극소수였다. 1998 월드컵에서 네덜란드 스쿼드를 보고도 '쟤네가 누군진 잘 모르는데 해볼만하지 않냐?', '저쪽에 베르캄프라는 애가 잘한다는데 최용수급이냐?' 이런 어이없는 반응이 당시 대중들의 인식이었고 그만큼 한국은 소수 매니아를 제외하면 2005년 박지성의 맨유 입단 좀 더 빨라도 2004-05 PSV 챔스 4강 시절 이전까진 해외축구판에 대해 거의 아는게 없는 갈라파고스 우물 안 개구리였다. 결론적으로 많은 한국 축구팬들이 호나우두의 리그 플레이를 직접 볼 수 있었던(월드컵은 98년도부터 이미 생중계해줬다) 시대는 호나우두의 기량이 무릎 부상으로 대폭 하락한 말년의 모습에 불과했거나, 아니면 하이라이트와 움짤 위주로 볼 수 밖에 없었던 것. 그러니 극단적인 저평가와 고평가를 왔다갔다 하기 쉬운 환경이었으나, 2020년대 들어선 풋볼리아 등의 사이트에서 호나우두의 전성기 시절 풀경기들을 감상할 수 있기 때문에 관련 매니아들의 나름 심도있는 고찰과 토론들이 이뤄지며 이런 경향이 줄어들고 평가도 어느 정도 안정세를 찾아가는 모습이다.[38] 팀 커리어: 월드컵 우승 2회 · 준우승 1회, 코파 아메리카 우승 2회 · 준우승 1회, 컨페더레이션스컵 우승 1회, 라리가 우승 1회, UEFA 컵위너스컵 우승 1회, UEFA컵 우승 1회. 단 1994 월드컵 우승때는 다만 한 경기도 출전하지 못했다.[39] 개인 커리어: 발롱도르 2회, FIFA 올해의 선수 3회, UEFA 올해의 클럽 축구 선수 1회, 월드 사커 올해의 선수 3회, 옹즈도르 2회, 유러피언 골든슈 1회, 월드컵 골든볼 · 실버볼 · 골든슈 · 브론즈슈 · 도움왕, 코파 아메리카 MVP · 득점왕, 컨페더레이션스컵 브론즈슈, 라리가 득점왕 2회, 에레디비시 득점왕 1회, UEFA 컵위너스컵 득점왕 1회, 세리에 A 올해의 선수 1회.[40] CF 1위[41] UEFA 올해의 클럽 축구 선수의 전신. 그 전에는 IOC 유럽 올해의 축구 선수였다.[42] 돈 발롱 어워드[43] B팀[44] B팀[45] 링크[46] 아이러니하게도 이 날 결승골을 넣으며 레알의 승리를 이끈 주역이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였다.[47] 해당 기사에는 언급되어 있지 않으나, 호나우두가 구단주로서 본인을 포함한 선수 전원이 한국의 경기 노하우 등을 배워갈 것이라 언급했다.[48] SKT 선수들 중 호나우두의 팬인 뱅은 인기 아이돌 앞 소녀팬마냥 어쩔 줄 몰라하는 태도로 메달을 받고 악수를 나누고 페이스북에서 호돈신과 직접 악수한 것 만으로도 자기 인생이 성공적이라는 들뜬 감상을 밝혔다.[49] 이는 아르헨티나의 독립 영웅 호세 데 산 마르틴의 별명이기도 하다.[50]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도 비슷한 경험으로 무시당하는 것이 어떤 기분인지 알기에 팬서비스 정신이 투철한데 재밌는 건 즐라탄이 호나우두의 광팬이라는 것이다.[51] 심지어 이때 호나우두는 브라질 중계진으로 참여했는데 클로제가 자신의 기록을 깨는 걸[52] 1994년은 10대 시절로 주전은 커녕 출전도 못해 한골도 못넣었다. 10대부터 캐리한 펠레는 논외로 하자.[53] 네덜란드는 준영어권이라고 봐도 무리가 없을 정도로 영어만 할 줄 알아도 현지에서 큰 불편함이 없으며, 대다수의 네덜란드를 거쳐가는 남미 및 비유럽권 선수들이 네덜란드 리그를 빅리그로 가기 위한 교두보로 인식하는 경향이 강하기에 영어가 더 중시된다. 그래서인지 네덜란드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외국인 선수는 거의 없고, 유튜브를 뒤져봐도 네덜란드어 인터뷰는 찾을 수 없고, 박지성 또한 네덜란드 현지에서 영어를 배웠으며 네덜란드어는 간단한 소개 빼곤 거의 못한다고 한다. 호나우두도 이 시절에 영어를 본격적으로 접했을 것이며, 영미권 언론과의 인터뷰는 오래전부터 잘 소화했다. 카카에 비해 남미식 억양이 많이 묻어나는 영어를 한다.[54] 그래도 인터 밀란 초기에는 10번을 달고 활약했다.[55] 모터스포츠 역시 브라질에서 축구와 함께 최고의 인기 종목으로 꼽힌다.[56] 실황 월드 사커 북미판의 브라질용 크랙 버전이다.[57] 해당 조사에서 최소 표차인 576:562 14표차로 요한 크루이프는 세컨드 팀에 배정되었다.[58] 반사이익이라고 보기도 뭐한게, 애초에 마라도나는 주 포지션이 공격형 미드필더로 센터포워드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