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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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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주삼명(凉州三明)
단경 장환 황보규

1. 개요2. 생애
2.1. 강족, 흉노 토벌2.2. 환관들에게 굴복하지 않았으나 실책을 저지르다2.3. 당인으로 지목되다
3. 미디어 믹스

1. 개요

張奐
(103 ~ 181)

후한 말의 인물이며 자는 연명(然明).

옹주 돈황군 주천 사람으로 장돈[1]의 아들이자 장지, 장창, 장맹의 아버지. 단경, 황보규와 함께 강족을 토벌하는 일에 힘써 양주삼명(凉州三明)으로 불린 인물이다.

2. 생애

2.1. 강족, 흉노 토벌

젊은 시절에 삼보[2] 지역에서 지내면서 태위 주총에게 사사해 구양상서를 배웠으며, 장환은 서경상서에서 잡다한 말이 많아 45만여 언이나 되는 것을 9만 언으로 고쳤다. 대장군 양기가 초청했지만 병을 핑계로 거절했으며, 장환이 현량에 추천되면서 조정의 부름을 받고 의랑이 되었다.

155년에 안정속국의 도위가 되어 남흉노의 좌욱건, 대기, 저거, 백덕 등 7천여 명이 미직을 침범하고 동강의 종족들이 대거 이에 호응하자 이 때 장환은 군영에 있던 2백여 명의 군사만 이끌고 출병했으며, 군리들이 대적할 수 없다고 말렸지만 이를 듣지 않고 진격해 장성에 주둔하면서 병사들을 모았다. 장수 왕위를 보내 동강을 타이르면서 구자를 점거하고 남흉노가 동강과 교통하지 못하게 했다.

여러 호들이 서로 잇따라 장환과 화친해 좌욱건 등을 공격해 연달아 싸워서 이를 격파했으며, 이를 두려워 한 백덕이 무리를 이끌고 항복해 군의 경계가 평안해졌다. 동강의 수령은 장환의 은덕에 감동해 말 20마리, 선령의 추장은 금수레 8개를 보냈지만 이를 받아놨다가 여러 수령들 앞에 주부를 불러놓고 술로 토지신에게 제사를 지냈다가 그들에게서 받은 물품을 모두 되돌려줬으며, 장환이 정직하고 청렴해 그들이 마음 속으로 탄복했다고 한다.

장환은 사흉노중랑장에 임명되고 158년에 흉노의 휴도각과 북쪽의 오환 등이 공격해 오원군에서 도료장군의 군문을 불태우고 적강에 진을 쳐서 연기와 불이 보였는데, 군사들이 달아나고자 했지만 장환이 군막 안에 앉아서 제자들과 태연자약하게 강송하는 것을 보고 진정했다. 장환은 오환에게 귀중한 예물을 가지고 사자를 파견하면서 휴도각을 모살하기를 꾀해 그들과 연락했는데, 오환 사람들이 재물을 탐내 휴도각을 암살했고 흉노가 오환에 대해 아무런 경계심이 없는 기회를 타서 오환이 흉노 각 부락의 추장을 암살하면서 흉노가 붕괴되었다.

158년에 남흉노의 여러 부가 오환, 선비와 함께 연변의 아홉 군을 침범하자 장환은 북중랑장에 임명되어 이를 토벌해 남흉노의 여러 부를 항복시켰으며, 장환은 선우 거차아가 국사를 통치하지 못한다고 해 그를 구금했다가 좌록려왕을 선우로 세우도록 주청했지만 환제가 거차아를 돌려보내도록 해서 정으로 돌려보냈다. 159년에 환제가 양기를 주살하자 양기의 부하였다는 이유로 면직되었으며, 황보규가 장환을 위해 7번이나 이를 조정에 주청했지만 받아들이지 않았다.

163년에 장환은 무위태수가 되어 요역과 조세 등을 개혁하면서 병사들과 여러 민족이 공평하고 평균적인 대우를 받도록 보장했으며, 무위에 2월, 5월에 출생한 갓난아이 중에서 부모와 출생일이 같은 갓난아이를 모두 죽이는 풍속이 있었다. 사람을 파견해 도처에서 선전하면서 사람들에게 갓난아이를 죽이는 것은 요괴와 유사한 금기임을 알리면서 상벌 조문을 명확히 규정해 도처에 붙였는데, 갓난아이를 죽인 부모를 징벌하면서 갓난아이를 살린 부모에게 상을 내려 갓난아이를 죽이는 풍속을 금지하고 무위군의 주민들은 장환의 은혜에 사당을 세워 그에 대한 제사를 지냈다.

장환은 무위를 다스린 공적을 인정받아 황보규의 후임으로 도료장군에 임명되어 유주와 병주를 평정했으며, 166년 봄에 대사농이 되었다. 그 해 여름에 장환이 장군이 아닌 것을 알고 선비가 남흉노, 오환 등과 결탁해 3, 4천명 또는 5, 6천 명의 기병을 파견했으며, 유주, 병주, 양주의 9개 군을 침입해 대대적으로 약탈했다.

조정에서 장환을 사흉노중랑장으로 임명했으며, 9경의 신분으로 유주, 병주, 양주와 도료교위와 오환교위의 군사를 지휘하면서 감독하게 했다. 또한 자사 및 2천석 관원의 치적을 감찰한 권리를 부여받았으며, 흉노와 오환이 장환이 수비를 맡게 된 사실을 알고 20여 만명이 항복하고 선비는 요새 바깥으로 도망쳤다.

167년에 동강과 선령이 기병 5, 6천 명으로 관중을 공격해 여름에 대우와 운양을 함락하고 1000명을 살해했다가 여름에 강족이 삼보를 침범하자 사마 윤단과 동탁을 보내 격파[3]해 죽은 자와 포로가 1만 명을 넘어 깨끗이 평정되었다.

전반적으로 장환의 양주 통치 및 진압 전략은 반군 진압도 진압이지만, 양주의 주민과 소수민족의 안무에 힘쓰고 지역을 안정시키는데 주력하는 온건책이었다. 그래서 강경책을 주장하는 단경과의 갈등이 심했고, 단경이 장환을 죽이려는 것을 사전에 알아챈 황보규가 급하게 두 사람의 갈등을 중재해서 양주 삼명이 상잔하는 일을 막기도 했다.

2.2. 환관들에게 굴복하지 않았으나 실책을 저지르다

환관들의 환심을 사지 않았기에 단지 20만의 돈만 주어진 것과 일족의 한 명을 낭(郞)으로 등용할 수 있게 되었으며 장환은 공을 세운 것을 명분으로 자신의 호적지를 바꾸도록 요청했다. 예부터 변경의 사람이 호적을 내지로 옮기는 것은 용납되지 않았기에 [4] 장환의 청이 용납될지는 불투명했으나, 조정에서 그의 공을 인정하여 장환은 돈황군에서 물러나 홍농군의 화음현으로 이주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장환이 떠나면서부터 후한이 쇠퇴해 양주로 가는 길이 닫히는 일이 빈번했다고 한다.[5]

168년에 환제는 이미 죽고 영제가 황제가 된 상황에서 환관들과 두무 등이 대립하고 있었는데, 장환이 낙양으로 돌아오면서 환관들은 장환이 이 일에 대한 내막을 모르는 것을 이용해 조서를 조작하면서 천자의 명령을 적은 비단을 보내 두무를 토벌하게 했다. 장환은 소부의 주정과 함께 다섯 영의 군사를 인솔했고 이 공적으로 장환은 대사농이 되었지만 조절에게 속은 것에 걱정해 인수를 반납했지만 거부되었다.[6]

169년 여름 4월 21일에 황제의 자리 위에서 푸른 뱀이 발견되고 22일에 큰 태풍이 불면서 우박이 쏟아져 1백여 큰 나무가 뿌리 채 뽑히는 현상이 일어나자 장환이 상소했는데, 옛날 주공이 장례의 전례를 어겨 하늘이 노했고 두무, 진번의 충정이 드러나지 못해 재앙이 일어났고 그들을 안장할 수 있도록 가속에게 돌려주면서 금고된 사람들을 모두 사면해야 된다고 했지만 환관들의 반대로 시행할 수 없었다. 장환은 태상이 되어 상서 유맹 등과 함께 왕창, 이응 등을 삼공의 요직을 맡을 것을 청했다가 조절 등이 죄를 꾸미면서 장환은 옥에 갇혔다가 3개월 분의 녹봉으로 속죄금을 내고 풀려날 수 있었으며, 사례교위 왕우는 환관들과 결탁했고 장환은 왕우에게 아첨하지 않았다.

2.3. 당인으로 지목되다

당고의 금이 일어나자 왕우가 장환을 당인으로 지목해 금고되어 홍농군으로 돌아갔다.

장환은 문을 닫고 한 걸음도 나가지 않고 제자 1000명을 모아 가르치면서 상서기난이라는 30만여 언의 책을 저술했으며, 동탁은 형에게 부탁해 비단 100필을 장환에게 보냈지만 동탁의 사람을 혐오해서 절대로 받지 않았고 181년에 78세로 사망했다. 무위군에서는 장환의 제사가 대대로 끊어지지 않았다고 하며, 장환은 24편의 문서를 남겼다고 한다.

젊을 때 지조와 절개를 세워 사대부인 친구에게 남자가 출세한다면 국가를 위해 변경에 서야 한다고 했다고 이야기했다고 한다.

3. 미디어 믹스

창천항로에서는 환관들에게 속아 진번 등을 죽인 것 때문에 죄책감을 갖고 은둔하면서 살다가 조조가 그를 찾아와서 나라에 진 빚을 갚고 싶다면 자신을 찾아 오라 했고, 이후 실제 역사보다 더 오래 살아서 황건적의 난이 일어나기 전에 조조와 함께 황건적의 난에 관군으로 종군했다. 곤양의 식량 창고를 공격할 때 장만성과 일기토를 벌이지만 죽음에 이르는 부상을 입었으며, 장만성이 자신을 도와주러 온 하후돈에게 신경 쓴 틈을 타 한쪽 다리를 잘라 하후돈이 장만성을 죽일 수 있도록 하지만 부상 때문에 죽게 된다.


[1] 한양태수를 지냈다.[2] 경조윤, 우부풍, 좌빙익 등 후한의 수도권에 해당하는 지역이다.[3] 후한서 동탁전에서는 양주의 한양(천수)에서 격파했다고 나오며, 위서 동탁전에서는 병주에서 격파했다고 나온다.[4] 이는 양주 삼명이 활약할 수 있었던 요인 중 하나였다. 장환, 황보규, 단경 모두 양주가 고향이고 삶의 터전이었기 때문에 중앙에서 파견된 관료들보다 훨씬 더 적극적으로 지역을 방위했고 주민들과 우호적인 소수민족들의 지지를 받으면서 반란을 진압하고 지역을 위무할 수 있었다.[5] 이 현상은 양주 삼명이 활약하던 시기에도 마찬가지였다. 양주 삼명이 현지에 머무르고 있으면 한에 적대적인 세력들도 준동하지 못하고 지역민들과 소수민족들이 안심하면서 생활했는데 양주 삼명이 반란 진압이나 지역 위무의 공을 인정받아 중앙으로 불려가면 그들의 부재를 틈타 반란이 일어나는 일이 많았다. 그래서 양주 삼명은 높은 관직에 제수되어 조정에서 일하고 있어도 반란 때문에 다시 현장으로 복귀하는 일이 많았다.[6] 원래부터 학문을 좋아하고 청류파들을 동경해서 그들과의 교류를 위해 다른 상급은 사양하고 내지로 옮기게 해달라고 주청한 사람이 장환이었기에 이 일은 장환 개인에게는 큰 비극이었다. 위의 주석에 나오듯이 장환은 일선 현장에서 일하는 일이 많고 중앙에 오래 머무르는 일이 없어 조정의 일에는 어두웠기에 환관들의 공작에 쉽게 걸려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