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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315288><colcolor=#fff> 강진 삼인리 비자나무 康津 三仁里 비자나무 Japanese Torreya of Samin-ri, Gangjin | |
소재지 | 전남 강진군 병영면 동삼인길 28-10 (삼인리) |
소유자 | 강진군 |
관리자 | 강진군 |
분류 | 자연유산 / 천연기념물 / 문화역사기념물 / 기념 |
수량/면적 | 1주 |
지정연도 | 1962-12-07 |
|
1. 개요
|
언덕 아래서 바라본 삼인리 비자나무 |
2. 상세
수고 11.5m, 흉고둘레 5.8m, 수령은 500년 정도로 추정되는 비자나무이다. 삼인리 마을회관 옆 비탈지에서 자라고 있다. 바로 아래에는 전라병마절도사영 터가 있다. 밑동으로부터 1.5m 높이에서 가지가 갈라져 한쪽은 곧게, 한쪽은 언덕 아래쪽을 향해 자라고 있다. 나무의 수세가 매우 왕성하고 건강한 편이라 언덕 밑에서 보면 언덕 전체를 덮고 있듯이 보인다.비자나무는 목재로써 매우 유용하기 때문에 오래된 나무가 별로 없다. 그런데도 이 나무가 오랫동안 살아남을 수 있던 이유는 그 생김새 때문이라고 추정된다. 목재로 적합한 나무는 곧게 자란 것인데, 이 비자나무는 언덕 아래로 향하는 수형에서 알 수 있듯이 가지가 너무 일찍 갈라져 아래를 향하게 자랐다. 이때문에 전라병마절도사영을 짓기 위해 다른 비자나무들이 잘리는 와중에도 혼자만 남게 되었다. 즉 못생겨서 살아남은 것. 그리고 비자나무의 열매는 구충 효과가 있기 때문에 약용으로 사용하기 위해 이 나무를 보존했을 것이라고도 추정하며, 나무가 크게 자란 뒤에는 마을의 신목으로서 신성시되며 보호받았다.
같은 병영면에 위치한 강진 성동리 은행나무와는 상당히 거리가 가까운 편으로, 직선거리로 약 500m 정도 떨어져 있다. 도보로는 약 10~20분 정도 걸린다.
3. 외부링크
4. 천연기념물 제39호
비자나무는 우리나라의 내장산 이남과 일본에서 자란다. 나무의 모양이 아름다워 관상용으로 많이 이용되며, 열매는 구충제 및 변비 치료제나 기름을 짜는데 쓰인다.
강진 삼인리의 비자나무는 나이가 약 500살 정도로 추정되며, 높이 11.5m, 가슴높이 둘레 5.8m의 크기이다. 지상 1.5m 부근에서 커다란 가지가 넷으로 갈라졌다. 이 나무가 500여 년(지정일 기준) 동안이나 벌채를 피해 자랄 수 있었던 것에 대해서는 두 가지 견해가 있다. 첫째는 태종 17년(1417)에 이 곳에 전라병마절도사영을 설치하기 위해 주변의 쓸만한 나무는 모조리 베었으나, 당시 이 나무는 키가 작고 휘어서 건축용 목재로 부적당하였기 때문에 오늘날까지 살아남게 되었으리라는 견해와, 둘째는 당시 이 나무의 열매는 기생충을 구제하는 유일한 약이었기 때문에 이 곳 사람들의 보호를 받아왔을 것이라고 보는 견해이다.
마을 사람들은 이 나무를 마을을 지키는 수호신으로 여겨 매년 음력 1월 15일에 나무 주위를 돌면서 마을의 평안을 빌고 있으며, 한여름에는 더위를 식혀 주는 피서처가 되기도 한다.
강진 삼인리 비자나무는 오랜 세월 동안 마을 사람들의 관심과 보살핌 속에 살아온 역사적·문화적 자료로서의 가치가 높아 천연기념물로 지정·보호하고 있다.
강진 삼인리의 비자나무는 나이가 약 500살 정도로 추정되며, 높이 11.5m, 가슴높이 둘레 5.8m의 크기이다. 지상 1.5m 부근에서 커다란 가지가 넷으로 갈라졌다. 이 나무가 500여 년(지정일 기준) 동안이나 벌채를 피해 자랄 수 있었던 것에 대해서는 두 가지 견해가 있다. 첫째는 태종 17년(1417)에 이 곳에 전라병마절도사영을 설치하기 위해 주변의 쓸만한 나무는 모조리 베었으나, 당시 이 나무는 키가 작고 휘어서 건축용 목재로 부적당하였기 때문에 오늘날까지 살아남게 되었으리라는 견해와, 둘째는 당시 이 나무의 열매는 기생충을 구제하는 유일한 약이었기 때문에 이 곳 사람들의 보호를 받아왔을 것이라고 보는 견해이다.
마을 사람들은 이 나무를 마을을 지키는 수호신으로 여겨 매년 음력 1월 15일에 나무 주위를 돌면서 마을의 평안을 빌고 있으며, 한여름에는 더위를 식혀 주는 피서처가 되기도 한다.
강진 삼인리 비자나무는 오랜 세월 동안 마을 사람들의 관심과 보살핌 속에 살아온 역사적·문화적 자료로서의 가치가 높아 천연기념물로 지정·보호하고 있다.
4.1. 안내판 설명
康津 三仁里 비자나무
천연기념물 제39호
비자나무는 우리나라의 내장산 이남과 일본에서 자란다. 나무의 모양이 아름다워 관상용으로 많이 이용하며, 열매는 구충제나 변비 치료제나 기름을 짜는 데에 쓴다. 삼인리 비자나무는 높이 10m, 가슴둘레 5.2m이다. 가지는 동서로 15m, 남북으로 13.5m 정도 퍼졌으며 수령은 약 400년 정도이다.
이 나무가 자라는 앞뜰에는 전라도 57주를 총지휘하던 전라 병마절제사 영을 조선 태종 17년(1417)에 설치하여 1895년까지 존속하였다. 전라 병마도절제사 영을 세울 때에 쓸 만한 나무는 모조리 베어 사용했으나, 이 나무는 키가 작고 가지가 휘어져 건축용 목재로 적당하지 않아서 살아남게 되어 현재에 이르렀다고 전한다.
이 비자나무는 열매를 촌충 구제에 사용하기 위해서도 나무를 잘 보호한 것으로 보인다.
마을 사람들은 이 나무를 마을을 지키는 수호신으로 여겨 매년 음력 1월 15일에 나무 주위를 돌면서 마을의 평안을 빌고 있다. 이 나무는 한여름에는 더위를 식혀 주는 피서처 구실을 하기도 한다. 이와 같이 삼인리의 비자나무는 오랜 세월 동안 마을 사람들의 관심과 보살핌 속에 살아온 역사적·문화적 자료로 가치가 높아 천연기념물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천연기념물 제39호
비자나무는 우리나라의 내장산 이남과 일본에서 자란다. 나무의 모양이 아름다워 관상용으로 많이 이용하며, 열매는 구충제나 변비 치료제나 기름을 짜는 데에 쓴다. 삼인리 비자나무는 높이 10m, 가슴둘레 5.2m이다. 가지는 동서로 15m, 남북으로 13.5m 정도 퍼졌으며 수령은 약 400년 정도이다.
이 나무가 자라는 앞뜰에는 전라도 57주를 총지휘하던 전라 병마절제사 영을 조선 태종 17년(1417)에 설치하여 1895년까지 존속하였다. 전라 병마도절제사 영을 세울 때에 쓸 만한 나무는 모조리 베어 사용했으나, 이 나무는 키가 작고 가지가 휘어져 건축용 목재로 적당하지 않아서 살아남게 되어 현재에 이르렀다고 전한다.
이 비자나무는 열매를 촌충 구제에 사용하기 위해서도 나무를 잘 보호한 것으로 보인다.
마을 사람들은 이 나무를 마을을 지키는 수호신으로 여겨 매년 음력 1월 15일에 나무 주위를 돌면서 마을의 평안을 빌고 있다. 이 나무는 한여름에는 더위를 식혀 주는 피서처 구실을 하기도 한다. 이와 같이 삼인리의 비자나무는 오랜 세월 동안 마을 사람들의 관심과 보살핌 속에 살아온 역사적·문화적 자료로 가치가 높아 천연기념물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