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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004년 프로야구 병역비리 사건에서 적발된 선수진과 행적을 정리한 문서.2. 명단
- 아마추어, 해외파 포함
구단 | 구속 | 불구속 | 소환 불응 | 공소권 없음 |
박우호 박장희 김민우 | 정성훈 마일영 신동민 | - | 신철인 이상열 | |
유동훈 | 이현곤 | - | 손지환 | |
김현수 정현욱 오상민 박정환 지승민 현재윤 | 윤성환 이정호 김형근 | - | - | |
윤형국 윤현식 조진호 | 이진영 안용휘 송재익 | 채종범 | 강혁 김영수 송재익 이호준 | |
신민기 | 마정길 조규수 한상훈 고상천 전경일 조현수 | - | 박정진 이영우 | |
김광수 김용우 이경민 김광희 심수창 양현석 | 손기현 이동현 전승남 | 박용진 | 최만호 | |
이재영 | 이재우 손시헌 노경은 채상병 김재호 | - | 구자운 박명환 윤재국 이경필 임재철 정성훈 | |
김장현 서정호 | 변인재 김주찬 허준혁 | 조성환 | 김사율 임경완 최기문 허일상 | |
기타 | 정성기(애틀랜타) 박종섭(한양대) 김형준(영남대) | 원정빈(한양대) 이윤호(한양대) 곽동훈(대불대) | - | - |
- 기타
- 전종화
2004년 당시 삼성 라이온즈의 배터리코치로 재직하던 중 유망주들에게 병역 브로커를 알선한 혐의로 불구속 입건되었다. 위 명단에서 보듯 삼성과 LG 선수들이 많았는데, 전종화의 역할이 컸다는 의혹이 있었다. 그러나 증거 불충분으로 무혐의 처분을 받은 뒤 다른 팀에서 코치 생활을 이어간다. - 김충
MBC 청룡, 삼성 라이온즈, 한화 이글스 코치를 거쳐 SK 와이번스의 2군 감독을 역임했던 베테랑 코치였다. 위의 전종화와 마찬가지로 코치 재직 당시 병역 브로커를 알선한 혐의가 있었다. 사건이 발생했던 당시에는 코치직에서 물러난 상태였는데 호주로 출국 후 귀국하지 않는 방식으로 수사를 기피했다. 당시 언론에 "S구단 김모 2군 감독"이라고만 발표된 탓에 이름이 비슷한 다른 분들이 오해를 많이 받았다고 한다. 당시 기사 이후 공식적으로 공식적으로 수사나 재판을 받았는지는 알 수 없으며 2008년에 지병으로 사망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대체로 구속된 선수들은 실형 및 군복무, 불구속된 선수들은 기소유예 및 재검을 받았다. 대부분 7개월이나 10개월 사이의 실형이었으며 집행유예는 아니었다. 이는 당시 병역법상 6개월 이상 1년 6개월 미만의 실형을 받거나 1년 이상의 실형을 받고 집행유예를 받을 경우 현역이 면제됐기 때문에 감방이랑 군대도 같이 가라는 의미에서 이 정도 기간을 선고한 것이다.[1] 당시 양형기준은 혼자만 병역을 기피했을 경우 징역 8월, 동료들에게 브로커를 소개해 준 혐의가 발견되면 10월을 선고하였고 참작할 만한 사유가 있을 경우 이 기준에서 1월이 줄어들었다. 예를 들어 현재윤의 경우 다른 선수에게 브로커를 소개시켜 주지 않았고 병역면탈 이전에 4급을 받은 상황이어서 징역 7월을 살게 되었다.
소환 불응 선수들 중 채종범은 어깨 골절로 인해 움직이지 못하는 상황이어서 완치 후 출두하겠다고 밝혔으며, 조성환과 박용진은 도주 잠적이었다. 박장희 역시 도주했으나 지인들의 설득 끝에 소환에 응하겠다는 의사를 밝혀 구속자 명단에 올려졌다. 이들의 도주, 잠적이나 소환불응 등은 양형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고, 다른 선수들과 마찬가지로 징역 8월, 10월의 기준이 적용되었다.
공소시효가 지나 공소권 없음 처분을 받은 선수들은 병무청에 의해 재검 판정을 받았으며, 이후 재검 결과에 따라 현역 입대, 공익근무요원, 면제 여부가 갈라졌다.
또한 이 명단에 포함되지 않는 전직 야구선수들이 존재하는데, 대부분 무명인 상태에서 병역면탈을 시도하였으나 그 성공 여부와 관계없이 프로에서 살아남을 실력을 갖추지 못해 사건이 발각되기 전에 야구계를 떠난 경우이다. 이들은 일반인으로 분류되었으므로 이름이 알려지지 않았다.
3. 선수별 설명
워낙 큰 사건이었으나 당사자들이 이에 대해 단단히 함구하는데다 팬들도 묻어두고 싶은 기억이기 때문에 정확한 자료가 많지 않다.- 8구단 전체가 연루되었으므로 어느 한 구단만을 옹호하거나 비판하기 어려운 상황이므로 과도하게 실드를 치거나 비난하는 내용을 자제할 것.
- 최대한 객관적인 사실만을 적시할 것.
3.1. 구속 수감
- 조성환
2001년에 병역비리를 저질러 시효기간인 3년이 얼마 남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에 조금만 버티면 공소시효 만료로 처벌을 면할 수 있다고 판단해 6개월간 도주, 잠적했다. 그러나 검찰이 시효 만료를 약 18일 앞두고 그 동안 모은 증거로 공소를 제기해 시효가 정지되어 도주의 의미가 없게 되자, 자수하여 서울구치소에 수감되었고 징역 8월을 선고받아 실형을 살게 되었다. 이후 재검을 받고 공익근무요원으로 복무했으며, 병역의 의무를 마친 뒤 롯데에 복귀하여 다시 주전 2루수로 뛰게 된다. 훗날 본인은 변호사의 잘못된 조언 탓이라 회고했으며, 도주 기간 동안 사람들이 나를 알아볼까봐 무서웠다고 당시 소회를 밝혔다. 조성환에게 가장 힘들었던 '4년간' 무슨 일이… 2004년 부상-수술, 그리고 병역비리…
- 현재윤
2004년에 팀이 10연패의 수렁에 빠져 있을 때 진갑용을 지명타자로 밀어내고 포수로 깜짝 활약을 보였으나, 병역비리 사건에 연루되면서 그라운드를 떠나야 했다. 다른 선수에게 브로커를 소개시켜 주지 않았고, 병역 면탈 이전에 신체검사 4등급이 나왔다는 점이 참작되어 다른 선수들보다 1월 짧은 징역 7월을 살았고, 이후 공익근무요원 복무 뒤 복귀했다. 당대 최고의 스타 이승엽의 룸메이트였던 탓에 자연스레 스포츠 기자들과 접촉할 일이 많았던 선수라 신인 시절부터 실력에 비해 유명세를 탔고, 구단 행사에 참석하여 팬들 앞에서 멋진 댄스를 선보이기도 했다.[2] 이승엽이 치바 롯데 마린즈에서 뛰던 시절 시즌을 마치고 귀국한 뒤 구치소에 있던 현재윤을 면회한 이야기가 기사화 된 적도 있다.
- 조진호
한국인 메이저리거 2호로써, 한국에 복귀한 지 1년이 좀 지난 상태였는데 기량도 하락세였던 데다 조범현 감독과의 불화로 인해 2군에 머무르던 상황이었다. 구속된 선수 중 가장 나이가 많은 축에 속했는데, 이는 대한민국 복귀 이후 군 문제 해결을 위해 비교적 늦게 이 사건에 가담했기 때문으로 추측된다. 8개월 실형을 받고 SK에서 방출되면서 공익근무요원으로 복무한 뒤 소집 해제 이후에는 입단 테스트를 받아 2008년 삼성에 입단해 선수 생명을 이어갔다. 하지만 허리 부상으로 2009년에 방출당하면서 은퇴 수순을 밟았다.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에서의 활약은 미미했지만 전직 메이저리거였기에 야구에 관심 없는 일반인에게도 이름이 알려져 있는 상황이었고, 이로 인해 사건 당시 공중파 언론에 가장 빈번하게 노출되었다.
- 지승민
팀 동료 윤성환에게 브로커를 소개해 준 혐의로 징역 10개월을 선고받았으나, 윤성환이 병역 기피 시도를 하지 않아 8개월로 감형되었다. 재검 결과 4급을 받았고 징역살이 후 잠시 팀에 복귀하기도 했다. 공익근무 중 소집 해제를 얼마 앞두고 교통사고로 어깨 수술을 하는 바람에 삼성에서 방출되었다가 신고선수로 재입단하는 등 우여곡절을 겪기도 했다. 이후 나름 성적을 올리다 2009년 시즌 중 두산으로 트레이드되었고, 2010 시즌 이후 은퇴했다.
- 정성기
대학을 졸업하고 2003년 미국으로 건너가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산하 마이너 팀에서 뛰던 중 병역 문제로 일시 귀국했다가 병역 비리에 연루되어 구속되었다. 이후 현역으로 군 복무를 마치고 애틀랜타로 복귀했다. 마이너리그에서 꾸준한 모습을 보이면서 메이저리그 승격이 기대되었으나 2009년 초 애틀랜타의 단장이 바뀌면서 팀 전력 구상에서 배제되었고 퇴단하기에 이른다. 이후 국내 복귀를 노렸으나 해외파 복귀 유예에 걸렸고 이에 대해 소송을 준비했으나 포기했다. 모교인 효천고와 동의대에서 운동을 하다가 NC 다이노스의 선수 테스트에 응했고 합격했다. 그러나 1군 5경기 등판에 그친 채 2014 시즌을 끝으로 유니폼을 벗었다.
- 박종섭
당시 한양대학교 3학년이었으며, 군 복무를 마치고 대학을 중퇴한 뒤 지명을 받았던 두산에 입단했지만 이렇다 할 기회를 얻지 못하고 방출되었고 다시 기아로 옮겼으나 또 방출되었다. 이후 두산 프런트로 합류했다.
- 김형준
적발 당시 영남대학교 2학년이었으며, 고교 졸업 때 지명을 받았으나 이 사건으로 인해 지명권이 풀렸다. 군 복무를 마치고 2008년 3학년으로 복학하면서 운동을 재개했고, 졸업 후 삼성에 신고선수로 입단했으나 1군에는 올라오지 못하고 유니폼을 벗었다.
- 김광수, 김용우, 이경민
위 세 명의 선수와 불구속된 손기현까지 총 네 명의 선수가 최초로 경찰에게 적발된 선수들이다. 네 명 모두 LG 트윈스 소속이었으며 이들이 구속될 당시 함께 구속된 브로커들의 장부가 경찰에 발견됨으로써 이 사건의 규모가 수십명이 연루된 초대형임이 밝혀졌다. 김광수, 김용우는 구속수감 이후 재판을 거쳐 실형을 살았고 공익근무 뒤 복귀하였는데, 김광수는 이후로 오랜 기간 선수로서 활약할 수 있었던 반면 김용우는 그리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다가 09년에 은퇴하였고 2010년대 중반까지 SK와 삼성에서 프런트로 활동했다. 이경민은 불확실하지만 면제판정을 받은 것으로 보이는데, 05년 단 한 게임에 선발로 출장한 기록이 있으며 그 이후는 알 수 없다.
- 신민기
다른 선수에게 브로커를 소개시켜줬고 그 선수가 병역면탈에 성공하여 방조죄가 더해지게 되었다. 그런 이유로 다른 선수들에 비해 형령이 더 많은 징역 10월을 살게 되었고, 이후 공익근무까지 겹쳐진 탓에 2008년에야 프로에 복귀할 수 있었다. 이후 단 한번도 1군에 올라오지 못한채 이듬해인 2009년에 은퇴하였다.
- 박장희
징역 8월의 실형을 살고 공익근무로 복무하였다. 이 사건에서 가장 먼저 재판이 열리고 가장 먼저 형을 선고받은 선수이다. 이후의 선수들에게 박장희 재판 때의 기준이 적용되었다.
3.2. 불구속
브로커에게 돈을 건네거나 1차 진단서까지는 끊었으나 병역 기피를 시도하지 않은 경우. 선수 개인마다 사정이 다르긴 하지만 대체적으로 아래와 같은 이유로 불구속 입건되었다.- 시도했으나 병역 기피에는 실패한 경우
- 양심의 가책을 느껴 병역 기피를 시도하지 않은 경우
- 면제 판정을 받았으나 알고 보니 다른 곳이 아팠던 경우
- 기피를 시도하던 도중 사건이 발각된 경우
- 이진영
이진영이 어느 단계에서 유혹을 거부했는지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어느 정도 일이 진행되었던 것은 거의 사실이다.[4] 기소유예 및 재검 처분을 받고, 재검에서 공익근무 처분을 받았지만 학업을 이유로 입영을 연기했다.[5] 그러나 병무청은 병역 비리를 저질렀음에도 입영 연기를 신청하는 것은 윤리에 어긋나고, 실제로 학교에 다니지 않으므로 연기 사유로는 부적합하다는 이유로 입영 연기를 거부했으며 이진영은 이로 인해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이 소송은 이진영뿐만 아니라 함께 병역비리에 연루되었던 이호준과 함께 제기했다.
원래 행정소송은 형사 사건에 대해 처분의 무효를 선언할 수는 없지만 제대로 처분을 한 것인지 판단하는 것은 가능하다. 병무청이 기소유예를 연기 거부 사유의 하나로 삼았고 이는 기소유예가 제대로 된 것인지만 심리하는 것이기 때문에 행정법원에서 기소유예 부분을 판단할 수 있다. 일단 법원은 학업 부분은 아무 문제 없는 것으로 판단했고[6], 기소유예 부분 역시 무효라고 판단했다. 결국 병무청이 제시한 이유들이 모두 무효가 되면서 결과적으로는 이진영과 이호준이 이겼다.[7] 즉 입영 연기에 대한 행정 소송 중 기소유예를 받은 것이 무효로 판정된 것이다. 그렇더라도 기소유예를 무효로 본 건 결국 법원이 이진영이 법적으로 무죄라고 한 것이나 마찬가지가 된다.
그럼 이 무죄가 이진영이 사회통념상 결백하다는 뜻인지가 문제인데... 결론만 말하자면 모른다. 이 당시 병역법 상으로는 일을 중간까지 진행한 것만으론 죄가 되지 않고, 병무청을 속여 넘겼어야 죄가 된다. 돈을 건넸건 병원에서 진단서를 끊었건 어쨌든 최종적으로 비리를 안 저질렀다면 결국 무죄가 된다.[8] 덧붙여서 이 판결이 이진영, 이호준의 소송에 대한 판결인지는 불분명하다. 애초에 검찰에서 불구속 + 기소유예라는 어정쩡한 태도를 보인 것도 법정 가봤자 무죄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 결론적으로, 이진영은 법적으로는 무죄가 맞다. 기소유예 처분은 범죄혐의는 있으나 검사판단으로 경미하여 재판에 넘길 필요가 없는 관대한 처분이기 때문에, 약간의 불이익은 있지만 사실상 전과가 생기지 않기 때문에 법적으로는 범죄자가 아니다. 이와는 별개적으로 선수 개인의 도덕성과 양심에 대해서는 논란이 되었다. 일단 이진영 본인의 말에 따르면 자신은 양심상의 문제로 초반에 일찌감치 병역 면탈을 포기했으며 브로커 명단에 이름만 올랐다는 이유로 사건에 연루된 것일 뿐이라 주장하고 있으니 결국 본인만 아는 문제.
이후 이진영은 공익근무를 미루던 중 2006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에 출전, 병역특례를 받는다. 당시 병역비리에 연루된 선수가 병역특례를 받는 것에 대해 말이 많았으나, 위에서 설명했듯 이진영은 법적으로 아무 문제가 없었고 여론도 크게 나쁘지 않아[9] 병역 특례를 받게 된다. 그리고 군복무로 인한 공백기 없이 2009년 FA를 통해 LG 트윈스로 이적, FA 대박을 터트린다. 소속구단인 SK의 적극적인 법적 대처가 선수 본인에게 좋은 결과를 낳은 케이스. 참고로 2004년 당시 이진영은 타율 1위였는데 이 사건에 연루된 탓에 남은 기간 출장 정지를 먹고 타격왕을 클리프 브룸바에게 빼앗기게 된다. - 정성훈
정성훈 역시 이진영과 같은 이유로 입대 연기 소송을 걸고 승소했다. 정성훈도 소송으로 입대를 연기했고, 이후 이진영과 똑같은 코스를 밟아 WBC에서 병역특례를 받게 된다. 이후 2009년 이진영과 같이 FA를 통해 LG 트윈스로 이적하여 FA 대박을 터트린다. 한편 정성훈이 이탈하면서 현대는 클리프 브룸바를 3루수로 쓸 지경이었으나 어찌저찌 한국시리즈는 재패하는 데 성공했다.
- 이동현
이동현 역시 병무청의 입영 연기 거부에 대한 취소소송을 제기하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대법원 판례 덕분에 승소할 가능성이 높았다는 점을 감안하면 의문의 결과. 이후 바로 공익근무를 시작하나 팔꿈치 부상의 여파로 6개월만에 의병 소집해제된다.
- 손시헌
기피를 시도했지만 실패했다고 한다. 즉, 법적으로는 무죄지만 사회 통념상 문제의 소지가 있는 경우. 이후 재검으로 공익처분을 받았는데, 사건이 벌어진 이듬해인 2005년부터 리그 정상급 유격수로 거듭났고 2006 도하 아시안 게임 대표팀 발탁 이야기도 나올 정도였으나 결국 국대 승선에는 실패. 그리고 두산 팬들은 손시헌의 대표 탈락에 대한 항의로 "why not 손시현" 플래카드를 내걸게 된다. 결과적으로 동메달에 그쳤으니 도하에 갔어도 병역 특례는 못 받았겠지만. 이후 손시헌은 2007년 상무 야구단에 입대, 군 복무를 마치고 2009시즌에 팀에 복귀해 주전 유격수 자리를 다시 차지한다. 상무에서 기량을 유지한 덕에 2010 광저우 아시안 게임 대표팀에도 승선해 금메달을 획득했다.
- 한상훈
공익처분은 동일한데, 팀 사정상 2008년까지 4년이나 입영을 미루다가 뒤늦게 공익근무를 했다. 이 사건에서 가장 늦게 입영한 선수이다.
- 윤성환
팀 선배 지승민에게서 브로커를 소개받았고, 병원에서 진단서를 떼기 직전에 사건이 터져 버렸다. 즉, 절묘한 타이밍에 걸린 것. 당시 홀드 공동 1위(17개)를 달리고 있었지만 이 사건으로 시즌 아웃되며 홀드왕은 롯데 자이언츠의 임경완에게 돌아갔다. 일단 결과적으로 병무청에 진단서를 제출한 것은 아니므로 무죄 판결을 받았지만 시도 자체를 했다는 점에서 논란의 여지가 있다. 어찌 보면 손시헌과 비슷한 케이스. 시즌이 끝나고 공익근무 복무를 시작, 소집 해제 후 팀에 복귀했다.
- 마일영, 조규수, 조현수, 곽동훈
이들은 생돈 4, 5천만원만 날리고 면제는 받지 못했기에 불구속되었다고 한다. 조규수와 마일영은 공익근무 후 소속팀에 복귀한 반면, 이들과 달리 무명이었던 조현수는 그대로 방출되어 은퇴했다. 당시 대학생이었던 곽동훈은 공익근무 후 대학 지명된 삼성에 입단했다.
- 전승남
공익근무가 확정되자 복무를 마친 이후의 상황에 두려움을 느껴 입대를 앞두고 LG 구단에 방출을 요구해 아예 팀을 떠났다. 소집해제 후 미국 진출을 위해 재도전했지만 결국 실패하며 은퇴했다.
- 김재호
같은 팀, 같은 포지션의 선배 손시헌과 마찬가지로 브로커에게 돈을 건넸으나 면제에는 실패한 경우이다. 1985년생으로 사건 당시 만 19살이 지난 지 5개월이 지난 상태로서, 연루자 중 최연소였다. 사고가 터지기 직전 해인 2003년에 드래프트되어 2004년이 입단 첫해였고, 신체검사 해당년도가 바로 이 해였으니 물리적으로 김재호보다 나이가 적은 연루자가 존재할 수 없었다. 어쨌거나 최연소 연루자에 몇 경기 뛰지도 않은 상태인 데다 구속도 피하면서 사건 당시나 그 후로도 한참동안 별 관심을 받지 못했고, 소속팀 두산이 이듬해인 2005년에 평범하게 경기에 출장시키기도 하였다. 사건 발생 2년 후인 2006년에 상무에 입단하여 병역을 마쳤다. 이후 사건이 발생한지 거의 10년이 다 된 2013년 경에야 주전으로 발돋움함으로서 그제서야 주목받는 선수가 되었는데, 사실상 사건 연루자 중 가장 늦게 스타가 된 선수이다.
- 노경은
김재호와 거의 비슷한 케이스이다. 84년생으로 김재호보다 한 살 더 많았고 김재호보다 1년 전에 드래프트된 상태였다. 2024년 현재 유일하게 현역으로 남아있는 선수이다.
- 손기현
김광수 등의 다른 LG 선수들과 최초로 경찰에 적발된 선수 중 한 명이다. 그러나 선배들과 달리 면제가 아닌 공익근무 판정을 받은 상황이었고, 검찰에서 면제 실패를 감안한 것인지 불구속되었다. 그런데 2004년에 입단한 신인이었던 상황에서 이 사건에 연루된 것이기에 상황이 썩 좋은 것은 아니었다. 결국 프로에서 단 4경기 3이닝만을 투구하고 야구계를 떠나게 되었다. 최초로 적발되었다는 점을 빼면 대다수의 무명선수들이 이와 비슷한 경우였다.
- 기타
김주찬, 채상병 등은 사건이 터지자 곧바로 재검을 받고 이듬해부터 공익에 가는 평범한 모습을 보였다. 특히 삼성 선수들 대부분은 사건 즉시 바로 신검받고 군대로 갔는데, 나중에 이진영 등 대부분의 불구속 선수들이 소송을 통해 입대를 연기하는 걸 보고 뒤늦게 땅을 치며 후회했다.질투 구속된 무명선수들과 마찬가지로 불구속되었던 무명선수들도 군복무 후 소속팀에 복귀하지 못한 경우가 많다. 불구속된 대학 졸업 예정 선수들 중 원정빈은 4년 전 현대에, 이윤호는 LG에 지명을 받은 상태였는데 원정빈은 입단하지 못했고 이윤호는 병역을 마친 뒤 뒤늦게 입단했지만 1군에 올라오지 못한 채 몇 년 지나지 않아 방출되었다. 병역비리 사건이 발생하기 전에 실시한 신인 드래프트에서 삼성에 지명된 곽동훈은 병역을 마친 2007년이 돼서야 정식으로 삼성 소속 선수가 됐다.
3.3. 공소권 없음
공소시효가 지나 검찰이 공소권 없음 처분한 선수들이다. 이 선수들 개개인이 어느 정도의 비리를 저질렀는지는 알 수 없다. 어떤 선수는 성기에 약을 넣는 단계까지 갔을 것이고, 어떤 선수는 브로커 명단에 이름만 올랐을 수도 있고... 뭐가 됐든 명확히 밝혀진 내용은 없다. 즉, 이 중에는 불구속 된 선수보다 죄질이 나쁜 선수도 있을 수 있다.어쨌거나 이들 모두 병무청에 의해 신체검사를 다시 받는 신세가 되는데, 대체로 나이가 많아서 서른 넘어 군대를 가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이영우, 강혁, 이경필, 윤재국 모두 1970년대 초반생으로 30이 넘은 나이에 공백기를 가진 탓에 부활이 쉽지 않았다. 게다가 윤재국은 서승화 때문에 큰 부상까지 입은 터라 더더욱 회복이 힘들었고, 이경필도 부상을 안고 있었다.
- 이영우
사건에 연루된 선수 중 가장 성적이 좋았던 선수로, FA 대박을 코 앞에 두었던 터라...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 금메달로 병역 특례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으나 사실과 다르다. 이전에 군 면제를 받는 과정에서 병역비리를 저질렀음이 밝혀져 무혐의 처리 + 재검 크리. 그리고 재검에서 공익 판정을 받는다. 결국 만 32세의 나이로 공익근무를 하게 되고, 2007시즌에 복귀했지만 이 때 이영우의 나이는 만 34세. 적지 않은 나이에 긴 공백기까지 더해졌으니 이전의 기량을 회복하기는 쉽지 않았다. 이후 주전과 백업을 오가며 2할대 중후반대의 타격으로 그럭저럭 버티다가 어깨가 망가져 좌익수 수비 능력을 상실하면서 결국 2010년 은퇴. 아래 선수들을 보면 알겠지만, 그래도 이영우는 소집해제 뒤 나름대로 활약상을 보여준 편에 속한다. 어쨌든 죄질이 어느 정도인지는 밝혀지지 않았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 강혁
1998 방콕 아시안 게임 금메달로 병역특례를 획득한 상태였다. 그러나 사건에 연루되어 병역특례를 박탈당했다. 공익 근무 뒤 복귀했으나 별다른 실적을 내지 못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은퇴했다.
- 최기문
최기문도 70년대 초반생이기 때문에 공익 판정을 받았다면 위 선수들과 같은 버스를 탈 뻔 했다. 그러나 재검만 3차례 받은 끝에 간이 안 좋은 것으로 판명되어 병역을 면제 받았다. 다만 최기문 본인의 병역비리와 별개로 후배들에게 병역 브로커를 소개한 혐의도 있었는데, 이쪽은 집행유예 + 사회봉사 200시간이라는 처벌로 끝나면서 구속을 피했다. 아래 이호준과 동일한 상황이었다.
- 임경완
재검 뒤 공익도 아니고 현역 판정. 그리고 전경으로 부산진경찰서에서 복무했다. 1975년생으로 사건 당시 나이가 만 29세였다. 여담이지만, 방위 제도의 소멸과 공익근무 제도의 신설 사이에서 가장 큰 피해를 본 것이 1975년생이다. 1974년생까지는 방위[10], 1976년생부터는 공익근무요원으로 소집되는 징병검사 4급이 1975년생의 경우는 현역 입영 대상이다. 다만, 임경완이 정말로 4급 판정을 받았는데도 현역으로 복무했는지, 아니면 3급 이상의 판정을 받았는지 확실하지 않다. 그리고 이 악조건을 극복하고 제대 뒤 복귀해 롯데의 핵심 불펜으로 활약했고, 2011시즌 이후 FA를 맞아 3년 11억이라는 조건에 SK 와이번스로 이적했다.
- 임재철
76년생으로 위에서 언급된 선수들 바로 다음 세대였다. 무난하게 공익 근무 뒤 무난하게 복귀, 무난한 활약을 보이고 있다. 나이와 공익근무라는 점을 감안하면 위 선수들과는 달리 선수생활에 아주 큰 타격은 입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 이호준
임재철과 동일한 76년생으로[11], 재검 뒤 공익근무 판정을 받았다. 이진영 부분에서 언급됐지만, 입영 연기소송이 받아들여져서 05년에도 정상적으로 출장했다. 그러나 WBC에 대표로 뽑힐 가능성이 없다고 본 건지 결국 늦기 전에 06년 공익행. 하지만 무릎과 장딴지의 신경마비 증세로 1년 만에 의병소집해제하며 07년 1월에 팀에 복귀하였고, 그 해 팀의 첫 우승에 기여한 공로로 34억짜리 FA 대박까지 터뜨렸다. 다만 이후 그 통증이 계속 발목을 잡으면서 제대로 먹튀로 전락. 하지만 2012시즌 부활했고, 신생팀 NC 다이노스로 두 번째 FA 대박을 터뜨리게 된다.
덧붙여서, 이호준은 본인의 병역비리 외에도 팀내 다른 선수들에게 브로커를 알선해준 혐의로 병역법위반방조죄로 처벌받았다.[12]
당시 법정에서는 전과가 없다는 이유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아 호적에 빨간 줄을 그었지만 감방살이는 면하게 되었는데, 사실은 방조죄만으로는 실형을 내리기 불가능했기 때문. 위에서 공소시효가 지나지 않고 + 방조죄 까지 겹친 선수들이 병역비리로 8월, 방조죄로 2월 분량을 합쳐 징역 1월을 살았는데, 이것은 법원이 방조죄는 실형 2월 정도의 죄값이라고 본 것이다. 그런데, 징역형은 6월부터 가능하기에 방조죄만 따로 쳐서 징역 2월형을 내리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다고 방조죄로 징역 6월형을 내리는 것도 불가능한데, 공소시효가 지난 선수들을 처벌할 때 법원이 방조죄를 징역 2월 정도로 판단한 것이므로 이들에 비해 불공평한 대가를 치르게 되는 모순이 발생하기 때문. 따라서 법원이 현실적으로 집행유예를 내리는 것만 가능한 상황에서 집행유예를 내린 것 뿐이다. 물론 어쨌거나 이호준이 본인이 병역비리를 저리르고 다른 선수들에게까지 소개시켜준 도덕적 잘못이 존재함에 불구, 공소시효가 지난 이유로 이렇게 운좋게 실형을 받지 않았다는 것은 분명하다.
- 박명환
이영우와 마찬가지로 부산 아시안 게임 때 병역특례를 받은 것으로 잘못 알려져 있었다. 일단 본인은 재검에서 갑상선 질환으로 병역이 완전히 면제된다. 사건 이전의 면제 사유가 비리를 통한 신장 이상이었는지, 원래부터 갑상선 질환이었는지에 대해서는 알려지지 않았다. 전자라면 죄를 저지르고도 운좋게 시간이 흐른 탓에 감방행도 면하고 군대도 안 간 셈이니... 그런데 박명환도 최기문, 이호준처럼 다른 선수(이재영)에게 브로커를 소개해 줘서 병역법 위반 방조죄 크리. 여기 참조 이후 법원에서 어떤 판결을 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으나, 이 사건으로 인한 선수생활 공백기가 없는 것으로 보아 처벌 정도는 크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 김사율
재검 뒤 강원도 화천 포병부대에서 현역으로 복무했다. 특기할 만한 사실은 1980년생으로 공소권 없음 처분을 받은 선수들 중에서 가장 어린 나이였다는 점. 당시 형사소송법상 이 사건의 공소시효는 3년이었으므로[13] 프로 초년이었던 99년에서 01년 사이에 비리를 저질렀다면 시효가 지난 것이 이상한 일은 아니다. 그와 비슷한 시기에 비리를 저질러 시효가 지난 선수들 대부분 그보다 4~5살 연상으로 군문제가 코앞에 닥친 상황인 반면, 김사율은 매우 이른 시점에 군문제를 해결하려고 시도했다는 것 뿐. 또하나 특기할 점은 현역 복무. 사건이 발각되고 본인이 속죄하겠다는 뜻으로 최전방 현역 입대를 선택했다고 한다.2018년 인터뷰 다만 김사율이 자신에게 유리하게 변명한 것일 가능성이 아예 없지는 않은데, 그저 어깨 수술로 선수 생활이 끊길까봐 겁이 나 어쩔수 없이 현역 입대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일 수도 있다. 다들 알다시피 어깨 수술은 투수에게있어 도박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 기타
- 김영수, 정성훈(투수)은 재검 후 현역으로 복무했다. 허일상은 현역 판정을 받았으나 운 좋게 상무에 입대해 보다 편하게 군 복무를 마쳤다. 송재익도 현역으로 입대했으나, 2006년에 제대하자마자 SK 와이번스에서 재계약 포기 통보를 받아 방출당하며 결국 쓸쓸히 은퇴했다.[14]
- 신철인도 현역 판정을 받았으나 다른 선수들보다 늦은 2006년 말에야 입대했다. 그러나 몸 상태가 안 좋아 훈련소에서 귀가조치를 받았고, 2007년 결국 병역이 면제되었다.
- 구자운, 박정진, 이상열은 재검 후 공익근무로 병역을 마치고 소속 팀에 복귀했다.
- 손지환, 최만호는 재검으로 면제 판정을 받아 그대로 소속 팀에 복귀했다.
[1] 검찰은 2년에서 2년 6개월 정도의 징역을 구형했다.[2] 그런데 이때 춘 춤이 하필이면 유승준의 춤...[3] 징역 2년 구형 / 징역 8월 선고[4] “7천만원에 면제 전화유혹 받아” - 병역비리 연루 타격1위 SK 이진영[5] 이런 방식은 야구선수 뿐만 아니라 연예인들도 흔히 써먹는 방식이다. 분명 편법이긴 하지만 이걸 문제삼으면 전국의 대학생들도 문제가 될 수밖에 없으므로 아직까지 병역 연기 수단으로 사용되고 있다.[6] 이게 인정되지 않는다면 대학생이나 신인 선수는 전부 군대부터 가야 된다는 논리가 성립하게 된다.[7] 당시 병역비리 사건으로 인해 전병두, 이범호도 학업으로 인한 입영 연기 거부 상태였는데, 비슷한 소송을 제기함으로써 똑같이 입영 연기를 적용받았다.[8] 2005년 겨울에 대법원에서도 '브로커에게 돈을 건네고 개인병원에서 진단서를 끊었으나, 이를 통해 병무청에 제출하지 않았다면 병역법제 86조 위반이 아니다.' 라는 판결을 내린 바 있다.(대법원 2005.10.13. 선고 2005도2200 판결)[9] 시드니 올림픽 당시 박진만의 선례가 있었고, 일본과의 예선 경기에서 엄청난 다이빙 캐치 등으로 '국민 우익수'라는 별명도 얻었다.[10] 방위 제도 소멸 후 장기 대기로 입대하지 못한 방위 소집 대상자는 추후 18개월 공익근무로 대체되었다. 재검을 받은 경우는 1976년생 이후와 복무기간이 동일.[11] 사실 빠른생일로 학번은 75년생과 같은 94학번이다.[12] 참고로 이건 유죄건 무죄건 군대 끌려가는 문제와는 관계가 없다.[13] 2007년에 법 개정으로 개정 이후 기준으로는 5년이다.[14] 그 전에는 제대를 앞두고 부친상을 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