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2-17 20:10:52

갑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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蓋延
(? ~ 39)
1. 개요2. 생애

1. 개요

양한교체기의 인물로, 자는 거경(巨卿). 유주 어양군(漁陽郡) 요양현(要陽縣) 사람이다. 중국에서 씨는 시조가 한족이냐 귀화한 이민족이냐에 따라 발음을 달리하니 주의해야 한다. 청나라 대에 쓰여진 주석서 《운보(韻譜)》에 따르면, 춘추시대 제나라의 어느 대부가 蓋 땅을 식읍으로 하사받으며 그 지명을 자신의 성씨로 하였는데, 이럴 때는 시조가 한족이므로 '蓋'는 '갑(guō)'이라 읽어야 한다. 참고로 몽골족 등 이민족들 중 한화하면서 '蓋'를 성씨로 삼은 경우도 있는데, 이때의 '蓋'는 '개(gài)'라 읽어 구분한다.

2. 생애

키가 8척[1]에 힘도 장사라 3백 근이나 되는 활을 들어 화살을 쏠 수 있었을 정도라고 한다. 갑연은 군(郡)에서 연(掾)을 지내다가 주(州)의 종사(從事)를 역임하였는데, 항상 맡은 바를 잘 해냈다. 팽총이 어양태수에 임명되자 갑연을 불러 영위(營尉)로 삼고 호군의 업무를 맡겼다.

경시 원년(23년) 12월, 한단(邯鄲)에서 점쟁이 왕랑이 반란을 일으키자 상곡태수 경황(耿況)이 구순을 보내 유수에게 귀순하자 권했다. 팽총은 유수에게 귀순하기로 마음 먹고 갑연과 행장사 오한, 호노현령 왕량으로 하여금 보기 3천을 거느리고 왕랑군이 점거한 계(薊)를 쳐 왕랑의 장수 조굉(趙閎)을 전사시켰다. 갑연과 오한 등은 상곡에서 병력을 받아 내려오는 경황의 아들 경엄과 군세를 합쳤고, 유수가 있는 곳을 향해 남하하면서 왕랑에게 항복했던 탁군, 중산국, 청하군, 하간국 산하 22개의 현을 모조리 평정하였다. 유수의 군대가 주둔해 있는 광아(廣阿)에 이르니, 유수는 갑연을 편장군으로 삼고 건공후(建功侯)에 봉했다. 갑연은 이후 유수를 수행해 하북 정벌에 종군하였다.

건무 원년(25년) 6월, 유수가 호현(鄗縣)에서 황제를 칭하고 갑연을 호아대장군으로 삼았다.

건무 2년(26년), 안평후(安平侯)에 다시 봉해졌다. 갑연은 광무제의 명을 받들어 오창(敖倉), 산조(酸棗), 봉구(封丘)를 쳐 모두 함락시켰다. 그 해 4월, 부마도위 마무, 기도위 유륭, 호군도위 마성, 편장군 왕패 4명의 장수를 이끌고 양왕 유영(劉永) 정벌에 나섰다. 갑연은 양읍(襄邑)을 공격해 유영의 장수 허덕(許德)을 격파하고 계속 나아가 마향(麻鄕)을 지나서 유영의 근거지인 수양(睢陽)을 포위하였다. 4개월 후, 갑연은 들판에 있는 농작물을 모두 거두어 들이고, 야밤에 사다리를 놓아 성 안으로 잠입했다. 방비를 게을리 하던 경비병들은 순식간에 진압당하면서 서쪽 성벽은 갑연군에 의해 장악되었다. 놀란 유영이 서둘러 동문(東門)을 통해 도망치자, 갑연은 군사를 몰아 그를 추격하여 대파하였다. 유영은 군사들을 모두 잃고 초(譙) 땅으로 피신했으며, 갑연은 설(薛)을 빼앗고 유영이 임명한 노군태수를 붙잡아 참수했다. 이에 팽성(彭城), 부양(扶陽), 서추(杼秋), 소(蕭) 등의 현들이 모두 항복해왔다. 갑연은 승세를 타고 나아가 유영이 임명한 패군태수 진수(陳脩)도 무찌르고 그를 참수하였다.

뒤늦게 유영이 위기에 처한 것을 알게 된 유영의 장수 소무(蘇茂), 교강(佼彊), 주건(周建)은 도합 3만 병력을 이끌고 유영을 구원하였다. 갑연은 패수(沛水) 서쪽에서 이들과 싸워 대승을 거두니, 유영의 병사들은 혼란에 빠져 물에 빠져 죽은 자들이 절반을 넘었을 정도로 큰 피해를 입었다. 유영, 교강, 주건은 호릉(湖陵)으로 도주하고 소무는 광낙(廣樂)으로 들어갔다. 갑연은 마침내 패군, 초국(楚國), 임회군(臨淮郡)을 완전히 평정할 수 있었고, 패현에 위치한 고제의 묘를 찾아가 색부(嗇夫)와 악인(樂人)을 두어 관리하도록 하였다.

건무 3년(27년), 대사마 오한을 따라 광낙으로 가 소무와 전투를 벌였다. 주건이 10만 군대와 함께 소무를 구원왔지만 오한의 분투로 소무와 주건은 패배하고 유영이 있는 호릉으로 도망쳤다. 그 해 4월, 수양의 백성들이 난을 일으켜 유영을 영접하자 오한은 갑연을 보내 수양을 탈환케 했다. 갑연이 수양을 포위한 지 어느덧 100여 일이 지났을 때, 또 군사를 풀어 수양 인근 들판의 농장물을 모두 거두어 들였다. 결국, 유영은 성 안의 식량이 다 떨어져 성을 동생 유방(劉防)에게 맡긴 뒤, 자신은 주건과 함께 찬(酇)으로 도망쳤다. 갑연이 유영의 무리를 추격하니, 유영의 곁을 지키던 부장 경오(慶吾)가 유영의 목을 베고 투항했다. 유방 또한 형이 떠나자마자 수양성을 들어 항복하였다.

건무 4년(28년), 갑연은 기(蘄)에서 소무, 주건을 격파하고, 나아가 유성(留城) 아래에서 해서왕 동헌(董憲)과 교전해 승리하였다. 그 후, 평적장군 방맹(龐萌)을 거느리고 서방(西防)을 점령한 뒤, 다시 소무와 주건을 추격해 팽성(彭城)에서 또 격파하였다. 주건은 유영의 아들 유우(劉紆)가 있는 수혜(垂惠)로 도망치고 소무는 동헌에게로 달아났다. 난릉(蘭陵)을 지키던 동헌의 장수 분휴(賁休)가 광무제에게 투항하고 동헌에게 반기를 들었다. 이에 동헌은 근거지인 담(郯)에서 군사를 거느리고 나와 난릉성을 포위하였다. 광무제는 즉시 팽성에 주둔해 있던 갑연과 방맹에게 조서를 내려 '담(郯)을 치면 난릉의 포위는 저절로 풀릴 것이다.'라 하였다. 하지만 갑연은 이에 동의하지 않아 바로 난릉성으로 진격했다.

갑연군이 난릉성에 도착하자 동헌은 그를 맞아 싸우다가 거짓으로 못 이기는 척 포위를 풀어주었다. 갑연군은 그 틈에 난릉성 안으로 들어갔지만 다음 날, 동헌이 훨씬 많은 군사들을 거느리고 성을 향해 다가왔다. 갑연은 놀라고 두려워 얼른 자신의 군대와 함께 성을 빠져나와 그제서야 담(郯)을 공격하였다. 광무제는 다시 조서를 보내 갑연을 질책하였다.
한가로울 때, 먼저 담으로 가게 한 이유는 바로 이런 변고가 있을까 해서였다. 허나, 지금 그대들은 이미 쫓기는 몸이 되었고, 적들 또한 대책을 세워 두었을 터인데 이제와서 담을 친다 한들 난릉의 포위를 어찌 풀 수 있겠는가.
과연 갑연은 담성을 공격했지만 이미 대비를 마친 동헌군을 이길 수 없었다. 결국 동헌은 여유로이 난릉성을 함락시키고 분휴를 참수한 뒤 팽성까지 빼앗아 돌아오니, 갑연은 군사를 물려 후퇴하였다.

패배한 갑연은 적지인 팽성, 담, 비(邳)를 오가며 동헌의 장수들을 상대로 유격전만 펼쳤는데 이게 어느정도 수확을 거두었다. 그러나 광무제는 기뻐하지 않고 갑연이 적을 가벼이 여겨 함부로 드나든다 생각해 여러 번 조서를 내려 이를 경계하게끔 하였다. 갑연이 광무제로부터 받은 이런 조서의 내용들을 방맹과 일체 공유하지 않으니, 방맹의 의심은 나날이 심해져 마침내 초군태수 손맹(孫萌)을 죽이고 반란을 일으켰다. 방맹은 갑연의 부대를 기습하여 그를 격파했고, 갑연은 사수(泗水)를 건너서야 겨우 추격을 따돌릴 수 있었다. 갑연은 패잔병을 어떻게든 수습해 방맹과 맞서보았으나, 싸우는 족족 방맹에게 패하기만 했다. 더이상 갑연의 추태를 두고 볼 수 없었던 광무제는 친정을 하기로 결심하였다.

광무제는 갑연에게 임성(任城)으로 이동하라 이르고는, 대사마 오한, 한충장군 왕상, 전장군 왕량, 포로장군 마무, 토로장군 왕패를 거느리고 동헌 정벌에 나섰다. 광무제는 반란을 일으킨 방맹을 도향(桃鄕)에서 수 차례 싸워 모두 승리하였다. 방맹은 동헌에게로 도망갔지만, 광무제가 그를 추격하여 팽성과 담을 전부 함락하면서 방맹을 사로잡아 참살하고, 창려(昌慮)에서 끝까지 저항하던 동헌을 격파해 주살하였다.

건무 6년(30년), 장안에 머물며 둔전하였다. 그리고 그 해 5월, 경엄 등 다른 7명의 장수들과 함께 농도(隴道)에서 외효를 막다가 패배하여 농(隴)에 주둔하였다. 광무제는 경엄, 채준만 서쪽에 남기고 나머지 장수들은 모두 장안으로 불러 들였다.

건무 8년(32년) 4월, 광무제의 친정군에 대패한 삭녕왕 외효가 서성(西城)으로 들어가 숨으니, 광무제는 장안으로 돌아가면서 오한과 잠팽을 보내 서성을 포위하게 하고, 경엄과 갑연을 남겨 상규(上邽)에서 외효를 지원하러 온 공손술의 장수 이육(李育), 전엄(田弇)을 막게 하였다. 하지만 오한과 잠팽이 서성을 함락시키지 못하고 패주하였기에, 경엄과 갑연 또한 퇴각하였다.

건무 9년(33년), 중랑장 내흡의 눈부신 활약으로 기성(冀城)에 갇혀 궁지에 몰려있던 외효가 성 안에서 분사하였다. 갑연은 내흡의 명령을 받고 서쪽으로 가 가천(街泉), 약양(略陽), 청수(淸水)에서 외효의 잔당을 제거하고 그 땅을 평정했다.

건무 10년(34년), 내흡과 함께 금성(金城)에서 오계(五溪), 선령(先零) 등 강족 부락들이 일으킨 난을 진압하였다.

건무 11년(35년) 6월, 하변(下辨)에서 내흡의 지휘 아래, 공손술의 장수 왕원, 환안(環安)과 싸워 한 차례의 전투에서 승리하였으나, 그 날 밤에 총사령관인 내흡이 자객에게 암살당했다. 내흡은 죽기 전에 갑연에게 군을 맡기려 했지만, 갑연도 금방 병을 얻고 말았다. 광무제는 갑연을 수도로 불러 들이고 천수태수 마성을 중랑장으로 삼아 내흡을 대신하였다. 갑연이 돌아오자 광무제는 그를 좌빙익(左馮翊)에 임명하고 장군직은 그대로 하였다.

건무 13년(37년), 광무제가 갑연의 식읍을 늘려주니, 그의 식읍이 어느새 1만 호에 달했다.

건무 15년(39년), 병으로 세상을 떠나고 그 아들 갑부(蓋扶)가 작위를 이었다. 하지만 손자인 갑측(蓋側)이 뒤를 이었을 때는 갑측의 장인인 왕평(王平)이 반란을 일으키는 바람에 연좌되어 주살당하고 봉국은 폐지되었다.


[1] 당시 쓰던 순제척(舜帝尺)에 따르면 약 188cm 정도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