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6-01-23 10:48:55

문화적 마르크스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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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설명
2.1. 학술적 의미2.2. 우익 평론가들이 사용하는 용법
3. 같이 보기4. 참고 문헌

1. 개요

문화적 마르크스주의(Cultural Marxism)라는 개념은 학술적으로 쓰일 때, 우익 내부의 레토릭으로 쓰일 때로 나누어 설명할 수 있다.

1. 논문 등에서 학술적으로는 프랑크푸르트 학파가 초기 문화 연구(Cultural Studies)[1]에 미친 영향을 의미하는 개념으로 쓰여 왔다.

2. 우익 내부의 레토릭으로 쓰일 때는 프랑크푸르트 학파에서 시작하여[2] 후기구조주의 이론들과 그들 이론을 활용한 좌파의 문화 비평/정치적 운동들을 마르크스주의에 빗대어서 비판하는 멸칭으로 사용된다. 엄밀히 말해서 마르크스주의라기 보다는, 포스트모더니즘해체주의에 해당하는 개념이다.

2-2. 서방 대안 우파나 극우들이 문화적 마르크스주의로 지칭하는 대상 자체가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고는 보기 어렵지만 흔히 우익 평론가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문화적 마르크스주의로 지칭되는 좌파가 서구 문명의 도덕적 근간을 파괴한다거나 문화 비판을 전체주의 정권으로 가는 발판으로 사용할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은 사실이라고 볼 수 없다. 1930년대로 거슬러 올라가는 서구의 '문화적 마르크스주의자'로 불리는 대상들은 일반적으로 국가 권력, 개인에 대한 사회적 억압, 스탈린주의 자체에 적대적이었다.

영어 위키백과에서는 문화마르크스주의를 극우 반유대주의 음모론으로 규정하고 있다.#

2. 설명

2.1. 학술적 의미

아래 문단은 대부분 호주의 저술가인 Russell Blackford의 의견을 번역한 것이다.

참고1, 참고2

"문화적 마르크스주의"라는 용어는 1973년 트렌드 슈로이어(Trent Schroyer)의 책 『지배의 비평(The Critique of Domination)』에서 처음 쓰이는데 그는 프랑크푸르트학파(비평이론)를 설명하기 위해 이 용어를 만든 것으로 보인다.[3] 이후 이 용어는 마르크스주의적 문화 비평으로서 자본주의가 이윤추구와 대량생산 체제를 유지함으로써 발생하는 그 내적 모순에도 불구하고 자본 친화적인 대중문화가 그 모순을 효과적으로 숨기고 있다고 분석하는 대중문화 비판적 비평을 의미했다.[4]

그러나 1990년대 이후 이 용어는 윌리엄 린드(William S. Lind)와 팻 뷰캐넌(Pat Buchanan)과 같은 우익 정치 평론가들이 무기화하여 사용함으로써 더 큰 명성을 얻었다.[5][6] 이들은 문화적 마르크스주의가 전통적인 서구 가치, 특히 기독교의 "가족 가치"와 도덕적 가르침의 타락 및 전복을 위한 작업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이해에 따르면 문화적 마르크스주의는 그들이 도덕적으로 전복적이고 타락한 것으로 간주하는 "정치적 올바름(PC)"과 연결되거나 동일시된다. 노르웨이 연쇄 테러의 범인 브레이비크의 선언문은 이러한 종류의 생각에 대한 극단적인 예를 제공한다.[7]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주장을 하는 우익 정치 평론가들의 이론과 "문화적 마르크스주의"라는 단어를 초기에 사용했던 트렌드 슈로이어(Trent Schroyer)와 같은 마르크스주의 학자들의 작업 사이에는 적어도 최소한의 공통점은 있다. 어느 정도 그들은 서구 마르크스주의 내 동일한 특정 경향에 대해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따라서 연쇄 테러범 브레이비크의 음모 이론에도 어느 정도 진실은 있다. 슈로이어의 분석을 뒷받침하는 똑같은 학문적 지식은 예를 들어 린드, 뷰캐넌 또는 브레이비크와 같은 사람들에게 어느 정도 피상적인 신뢰성을 제공한다.[8][9]

그러나 슈로이어(Schroyer) 및 데니스 드워킨(Dennis Dworkin)과 같은 학자들은 프랑크푸르트 학파 또는 기타 "문화적 마르크스주의자"[10][11]가 서구 문명의 도덕적 근간을 파괴하거나 전체주의 정권의 발판으로서 문화 비판을 사용할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고는 결코 말하지 않는다. 1920년대로 거슬러 올라가는 서구의 "문화적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일반적으로 국가 권력, 개인에 대한 사회적 억압, 소비에트 마르크스주의 자체에 적대적이었으며 더욱이 특정한 사회적, 도덕적, 문화적 문제에 대한 태도에서 그들 사이에 상당한 차이를 보여왔다. 문화적 마르크스주의자들에게 (동일한 목표의) 마스터 플랜은 없다.[12]

진지한 지적 역사에 있어서 서구 자유민주주의에 속하는 좌파의 생각들은 그 사고 흐름들이 복잡하게 교차하고 있다는 것을 무시할 수 없다. 좌파는 특히 최근 수십 년 동안 항상 파벌로 분열되어 왔으며 이제 상상할 수 있는 거의 모든 문화 측면(전통적인 경제 문제뿐만 아니라)에 대해 다양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서구 문화 좌파의 많은 구성 요소들은 소련 공산주의에 대한 서구 마르크스주의의 광범위한 비판과 거부에 깊은 영향을 받는 동안 그런 다른 요소들에 대한 부분적인 반응으로서 볼 때만 이해될 수 있다.[13]

결론적으로 정치의 (극)우파 인물들이 말하는 문화적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모든 이야기는 현재 우리의 문화적, 정치적 상황을 이해하는 데 거의 도움이 되지 않으며기껏해야 문화적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이러한 개념은 현재의 추세를 분석하는 데 도움이 되기에는 너무 무딘 지적 도구일 뿐이다. 최악의 경우 그것은 독선적 도덕주의와 거친 음모 이론에 혼합된다.[14]

슬라보예 지젝과 같은 진짜 마르크스주의 학자조차도 포스트모더니즘의 PC주의를 비판하였다.
이 글은 오늘날 한국의 대안적 사회문화 담론에서 쟁점으로 부상하는 ‘정치적 올바름’의 담화와 실천에 대해 비판적으로 평가한 것이다. 이 글은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좌파 이론가인 슬라보예 지젝의 비판을 경유해 정치적 올바름이 보편적인 해방정치를 위한 투쟁에 효과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지를 측정하고자 했다. 정치적 올바름은 정치적 소수자에 경멸적이거나 그들을 배제하는 것으로 여겨질 수 있는 언어 사용과 행동을 규제하려는 화용론으로 정의된다. 그것은 이데올로기보다 정체성이 정치의 무대에 부상하게 된 후기근대 정치의 문화적인 산물이다. 본문에서는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지젝의 비판을 본격적으로 다뤘다. 정치적 올바름은 후기근대의 정치적 주체의 기본적인 모체로 출현한다. 그것은 초자아적인 자기검열을 수행하는 강박증과 자신을 환경의 희생자로 간주하는 히스테리로 이중화된다. 그러나 그러한 주체는 궁극적으로 참여와 해방을 수행하지 못할뿐더러 소수자나 배제된 자들을 위한 평등주의적 실천에 해방적으로 기여하지 못한다. 이것은 불평등을 무시하고 다양성을 선호하는 문화 비평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자본의 요구에 갈수록 부합한다. 또한 정치적 올바름은 후기근대의 자유민주주의 이데올로기를 유지하는 대리보충의 이데올로기이다. 그런데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지젝의 비판은 계급 적대를 제기할 때는 효과적이지만, 성적 적대를 다룰 때에는 한계를 노출한다. 그럼에도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지젝의 비판과 그의 정치학은 민주주의에 대한 재정의가 요구되는 한국사회에서 벌어지는 대안적인 사회적 실천과 담론을 일정하게 조명하는데 조금이나마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정치적 올바름입니까, 혐오입니까?-아뇨, 괜찮아요! -슬라보예 지젝의 ‘정치적 올바름’ 비판을 중심으로-

2.2. 우익 평론가들이 사용하는 용법

우익 평론가들이 문화적 마르크스주의라고 비난하는 대상은 엄밀히 말해서는 마르크스주의라기보다는 포스트모더니즘해체주의에 해당한다. 마르크스주의 분파 중에서도 가족 해체를 주장하는 경우도 있기는 하지만, 슬라보예 지젝처럼 PC 문화에 대하여 비판적인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우익 평론가들이 해체주의라고 부르지 않고, 문화적 마르크스주의라고 부르는 것은, 한국에서 좌파라고 하면 공산주의자라고 생각하듯이, 그냥 좌파를 마르크스주의에 빗대어서 비난하는 멸칭으로 사용하는 것이다.


시스트들은 가족과 교회를 파괴하고 도덕을 타락시키는 등 서구 문화를 파괴함으로써 혁명이 가능하다고 보았다. 이 문화 파괴와 문화 대체 작업은 시간이 걸리지만 긴 시간의 노력 끝에 정치 혁명이 가능한 토양이 형성된다고 보았다.

그러면 어떻게 서구 문화를 파괴할 것인가?

프리섹스, 동성애, 젠더주의 같은 타락한 성 문화를 주입하여 가족과 교회를 파괴하고 도덕을 파괴하는 것이 그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루카치는 헝가리가 잠시 볼셰비키 벨라 쿤(Bela Kun) 정부가 되었을 때 문화 위원회 부위원장을 지내면서 공립학교 학생들에게 성 체위를 가르치는 책을 만들어 학생들에게 가르치기도 했었다.

여기서 문화시즘의 역사를 길게 적을 수는 없으나 1923년 프랑크푸르트에 세운 사회연구소에서 연구소에 소속된 호르크하이머, 오도어 아도르노, 에리히 프롬, 위르겐 하버마스, 빌헬름 라이히, 허버트 마르쿠제 같은 시스트들이 미국과 유럽에서 문화시즘을 열심히 가르쳤다. 프랑크푸르트 학파 학자들이 히틀러를 피해 1934년 미국 뉴욕으로 건너가 콜롬비아대학교에 둥지를 틀고 미국을 타락시키는 더러운 문화를 퍼뜨리기 시작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대부분의 프랑크푸르트 학파 학자들은 독일로 돌아갔으나 마르쿠제만 미국에 남아 전후 세대들을 타락시키는 데 큰 역할을 하였다. 한편 유럽으로 돌아간 문화시스트들의 영향으로 프랑스에서 68문화혁명이 일어난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김승규 전 국정원장, 정일권 박사의 '문화막시즘의 황혼' 추천사에서
개인적 자율성에 대한 이해가 무차별적으로 확산되면서, 자율성은 전통적인 종교와 문화에 의해 제시된 삶에 대한 모든 여타 전망들을 넘어서는 하나의 압도적 가치로 여겨지게 되었다. 보수주의자들은 이러한 현상을 그들이 지닌 신념에 대한 위협으로 보고, 주류사회로부터 자신들이 의도적으로 차별받고 있다고 간주했다. 보수주의자들은 진보적 엘리트들이 수많은 비민주적인 수단들을 동원하면서, 주요 미디어, 대학, 법원 그리고 집행권의 통제를 통해 그들의 어젠다를 밀어붙이려 한다고 느꼈다.
프랜시스 후쿠야마, 자유주의와 그 불만, 10p

헤리티지 재단: How Cultural Marxism Threatens the United States—and How Americans Can Fight It

우익 평론가들이 "문화적 마르크스주의"라는 단어를 사용할 때는 프랑크푸르트 학파를 포함한 좌파의 이론들이 전통적인 서구 가치, 특히 기독교의 "가족 가치"와 도덕적 가르침의 타락 및 전복을 위한 기획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이해에 따르면 문화적 마르크스주의는 다문화주의, 정치적 올바름(PC), 동성애 등을 조장함으로써 좌파들이 전통적 가치를 전복하려고 하며 이를 통해 기독교 가치관을 파괴하고 새로운 사고를 주입하여 좌파 혁명에 성공하려고 한다는 음모론으로 이어지는데 그 새로운 전략이 ‘문화적 마르크스주의’라는 것이다.

이들은 프랑크푸르트 학파신좌파 등등에 영향을 받은 좌파 이론가들이 현대에 이르러 이러한 전략을 수행하고 있다고 믿으며 더 나아가 인종 문제 등의 사회 운동도 기독교 우파를 전복하려는 좌파의 계획이라고 주장한다. 심지어 우익의 맘에 들지 않는 대상이나 소련, 공산주의, 중국공산당 등을 이들과 엮기도 한다.[15]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대부분이 유대인이기 때문에 이들은 문화적 마르크스주의가 서구 문명을 파괴하기 위한 유대인들의 정치적 공작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음모론은 최근에 형성된 것은 아니며 유대-볼셰비즘(Jewish Bolshevism)이라는 이름으로 1920년대에 이미 존재했다. 대표적으로 유대 볼셰비즘 운운하는 것은 유대 시온주의 자본가 음모론과 함께 나치가 하던 소리였는데 형태를 변형해 가면서 이어져 왔다.[16]

이러한 음모론은 1990년대 등장하였고 2010년대 들어 북미를 중심으로 서양에서 극우파들에게 인기를 얻고 있다. 2010년대 이전까지 문화적 마르크스주의가 좌파의 은밀한 혁명 계획이라는 우익 평론가의 주장은 소수 극우파들만 신봉해서 인터넷에서조차 유행은 아니었지만 경제위기 이후 대중들의 정치적 양극화가 심각해짐에 따라 좌우파가 서로에 대해 극단적으로 공격적인 태도를 보이면서 이런 음모론이 서서히 대중화되고 있다.

미국에서는 인종 문제가 교육과 복지 등의 정치적 문제와 연관되면서 좌우파 사이에 심각할 정도로 격렬한 논쟁이 벌어지고 있고 이런 와중에 문화적 마르크스주의라는 단어가 심심찮게 언급되고 있다. 특히 소수 인종 우대 정책으로 역차별을 받고 있다고 생각하는 백인 중산층과 서민층을 중심으로 해당 주장이 지지를 받고 있으며 비교적 온건한 우파나 중도우파까지도 이들의 주장이 광범위하게 퍼지고 있다. 이에 큰 공헌을 한 사람으로는 조던 피터슨, 찰리 커크, 벤 샤피로[17] 등이 있으며 이들의 지지를 등에 엎은 우익 평론가들은 앞선 주장들을 가지고 서양의 사회자유주의자들이나 SJW들을 비난한다. 유럽에도 미국만큼은 아니지만 대규모 이민 문제와 다문화 정책에 대한 피로감으로 인해 이들의 주장이 점차 확산되고 있으며 2020년대 전후로는 한국에도 들어와 나름 현지화되면서 그 공격 타겟이 신좌파와 유대인에서 북한[18]중국공산당으로 바뀌었다.[19]

우익 세력에서 소개하는 유리 베즈메노프라는 인물의 주장이라고 한다. 이에 대해서 유리 베즈메노프는 신뢰할 수 없는 인물이라고 반박이 제기되기도 한다. 진실여부를 떠나서 우익 세력이 문화적 마르크스주의를 주장하는 논리는 이렇게 이루어져 있다.
1970년 서방세계로 망명한 소련의 전직 KGB 요원 유리 베즈메노프(Yuri Bezmenov)다. 그는 G. 에드워드 그리핀(G. Edward Griffin)과의 인터뷰에서 소련의 이념적 체제 전복(Ideological subversion)전략에 대해 털어놓았는데 공교롭게도 바로 이 해가 1984년이었다.

인도주재 소련 대사관에서 근무한 베즈메노프의 공식적인 업무는 '연구조사와 문화 선전(research and cultural propaganda)'이었지만 이 조직에서 실제로 한 일은 인도의 출판계, 언론계, 연예계, 학계, 재계, 정계 등에서 여론에 영향력이 있는 인물들에 대한 방대한 자료를 수집해 소련에 협조적인 친소련 인사와 적대적인 인사로 분류한 다음 적대적인 인사들은 무자비하게 인격살인을 해서 사회적으로 매장하는 일이었다. 베즈메노프는 자신과 친한 언론인을 포함해 친 소련 인사들이 대거 소련 공산당의 숙청대상에 오른 사실을 알고 환멸을 느꼈고 이 사실을 다양한 경로를 통해 인도 당국에 알리려고 했지만 아무도 믿으려 하지 않았다. KGB 요원으로 상당히 풍요로운 생활을 하고 있었던 그는 서방으로 망명해서 소련에 대한 진실을 애기해봤자 서방세계의 좌익들에게 외면당하고 인격살인을 당할 게 뻔하다는 생각에 한동안 갈등하다가 결국 1970년에 서방으로 망명하게 된다. 그는 인터뷰에서 서방세계에서 좌익이 학계, 문화계, 연예계, 언론계를 장악한 현실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소련의 공산주의를 찬양하는 이상주의적인 쓸모 있는 바보들이 몽상에서 깨어나면 이들은 소련의 가장 위험한 적이 된다. 소련 KGB는 요원들에게 이들은 '정치적 매춘부(political prostitute)이므로 신경 쓰지 말고 목표를 높게 잡아라, 주로 영향력이 있는 주류 보수 언론계, 더럽게 부유한 영화계, 이른바 지식인들이 있는 학계 등에 침투해 냉소적이고 자기중심적이며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입에 침도 바르지 않고 거짓말을 할 능력이 있는 인물들을 포섭하라'고 했다. 도덕적 원칙도 없고 탐욕스럽거나 자기가 중요한 인물이라는 과대망상에 시달리는 인물들이 바로 KGB의 포섭대상이었다.

서구진영에서 마르크스-레닌주의로 사상이 오염된 좌익은 서구사회에서 동요를 일으키는 단계까지만 쓸모가 있을 뿐 목적이 달성되고 나면 전부 벽 보고 서서 총살당할 인간들이다. 미국의 학계 교수들, 인권운동가들, 페미니스트들은 체제전복 과정에서 사회에 동요를 일으키는 데만 쓸모가 있고 그 이후에는 필요 없다. 그 이유는 이들이 공산주의의 실상에 대해 너무 많이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공산주의 혁명이 일어나면 자기들이 권력을 잡으리라고 생각하지만 절대 그런 일은 없다. 권력은 그들보다 더 철저한 공산주의자들의 몫이며 서방세계에서 공산주의에 동조하는 자들은 혁명 후에는 모두 총살감이다. 미래에 이들이 평등과 사회 정의를 내세운 이상적인 사회가 현실에서 어떤 모습인지를 목격했을 때 엄청난 심리적 충격을 받고 절망하게 되면 소련의 적으로 돌아서기 때문이다. (펜타곤 극비문서를 공개한) 대니얼 엘스버그(Daniel Ellsberg)나 더럽게 부유한 제인 폰다(Jane Fonda)같이 미국의 국방정책을 비판하는 반정부 인사들은 마르크스주의 혁명이 일어나면 바퀴벌레처럼 짓이겨질 인간들이다.

KGB의 주업무는 첩보(espionage)활동이 아니다. KGB가 첩보활동에 투자하는 시간, 자금, 인력은 전체의 15퍼센트 정도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이념적 전복(ideological subversion), 적극적인 조치(active measure), 또는 심리전(psychological warfare)이라는 점진적인 과정을 실행하는 데 쏟아 붓는다. 적국의 국민이 지닌 현실에 대한 인식을 바꾸어서 아무리 합당한 정보를 제공해도 자기 자신, 가족, 공동체, 국가의 이익 수호에 부합하는 분별 있는 판단을 못하도록 만드는 게 목적이다. 이러한 대대적인 세뇌공작 과정은 매우 시간이 오래 걸리는데 크게 네 단계로 나뉜다.

첫 번째 단계는 인식혼란(demoralization)으로 15~20년이 걸린다. 한 세대를 교육을 통해 세뇌하는 데 걸리는 기간이다. 3세대에 걸쳐 미국 애국주의의 기본적 가치에 노출시키지 않고 말랑한 학생들 뇌에 마르크스-레닌주의를 집중적으로 주입해 세뇌시켜야 한다. 60년대에 대학을 다닌 어설픈 지식인들이 현재 미국의 정부, 기업, 언론매체, 교육계를 완전히 장악했는데, 이들은 없앨 방법은 없다. 이들의 사상은 이미 오염되어 있고 특정한 자극에 특정한 유형으로 반응하도록 프로그램화되어 있다. 인식혼란 단계를 거친 이들에게는 아무리 명명백백한 진실인 진짜 정보를 들이대도 인식과 생각이 바뀌지 않는다. 사회에서 이들을 제거하려면 자국의 이익을 수호하는 애국적인 이념과 상식을 바탕으로 새로운 세대를 교육시키는 방법뿐이다.

인식혼란 단계는 미국에서 지난 25년 동안 대체로 완성되었다고 본다. 소련이 세운 목표치를 훌쩍 능가하는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다. 소련인이 아니라 미국인이 자국인을 세뇌시키는 데 성공했다. 세뇌된 이들은 진짜 정보에 노출되어도 소용없다. 진짜 정보를 소화할 능력이 없고 사실은 무의미하다. 원본 문서와 사진을 들이대도 소용없다. 억지로 소련 집단수용소에 끌고 가서 실상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보게 해줘도 믿지 않는다. 따라서 미국은 이미 정신적으로 오염된 세대의 볼모로 잡혀있다. 지금 당장 신세대를 새로 교육시키기 시작한다고 해도 현실에 대한 인식을 제대로 하게 만들려면 앞으로 15~20년이 걸린다."
트럼프를 당선시킨 PC의 정체, 19~22p
사실 이렇게 자국에 우호적인 세력을 지원하는 심리전이나 선전전은 딱히 마르크스주의 공산당만의 거창한 음모가 아니라, 어지간한 국가들은 다 자국의 이미지를 개선하기 위해 하는 행위라서 특별한 일은 아니다. 소프트파워 공공외교라고 말한다.

물론 (이런 음모론이 대개 그렇듯이) 배경에 일말의 진실은 섞여있는데, 기독교를 전복시키고자 주장한 좌파 진영의 사람들이 몇몇 있었다는 것은 사실이다.[20] 페터 슬로터다이크, 르네 지라르, 지젝 등 유명 철학자들도 좌파의 사회운동 및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지지가 점차 권위주의적 면모를 보이고 있다는 점을 날카롭게 지적하기도 했다.

안드레이 란코프 교수에 따르면, 실제로 초기 공산주의자들은 가족 제도를 반동적이라고 공격했으며, 기존 사회를 붕괴시키기 위해서 가족제도를 파괴하려 했고, 소련 공산당은 집권 이후에 가족 등록 제도를 폐지하였으며 낙태를 합법화했다고 한다. 소련은 1940년대에야 다시 혼인등록을 의무화했다.공산권 국가의 남녀평등에 관한 태도변화
1차 대전 종전 무렵 마르크스주의자들은 마르크스주의의 오류를 분석하기 시작했고, 이탈리아의 안토니오 그람시와 헝가리의 기외르기 루카치는 서구문명이 노동자계급의 눈을 가려 마르크스주의에서 말하는 진정한 계급 이익을 깨닫지 못하게 하므로 마르크스주의 혁명이 일어나려면 서구문명을 파괴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람시는 사람들에게 영향력이 있는 기관과 제도들을 장악해서 사람들이 자기 자신과 자신이 속한 문화에 등을 돌리게 만들어야 한다며, 언론매체, 할리우드, 교육기관, 공직 등을 장악해야 한다고 했다. 또 문화 헤게모니는 계급 지배를 달성하는 수단이고 문화의 변화를 통해 공산주의자를 탄생시켜야 정치혁명이 가능하다고 주장했고 따라서 교육계와 언론계에 종사하는 지식인들을 이용하는 데 초점을 맞추었다.

루카치는 1919년에 이미 서구문명을 파괴하는 전략을 실행하는데 착수했다. 루카치는 당대의 문화적 모순을 해결하는 유일한 방법은 혁명으로 사회를 파괴하는 길뿐이며 전 세계적으로 가치체계를 전복시키려면 기존의 가치를 붕괴시키고 혁명가들이 새로운 가치를 창조해내는 방법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루카치는 '누가 우리를 서구문명으로부터 구원해줄 것인가'라는 질문을 가슴에 품은 채 헝가리 볼셰비키 정부인 벨라 쿤 정권 하에서 문화담당관이 되어 문화테러리즘 정책의 일환으로 급진적 성교육 프로그램을 실행해 헝가리 사회의 도덕적 가치관을 파괴하는 데 착수했다. 루카치는 아동들의 성적 윤리관을 훼손시키면 가부장적 가족제도와 교회에 큰 타격을 입힐 수 있다고 생각하고 급진적인 성교육 프로그램을 학교에서 실시했다. 루카치는 학교에 자유연애(성적 문란)와 성관계에 대한 강의를 만들었고 성행위를 생생하게 묘사한 안내책자를 배포했으며 학생들에게 그리스도교의 도덕윤리관과 일처일부제와 부모와 교회의 권위를 거부하고 조롱하라고 부추겼다. 그러나 헝가리 노동자계층은 루카치가 서구전통문화를 공격하는 데 분노했고, 정권은 오래가지 못했다.
트럼프를 당선시킨 PC의 정체, 23~25p

그러나 현대 사회가 동성애 등등을 옹호하는 흐름으로 가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 옹호가 좌파에만 한정된다고 볼 수 없으며[21] 해당 이론들이 전통적인 서구 기독교의 가족 가치를 전복시켜서 기독교를 없애 버리려는 혁명의 목적을 가지고 있다고 보기에는 힘들다. 포스트모더니즘의 잔재를 붙들고 있는 지식인들 내지 트랜스젠더, 성소수자 운동 등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핵심 브레인들이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비판이론을 비롯한 20세기의 좌파적 사상에 많은 영향을 받아 "혁명적이고 급진적" 이론으로 현대 사회운동 및 인권운동(특히 퀴어이론, 페미니즘 등)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것은 사실이지만[22] 이러한 사상가들이 서구문명의 몰락과 기독교를 없애기 위해 어떤 목적을 가지고 전체주의적 혁명을 일으키고자 하는 거대한 음모를 꾀했다는 것에는 어떠한 경험적 근거도 찾을 수 없다.[23]

3. 같이 보기

4. 참고 문헌


[1] 보통명사가 아니라 고유명사로 쓰일 때의 문화 연구다. 나무위키에는 해당 항목이 없는 관계로 링크 1, 2 참고[2] 때로는 더 소급해서 안토니오 그람시빌헬름 라이히를 언급하기도 한다. 극단적으로는 샤를 푸리에프리드리히 엥겔스까지 올라간다.[3] As far as I have been able to trace the term “cultural Marxism”, it appears to have been coined by Trent Schroyer, who employed it in his 1973 book The Critique of Domination: The Origins and Development of Critical Theory. 참고2[4] Barker, Chris; Jane, Emma (16 May 2016). Cultural Studies: Theory and Practice. SAGE.[5] Although the term “cultural Marxism” is used by mainstream academic figures, it has obtained greater prominence since the 1990s from its weaponized use by right-wing political commentators such as William S. Lind and Pat Buchanan. 참고2[6] 단, 린드와 같은 보수적인 우파들이 "문화적 마르크스주의"라는 용어를 따로 독립적으로 만들어냈는지, 아니면 트렌드 슈로이어(Trent Schroyer)와 같은 학자들이 사용하는 것을 그들이 채택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It is not clear to me whether Lind and others on the culturally conservative Right invented the term “cultural Marxism” independently, or whether they co-opted the earlier usage of scholars such as Schroyer. 참고2)[7] For these culture warriors, cultural Marxism (or, often, “Cultural Marxism”) is associated with a program of moral degeneracy and subversion of traditional Western values - particularly Christian “family values” and moral teachings. On this understanding, cultural Marxism is linked, or equated, to political correctness, itself viewed as morally subversive and degenerate. Anders Breivik’s disjointed manifesto offers an extreme example of this kind of thinking. 참고2[8] Nonetheless, there is at least a minimal commonality between the work of Marxist scholars such as Schroyer and the theories of right-wing culture warriors. To some extent they were focusing on the same tendencies in Western Marxism. Thus, there is a grain of truth even in Breivik’s conspiracy theorizing, and I wonder whether this might explain the hostility to including an article on “cultural Marxism” in Wikipedia. The same scholarship that supports Schroyer’s analysis, for example, gives a degree of superficial credibility to the likes of Lind, Buchanan, or Breivik. 참고2[9] None of this is to deny the moderate thesis that much contemporary cultural criticism has roots that trace back to the 1960s New Left, the Frankfurt and Birmingham Schools, and various Marxist theories of culture.(참고2 에서 인용)[10] 프랑크푸르트 학파에 영향을 받은 영국의 버밍엄 학파(Birmingham School)를 말한다.[11] 그 외에도 레비 브라이언트(Levi Bryant) 같은 좌측에 가까운 학자도 자신의 책 존재의 지도(Onto-Cartography)에서 그레이엄 하먼(Graham Harman)과의 인터뷰에서 이 표현을 사실상 지금의 그 개념으로 쓰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12] Scholars such as Schroyer and Dennis Dworkin do not, however, suggest that the Frankfurt School or other “cultural Marxists” ever had a plan to destroy the moral fibre of Western civilization, or to use their critique of culture as a springboard to a totalitarian regime. That would be difficult to argue in all seriousness because Western “cultural Marxists” going back to the 1920s have typically been hostile to state power, social oppression of the individual, and Soviet Marxism itself. Moreover, they have shown considerable variation among themselves in their attitudes to specific social, moral, and cultural issues. There is no cultural Marxist master plan. 참고2[13] More generally, serious intellectual history cannot ignore the complex cross-currents of thought within the Left in Western liberal democracies. The Left has always been riven with factionalism, not least in recent decades, and it now houses diverse attitudes to almost any imaginable aspect of culture (as well as to traditional economic issues). Many components of the Western cultural Left can only be understood when seen as (in part) reactions to other such components, while being deeply influenced by Western Marxism’s widespread criticism and rejection of Soviet communism. 참고2[14] In the upshot, all the talk of cultural Marxism from figures on the (far) Right of politics is of little aid to understanding our current cultural and political situation. At best, this conception of cultural Marxism is too blunt an intellectual instrument to be useful for analysing current trends. At its worst, it mixes wild conspiracy theorizing with self-righteous moralism. 참고2[15] 하지만 실제로는 제대로 알아보지도 않고 억지로 붙이는 말인 것이 소련, 중국에서 추구한 문화정책은 신좌파가 주장하는 문화적 자유주의와는 거리가 멀었다. 실제로 소련 보수파는 리처드 닉슨을 비롯한 당대 미국 보수파와 마찬가지로 장발, 록 음악 같은 히피 문화를 싫어했기 때문에 히피 문화가 막 들어왔을 때는 청년들이 장발을 하면 경찰관이 머리를 자르기도 했고, 이후로는 록 음악과 장발의 유행이 대세를 거스를 수 없게되자 현실과 타협해서 청년들과 인디가수가 장발하는 것 정도는 봐주기는 했지만, 그럼에도 학교에서 학생들은 장발을 못 하도록 단속하거나 남자 가수들이 TV 프로그램에 출연했을 때 장발 차림으로 출연하지 못하도록 했고, 성정책 또한 레닌 때나 급진적이었지 스탈린 때는 보수화되어서 낙태를 제한시켰을 정도였고, 1950년대 후반을 지나고나서는 낙태가 재합법화되었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서구식의 성혁명이 크게 일어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신좌파가 주창하는 문화정책이라는 것은 고르바초프나 옐친 때의 그것에 가까웠다. 그러니 실제로는 페미니즘은 그나마 끼어들 여지가 있었다고 해도 동성애, 히피 문화에 관해서 소련이 끼어들 여지가 없었다.[16] 프랑크푸르트 학파 대부분이 유대인이었던 까닭은 반유대주의적 시대 상황 속에서 유대 지식인들이 힘을 합칠 수밖에 없었던 면이 제일 크고 그나마도 소규모였으며 2차 대전 이후에는 프랑크푸르트 학파도 하버마스 등 독일인을 대거 받아들였다.[17] 정작 벤 샤피로 본인도 유대인이다.[18] 사회자유주의, 정치적 올바름 등은 한국 사회를 파괴하기 위한 북한 간첩의 공작이라는 내용.[19] 그런데 사실 서구권 우익 중에서도 극우파들은 좌익보다 자유주의를 더 증오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런 경우 전통적 우익과 달리 북중러에 적대적이지 않으며 "타락한 서구사회"의 대안적 모델로서 오히려 찬양하는 경우도 있다.[20] 예를 들어 빌헬름 라이히의 경우, 동성애를 옹호하는 "성 해방"을 통해 기독교의 전복을 주장했다. 하지만 그는 외계인의 지구 침공을 걱정하면서 UFO를 찾아다녔던 기인이었다. 라이히의 이론은 마르쿠제에게 영향을 끼쳤으나 마르쿠제는 68혁명이 일어났을 당시에는 자신의 이론을 수정하여 "성 해방"을 이미 포기한 상태였다. "『일차원적 인간』에서 마르쿠제는 자유로운 방종의 60년대를 칭송하기보다는 땅에 묻어버렸다. 1960년대 사회가 허용해준 것은 겉보기와 달리 엄격한 사회로부터의 해방이 아니라 지배의 도구였다. '이 사회는 손대는 족족 모든 것을 체제 발전을 위한 잠재적 원천이자 착취와 고역과 만족, 자유와 억압의 원천으로 바꾸었다. 섹슈얼리티도 예외가 아니다'라고 마르쿠제는 썼다. 과거에는 섹슈얼리티의 좌절이 불만족의 저장고를 만들어내고 사회적 질서를 위협했다면 마르쿠제가 묘사한 사회에서는 사회질서를 위협하는 것이 성 해방을 통해 극복되었다.(불만없는 사회가 만들어졌다는 뜻) 이제 성 해방은 전복적이지 않고 그보다는 현존 억압 질서를 유지하는데 도움이 되었다고 마르쿠제는 생각했다. 헤겔의 '불행한 의식'은 가능한 것과 존재하는 것 사이에서 갈등한다. 성적 좌절은 불행한 의식의 한 형태이지만 억압적으로 탈승화된 사회에서 불행한 의식은 극복되었다. 일차원적 사회의 구성원들은 행복한 의식이 되어서 성적이거나 다른 방식으로 그들이 원하는 것을 얻는다. 마르쿠제는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이미 그들이 그것을 받아들이도록 결정되어 있었다고 한다. 다만 그들은 그 사실을 알지 못할 뿐이었다. (중략) 마르쿠제가 찾아낸 일차원적 사회의 악마적 천재성은 쾌락을 억압의 도구로 만든 것이다. 이 사회에서 섹스와 성적 노출은 도처에서 일어났다. 그 결과 일차원적 인간은 자신을 성혁명가로 생각하게 된다." (스튜어트 제프리스 『프랑크푸르트학파의 삶과 죽음』 강수영 옮김, 도서출판 인간사랑, 2019, p.438~439)[21] 로버트 노직이나 밀턴 프리드먼 등 다수의 우파 자유지상주의자들도 동성애를 개인의 자유라는 측면에서 옹호한다.[22] 대표적으로 주디스 버틀러, 낸시 프레이저, 샹탈 무페 같은 사람들이 있다.[23] 프랑크푸르트학파에 관한 이 프로그램화된 무능력의 서사에 맞먹는 또 다른 서사가 존재한다. 이 라이벌 서사는 음모론을 제시한다. 프랑크푸르트학파라고 불린 소규모의 독일 마르크스주의 철학가집단이 문화적 마르크스주의를 창시했다는 주장이다. 문화적 마르크스주의는 다문화주의, 정치적 올바름, 동성애와 집산주의 경제사상 등을 조장함으로써 전통적 가치를 전복했다고 알려져 있다. 사회연구소의 대표 사상가들이 만약 자신들이 서구문명의 몰락을 꾀했을 뿐 아니라 그 일에 성공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면 아마도 황당해 했으리라. 하지만 대부분 홀로코스트 생존자였던 이 사상가들은 심리적 필요를 만족시키기 위한 음모론이 현실의 삶에 초래하게 되는 치명적인 결과를 이미 잘 알고 있었다. 이 음모론을 수용했던 사람들 중에는 우익테러리스트 안데르스 브레이비크가 있다. (중략) 하지만 프랑크푸르트학파에 관한 진실은 음모론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요란하지 않다. 이 학파는 실패, 특히 1919년 독일혁명의 실패를 이해하려는 노력에서 시작되었다. 1930년대에 연구소는 변화를 거치면서 마르크스주의 사회분석을 프로이트주의 정신분석이론과 결합시켜서 독일노동자들이 사회주의 혁명을 통해 자본주의로부터 해방되는 것보다는 현대소비자본주의사회 그리고 결정적으로 나치즘에 현혹된 이유를 분석하려고 했다. 프랑크푸르트학파에 대한 오해는 브레이비크의 예에 국한되지 않았다. "문화적 마르크스주의는 막대한 해를 끼친다. 분석에 광적으로 집착하면서도 인간본성에는 취약하기 때문에 그에 따르는 결과를 예상하지 못한다." 이 말은 에드 웨스트가 영국의 우파 신문 《데일리 텔레그라프》에 쓴 것이다. 사실은 문화적 마르크스주의로 인해 손상되었다고 웨스트가 비판했던 그 모든 제도들을 프랑크푸르트학파는 보호하려고 애를 썼다.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는 가족이라는 제도를 권위주의적 세력에 대항하는 저항지점으로 옹호한다. 하버마스는 가톨릭교회를 현대 다문화사회를 작동시키기 위한 기획의 동맹자로 지칭한다. 프랑크푸르트학파의 현재 수장인 악셀 호네트는 법 앞의 평등을 인간의 번영과 개인적 자율성의 선제조건으로 강조한다. 요약하면, 프랑크푸르트학파에게 쏟아졌던 비난은 면제해주어야 마땅하다. 대채로 비난을 퍼붓는 사람들은 자신의 목적에 맞게 이 학파의 연구자들이 쓴 저서를 고의로 혹은 실수로 오독해왔다. 무엇보다 프랑크푸르트학파가 21세기에 우리에게 아무것도 제시해주지 못한다는 편견으로부터 이들을 놓아주어야 한다. (스튜어트 제프리스 『프랑크푸르트학파의 삶과 죽음』 강수영 옮김, 도서출판 인간사랑, 2019, p.28~33)[24] 하지만 정작 본인도 유대인이다.[25] "많은 문화막시스트들이 ‘우리의 주적은 기독교’라며 동성애가 사회주의 혁명의 수단이라고 주장했다. 이런 관점에서 차별금지법이 공산주의 혁명에 이용될 수 있다는 우려를 표현한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