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0-29 23:55:05

2012년 이명박 대통령 독도 방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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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를 방문한 이명박 전 대통령
1. 개요2. 일본의 반응3. 대한민국의 반응
3.1. 논란3.2. 긍정적으로 보는 반응3.3. 독도 방문의 비판
4. 국외 반응
4.1. 긍정적인 의견4.2. 부정적인 의견
5. 루머6. 러시아의 유사한 사례와의 비교7. 연관된 사건8. 관련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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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012년 8월 10일 이명박 전 대통령독도를 방문한 사건. 이는 전직/현직 대통령을 통틀어 최초의 독도 방문이다.[1]

울릉도를 떠난 이명박 전 대통령은 헬기를 타고 독도 헬기장에 도착하여 경계근무 중인 독도경비대원들과 독도 현지주민의 환영을 받았다. 이명박은 곧 이어 독도 이곳저곳의 경관을 살펴봤으며 방명록에 현직 대통령으로서 방문기록을 남겼고 독도경비대 부대를 방문해 독도경비대 대장으로부터 업무보고를 받은 후 경비대원들과 만찬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명박과 동행한 각료는 문화체육관광부장관 최광식, 환경부장관 유영숙 등이 있으며 민간인으로는 소설가 김주영, 이문열 등이 동행했다. 그러나 외교통상부장관 김성환, 행정안전부장관 맹형규, 국방부장관 김관진 등 외교안보 및 행정라인 각료와 독도지킴이로 잘 알려진 가수 김장훈 등은 동행하지 않았다. 청와대는 대통령의 독도 방문은 단순히 독도의 자연경관과 문화적 가치 등을 목적으로 방문한 것이기 때문에 외교, 행정, 국방장관 대신 문화체육과 환경장관을 동행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방문 이후에도 '천황 사과' 발언 및 위안부 문제를 언급한 광복절 축사 등 일본과의 외교 마찰을 감수해야 하는 외교 카드가 행사되면서 일본에 대한 외교적 공세였다는 평가가 나왔다.

결국 2012년 8월 17일 일본 정부가 각료회의에서 정식으로 국제사법재판소에의 제소 방침을 확정하고 이를 대한민국 정부에 통보하였다. 이는 1954년과 1962년 이후 50년 만의 제소 시도로서, 위에서 서술했듯이 그 동안에는 좀처럼 이슈화가 어려워 외교실패로 이어지기 때문에 ICJ 제소를 하지 못했으나 이 사건을 빌미로 일본이 다시 제안해 온 것이다. 그러나 한국 정부는 '대응할 가치가 없으며, 국제사법재판소 행에 응하지 않겠다'는 이전의 입장을 고수하기로 결정했다.

사족으로 이번 제소로 중국과 러시아가 센카쿠 열도와 쿠릴 열도를 제소할 것이라는 주장도 있었지만 기본적으로 일본은 ICJ의 강제관할권까지 수락한 국가이기 때문에 상대국의 국제사법재판소 제소를 의무적으로 이행하도록 되어 있다. 따라서 한국이나 중국이나 러시아에서 독도 쿠릴 열도 센카쿠 열도를 국제사법재판소에서 해결하자고 제의하면 일본은 해야 한다. 러시아는 쿠릴 열도가 이미 영유권 아래에 있기 때문에 제소하지 않고 있는 것이며 중국은 센카쿠 열도 분쟁을 국제사법재판소에 제소할 경우 남중국해 분쟁 등 일본을 제외한 주위 국가와의 수많은 영토 분쟁에 대해서 제소를 무시할 명분이 사라지기 때문에 제소하지 않는 것이다. 오히려 일본은 영토분쟁을 국제법에 의해서 해결하겠노라는 입장을 대내외적으로 견지하기 때문에 국제사법재판소에서 판결내자고 하면 반가워한다.

2. 일본의 반응

이 방문으로 도호쿠 지방 태평양 해역 지진으로 시작된 일본의 우경화가 증폭되었다는 시각이 있다. (천영우 전 외교안보수석 인터뷰)

일본노다 요시히코 전 총리가 직접 유감성명까지 발표하면서 격렬히 반발하고 나섰으며 이명박 전 대통령의 독도 방문은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며 이 문제로 양국간의 외교관계가 격랑에 몰아칠 것이라고 하였다.

아즈미 준 재무대신은 독도에 대해서 고유의 일본 영토라고 발언하면서 이명박 전 대통령의 독도 방문에 대해 강한 유감을 드러냈고 통화스와프를 중단하겠다는 등 강경한 대응으로 한국 네티즌들의 비판을 받았다.

결국 일본 정부는 주일 한국대사를 소환하여 항의하였고 주한 일본대사를 본국으로 일시소환령을 내려서 귀국조치시키기도 하였다. 사실 이전에도 일본의 어업협정 일방파기와 역사교과서 왜곡 문제로 주일 한국대사가 한국 정부의 소환령에 따라 귀국조치된 적이 있다.

일본 우익들은 더 나아가 복수해야 한다는 강경한 조치를 내걸었으며 일본 각료 일부는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강행하겠다는 입장도 밝혔다.

일부 언론에서는 인류화합의 장인 2012 런던 올림픽에서 축구와 배구 종목의 한일전을 앞두고 이러는 것은 도리가 아니라고 평하였다.

보수 언론에서는 한국반일혐일 세력의 반일 정서 등에 맞춰서 한국인들의 민족주의국수주의를 자극시켜서 반일 성향을 더욱 높이려는 의도가 있다고 주장하기도 하였다. 이들이 말한 대로 한국한국인의 정서는 이미 과거사와 독도 문제 그리고 우익 일본인들의 망발 등으로 반일혐일 감정이 뿌리 깊게 박혀있는 편이기도 하다. 히로시마 총영사관에 오토바이를 탄 신원 미상의 남자(추정)가 벽돌을 투척하고 도망가는 사건이 발생했는데 이를 두고 독도 방문에 대한 일본 정부의 보복이 아니냐는 추측이 돌았다. 이후 이 자가 경찰서에 자수하였는데 일본 우익 세력에 속한 44세 백수라고 한다.

이후에는 거의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였다. 이후에 있을 거의 모든 회담일정을 미루거나 취소했으며 사실상 모든 대화 채널을 닫아 버렸다. 전쟁 중에도 국가간의 외교 채널은 열어 둔다는 것을 고려해보면 상당히 격렬한 반응을 보였음을 알 수 있다.

계속 증가 추세였던 일본인 한국 관광객이 독도 논란 이후 감소하면서 8월 34만 6950명에서 10월 26만 9732명으로 크게 격감하였다. 11월에는 2011년보다 24.8% 감소하였고 12월엔 44% 감소하였다. 기사: #1, #2, #3, #4, #5

관광뿐만 아니라 한국 제품에 대한 불매운동도 대대적으로 확산되었다. "김치도 먹지말자" 일본 내 반한 기류 확산

NHK, TBS, 후지TV 등 대다수 일본 방송에서 한국 드라마 방송을 완전 중단하였다. #

경제적인 면으로 보자면 반한 감정을 일으켜 당시 일본에서 삼성 휴대폰, LG 가전제품의 판매증가세에 치명타를 입혀 한국의 제품이 일본에 진출하기 힘들게 만들었다.https://www.asiae.co.kr/article/2012091110595617505

3. 대한민국의 반응

3.1. 논란

이명박 전 대통령이 행한 독도 방문은 한일관계에 당연히 큰 파장이 올 수밖에 없었던 것이기 때문에 그 여파를 지속적으로 추이를 지켜볼 필요가 있었다.

3.2. 긍정적으로 보는 반응

보수든 진보든 간에 대통령의 최초의 독도 방문이므로 긍정적인 평가가 존재했다.

2010년에는 울릉도 상공에서 대한민국 국군의 F-16 편대가 공중급유 훈련을 하기도 했는데[2] 이는 한국 공군기가 항속거리 문제로 기존에 독도 상공에서 1시간 정도밖에 못 머물던 것을 극복하는 상징적인 제스쳐로 한국이 독도 방위에 여전히 관심이 있다는 제스쳐를 보여주면서 이 사건을 통해 정권에서도 이에 관심이 있다는 것을 강조하는 기회가 되었다고 보면 된다.

뉴데일리를 비롯한 일부 보수 언론에서는 야당의 부정적인 반응에 대해서 자국 대통령이 아무리 자기네 성향에 안 맞다고 해도 그렇지 독도를 방문한 것을 칭찬하기는커녕 오히려 자기네와 원수지간이라는 이유로 폄하하는 것 자체가 문제라고 주장하였다.

방문 시점이 임기 말이라 몇 개월 뒤 대선이 앞두고 있었기 때문에 새누리당의 지지율을 높이는 데 기여할 수 있었다는 점[3], 그동안 독도 문제에 대해서 소극적이었던 것으로 알려져 친일 정권이라며 욕을 먹던 이명박의 성향 때문에 더욱 증폭되기도 했지만 고려대학교 재학 당시 불합리한 한일기본조약에 반대하여 6.3 항쟁을 주도하다가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된 경력이 있기 때문에 일본에서 출생한 조선인이었던 그의 개인 성향을 친일로 규정할 수는 없다는 시각이 있다.

원래 여당이었던 새누리당과 이명박이 딱히 반일 정책을 펼치지 않았고 뉴라이트가 친일 성향이 다분한 면이 있기 때문에 진보 진영에서 실제 성향이 어떤지는 거의 안 따져보고 대통령도 친일이라고 가정하고 공격한 것이다.

일단 6월에는 일본과의 군사적 협력을 상정한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을 추진하다가 한 달 후 돌연 입장을 바꿔 갑자기 반일적인 스탠스를 갖는 것에 대해 곱게 보지 않는 시선도 있었다.

3.3. 독도 방문의 비판

민주통합당 등에서는 친형 이상득의 구속과 측근인 전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 최시중 등의 구속으로 사기가 떨어졌을 만한 이명박 전 대통령이 12월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지지세 회복에 나서려는 일시적인 행위가 아닌가 하는 우려도 표했다.[4] 어쨌든 해방 이후의 정치사에서 대일강경외교는 보수진보를 막론하고 대통령과 여당이 국내정치에서 수세에 몰렸을 때 그 돌파구로 이용하는 측면이 분명히 있었다.

또 이명박 전 대통령의 형인 이상득 전 의원이 전 주한 미 대사인 알렉산더 버시바우에게 "이명박 전 대통령은 뼛속까지 친미/친일주의자다"라는 언급을 하였다고 위키리크스에 의해 밝혀진 바 있다. 실질적으로도 이 논란 이전까지 이명박 대통령이 대일 외교에서 취한 행보 중에는 친일적으로 보이는 행동이 적지 않았기 때문에 '친일정권'이라는 비판이 거셌던 것도 사실이다. 그 때문에 일부 언론에서는 '포퓰리즘'이라고 비판하기도 하였다.

이명박 전 대통령 이름 석자가 박힌 표지석이 독도에 생긴다는 소식에 이 방문이 단순 과시용이 아닌가 하는 의심도 나왔다. 일단은 옛날부터 만들자고 건의했던 거고 대통령의 이번 방문과는 무관하다고 해명했지만 이 표지석과 관련되어 후속타가 터졌는데 조각가가 디자인한 국기게양대 작품을 임의로 부분 철거하고 표지석을 놨다고 한다. 당연히 해당 조각가는 분노해서 작품 자체를 철거해 달라는 아고라 서명을 받았지만 이 설치물은 애초에 문화재청으로부터 허가를 받지 않고 설치된 독도 조형물이라 해체해도 별 문제가 없었으며 철거한 일부 조각들도 독도박물관이나 준공 예정인 안용복기념관 등에 영구 보존하는 방안을 검토했다. 다만 여기서 문제되는 부분은 작품 설치의 합법성이 아니라 작가의 의사에 반한 작품의 변형이다. 작가도 아고라 서명 글에서 이를 분명히 했다.

당시 이명박 전 대통령의 독도 방문을 계기로 한일간 외교 갈등이 악화되었고 한국에 대한 일본인들의 부정적 반응을 야기했다. 그 결과 관광산업, 한류 열풍에도 부정적인 현상이 가시화되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독도 방문 이후 일본인 관광객은 2012년 8월 34만 6950명에서 10월 26만 9732명으로 크게 격감하였는데 무려 7만 7천여 명이 격감한 것이다. # 그리하여 개인적인 인기주의적 정치논리로 국익이 훼손되었다는 비판은 피할 수 없게 되었다. 이는 한류 열풍 등으로 호의적이었던 일본의 한국에 대한 여론이 격변하는 분기점이 되었다고 평가받는다. ##

다만 이는 8월이 관광 성수기고 10월은 비수기에 해당한다는 점을 간과한 것이다.

4. 국외 반응

한국일본을 동맹국으로 삼은 미국은 이 문제에 대해서 특별한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냥 한일 양국이 좋은 절차로만 해결해 주었으면 싶겠다는 첨언을 보내는 것 정도였을 뿐 적극적인 반응은 크게 없었다.
미국의 입장에서는 라이벌 중국을 견제하고 동아시아 패권을 잡기 위해서는 한국, 일본, 필리핀, 베트남중국과 갈등을 빚거나(혹은 빚을 여지가 있는) 적대관계에 있는 국가들과 동맹관계를 맺어야 할 입장이라 한일간 갈등을 그리 좋게 보는 편은 아니었으며 역대 독도 문제에 대해서도 중립적인 태도를 취했다.

중국은 정부 공식입장은 밝히지 않았고 중국 언론에서는 독도 문제가 국제 분쟁화될 우려가 높아졌으며 이를 두고 한국일본이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고 주장했는데 일본과 영유권 분쟁 중인 댜오위다오일본 자위대가 파병될 것이라는 우려 때문에 신경을 곤두세웠다.[5]

외신에서는 ‘이번 방문으로 독도는 한국의 영토임이 분명하게 확인되었다’는 식으로 보도한 사례가 전혀 없고 ‘전통적으로 한반도에 부속된 영토였으나 일제강점기 때…’라는 배경설명을 한 외신도 없으며 단지 영토분쟁지역을 다루는 중립적인 뉴스 틀에 맞추어 ‘이 섬을 한국은 독도라고 부르고 일본은 다케시마라고 부르며 서로 영유권을 주장한다. 현재는 한국이 실효적 지배를 하고 있으며 한국의 이명박 대통령이 섬에 방문하였다. 일본은 이에 대해 극렬 반발하였다.’고만 보도했다. 이것은 양국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는 기계적 중립에 입각한 태도로서, 쿠릴 열도나 센카쿠 열도같은 영토 분쟁 지역에 대한 보도 방식이다.

한편, 국외 반응에 대해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을 통해 분쟁 지역화를 가속화시키는 부작용이 컸다는 주장과 일본의 독도 역사 왜곡에 대한 적극적인 대응이라는 차원에서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는 의견이 갈라졌다.

4.1. 긍정적인 의견

독도에 대한 기존의 '조용한 외교'가 일본의 분쟁 지역화 시도를 막는데 큰 도움이 되지 못했으며 보다 적극적인 독도 문제에 대한 대응이 필요하다는 입장.

독도를 '분쟁 지역이 아닌 확고한 한국령'이라는 주장은 한국의 주장 외에는 국제 사회에서 오히려 찾아보기 힘들다. 영어 위키백과 문서에서도 'Dokdo'가 아닌 'Liancourt Rocks'라는 한일의 연고를 배제한 중립적인 표현을 사용하고 'Sovereignty over the islets is disputed between Japan and South Korea'라고 하여 독도가 분쟁 지역임을 이미 명시하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아예 'Liancourt Rocks dispute라는 별도의 항목이 작성되어 독도를 놓고 벌어지는 한일 간의 분쟁을 다루었다.

즉 한국에서는 한국령이라고 인식하고 있을지 몰라도 국외에서는 이미 분쟁 지역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즉 '독도는 한국 땅'이라는 인식이 국내에서 확고한 한국 입장에서는 억울하겠지만 '독도는 분쟁 지역'이라고 인식하고 있는 외국의 보도는 기존의 인식에 근거한 것일 뿐 이 문제로 특별히 두드러진 것은 아니다.

이는 1990년대부터 특히 강화되어 국내 교과서를 수정하고 국외에 로비를 벌이는 등 일본의 활동이 점차 활발해진 결과물이기도 하다. 문제는 진행되었던 분쟁 지역화가 한국이 움직여서 심각해진 것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방문 이전부터 일본 총리가 '독도는 일본령'이라는 주장을 공개적으로 펼치고 일본 국회의원이 울릉도와 독도의 방문을 시도하는 등 외교적인 충돌을 일본이 고의적으로 만든 바 있고 이는 국제 사회에 알려질 만한 수위의 사건이었다. 즉 '조용한 외교'의 결과가 시원찮았다는 것이다. 센카쿠 열도 또한 일본에서 분쟁 지역화를 원하지 않았음에도 중국이 영유권 주장을 계속하는 한 분쟁을 피할 수 없었다. 더 이상의 분쟁 확산을 막기 위해서는 내적으로 '독도는 우리 땅'이라는 인식을 강화하는 것만이 아니라 국제적으로 명확한 영유권의 획정과 역사적 해명을 통해 국제 사회 발언의 주도권을 가져올 필요가 있다.

게다가 쿠릴 열도 분쟁 못지않게 독도 분쟁도 국제 사회에서 오래된 분쟁이다. 아니, 안용복이 17세기 말의 사람임을 생각하면 쿠릴 열도 문제보다도 150년 이상 오래되었다. 근대 사료로 따지더라도 메이지 정부 태정관문서(1877), 이규원의 울릉도 답사(1882), 대한제국 칙령 제 40호 울릉군 편성(1900), 시마네현 고시 제40호(1905) 등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까지 그 문제가 걸쳐 있어 1855년부터 1945년에 문제가 걸쳐 있는 쿠릴 열도 문제와 비교해도 크게 늦지 않다. 중립적인 입장에서 바라본다면 양국이 제시하는 자료를 확인했을 때 외국에서 '한일 간의 장기적 외교 문제'로 오해할 소지가 다분하다. 이 부분에 대한 명확한 사실을 국제 사회에서 알리고 한국령임을 분명히 하지 않으면 한국의 주장과 일본의 주장이 따로 존재하는 국제 사회에서는 '분쟁 지역'으로 인식할 수밖에 없다.

국제 사회에서 분쟁 지역으로서 덜 알려진 것이 과연 일본의 주장이 덜 알려진 것인지, 아니면 독도의 인지도 자체가 낮은 것인지도 구분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센카쿠 열도나 쿠릴 열도의 경우, 중국과 러시아, 일본이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강대국이고 특히 중국과 러시아가 경제적, 외교적으로 높은 잠재력을 갖고 있다고 평가되는 만큼 그 사건에 대한 인식 수준이 높은 반면 독도는 다소 주목도가 떨어지는 한국과 일본 사이의 분쟁이어서 단순히 덜 알려진 것일 수 있다. 이 상황에서 일본이 해외 홍보의 주도권을 쥐고 있다면 깊은 내막을 알지 못하는 외국의 입장에서는 '일반적인 분쟁 지역'으로 보는 것이 당연하다.

국제 사회의 이 '분쟁 지역' 인식을 해소하기 전까지는 독도가 한국령임을 확고히 하기 위한 어떠한 상징적 행위도 이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지만 그렇다고 손을 놓고 있을 수는 없는 일이다. 시기의 적절성 문제를 배제한다면 이명박 대통령의 행위가 비판 받아야 한다면 단순히 '독도는 한국 땅'임을 외국에 홍보하는 어떠한 행위라도 비판받아야 할 것이다. 'Do you know Dokdo?'라는 문구로 작성된 수많은 홍보 카피들이 '분쟁 지역 독도를 알리는 행위'로 비판받아야 할까?

즉 외국에서는 이미 독도를 분쟁 지역이라고 인식하고 있었고 이명박 대통령의 방문이 '분쟁 지역'이라는 인식을 촉발시켰다고 보기는 어렵다. 독도에서 '분쟁 지역'이라는 딱지를 떼기 위해서는 단순히 한국에서 '독도는 한국 땅'이라는 인식을 강화하는 것만이 아니라 국제 사회에서 독도가 한국의 영유 지역임과 그 이유에 대한 명확한 규명과 홍보 노력이 있어야 할 것이다.

4.2. 부정적인 의견

독도에 대한 일본의 자극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것은 독도의 분쟁 지역화를 가속화시키므로 이전에 한국이 수행하던 '조용한 외교' 혹은 냉정하고 차분한 외교 방식이 일본의 의도대로 끌려가지 않는 방책이라는 주장.

독도는 전혀 분쟁지역이 아니기 때문에 오히려 정부 수반의 확인적 방문은 독도를 분쟁지역으로 인정하는 셈이 된다고 비판하는 주장이 가장 대표적이다. 쿠릴 열도 분쟁은 오랜 영토 분쟁이므로 정부 수반의 방문은 실효지배를 확인하는 것이 되지만 독도는 엄연한 한국령임에도 굳이 '확인 방문'을 행하는 것이 오히려 분쟁 지역화를 가속시킨다는 것이다. 물론 이전처럼 단순히 '일본을 무시하고 실효지배를 지속'하는 한국의 독도 관련 스탠스를 현재에도 그대로 유지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굳이 대통령이 임기 말에 방문할 필요가 있느냐 하는 지적이다. 결과적으로 일본과의 관계 악화 및 독도의 분쟁지역화는 가속될 것이고 이는 고스란히 차기 정권이 떠안아야 한다는 점 때문에 이번 방문이 좋은 사례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정부도 이 문제를 인식했기 때문인지 독도 방문의 '공식적인' 목적을 '독도지역의 생태를 시찰하고, 환경 보호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서'라고 밝혔다. 수행원을 국방부장관이나 행안부장관이 아닌 문체부장관환경부장관으로 구성한것도 이와 관련된 맥락으로 볼 수 있다.

독도가 어느 정도 분쟁 지역화되었다고 하더라도 현실적으로 볼 때 독도를 둘러싼 양국의 대립을 외국에서 쿠릴 열도와 같은 수준의 분쟁 지역으로 인식하고 있었다는 주장에는 무리가 있다. 일례로 일본은 1950년대와 1960년대에 각각 1회씩 ICJ에 제소했다가 한국측의 불응으로 재판이 무산되었는데 이후에는 오랫동안 시도 자체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분쟁 지역으로서의 독도 문제가 국제적으로 주목받지 못하는 상황에서는 이런 뜬금없는 시도를 하다가 이슈화 자체에 실패하는 것을 반복할수록 외교무대에서 ELO가 입지가 깎이고 오히려 이슈화가 되지 않는 것으로써 한국측의 실효적 지배가 확인되기 때문이다. 전투기가 날아다니거나 실제로 국지전이 벌어지는 것이 보도된 영토 분쟁들에 비하면 분쟁지역으로서의 독도의 상황은 국제적으로 인지도 자체가 매우 낮았다. 이러한 상황은 물론 실효적 지배를 하고 있는 쪽의 미래에 유리하며 그렇기 때문에 역대 정부가 독도와 관련해서는 조용한 외교를 해 온 것이기도 하다.[6]

이에 대해 독도 문제의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 지속된 일본 측의 홍보공작으로 인해 국제적으로 과거보다 주목받게 되었다고 해도 일단 한국 측에서 그것을 도와 독도가 분쟁지역으로 놓여 있다는 것을 더 널리 알리는 것은 그 여부와 방법에 있어서 매우 신중해야 할 문제이다. 예를 들어 누구도 외국 신문에 ‘대구는 한국 땅’이라며 광고를 내지 않는다. 당연하기 때문이다. 굳이 그런 식의 광고를 내는 것 자체가 분쟁지역 상태에 놓여 있음을 전제로 우리의 주장이 옳다고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런 광고를 내는 것이 뿌듯한 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과는 별개로 현실적으로 그런 광고는 분쟁지역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분쟁 지역인 상황에서 한국의 입장을 홍보한다고 하더라도 실효적 지배에서 훨씬 유리한 우리로서는 독도와 관련하여 어느 정도의 분쟁이 있는 것으로 보이도록 하는가도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그 한 측면으로 외교에 있어서 담당자의 ‘급’이 매우 중요한 것을 생각할 때 불과 십여 년 전만 하더라도 일본에서는 일개 현청 및 지방 국회의원이나 극우 정치인 몇몇이 이슈가 꺼지지 않도록 환기를 시도하는 수준에 불과했다. 즉, 일본에서도 시마네현 차원의 이슈에 불과했다. 여기에는 역사적으로 한국과 중국에 빚이 있는 일본으로서는 이러한 문제를 선제적으로 벌리기에는 정치적·외교적 부담이 너무 크다는 한계가 작용했다.

그러나 이제는 일국의 대통령이 나서서 현장을 직접 방문하는 정도의 일이 되었고 양국의 대통령 및 총리가 입장을 치고받으며 심지어 외교대사가 소환되는 중대한 상황으로 격상되었다. 실효적 지배를 뒷받침하는 현실 여건에는 전혀 아무런 변화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분쟁이 심각해지는’ 아이러니한 일이 일어난 것이다. 가령 장관급이나 그 아래급이 방문할 수도 있는 것을 굳이 국가 정상이 방문하여 외부에 비치는 분쟁의 급만 훌쩍 올려 놓았다.

설사 정치인이나 정부요인의 방문이 효과적인 압박 수단이라고 보는 입장에 있더라도 국가 최고 수반부터 방문해 버리는 것은 낮은 단계의 압박을 먼저 활용함으로써 높은 단계의 압박을 여분의 카드로 남겨두는 것을 날려버리는 일이라는 것에서 비판점이 나온다. 일본 속담 중에 ‘보검은 꺼내든 순간 보검이 아니다’라는 말이 있는데 역대 대통령들이 차례로 후임에게 물려줘온 카드를 이명박 대통령은 긴박하고 시급한 외교사정도 없는데 써먹어 버린 것이다. 대통령이 독도 땅을 밟으면 지지율이 올라가는 것을 몰라서 역대 대통령들이 안 갔겠는가?

사정이 이러한데도 분쟁이 특별히 두드러지지 않았다는 것은 외교의 형편을 도외시한 것이다.

한편 실효적 현실지배를 강화하는 방법으로서도 국방안보쪽 정부요인을 배제하고 가는 수준보다도 아예 확실히 민간 차원의 일이라고 할 수 있는 독도방파제와 해양과학시설의 건설을 중지시킨 것도 비판을 받았다. 2006년부터 계획이 수립되어 예산을 모아 2012년 말 건설에 들어갈 예정이었으나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 후 갑작스레 이를 없던 일로 해버 린 것이다. 이유로서는 자연보호를 들었으나 실효적 지배 강화 방법으로써 장기적인 민간 시설 운영의 효과가 더 높을 것이다.

이에 따라 해양과학시설과 방파제 건설을 계속 추진하겠다는 경상북도 지방정부와 청와대 사이에서 마찰이 벌어지는 상황이라고 전해졌다. 경상북도는 물론 울릉군도 자신들의 관할지역인 만큼 해양과학시설과 방파제 건설은 반드시 추진하겠다는 단호한 입장을 밝혔으며 경상북도민과 울릉군민 대부분도 이에 찬성 및 지지 의사를 표명했다.

일본과의 경제적인 면으로 보자면 반한 감정을 발생시켜 당시 일본에서 삼성 휴대폰, LG 가전제품의 판매증가세에 치명타를 입혀 한국의 제품이 일본에 진출하기 힘들게 만들었다.

5. 루머

일부 언론사 등에서 이명박일본에 사전 방문통보를 한 것이 아니냐는 논란을 제기하기도 했는데 공식적으로 양국 정부는 통보설을 부인했다.# 이에 대해서 청와대독도는 엄연한 대한민국 영토이니만큼 일본에다 독도 사전 방문을 통보한 적이 없다. 대통령의 방문은 국내방문일 뿐이라고 해명하고 일축했다. 후지무라 오사무 일본 관방장관도 한국 정부의 사전통보가 없었다고 밝혔다.#

한국 언론에서 보도되기 전인 0시 10분에 일본 언론들에서 일제히 기사가 쏟아져나왔는데 청와대에서 브리핑을 하면서 엠바고를 요청했다는 것으로 봐서# 일본 언론들이 엠바고를 깬 한국 언론을 통해 소식을 듣고 보도한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는 교도통신이 엠바고를 깼다는 사실을 밝혀내고 교도통신의 청와대 출입을 금지시키겠다고 밝혔다.[7] 이에 교도통신은 한국 언론에게 정보를 얻은 게 아니라 일본 국내에서 얻은 정보를 기사화한 것이라면서 자신들은 엠바고를 파기하지도 않았고 이명박 대통령이 일본 정부에 사전 통보한 것도 사실이라고 반박했다.#

6. 러시아의 유사한 사례와의 비교

현재는 러시아 총리인 드미트리 메드베데프가 대통령 재임 시절인 2010년 일본러시아 사이에 영유권 분쟁을 벌이는 쿠릴 열도러시아 현직 대통령 자격으로 방문한 적이 있었다. 이에 대해서 일본러시아에 강력히 항의하였고 모스크바에 있는 주러시아 일본대사에 대하여 본국으로 소환령을 내렸다. 그러나 이에 대해 당시 대통령 메드베데프와 러시아 정부는 쿠릴 열도는 법적으로 러시아 영토이며 러시아 대통령의 쿠릴 열도 방문은 국내 방문일 뿐이라고 일축하였다.

게다가 러시아는 일본에서 자극을 가하면 시도때도 없이 호위기도 없는 무방비의 폭격기를 일본 영토 근처로 비행시키면서 위력시위를 했는데 일본으로서는 이걸 가만 놔두자니 쉽게 차단 가능한 폭격기 단 한 대를 상대로 어쩌지를 못하고 끙끙대는 몰골을 보여주게 되고 그렇다고 격추시킬 기세를 보여주다가 진짜로 러시아 열받는 꼴을 볼까봐 어쩌지도 못하는 무력한 모습을 강요받게 되어 결과적으로 한마디 할 때마다 러시아의 힘만 강조했을 뿐이었다.

7. 연관된 사건

8. 관련 링크

손석희의 시선집중 인터뷰 전문 보기 : 8/20 (월) 일본의 독도 ICJ 제소 공세,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 최원목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1] 국무총리를 지냈던 한승수 등 각료와 이의근경북지사 등이 대신 방문한 사례가 있다. 대통령 후보로서의 최초 방문은 1997년 제15대 대통령 선거 당시에 이인제가 대통령 후보로서 방문한 것이다. 이인제 대선 후보 독도방문 1997.11.17. 경향신문.[2] 다만 예산 문제로 공중급유기는 커녕 공중급유 훈련도 못하다가 미군기의 지원을 받아서 했다.[3] 참고로 김영삼 전 대통령이 1995년 조선총독부 청사 철거와 일본놈 버르장머리를 고쳐놓겠다는 폭탄선언으로 인해 대국민 지지율이 상승했던 사례가 있었으며 문재인노무현 시기에도 한일관계 악화 당시 지지율이 오른 사례도 있다.[4] 민주당 강창일 독도특위위원장과 문학진 독도특위위원이 약 1년 전에 대통령이 독도를 방문해야 한다고 발언하기도 했다.[5] 환구시보에는 한국, 러시아와 연계해서 일본을 압박해 조어도 문제의 주도권을 쥐자는 내용의 기사가 실렸다.[6] 엄밀한 차원에서 ‘독도가 확고한 한국령이라는 객관적 사실’과 ‘독도가 확고한 한국령이라는 한국 정부의 입장’은 구별해야 할 것인데 정부 요인이 독도에 가지 않는다거나 군인을 배치하지 않는 등의 부작위적 모습은 정확히 말해 후자를 재확인하는 수단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독도에 가지 않는다고 해서 한국령이 되는 것은 아니다’라는 주장은 초점이 빗나간 것이다.[7] 대통령의 일정에 대해서는 엠바고를 지켜달라는것이 청와대의 오랜 규정이라고 한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경호상의 문제가 걸린 탓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