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4-12 14:51:24

춘향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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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f1f1f1,#27292d> 춘향전
春香傳
신영희 소리꾼과 신규식 고수의 춘향가 中 <춘향모 통곡하는 대목>
작자 미상
배경 조선
시점 전지적 작가 시점
갈래 판소리계 소설, 연애 소설
주제 열녀의 교훈, 신분사회의 극복

1. 개요2. 줄거리3. 해외 번역4. 특징
4.1. 성적 묘사4.2. 시대 구현
5. 등장인물6. 대중매체에서
6.1. 소설6.2. 게임6.3. 만화6.4. 드라마6.5. 영화6.6. 애니메이션
7.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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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판소리 춘향가(春香歌)가 원본으로, 한국의 고전 작자미상 연애 소설이다. 양반의 아들 이몽룡과 은퇴한 기생 월매의 딸 성춘향의 양반과 천민이라는 신분차에 굴하지 않는 연애담을 소재로 하고 있다. 과거 삼국시대안장왕과 한씨 미녀 설화와 줄거리가 매우 비슷하다.

춘향가는 판소리 5바탕(춘향가,심청가,흥보가,수궁가,적벽가) 중에서 가장 문학적, 예술적인 가치가 높다고 평가되며, 처음부터 끝까지 곡을 다 부르는 완창 시간 또한 평균 7~8시간 정도로 판소리 5바탕 중 가장 길다.

2. 줄거리

남원의 퇴기인 월매의 딸인 이름난 미녀 성춘향이 몸종 향단이와 함께 단오날 그네를 뛰고 있던 차에 마침 구경 나온 양반가의 후계자 이몽룡이 그녀를 보게 되고 한눈에 반하게 된다. 몽룡의 하인 방자의 도움으로 눈이 맞은 그들은 곧 불같은 사랑[1]에 빠지게 되지만, 남원 부사였던 몽룡의 아버지가 동부승지로 임명되면서 몽룡도 한양으로 떠나게 된다.

남겨진 춘향은 정절을 지키기 위해 애쓰지만 남원 부사로 새로 부임한 변학도에게 억지로 수청[2]을 들어야 할 상황에 처하게 된다. 결국 변학도의 수청을 거절한 괘씸죄로 그녀는 옥에 갇히게 된다. 옥에 갇혔으면서도 수청을 계속 거부하다가 참다못한 변학도에 의해 마당으로 끌려나왔고 변학도는 다시 한 번 기회를 줬지만 춘향은 또 이몽룡과의 도리를 주장하며 거부한다.

계속되는 춘향의 저항에 대노한 변학도에 의해 춘향은 고을 백성들이 보는 앞에서 온 몸이 의자에 묶여 정강이에 곤장을 맞기 시작하는 고문을 당하기 시작했다. 춘향은 고문을 당하는 와중에도 정절을 지키려 들었지만 결국 버티지 못하고 기절하고 말았다. 실신한 춘향은 포졸들에게 재차 끌려가 옥에 갇히게 되었다. 설상가상으로 이몽룡은 거지가 다 되어서[3] 옥에 갇힌 그녀를 다시 찾아오는데, 이런 상황에서도 그녀는 자신의 정절을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

생일 잔치 날, 변학도는 운봉, 곡성, 정읍 등의 주변 고을 사또들을 데리고 잔치를 벌인다. 잔치가 한창 무르익자 이들은 양반답게 한시 놀이를 하게 되는데, 변학도가 '고'를 운으로 띄워서 변 사또의 부하들과 변 사또의 동료 사또들 및 생일 잔치에 초청된 양반들이 한시를 짓도록 했다.[4]

이에 잔치에서 음식만 받아먹고 있던 이몽룡은 자신이 비록 거지꼴이지만 그래도 양반이라는 것을 내세워서 자신도 한시를 지었다.
金樽美酒 千人血
금준미주 천인혈
(금빛의 아름다운 잔에 담긴 가주(佳酒)는 천 백성의 피요,)
玉盤佳肴 萬姓
옥반가효 만성고
(옥쟁반에 담긴 맛있는 고기는 만 백성의 기름을 짠 것이니,)
燭淚落時 民淚落
촉루락시 민루락
(촛농 떨어질 때 백성 눈물 떨어지고)
歌聲高處 怨聲
가성고처 원성고
(풍악 소리 높은 곳에 원성 소리 높더라.)
이 시를 쓴 직후 이몽룡은 관아를 빠져나갔고 이 시를 받아본 운봉 영장은 경악을 금치 못하지만 변학도는 아랑곳하지 않고 잔치를 즐기는데[5] 그 직후 암행어사가 출두하면서 변 사또는 혼비백산한다.[6] 사실 암행어사의 정체는 새 장원에 급제한 이몽룡이었다.[7] 출두를 숨기기 위해 부득이하게 거지 꼴로 연인인 춘향이까지 속인 셈. 불의에 굴하지 않고 정절을 지킨 결과 춘향은 마침내 기생의 딸에서 신분을 뛰어넘어 양반의 정실 부인[8]이 되고 이몽룡은 벼슬이 좌의정까지 올라서[9] 삼남 삼녀 잘 낳아서 잘 산다는 해피 엔딩을 맞게 된다.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판소리의 특성상 퍼져나가면서 내용이 변형되어 기록한 판본에 따라 '춘향이 모진 고문을 버티지 못하고 숨진 이야기', '구해졌지만 신분의 격차에 좌절한 춘향이 결국 자살', '구해놓고 이몽룡이 바람피워서 자살'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남원 지역의 전설에서는 일반적으로 알려진 춘향전과는 달리 이몽룡을 기다리다 못해 자살하거나 추녀여서 이몽룡의 외면을 받아 자살해버리는 엔딩도 있으며(일명 <박색춘향전>으로, 1970년대에 영화로도 제작된 적이 있다) 가장 널리 퍼진 것은 위 해피 엔딩 버전.

3. 해외 번역

의외로 중국에서도 나름대로 인기가 있는 작품이다. 주로 월극 작품으로 만들어졌는데, 어디서 어떻게 만드냐에 따라서 그 형태는 천차만별이다. 어떤 버전은 그래도 보면서 '조선을 배경으로 한 스토리구나' 하고 알아볼 수 있게 배우들이 조선풍 분장을 하고 나오기도 하지만, 어떤 버전은 그냥 중국 배경에 스토리만 춘향전 큰 줄기를 따라간다 할 정도로 중국식으로 현지화하기도 한다.

일본어로도 자주 번역되었다. 이 중 1882년 6월에 나카라이 도스이[10]계림정화 춘향전을 오사카 아사히 신문에 20회 번역 연재해 큰 인기를 끌었는데 그 번역본이 일본에서 발표된 한글 고전문학 번역본의 시초 중 하나가 되었다. 기사

1892년에는 프랑스에서 "향기로운 봄"(Printemps Parfumé, 프랭탕 파르퓌메)[11]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다. 여기서는 몽룡이 춘향을 만나기 위해 여장을 한다. 프랑스 작가에게 춘향전을 소개한 사람이 바로 김옥균을 암살하고, 독립협회에 대항한 황국협회를 이끌었다고 악명높은 홍종우이다. 다만 문서에서도 알 수 있지만, 정치깡패 같은 식으로 욕먹을 인물은 아니다. 그 외에 홍종우는 심청전같은 다른 작품들도 번역하였다. 또한 해당 번역본을 기반으로 ‘사랑의 시련’이라는 이름의 발레까지 나온적이 있다.

베트남까지 전해져 전래되고 있다. 여 주인공의 이름도 春香의 베트남식 발음(난 수엉 후엉)이고, 여기에서도 프랑스어판 영향으로 몽룡이 춘향을 만나기 위해 여장을 한다.

1906년에는 대만에서 신문 연재되었다. 여기서는 춘향이 매를 맞고 죽어서 집으로 실려가는 중에 다시 살아나서 다시 감옥에 갇히나 이맹협이라는 협객이 구출해서 이몽룡(이 작품에서는 이령)이 미국 유학에서 돌아올 때까지 보호한다는 무협지스러운 각색이 들어가 있다고.

4. 특징

고구려 안장왕의 이야기가 춘향전의 모티프가 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경성제국대학교수였던 다카하시 도오루에 의하면 서상기에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4.1. 성적 묘사

춘향과 이몽룡이 한창 사랑에 빠졌을 때 이에 대한 묘사가 굉장하다. 이때 둘의 나이는 17살, 16살이라 요즘 관점으로 보면 중고등학생이 발랑 까진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당시 조선시대에선 15세 남성에게 관을 씌웠기 때문에,[12] 지금으로 치자면 대학교 1~2학년끼리의 로맨스라고 보면 된다.

어쨌든간에 현대 기준으로는 미성년자이기 때문에 한창 아청법에 대해 논란이 있을 때 아청법이 소설 등 텍스트 매체에는 적용되면 안된다는 주장의 근거로 이 춘향전과 같이 성적 묘사가 강하게 나오는 고전 문학 작품들을 드는 경우가 많다.[13]
눈결에 얼핏 보니, 삼삼이를 덮고 있는 것이 맹랑하고 야릇하다. (중략)
생리대를 풀고 과거 시험장에 있는 과녁[14]처럼 잠깐 일어서려무나.”[15]
“그건 곤란합니다. 그만하고 주무시지요.”
“이렇게 부탁하는데 일어나지 못하겠느냐.”
춘향이 어쩔수 없이 반쯤 일어섰다 다시 앉았는데, 몽룡이 정이 가득한 눈으로 바라보니, 겹겹이 둘러 싸인 푸른 산속, 늙은 중이 송이죽을 자시다가 혀를 데인 형상이요, 홍모란(紅牧丹)이 반개하여 피어오는 형상이라. 영계[16]찜을 즐기시나 닭의 볏이 거기 왜 있는가? 먹물이 흐른 줄과 도끼자국이 일치하는 구나.[17]
이도령의 움직임좀 보소. 몸이 점점 달아오르니, 훨훨 벗어 제끼고 모두 벗고 이부자리로 뛰어드는데, 춘향이 하는 말이,
"저 보고는 일어서라더니 당신은 왜 안 일어납니까?"
이도령이 눈결에 일어서서 앉아있자 춘향이 묻는 말이
“검은색을 띠면서,[18] 송이버섯의 머리 같은 것이 무엇시오?”
“그것도 모르느냐. 동해 바다에서 대합(大蛤) 조개 일쑤 잘 까먹는 소라 고둥이라 하는 것이라.”
에후리쳐 덥썩 안고 두 몸이 한 몸 되었구나. 네 몸이 내 몸이요, 네 살이 내 살이라. 호탕하고 무르녹아 여산폭포(廬山瀑布)에 돌 구르듯이 데굴데굴 구르면서 비점가(批點歌)[19]로 화답한다.
“우리 둘이 만났으니 만날 봉 자 비점이요, 백년가약 맺었으니 맺을 결 자 비점이요, 우리 둘이 누웠으니 누울 와 자 비점이요, 우리 둘이 벗었으니 벗을 탈 자 비점이요, 우리 둘이 덮었으니 덮을 복 자 비점이요, 오늘 침상 즐겼으니 즐길 낙 자 비점이요, 우리 둘이 입 맞추니 법칙 여 자 비점이요, 우리 둘이 배 닿으니 배 복 자가 비점이요, 네 아래 굽어보니 오목 요 자 비점이요, 내 아래 굽어보니 내밀 철 자 비점이요, 두 몸이 한 몸 되니 모을 합 자 비점이요, 나아갈 진, 물러갈 퇴, 잦을 빈 자 비점이요, 좋을 호 자, 실 산 자자, 수 자 다 비점이라.”
이렇듯이 음탕한 소리와 난잡하게 즐기니 남대문도 개구멍처럼 작게 보이고, 인정도 매방울처럼 작을 뿐이라. 선혜청이 오 푼이요, 호조가 서 푼이요, 하늘이 돈짝만하고, 땅이 맴도는구나.
ㅡ 춘향전 도남문고본. 출처

이도령이 춘향의 가는 허리를 후리쳐 담쑥 안고 기지개 아드득 떨며 귓밥도 쪽쪽 빨고 입술도 쪽쪽 빨면서 주홍 같은 혀를 물고 오색 단청 순금장 안에 쌍거쌍래 비둘기같이 꾹꿍꿍꿍 으흥거려 뒤로 돌려 담쑥 안고 젖을 쥐고 발발 떨며 저고리 치마 바지 속곳까지 활씬 벗겨놓으니 춘향은 부끄러워 한편으로 잡치고 앉아 얼굴이 볼그레하고 구슬땀이 송실송실 맺힌다. 어디 이뿐인가, 〈춘향가〉에는 ‘정자타령’ ‘궁자타령’ ‘비점가’ 등 춘향과 이도령의 성관계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거나 빗대어 부른 사랑가가 즐비하다. 갈 데까지 다 갔지만 전혀 상스럽거나 추하지 않다. 그래서 〈춘향가〉이다. 〈춘향가〉는 이와 같이 은밀한 남녀간의 관능적인 사랑을 열린 공간에 드러내놓고 자연스럽고 떳떳하게 즐길 수 있게 해준다.
ㅡ 김석배 교수. 네이버 지식 백과. 〈춘향가〉의 자력
특히나 이 부분은 유머화 되기도 했다. 업음질이 무슨 뜻인지 몰라 선생님에게 질문했더니 그제야 보이는 부분으로.

일제강점기 당시 춘향전을 일본어로 번역했는데 이 번역본의 성적 묘사가 매우 강해서 '일본인들이 열녀 춘향을 모욕하려고 왜곡한 거 아냐?'라며 연구를 했으나, 알고 보니 원전을 충실히 번역한 것일 뿐이었다는 카더라도 있다.

성적 묘사가 원체 직설적이다보니, 판소리를 배우는 사람들도 미성년자라면 이 부분을 생략한다고 한다. 국악인 박애리벌거벗은 한국사 101회 방송분에서 증언하기를, 9살 때부터 판소리를 배우기 시작해 중학생 때 춘향전을 뗐다고 한다. 하지만 두 사람의 첫날 밤 대목은 건너뛰고 배웠기에 선생님께 이 대목은 안 배우는 거냐고 질문했더니 "그 대목은 성인이 된 후 가르쳐 줄게"라는 답을 받았고, 실제로 스무 살이 되어서야 그 대목을 배웠다고 밝혔다.[20] 이해조 역시 춘향전을 음탕교과서라고 평했다.

4.2. 시대 구현

파일:external/www.namwontheme.or.kr/73_13988237492798_3.jpg
남원시 춘향 테마 파크에 있는 재현 모형. 완성도 높은 신장이다.
파일:춘향6.jpg
KBS 다큐멘터리"범법자 춘향 재판기"에서 고문당하는 춘향

변학도가 춘향을 고문하는 방식은 본래 국청에서 죄인을 심문할 때 죄인의 정강이를 때리는 방식인데 차마 여성의 볼기를 치긴 민망했던 지방 관원들이 여성에게 장형을 집행할 때 대체하는 방식으로 자주 사용했다. 사실 여성의 볼기를 칠 때는 속옷 한 장만 입히고 집행을 했는데 옷 위에 매를 치게 되면 나중에 피떡이 되었을 때 처리하기도 힘들어 이런 식으로 정강이를 치는 방식으로 대체한 것이다. 정강이는 볼기와는 달리 노출시키는 데 대해 제한이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물론 이몽룡과 춘향은 정식으로 혼인한 게 아니기 때문에 오히려 변학도가 이걸 성 풍속 문란으로 몰아 역으로 당할수도 있기에 변학도가 춘향을 처벌한 게 정당화 될 수 있고 심지어 장형으로 다스릴 수도 있었다.[21] 물론 춘향전에서는 이몽룡과 춘향의 사랑이 아름답게 각색되었기에 변학도가 춘향을 수청 안 든다는 이유로 어거지로 처벌한 걸로 처리한 만큼 춘향이 장형을 맞는 굴욕을 면하긴 했지만. 사실 진짜 문제는 처벌 내용이 간통죄가 되는데, 이러면 춘향이 문제가 아니라 이몽룡, 정확하게는 이몽룡의 집안을 언급하면서 처벌 내역 보고를 중앙에 해야한다. 지방 향반이라면 몰라도 이몽룡 같이 지방 수령 이상을 하다가 중앙으로 올라간 관료 집안을 걸고 넘어진다는 것은 전 지방 수령 처벌 문제와도 엮이는 형태라서 절대로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이몽룡의 부친과 변학도는 모두 남원 부사로 나오는데, 사또라고 나오면 만만해 보이지만 남원부에는 종3품 도호부사가 임명된다. 그럴 바에는 관기가 되었건 평민이 되었건 여자 하나에게 문제가 있었다고 하는 것이 뒷수습이 훨씬 간편할 것이다.

간혹 변학도가 자기 생일날에 춘향이를 죽이겠다고 했던 본문의 내용 때문에 춘향이 참형당하기 직전에 구원받는 걸로 묘사하는 매체가 있지만 지방 관원에게 죄인을 처형할 권한이 없었고 처형권은 오로지 임금의 고유 권한이었던 만큼 이는 명백한 오류이다. 다만 정작 춘향전 본문에는 춘향을 참형에 처한다는 내용은 없고 변학도가 춘향을 죽이려는 방식은 장살 즉 장형을 집행하면서 죄인을 치사시켜 버리는 방식이다. 실제로도 탐관오리들이 죽이고 싶은 이가 있으면 이런 방식으로 고의로 필요 이상으로 강하게 내리쳐 죽이는 경우가 허다했다.[22] 춘향전 본문 중에 변학도가 물고장을 운운하는 대목이 나오는데 이 물고장이 다름 아닌 죄인이 장을 맞다가 실수로 죽었을 때 올리는 보고서이다.

아래 변학도 소개에 '무능하지만 음서 출신으로 낙하산 임명되었다'라고 나오는데, 남원부는 도호부사가 임명되는 직위이다. 이게 어느 정도 위치냐면, 조선 시대 전라도 지방관은 전라도 관찰사(종2품)이 최고위고, 그 아래에 4목(나주, 광주, 제주, 능주)[23]의 목사(정3품)가 있으며, 그 아래가 7개의 도호부[24]에 임명되는 도호부사(종3품)이다. 현대의 군제로 치자면 낮게 잡아도 장성급이고 관직으로 치면 시장이나 2급 이사관, 국장급이다. 일반적인 낙하산이나 음서로는 이 직위에 임명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 때문에 변학도는 굉장한 뒷배를 가지고 있었다고 보는게 맞겠다.

그리고 연고지에 지방관으로 부임해서 토호와 결탁해서 반란을 일으킬 준비를 하거나 부패를 일으킬 여지를 차단하기 위해 조선 시대에는 고향으로 부임하는 것을 제한하는 상피제가 있었기에 이몽룡이 암행어사로 고향인 남원에 와서 춘향을 구해주는 것은 불가능했다는 칼럼이나 기사 역사 속 명저를 찾아서 춘향전 속 역사 이야기 상피제(相避制) 《춘향전》의 혁명성은 어디로 갔는가?등이 존재하는데 애초에 이몽룡의 부친이 남원에 부임했다는 것은 이몽룡 집안은 남원과 연고가 없다는 이야기다. 게다가 부사의 임기는 최대 5년 인데다 이몽룡의 아버지가 승진되어 한양으로 떠나기 때문에 5년을 안채웠을 가능성도 충분하며 채웠다 할지언정 당시 10대 후반이었던 이몽룡의 출신지가 남원일리도 없다. 일족이 현직 지방관이라면 몰라도 부친의 전 부임지라서 상피제 대상이 되지 않는다. 실제로 이몽룡의 모티브로 언급되는 성이성도 아버지 성안의 가 남원부사를 지냈고 성이성도 아버지를 따라가 3년간 남원에서 지냈지만 3차례나 되는 암행어사를 모두 호남에 암행어사로 파견된다.

오히려 문제는 암행어사 문서에도 있지만, 암행어사는 이몽룡 같은 초보가 임명받는 보직이 절대로 아니라는 데 있다. 이몽룡이 한양에 올라가고 한 40대, 50대가 되어서 부임했다면 모를까 장원 급제했다고 암행어사 내려보내고 하는 일은 절대 없다. 성이성의 경우는 지방관 경력도 없이 암행어사로 파견되었던 상당히 예외적인 사례이긴 한데, 문제는 이 때 성이성의 나이가 42세라는 것. 성이성은 1595년 생으로 1610년에 진사가 되었지만, 과거에 급제한 것은 1627년, 관직에 임명된 기록이 나오는 것은 1634년, 암행어사로 파견된 최초 기록은 1637년이다. 병과로 급제했다는 것과 첫 임명된 관직이 정6품 정언이라는 것을 고려하면 그 사이에 미관 말직을 전전했다가 기록만 이 때 되었을 수도 있고, 그렇다면 관직 생활 10년차가 된다. 그리고 종6품 현감 정도는 지냈을 수도 있다고 추측할 수 있다. 만일 이 경우라면 성이성이 어사로 파견된 것은 딱히 예외도 뭐도 아니게 된다.

몇몇 서적에서 조선 시대에 여죄수에게 칼을 씌우지 않아 춘향전에서 춘향에게 칼을 씌운 걸 오류라고 하는 말이 있지만 사실이 아니다. 실제로 조선 시대의 문헌을 보면 여죄수에게도 칼을 씌워서 옥에 가두는 게 관례였다. 심지어 민간 소설이 아닌 이덕무가 실화를 바탕으로 남긴 기록인 은애전에도 은애에게 칼을 씌웠다는 기록이 나오며 천주교 박해에 관한 기록에도 하옥된 여신도에게 칼을 씌웠다는 기록이 전하는 만큼 춘향전에서 춘향에게 칼을 씌워서 옥에 가둔 건 전혀 오류가 아니다.

5. 등장인물

  • 성춘향
    주인공으로 성 참판과 월매의 딸이다. 어머니가 기생이라 양반은 아니었으나[25], 명색이 양반의 딸이었기에 당시 정조 사상에 맞춰 변 사또의 수청을 거절한 것이다. 그런데 이게 진짜 정조사상 때문인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신분 상승 욕구가 엄청나다. 이몽룡이 남원을 떠날 때도 보면 어떻게든 따라가서 첩이라도 한자리 하겠다는 의지를 불사르고, 이몽룡이 거지 차림으로 돌아왔을 때에도 선산에 묻히겠다는 의지를 보인다. 춘향전에서는 해피 엔딩을 맞이하지만 춘향전의 근본이 되는 전설에서는 추녀였는데, 죽고 나서 강한 바람이 남원에 불어닥치자 그녀의 원한 때문이라 생각으로 제사를 지내면서 미녀라고 달래며 제사를 지내더니 바람이 그쳤다고 한다. 묘의 봉문이 클 뿐만 아니라 축대와 계단 같은 걸 포함하면, 굉장한 규모다. 물론 모티브가 되는 전설에서만 추녀지, 춘향전 내에서는 작중 최고의 미녀로 묘사된다.
  • 이몽룡
    원래 남원 부사의 아들로 춘향과 불타는 사랑을 하였고, 한 번 본 과거 시험에 장원 급제(실제 조선에서는 바로 암행어사가 되지 않는다.)를 해 암행어사가 되어 춘향을 구하고 행복하게 산다. 실제 모델이 되는 인물이 있어서 예전 역사스페셜에서 소개가 된 적이 있다. 바로 계서 성이성.[26] 인조 시대의 인물로 암행어사로 3차례나 파견되었던 인물이었다. 부친 성안의가 남원 부사로 있을 때 남원에서 거주하다가 기생을 만났고, 말년엔 늙은 기녀에게 어느 기녀의 소식을 물은 뒤 젊었을 적을 회상했다는 구절을 보아 결국은 맺어지진 못한 것으로 추정된다. 실제 암행어사 부임도 한참 늦고, 남원에 들렀을 때는 이미 찾지 못했다는 이야기도 존재해서 사실상 확정에 가깝다. 이후 후손들은 기생과 사랑 놀음에 빠진 것을 부끄럽게 여겨서 실존 인물의 공개를 막기 위해서 성 도령이 이 도령으로 바뀌고, 대신 성씨는 춘향에게 주어져서 성춘향이 되었다는 유래가 전한다.[27] '금준미주는~'으로 시작하는 본문의 시는 실제 성이성의 시로 기록되어 있다.
  • 향단
    월매, 춘향의 몸종. 모티브가 된 작품에 따라서는 방자와 맺어진다. 방자전에서는 이몽룡과 붕가붕가를 하는 전개를 보여주기도 한다.
  • 변 사또(변학도)
    남원 부사. 학식도 별로 없고 음서제로 관직을 얻은 낙하산 인사. 가질 수 없으면 억지로라도 여자를 빼앗으려는 추한 꼴을 보이다 패가망신한다. 임권택 감독의 춘향전을 보면 감독의 독자적인 해석이 가미되는데, 남자가 예쁜 여자를 원하는건 어쩔 수 없다지만 지아비 있는 부녀자를 탐해서야 쓰겠냐고 말하는 이몽룡에게 일개 기녀가 정절을 논하는 것 자체가 양반의 사회에 도전하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냐고 말하며[28] 보수층의 입장을 대변하는 캐릭터로 묘사된다. 이몽룡은 그런 그에게 그것이 오랜 세월 억압받아온 자들의 몸부림이라 생각되지 않느냐고 대꾸했다. 방자전에서 다소 어눌하지만 인생관이 뚜렷한(?) 인물로 나온다. 영화 내에서는 최고의 조연 캐릭터로 칭찬받는 중. 춘향전 덕분에 한국 사또의 대표 캐릭터가 되었고 오늘날에도 변씨 성을 가진 많은 분들에게 사또라는 별명이 붙여지고 있다.[29] 춘향이 백년가약 맺고 수절 중이라니까 변학도 처음 반응이, "무식한 상놈인들 무슨 소리냐? 어떠한 양반이라고 엄한 아버지가 계시고 장가도 들기 전인 도련님이 시골에서 첩을 얻어 살자 할꼬?" 그렇다, 이몽룡의 사탕발림은 같은 양반이 봐도 안믿어질만큼 헛소리였던 것이다. 구슬리는 말 중에 '기생이 무슨 수절이냐'란 소리는 안한다. 이 말은 그 밑에 생원이 한거고 변학도는 '장가도 안간 도련님이 무슨 첩이야 말이 되냐', '어린 놈이 희롱하자고 한 말이지 돌아올리가 있겠냐?'로 오히려 무책임하게 춘향을 버린 이몽룡을 비난하고 있다. 춘향전이 당시 조선 사회에서 보수 계층, 지배 계층에 대한 반발과 풍자를 기반으로 탄생하여 살이 붙여지고 발전한 이야기이기에, 원전의 변학도는 당시 지배계층을 대표하는 것만으로 필요한 반동인물의 요소를 충분히 갖추었다. 오늘날에 이르러 재해석하며 '권선징악'을 강조하기 위해 여러모로 이미지가 개악된 인물. 아동 대상 동화에서 주로 못생긴외모로 그려지지만 사실 원문에서는 상당한 미남으로 묘사된다. 활달한 성격의 미남에 풍류를 즐기며 글도 잘 쓰고 꽤 유능한 관리라고는 하나, 문제는 여성편력이 상당하며 한번 화나면 좀처럼 가라앉지 않는 분노조절장애가 있다고.
  • 월매
    성춘향의 어머니. 이분이 강력한 인상을 남기는 장면은 춘향에게 몽룡이 이별을 선언하는 장면. 춘향이 몽룡의 말을 듣고 자신의 머리와 옷을 찢고 히스테리를 부리며 방 안 물건까지 집어던지고 급기야는 고래고래 울어제끼자[30], 처음에 월매는 사랑 싸움으로 치부하고 한가하게 아니꼽다고 중얼거리고 있다가 울음이 아무래도 너무 긴지라 수상쩍게 생각하고 엿들어 보니 진상을 파악한 월매는 "허 동네 사람 다 들어보오. 오늘로 우리 집에 사람 둘 죽습네"하고 소리지르며 방 안에 난입하여 상황을 더 악화시킨다. 처음 공격 대상은 춘향. "이년 이년 죽어라"라며 시체라도 저 양반이 지고 가게 하라고 막말을 퍼붓는 한편, '오르지 못할 나무 쳐다보지도 말라 할 때 끝끝내 고집부리고 내 말 안 듣더니 꼴 좋다'하고 비아냥거다가 결국 포문을 몽룡에게로 향해 '내 딸이 어디가 어때서 버리려 드느냐!'고 몰아세운다. 기가 질린 이몽룡이 춘향을 데리고 가겠다고 둘러대나 조상 신주를 넣어 둔 상여에서 신주를 소맷자락에 빼돌리고 그 자리에 춘향을 태워가겠단 말을 듣고 체념한 춘향의 만류로 상황은 일단락.
  • 운봉 영장[31]
    변학도의 생일 잔치 때 초대받은 주변 고을 원님 중 하나로 눈치가 굉장히 빠르다. 처음 이몽룡의 행색을 보고 비범한 사람임을 느꼈고 박대하는 변학도와 달리 어느 정도 이몽룡을 챙겨주었다. 이몽룡이 금준미주로 시작하는 시를 짓고 그것을 보자 어사임을 눈치채고 그 자리에서 미리 내뺀다.
  • 곡성 원님
    역시 변학도의 생일 잔치에 초대받은 주변 고을 원님 중 하나로, 겁이 굉장히 많다. 모여든 인원을 '순창 군수 임실 현장 운봉 영장 자리호사 옥과 현감 부채치례 남평 현령 을고 났다 곡성 원님 권마성에 담양 부사 순천 구례'라 전하고 있다.

6. 대중매체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연애담이니 만큼 후대에 여러 모습으로 오마주되었다.
  • 중국에 홍루몽을 연구하는 홍학이 있다면 국내에는 춘향전을 연구하는 춘학이 있다고 할 정도로 학계의 연구도 많은 편이고 캐릭터들에 대한 해석도 다양한 편이다. 근데 설화계, 판소리계라서 원본 찾기가 힘들다는 한계가 있다.
  • MBC 개그 프로그램 '오늘은 좋은 날'의 코너 중 하나였던 월매전
    월매라는 이름이 1995년 발매된 독일의 유로댄스 그룹 Le Click의 Tonight is the night라는 노래의 랩 부분 가사인 Hold me hold me몬데그린이다. 이 노래 자체도 한국에서 상당한 인기를 얻었지만 월매전의 인기로 월매 댄스송으로 더 유명한다. 참고로 월매 역을 맡은 개그맨은 임하룡.
  • 일요일 일요일 밤에 TV인생극장 춘향전
    TV인생극장에서 춘향전을 다룬 적이 있는데, 춘향이 변 사또에게 수청을 드는 내용이 나왔다. 여기에 이몽룡이 춘향을 만나기 위해 몰래 잠입하기 위해 여장을 한다는 시대를 앞선 발상까지 나온다. 수청은 든 최종 결과는 변 사또의 첩이 됐으니 잡혀가는 변 사또를 따라가겠다고 하고 암행어사가 된 이몽룡을 보고 놀라며 후회하고 끝. 이외에 일밤에서 별개의 그냥 특별편으로 춘향전을 다룬 경우에서도 골때리는 설정이 나오는데 역졸들 중에 서양인이 나오질 않나 (깜짝 놀란 옆의 역졸과 대화 "너 뭐야?" "아르바이트 왔다 왜?" 이사람 민속촌에 관광갔다가 막걸리 한사발에 현장 캐스팅됐다고[32]) 이몽룡이 암행어사가 아니라 역졸이라 뭔일인가 했더니 과거에 떨어져서 일하고 있다고 하질 않나.
  • 뮤지컬 인당수 사랑가
    이쪽은 심청전까지 콜라보레이션되어 있다는 점이 독특하다. 춘향이 월매의 딸 성춘향이 아니라 심봉사의 딸 심춘향.
  • 발레 '춘향'
    유니버설 발레단에서 창작한 창작 발레. 2006년 고양 어울림누리에서 쇼케이스가 공개된 후 2007년에 고양 아람누리에서 전막 초연하였다. 2014년 대폭 수정, 보완하여 세종문화회관에서 정식 공연하였다. 2014년 공연에서 차이콥스키의 '만프레드 교향곡(Manfred Symphony)' 등 그간 대중에 많이 알려지지 않은 음악들을 사용한 것이 특징이다. 1막, 2막 각 50분 정도로 다소 짧은데 그 때문인지 방자와 향단이의 비중은 초반부 몽룡과 춘향의 만남 이후로는 병풍 수준이다.
  • 안드레이 서반의 '다른 춘향'
    '창극의 세계화'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루마니아 출신 연출가 안드레이 서반이 연출한 창극이다. 내용이 현대적으로 각색되어 몽룡은 아버지의 남원 발령으로 내려온 대학생으로 서울로 돌아가 사법고시에 합격하고 검사가 되는 것으로 나온다. 대사도 현대적인 구어체로 진행되고, 무대 디자인이나 의상도 현재 시대상과 같다. 무대 연출은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의 2000년 영상판과 상당히 비슷한 느낌을 준다. 마오쩌둥을 연상시키는 변학도의 모습이나 '기생점고' 대목에서 춤추는 기생들이 특히 그러하다. 향단이가 등장하지 않는데 연출을 맡은 서반이 가난한 퇴기의 집에 몸종이 있는 것이 말도 안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란다. 이외에도 제목인 '다른 춘향'에 걸맞게 춘향은 청순가련한 고정 관념과 다르게 감옥을 찾아온 몽룡에게 도끼눈을 뜨면서 '네가 나한테 어떻게 이럴 수 있냐'고 일갈하는 캐릭터다. 동시에 서반은 춘향을 영웅적 인물상으로 제시하는데 몽룡이 '예쁜 춘향을 꼬셔서 어떻게 한번 해볼까' 하는 정도라면 춘향은 '사랑'이라는 이상에 자신을 완전히 내던진 인물이기 때문이다. 춘향이 갖은 고초를 겪는 와중에도 몽룡은 춘향을 구하려는 시도도 하지 않았고 심지어 잊고 지냈다는 것과 대조된다.
  • CMYK - 변사또전
    이 노래에선 변사또를 주인공으로 정하여 서술한 사례다. 내용은 춘향이가 이몽룡이 떠난 후 예전부터 춘향이를 좋아해왔던 변 사또가 그에게 고백하지만, 차이고 마을의 바람둥이 이방의 조언을 받고 자신의 집을 보여줘더니 춘향이가 자신의 마음을 깨달았다고 생각한다. 변 사또는 그에게 많은 사치품을 사주고 춘향이는 변 사또의 등골을 휘게 할 정도로 사치품을 많이 산다. 그리고 행복하게 지나던 동안에. 이몽룡이 돌아오게 된다. 암행어사가 되어 변 사또를 묶으라 하자 변 사또가 오라에 묶이고. 춘향이는 가짜 눈물을 쥐어짜서 이몽룡에게 간다. 변 사또가 맞는 사이 춘향이는 변 사또가 사준 사치품을 이몽룡에게 자랑한다. 변 사또는 매질이 아파서 우는게 아니라 서러워서 눈물이 난다.
  • 끼리 프로젝트 - 춘향YO!
    부산 뮤지컬 & 연극 극단인 끼리 프로젝트에서 하는 코믹 로맨스 뮤지컬. 춘향전을 모티브로 하긴 하지만 내용은 그냥 인물만 따왔다고 할 정도로 상당히 다르다. 주인공인 춘향이가 박색하여 향단이보고 춘향이라고 하게 하는 등. 소극장에서 주로 한다.
  • 두번째 달의 프로젝트 앨범 '판소리 춘향가' - 2016년에 발매한 앨범으로 두번째 달 특유의 이국적인 느낌과 판소리가 만나 엄청난 시너지를 일으켰다. 2집의 타이틀곡 '사랑가'가 춘향가의 그 사랑가를 따와서 타이틀로 내세웠는데 이것이 엄청난 호평을 받았고 아예 다음해에 춘향가 전반적인 내용을 가지고 프로젝트 앨범으로 발매하였다. 국악이 재미없다고 느낄 수 있는 편견을 깨고 쉽고 재미있고 전혀 촌스럽지 않은 세련된 음악으로 재탄생 하였는데, 평소 조금이라도 국악이나 판소리에 관심이 있는 일반인들이라면 첫 트랙부터 마지막까지 스킵하지 않고 들어볼만 하다.
  • 2007년에 방영한 무한도전 영어 마을 특집에서 춘향전을 영어로(?) 패러디한 콩트를 하기도 했다. 춘향이는 정형돈, 이몽룡은 노홍철, 변 사또는 정준하가 맡았다. 암행어사를 영어로 블랙(暗) 액션(行) 솔저(御史?)라고 엉뚱하게 우기는 이몽룡 노홍철과, 춘향이가 수청을 들던 말던 때리는데 맛들인 변 사또 정준하, 변사또의 단매를 못 이겨 변 사또의 수청을 기꺼이 드는 춘향이 정형돈이 압권. 이후 2009년엔 아예 멤버들 전원이 춘향이로 분장해 남원에서 각종 몸개그를 선보인 '춘향뎐' 특집을 하기도 했다.

* 그룹 큐빅의 2집 타이틀 곡인 Oh! 춘향은 이 판소리를 모티브를 한 곡이다. 또한 part 1,2가 있는데 음은 동일하지만 가사가 다르다.

6.1. 소설

  • 남원고사에 관한 세 개의 이야기와 한 개의 주석
    소설가 김연수의 단편집 <나는 유령작가입니다>에 수록. 기존에 알던 춘향전과 다른 해석을 보여준다. 춘향은 그냥 출석 체크만 하면 되는 기생점고에 안 나가겠다고 바득바득 우기다가 지 팔자 지가 꼬는 캐릭터로, 변 사또는 부패한 항리를 몰아내려는 올곧고 청렴한 관리로 등장한다. 언어의 아름다움이 아주 출중한 작품.
  • 네이버웹소설 '사또의 여자가 되겠나이다' - 21세기 대한민국을 살던 여주인공이 난데없이 춘향전의 여주인공 성춘향을 모시는 계집종 한단으로 환생한 후, 변학도가 남원 사또로 부임해오면서 벌어지는 이야기. 주요 공간적 배경은 남원이고 춘향전에 나왔던 인물들도 다 나오지만 라이트노벨이라는 장르에 맞춰 캐릭터성이 상당히 각색되었다. 몽룡은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춘향에게 추파나 던져대는 양아치에 춘향은 살짝 백치 끼가 있어서 그런 몽룡에게 빠진 여자로 나오고, 방자나 한단은 그런 몽룡 / 춘향을 말리느라 고생하는 역할이다. 무엇보다 가장 많이 바뀐 인물은 변학도로, 탐관오리 악역이 아니라 완소남에 가슴 아픈 과거를 가진 인물로 나온다. 외모가 어느 정도냐 하면 변 사또가 학식이 높은 여자가 이상형이었다고 말하자 한단[33]이 정신이 나가서 초기의 목적[34]을 까먹고 "사또의 여자가 되겠나이다!" 라고 말해버릴 정도.

6.2. 게임

6.3. 만화

  • 클램프의 만화 신 춘향전
    일본 작가가 그렸다는 점에서 특이 케이스. 등장 인물들의 이름이나 설정 등은 원작을 따르지만 내용은 원작과 다르게 악덕 양반 퇴치 모험물. 여기 나오는 한국어 발음은 조총련계 재일 교포에게 조언을 받았는지 모두 북한식 표기를 따르고 있다(양반을 량반이라고 한다거나).
  • 신암행어사
    1권에 춘향전을 각색한 에피소드가 등장한다. 시대배경은 옛날(최소 조선시대)이지만 판타지가 섞여 있다보니 이몽룡은 귀향하는 길에 괴물들에게 죽었고, 이 이몽룡 역할을 작품의 주인공인 (박)문수가 맡으며, 춘향은 원작처럼 (이름은 안 나오지만 변학도가 분명한) 영주에게 시달리지만 여전사로 나온다. 스토리 작가인 윤인완은 나름대로 연구했는지 에피소드 말미에 "익히 알려진 내용은 아동용 고전소설 버전이고, 사실 진짜 원작은 '이몽룡이 이미 서울에서 다른 여자와 결혼해서 춘향이 자살하는 내용'이다"라고 직접 해설을 적기도 했다. 다만 더 정확히는 맨 위에서 적었듯이 원작이 구전되는 판소리라서 이본(異本)이 많다보니 '진짜 원작' 같은 건 없다.
  • 네이버 웹툰 유령극단의 네번째 에피소드가 춘향전이 모티브이다.
  • 네이버 웹툰 매일+에서 발칙한 춘향이라는 이름의 웹툰이 연재 중이다. 여기서는 이몽룡이 춘향을 가지고 논 것도 모자라 다른 여자와 장가를 들자 이에 화가 난 춘향은 이몽룡을 걷어차고 변학도에게 갈아탄다는 내용이다.

6.4. 드라마

  • TV 춘향전
    1980년대 춘향전의 프리퀄부터 시작한 작품으로 월매가 춘향을 낳게 되는 스토리부터 춘향이 자살[35]하고, 노년의 이몽룡과 변학도가 춘향의 묘 앞에서 우연히 만나는 장면까지 그렸다. 출연진이 꽤 다양한데, 선우은숙이 춘향, 한혜숙이 젊은 날의 월매, 강부자가 늙은 월매, 강석우가 이몽룡, 백윤식이 변학도였다.
  • KBS 미니 시리즈 쾌걸춘향 : '원작과의 연결점은 배역의 이름뿐'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많은 부분에서 재해석이 가해졌다. 가장 큰 차이점은 악역에서 탈피해서 복잡한 캐릭터가 된 변학도(엄태웅)
파일:춘향1.jpg
  • 2014년 KBS1TV에서 방영했던 다큐멘터리인 시대의 작창 시리즈 1편 "범법차 춘향 재판기"에서 춘향전을 자세히 다루었다. 말이 다큐멘터리지 거의 단편 드라마급으로 춘향전의 내용이 재현되었다.
  • 드라마스페셜 원녀일기 - 2015년. 춘향, 심청, 콩쥐가 한 마을 친구로 나온다. 춘향이 아니라 주인공이 콩쥐인데, 김슬기가 맡았다. 사또 역으로 오상진이 나온다. 손진영이 이방 역으로 나오고 견미리는 콩쥐 엄마, 정준호가 청이 아빠 심학규 역으로 특별 출연하는 등 은근히 캐스팅이 화려하다.

6.5. 영화

역대 춘향전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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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향전
(하야카와 고슈, 1923)
춘향전
(이명우, 1935)
그 후의 이도령
(이규환, 1936)
춘향전
(이규환, 1955)
대춘향전
(김향, 1957)
춘향전
(안종화, 1958)
탈선 춘향전
(이경춘, 1960)
춘향전
(홍성기, 1961)
성춘향
(신상옥, 1961)
한양에 온 성춘향
(이동훈, 1963)
춘향
(김수용, 1968)
춘향전
(이성구, 1971)
방자와 향단이
(이형표, 1972)
성춘향전
(박태원, 1976)
성춘향
(한상훈, 1987)
성춘향뎐
(앤디 김, 1999)
춘향뎐
(임권택, 2000)
방자전
(김대우,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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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춘향전 영화는 한국 영화사에서 중요한 이정표가 되기도 했다. 한국 최초 토키 영화가 1935년판 춘향전이고, 1955년판 춘향전은 전후 한국 영화의 시발점으로 꼽힌다. 한국 최초의 컬러 시네마스코프 영화도 1961년판 춘향전이고, 최초의 70mm 필름 영화도 1971년판 춘향전이다. 2000년 춘향뎐은 한국 영화 최초의 칸 영화제 경쟁 진출작. 워낙 인기 있는 고전인지라, 기술적 실험을 할 안전 장치 같은 역할을 한듯 하다. 참조 링크.
    또한 초창기 영화흥행의 보증수표이기도 했는데, 1923년부터 2000년까지 무려 18번이나 영화화되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당시 배우들의 선망이 '춘향전의 주인공' 이라는 말도 있었으며 특히 1961년 1월에는 신상옥 감독과 홍성기 감독의 두 춘향전 영화가 거의 동시기에 맞붙어 화제가 되기도 했다. 결과는 신상옥 감독의 성춘향쪽이 당시 획기적인 영화기술을 동원하면서 흥행면에서는 압승했다.
  • 임권택의 영화 춘향뎐
    한국 영화 최초로 칸 영화제 경쟁 부문에 진출했다. 이를 기점으로 한국 영화도 칸 영화제 경쟁 부문에 오르기 시작했으며 2000년대 한국 영화 르네상스의 시발점 중 하나로 평가된다. 몽룡 역의 조승우는 이 작품 이후로 본격적으로 주목받는 배우로 성장하게 된다. 그러나 춘향 역의 이효정[36]은 간간이 오락 프로그램에 나오는 정도로만 모습을 보이다가 조용히 연예계를 떠나 평범한 일반인으로 살고 있다. 춘향이 고문을 당하는 장면은 실제 조선시대의 신장 집행 방식대로 반영이 잘 이루어졌으나 뜬금없이 판소리 장면으로 넘어가 춘향이 고문당하면서 변학도에게 질타하는 모습이 안나와 아쉬운 부분이다. 더불어 춘향의 꿈 해몽을 비롯한 옥중 생활 또한 춘향전에서 중요한 대목임에도 제대로 다루지 못한 면이 있다.
  • 북한 영화
    북한에서도 몇 차례 춘향전이 영화로 만들어졌다. 1959년 윤용규[37] 감독의 《춘향전》, 1980년 유원준·윤용규 감독의 《춘향전》(전편·후편), 그리고 1984년 납북됐던 신상옥 감독의 《사랑 사랑 내 사랑》. 《사랑 사랑 내 사랑》은 고전 춘향전을 바탕으로 제작된 뮤지컬 영화로, 신상옥 감독은 이미 《성춘향》(1961)에서 춘향전을, 그리고 《아이 러브 마마》(1975)에서 뮤지컬을 연출한 경험이 있으므로 익숙한 호흡으로 뮤지컬 춘향전을 만들 수 있었다. 또 북한에서는 스케줄상 공연 사이 쉬는 기간이 길기 때문에 여러 가극단과 공연 단체를 동원해 출연시킬 수가 있었다. 춘향 역에 장선희, 이몽룡 역에 리학철, 월매 역에 김명희, 방자 역에 손원주, 향단 역에 방복순, 변학도 역에 최창수 등이 출연해 호연을 펼쳤고 가창력도 돋보였다. 신상옥 감독의 회고에 따르면 이 작품으로 북한 영화 사상 최초로 암표가 등장했다고 한다. '사랑'이라는 단어를 제목에 쓴다거나 선전성이 없다는 점은 80년대 북한 영화에 개혁을 가져오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었다.
  • 1987년 김봉은 감독의 《탈선 춘향전》: 비디오용 에로 영화다.

6.6. 애니메이션

7. 기타

  • 이몽룡이 한양에 올라가기 전에 성춘향과 같이 마신 술이 조선 3대 명주로 유명한 감홍로라고 알려져있다.
  • 도지삽니다로 유명한 김문수경기도지사의 대표적인 말실수가 춘향전과 관련이 있는데, "따먹 문수"로 악명이 높았다. 그냥 듣기에도 심상치 않은 해당 이명의 유래는 김문수 본인이 춘향전을 보고 "변 사또가 춘향이 따먹는 얘기"라고 한 데서 시작된다. 관련기사 링크. 사실 춘향전 내용을 보면 그다지 틀린 말은 아니다. 내용 전개상 이몽룡이 성춘향을 꼬시는 내용이고, 변사또가 춘향이에게 수청을 들라고 협박을 하는 것도 사실이다. 단지 그 표현 방식이 공식 석상에서 할 표현이 아니라 사석 정도의 저질 농담에나 쓰일 표현이라서 문제였지. 아무튼 이런 이유로 따먹 문수라고 불렀다.
파일:춘향7.jpg
  • 2000년에 나온 영화 춘향뎐이나 KBS 다큐멘터리 "범법자 춘향 재판기"에서는 춘향이 맨발인 상태로 고문을 당하는 데 이는 춘향이 혹여나 도망치는 걸 방지하기 위해서이다. 조선 시대 때는 죄인들의 도주를 막기 위하여 신발을 압수하고 맨발로 만들어 놓았기 때문이다. 현대에도 용의자들이 맨발에 슬리퍼 차림으로 취조를 받는 이유도 이와 비슷한 맥락이다. 해를 품은 달의 월이나 선덕여왕(드라마)의 덕만도 맨발로 고문을 당하는데 이 역시 동일한 이유에서다.
  • 1960년대 중반 북한에선 한때 춘향전의 미디어화가 김일성의 교시로 금지되었다. 이유는 계급간의 사랑 타령이라 젊은 세대의 남녀에게 도움이 안 된다는 것. 김일성이 대중문화에 있어서 꼰대기질이 상당히 강했던 것을 그대로 반영한 것이다. 예를 들어서 1980년대 만수대TV를 개국했을때 송출지역을 평양과 근교 지역으로 제한시킨다거나 하는 식으로 꼰대기질을 드러냈다. 그리고 영화광이던 아들 김정일이 십 년도 넘게 지난 1970년대 후반에 해제시켰다.
  • 고구려/백제의 계백현(고양시) 배경 안장왕과 한씨 미녀 설화 스토리가 춘향전 이야기와 매우 닮았다


[1] 원전(어린이용 동화책이 아닌 조선 시대의 원본)에 따르면 이들은 만난 지 하루만에 하룻밤을 보낸다. 사실 로미오와 줄리엣의 경우도 그렇고 결혼 적령기가 현대보다 빨랐던 과거에는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2] 춘향이 관기라고 해도 수청을 요구하는 건 법으로 금지되어 있다. 기생은 창녀가 아니기 때문이다. 사실, 수청이라는 뜻은 "내가 시키는 심부름이나 해라" 라는 뜻이지만 실상은 변학도가 높은 직위라서 대놓고 품위없게 말을 못하니까 반쯤 돌려서 말한 것이다.[3] 이때 월매는 "걸인 중의 상걸인이 돼서 돌아왔구나!"라고 표현한다.[4] 아예 기름 고(膏)와 높을 고(高)로 운자를 띄워줬다는 버전(완판본)도 있다. 수능을 위주로 한 교과서에는 주로 이 버전이 쓰인다. 그런데 시를 지을 때 운자(한자의 독음에서 중성과 종성과 성조가 맞는 글자를 압운이라고 하는데, 한시를 지을 때는 짝수행의 마지막 글자들에 압운이 되도록 한다. 이걸 운자라고 부른다)를 지정해 주더라도 정확히 어떤 글자를 쓰라고 지정하는 경우는 특별한 이유가 있지 않은 이상 흔치 않은 일이다.[5] 판본에 따라서는 영장은 무슨 뜻이지 몰라 꿈뻑거리고 그래도 사또라 한시를 알아듣고 변학도가 체념한 표정으로 잔치를 마저 즐긴다거나, 시를 알아들은 변학도가 격노하며 밥상 뒤엎기를 하고 화풀이를 할 겸 춘향을 끌어내 수청 들 것인지 죽을 것인지 고르라며 협박하던 도중 때맞춰 들려오는 암행어사 출두 소리를 듣고 대경실색하며 어디론가로 숨으려 드는 연출로 나오기도 한다.[6] 당황해서 '문 들어온다, 바람 닫아라. 물 마른다, 목 들여라' 라는 말도 하게된다. 고전 문학의 언어의 도치를 이용한 언어 유희를 통한 해학을 가르칠 때 자주 나오는 예시다.[7] 하지만 실제 조선에서는 이 작품에 나온 것처럼 장원 됐다고 바로 암행어사가 되는 것이 불가능했다. 항목 참조[8] 정경 부인이 되었다는 판본도 있다. 정 경부인은 남편이 정승급인 정1품 또는 종1품에 올랐을 때 그 부인을 예우한 것인데, 이몽룡이 정승 관직인 좌의정까지 올라서 이 호칭을 받았다고 한다.[9] 버전에 따라 영의정까지 올랐다는 내용도 있다.[10] 히구치 이치요의 스승이다. 부산에서 자랐기 때문에 조선어를 할 수 있었고 아사히 신문 부산 특파원으로서 조선의 사건을 보도하기도 했다. 기사[11], 향기로울 . 춘향전의 한자를 그대로 불어로 풀어쓴 것.[12] 즉 16세를 성인으로 봤단 뜻이다. 이러한 조선의 성인식관례(冠禮)라고 한다. 중국 삼국시대 배경의 일본 게임이지만 코에이 삼국지 시리즈10편에서도 플레이어의 자녀가 일정 나이에 도달했을 경우 "관례"를 올릴 수 있고 배우자가 "아직 어리지 않냐"고 하는 대사도 있다.[13] 윤승운 화백의 한자 교육 만화(맹꽁이 서당과 형식이 비슷)에서 훈장의 시중을 드는 하인이 자신이 재밌게 읽은 책이 춘향전이라고 자랑스레 말하자 훈장이 "그런 저질 불량 소설을 책이라고 하다니!"라면서 호통친다. 그러면서 "성현의 말씀이 담긴 좋은 책들을 읽어야지"하고 혀를 차는데 하인은 아무말 못하면서도 "춘향전이 손에 땀나게 재밌는데"라고 툴툴거린다. 짧은 내용이지만 춘향전에 대한 정통 유학자의 시선과 일반 민중들의 입장을 명쾌하게 나타냈다.[14] 원문에는 식년동당(式年東堂)의 기추(騎芻)로 나와 있는데 식년도당은 "식년에 과거를 보는 장소인 동당, 또는 식년에 보는 시험인 동당시"를 의미하며 기추는 "말을 타고 달리며 활을 쏘는 것"을 말한다.[15] 원문에서는 눈결에 얼핏 보니 삼삼이에 채인 것이 맹랑하고 야릇해서 "월후(月候) 삼장 끌러 놓고 식년동당(式年東堂)의 기추(騎芻) 과녁처럼 잠깐 일어서려무나."라고 말한다.[16] 원문에는 연계(軟鷄)로 나오는데 영계의 원말로 병아리보다 조금 큰 어린 닭을 의미한다.[17] 이 부분 전체가 춘향이의 성기를 묘사한 글이다. 자세한 내용은 아래 출처에 있으니 참조.[18] 원문에는 반룡단(斑龍丹)색을 띤다고 나오는데 반룡단은 한약의 일종으로 짙은 검은색을 띠고 있는 약이다.[19] 여기서 '비점'은 어떤 시에서 좋은 대목이나 비평할 만한 부분을 점으로 찍어 표시하는 것이다.[20] 그 외에도 방송에서 선보인 첫날밤보다 더 수위가 높은 대목이 있다고 밝혔는데(상기한 인용문), 벌거벗은 한국사가 12세 시청가인 관계로 이 부분은 공개하지 않았다.[21] 실제로 조선 시대에 양반과 스캔들을 일으킨 여성이 이런 식으로 처벌받은 사례가 꽤 있다. 평민들끼리의 일이면 문제가 되진 않겠지만 잘 나가던 가문의 양반은 예법의 규율을 많이 받기에 사헌부에 걸리면 그 양반 남성이든 상대 여성이든 큰 처벌을 받을 수 있었다.[22] 앞서 언급한 맹꽁이 서당의 작가 윤승운 화백의 다른 작품인 "우리 겨레 위인이야기(개정판은 '맹꽁이 인물열전')" 1권에서 나오는 야사인데, 정조 시대에 현륭원조경사들이 그 권위를 믿고 평민들에게 행패를 부려도 현장 관리들이 윗선이 무서워 보고도 안 하고 넘어가는 사건이 있었다. 조심태라는 관리가 이를 처벌하려고 하나 정조로부터 '사형은 안 되고 곤장 한 대만 때리고 보내라'라는 왕명이 떨어지자, 집행관에게 계속 때리는 척을 하다가 조경사 일당의 두목이 방심했을 때 온 힘을 다해 한 대를 때려 충격으로 죽게 만드는 식으로 처리하고 나머지 일당에게도 겁을 주는 대목이 나온다. 참고 영상[23] 전국에 딱 12개 있다.[24] 전국에 75개가 있고, 그 위에 정3품 관직인 대도호부도 존재하지만, 전라도에는 존재하지 않는다.[25] 기생의 딸이라 기생을 해야했는데 대비를 넣고 기생에서 빠졌다.[26] 임진왜란에 관심 많은 역덕후라면 잘 알고 있을 정유재란 때의 의병장 조경남이 그의 스승이다. '금준미주 천인혈'은 조경남의 저서 속잡록에 나오는 명나라 장수의 글을 변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27] 또는 그대로 공연하자 양반가 자제의 스캔들이라고 해서 윗선에서 막았기 때문에 공연자들이 살짝 돌렸다는 이야기도 있다. 어느 쪽이든 그다지 좋은 소리는 못 들었다는 증거.[28] 조선 시대에서 기생이 정절을 내세우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소리가 아닌가? 라고 반응할 수 있는데 조선 시대에 몸을 팔았던 기생은 “창기”다. 이들은 천민이었으며 현대 기생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바로 이들의 모습이다. 반면 성춘향은 관가 소속의 관기였다. 매창불매음(賣唱不賣淫), 즉 “노래는 팔되, 몸은 팔지 마라.”라는 것이 당시 기생들의 신념이었고 따라서 매춘을 거의 하지 않았다. 다만 춘향전의 판본이 너무 많고, 애초에 그나마 원판으로 추정되는 경우도 대비정속(왕실이나 조정 고관과 관기 사이에 낳은 자식을 관적에서 빼는 대신에 여종을 관적에 올리는 것. 이는 세종 때 일천즉천의 원칙에 의해서 폐지되었지만 암암리에 계속 이뤄져서 조선 중기 기록에 보면 관기한테 음악과 시서화 좀 가르쳐놓으면 눈맞은 수령이 데려가버리고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여종을 대비정속 시켜놔서 관기의 질이 떨어진다는 기록이 있다.)등을 통해서 춘향의 신분을 양민화시켜 놓기도 했다. 이런 판본은 거기에 맞춰서 춘향이의 친부도 성 참판이 된다. 19세기 판본에는 월매가 애초에 기녀가 아니게 되기도 하고, 기적에서 다른 양반이 빼주기도 하고, 심지어 춘향이도 아니고 월매가 양반의 서녀로 등장하기도 한다. 애초에 일천즉천의 원칙에 의하면 서얼 중에서 천첩에서 나온 자식인 얼자는 모두 천인이 된다. 하지만 앞 각주에서 언급된 대비대속이 법적으로 폐지가 되건 말건 실제로 대속한 사례는 많다. 외거 노비의 경우도 이 방식으로 면천할 수 있었고. 월매도 향단이를 몸종으로 거느리는 등 관기이건 일반 기생이건간에 상당한 재력을 쌓았기 때문에 대속 자체는 불가능하지는 않다.[29] 다만 정말 미남으로 나오는 현대작의 경우에는 춘향을 사랑하는 순정남으로 나온다. 물론 이 경우는 탐관오리도 아니다.[30] 이건 완판본 버전의 묘사로, 아동용 버전에서 춘향의 전형적인 태도인 '도련님 그러시면 전 어떻게 해요'하며 울기만 하는 청순가련하고 애처로운 이미지와는 괴리된다. 참고로 경판본의 묘사는 아동용 버전과 흡사.[31] 중앙 5군영 및 각도 병영 소속의 아래에 설치된 진영을 관할하는 무관직으로, 법제상으로는 정3품에 해당하여 종3품인 남원 부사 변학도보다 관등이 높다. 다만 실제로는 지방군의 영장은 대부분 지방관 겸임으로 되어 있었으며, 조선 시대에 운봉은 현감이 파견되는 현이었으므로 작중에서 운봉 영장이 변학도에게 공대를 하는 것이 크게 틀린 것은 아니다. 판본마다 본래 관직인 현감으로 나오기도 하며 영장을 겸했다는 의미로 겸영장이라 나오는대로 따른 것도 있다. 운봉 영장의 직책에서 춘향전이 최소 숙종 이후에 집필되었음을 알 수 있다. 운봉현에 1709년(숙종 35) 전라도 좌영이 남원에서 이설되어 운봉 현감이 영장(營將)을 겸하였다.[32] 막걸리 한사발이라는 건 우스개소리로 그렇게 얘기한 것일 뿐 실제로는 다만 5만원 ~ 6만원이라도 그날 일한 대가에 대한 돈을 쥐어줬을 가능성이 높다. 보조출연자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겉으로 보기에 단 한컷뿐이라도 실제로는 하루종일 촬영한다. 물론 막걸리도 실제로 대접해줬을 것이다.[33] 춘향과 한단이 서로를 바꿔서 나가서 변 사또는 이때 한단을 성춘향으로 알고 있었다.[34] 집이 워낙 가난해서 인사만 하러 오면 거마비를 준다는데 춘향이 안 간다 하길래 한단이 춘향인 척 인사하러 가서 거마비만 받아오는 것.[35] 이 드라마에서 이몽룡은 서울에 가서 양반 집 규수와 새로 결혼을 하는데, 이게 춘향이 자살하는 결정적 이유가 된다.[36] 당시 16세였는데 미성년자임에도 불구하고 가슴 노출과 성 행위를 연기했다. 이것 때문에 당시 말이 많았는데 이전에 길소뜸의 이상아, 꽃잎이정현과 마찬가지였다. 다만 이상아의 노출은 뒤태만 잠시 나오고 이효정의 노출은 잠시만 나오지만 이정현은 음모 노출까지 했고 꽤 자주 나와 노출도가 훨씬 심했다. 어쨌든 이정현과 이효정의 경우 예술 표현이라는 이유로 유야무야 넘어갔다.[37]마음의 고향》으로 데뷔했으며, 한국전쟁 전에 월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