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0-03-16 22:04:46

김동진(야인시대)

파일:Yainsidaelogo.png 화랑동지회
{{{#!folding [ 펼치기 · 접기 ] 회장 이정재임화수
동대문상인연합회 별동대 서대문파 기타
조열승 이억일 독사 보스 유지광 고바우 도꾸야마 최창수 돼지 이영숙 눈물의 곡절
김동진 이석재 아오마스 김기홍 권상사 낙화유수 망치 김삼수 꼬마 백장미 고릴라
}}}||

파일:'야, 인시대.' 동진 Kim.jpg
배우 이일재[1]
등장 에피소드 88~107화
하하하! 이봐, 독사! 너무 심하게 다루지 마라. 다 배고파서 온 친구들이야.
어허, 이거 모두들 왜 이러시나? 은 누구셔?

1. 개요2. 작중 행적
2.1. 반란을 획책하다2.2. 결말
3. 기타

1. 개요

야인시대의 등장인물. 무풍지대의 박석진과 동일 인물이다. 배우이일재. 재미있는 점은 해당 배우가 이전에 영화 게임의 법칙에서 비슷한 성격의 캐릭터 데니를 맡은 적이 있단 점과 장군의 아들에서는 김동회 역으로 나왔다는 점이다.

싸우지 않고 승리를 거두는 것을 우선으로 두는 캐릭터의 특성상 액션씬이 자주 나오진 않아 정확히 어느정도 실력인지 명확하게 파악하기는 힘드나, 잠깐이나마 시라소니와 합을 주고받은 것을 보면[2] 작중 상당한 실력을 갖춘 것으로 보인다. 동대문패 기준으로 이석재, 유지광을 제외하면 유일하게 중간보스급 실력을 가진 인물이다

동대문패의 이석재와는 6.25때 인민군들한테 함께 생포되었다가 함께 인민군들을 죽이고 탈출한 동지지간임에도 불구하고 동대문패 간부가 된 이후론 성격 차이로 인해 서로 사이가 좋지 못했다. 정확히는 김동진은 이석재를 크게 의식하지 않았지만, 이석재는 김동진의 태도에 불만을 가졌다. 어쩌면 동대문에 들어온후 최소 둘중 한명 이상은 성격이 변한탓일수도 있다.

2. 작중 행적

동대문패에 가입하기 전에는 을지로와 청계천 일대의 넓은 나와바리를 가지고 있던 오야붕으로써 임화수가 그를 직접 찾아가서 스카웃할 정도였고,[3] 이정재의 참모총장 격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한 자체세력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독사빽빽이보스를 위시한 김동진의 부하들은 김동진이 이정재 밑에서 주요간부이면서도 주요간부가 아닌 말단 간부나 할 법한 궂은 일에만 동원된다는 것에 큰 불만[4]을 품어왔다. 그전에 조직에서 김동진의 위치가 이석재와 비슷하다는 것부터가 부하들의 불만 대상이었다. 특히나 서울내 큰 지역의 오야붕 출신이 자기 조직이 없는 독불장군과 조직내 위치가 비슷했으니 부하들 입장에서 불만이 생길만했다. 더구나 김동진은 동대문 식구들중 가장 큰 세력을 갖고있었음에도 이랬으니 더욱...

동대문 사단이라는 거대 조직의 일원이며 온갖 궂은 일을 수행했음에도 김동진은 별다른 이득을 얻지 못헀고, 입찰로 얻은 배당금을 횡령해 부하들의 입에 풀칠해주는 상황에까지 이르렀다. 실제로 예나 지금이나 국내나 국외나 조폭들 중 일개 행동대원들은 빈곤한게 현실이다. 그도 그럴것이 배당금 횡령을 들키기 이전에 독사와 보스가 김동진한테 자신들의 조직이 차별받는 것에 대해 불만을 토로하면서 하는 말 중 하나가 배당금 횡령이라도 하지 않았으면 졸개들이 굶어 죽었을 거라는 말이다. 1부에서도 쌍칼의 세금 상납성적이 졸개들이 굶고 있는 상황이라 안 좋은 것에 대해 구마적이 오야붕들 회의에서 "세금 상납성적이 왜이리 나쁘냐"며 질책하는 장면도 나온 바 있었는데 당시 졸개들이 굶는 걸 강조하던 게 그렇다.

김동진은 부하들의 불만을 무시하고 묵묵히 일했으나, 건중친목회 부장 김관철과의 친분을 이용해 동대문 몰래 배당금을 횡령해 따로 많은 이득을 챙겨온 것이 들켜[5]부하들[6]의 손과 발이 하나씩 잘리는[7] 사건이 일어나고, 부하를 잘못 뒀단 죄로 이정재의 지시로 인해 건중친목회에서의 간부명단에서도 제명된다. 결국 김동진은 그동안 평소 최대한 내색하지않고 참기만하느라 쌓여왔던 불만들이 한계점에 와서 제대로 터져 이정재를 상대로 본격적으로 반감을 품게 된다.

이는 이화룡정팔도 지적한 점으로, 동대문 사단의 가장 큰 문제점이었다. 김두한의 우미관패는 주요 구성원들이 일제시대 내지 미군정 극초기 때부터 최소 10년 이상 주먹생활을 함께 하며 그들과 대립하던 여러 조직들을[8] 직접 박살내는 도중에 유대감이 강해지면서 서로를 가족같이 여겼으며, 이는 조직이 해산된 이후에도 김두한이 부르거나 김두한이 부르지 않더라도 김두한이 엮인 큰 사건이 터지면 모여서 공사를 함께했다. 명동파도 구성원들이 이북 출신이라는 지연으로 완벽하게 엮여 있었고 공산당의 횡포에 밀려 월남했다는 공통점이 있어 쉽게 뭉칠 수 있었다. 물론 오상사같은 순수 남한 출신들도 명동패 내부에 많았지만 이들도 공산당을 극도로 적대하는 성격이었던만큼 기존 세력이 거리낌없이 이들을 받아들였다.[9]

또한 하다못해 혼마찌패의 경우만해도 조선땅에 들어온 일본인 야쿠자들 및 조선인 신분으로 야쿠자 조직에 들어온 조직원들이라는 점에서 단결하기 쉬웠으며, 유곽(정확히는 집안의 빚때문에 팔려온 여자들)과 마약 밀매같은 큰 범죄를 저지르지 않는이상 숙청을 하지 않았기에 조직원들의 충성심과 신뢰도도 높았다. 또 멤버 대부분이 동대문패 이상으로 난폭하고 비열한 보스급들이 뭉친 집단인 구마적의 우미관패조차도[10] 성향의 차이로 간부들간의 사이가 좋지 않은게 눈으로 보일 정도였으나,[11] 구마적에 대한 충성심 하나로 조직이 와해되지 않고 구마적을 잘 섬겼으며 심지어 구마적이 떠난 후에도 이 보스들이 각자의 길을 가기전 서로 노선이 다르다고해서, 자신들이 섬겼던 구마적이 더이상 없으니 굳이 서로 더이상 참을필요도 더이상 참아야할 이유도 없답시고 그간 참아오고 쌓여왔던 감정을 드러내며 서로간에 싸움이 나긴커녕 되려 동료가 잘못된 행동[12]을 하려하면 옆에서 말리는 등 구마적이 떠남으로써 조직이 해체되는 순간까지도 서로간에 그닥 험악하지 않은 관계를 유지하며 좋게 해체되었을정도였다. 만약 이들이 서로 사이가 조금만 덜 나빴다면 구마적 조언대로 전원, 혹은 최소 한명이상은 김두한을 새 오야붕으로 섬겼을지도 모를일일정도.[13]
그러나 이에비해 반면 동대문 사단은 서로 야망이 넘치는 보스급 주먹들이 한데 모인 이익 집단에 가까워서 언제든지 얼마든지 배신이 일어날 수가 있는 구도였다.[14] 김기홍이 주먹 세력을 소집할 때 최대한 이정재의 인척인 이천 주먹들을 중심으로 모은 것도 이와 같은 배신을 방지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정작 이천 출신이 아닌 김동진을 차별했단 점에서 이미 배신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특히나 똑같이 이천 이외 지역 출신인 임화수[15]와 조열승[16]은 차별이 없었으니 더욱.[17]

2.1. 반란을 획책하다

마침 자유당이기붕부통령이 되는데 방해가 될 요소로 지목된 김태선, 이순용, 신익희, 조병옥, 장택상, 김상돈, 백두진, 문봉제 외 40여명 가량의 야당 인사들을 암살하라는 의뢰를 이정재에게 맡겼다. 이정재는 김동진은 치밀하고 섬세하며, 또한 작은 일 가지고 사람을 평가할 수 없다며 김동진에게 임무를 맡기려 한다. 이에 김기홍은 김동진은 믿을 수 없는 자라며 크게 반발했으나, 끝내 이정재는 신뢰를 나타내는 신표를 김동진에게 주며 동시에 암살 임무를 내린다. 하지만 김동진 입장에서는 성공가능성도 매우낮고 실패시 버려질 것이 뻔한 이런 의뢰를 맡기는 게 자신을 제거하기 위한 술수로 볼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이정재가 유지광이라는 교체카드를 준비했으며 그 유지광이 주먹패들을 영입하며 별동대를 조직하고있는 상황인데다 작중에서 조직의 2인자는 처음부터 김동진이 아니라 임화수였던걸 생각하면 김동진을 동대문의 차기 보스라고 하는 이정재의 말 역시 개소리에 지나지 않았다.

김동진을 동대문의 차기 보스라고 하는 이정재의 말이 진심이었다고 가정해봐도 어차피 이천 출신도 아닌 김동진이 오야붕이 되어봤자 주먹들을 최대한 이정재의 인척인 이천 출신들을 중심으로 모은(배신을 최대한 방지하기 위해) 동대문에서 제대로 권력을 누릴 가능성은 없었다. 당장 작중에서 이정재가 주먹계를 떠날때의 상황을 보면 답이 나오는데 이정재가 은퇴하면서 임화수한테 차기 보스자리를 주자[18] 화랑동지회에선 도꾸야마와 독사가 유지광한테 "임화수 같은 아무 것도 아닌 놈이 무슨 차기 보스냐, 우리가 왜 저런 아무것도 아닌 놈을 따라야 하냐?"며 임화수를 평화극장째 제거해 버리자고 했을 정도였다. 동대문 서열 2위였고[19] 다른조직원보다 오래전부터 이정재를 알고있었고 이정재와 의형제를 맺어서 형님 동생 할정도로 친했으며 김기홍과 더불어서 이정재가 동대문 사단의 회장이되고 자리를 잡는데 매우 큰 기여를하였으며 조열승 같은 다른 오야붕하고도 친하고 영화사업때문에 동대문 행사같은거에 참석안한것을빼면 딱히 눈밖에 날일도 안했으며[20] 정치권과도 결탁을 하고있어서 곽영주 같은 뒷배도있었고 조직원들이 잡혀들어가며 동대문이 토사구팽되는 위기의 상황에서 조직을 유일하게 위기에서 구해낼수 있는[21] 등 차기 보스의 자격이 누구보다 많은 임화수가 직접 이정재의 지명을 받아서 임시로[22] 차기 보스로 올라섰다는 이유로 하부 주먹들에게서 반란의 향기가 풍길 지경이었으니(유지광도 직접 이정재에게 임화수 밑으로 가라는 부탁을 받아서 참은 것이지 속으로는 임화수를 탐탁치 않게 보았다[23]) 이천 출신도 아닌데다가 그렇다고 이정재와 가깝지도 않고 다른 간부들과도 가깝기는 커녕 이전부터 다른 오야붕들의 눈 밖에 나 있었던 김동진이 차기 보스가 될 경우 과연 어찌되었을지 안봐도 뻔한 상황이었다. 게다가 시라소니 집단린치가 강행되었을 당시에도 김동진은 반대했던 만큼 다른 간부와 마찰을 일으켜가며까지 혼자 반대했던것을 다른 주먹패들이 걸고넘어질수도 있었으니...

때마침 시라소니 린치 사건이 터지자 김동진은 이 상황을 반란에 써먹기로 작정한다. 이후 10공주파의 이영숙 사장과 시라소니의 켈로부대원, 이정재에게 자리세를 납부하는 일에 반발한 정양원 사람들과 동맹을 맺어두는 등 치밀한 책략을 짰다. 웃기는 사실은 김동진도 시라소니 린치사건에 개입하였는데, 켈로부대원들과 정양원은 그 사실을 몰라 김동진의 이정재 습격 제안을 거리낌 없이 수용한다는 것이다. 다만 김동진은 이석재, 독사 등과 달리 무기를 쓰지 않은데다, 시라소니가 이석재, 독사, 조열승한테 몽둥이로 린치당할 때도 린치에 가담하지 않고 보고만 있었기에 린치에 개입한 걸 안다 해도 이걸 감안했을 가능성이 높다. 무엇보다 김기홍이 이정재가 빠진 회의자리에 주요간부들을 불러놓고 시라소니 집단린치를 강행했을당시 김동진은 이석재랑 마찰을 일으키며까지 집단린치 강행에 대한 반대의견을 냈었는데 켈로부대원들과 정양원 사람들이 김동진은 다른 간부와 마찰을 일으켜가며까지 집단린치에 반대했다는것과 자신의 반대에도 강행되어 어쩔수없이 따랐단걸 알게된후 이를 감안해 수용했을 가능성도 높다. 그러나 린치사건 땐 김동진의 부하들인 독사와 보스도 개입한 데다 특히 독사는 단검으로 시라소니의 팔을 베었고 몽둥이로 린치하는 짓에도 가담한 걸 생각하면 뭔가 묘하다.

결국 김동진은 이걸 시경에 밀고함으로서 계획이 파탄나 버리고, 일 처리를 원만하게 하기는커녕 민주주의 국가에서 국회의원 암살 지령이 만천하에 들통나는 핵지뢰 급의 대형사고를 친 이정재는 이기붕에게 엄청난 분노를 사기에 이른다. 거기에 켈로부대원과 정양원 사람들이 "자유당에서 부른다"는 거짓 연락을 넣음으로써 낚인 이정재를 이영숙 사장의 요정으로 유인하였고, 그녀의 협조로 아무도 없이 텅 빈 요정에서 이정재와 그 보디가드인 이억일은 시라소니 때처럼 가혹한 린치를 당해 떡이 되도록 얻어터진다. 이억일은 그들을 필사적으로 막다가 가슴에 칼을 맞는 중상을 입었으나 죽은 줄 알고 내버려두고 이정재만 보쌈해간 덕분에 뒤늦게[24] 달려온 동대문 파 주먹들에게 구조되어 목숨을 구했다.

그러나 이정재는 그 사이 이미 켈로부대원과 정양원 사람들이 시라소니 앞으로 끌고 간 뒤였다. 그들은 대장의 눈앞에서 통쾌하게 복수의 마무리를 바칠 생각이었으나 시라소니는 "이건 내 문제다", "피차 이런 꼴로 만나서는 안 된다"며 그토록 복수하고 싶었던 이정재를 그대로 온전히 돌려보내는 대인배적인 행동을 보인다.

이 린치 사건으로 김동진과 이영숙의 반란은 기정사실이 되었고 한술 더 떠서 동대문 일대 곳곳을 자기 것으로 만들어버리기 시작한다. 분노한 이정재는 유지광을 시켜 이영숙과 김동진의 구역을 정리함과 동시에 자신의 수하 이석재를 시켜 단성사에서 영화 "형제는 용감하였다."[25]를 보고 나오던 김동진을 백주대낮에 총으로 쏴버린다. 하지만 김동진은 운 좋게도 살아남았다. 이것이 바로 "단성사 저격 사건"이다. 처음엔 권상사에게 김동진을 저격하라고 시켰으나 전쟁당시 후방에 있던탓에 살생의 경험이 없던 권상사는 김동진을 못 쏘고 이석재가 담당했다. 여기서 이석재가 김동진과의 인연을 생각해서 일부러 안죽였다는 썰이 있다고 한다.

담당검사 김윤도는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집요하게 수사를 하고, 이정재가 자유당에게조차 찍혀있는 상황 속에서 이석재는 살인 미수죄, 이정재는 살인 교사죄로 구속됨으로써[26] 김동진의 치밀한 계획은 그 결실을 보나 싶었지만…

이정재와 자유당의 관계는 그 정도로 느슨하지도 않았고 결정적으로 김동진은 곽영주를 잊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그의 결정적인 패인이 되었다. 곽영주는 내무부장관을 압박해 김동진이 경찰에게 넘긴 정치암살의 증거물을 경찰이 먹튀하게 만듬과 동시에 이기붕을 협박에 가까운 설득을 했다. 그 내용인 즉 곽영주가 이기붕의 건강문제를 우려해 이기붕의 공천을 염두하지 않은 이승만에게 어떠한 말도 안한다고 했다. 즉 "너님이 어찌되든 나는 모르니 너님이 알아서 하쇼."라고 발을 빼겠다는 것. 이는 이기붕이 이승만 없이는 아무것도 아닌 존재라는 의미도 있다.

여튼 그렇게 이기붕과 이정재와의 끈을 다시 이어주는 한편 권력을 한껏 이용한 압박으로 김윤도를 좌천시키고 담당검사를 교체해 이정재를 풀려나게 하고 현행범인 이석재조차도 짤막한 기간 동안 구속기소되는 수준에서 마무리지었다.

2.2. 결말

결국 김동진은 유지광의 제안에 따라 패배를 인정하고 부하들을 동대문에 맡기고 주먹계에서 물러나게 된다. 이때 병원에서 나갈 때 최동열과 인터뷰하는데 김동진은 주먹패에 불과한 자신을 과대평가한다고 말하면서도, 어쩌다보니 재야인사가 되었다고 말하며 최동열의 질문을 긍정한다. 그리고 이제 뭘 할거냐는 그의 질문에 공부해서 권력을 잡고 그 권력으로 그 권력의 진정한 힘을 보여주겠다 말한다. 그리고 독사를 위로하며 그와 마지막 인사를 나누고 차에 타고 떠난다. 이때 차가 가고 독사가 주저앉는다. 이리하여 그는 극에서 완전히 퇴장하며 주먹생활을 완전히 청산한다.

그리고 이영숙 사장은 부하인 장미가 대신 손가락을 자르는 선에서 용서를 받았다. 이렇게 이정재는 승리한 듯 보였지만 5.16 이후 혁명재판 때 시라소니 린치 사건과 함께 이 사건도 다시 재조명을 받고 결국 이정재의 발목을 잡게 된다. 그리고 이정재는 사형당하고 이석재도 처벌받았던 반면[27] 김동진은 단성사 저격사건의 피해자인데다 그 이후 동대문이 본격적으로 막장화 되기 이전에 주먹계에서 발을 빼 수사 자체가 되지 않아 최후의 승리자가 되었고[28], 동시에 생존자가 되어 나레이션으로도 나왔듯이 훗날 정치인이 되기 위해 선거에도 나가고[29] 경제인으로서는 성공했다. 실제로 제7대 국회의원 선거 당시 선관위에 제출했던 김동진의 프로필을 보면 한국경영진단사협회전문위원으로, 학력은 대학원졸로 되어있다.

하지만 그 성공이라는 것이 아니나다를까 사주를 받고 주주총회에서 주먹을 쓰는 역할이었다. 결국 실제 역사에서 김동진은 정부에 구속되었고, 그 뒤의 행적은 알 길이 없다.

3. 기타

여담으로 영화 대명과 마찬가지로 시라소니 린치사건이 나오는 97화의 대본에선 무기를 쓰다가 나가떨어지는 역할[30]로 나왔다. 실존인물의 소송을 피하기 위해 변경된 것으로 추정된다. 어찌보면 실제 촬영 때의 내용이 대본에 나온 것과 달라진 것이 김동진의 작중 실력을 증가시켰다고 볼 수도 있는 것이 아이러니 하다고 할 수 있다. 여러 증언이 엇갈리지만 김두한과 홍영철이 인정한 싸움꾼이었다고 한다.

합성물에선 심영이나 김두한과의 접점이 아예 없고 딱히 합성물로써 특출난 기믹을 보인 적도 없기에 사실상 나오지는 않는 편이다. 그나마 이정재가 형사양반이 아닌 동대문 보스로써 심영과 엮이는 모 합성물에선 심영에게 관광을 당한 이정재를 위해 다시 심영을 역관광시키는 역할로 나온 적이 있다.


[1] 2019년 4월 5일에 폐암으로 사망했다.[2] 심지어 한 대도 안 맞았다. 비록 막판에 한쪽 팔을 제압당하긴 했지만 이석재 덕분에 안 맞고 이눔시끼라는 대사와 함께 탈출했다. 그러나 당시 시라소니의 체력이 못해도 60% 이상 떨어진 상태였기에 제대로 붙었다면 금방 당했을 확률이 높다.[3] 아이러니한 건 김동진이 배신할 기미를 보이기 직전쯤 이정재한테 김동진에 대해 처음으로 뒷담을 까기 시작한게 임화수였다. 김동진과 성격차이로 사이가 안좋은 이석재도 그러진 않았단 점에서 더욱 아이러니한 일.[4] 근데 그럴만도 한게 보스인 김동진이 독사, 보스를 비롯한 조직원들과 함께 총을 들고 직접 나서서 상대 조직원들과 총격전을 벌이고 상대 조직의 요인들을 암살해야 하는, 사실상 목숨이 걸린 위험천만한 임무를 수행했다.[5] 이는 김관철이 몰락하여 주먹계를 떠나고 홍영철이 부장이 된 이후로도 계속되었다.[6] 오치수, 장석기라는 이름이 언급된다.[7] 동대문의 규칙으로는 '압수'라고 불렸다. 야인시대의 프로토타입 격 드라마 무풍지대에서도 묘사된다.[8] 구마적패, 일본 야쿠자, 남한 내 공산당 세력, 북한군, 여러 군소 주먹패 등[9] 무엇보다 이화룡, 정팔, 맨발의 대장, 달마 등 이북 출신의 기존 멤버들이 오상사와 같은 남한 출신 조직원들을 한 번도 차별하지 않았던 모습이 명동파가 유지될 수 있었던 가장 큰 원동력이었음을 잊지 말아야 하며, 특히 오상사의 경우 차별이 아닌 되려 맨발, 달마보다 짬이 낮음에도 불구하고 서열은 둘과 동급으로 정해줬을 정도였다.[10] 단 평양박치기는 예외, 애초에 그는 난폭하거나 비열하긴 커녕 오히려 주먹세계에 있기엔 아까운 인간일만큼 온건파였다. 그밖에 빡빡이는 온건파는 아니지만 비열하진 않았다.[11] 그나마 온건파인 평양박치기와 적어도 비열하진않은 빡빡이는 서로 원만한 사이였고, 비열한쪽인 뭉치와 제비도 서로 관계가 좋았으나 똑같이 비열한 왕발이나 그외 무명간부들은 서로간에도 사이가 안좋았던데다 온건파인 평양박치기, 적어도 비열하진않은 빡빡이, 그리고 똑같이 비열한 2명인 뭉치와 제비랑도 사이가 안좋았으며, 뭉치와 제비또한 온건파인 평양박치기, 적어도 비열하진않은 빡빡이랑 사이가 안좋았다.[12] 두 명은 구마적이 뒤따라오지 말랬는데도 따라가겠다고 하였으며, 다른 한 명은 김두한에게 총격을 가하여 죽이는 것으로 구마적에 대한 복수를 하려고 했다. 이 당시 주먹패답지않을만큼 온건파인 평양박치기는 이 셋을 다 말렸으며, 심지어 김두한을 총격으로 죽이려하는 왕발과 구마적이 따라오지 말랬는데도 따라가겠다고 하는 뭉치조차도 서로를 말릴정도였다.[13] 그도 그럴것이 이들이 서로 사이가 안좋은데도 뭉칠수 있었던게 구마적에 대한 충성심이엇는데 그런 구마적이 떠난이상 굳이 새 오야붕을 섬길 이유는 없었다. 구마적도 이걸 알기에 김두한을 새 오야붕으로 섬겨도 최소한 김두한이 선배대접은 해줄거라며 김두한을 새 오야붕으로 섬길것을 권하면서도 굳이 그러고싶지 않다면 각자 갈길을 가도 좋다고 했다.[14] 어찌보면 작중 가장 현실에 가까운 조직이라 볼수있던건 덤, 실제 조폭들도 표면적으론 의리를 중시하며 절대 배신하지 않는다고 다짐하지만 막상 이해관계가 꼬이거나 희생양이 필요해지면 서로를 그냥 배신한다.[15] 여주군 출신. 뭐 여주면 서울-분당 관계처럼 이천 멀티라고도 볼 수 있겠다만...[16] 구체적으로 나오지는 않으나 서남 방언 사용[17] 게다가 이천 이외 지역 출신임에도 차별이 없었던 임화수 마저도 결국 혁명재판에 회부되었을때 자신의 구명을위해 동료들을 팔아먹어 배신한걸 생각하면 아무리 당시 재판 이전부터 다른 보스들이 임화수를 못마땅하게 여겼다해도 결국 동대문 사단은 태생부터가 반드시 배신이 일어날수밖에없는 조직이었던 셈이다.[18] 다만 임화수도 당장에 예 하고 받아들인 건 아니었다. 물론 화랑동지회 눈치가 보여서도 있었지만...[19] 이건 이정재도 직접 인증한 사실이다[20] 그마저도 임화수가 영화사업으로 구축한 탄탄한 인맥이나 돈으로 동대문사단에 직간접적으로 도움이되었으니 마냥 나쁜것도아니였다.[21] 당시 조직원중 정치권과 유일하게 연줄이 유지되고있고 자금력도 갖추고있는 사람은 임화수가 유일했다.[22] 왜 임시냐면 일단 임화수를 보스로 지명한건 맞지만 일단 임화수를 통해 동대문사단을 토사구팽의 위기에서 구해내서 명맥을 유지한후 임화수가 조직을 어느정도 관리하다가 문교부 장관이 되어서 정치계+영화계로 완전히 떠나면 그후 이정재의 사돈이자 능력도 뛰어나고 조직원들에게 인망을 얻고있는 유지광이 조직을 물려받고 차기회장에 올라서 조직을 다시 번영시킨다는 계산하에 임화수에게 물려준것이다.[23] 자신의 군대가 보스보다 큰데 상부에서는 궂은 일을 시키니까 부대원들의 불만이 솟구친다는 점에서 김동진과 흡사한 상황이었던 유지광이 이정재에게 반란을 일으키지 않은 것은 이러니 저러니 해도 이정재는 사돈(나이로는 이정재가 형, 항렬로는 본인이 상급자)이기 때문에 이정재에게 가해를 할 생각이 전무했기 때문이다. 동대문 결성 때 오야지들을 모을 때 최대한도로 이천 태생으로 고른 복안의 산 증거.[24] 김기홍이 자유당에게 연락한 결과 이기붕은 감기에 걸려 그 날 이정재를 부른 사실이 없었다.[25] 여담으로 임화수가 이거 말고 다른 웨스턴물을 냈다는 게 OK 목장의 결투인데 김동진은 이건 결말이 너무 뻔하다고 말했다(...). 그런데 사건은 1955년에 벌어졌고 해당 영화는 1957년에 개봉했다. 뭐 실제 사건은 1881년에 벌어졌으니 알고 있었을 수도 있겠지만...[26] 김기홍은 이를 예견하고 김동진의 처형은 나중으로 미루자고 했으나 다른 간부들과 이정재는 김동진을 감싸는거냐며 디스했다.[27] 이석재 처벌 여부는 확실하지는 않다. 당시 신문 기사에서도 조열승이나 유지광은 언급되었지만 이석재까지 언급되지는 않았고, 당시 사형당한 인물들이 아니고는 중형이 선고된 사람들도 몇 년만에 가석방 등으로 풀려나거나 해서 크게 처벌받지는 않았다.[28] 비록 주먹계에선 일찌감치 1955년에 그들에게 패배하여 손 씼고 떠나 남는 주먹세력이 전혀 없지만, 혁명재판때도 마찬가지였고.[29] 정확히는 제7대 국회의원 선거 당시 경기도 제9지역구(평택군)에 민중당 후보로 출마했다. 다만 선거에서는 낙선. 해당 지역구에서는 민주공화당 이윤용 후보가 당선되었다.[30] 드라마상에서 이 역할은 독사가 수행한다.

파일: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__CC.pn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김동진 문서의 r73 판에서 가져왔습니다. 이전 역사 보러 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