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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O 준플레이오프/199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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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당시 규정상 4위인 해태 타이거즈는 3위와 3.5게임차 이상 차이가 나서 포스트시즌에 참여할 수 없었다. 이에 따라 준플레이오프를 생략하고 롯데 자이언츠가 부전승으로 플레이오프에 진출하게 되었다.
[2] 양대리그를 시행하였기 때문에 이전까지의 포스트시즌과 다르게 1999년 포스트 시즌은 드림 1위-매직 2위, 매직 1위-드림 2위가 각각 플레이오프를 갖고, 플레이오프의 승자끼리 한국시리즈를 치러 우승팀을 가리게끔 하였다.
[3] 해당 시즌부터 3전 2선승제에서 5전 3선승제로 변경되었다.
[WCU] 와일드카드 승리팀이 업셋한 경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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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한국프로야구 포스트시즌
1994 KBO 준플레이오프 1994 KBO 플레이오프 1994 KBO 한국시리즈

1. 개요2. 일정3. 결과
3.1. 1차전3.2. 2차전
4. 총평5. 여담

[clearfix]

1. 개요

1994 프로야구 준플레이오프
파일:한화 이글스 화이트 심볼(1994~2005).svg 파일:해태 타이거즈 심볼(1982~1995).svg
한화 이글스 해태 타이거즈
3위 해태와 4위 한화가 준플레이오프에서 맞붙었다.

2. 일정

1994 프로야구 준플레이오프
한화 이글스 VS 해태 타이거즈
<rowcolor=#ffffff> 경기 경기 시간 경기장 AWAY 결과 HOME 방송사
1차전 10월 3일 14:00 무등 야구장 한화 이글스 4 3 해태 타이거즈 파일:MBC 로고(1986-2005).svg
파일:SBS 로고(1994-2000).svg
2차전 10월 4일 18:00 한밭종합운동장 야구장 해태 타이거즈 3 5 한화 이글스 파일:KBS 1TV 로고(1984-2018).svg

3. 결과

3.1. 1차전

준플레이오프 1차전, 10월 3일 월요일, 14:00, 무등 야구장
선발 1 2 3 4 5 6 7 8 9 10 R H E B
한화 정민철 1 0 0 0 1 0 0 0 1 1 4 - - -
해태 조계현 0 0 2 0 1 0 0 0 0 0 3 - - -
중계방송사: 파일:MBC 로고(1986-2005).svg, 파일:SBS 로고(1994-2000).svg | 캐스터: - | 해설: -
승리: 구대성, 패배: 선동열

한화는 해태에 극적인 역전승을 거두며 플레이오프에 한발짝 다가섰다. 한화는 정민철-장정순-송진우-구대성 등 주전 투수 4명을 총동원하며 4시간 동안의 접전끝에 3:3으로 팽팽히 맞서던 연장 10회 상대 실책으로 결승점을 뽑아 4:3으로 역전승했다.

1회초 한화는 해태 조계현의 실책을 틈타 안타 없이 1점을 만들었다. 그러나 해태는 3회말 전성철과 이건열의 안타로 만든 1사 1루, 2루 상황에서 이호성의 우중간 2타점 적시타로 1:2 역전을 이루었다. 한화가 5회초 이정훈의 2루타와 이강돈의 희생플라이로 동점을 이루자 해태는 이종범의 2루타, 한화 2루수 김용선의 실책으로 얻은 무사 3루에서 이건열의 적시타로 2:3으로 앞서나갔다. 해태는 8회 선동열을 투입하며 굳히기에 나섰다.

2:3으로 뒤져 패색이 짙던 9회초 한화는 이민호의 안타(이종호 대주자)로 얻은 2사 주자 2루에서 진상봉이 해태 3번째 투수 선동열로부터 좌전 적시타를 뽑아 극적인 동점을 이뤄 역전의 발판을 마련했다. 9회말 2사 만루 끝내기 위기를 잘넘긴 한화는 연장 10회초 양회열의 실책에 이은 강정길의 우월 2루타로 만든 1사 주자 2루, 3루에서 황대연 타석 때 선동열의 투구를 해태 포수 박병호가 뒤로 빠뜨리는 사이 3루에 있던 고기성이 홈으로 파고들어 결승점을 뽑았다. 9회말 2사 1루, 3루의 위기에서 송진우를 구원한 구대성은 몸에 맞는 볼 두 개만 허용하며 안타를 내주지않아 팀에 귀중한 승리를 안겼다.

해태는 3:3 동점을 허용한 9회말 2사 만루의 기회를 잡았으나 김병조가 삼진으로 물러나 기회를 무산시킨데다 결정적인 순간마다 뼈아픈 실책을 범해 자멸했다. 특히 3-2로 앞서던 8회 승리를 지키기 위해 구원에 나선 선동열이 리드를 지키지 못하고 무너짐으로써 남은 경기에서도 투수 로테이션에 큰 부담을 갖게 됐다.

3.2. 2차전

준플레이오프 2차전, 10월 4일 화요일, 18:00, 한밭종합운동장 야구장
선발 1 2 3 4 5 6 7 8 9 R H E B
해태 김정수 0 0 0 2 0 0 0 1 0 3 - - -
한화 이상목 0 0 1 0 1 1 2 0 - 5 - - -
중계방송사: 파일:KBS 1TV 로고(1984-2018).svg | 캐스터: 정도영 | 해설: 하일성
승리: 이상목, 패배: 송유석, 세이브: 구대성
홈런: 김성한 (4회 2점)

한화는 선발 이상목이 역투하고 해태의 잇따른 실책을 점수로 묶어 5-3로 승리하며 2전 전승으로 빙그레 시절 한국시리즈에서만 3번 물을 먹였던 해태에 조그마한 설욕을 하며 플레이오프에 진출했다. 포스트시즌에서 이글스가 타이거즈를 꺾은것은 이것이 처음이었다.

4회초 해태 김성한에게 2점 홈런을 얻어맞고 1:2로 역전당한 한화는 5회말 1사 1루, 2루에서 이정훈의 좌익수 키를 넘기는 1타점 2루타로 경기를 2:2 원점으로 돌려 역전의 발판을 마련했다. 한화는 승부의 분수령이 된 6회말 2사에 주자를 3루에 두고 김상국이 친 평범한 내야 땅볼을 상대 3루수 홍현우가 빠뜨리는 사이 싱겁게 결승점을 뽑았다.

공격의 고삐를 당긴 한화는 7회에서도 이종호와 이정훈의 연속안타로 만든 무사 1루, 3루에서 해태 3번째 투수 송유석의 폭투로 간단히 1점을 보탠 뒤 이강돈의 번트 안타로 다시 1점을 추가,점수차를 5:2로 벌리며 사실상 승부를 갈랐다.

1993년 삼성에서 한화로 트레이드된 이상목은 선발 투수진이 바닥난 상태에서 선발로 등장, 5안타 2실점으로 삼진 8개를 곁들이는 위력적인 투구로 귀중한 승리를 올렸다. 이정훈은 4타수 3안타 1타점으로 팀타선을 주도했으며 8회 등판한 전날 승리투수 구대성은 1실점하는 등 다소 부진했으나 9회 연속 3타자를 삼진으로 처리, 플레이오프 진출의 1등 공신이 됐다.

해태는 0:1로 끌려가던 4회초 김성한의 2점 홈런으로 승기를 잡는 듯 했으나 1차전에 이어 잇따른 실책으로 허무하게 무너졌다. 김성한은 3타수 2안타로 혼자서 3타점을 올리며 분전했으나 팀 패배로 빛이 바랬다.

4. 총평

4.1. 승리: 한화 이글스

4.2. 패배: 해태 타이거즈

5. 여담

  • 준플레이오프 2차전 경기는 KBO 포스트시즌 역사상 첫 무광고 중계였다.[1]
  • 선동열이 대한민국 시절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경험한 준플레이오프이다.[2] 또한 선동열의 한국시절 마지막 포스트시즌 등판경기가 1994년 준플레이오프 1차전이기도 하다.[3]
  • 강태원전설의 타이거즈에서 풀어낸 일화에 따르면 2차전 전날 밤 최해식, 이경복, 강태원, 정성룡 넷이서 맥주를 마시다가 김응룡 감독이 방에 들어와 걸렸고 하필 그 때 화장실 변기가 부서지며 화장실에 물난리가 났다. 물난리통에 하필 정성룡은 안경을 잃어버려 "내 안경 어딨노~"하면서 헤매던 모습을 보고 코감독이 빵터진 건 덤. 2차전에서 패한 뒤 당시 맥주를 마셨던 선수들에게는 벌금이 부과됐다고 한다.
  • 빙그레 이글스 시절 한국시리즈에서 해태에게 세 번이나 덜미를 잡힌 이글스는 한화로 간판을 바꾼 첫해인 이 해 준플레이오프에서 그 동안의 한을 풀었다.
  • 원래 이 준플레이오프는 해태와 한화의 승률이 똑같아 야구회관에서 1차전 개최지를 추첨해서 결정했다고 한다. 상대 전적은 해태의 11승 7패 우세.

[1] 그해 10월 1일자로 KBS 1TV의 상업광고는 폐지되고 공익광고만 틀게 되었다.[2] 선동열이 KBO 플레이오프는 1987년, 1989년, 1990년 총 3번 경험했다. 1992년에는 해태가 플레이오프에 직행하기는 했지만, 선동열은 어깨부상으로 시리즈 내내 등판하지 못했다.[3] 이듬해인 1995년에는 해태의 포스트시즌 진출 자체가 무산되었고, 이후 선동열은 1996년 일본프로야구에 진출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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