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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 | 금성면 | 군북면 | 남이면 | |
남일면 | 복수면 | 부리면 | ||
제원면 | 진산면 | 추부면 |
충청남도의 자치군 {{{#!wiki style="margin: -5px -10px; display: inline-table" | <tablebordercolor=#fff,#1c1d1f><tablebgcolor=#fff,#1c1d1f> | 금산군 錦山郡 Geumsan County | }}} | |||
<colbgcolor=#FFB300><colcolor=#fff> 군청 소재지 | 금산읍 군청길 13 (상리) | |||||
광역자치단체 | 충청남도 | |||||
하위 행정구역 | 1읍 9면 | |||||
면적 | 577.21㎢ | |||||
인구 | 49,663명[1] | |||||
인구밀도 | 86.03명/㎢[2] | |||||
군수 | | 박범인 (초선) | ||||
군의회 | | 4석[3] | ||||
| 2석[4] | |||||
| 1석[5] | |||||
도의원 | | 2석[6] | ||||
국회의원 | | 황명선 (논산·계룡·금산 / 초선) | ||||
상징 | 군화 | 모란 | ||||
군목 | 소나무 | |||||
군조 | 파랑새 | |||||
군어 | 감돌고기 | |||||
마스코트 | 삼신령과 삼동이[7][8] | |||||
브랜드 | ||||||
지역번호 | 041[9] | |||||
홈페이지 | ||||||
SNS |
금산군청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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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충청남도 남동부에 있는 군.주변이 모두 산으로 둘러쳐진 분지 고지대에 있으며, 북으로는 대전광역시 중구, 동구, 남으로는 전북특별자치도 무주군, 진안군, 서로는 충청남도 논산시, 서북방향으로 대전광역시 서구, 서남방향으로 전북특별자치도 완주군, 동으로는 충청북도 영동군, 동북방향으로 충청북도 옥천군과 인접해 있다. 충청남도의 남동부에 위치한 기초자치단체(자치군)이다. 또한 충청남도의 군들 중 유일하게 충남 동부에 있다.[10]
2. 역사
백제 때 진잉을군(進仍乙郡)이었고 신라 경덕왕의 지명 한화정책 때 진례군(進禮郡)으로 개명했다.1895년 6월 23일 23부제로 개편되면서 진산군(현 진산면, 추부면, 복수면 일대.)과 함께 공주부에 편입되었다. 그러다가 이듬해 13도제로 개편되면서 1896년 8월 4일 칙령 제36호에 따라 전라북도에 편입되었다. 그러다 1914년 3월 1일 부로 진산군이 금산군에 통합되었다. 그후 박정희 정권 시기인 1962년 12월 12일서울특별시, 도, 군, 구의 관할구역 변경에 관한 법률(법률 제 1172호)에 의한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공주시 지역이 소속된 충청남도로 이관됐다. 이에 대해서는 5.16 군사정변에 가담한 육군사관학교 8기 출신의 길재호(1923~1985)가 주도하였다는 말이 있다.[11][12] 다만 23부제 당시 공주부에 소속되었던 상당수의 지역이 충청북도로 편제되었음에도 금산 지역은 충남도로 편입되었다.
1977년 2월 박정희 정권의 행정수도 이전 백지계획 수립 당시, 천안, 청주, 연기, 공주, 논산, 보은, 옥천 등과 함께 이전 대상지로 검토되기도 했다.
2018년 7월 금산인삼이 UN FAO에서 지정한 세계중요농업유산으로 등재되었다.
3. 지리
수계로는 모두 금강수계이지만, 세부적으로는 조금씩 구분된다. 금산읍을 중심으로 한 군 중부와 남부는 제원면에서 금강 본류에 합류하는 봉황천 유역에 해당되며, 추부면을 관통하는 추풍천은 옥천군 군서면 쪽으로 흐르고 복수면과 진산면을 흐르는 유등천은 대전광역시로 연결된다. 게다가 진산면 오항리와 남이면 건천리 쪽은 논산천 유역으로 금강 하류인 강경읍으로 연결된다. 금산 중심으로 치면 무려 9개 지역[13]을 그리고 금성산 줄기가 이 세 지역의 경계를 형성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소생활권 자체도 북쪽의 추부면 등은 금산읍내보다는 대전시내에 속한다.금강 본류 유역에 해당되는 지역은 금산읍, 제원면, 금성면에 걸쳐서 상당히 넓은 분지가 형성되어 있다.
충남의 최남단 지역임에도 충남에서는 눈이 가장 오랫동안 내리는 지역으로, 충청남도에서 화이트 어린이날을 볼 수 있는 유일한 지역이 금산이다. 그만큼 3월, 4월도 다른 지역보다 추운 편이다. 물론 2018년 기준으로 여름에는 상당히 더운 지역이다.(최고 기온이 39도). 한마디로 사시사철 일교차가 크게 벌어지는 대륙성 기후의 전형을 띄는 지역이다.
===# 대전광역시 편입(행정구역 개편) 논의 #===
금산군 대전 편입 전/후 (2023년 12월 행정안전부 주민등록인구 통계 기준) | ||
편입 전[A] | 편입 후[B] | |
면적 | 539.7㎢ | 1,116.94㎢ |
인구 | 1,442,216명 | 1,492,309명 |
인구밀도 | 2,672.25명/㎢ | 1,336.07명/㎢ |
대전이 허허벌판이었던 시절엔 금산군은 전라북도(현 전북특별자치도) 소속이었고, 전주 생활권에 속했다. 그러나 일제강점기 대전에 경부선과 호남선 철도가 들어온 이후 전주가 쇠락하고 대전이 급속도로 발전하면서 금산은 대전의 영향 아래 붙게 되었다. 금산이 충청남도로 편입된 이유 역시 전북도청 소재지인 전주보다 당시 충남도청 소재지였던 대전이 훨씬 더 가깝기 때문이었다. 금산이 충남에 편입되기 약 3년 전인 1959년에는 대전과 금산 사이 태봉산[16]을 관통하는 추부터널 또한 개통되어 금산과 대전과의 거리가 더욱 좁혀졌다.# 현재 대생활권은 대전에 완전히 속해 있으며, 추부면 등 북부지역은 소생활권도 대전에 의존한다.
금산의 대전 편입은 1980년대 후반 심대평 전 충남도지사 때부터 선거 국면마다 거론됐다가 수그러들길 반복한 이슈다. 2008년과 2010년 실시한 금산군민 여론조사에서 절반 이상이 대전 편입에 찬성했으며## 2010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통합 찬성 단체가 금산군민 2만명의 서명을 받은 의견서를 군의회에 제출했고, 2016년 5월엔 대전시의회에서 ‘대전·금산 행정구역 변경 촉구 건의안’이 채택되기도 했다. 2024년 군의회는 대전 편입 건의안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17] 국민의힘 동구 국회의원 후보인 윤창현도 핵심 공약 중 하나로 대전, 금산 통합을 내세우며 다시 한번 화두가 되었다.#
편입 시 대전광역시는 전북특별자치도와 붙게 되며 대전 최고봉이 서대산(904m)으로 바뀌고, 계룡산이 충남 최고봉이 된다.
그러나 금산의 대전 편입이 현실화될 가능성은 매우 낮다. 군위가 대구에 편입된 것처럼 금산도 대전에 편입할 수 있을 것처럼 보이지만 군위와 금산은 사정이 다르다. 군위가 대구에 편입될 수 있었던 건 경북 입장에서 내어줘도 딱히 아쉬울 게 없는 낙후지역[18]+통합 신공항 건설이라는 조건이 맞아떨어져서 이루어진 결과물이며, 금산은 이런 조건들을 충족하지 않는다. 금산이 군위만큼 인구가 희박한 지역도 아니고, 지방채무가 없는 상태를 장기간 유지할 정도로 재정상태가 나쁘지도 않다.[19][20]
이렇다보니 충청남도는 금산군의 대전 편입 논의에 강경하게 반대하고 있다. 김태흠 충청남도지사는 금산의 대전 편입과 공주의 세종 편입 모두 공개 반대했다.# 말뿐만 아니라 금산군에 충청남도청 남부출장소를 박아놓아 도청이 멀어졌다는 불평도 일축시켜 버렸다.[21] 아무리 생활권이 밀접하게 엮였다 한들 소속 도가 동의하지 않으면 편입은 절대 이뤄질 수 없다.[22][23] 이를 잘 보여주는 사례가 경산이다. 경산은 대구와 연담화를 넘어서서 한몸으로 보일 정도로 대구 생활권에 종속되어 있으며, 매번 편입 논의가 나왔지만 경상북도의 반대로 실현되지 않고 있으며 오히려 논의가 거의 이뤄진 적도 없는 군위가 대구에 편입되었다.[24]
====# 대전 대신 타 지역 편입 시 #====
대전 편입보다도 더 가능성이 없는 얘기다. 대전 편입 논의는 최소한 정치권에서 계속 나왔지만 타 지역 편입은 기껏해야 전북 주민 일부가 주장한 게 전부이다.[25] 금산이 시류에 따라 행정구역을 옮겨다니려는 것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여론이 존재한다.[26][27]
4. 인구
금산군 인구 추이 (1966년~현재) |
1963년 1월 1일 전라북도 금산군 → 충청남도 편입 |
1966년 124,944명 |
1970년 120,492명 |
1975년 122,707명 |
1980년 103,989명 |
1985년 95,229명 |
1990년 84,064명 |
1995년 70,831명 |
2000년 64,754명 |
2005년 59,867명 |
2010년 56,555명 |
2015년 54,879명 |
2020년 51,413명 |
2024년 10월 49,663명 |
인구는 현재 행정구역이 아닌 해당 연도 행정구역 기준, 그래프 최대 값은 12.5만 명 |
읍면별 인구 통계 |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 금산읍 22,637명 |
추부면 5,939명 | |
진산면 3,116명 | |
금성면 3,057명 | |
복수면 2,881명 | |
남일면 2,757명 | |
제원면 2,691명 | |
부리면 2,357명 | |
군북면 2,320명 | |
남이면 1,982명 | |
2024년 9월 기준 행정안전부 주민등록인구통계, 그래프 최대 값은 2.5만 명 |
여느 농촌 지역처럼 인구가 줄고 있으며 주변 행정구역과 마찬가지로 인구소멸 고위험 지역으로 분류된다. 5만 명 선이 붕괴될듯 말듯 간당간당하게 늘었다 줄었다를 반복하다가 2024년 2월 5만선이 무너졌다가 3월에 다시 5만 명 선을 회복했지만 2024년 6월 5만선이 다시 붕괴되었다.
===# 읍면별 인구 #===
금산읍 인구 추이 (1966년~현재) |
1966년 24,067명 |
1970년 25,514명 |
1975년 28,970명 |
1980년 29,366명 |
1985년 31,680명 |
1990년 31,436명 |
1995년 24,782명 |
2000년 25,281명 |
2005년 23,922명 |
2010년 24,133명 |
2015년 23,993명 |
2020년 22,858명 |
2024년 9월 22,637명 |
인구는 현재 행정구역이 아닌 해당 연도 행정구역 기준, 그래프 최대 값은 3.25만 명 |
금성면 인구 추이 (1966년~현재) |
1966년 12,734명 |
1970년 12,205명 |
1975년 11,769명 |
1980년 9,496명 |
1985년 8,023명 |
1990년 6,395명 |
1995년 6,470명 |
2000년 5,105명 |
2005년 4,434명 |
2010년 4,087명 |
2015년 3,668명 |
2020년 3,320명 |
2024년 9월 3,057명 |
인구는 현재 행정구역이 아닌 해당 연도 행정구역 기준, 그래프 최대 값은 1.25만 명 |
제원면 인구 추이 (1966년~현재) |
1966년 12,458명 |
1970년 11,436명 |
1975년 11,176명 |
1980년 8,443명 |
1985년 7,312명 |
1990년 5,545명 |
1995년 4,917명 |
2000년 4,007명 |
2005년 3,508명 |
2010년 3,270명 |
2015년 3,106명 |
2020년 2,841명 |
2024년 9월 2,691명 |
인구는 현재 행정구역이 아닌 해당 연도 행정구역 기준, 그래프 최대 값은 1.25만 명 |
부리면 인구 추이 (1966년~현재) |
1966년 12,639명 |
1970년 12,141명 |
1975년 12,077명 |
1980년 9,850명 |
1985년 7,945명 |
1990년 5,976명 |
1995년 5,109명 |
2000년 4,318명 |
2005년 3,454명 |
2010년 3,057명 |
2015년 2,787명 |
2020년 2,462명 |
2024년 9월 2,357명 |
인구는 현재 행정구역이 아닌 해당 연도 행정구역 기준, 그래프 최대 값은 1.25만 명 |
군북면 인구 추이 (1966년~현재) |
1966년 9,450명 |
1970년 8,891명 |
1975년 8,858명 |
1980년 6,786명 |
1985년 5,685명 |
1990년 4,368명 |
1995년 4,003명 |
2000년 3,303명 |
2005년 2,862명 |
2010년 2,686명 |
2015년 2,729명 |
2020년 2,527명 |
2024년 9월 2,320명 |
인구는 현재 행정구역이 아닌 해당 연도 행정구역 기준, 그래프 최대 값은 1만 명 |
남일면 인구 추이 (1966년~현재) |
1966년 10,400명 |
1970년 9,822명 |
1975년 9,948명 |
1980년 8,021명 |
1985년 6,712명 |
1990년 4,961명 |
1995년 4,310명 |
2000년 3,483명 |
2005년 3,036명 |
2010년 2,882명 |
2015년 2,998명 |
2020년 2,871명 |
2024년 9월 2,757명 |
인구는 현재 행정구역이 아닌 해당 연도 행정구역 기준, 그래프 최대 값은 1만 명 |
남이면 인구 추이 (1966년~현재) |
1966년 10,515명 |
1970년 9,897명 |
1975년 9,841명 |
1980년 7,076명 |
1985년 5,598명 |
1990년 3,957명 |
1995년 3,691명 |
2000년 2,677명 |
2005년 2,298명 |
2010년 2,319명 |
2015년 2,205명 |
2020년 2,154명 |
2024년 9월 1,982명 |
인구는 현재 행정구역이 아닌 해당 연도 행정구역 기준, 그래프 최대 값은 1만 명 |
진산면 인구 추이 (1966년~현재) |
1966년 11,195명 |
1970년 11,040명 |
1975년 10,648명 |
1980년 8,409명 |
1985년 7,055명 |
1990년 5,296명 |
1995년 4,871명 |
2000년 4,337명 |
2005년 3,786명 |
2010년 3,511명 |
2015년 3,367명 |
2020년 3,213명 |
2024년 9월 3,116명 |
인구는 현재 행정구역이 아닌 해당 연도 행정구역 기준, 그래프 최대 값은 1.25만 명 |
복수면 인구 추이 (1966년~현재) |
1966년 10,365명 |
1970년 9,397명 |
1973년 7월 1일 복수면 용지리 → 추부면 편입 |
1975년 8,138명 |
1980년 6,590명 |
1985년 5,995명 |
1990년 5,475명 |
1995년 4,752명 |
2000년 4,276명 |
2005년 3,870명 |
2010년 3,725명 |
2015년 3,453명 |
2020년 3,072명 |
2024년 9월 2,881명 |
인구는 현재 행정구역이 아닌 해당 연도 행정구역 기준, 그래프 최대 값은 1만 명 |
추부면 인구 추이 (1966년~현재) |
1966년 11,108명 |
1970년 10,149명 |
1973년 7월 1일 복수면 용지리 → 추부면 편입 |
1975년 11,272명 |
1980년 9,952명 |
1985년 9,224명 |
1990년 10,655명 |
1995년 7,926명 |
2000년 7,967명 |
2005년 8,697명 |
2010년 6,885명 |
2015년 6,573명 |
2020년 6,095명 |
2024년 9월 5,939명 |
인구는 현재 행정구역이 아닌 해당 연도 행정구역 기준, 그래프 최대 값은 1.25만 명 |
5. 교통
자세한 내용은 금산군/교통 문서 참고하십시오.6. 경제
6.1. 산업
전형적인 농업지역이지만 제원면에 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 금산공장이 있다. 이 공장은 세계에서 가장 큰 타이어 생산공장으로 알려져 있으며, 사실상 금산 경제의 대들보 중 하나이다.그러나 뭐니뭐니해도 금산을 대표하는 것은 단연 인삼으로, 긴 말이 필요없는 전국 제일의 인삼 산지이다. 금산읍에 전국 최대 규모의 인삼 시장이 형성되어 있어 한창 잘 나갈 때는 전국에서 유통되는 인삼의 70~80%가 금산에서 거래되었고, 지금도 무주, 진안, 영동, 대전 등 인접 지역에서 수확된 인삼들도 금산에서 많이 유통된다.[28] 영광군의 굴비, 순창군의 고추장 등과 함께 지역 특산물이 지역의 네임밸류로 정착된 대표적인 사례. 덕분에 위의 두 도시와 같이 미국에서 금산을 멋대로 선점 상표등록을 한 업체가 금산 인삼에 상표 저작권비를 달라고 굴었다가 법정 소송을 벌여 이긴 바 있다. 웃긴 건 세 도시 모두 엉뚱한 영어 이름으로 상표등록하고 세 도시에 특산물 관련 저작권비를 달라고 징징거렸는데 미국 어느 업체는 금산을 골드 마운틴(Gold Mountain)[29]이라 등록하곤 금산과 똑같다고 돈달라고 했다가 맞소송으로 금산은 그 이름이 아니며 (1990년대 후반에는 Kumsan으로 등록했다.) 옛 서적 및 지도를 보이며 대응한 끝에 승소했다.
2005년 통계에 따르면 금산의 인삼 재배 면적은 전국 인삼 재배 면적의 15%에 달하였다. 최근 들어 경기도, 충청북도의 인삼 재배 면적이 급증하면서 점유 비율은 떨어졌지만, 그래도 시, 군 단위로는 전국 최대의 인삼 산지인 것은 분명하다.[30] 게다가 금산 이외 지역의 인삼밭에서 길러지는 인삼의 최종 소유주는 어차피 금산 사람들인 경우가 많다.[31] 보통 4년 최대 6년에 달하는 재배기간과 그에 따른 막대한 비용 등을 따지면 결국은 그렇게 될 수밖에 없다. 그러다보니 주로 금산에 인접하면서 지형, 자연조건이 비슷한 옥천군, 영동군, 진안군, 무주군, 완주군, 논산시 등이 금산의 인삼셔틀이 된다.
세계인삼엑스포를 2006년, 2011년, 2017년에 이어 지난 2023년에도 개최했다. 이전만 못하지만 그래도 인삼은 금산을 대표하는 특산물이기에 꾸준히 군에서 밀어주고 있으며 금산세계인삼축제에 백종원을 영입하고, 금산삼계탕축제를 새로 만드는 등, 금산 인삼 홍보와 시장 활성화를 위해 도모하고 있다.
지리적 표시제/대한민국에는 특이하게도 인삼이 아닌 금산 깻잎이 등록되어 있는데 이는 인삼의 작물 특성상 수익의 리스크가 많이 크기에 재배 면적이 점점 감소하면서 이에 대한 대안책으로 같이 밀어주고 있어서 그런 걸로 추정된다. 이제는 금산군 어디에서나 인삼밭보다 깻잎 하우스를 더 흔하게 볼 수 있으며, 특히 추부면에서 더 많이 볼 수 있다. 밤에 주변 일대를 지나가다 보면 불을 환하게 켜 놓은 깻잎 하우스들이 줄지어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삼천리자전거의 브랜드인 첼로 자전거를 타는 금산인삼 첼로 자전거팀을 후원하고 있다.
6.2. 상권
상권도 어느정도 있다.바로 위에 대도시 대전광역시가 있어 지금은 사실상 대전 상권에 편입되어 버렸지만, 대전이 지금처럼 성장하기 전인 6,70년대까지만 해도 전국 최대의 인삼 시장이 열리던 곳이라, 전국 각지에서 오는 인삼 상인들로 붐볐기 때문에 금산 상권도 나름대로 한가락 하던 시절이 있었다. 물론 이제는 옛날 이야기가 되었지만 지금도 진안군 북부나 무주군 서부 지역은 금산 상권에 의존하는 경향이 있다.[32]
패스트푸드점은 롯데리아 1곳, 맘스터치 2곳이 있다.
6.3. 금융
금산군에 위치한 금융기관[괄호] | |||
제1금융권[괄호] | |||
국가기관 | |||
금산우체국 (10) | |||
특수은행 | |||
농협은행(중앙회) (2) | |||
시중은행 | |||
하나은행 (1) | |||
제2금융권(상호금융)[괄호] | |||
농업협동조합 | |||
금산농협 (10) | 부리농협 (1) | 만인산농협 (5) | 진산농협 (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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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관광
대둔산 도립공원이 있다. 충청남도에서 가장 높은 서대산(해발 904m)도 이 곳에 있다. 임진왜란(금산 전투) 당시 순절한 의병장 조헌, 승장 영규를 비롯한 700의사를 모신 무덤인 칠백의총도 있다. 만약 낚시를 좋아한다면 화림지에서 배스를 낚으며 생태계도 보존하는 일석이조를 누릴수도 있다.유명한 사찰으로는 신라시대에 창건된 태고사와 보석사가 있다.
세계인삼축제가 매해 9월~10월 열린다.
8. 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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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산군 소재 대학교는 중부대학교가 있으며 추부면에 위치해 있다. 또한 금산군에는 여러 대안학교들이 모여있는데, 이들 대안학교들은 공중파 및 각종 매스컴에 소개되어 간간히 지역 홍보의 창구역할을 하고, 금산군 내 인구유입에도 도움을 주고 있는 형편이어서 군 차원에서 이들 대안학교에 여러 정책적인 지원을 해주고 있는 상황이다. 금산군 소재의 대안학교로는 남일면의 별무리학교와 사사학교, 남이면의 금산간디학교[36], 진산면의 레드스쿨, 그리고 복수면의 리버트리스쿨이 있다.
9. 정치
자세한 내용은 금산군/정치 문서 참고하십시오.10. 하위 행정구역
자세한 내용은 금산군/행정 문서 참고하십시오.
11. 여담
국가대표 여자 펜싱 선수 3명[37]을 키워낸 지역이며, 3명 모두 올림픽 메달리스트이다.[38]금성면에는 1971년에 완공된 우리나라 최초의 위성통신지구국이 있다. 위치는 칠백의총 주변. 지금도 운행중이지만 이전부터 한국통신(현 KT) 소유였기에 Olleh 문구가 적혀있다. 여담이지만, 고등학교 교과서 중 교학사 물리 맨 앞 부분에 위성통신지구국 사진이 실려 있다.
한국에서 확인된 우라늄 광체 중 하나가 바로 이 금산에 있다(정확히는 금산-대전 접경지역. 위에서 언급한 서대산 인근). 물론 주민들 반대가 엄청나게 심해서 개발은 불가능한 상태.
금강의 상, 중, 하류가 모두 공존하는 지역인데, 금산군은 대개 금강 상류~중류에 속하며, 추부면과 복수면, 진산면 일부에 있는 지류는 각각 중류 지역인 옥천과 대전,청주 경계 지점으로 흘러가며 남이면 일부에 있는 하천은 전북 완주군, 충남 논산시를 거쳐 하류 지역인 강경으로 흘러간다.[39]
2023년 10월 6~15일에 '금산 세계인삼축제'가 열렸다. 이어 '먹거리 개선 시범사업'의 일환으로 더본코리아 백종원 대표가 등판했다.
도로명 표지판이 특이한 지역이다. 표지판에 비단뫼가 적혀있고 교차로에서는 다른 지역은 2, 4정도 짝수 차이 만큼 번호가 띄어있는데 금산군만 특이하게 홀수인 3씩 띄어져 있다.[40]
12. 출신 인물
- 강상원
- 고득영: 보건복지부 관료
- 곽영달(1934)
- 곽영욱
- 길종섭
- 김귀환
- 김민균: 뮤지컬 배우 겸 가수
- 김복만(1946)
- 김석곤
- 김제만
- 김종천(1968)
- 김창한: 정치인
- 김행기
- 김현근(1938)
- 류재영: 전 전라북도 교육감, 독립운동가
- 문정우: 前 금산군수
- 박대선
- 박동철
- 박범인: 現 금산군수
- 박석우(정치인)
- 박성준(정치인): 제21대 국회의원[41]
- 박영규
- 박찬중
- 박태우(정치인)
- 박팔영
- 박한열: 극작가, 연출가 감독
- 박해춘
- 박희조
- 박순천: 배우
- 백찬기
- 샤이니: 영어 강사. 본명 김재영.
- 송세라: 펜싱 선수.
- 송준빈
- 신아람: 펜싱 선수.
- 심정수
- 심현영
- 유진산: 국회의원.
- 유한열: 국회의원. 유진산의 아들.
- 육상래
- 윤재호(1948)
- 이상헌(1957)
- 이창명: 개그맨, MC.
- 이현상
- 인창원
- 임문환
- 임영신: 상공부장관, 국회의원, 중앙대학교 설립자 및 초대 총장
- 임홍빈
- 장일(1958)
- 전연석
- 정명석: 기독교복음선교회(JMS)의 회장.
- 정청래: 제17, 19, 21대 국회의원[42]
- 정태영: 국회의원.
- 정해준
- 조성호(1969)
- 주영훈(공무원)
- 최만호
- 최명수
- 최인정: 펜싱 선수.
- 한현택: 前 대전광역시 동구청장.
- 윤지충, 권상연: 진산 사건, 윤지충 바오로와 123위 동료 순교자 참조.
13.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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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024년 10월 기준 행정안전부 주민등록인구통계[2] 2024년 10월 기준.[3] 금산군 가선거구 (금산읍, 부리면, 남일면, 남이면): 송영천
금산군 나선거구 (금성면, 제원면, 군북면, 진산면, 복수면, 추부면): 김기윤, 최명수
금산군 비례대표: 정기수[4] 금산군 가선거구 (금산읍, 부리면, 남일면, 남이면): 박병훈
금산군 나선거구 (금성면, 제원면, 군북면, 진산면, 복수면, 추부면): 정옥균[5] 금산군 가선거구 (금산읍, 부리면, 남일면, 남이면): 심정수[6] 금산군 제1선거구 (금산읍, 부리면, 남일면, 남이면): 김석곤 (5선)
금산군 제2선거구 (금성면, 제원면, 군북면, 진산면, 복수면, 추부면): 김복만 (3선)[7] 금산의 특산물인 인삼을 형상화했다.[8]마스코트 위에 사랑의열매가 있다[9] 부리면 일부 지역에서는 전북특별자치도 번호인 063을 사용한다.[10] 원래는 충남 동부에도 군이 많았지만 금산군 외에는 전부 시로 승격했다. 마지막으로 금산군과 함께 있었던 군은 세종특별자치시로 분리승격된 연기군.[11] 한때는 충남 부여 출신인 김종필이 그 배후로 지목된 적이 있기도 했다. 이에 대해 김종필은 1987년 13대 대선 당시 전북을 방문했을 때 그때 자신은 4대 의혹 사건 등으로 안팎으로 견제를 당하고 있어서 그와 관련하여 영향력을 행사할 입장이 아니었으며, 자신이 전북과 연고가 없는 것도 아닌데(외가가 군산시이다.) 전북의 도세(道勢)를 줄이는 일을 벌이겠느냐며 해명했다고 한다.[12] 정작 이 일을 주도한 길재호는 평안북도 영변군 출신이다. 즉 금산과 아무 연고도 없는 셈. 다만 이유가 없지 않아 있는데, 이북 출신인 그가 지역구로 출마하며 자신의 정치적 고향을 선택하는데 전국에서 길 씨가 가장 많이 살고 있는 금산을 택했고 내친 김에 행정구역도 변경시켰다고 한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에는 혈연이 만연한 사회였고, 공교롭게도 야당 거물이자 금산에서 자란 지역 유지였던 유진산의 지역구였다. 그러나 그가 슬그머니 지역구를 떠나 전국구로 선회하는 시점인 1963년 1월에 금산은 충남으로 편입된다. 이 과정에서 유진산과 길재호의 묵계설 시비가 일어났다.[13] 금산 이후로 금강은 영동, 옥천, 보은, 청주, 대전, 세종, 공주, 청양, 부여를 거쳐 논산 강경으로 흐른다. 참고로 금산 중심부는 금강 상류 지역이다.[A] 대전광역시[B] 대전광역시+금산군[16] 현재 만인산[17] 충남 금산→대전 금산?…행정구역 변경 추진, 지자체·주민 찬반 갈려[18] 군위는 대구 편입 당시에도 낙후지역인 BYC와 비견되는 수준의 인구에, 재정자립도도 경북을 넘어서서 전국 꼴지 수준이었기에 경북의 재정에 별 도움이 되는 게 없었다.[19] 금산군 재정상태 3년 연속 채무 제로[20] 금산군이 충남에 편입된지 60년이 넘도록 전북에서 금산군의 충남 편입에 대한 울분이 가시지 않은 것도 금산군이 전북에 있던 시절 전북 관내 군들 중 가장 부유한 군이었기 때문이다. 당시만 해도 금산군은 같은 체급이었던 고창군, 부안군, 옥구군, 익산군은 물론, 더 체급이 컸던 정읍군, 남원군, 김제군, 완주군보다 더 잘 살았던 곳이었고 1인당 지역 총생산도 전북 1위로 3대 도시인 전주, 군산, 이리보다 높았다. 당시 전북 세수의 30퍼센트가 금산군에서 나왔을 정도였다.[21] 충청남도에서 남부출장소 설치를 놓고 논산에서도 유치전을 펼쳤으며 사실 도내에서 오로지 논산과 살짝 걸쳐있을 뿐인 금산보다는 충남 남부권에서 중심지에 위치하고 인구 규모도 제일 큰 논산에 설치해야 할 당위성이 높았다. 그럼에도 충청남도에서는 금산군에 남부출장소를 박아놓아 '금산은 충청남도의 영역이다'라는 사실을 공고히 한 것이다.[22] 금산군이 전북에서 충남으로 이관되었던 1962년 당시는 내무부에서 도지사 및 시장/군수를 임명하던 시절이었고, 5.16 쿠데타로 권력을 장악한 군사정부가 통치하던 시절이었으며, 군사정부에 의해 지방자치가 폐지되었기에 금산군은 전북의 동의 여부와 상관없이 국가재건최고회의 법률 공표만으로 충남에 이관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지방의회가 부활하고 도지사 및 시장/군수가 선거로 선출되고 있는 시대이므로 행정구역 변경 건의는 도지사와 도의회가 동시에 동의하지 않는 이상 국회에 상정될 수조차 없는데, 생각해 보라. 어느 도지사나 도의원이 미쳤다고 자기네 도의 면적과 인구가 줄어드는 것에 흔쾌히 동의하겠는가? 당장 금산군 충남 편입과 동시에 이루어진 서울 대확장도 경기도가 강력하게 반발했으며 군 하나가 통째로 이관된 금산군이나 울진군 정도나 예외지 그 군사정권 시절에도 광역행정구역 간의 구역 조정은 도의 반발로 인해 굉장히 신중을 기해 이루어졌다.[23] 거꾸로 충청남도는 전북 익산시 망성면, 완주군 운주면, 군산시 옥도면 개야도 등의 편입을 번번히 시도하지만 그때마다 전북의 강력 반발로 무산되었다. 이미 충남에 금산군과 황화면을 거하게 털렸던 전북에서는 충남의 편입 시도에 대해 단 1평의 땅도 절대 넘겨줄 수 없으며 그전에 금산군과 황화면부터 토해내라며 격앙된 반응을 보였고, 전라북도의회에서는 충청남도의 접계 지역 편입 시도에 대한 규탄 결의안을 채택하기도 했다. 웃기는 건 대전의 금산 편입 시도에 강력하게 반발하는 충남이 정작 전북의 반발에 대해서는 주민 편익을 외면하는 이기주의라며 비난한다는 점.[24] 이런 형태를 대전으로 바꿔 보자면 대전에 편입된 곳은 금산군, 계룡시가 편입되지 않고 오히려 논산시, 공주시가 대전에 들어간 것과 같다. 대구와 위상을 비교해 보자면 경산이 계룡과 비슷하며, 칠곡이 금산과 비슷한 셈이다. 다만 금산이 경부선 밖이고 철도가 없는걸 감안하면 도는 다르지만 인접한 옥천과 비슷한 셈.[25] 금산을 전라북도로 반드시 환원시키자~! 금산.황화를 조기 전북환원이 필요하다[26] 금산, 지역 정체성을 잃어서는 안 된다[27] 금산군이 계속 타 지역 편입을 운운하면 운운할수록 충청남도로서는 여차하면 뛰쳐나갈 곳에 예산을 투자할 것을 꺼릴 것이며 이는 결과적으로는 금산군의 낙후를 심화시킬 수 있다. 또한 대전, 전북, 충북 등 이웃한 지자체들도 이러한 금산군에 대해 '어차피 편입해 봤자 불만 생기면 도로 짐 싸서 나갈 것'이라는 생각을 가질 수 있게 되어 자칫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될 수도 있다.[28] 분단과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전국 최대의 인삼 시장이었던 개성이 북한 지배로 넘어간 것도 한몫 했다.[29] 굳이 해석하자면 錦山이므로 Silk Mountain이 맞다. 시, 군의 이름에 뜻을 부여하고 싶다면 錦은 아름다운이라는 훈으로도 쓰이기 때문에 Beautiful Mountain이라고 해도 어느 정도 뜻은 통할 수 있다.[30] 2위인 진안군의 재배 면적보다 세 배 가까이 된다.[31] 인삼은 지력을 많이 소진하는 작물이라, 한 번 재배했던 땅에 연속으로 재배할 수 없다.[32] 용담면, 주천면 등 진안군 북부는 진안읍보다 금산읍이 가깝고 진안이나 무주 모두 지역 상권이 매우 열악하다.[괄호] 안의 숫자는 지점수를 뜻함.[괄호] 안의 숫자는 지점수를 뜻함.[괄호] 안의 숫자는 지점수를 뜻함.[36] 본래 산청간디학교의 고등과정이 특성화학교로 인가받아 간디고등학교로 되면서, 미인가로 남은 중등과정이 떨어져 나와 제천간디학교와 금산간디학교로 분리되었다.[37] 신아람, 최인정, 송세라.[38] 신아람 2012, 최인정 2012 2020, 송세라 2020. 모두 여자 에페 단체전 은메달 멤버였다.[39] 심지어 남이면은 금강 상류에 속하는 지역이라 금강의 상류와 하류의 분수령이 있으며 이 두개의 하천이 만날려면 무려 금산에서 논산에 이르기까지 무려 9개의 시군(영동, 옥천, 보은, 청주, 대전, 세종, 공주, 청양, 부여)를 지난다. 애초에 금산이 충남에서 분리된 대전을 제외하면 논산만 유일하게 도내 타 시군과 접해있고 이 때문에 같은 선거구인 데다가 같은 금강 수계에도 속하는 구간은 완전 다르다.[40] 예시: 60 인삼로 63[41] 지역구: 서울특별시 중구·성동구 을[42] 지역구: 서울특별시 마포구 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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