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관문화훈장 수훈자 |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5px -13px" | 1974 조택원 무용가 | 1975 안수길 소설가 | 1976 홍종인 언론인 | 1977 최석채 언론인 | 1978 방정환 독립운동가, 아동문학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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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조수미 성악가 | 2023 이미경 기업인 | 2024 이문열 소설가 |
김소희 金素姬 | |
아호 | 만정(晚汀) |
출생 | 1917년 12월 1일 |
전라북도 고창군 (現 전북특별자치도 고창군) | |
사망 | 1995년 4월 17일 (향년 77세) |
국적 | [[대한민국| ]][[틀:국기| ]][[틀:국기| ]] |
직업 | 국가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 춘향가 보유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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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국악인, 인간문화재.
2. 상세
전라북도 고창군 출신으로, 아명은 옥희, 호적상 본명은 김순옥이었지만 본격적으로 소리를 배우기 시작하면서 이모가 '소희'라는 이름을 다시 지어주었다고 한다. 1920년대에 조선권번 소속의 동기로서 노래, 춤, 기악을 두루 배웠고, 이후로도 지속적으로 여러 스승들에게 배웠는데 특히 조선성악연구회에서 송만갑과 정정렬의 소리를 많이 배웠고, 그 외에 박동실에게서도 많이 배웠다. 해방 후에도 박록주, 김여란 등 선배 소리꾼들에게 조금씩 소리를 배워 자신만의 소릿제를 짰는데, 속칭 '만정제'가 그것이다. 현재까지도 그녀의 수 많은 뛰어난 제자들과 후학들을 통해 활발하게 전승되어 불려지고 있다.1964년 무형문화재법이 제정되면서 김연수(춘향가), 정광수(수궁가), 김여란(춘향가), 박록주(흥보가), 박초월(수궁가)과 함께 초대 중요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 예능보유자로 지정됐다. 세부 종목은 춘향가[1]. 가성을 쓰지 않고 상청, 중청, 하청을 자유자재로 쓰는 것이 소리의 특징이다. (사)한국국악협회 이사장, (사)한국판소리보존회 이사장, 국립창극단 초대 부단장을 역임했다.
근, 현대 명창들을 통틀어 개인이 지닌 음악성, 대중적 인지도, 판소리사에 끼친 영향력 등을 고려하였을 때 국창(國唱)[2]으로 칭해지는 몇 안되는 인물 중 한 명이다. 김소희와 비교할 수 있는 동시대 인물은 임방울, 박록주, 박초월 정도밖에 없다.
신영희, 안향련, 이명희, 김동애, 안숙선, 오정해가 가장 대표격인 무릎 제자이며, 이 중 안향련[3]과 김동애[4]는 스승보다 먼저 세상을 떠났다. 이명희는 대구광역시 무형문화재 제8호 만정제 흥보가 예능보유자로 지정되어 활발하게 전승하였으나 2019년 지병으로 별세했다. 마지막 제자라고 여겨지는 오정해는 현재 동아방송예술대학교 교수로 후학을 양성하고 있다. 현재는 맏제자 신영희[5]와 수제자 안숙선[6]이 국가무형유산 판소리 춘향가 보유자로 지정되어 만정제 소리를 이어가고 있다.
1995년 4월 별세하면서 정부는 금관문화훈장을 추서하였는데, 전통예술인에게 금관문화훈장을 추서한 것은 김소희가 최초다.
제1회 방일영 국악상 수상 후 제자들과 함께한 공연
[1] 지정 당시는 송만갑제로 등록 후에 만정제로 변경[2] 판소리 명창 중에서도 한 시대를 대표하는 가장 빼어난 명창을 일컫는 말.[3] 1944년 전남 광산군 송정리에서 출생. 명창 정응민, 정권진, 장영찬에게서 판소리를 배웠으며 '남원명창대회'에서 조상현, 성창순에 이어 3회 대회에서 장원을 한 소리꾼이다. 유부남인 한 동양화가와 못다 이룬 사랑을 비관한 것으로 인해서 1981년 12월 20일에 수면제 과다 복용으로 37살의 짧은 삶을 마감한다. 이로 인해서 판소리계의 윤심덕 이라고 불리고 있다. 또한 혼불의 작가인 최명희가 1992년에 집필한 소설인 '제망매가'(祭亡妹歌)의 실제 모티프이기도 하다.[4] 1948년 전북 부안 출신이며 1984년 2월 29일에 지병으로 향년 3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5] 2013년 중요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 ‘춘향가’ 예능보유자 지정.[6] 2022년 국가무형문화재 판소리 ‘춘향가’ 보유자 지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