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12-09 15:48:32

2차 가해

1. 읽기 전에 주의할 점2. 개요3. 설명4. 잘못된 용례5. 사례6. 외국의 2차 가해7. 대중 매체에서의 2차 가해

1. 읽기 전에 주의할 점

본 문서는 다수의 이용자들이 편집 중인 관계로 법률용어로서의 가해자피의자를 섞어 쓰고 있다. 가해자는 법원에서 유죄의 판결이 확정된 자(범죄자)를 의미하며, 피의자는 수사기관에 의해 피의사실을 추궁당하고 있는 사람[1]을 뜻한다. 대한민국 헌법 제12조, 제27조, 제30조, 제33조, 제72조, 제87조, 제309조, 제310조 등은 형사소송에서 피의자의 자기방어 권리를 보장하고 있으므로, 이와 관련된 용어에 주의할 필요가 있다.

2. 개요

통상적으로 '어떤 범죄피해자를 가리켜 '스스로 범죄 피해 사실을 자초한 것'이라며 모욕하거나, 피해자가 가해자로 하여금 범죄를 일으키도록 동기를 제공했다고 매도하는 행위를 이른다. 그러나 2차 가해에 대한 사회적 논의는 부진한 반면에, 대중의 법 감정은 피의자가 특정된 단계에서 엄벌주의를 요구하는 등 무죄추정의 원칙을 위배하는 경우도 있으므로, 피의자가 형사소송상 명시된 방어적 권리를 행사하는 것을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로 매도하는 현상이 나타나기도 한다. 예를 들어, 피의자가 수사기관에서 사실관계의 오류에 대해 반론의 진술을 하거나, 변호사를 선임하여 증거와 증언을 수집하는 것은 피의자의 권리임에도, 언론이나 SNS 등지에서는 이를 두고 '반인륜적인 행위'로 특정하는 경우를 들 수 있다.

사회에서는 주로 성폭력에 대한 2차 가해가 자주 다뤄지지만 학교폭력, 왕따집단 괴롭힘에 대한 2차 가해도 있을 수 있고[2] 군사 정권 시절에는 간첩 누명에 대한 2차 가해도 꽤 있었으며 미국의 사례이지만 인종차별 사건에 대한 2차 가해도 꽤 많았다. 하여튼 사람들 간의 감정이 원인이 되어 발생한 범죄(특히 혐오범죄)에서는 웬만하면 2차 가해가 있을 수 있다.[3]

3. 설명

과거에는 성범죄의 보호법익이 정조였기 때문에 일부 유흥 관련 직종에 종사하는 사람의 경우 성범죄 사건이 발생해도 피해자로서 보호 받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판례가 "법은 정숙한 여성의 건전하고 순결한 정조만을 보호한다."라는 망발이 판결문에 버젓이 올라간 1955년의 "박인수 판례"로, 당시에도 수많은 논란을 불러일으킨 바 있다. 다행히 2심에서 징역 1년이 선고되었다.

지금은 저런 판례가 나온 시절에 비해서는 수사관 및 법정 관계자들의 성 인지 수준이 많이 발전했다고 하지만 당장 지금 똑같이 귀가하던 여대생강간을 당했다고 가정했을 때 학교에서 공부하고 돌아오는 길에 당한 여대생과 클럽에서 놀고 돌아오는 길에 당한 여대생이 있는 경우 후자는 수사 과정에서 피해자로서 보호를 받기 어려운[4] 것이 현실이다. 당신이 이런 피해를 받은 여성이거나 또는 그런 여성에게 수사과정에서 신뢰 관계에 의한 동석을 요구받은 지인[5]이라면, 혹시 피해자의 면전에서 저런 발언을 하는 개념 없는 수사관이 있다면 "여성이 성적으로 개방적이라는 게, 그 여성의 의사에 상관없이 아무나 그 여성을 유린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의미하진 않거든요."라는 말로 반박한 뒤 청문감사실에 제보하도록 하자. 물론 녹취도 같이.

물론 선의(?)로 2차 가해를 저지르는 경우 역시 의외로 자주 발생한다. 대표적인 예가, 성범죄집단괴롭힘증오범죄에 있어서 피해자의 의사에 관계없이 "화해를 통한 원만한 해결"을 강요하는 경우다. 그렇게 끼어든 제3자의 입장에서는 자신이 선의에서 화해를 주선하고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이게 얼마나 말도 안 되는 상황인지 같은 종류의 범죄 피해를 당해본 경험자들에게 물어보면 아주 생생한 증언을 들을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안타까워서 건네는 말이라고 할지라도 범죄 피해자에게 '그러게 네가 조심했어야지', '왜 범인 앞에서 무방비하게 굴었냐', '범인의 관심을 끌 만한 짓을 했냐.' 같은 소리를 하는 것 역시 역시 피해자에게 큰 상처를 주는 2차 가해가 되므로 하지 말아야 한다. 성교육 전문가 구성애는 저서 〈니 잘못이 아니야...〉에서, 속상하고 안타까워서 던지는 말이라 할지라도 피해자 입장에서는 그런 말들을 듣는 순간, 0%의 잘못이 100%의 잘못으로 바뀌게 된다고 지적했다. 그녀 자신이 아동 성폭행 피해자이며 그렇지만 피해 직후 어머니가 해줬던 "너는 아무 잘못 없어, 그 오빠(가해자)가 잘못한 거야."라는 말 덕분에 밝게 자라날 수 있었다고 한다. 오죽하면 책 제목이 이것일까?[6]

이렇게, 가해자와 직접 관련이 없는 제3자들이 개념이 없어서 2차 가해를 저지르는 경우도 있을 수 있지만, 가해자 본인(들)이 주체적으로 2차 가해의 여론을 선동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는데 고려대 의대생 성추행 사건이 그 대표적인 경우였고, 이런 짓을 하다가 걸리면 엄정한 법의 심판이 기다리고 있다. 그 행위 자체가 명예에 관한 죄를 구성할 수도 있으며 거기까지 이르지 않았더라도 개전의 정(뉘우치는 마음)은 분명히 형의 양정에서 고려하는 요소이다.

4. 잘못된 용례

종종 수사공판과정에서 당연히 필요한 증거의 제시, 진술, 증언 등을 요구하는 것마저 2차 가해라고 부르는 경우가 있는데 일례로 서울대 담배녀 사건 당시 단과대 학생회장이 바로 그런 논리로 린치 당한 바 있다.

이는 수사공판과정상 당연한 절차이자 아직 범죄 사실이 확정되지 않았기 때문에 범죄사실의 규명을 요구하는 차원에서 이뤄지는 절차를 2차 가해라고 부르며 비난하는 것은 옳지 않다. 이는 양예원 스튜디오 성추행 사건으로 재현되고 있는데, 눈물의 유튜브 폭로로 피해자의 위치를 선점한 이후 스튜디오 측의 카톡 공개로 역으로 궁지에 몰리자, 2차 가해 논란이 시작되었다.[7] 특히 언론 뿐 아니라 경찰이 나서서 2차 가해를 비판한 것은 이례적인 일로 기사에서 논하듯이 아직 수사가 끝나지도 않은 상황에서 피의자(스튜디오)를 가해자로 확정 짓고 2차 가해를 논하는 것은 이중 잣대라는 비판이 일었다. 이 상황에서는 양예원의 말이 거짓이라면 오히려 양예원 측이 무고의 가해자가 되는 셈이다.

2차 가해라는 개념을 정의하는 것이 2차 가해의 피해자들을 보호하기 위함이라면 절대로 이런 태도를 취해서는 안 된다. 물론 피해자가 그런 과정에서 피해 사실을 다시 떠올리며 (요구한 사람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고통을 받는 것은 당연히 2차 피해라고 말할 수는 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당연한 요구 정도가 아니라 피해자를 모욕하거나 상처를 주는 말을 했다면 2차 가해다.

이런 잘못된 용례가 더 심하게 변질될 경우, 처음부터 무고를 당한 사람이 억울함을 호소하며 혐의를 반박하고 무고죄라고 주장하려고 해도, 그런 반박의 시도 자체를 '2차 가해'로 치부하고 발언권을 봉쇄하는 원천봉쇄의 오류를 저지르게 된다. 이렇게 되면 오히려 무고 피해자는 무고를 당한 것도 모자라서 반박할 기회를 잃고 사적 제재 등의 2차 가해를 입는 셈이 된다.

특히 페미니즘 진영에서는 본인들에게 불리한 증거가 나타났을 경우 해당되는 증거 공개 및 발언들을 모두 2차 가해로 칭하면서 이러한 반박 시도 자체를 무력화하려는 움직임을 자주 보여주고 있다. 일부에서는 이러한 행태에 대해서 자정 및 비판을 호소하고 있지만 이것은 극히 일부의 주장이며 주류라고 보기에는 힘들다.

5. 사례

가해자의 가족들이 하는 양을 들으니 가관이었다. 병원에 들러서는 합의를 종용하며 "여자애가 담배를 피우고 있는 걸 보고 우리 아무개가 훈계하려다가 그런 일이 벌어진 것"이라는 둥(피해자는 담배를 피우지도 않았다) "네가 먼저 꼬리를 친 게 아니냐"는 둥 실로 허파가 뒤집히는(중략) 억지를 시연하고 있었다. 그때 우리 모두는 격노했다. "뭐 그런 집구석이 다 있어!"(중략)

가해자 가족들은 돈봉투를 들고 와 있었다. 빨리 합의를 보자는 것이었다. 가해자는 그때까지도 자신은 술에 취해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입장이었다.(이놈의 '주취로 인한 심신미약'의 변명은 어찌 이토록 유구한지.) -중략- 먼저 남자에게 여자가 접근해 왔다고 주장하지 않는 것이 다행이었다고나 할까. 두들겨 맞아 입술은 터져 있고 멍 자국도 역력한 피해자의 침대 앞에서 가해자의 가족은 이렇게 얘기했다. "때린 건 미안하다고 얘기했잖아요. 그러니까 이렇게 성의도 보이는 거잖아."(중략)

"어떻게 꼬리를 쳤다는 말을 할 수 있어요?"라고 하자 "나이 든 어머니가 속없이 한 말을 트집 잡는다"고 맞받았다. 오히려 "명문대 학생이 자기 학교 안에서 성폭행을 한다는 게 말이 되느냐?"며 어이없는 발뺌을 했다. 급기야 우리가 격앙된 반응을 보이자, "그럼 법정에서 보자!"고 가해자 가족이 박차고 일어섰다. 그때 우리는 지극히 무력했다. 침대에 기대어 퀭한 눈에 주먹만 꽉 쥐고 있던 후배 앞에서 우리는 정말 무력했다. (중략 - 결국 가해자는 범행을 인정하고 피해자는 사과를 받아낸다.)

그렇게 일단락이 된 줄 알았는데 사태는 이상하게 번졌다. 조용히 해결하려던 사건의 전모가 학교 전체에 퍼져나간 것이다. 가해자의 인적 사항이야 말할 것이 없지만 피해자의 과와 학년, 이름까지도 스스럼없이 알려졌다.

심지어 수업 시간에 나는 가해자를 매도하는 와중에 엉뚱하게도 피해자의 과와 학번까지 입에 올리는 교수님을 제지해야 했거니와, 길 가면서는 "걔가 그렇게 예쁘냐?"고 키득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입을 벌려야 했다. 당시에는 그 개념조차도 존재하지 않았던 단어, '2차 가해'였다.
성범죄에 대한 2차 가해의 실제 사례. 출처 기사 1기사 2

남성도 피해자가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특히 여성이 꽃뱀이라고 확정된 사안임에도 남자를 끝까지 강간범으로 몰거나, 남자가 주의를 안 했다는 식으로 물타기를 시도하는 경우도 매우 많다.[8] 특히 박유천 사건이 이 예시를 증명해주는 좋은 예시다. 박유천은 재판까지 가지도 않은 무혐의임에도 수많은 여성들에 의해 2차 가해를 당했고 심지어 아직도 강간범으로 모는 경우도 많다. 그가 한 잘못은 퇴폐적인 업소에 드나들며 그곳에 종사하는 여성들 여럿과 다소 무분별한 성관계를 가졌다는 것뿐이며 결코 강간이 아니다.

그렇기에 성범죄 피해자와 성범죄 무고죄 피해자는 매우 흡사하다. 무고죄 피해자가 아무리 무고하다고 말해도 주변에서는 곧바로 색안경을 끼고 있으며 설사 무죄라고 생각해도 자신에게 피해가 올 것이 두려워 피해자를 피하게 된다. 그리고 무고죄 피해자 역시 2차 가해[9]에 시달리게 된다.

이와 같은 2차 가해는 비단 이 사건뿐만 아니라 여러 다른 사건에서도 자주 일어나고 있으며[10] 이는 피해자들의 심리[11]와 상황[12]의 몰지각에서 기인하며, 자기 진영을 옹호하고자 피해자의 입장을 전혀 이해하지 않으려는 태도다. 이는 자신의 가치관을 지키려는 이기심이자 최악의 행동이다.

2차 가해는 매우 복합적인 이유로 일어난다. 일단 피해자와 가해자로 나뉘어지게 되는데, 아쉽게도 가해자가 강한 힘을 가진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리고 방관자나 제 3자는 이해관계로 얽혀 있는 경우가 있다면 피해자 편인지 가해자 편인지 골라야 한다. 당연히 현실은 더 강한 쪽에 붙고 자신의 이득을 보호하기 마련이다. 그러면 여기에서 자신은 "나쁜 사람이라서 가해자 편에 섰다. 피해자에게 미안하다."라고 하지 않고 피해자에게 문제를 만들어내서 자기를 옹호하게 된다. 보통 조직에서 피해자를 쳐내는 것은 자신의 이득을 지키기 위해 가해자 편에 서고 피해자를 쳐내는데 명분으로 2차 가해를 가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자신의 처한 상황을 합리화 혹은 자신의 악행에 동조 혹은 방관에 대한 자기 합리화라고 할 수 있다.

문제 해결의 단순화라고 볼 수 있다. 미투 운동이 일어나자 남녀를 나누어 해결하자고 하는데 이는 성교육과 전담부서 그리고 피해자의 대한 치료 등 여러 복합적이고 골치 아픈 문제를 남녀를 나누어 버리는 것으로 간단히 해결해 버린다. 가해자가 강자라면 해결하기 골치 아프기에 피해자를 쳐내는 것으로 간단히 해결하는 것 이다. 아니면 강제로 화해 시켜서 그냥 골치 아픈 문제를 해결하는 이기심이라 할 수 있다.

성범죄를 보면 '남자라면 남자가 그럴 수도 있지', 피해자가 남자라면 '남자가 얼마나 못났으면'이라고 한다. 그리고 여성 피해자에게 여러 문제를 걸고 넘어지는 것은 오랫동안 쌓여온 남자와 여자의 고정관념이다. 그리고 자신의 불안감 해소다. 위에 나와있듯이 피해자에게 이유를 찾음으로써 자신은 피해자와 다르다는 가치관으로 넘어가는 것이다.

결국 2차 가해는 자신의 안전, 이득, 몰상식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 즉 자기의 심적, 육체적, 사회적 안전성을 위해서 상대를 희생시켜야 하지만, 이런 저런 명분으로 포장해 자신을 쓰레기로 만들지 않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 이다.

5.1. 국내의 사례

5.1.1. 천주교 수원교구 사제 성폭행 사건

대전가톨릭대학교 총장인 천주교 대전교구 김유정 유스티노 신부는 미사와 자신의 SNS에서 "7년간 피해자에게 용서를 구했지만 용서받지 못했다. 보도가 의심스럽다."라고 주장했다. 피해자 측에서 2월 23일 반박하며, 김 신부의 주장이 거짓이라는 고발이 있었고, KBS에서 보도하자 김 신부는 2월 27일 논란이 된 글을 삭제하였다.

6. 외국의 2차 가해

세상은 넓고 이상한 사람은 많은 법이라서, 아직도 법의 이름으로 2차 가해를 저지르고 있는[13] 나라들이 국제 뉴스로 조리돌림을 당하기도 하는데, 대표적으로 샤리아 법에 의해 강간 피해자가 처벌을 받게 되는 경우와, 인도의 어느 정부 부처 고위공무원이라는 자가 "성폭력 피해자도 참수시켜야 한다."라는 망언을 공중파 TV에서 지껄인 경우 등이 있다. 그나마 인도의 경우 성범죄 왕국으로 불리는 것과 달리 인도인들도 현재는 성범죄에 대한 인식이 서구적으로 변하고 있으며 이를 증명하듯이 한 인터뷰에선 많은 인도인들이 성범죄와 피해자 옷차림을 연관 짓는 것에 대해 헛소리 말라는 반응을 보이는가 하면, 집단 강간 사건 주범이 외신 인터뷰에서 피해자 옷차림을 운운하고 밤늦게 돌아다닌 게 잘못이라고 하는 등 2차 가해를 한 것이 알려지자 이에 분노한 인도 국민들이 대규모 시위를 벌이는 걸 넘어 아예 교도소를 습격하여 그 범인을 교도소 밖으로 끌어내서 때려 죽인 일도 있었다.[출처 필요]

미국에서도 강간 피해 여성에 대한 2차 가해가 저질러지는 양상에 대해 논의한 책으로서 수전 브라운밀러(S.Brownmiller)의 도서 《우리의 의지에 반하여》(Against Our Will)가 있다. 해당 문서 참고.

7. 대중 매체에서의 2차 가해



[1] 기소 뒤 형사재판이 확정되면 피고인이 된다.[2] 특히 왕따에 대한 2차 가해는 왕따 피해자에 대한 세간의 저조한 인식 수준과 맞물려서 그 질이 꽤나 심각한데 빈도도 자주 발생하는 편이다.[3] 끔찍한 것은 단순히 타인에 의해서 일어나는 2차 가해 뿐만이 아니라 가까운 가족지간에서조차 2차 가해가 나타나기도 한다는 것이다. 예시로 성폭력을 당한 피해자의 가족들이 오히려 피해자를 수치스럽게 여기고 집안 흑역사로 취급한다던가 하는 것 등.[4] 오해를 막기 위해 첨언하면, '불가능하다'의 완곡 표현인 '어렵다'가 아니라, 말 그대로 '어렵다'는 것이다. 물론 전자에 비해 상대적으로 어려운 것.[5] 신뢰 관계에 있는 자와 동석하여 피해자 조사를 받을 수 있는 것은 범죄 피해자로서 주장할 수 있는 권리다.[6] 그러나 정신적 후유증과 신체적 후유증은 별개였다. 성장하고 나서 월경을 시작하자 그녀는 극심한 생리 불순에 시달려야 했는데, 주기가 불규칙했고 한 번 시작하면 3~4개월 동안을 하혈이 멈추지 않았다고 한다. 결혼 후에도 임신이 정말 어려웠고 겨우 고생해서 가진 아이를 출산한 뒤에는 다시 생리가 멈추지 않더니 6개월 동안 도무지 원인을 알 수 없는 하혈이 끝없이 계속되었다고 한다. 한쪽에서는 하혈, 한쪽에서는 수혈을 하는 나날이 계속된 끝에 결국 자궁을 들어내야만 했다. 결국 반평생을 고생한 셈이다. 아동 성폭행이 피해자에게 어떤 후유증을 남기는지, 왜 끔찍한 악행인지 알 수 있는 참담한 이야기이다. 또한 수영을 배울 때 물에 빠져 숨 막히는 느낌을 받았는데, 그때 범행 당시 가해자가 자신의 입을 틀어 막았을 때 느꼈던 숨 막힘이 되살아나서 다시는 수영을 할 수 없었다고 한다. 그리고 피해로부터 한참 세월이 지난 후, 아이를 낳고 난 뒤에야 가해자가 자신 외에도 다른 아이들에게 같은 범행을 여럿 했다는 사실과 그런 그가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고 잘 살고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고, 진지하게 살인 계획까지 세웠었다고 한다.[7] 엄밀히 말하면 사진 유출에 관해서는 양예원이 명백한 피해자다. 하지만 양예원은 폭로 과정에서 포커스를 촬영 중 성추행에 맞췄고, 전선은 강제성의 여부를 놓고 형성되었다.[8] 최소한 피해자의 가족을 제외하고는 주변 사람들은 중립적 행동이 가능하겠지만 영화 《더 헌트》를 보면 무죄인 것이 밝혀져도 달라 진 것은 없었다.[9] 강간범이라는 뒷담화, 왕따, 헛소문, 주위 사람들의 외면와 회피 등[10] 성범죄의 발생 원인을 '여자들이 노출이 심한 옷을 입었기 때문'이라는 식으로 피해 여성의 행실 탓으로 돌리는 것, '꽃뱀으로 모는 발언', '왜 이제야 고소했냐는 비난' 등에서 찾는 식으로 피해자 비난 행위는 미투 운동 이전에도 성폭력 사건에서 빈번하게 있었다.[11] PTSD, 학습된 무기력[12] 상하 권력에 의한 위계 관계, 가해자의 보복 우려, 제3자들의 2차 가해 등[13] 전술한 '수사 과정에서의 2차 가해'와는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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