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0-29 23:40:15

YTL30호 침몰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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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 사고 관련 서술 규정을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파일:통영YTL2.jpg 파일:통영YTL.png
사고선의 모습 침몰 당시 기사
YTL30호 침몰 사건
발생일 1974년 2월 22일 오전 11시 경
발생 위치 경상남도 충무시[1] 해상
유형 선체 전복
탑승인원 316명[2]
사망 159명
생존 157명

1. 개요2. 원인3. 사고 이후4. 관련 문서5. 둘러보기

1. 개요

1974년 2월 22일 금요일 오전 11시 경상남도 통영(당시 충무) 앞바다에서 대한민국 해군의 항내 예인정(YTL)이 침몰해 해군해양경찰 전경[3] 훈련병 159명[4]이 숨졌던 대참사이다. 대한민국 해군 역사상 최악의 수치로, 이 사건은 현재까지도 전시가 아닌 평시 해난사고 중 세계 해군 사상 가장 큰 인명손실사건으로 기록되었다.

이날 해군 신병 159기 및 이들과 함께 신병훈련을 받던 해경 11기 훈련병 316명이 해군 신병 훈련의 8주차 훈련일정으로 충무공 전적지 견학과 충렬사 참배를 하고 복귀하고자 예인정을 타고 모함인 전차상륙함 LST-815 '북한함'으로 이동하던 중 갑자기 몰아닥친 파도를 피하려고 YTL이 급선회를 시도하다 균형을 잃고 전복, 침몰하면서 사고가 일어났다.

2. 원인

사건은 명백한 인재(人災)였다.
  • 당시 통영에는 폭풍주의보가 내려졌는데 그럼에도 밤톨만한 YTL을 타고 충렬사 참배를 강행했다. 결국 사고 후 수병 양성교육과정에서 충렬사 참배를 폐지했고 현재는 부사관장교 양성교육과정에만 있다.
  • 거기에 사고로 순직한 정장의 조함 미숙도 사고를 불렀다.
  • 훈련병들이 민무늬 전투복전투화 차림이었던 것도 사상자를 늘리는 데 한몫했다. 물에 빠지면 헤엄에 방해가 되는 신발을 신속히 벗어야 하는데 목이 길고 무거운데다 끈으로 단단히 동여맨 전투화는 이것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이 사고는 1993년 10월 10일 전북 부안군에서 일어난 서해훼리호 침몰 사고와 원인이 매우 유사하다는 것을 관찰할 수 있다. 어떻게 보면 40년 후에 벌어진 세월호 참사의 원인과도 비슷하다.

3. 사고 이후

인양된 YTL정 모습[5]
2월 27일, LST함장을 직위 해제하는 한편 교육단 신병훈련159대대장 이삼태 소령과 YTL소속장인 통제부 항무과장 우병관 소령, 신병훈련소 훈련대장 박순동 대위를 구속 후 군법회의에 회부했다. 2월 28일 대한민국 해군참모총장 김규섭 대장과 참모차장 오윤경 중장을 경질했다. 여기까지는 정말 좋았으나...

사고의 특성[6] 때문에 당시 국방부 검열단 및 해군은 과다인원승선·태풍주의보 발령시 훈련강행·조타사의 급회전 등 과실 부분은 숨기고 서둘러 유족들을 회유[7]국립묘지 안장과 약간의 군사원호를 지급하는 조건에서 봉합했다.

사고가 2월 22일에 발생했는데 3월 3일에 국립묘지 안장을 끝냈으니 실로 빠르게 마무리했던 것으로 보인다. 다만 연안이라서 1명만 빼고 전부 시신을 찾아내는 데 성공하기도 했던 점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같은 해 11월에 대법원에서 상고기각원심확정으로 이삼택 소령(39) 및 박순동 대위(30)에 대해 금고 1년,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하였다. 훈련대장(중령)이하 중대장, 소대장, 교관, 조교 등 인솔책임자 역시 복직해 만기전역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8] 그러니까 결과적으로 책임져야 할 사람들 중 실제로 책임을 진 사람은 배와 운명을 함께하여 책임을 지고 싶어도 질 수 없었던 정장 외에는 아무도 없었으며 젊은 수병 159명만 바다에서 죽어간 것이다. 정장(박성도 상사, 39세)은 발견됐을 당시 키를 잡은 채로 사망했다는 사실이 알려져 더욱 큰 충격을 주었다.

훗날 박근혜 정부 시기에 일어난 비슷한 인재 침몰 사고인 청해진해운 세월호 침몰 사고와는 달리 근 30년간 유족들과 생존자들은 침묵 속에 자체적인 모임을 통한 위령제를 지내야 했다. 전자처럼 억울하게 죽어간 원혼들이 국가와 대한민국 해군의 인정을 받게 된 것은 군사정권이 작살나고도 무려 11년이나 더 흐른 국민의 정부 시기인 1998년이었다.[9] 그 때부터 통영 해군 전우회와 함께 합동위령제를 주관하고 있다. 또 2004년에는 사고에서 살아남은 동기생들이 주축이 되어 '해군 해경 159위 위령탑 건립위원회'가 발족하면서 통영시, 해군, 해경과 함께 사고 현장에서 1㎞ 떨어진 정량동 망일봉에 건립을 추진하였고 2006년 확정되어 2007년 완공되었다.

이 사건 이후 특히 한국 해군은 함정에서의 전투화 착용을 특별한 경우가 아닌 한 금지하고 있으며[10] 신병 및 부사관 교육 과정의 마지막에 행하는 함정 견학시 직접 승함할 경우 훈련복이 아닌 근무복 및 해상병전투복 차림으로 행했다. 최근엔 일정 단축으로 직접 타 보는 게 없어진 데다 수료 직전까지 전투복에 전투화 차림으로 훈련받는 것으로 바뀌었다. 해당 과정이 아직까지 남아있는 장교와 부사관 과정에서는 아예 정복이나 근무복 입고 간다.

해군신병 159기에서 159명이 죽었다는 소름끼치는 우연의 일치[11]로 더욱 잘 알려졌으며 미신에 민감한 해군 특성상 더욱 무시하기 힘들었다. 당시 사고를 간발의 차로 피한 남은 159기 훈련병 전원은 당시 모든 훈련에서 제외되었으며 실무에서 또한 선임들의 배려 아닌 배려로 1970년대 군대답지 않게 매우 편한 생활을 했다고 한다. 하지만 동기생 100여명이 희생됐는데 마냥 편했을 리가...

순직자 명단이 공개되어 있는데 기간사병 3명(강성호 상사, 이태근 중사, 한태열 병장), YTL정 승조원(이희섭 준위, 박성도 상사, 장익철 중사, 최병문 중사), 이외 해군 159기 훈련병 104명, 해경전투경찰대 일병 48명이 순직하여 서울 동작동 국립묘지 해군묘역에 안장되어 있다. 당시 정장은 박성도 상사(39)이다.

그해 6월에 있던 12회 보도사진전에서 금상(50t 아래 사투 2시간 40분, 조선일보 최영호)과 은상(침몰직전, 서울신문 황치고)을 수상한 사진이 본 사건의 사진이었으며[12] 연말의 정리 보도에도 꾸준히 나오는 등 주요 사건으로서 사람들의 기억에 오르내렸다.

봉은사 주지인 명진 스님의 동생이 이 사건으로 희생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사건 이후 통영해양경찰서는 매년 이 추모식을 거행하고 있으며 이 곳에 부임하는 해경 직원 또는 해군 장병은 반드시 해경-해군 합동위령탑을 방문하여 헌화하고 참배하고 있다.

과적급선회가 원인이라는 점에서 남영호 침몰사고, 동년 3월 20일 발생한 금룡호 침몰사건#을 같이 떠올리는 언론인도 있었다.[13]

4.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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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0년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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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10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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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6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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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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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6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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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4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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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10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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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10월 21일
32 성수대교 붕괴 사고
1993년 10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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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7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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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4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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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3월 28일
78
1993년 1월 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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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11월 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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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9월 1일
25 영동고속도로 섬강교 버스추락사고
[ 1980년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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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9월 17일
24 전북 모래재 버스 추락 사고
1989년 7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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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3월 25일
22 안양 봉제공장 화재
1987년 11월 29일
115 대한항공 858편 폭파 사건
1987년 8월 29일
32 오대양 집단자살 사건
1987년 6월 16일
29 극동호 유람선 화재 사건
1986년 7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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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년 1월 11일
38 양강교 버스 추락사고
1984년 3월 24일
29 영덕 시루봉 CH-53 추락 사고
1984년 1월 14일
38 부산 대아호텔 화재 사건
1983년 10월 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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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 9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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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 4월 18일
25 대구 초원의집 화재
1982년 6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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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년 2월 5일
53 제주 C-123 추락사고
1981년 11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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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1년 5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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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1년 2월 28일
24 대림호 침몰 사고
1980년 6월 5일
23 광주 지하살롱 화재 사고
[ 1970년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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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 10월 27일
26 은성탄광 화재
1979년 4월 14일
44 함백 탄광 폭발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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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한강대교 버스 추락 사고
1977년 11월 11일
59 이리역 폭발사고
1976년 10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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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6년 5월 18일
23 답곡리 버스 추락사고
1976년 2월 28일
32 화천 버스 추락사고
1974년 11월 3일
88 대왕코너 화재사고
1974년 6월 28일
28 대한민국 해경 경비정 제863호 침몰 사건
1974년 2월 22일
159 YTL30호 침몰 사건
1973년 8월 12일
32 영동역 유조열차 폭발 사고
1973년 5월 16일
22 영일 건널목 열차 추돌사고
1972년 12월 24일
30 파크로버호 침몰 사고
1972년 12월 2일
53 서울시민회관 화재 사고
1972년 8월 1일
26 의암호 버스 추락 사고
1971년 12월 25일
166~191 대연각호텔 화재
1971년 10월 13일
20 남원역 열차 추돌사고
1971년 5월 10일
80 청평호 버스 추락 사고
1971년 5월 10일
31 질자호 침몰 사고
1970년 12월 15일
326 남영호 침몰사고
1970년 11월 5일
31 의암호 선박 전복 사고
1970년 10월 14일
46 모산 수학여행 참사
1970년 8월 21일
25 추풍령 고속버스 추락 참사
1970년 4월 8일
33 와우 시민아파트 붕괴사고

[ 1960년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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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9년 9월 17일
37 창녕 기관선 - 남지교 충돌 사고
1969년 1월 31일
41 천안 열차 추돌사고
1968년 10월 30일
48 산청 버스 추락 사고
1968년 1월 8일
41 함양 버스 추락 사고
1967년 10월 16일
42 금릉 버스 추락 사고
1967년 9월 15일
29 삼양수산 원양어선 침몰 사고
1967년 4월 8일
80 서울 청구동 C-46 추락사고
1967년 1월 19일
39 해군 당포함 격침 사건
1967년 1월 14일
93 한일호-충남함 충돌 사고
1967년 1월 1일
41 서문시장 화재
1966년 1월 18일
22 중구 남산동 판자 아파트 화재
1964년 7월 29일
95+ 서해 어선단 실종 사고
1963년 10월 23일
49 여주 조포 나룻배 침몰 사고
1963년 6월 25일
70 거제 장승포 산사태
1963년 1월 18일
140 연호 침몰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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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한남동 나룻배 침몰 사고
1960년 3월 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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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 1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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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0년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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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9년 7월 17일
67 부산 공설운동장 압사 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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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한강 미 공군 C-124A 추락 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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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 태신호 화재
1955년 3월 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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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3년 11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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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3년 1월 3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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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3년 1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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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0 창경호 침몰 사고
1952년 11월 16일
25 강릉 공항 미 공군 C-46D 추락 사고
1952년 10월 16일
44 양평 미 공군 C-119C 추락 사고
1951년 7월 11일
94 제5편리호 침몰 사고
1951년 7월 11일
30+ 제13호 침몰 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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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40년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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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 대강 터널 질식 사고
1948년 6월 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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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9월 29일
73 대구역 열차 충돌 사고
1945년 8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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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키시마호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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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현재의 통영시이다.[2] YTL 정원이 150명이라고 한다.[3] 해경 전경이 폐지된 후 해양경찰청 의무경찰로 승계되었으나 이 역시 2023년에 폐지되었다.[4] 해군 109명(승조원 등 실무 기간장병 6명, 해군 신병 103명), 해경 50명[5] 위 영상에 나오는 음악은 모던코리아 시대유감, 삼풍에서 가져왔다.[6] 당시 박정희 정권이 국민의 구심점으로 삼았던 충무공의 사당 충렬사를 참배하다가 일어난 사고인 데다 대자연의 장난으로 받아들이기엔 너무나 명확했던 인재였으며 게다가 군 사고에 민감했던 군사정권 집권 시기에 일어난 사고였다.[7] 유가족들의 태도가 워낙 강경했던 데다 언론을 통해 크게 알려져서 유가족들을 강압적으로 대하지 못했다. 분위기가 얼마나 흉흉했는지 김규섭 제독의 후임으로 사태를 수습하던 중이었던 황정연 제독의 관용차가 거리에서 습격당했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고 진해에서는 근무복 차림으로 출퇴근하다 시민들에게 봉변당하는 해군 장교들이 속출하는 바람에 한동안 사복 차림으로 출퇴근하라는 공문이 나오기도 했다. 인구의 반이 해군과 해군 가족들인 진해의 분위기가 이 정도였으니 대중들의 분노가 얼마나 컸을지 짐작할 수 있다(격월간으로 발간되는 해군지에 실린 관련 회고문에선 "진해가 무법천지가 됐다."는 언급도 나온다.).[8] 그러나 예나 지금이나 대한민국 군대는 사고가 터지면 사고에 말려든 간부들은 사실상 진급길이 막힌다. 지금은 그나마 어느 정도 전후 사정을 따져서 과실비율을 조정한다고 하지만 이 당시에는 그런 것 따위가 있을 리가 만무했다. 따라서 겉으로는 복직하고 아무 일 없이 끝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더 이상 진급이나 장기복무에서 많은 차별을 받았을 가능성이 높다.[9] 출범 직후 이 사건을 비롯해 군사정권 당시 묻혔던 사건들을 해군-해경의 유족들이 진상규명을 해 달라며 서울에서 1인 시위를 한 적도 있었다.[10] 전투복을 입어도 일반적으로 함상화(=구두 또는 운동화)를 착용한다.[11] 정확히는 159기 중엔 104명, 해경전투경찰대 48명이 추가되며 나머지 7명은 정장 등 실무장병이다.[12] 뛰어난「人間性(인간성)」의 再現(재현), 조선일보, 1974-06-20[13] 횡설수설, 동아일보, 1974-03-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