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3-18 16:09:49

내흡

후한서(後漢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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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권 「화제상제기(和帝殤帝紀)」 5권 「안제기(安帝紀)」 6권 「순제충제질제기(順帝沖帝質帝紀)」
유조 · 유륭 유호 유보 · 유병 · 유찬
7권 「환제기(桓帝紀)」 8권 「영제기(霊帝紀)」 9권 「헌제기(獻帝紀)」
유지 유굉 유협
10권 「황후기(皇后紀)」
곽성통 · 음여화 · 명덕황후 · 장덕황후 · 효화황후 · 등수 · 염희 · 양납 · 양여영 · 등맹녀 · 두묘 · 효인황후 · 효령황후 · 영사황후 · 복수 · 조절 · 무양장공주 · 열양공주 · 관도공주 · 육양공주 · 역읍공주 · 획가장공주 · 평양공주 · 융려공주 · 평지공주 · 심수공주 · 평고공주 · 준의공주 · 무안공주 · 노양공주 · 낙평공주 · 성안공주 · 무덕장공주 · 평읍공주 · 음안공주 · 수무장공주 · 공읍공주 · 임영공주 · 문희공주 · 무양장공주 · 관군장공주 · 여양장공주 · 양안장공주 · 영음장공주 · 양적장공주 · 만년공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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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전(列傳) ]
||<-3><tablewidth=100%><tablebgcolor=#a11><width=50%> 11권 「유현유분자열전(劉玄劉盆子列傳)」 ||<-3><width=50%> 12권 「왕유장이팽노열전(王劉張李彭盧列傳)」 ||
유현 · 유분자 왕창 · 유영 · 방맹 · 장보 · 왕굉 · 이헌 · 팽총 · 노방
13권 「외효공손술열전(隗囂公孫述列傳)」 14권 「종실사왕삼후열전(宗室四王三侯列傳)」
외효 · 공손술 유인 · 유량 · 유지 · 유흡 · 유사 · 유순 · 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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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권 「오갑진장전(吳蓋陳臧列傳)」 19권 「경엄열전(耿弇列傳)」 20권 「요기왕패채준열전(銚期王霸祭遵列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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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권 「임이만비유경열전(任李萬邳劉耿列傳)」 22권 「주경왕두마유부견마열전(朱景王杜馬劉傅堅馬列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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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융 ,두헌, 마원 탁무 · 노공 · 위패 · 유관
26권 「복후송채풍조모위열전(伏侯宋蔡馮趙牟韋列傳)」 27권 「선장이왕두곽오승정조열전(宣張二王杜郭吳承鄭趙列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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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권 「장제팔왕열전(章帝八王列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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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권 「독행열전(獨行列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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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권 「일민열전(逸民列傳)」
상장 · 봉맹 · 주당 · 왕패 · 엄광 · 정단 · 양홍 · 고봉 · 대동 · 한강 · 교신 · 대량 · 법진 · 한음노보 · 진류노보 · 방공
84권 「열녀전(列女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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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권 「동이열전(東夷列傳)」 86권 「남만서남이열전(南蠻西南夷列傳)」 87권 「서강전(西羌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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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권 「남흉노열전(南匈奴列傳)」 90권 「오환선비열전(烏桓鮮卑列傳)」
남흉노 오환 · 선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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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생애

1. 개요

來歙
(? ~ 35)

양한교체기 시대 후한의 개국공신. 형주 남양군 신야현 출신으로 자는 군숙(君叔). 조상 내한(來漢)은 한무제 시절 맹장으로 남월고조선 정벌에 참전해 활약을 했다고 한다.

2. 생애

아버지 내중(來仲)은 한성제 시절 중앙에서 간대부(諫大夫)를 지냈고 유수의 고모할머니 유씨와 결혼해 내흡을 낳았다. 유수는 삼촌 내흡을 항상 잘 따르고 존경하여 그와 교류하기 위해 장안을 자주 왕래하고는 하였다. 훗날 유수 형제가 신나라에 대항해 의병을 일으키자 황제 왕망은 내흡이 유수와 인척이라는 이유로 내흡을 체포하여 옥에 가뒀다. 하지만 가문의 빈객들이 목숨을 걸고 내흡을 구출해준 덕에 겨우 살아서 도망칠 수 있었다.

경시 원년(23년), 경시제 유현이 즉위하고 현한 정권이 세워지자 관리가 되어 경시제와 함께 관중으로 들어갔다. 내흡은 경시제 곁에서 왕망의 폭정으로 인해 무너진 민생을 회복하고자 여러 차례 진언했으나, 이미 방탕함에 취해버린 경시제는 전부 무시했다. 결국 내흡은 현한에 미래가 없음을 깨닫고 병을 핑계로 사직하였다. 내흡의 매부인 한중왕 유가(劉嘉)는 소식을 듣고 내흡을 영접해 함께 한중으로 들어갔다.

경시 3년(25년), 경시제가 패망하고 광무제 유수가 낙양을 차지했다. 내흡은 유가가 광무제에게 귀순하게끔 설득하여, 그와 함께 낙양으로 가 광무제를 만났다. 내흡을 본 광무제는 매우 기뻐 그 자리에서 즉시 자신의 겉옷을 벗어 내흡에게 걸치고는 그를 태중대부로 삼았다.

당시 광무제는 농(隴)의 외효와 촉(蜀)의 공손술이 복속하지 않아 근심하고 있었기에 내흡과 독대하여 물었다.
"지금 서쪽에서 자양(子陽)[1]이 칭제까지 해가며 귀순하기를 거부하나, 거리가 멀고 길이 막혀있는데다 쓸만한 장수들이 모두 관동 전선에 배치되어 있어, 서쪽 정벌을 누구에게 맡겨야 할 지 모르겠는데,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이에 내흡이 호기롭게 대답했다.
"신은 일찍이 장안에서 외효와 만난 적이 있는데, 그는 거병하면서 한나라 부흥의 명분을 내걸었던 적이 있습니다. 오늘날 폐하의 성덕이 융성하시니, 신이 위명을 받들어 편지로 외효를 훈계한다면 그는 분명 스스로를 포박하여 항복해올 것이고, 그리 된다면 공손술 또한 스스로 멸망의 길을 걷게 될 겁니다."
광무제는 그의 말을 옳게 여겼다.

건무 3년(27년), 내흡이 광무제의 명을 받고 외효의 밑으로 들어갔다.

건무 5년(29년), 광무제가 이번엔 마원(馬援)을 외효의 수하로 보냈다. 내흡과 마원은 외효 세력 내에서 X맨 역할을 하면서 그를 꼬드겨 아들 외순(囂恂)을 낙양에 입조시키도록 설득하였다. 이들의 꼬드김에 넘어간 외효는 아들을 사실상 인질로 보내는 것을 허락하였고, 외순은 내흡을 따라 수도로 갔다. 이 공으로 내흡은 중랑장에 임명되었다.

이 당시 관동의 군벌과 도적떼들은 전부 평정된 상태라 광무제는 서쪽을 도모할 목적으로 동쪽의 군사들을 서쪽으로 이동시키고, 내흡을 보내 외효에게 함께 공손술을 치자는 서신을 전하게 했다. 이때 외효의 장수 왕원(王元)이 나서서, 광무제의 수상한 행동들을 지적하자 외효는 깊은 고민에 빠져 한동안 결정을 하지 못했다. 이에 내흡이 분노하여 외효를 향해 소리쳤다.
"우리 폐하께서는 그대가 좋고 나쁨을 알고, 흥폐(興廢)에 밝다 여겨 마음을 담아 손수 글을 쓰셨습니다. 족하께서도 충성을 다하기 위해 백춘(伯春)[2]을 수도로 보내셨으니, 이는 임금과 신하의 신뢰를 의미하는 바입니다. 한데, 지금 교활한 아첨꾼의 말에 속아 멸족을 초래할 계책을 세우려하다니, 정녕 임금과 아들을 배신하고 충성과 신뢰를 져버리렵니까? 길흉의 결정은 전부 오늘의 선택에 달려 있습니다!"
말을 마친 내흡이 외효를 찌르려 달려들자, 깜짝 놀란 외효는 벌떡 일어나 몸을 피하고는 병사들을 불렀다. 암살에 실패한 내흡은 건물 밖으로 나와 재빨리 마차에 뛰어들어 도망쳤고, 그 모습을 본 외효는 더욱 분노하였다. 왕원이 외효 곁에서 내흡을 죽이라 권하니, 외효는 장수 우한(牛邯)에게 병사들을 이끌고 내흡이 빠져나가지 못하게 성을 둘러싸도록 했다. 하지만 내흡은 워낙 신의를 중시하며 언행이 일치하는 사람으로 명성이 높았던지라, 그를 흠모하던 외효의 장수 왕준(王遵)과 사대부들의 도움을 받아 성을 빠져나와 동쪽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이로써 외효와 광무제의 관계는 완전히 파탄나버렸다.

건무 7년(31년) 가을, 왕준이 내흡의 회유에 넘어가 항복하니, 광무제는 왕준을 태중대부, 향의후(向義侯)로 삼았다.

건무 8년(32년) 봄, 광무제가 중랑장 내흡과 정로장군 제준을 보내 약양(略陽)을 엄습하게 하였지만 제준이 행군 도중 병에 걸려 돌아가야만 했다. 내흡은 하는 수 없이 병사를 나누어 제준을 돌려보내고, 자신은 2천여 병력만으로 산을 깎고 길을 내어, 안정군 번수(番須)와 회중(回中)에서 지름길을 찾아 악양을 습격하였다. 악양을 지키던 장수 김량(金梁)은 예상치도 못한 곳에서 튀어나온 적에 당황하다가 패하여 참수되었고 내흡은 순식간에 성을 점령했다.

외효 세력의 중심지인 기(冀)는 악양과 고작 70리 정도 밖에 되지 않았으므로, 그 소식을 들은 외효는 "참으로 신통하구나!"라 외치며 왕원을 농저(隴坻)로 보내 공격해오는 다른 광무제의 장수들을 막게 하고, 자신은 직접 수만 군사를 몰아 악양성을 향하였다. 외효가 번수구(番須口)에 주둔하니 공손술도 이육(李育)을 보내 그를 돕게 했다. 외효는 압도적인 물량을 이용해 산을 깎고 제방을 쌓아 번수구의 물길을 성으로 향하게 하는 수공을 펼쳤다. 내흡은 병사들과 함께 죽음을 각오하고 전투에 임해, 화살이 전부 떨어지자 성내 가옥들을 헐고 나무를 잘라 무기를 만들어가며 처절하게 성을 지켰다. 외효는 자신의 정예병들을 총동원하였음에도 가을이 될 때까지 몇 달이 지나도록 성을 함락시키지 못하니 병사들은 점점 피폐해져 갔다.

외효의 온 신경이 악양에 쏠려 있을 때, 광무제는 군사를 크게 일으켜 친히 고평(高平)으로 진격해 장수 우한을 항복시키고 농동을 손에 넣었다. 광무제가 코앞까지 쫓아온 관계로 외효는 악양 탈환을 포기하고 군사를 물려 돌아가는 수밖에 없었다. 마침내 악양에 도착한 광무제는 큰 연회를 베풀어 위로하면서 내흡을 여러 장수들보다 상석에 앉히고 친히 내흡의 처에게 비단 천 필을 하사하였다. 이후 조서를 내려 그에게 장안을 지키도록 하고 모든 장수들을 감독하게 하였다.

건무 9년(33년) 8월, 내흡이 상소하여 말했다.
"공손술은 원래 농서와 천수를 방벽 삼아 연명하려 하고 있습니다. 만약 지금 두 군이 모두 평정하기만 한다면 그의 지략은 다하게 될 겁니다. 그러니 군마를 선발하고 군량을 비축해 두십시오. 과거 초한쟁패 시절 조나라의 장수들은 모두 상인 출신이라 한고제께선 그들을 돈으로 포섭한 바 있습니다. 서주(西州)가 피폐해져 사람들이 기근에 빠져있는 지금 상황에서 재물과 곡식을 푼다면 사람들이 많이 모일 것입니다. 신은 국가가 신경써야할 곳이 한두군데가 아니라 재물이 항상 부족한 것은 알고 있지만 부득이하게 써야할 데가 있다면 바로 지금입니다."
광무제는 그의 말이 옳다 여겨 대대적으로 식량 6만곡을 견(汧)으로 수송하고, 내흡에게 정서대장군 풍이(馮異), 건위대장군 경엄, 호아대장군 갑연(蓋延), 양무장군 마성, 무위장군 유향(劉尚) 등을 통솔하여 천수의 외효를 정벌하게 하였다. 내흡은 외효를 도우러 온 공손술의 장수 조광(趙匡), 전엄(田弇)을 격파하고 천수군의 여러 성을 떨어뜨린 뒤, 천수군 기성(冀城)을 포위했다.

건무 10년(34년) 10월, 기성의 낙문(落門)이 무너지자 외효의 아들 외순(囂純)은 장수 주종(周宗), 조회(趙恢), 행순(行巡), 구우(苟宇) 등을 거느리고 항복해왔다.[3]

원래 강족들은 신나라 시절부터 늘 반란을 일으켜 왔는데, 외효가 서쪽을 장악한 뒤로 강족을 어르고 달래면서 어느정도 진정시켜둔 상태였다. 그러나 외효가 패망하자 오계(五溪), 선령(先零) 등 강족 부락들이 난을 일으켜 금성(金城)과 농서를 약탈하니, 주와 군에서는 감히 토벌할 엄두도 내지 못했다. 막 천수를 정벌한 내흡은 얼른 병장기들을 수리한 뒤, 갑연, 유향, 마원 등을 통솔해 금성(金城)에서 강족들을 크게 무찌르고 수천 명을 참했으며, 만여 마리의 소와 양, 수십만 곡의 식량을 얻었다. 또, 양무(襄武)에서 도적 부율경(傅栗卿) 등을 격파하고 수천 명을 참수한 끝에 비로소 농서는 평정되었다. 그 후 창고를 열어 남은 식량을 굶주린 백성들에게 나누어 주니, 왕망부터 시작해서 적미, 외효, 강족 등의 수탈로 초토화됐던 서주(西州)는 겨우 생기를 되찾았다.

건무 11년(35년) 6월, 내흡은 마성, 갑연과 함께 하변(下辨)에서 공손술의 장수 왕원, 환안(環安)과 싸워 대승을 거두고 익주로 진격하려 하고 있었다. 이에 촉 땅의 사람들은 크게 두려워 자객을 보내 내흡을 찔렀다. 칼에 맞은 내흡은 절명하지 않은 채 급히 사람을 보내 호아대장군 갑연을 막사로 불렀다. 중상을 입은 내흡의 모습을 본 갑연은 살릴 수 없음 직감해 그 자리에서 땅에 엎드려 매우 비통해하며 차마 고개를 들지 못하였다. 내흡은 그런 갑연을 보고 크게 꾸짖었다.
"호아여, 네가 어찌 감히 그럴 수 있는가! 지금 나는 자객에 찔려 더이상 나라에 보답할 길이 없으니 그대를 불러 군사를 맡기려 했거늘, 그대는 오히려 어린 자녀마냥 질질 짜고만 있구나! 비록 지금 칼이 내 몸에 박혀있으나, 군사를 부려 그대를 참하는 것조차 못할 줄 아느냐!"
갑연은 억지로 눈물을 거두고 일어나 내흡으로부터 앞으로의 전략을 전달받았다. 대략적인 설명을 끝낸 내흡은 붓을 들어 광무제에게 올리는 표문을 썼다.
신은 한밤중에 누군가에게 찔려 치명상을 입었습니다. 신이 맡은 직무를 다하지 못해 조정에 수모를 끼치는 점이 참으로 원통하나이다. 나라를 다스리는 것은 현인을 얻는 것을 근본으로 하니, 폐하께선 정직하여 일을 맡길 수 있는 태중대부 단양(段襄)을 중용하는 것을 고려해주시길 바랍니다. 또, 신의 형제가 불초하여 언젠가 죄를 저지를 것이 염려되오니, 폐하께선 그들을 어여삐 여기시어 잘 가르치고 감독해주시옵소서.
글을 마친 내흡은 붓을 집어던지고 박혀있던 칼을 뽑아 목숨을 끊었다.

광무제는 불과 얼마 전에 승전보를 전해온 내흡이 갑자기 죽었다는 소식에 크게 놀랐고, 표문을 읽는 내내 눈물을 흘렸다. 이윽고 표문을 다 읽은 광무제는 눈물을 닦고 책서를 내리며 말했다.
"중랑장 내흡은 해마다 전투에 나서서 강족, 농 땅의 하나라를 평정하였으니 그 충효가 참으로 대단하구나! 한데 불의의 사고로 목숨을 잃고 말았으니, 오호 애달프도다!"
그리고는 태중대부를 보내 내흡에게 정강후(征羌侯)의 작위를 하사하고 시호를 '절(節)'이라 하였다.[4] 이후 알자를 보내 시신을 옮기고, 낙양에서 장례를 치를 때 친히 조문하였다. 광무제는 내흡이 농 땅에서 강족을 평정한 공을 기려 당향현(當鄉縣)을 정강국(征羌國)으로 개편하였다.

내흡의 동생 내유(來由)는 의서후(宜西侯)에 봉해졌고 아들 내포(來褒)는 아버지의 정강후 작위를 물려받았다. 참고로 그의 6세손이 바로 삼국시대 촉한에서 집신장군을 지낸 내민이다.


[1] 공손술의 자(字)[2] 외순의 자(字)[3] 외효는 기성을 지키던 도중 병사했고 그의 아들 외순이 뒤를 이은 상태였다.[4] 내흡의 중랑장 관인은 마성이 물려받아 토벌을 이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