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3-05-31 12:17:12

요기(후한)

운대 28장
{{{#!wiki style="border-right: 2px solid transparent; border-left: 2px solid transparent; margin: 0 -10px;"
{{{#ece5b6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bottom: -15px;"
{{{#181818,#e5e5e5
고밀후

등우
광평후

오한
교동후

가복
호치후

경엄
옹노후

구순
무양후

잠팽
양가후

풍이
격후

주우
영양후

채준
약양후

경단
안평후

갑연
안성후

요기
동광후

경순
낭릉후

장궁
양허후

마무
신후

유륭
전초후

마성
부성후

왕량
축아후

진준
참거향후

두무
곤양후

부준
합비후

견담
회양후

왕패
아릉후

임광
중수후

이충
괴리후

만수
영수후

비동
창성후

유식
산상후

왕상
고시후

이통
안풍후

두융
선덕후

탁무
}}}}}}}}}}}}}}}

후한서(後漢書)
{{{#!wiki style="margin: -0px -10px; margin-top: 0.3px; margin-bottom: -6px"
{{{#ece5b6 {{{#!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min-width:25%"
{{{#!folding [ 본기(本紀) ]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7px 10px"
1권 「광무제기(光武帝紀)」 2권 「명제기(明帝紀)」 3권 「장제기(章帝紀)」
유수 유장 유달
4권 「화제상제기(和帝殤帝紀)」 5권 「안제기(安帝紀)」 6권 「순제충제질제기(順帝沖帝質帝紀)」
유조 · 유륭 유호 유보 · 유병 · 유찬
7권 「환제기(桓帝紀)」 8권 「영제기(霊帝紀)」 9권 「헌제기(獻帝紀)」
유지 유굉 유협
10권 「황후기(皇后紀)」
곽성통 · 음여화 · 명덕황후 · 장덕황후 · 효화황후 · 등수 · 염희 · 양납 · 양여영 · 등맹녀 · 두묘 · 효인황후 · 효령황후 · 영사황후 · 복수 · 조절 · 무양장공주 · 열양공주 · 관도공주 · 육양공주 · 역읍공주 · 획가장공주 · 평양공주 · 융려공주 · 평지공주 · 심수공주 · 평고공주 · 준의공주 · 무안공주 · 노양공주 · 낙평공주 · 성안공주 · 무덕장공주 · 평읍공주 · 음안공주 · 수무장공주 · 공읍공주 · 임영공주 · 문희공주 · 무양장공주 · 관군장공주 · 여양장공주 · 양안장공주 · 영음장공주 · 양적장공주 · 만년공주
※ 사마표의 속한서는 志에 해당. 후한서 문서 참고
}}}}}}}}}
[ 열전(列傳) ]
||<-3><tablewidth=100%><tablebgcolor=#a11><width=50%> 11권 「유현유분자열전(劉玄劉盆子列傳)」 ||<-3><width=50%> 12권 「왕유장이팽노열전(王劉張李彭盧列傳)」 ||
유현 · 유분자 왕창 · 유영 · 방맹 · 장보 · 왕굉 · 이헌 · 팽총 · 노방
13권 「외효공손술열전(隗囂公孫述列傳)」 14권 「종실사왕삼후열전(宗室四王三侯列傳)」
외효 · 공손술 유인 · 유량 · 유지 · 유흡 · 유사 · 유순 · 유가
15권 「이왕등내열전(李王鄧來列傳)」 16권 「등구열전(鄧寇列傳)」 17권 「풍잠가열전(馮岑賈列傳)」
이통 · 왕상 · 등신 · 내흡 등우 · 구순 풍이 · 잠팽 · 가복
18권 「오갑진장전(吳蓋陳臧列傳)」 19권 「경엄열전(耿弇列傳)」 20권 「요기왕패채준열전(銚期王霸祭遵列傳)」
오한 · 갑연 · 진준 · 장궁 경엄 요기 · 왕패 · 채준
21권 「임이만비유경열전(任李萬邳劉耿列傳)」 22권 「주경왕두마유부견마열전(朱景王杜馬劉傅堅馬列傳)」
임광 · 이충 · 만수 · 비동 · 유식 · 경순 주우 · 경단 · 왕량 · 두무 · 마성 · 유륭 · 부준 · 견담 · 마무
23권 「두융열전(竇融列傳)」 24권 「마원열전(馬援列傳)」 25권 「탁노위유열전(卓魯魏劉列傳傳)」
두융 ,두헌, 마원 탁무 · 노공 · 위패 · 유관
26권 「복후송채풍조모위열전(伏侯宋蔡馮趙牟韋列傳)」 27권 「선장이왕두곽오승정조열전(宣張二王杜郭吳承鄭趙列傳)」
복담 · 후패 · 송홍,송유, · 채무 · 풍근 · 조희 · 모융 · 위표 선병 · 장담 · 왕담 · 왕량 · 두림 · 곽단 · 오량 · 승궁 · 정균 · 조전,조계,
28권 「환담풍연열전(桓譚馮衍列傳)」 29권 「신도강포영질운열전(申屠剛鮑永郅惲列傳)」 30권 「소경양후낭의양해열전(蘇竟楊厚郞顗襄楷列傳)」
환담 · 풍연 신도강 · 포영,포욱, · 질운 소경 · 양후 · 낭의 · 양해
31권 「곽두공장염왕소양가육열전(郭杜孔張廉王蘇羊賈陸列傳)」 32권 「번굉음식열전(樊宏陰識列傳)」
곽급 · 두시 · 공분 · 장감 · 염범 · 왕당 · 소장 · 양속 · 가종 · 육강 범굉 · 음식
33권 「주풍우정주열전(朱馮虞鄭周列傳)」 34권 「양통열전(梁統列傳)」 35권 「장조정열전(張曹鄭列傳)」
주부 · 풍방,풍석, ,유희, · 우연 · 정홍 · 주장 양통 장순 · 조포 · 정현
36권 「정범진가장열전(鄭范陳賈張列傳)」 37권 「환영정홍열전(桓榮丁鴻列傳)」 38권 「장법등풍탁양열전(張法滕馮度楊列傳)」
정흥 · 범승 · 진원 · 가규 · 장패 환영,환언, ,주총, · 정홍 장종 · 법웅 · 등무 · 풍곤 · 도상 · 양선
39권 「유조순우강유주조열전(劉趙淳于江劉周趙列傳)」 40권 「반표열전(班彪列傳)」
유평 · 조효 · 순우공 · 강혁 · 유반,유개, · 주반 · 조자 반표
41권 「제오종리송한열전(第五鍾離宋寒列傳)」 42권 「광무십왕열전(光武十王列傳)」
제오륜 · 종리의 · 송균 · 한랑 유강 · 유보 · 유강 · 유연 · 유언 · 유영 · 유창 · 유형 · 유형 · 유경
43권 「주악하열전(朱樂何列傳)」 44권 「등장서장호열전(鄧張徐張胡列傳)」 45권 「원장한주열전(袁張韓周列傳)」
주휘 · 악회 · 하창 등표 · 장우 · 서방 · 장민 · 호광 원안 · 장포 · 한릉 · 주영
46권 「곽진열전(郭陳列傳)」 47권 「반양열전(班梁列傳)」
곽궁 · 진총 반초 · 양근
48권 「양이적응곽원서열전(楊李翟應霍爰徐列傳)」 49권 「왕충왕부중장통열전(王充王符仲長統列傳)」
양종 · 이법 · 적포 · 응봉 · 곽서 · 원연 · 서구 왕충 · 왕부 · 중장통
50권 「명제팔왕열전(明帝八王列傳)」 51권 「이진방진교열전(李陳龐陳橋列傳)」
유건 · 유선 · 유공 · 유당 · 유연 · 유창 · 유병 · 유장 이순 · 진선 · 방참,시연, · 진귀 · 교현
52권 「최인전(崔駰傳)」 53권 「주황서강신도열전(周黃徐姜申屠列傳)」 54권 「양진열전(楊震列傳)」
최인 주섭 · 황헌 · 서섭 · 강굉 · 신도반 양진,사마포, ,마영,
55권 「장제팔왕열전(章帝八王列傳)」
유항 · 유전 · 유경 · 유수 · 유개(劉開) · 유숙 · 유만세 · 유승
56권 「장왕충진열전(張王种陳列傳)」 57권 「두난유이유사열전(杜欒劉李劉謝列傳)」 58권 「우부갑장열전(虞傅蓋臧列傳)」
장호 · 왕공 · 충고 · 진구 두근 · 난파 · 유도 · 이운 · 유유 · 사필 우후 · 부섭 · 갑훈 · 장홍
59권 「장형열전(張衡列傳)」 60권 「마융채옹열전(馬融蔡邕列傳)」 61권 「좌주황열전(左周黃傳)」
장형 마융 · 채옹 좌웅 · 주거 · 황경
62권 「순한종진열전(荀韓鍾陳列傳)」 63권 「이두열전(李杜列傳)」 64권 「오연사노조열전(吳延史盧趙列傳)」
순숙 · 한소 · 종호 · 진식 이고,이섭, ,조준, · 두교 오우 · 연독 · 사필 · 노식 · 조기
65권 「황보장단열전(皇甫張段列)」 66권 「진왕열전(陳王列傳)」
황보규 · 장환 · 단경 진번 · 왕윤
67권 「당고열전(黨錮列傳)」
유숙 · 이응,이수, · 두밀 · 유우 · 위영 · 하복 · 종자 · 파숙 · 범방 · 윤훈,윤목, · 채연 · 양척 · 장검 · 진상 · 공욱 · 원강 · 유유 · 가표 · 하옹
68권 「곽부허열전(郭符許列傳)」 69권 「두하열전(竇何列傳)」 70권 「정공순열전(鄭孔荀列傳)」
곽태 · 부융 · 허소 두무 · 하진 정태 · 공융 · 순욱
71권 「황보숭주준열전(皇甫嵩朱儁列傳)」 72권 「동탁열전(董卓列傳)」 73권 「유우공손찬도겸열전(劉虞公孫瓚陶謙列傳)」
황보숭 · 주준 동탁 유우 · 공손찬 · 도겸
74권 「원소유표열전(袁紹劉表列傳)」 75권 「유언원술여포열전(劉焉袁術呂布列傳)」
원소 ,원담 · 원상, · 유표 유언 · 원술 · 여포
76권 「순리열전(循吏列傳)」
위립 · 임연 · 왕경 · 진원 · 왕환 · 허형 · 맹상 · 제오방 · 유구,유광, · 유총 · 구람 · 동회
77권 「혹리열전(酷吏列傳)」
동선 · 번엽 · 이장 · 주우 · 황창 · 양구 · 왕길
78권 「환자열전(宦者列傳)」
정중 · 채륜 · 손정 · 조등 · 선초 · 서황 · 구원 · 좌관 · 당형 · 후람 · 조절 · 여강 · 장양 · 조충
79권 「유림열전(儒林列傳)」
유곤 · 규단 · 임안 · 양정 · 장흥 · 대빙 · 손기 · 구양흡 · 모장 · 송등 · 장순 · 윤민 · 주방 · 공희 · 양륜 · 고후 · 포함 · 위응 · 복공 · 임말 · 경란 · 설한 · 두무 · 소순 · 양인 · 조엽 · 위굉 · 동균 · 정공 · 주택 · 손감 · 종흥 · 견우 · 누망 · 정증 · 장현 · 이육 · 하휴 · 복건 · 영용 · 사해 · 허신 · 채현
80권 「문원열전(文苑列傳)」
두독 · 왕륭 · 하공 · 부의 · 황향 · 유의 · 이우 · 소순 · 유진 · 갈공 · 왕일 · 최기 · 변소 · 장승 · 조일 · 유량 · 변양 · 역염 · 후근 · 고표 · 장초 · 예형
81권 「독행열전(獨行列傳)」
초현 · 이업 · 유무 · 온서 · 팽수 · 삭로방 · 주가 · 범식 · 이선 · 왕돈 · 장무 · 육속 · 대봉 · 이충 · 무융 · 진중 · 뇌의 · 범염 · 대취 · 조포 · 상허 · 양보 · 유익 · 왕열
82권 「방술열전(方術列傳)」
임문공 · 곽헌 · 허양 · 고획 · 왕교 · 사이오 · 양유 · 이남 · 이합 · 단예 · 요부 · 절상 · 번영 · 당단 · 공사목 · 허만 · 조언 · 번지장 · 선양 · 한열 · 동부 · 곽옥 · 화타 · 서등 · 비장방 · 소자훈 · 유근 · 좌자 · 허자훈 · 해노고 · 장초 · 왕진 · 학맹절 · 유화평
83권 「일민열전(逸民列傳)」
상장 · 봉맹 · 주당 · 왕패 · 엄광 · 정단 · 양홍 · 고봉 · 대동 · 한강 · 교신 · 대량 · 법진 · 한음노보 · 진류노보 · 방공
84권 「열녀전(列女傳)」
환소군 · 조아(趙阿) · 반소 · 이목강 · 조아(曹娥) · 여영 · 마륜 · 조아(趙娥) · 순채 · 조원강 · 숙선웅 · 채염
85권 「동이열전(東夷列傳)」 86권 「남만서남이열전(南蠻西南夷列傳)」 87권 「서강전(西羌傳)」
부여국 · 읍루 · 고구려 · 북옥저 · · 남만 · 서남이 서강
88권 「서역전(西域傳)」
구미국 · 우전국 · 서야국 · 자합국 · 덕약국 · 안식국 · 대진국 · 대월지국 · 고부국 · 천축국 · 동리국 · 율과국 · 엄국 · 엄채국 · 사거국 · 소륵국 · 언기국 · 포류국 · 이지국 · 동저미국
89권 「남흉노열전(南匈奴列傳)」 90권 「오환선비열전(烏桓鮮卑列傳)」
남흉노 오환 · 선비
||<tablealign=center><tablebordercolor=#a11><tablebgcolor=#a11> ||
}}}}}} ||

銚期
(? ~ 34년)
1. 개요2. 생애

1. 개요

후한의 인물로, 자는 차황(次況). 예주 영천군(潁川郡) 겹현(郟縣) 사람이다. 광무제를 도운 운대 28장의 공신 중 서열 12위이다. 준수한 용모를 가졌고 키도 8척 2촌[1]에 달해 자못 위엄이 있었다.

2. 생애

아버지 요맹(銚孟)이 계양(桂陽)의 태수로 재직하던 중 사망하자 3년상을 온전히 치러 마을 사람들로부터 칭찬을 받았다. 경시 원년(23년) 9월, 경시제 유현(劉玄)이 유수를 사예교위로 삼고 낙양으로 보내 궁궐 등을 수리하도록 하였다. 유수가 낙양으로 가기 위해 영천을 지날 때, 부성(父城)을 지키던 풍이가 유수를 영접하고 영천군의 인재를 추천하였다. 이때 요기도 천거받았는데, 유수는 요기의 지조와 효심에 관한 이야기를 익히 알고 있어 그를 등용해 적조연(賊曹掾)에 임명하였다. 요기는 그때부터 유수와 합류하여 나중에 유수가 하북 원정을 떠날 때도 풍이, 왕패, 채준 등과 함께 그를 수행하였다.

유수가 계(薊)에 머무르며 군현을 위로하던 중 유접(劉接)이 성내에서 군사를 일으켜 왕랑에게 호응했다. 유수가 수레를 타고서 성 밖으로 나가려는데, 백성들이 유수를 구경하고자 모여들어 길을 메우고 왁자지껄 떠들어댔다. 유수의 수레가 인파에 막혀 나아갈 수 없으니, 요기는 말에 올라 눈을 부릅 뜨고 창을 휘두르며 호령하자 그제서야 무리들이 놀라 흩어졌다. 유수 일행이 성문 앞에 도착했을 때, 소란을 듣고 눈치챈 유접의 군사들이 성문을 걸어 잠가 놓았다. 이에 요기는 자물쇠와 잠금장치를 힘으로 부수고 성문을 강제로 열어 일행들과 함께 성을 탈출할 수 있었다.

유수 일행은 갖은 고생 끝에 동남쪽으로 도망쳐 신도(信都)에서 신도태수 임광과 합세하였다. 유수는 신도에서 군을 재정비하면서 요기를 부관(傅寬), 여안(呂晏)과 함께 비장에 임명하고 모두 등우의 휘하에 배속시켰다. 요기는 등우를 따라 왕랑에게 항복했던 여러 현들을 병탄하고 방자현(房子縣)에 이르러 병력도 추가로 징발했다. 등우는 요기의 유능함을 보고 그를 편장군으로 승진시켜 2천 병력을 이끌도록 하였다. 동기인 부관과 여안이 아직 비장에 수백 병력밖에 이끌지 못했던 걸 감안하면 파격적인 처우였다. 등우가 돌아와 이를 보고하자 유수는 매우 기뻐하며, 요기로 하여금 별도의 부대를 거느리고 진정(眞定), 송자(宋子)를 순행하게 하였다. 유수의 명을 받은 요기는 나아가 악양(樂陽), 고(槀), 비류(肥纍)를 공격하여 함락시켰다.

경시 2년(24년) 3월, 유수는 경시제가 지원보낸 상서령 사궁의 군대와 합쳐 거록성(巨鹿城)을 한 달여간 공격했다. 거록성은 한단으로 통하는 문이나 마찬가지라, 거록이 떨어지는 순간 왕랑은 순식간에 고립되기에 양군에게 있어서 반드시 이겨야 하는 승부였다. 거록성 북쪽에서 왕랑의 장수 아굉(兒宏)과 유봉(劉奉)이 수만 군사를 이끌고 거록을 구원하기 위해 내려오자, 유수는 장수 등만(鄧滿)에게 거록의 포위를 맡기고 요기, 경단 등과 함께 남련(南䜌)으로 달려가 왕랑군을 요격했다. 경단이 돌기병대로 적진을 마구 헤집어놓으니, 아굉과 유봉을 패배하여 패잔병들을 데리고 달아났다. 요기는 이들을 추격하여 제일 먼저 적진에 뛰어들고는 손수 적병 50명을 베는 기염을 토했다. 이 과정에서 적군의 창이 이마를 깊게 스치는 바람에 큰 상처를 입었으나, 재빨리 두건을 찢어 상처를 싸맨 뒤 계속 싸움을 이어나갔고 마침내 적이 격파되었다. 유수가 한단을 함락시키고 왕랑을 주멸한 후 요기의 공을 높이 평가해 호아대장군에 임명하였다. 이때 요기가 유수에게 말하였다.
"하북의 땅은 국경과 접해 있어 사람마다 병사와 전투를 익히는데 이를 정용(精勇)이라 부릅니다. 지금 경시가 실정하여 한황실의 대통(大統)이 위태로우며, 나라 안으로는 돌아갈 곳이 없습니다. 명공(明公)께서 하산(河山)의 견고함에 의거하시고 정예의 무리를 거느리셔서, 만인에게 한나라(漢)를 생각하는 마음을 갖게 한다면 천하의 누가 감히 따르지 않겠습니까?"
유수가 웃으며 대답했다.
"그렇다면 경이 그 무리를 이끌고 앞장서 주지 않겠는가?"

마침 동마적 수십만 명이 청양(淸陽), 박평(博平)을 약탈하자, 요기는 여러 장수들을 거느리고 앞장서서 박평성 아래에서 동마적과 싸웠다. 그러나 동마적의 인해전술에 밀려 연전연패하였고, 궁지에 몰린 요기는 일부로 배수진을 쳐 장병들에게 필사의 각오로 동마적과 맞서게 했다. 당연히 이러한 요기의 배수진 작전은 전혀 통하지 않아 되려 사상자만 속출하였다. 보다못한 유수가 직접 나와 동마적을 격파해 요기를 구원하였다. 유수는 요기, 경엄 등과 함께 승세를 몰아 도망치는 동마적을 관도(館陶)에서 따라잡아 다시 한번 격파하였다. 그때 고호거(高湖渠)와 중련거(重連渠)가 동쪽으로 내려와 동마적을 구원하려 하였다. 금세 힘을 되찾은 동마적은 포양산(蒲陽山)에 모여 유수군과 결전을 준비했다. 유수가 친히 요기, 경엄 등 제장들을 능숙하게 지휘해 적을 전멸시켰고, 동마적은 모두 항복하여 유수 세력에 흡수되었다.

청독(靑犢), 적미(赤眉), 대동(大彤) 등 10만여 명의 도적떼가 사견(射犬)에 주둔해 인근 지역을 약탈하였다. 이에 유수도 출병하여 사견에 군대를 주둔시켰다. 제일 먼저 유수군을 발견한 청독적이 달려가 군영의 치중과 군수품들을 마구 약탈하였다. 요기는 즉시 사람을 보내 유수에게 보고하도록 하고 말에 올라 자신의 부대와 함께 적들을 향해 돌격하였다. 요기는 이번에도 무쌍을 찍으며 손수 적병 수십 명을 베었고 몸에 큰 상처만 3개나 입었으나 물러나지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유수의 원군이 도착하니, 안그래도 요기의 용맹에 기세가 꺾인 청독적은 급히 후퇴하였다. 이후 요기는 유수의 지휘 아래 사견에 있는 도적 무리를 모조리 격파했다.

건무 원년(25년) 6월, 유수가 황제에 즉위하자 안성후(安成侯)에 봉해지고 식읍 5천 호를 받았다. 광무제는 요기를 위군태수에 임명해 부임하게 하였는데, 당시 위군(魏郡)의 정세는 매우 불안정하였다. 단향적(檀鄕賊)과 오루적(五樓賊)이 번양(繁陽), 내황(內黃)을 유린했고, 위군의 호족들은 변덕이 심해 자주 반란을 일으켰다. 여기에 더해 사궁이 유수에게 살해되면서 항복했던 사궁의 부장 탁경(卓京)[2] 등이 업(鄴)에서 반란을 일으키려 들었다. 요기가 위군에 이르자 먼저 군사를 보내 탁경을 격파하고 600여 명을 참수했다. 탁경은 산으로 도망쳤지만 계속 추격하여 그를 따르던 장교 수십여 명과 처자식을 잡아 전부 처형하였다. 그리고 다시 군사를 몰아 번양, 내황으로 들어가 단향과 오루를 몰아내고 또 수백 명의 목을 베니, 마침내 위군 경계까지 깨끗이 소탕되었다.

외부의 적을 제거한 요기는 위군 내부로 눈을 돌려 강경하게 대응하던 도적들과는 달리 호족들에게는 회유책을 썼다. 한번은 업의 호족인 독도적(督盜賊) 이웅(李熊)의 동생 이륙(李陸)은 단향적과 공모하여 도적들을 위군 내로 끌어들인 죄가 있어, 혹자가 이를 요기에게 일러바쳤지만 요기는 들으려 하지 않았다. 고발하는 자가 서너 명에 달하자 요기는 이웅을 소환해 자초지종을 물었다. 평소 요기의 용맹을 자주 들어 그를 두려워했던 이웅은 머리를 조아리며 노모와 함께 자신을 죽여달라 청했다. 그러자 요기가 말했다.
"관리의 무리로 지내는 것이 도적으로 지내는 것만 못하다면 노모와 함께 동생 이륙에게 가도 좋다."
그리고 이웅을 성 밖으로 내보냈다. 이웅은 이륙을 찾아가 그를 설득하고는 업성 서문으로 가 요기에게 사죄하게 하였다. 이륙은 요기의 아량을 몰라본 자신이 무척 부끄러워 자살로써 그에게 사죄하니, 요기는 애석해하며 예를 갖추어 장례를 치루게 하고 이웅은 원래 직책을 그대로 유지하게끔 했다. 위군 사람들은 모두 요기의 위신(威信)에 감복하였다.

건무 5년(29년), 광무제가 위군에 행차하여 요기를 태중대부에 임명했다. 요기는 광무제를 따라 수도 낙양에 들어갔고 얼마 안가 위위(衛尉)로 옮겨졌다. 요기는 장수를 지낼 때 한번도 점령지의 백성들을 약탈한 적이 없었는데, 조정에 들어가 대신이 되어서는 나라를 생각하는 마음이 커 광무제에게 충성을 다해 간하였다. 일례로 광무제가 수레에 올라 가벼이 성문을 나서려고 하자 요기가 수레 앞에 머리를 조아리며 간했다.
"신(臣)이 듣기로 옛 말에 변고(變故)는 뜻하지 않은 곳에서 나타난다 하였으니, 부디 미미한 일로 출입을 자주하지 말아주십시오."
광무제는 요기의 간언을 듣고 수레를 돌려 궁으로 돌아갔다.

건무 10년(34년), 요기가 사망하였다. 광무제는 친히 요기를 염하는 자리에 참석하여 안성후의 인수를 하사하며 애도를 표했다. 시호는 충(忠). 광무제는 그의 아들 요단(銚丹)에게 아버지의 작위를 잇게 하였고, 요단의 동생 요통(銚統)도 불러 건평후(建平侯)에 봉했다.


[1] 본래 1척은 30cm이나 이 시기에는 순제척(舜帝尺)에 따라 1척에 약 23.5cm 정도다. 따라서 8척 2촌이면 대략 192cm라 볼 수 있다.[2] 탁원(卓原)이라고 불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