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0-22 09:19:50

김소희(판소리)

파일:금관문화훈장 약장.png
금관문화훈장 수훈자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5px -13px"
1974
조택원
무용가
1975
안수길
소설가
1976
홍종인
언론인
1977
최석채
언론인
1978
방정환
독립운동가, 아동문학가
1979
고유섭
미술사학자
1980
전봉초
음악가
1981
김소월
시인
1982
이효석
소설가
1982
조지훈
시인
1983
홍승연
언론인
1983
천관우
언론인
1983
이육사
독립운동가, 시인
1984
이원수
아동문학가
1984
장발
미술가
1985
강소천
아동문학가
1986
홍진기
언론인
1987
김남중
언론인
1990
모윤숙
시인
1990
주시경
독립운동가, 국어학자
1994
김상만
언론인
1994
나운영
음악가
1994
이숭녕
국어학자
1995
공병우
한글연구가
1995
김소희
국악인
1995
문신
미술가
1995
정명훈
음악가
1995
이대원
미술가
1995
류경채
미술가
1996
송석하
민속학자
1996
신용호
기업인
1996
조병화
시인
1997
신순남
미술가
1997
홍두표
언론인
1997
최창봉
언론인
1997
정진숙
출판인
1997
고병익
역사학자
1998
방우영
언론인
1998
김연준
작곡가
1999
방일영
언론인
1999
방종현
국어학자
1999
김세형
음악가
1999
이유태
미술가
1999
김흥수
미술가
1999
장준하
독립운동가, 언론인
1999
송건호
언론인
2000
황순원
소설가
2000
백남준
미술가
2000
서정주
시인
2001
김기창
미술가
2001
김천흥
국악인
2001
장우성
미술가
2001
김수영
시인
2001
최영희
역사학자
2002
임권택
영화감독
2002
오지호
미술가
2003
박동진
국악인
2003
윤석중
아동문학가
2004
구상
시인
2004
이혜구
음악사학자
2005
박성용
기업인
2005
정세영
기업인
2006
신상옥
영화감독
2006
김동원
연극인
2006
차범석
극작가
2006
조남철
바둑기사
2007
송도균
언론인
2007
노성대
언론인
2007
송범
무용가
2008
박경리
소설가
2008
이청준
소설가
2008
김영랑
시인
2009
유현목
영화감독
2010
전숙희
수필가
2010
앙드레 김
패션 디자이너
2010
김영환
군인, 6.25전쟁기 해인사 폭격명령 거부
2011
박완서
소설가
2012
지관
해인사 주지
2012
이건희
기업인
2012
허동수
기업인
2012
김형규
국어학자
2013
이우환
미술가
2014
호머 헐버트
선교사, 한글 체계화 공헌 및 한글 보급·한글 홍보 공로
2014
전형필
문화재수집가
2014
이은관
국악인
2016
백성희
연극인
2016
임영웅
연극인
2017
박맹호
출판인
2018
최인훈
소설가
2018
이영희
한복 디자이너
2018
정지용
시인
2018
황병기
국악인
2020
서세옥
미술가
2019
김성환
시사만화가, 대표작《고바우 영감
2020
손창근
미술품소장가
2021
윤여정
영화배우
2021
이어령
문화부장관, 작가, 정치인 겸 문학평론가
2021
박서보
화가
2022
송기숙
작가
2022
송해
희극인
2022
김우창
문학평론가
2022
김지하
시인
2022
이정재
배우
2022
황동혁
감독
2023
이미자
대중음악인
2023
조수미
성악가
2023
이미경
기업인
2024
이문열
소설가
}}}}}}}}} ||
김소희
金素姬
파일:만정 김소희 국창.jpg
아호 만정(晚汀)
출생 1917년 12월 1일
전라북도 고창군
(現 전북특별자치도 고창군)
사망 1995년 4월 17일 (향년 77세)
국적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직업 국가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 춘향가 보유자

1. 개요2. 상세

[clearfix]

1. 개요



대한민국의 국악인, 인간문화재.

2. 상세

전라북도 고창군 출신으로, 아명은 옥희, 호적상 본명은 김순옥이었지만 본격적으로 소리를 배우기 시작하면서 이모가 '소희'라는 이름을 다시 지어주었다고 한다. 1920년대에 조선권번 소속의 동기로서 노래, 춤, 기악을 두루 배웠고, 이후로도 지속적으로 여러 스승들에게 배웠는데 특히 조선성악연구회에서 송만갑과 정정렬의 소리를 많이 배웠고, 그 외에 박동실에게서도 많이 배웠다. 해방 후에도 박록주, 김여란 등 선배 소리꾼들에게 조금씩 소리를 배워 자신만의 소릿제를 짰는데, 속칭 '만정제'가 그것이다. 현재까지도 그녀의 수 많은 뛰어난 제자들과 후학들을 통해 활발하게 전승되어 불려지고 있다.

1964년 무형문화재법이 제정되면서 김연수(춘향가), 정광수(수궁가), 김여란(춘향가), 박록주(흥보가), 박초월(수궁가)과 함께 초대 중요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 예능보유자로 지정됐다. 세부 종목은 춘향가[1]. 가성을 쓰지 않고 상청, 중청, 하청을 자유자재로 쓰는 것이 소리의 특징이다. (사)한국국악협회 이사장, (사)한국판소리보존회 이사장, 국립창극단 초대 부단장을 역임했다.

근, 현대 명창들을 통틀어 개인이 지닌 음악성, 대중적 인지도, 판소리사에 끼친 영향력 등을 고려하였을 때 국창(國唱)[2]으로 칭해지는 몇 안되는 인물 중 한 명이다. 김소희와 비교할 수 있는 동시대 인물은 임방울, 박록주, 박초월 정도밖에 없다.

신영희, 안향련, 이명희, 김동애, 안숙선, 오정해가 가장 대표격인 무릎 제자이며, 이 중 안향련[3]과 김동애[4]는 스승보다 먼저 세상을 떠났다. 이명희는 대구광역시 무형문화재 제8호 만정제 흥보가 예능보유자로 지정되어 활발하게 전승하였으나 2019년 지병으로 별세했다. 마지막 제자라고 여겨지는 오정해는 현재 동아방송예술대학교 교수로 후학을 양성하고 있다. 현재는 맏제자 신영희[5]와 수제자 안숙선[6]이 국가무형유산 판소리 춘향가 보유자로 지정되어 만정제 소리를 이어가고 있다.

파일:소녀만정.jpg

1995년 4월 별세하면서 정부는 금관문화훈장을 추서하였는데, 전통예술인에게 금관문화훈장을 추서한 것은 김소희가 최초다.
파일:방일영국악상.jpg
제1회 방일영 국악상 수상 후 제자들과 함께한 공연


[1] 지정 당시는 송만갑제로 등록 후에 만정제로 변경[2] 판소리 명창 중에서도 한 시대를 대표하는 가장 빼어난 명창을 일컫는 말.[3] 1944년 전남 광산군 송정리에서 출생. 명창 정응민, 정권진, 장영찬에게서 판소리를 배웠으며 '남원명창대회'에서 조상현, 성창순에 이어 3회 대회에서 장원을 한 소리꾼이다. 유부남인 한 동양화가와 못다 이룬 사랑을 비관한 것으로 인해서 1981년 12월 20일에 수면제 과다 복용으로 37살의 짧은 삶을 마감한다. 이로 인해서 판소리계의 윤심덕 이라고 불리고 있다. 또한 혼불의 작가인 최명희가 1992년에 집필한 소설인 '제망매가'(祭亡妹歌)의 실제 모티프이기도 하다.[4] 1948년 전북 부안 출신이며 1984년 2월 29일에 지병으로 향년 3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5] 2013년 중요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 ‘춘향가’ 예능보유자 지정.[6] 2022년 국가무형문화재 판소리 ‘춘향가’ 보유자 지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