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9-03 23:24:51

노력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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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노오오력이 부족한 거예요.jpg
[1]
1. 개요2. 의미의 변질3. 특징4. 용어에 대한 비판5. 여담6. 관련 링크7.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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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노력+

디시인사이드(구)주식 갤러리에서 노력하면서 열심히 살아가지만 성공하지 못하는 사람을 비웃기 위한 단어로 사용되었고 지금도 이런 용도로 사용하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모든 것을 노력 부족으로 돌리는 꼰대들을 비꼬며 비판하는" 상황에서는 '노력충'이 아닌 의지드립 혹은 만물노력설이란 단어 또한 사용된다.

2. 의미의 변질

2015년 들어서는 모든 걸 노력 부족 탓으로 돌리는 사람들을 비하하는 말로 변질되었다. 물론, 어떤 일을 해내거나 성공하는데 있어서 노력이 필요함은 사실이나,무한 경쟁 사회에서 성공할 수 있는 사람과 그 사람을 위한 자리는 당연히 한정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력 드립(=만물노력설)을 쓰는 사람들은 "노력만이 모든 것을 바꾼다."는 식으로 노력의 중요성만 주장하면서 그 외의 사람들을 "간절함이 없다, 정신력이 부족하다, 의지박약이다, 노력하면 다 된다." 등의 말로써 매도한다. 또한 그렇게 남에게 노력을 강조 혹은 강요하면서도 정작 노력충 본인은 남을 이해하려는 노력을 충분히 하지 않는 내로남불 경향이 있다.

주로 기성세대들이 신세대들에게 노력을 많이 강조하다보니, 기성세대 전부를 싸잡아서 노력충이라고 비하하는 부류도 더러 있다. 참고로 이들을 비꼬는 의도로 사용할 적에는 '노력'이라는 원 단어를 그대로 사용하기보단 노오력, "노오오오오오력이 부족하다."과 같이 '노'를 길게 늘어뜨려 사용한다. 그리고 여기에서 더 나아가 한글 모음 중 가 들어가는 어디에서든 다 써먹게 되었다. 대표적 예시로 고오오오오오오오급 레스토랑, 고오오오오오오오오급 시계 등이 있다.

이와 같은 분위기가 강해진 것은 당연히 청년실업의 급증과 인터넷의 발달로 인해 더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갑질열정페이, 수저 계급론, 착취, 채용 비리 문제, 당한놈 잘못, 갈수록 적폐만 쌓이는 대기업 중심 경제 구도 및 무전유죄 유전무죄 등등 대한민국 경제가 외면한 적폐의 결과물 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2] 한마디로 한국의 사회 구조가 노력해도 성공할수 없는 불평등한 구조라는 사실이며, 개인의 열악한 상황이 노력의 부재가 아닌 사회의 문제라는 것이다.

심지어 노력이나 의지조차도 시간이 지나며 각종 연구 결과들에 의해 유전적인 요인과 삶의 환경에 의해 좌우되는 사실상 타고 나는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즉 노력이나 의지도 운과 재능, 부모의 재산처럼 개인이 통제할 수 없는 영역이다. 노력도 재능이다라는 옛말은 사실이었던 것. 그러나 대한민국은 아직도 노력과 의지와 정신력을 심각하게 강조하는 사회이기에 실패한 사람들을 노력 부족, 의지 박약, 정신병자로 몰고 가며, 상류층들은 자신의 태어날 때부터 타고 난 혜택과 지위를 불굴의 정신력과 끝없는 노력과 굳건한 의지로 일구어 낸 감동적인 성공가도라고 포장하고 있다. 그래서 선진국 중에서는 다양한 재능발휘를 보장하고 그것으로 자신의 존엄을 지키게 하는 경우가 많지만, 한국 사회에서는 특정한 재능과 환경만을 갖춘 사람들만을 우대하고 나머지는 의지 박약아 정도로 천대하는 문제가 있다. 저학력자/저소득층은 자신의 학력이나 소득이 낮은 것을 두고 자신이 못난 탓으로 자학하도록 만든다는 것이다.

사회의 실패자라 불리는 이들은 이런 비난 속에서 결국 정신병과 트라우마를 얻어 몸과 마음이 만신창이가 되어간다. 반대로 성공한 이들은 100% 운으로 얻어낸 자신의 생득권을 노력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하며, 실패자들의 고통을 뗄감으로 사용하여 자신의 위치를 더욱 공고히 하고 있다. 이쯤 되면 계급주의 시절 그저 태어날 때 왕족로 태어났다는 이유로 얻은 생득권을 신이 정당하게 하사한 것으로 포장하던 왕권신수설의 재림이나 다름 없는 상황이다. 이는 대한민국의 양극화가 단순히 경제적인 문제뿐만 아니라 사회문화적으로도 점점 악랄한 방향으로 악화되어 가는 근본적인 원인이기도 하다. 이 상황을 타개하려면 상류층들이 교만함을 내려놓고 노력도 운이라고 여기며, 자신이 운이 좋아 받은 축복을 운이 없어 축복 받지 못한 사람들에게 일정 부분 나눠주는 사회가 되어야 하지만, 안타깝게도 현재 대한민국 사회에 뿌리 깊게 박혀있는 노력만능론을 완전히 뿌리 뽑으려면 큰 사건이 일어나지 않는 한 매우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3]

톨레랑스의 나라로 유명한 프랑스에서까지 최근 비슷한 사례가 화제가 되었던 것을 보면, 비단 한국만의 현상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노력하면 무슨 일에서든 성공한다는 인식이 널리 퍼져있지만, 재능이나 운(가정 환경 등) 따위의 요소도 영향을 미쳐서 단순히 노력만으로는 바꿀 수 없는 요소가 있기에 보상을 받지 못하는 일이 잦다. 일례로 운동선수, 음악가, 미술가 따위의 예체능 분야에서는 타고난 감각과 좋은 교사, 가정 환경[4], 재능에 알맞는 시류[5]를 찾는 운이 100%라고 볼 수 있다. 노력도 운이 따라야지 성공하는 것이다. 재능이 없으면 노력을 해도 그다지 성과가 나오지 않고 공부도 대체로 잘하는 사람이 잘한다. 심지어 재능이 있더라도 금전적 지원이 없으면 그 분야에서 성공할 수 없다. 공정하다는 착각이라는 저서에서는 SAT도 부와 연관이 되어 있다는 지적을 하였으며, 한국사에서도 과거 시험의 경우 부유한 지역에서 합격자가 많이 나왔다. '행정고시'로 알려진 5급 공채에서도 부유한 사람들이 학원비를 낼 수 있어 잘 붙는다고 하여 서민의 목소리를 제대로 들을 수 있겠느냐는 우려가 있다.

이와 관련된 구체적인 논의는 학계에서까지 깊은 정도로 논의되는 문제이며, 능력주의 문서에 잘 정리되어 있다.

어찌 보면 이러한 노력드립에 대한 화답이 수저드립이라고 볼 수도 있다. 노력충들이 "노오력을 하란 말이야!" 라고 닦달하고 다그치면, 이에 대해서 "노력해 봤자 어차피 숟가락(=계급)은 정해져 있잖아!" 라고 대답하는 식. 노력드립이 '개인의 노력을 통해 사회적 '사다리' 를 타고 올라가 기득권층이 될 수 있다'고 강조한다면, 수저드립은 그 노력이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여기는 사고방식이 극단화한 사례다.[6] 설령 어찌어찌 노력해서 중견기업에 취업하거나 명문대에 들어가는 등의 좀 더 나은 사회/경제적 지위에 올랐다고 해도, '그래봤자 결국에는 금수저, 은수저들의 밑에서 굽실거려야 할 뿐이다'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잘못 사용하면 남의 노력까지 비웃는 단어가 될 수 있으니 주의할 필요가 있다. '노력'이라는 단어를 모두 늘려서 쓰다가 "이런 현시창 속에서도 그 분들이 노오오오오오력 해준 덕분에"처럼 칭찬인지 농락인지 알 수 없는 대사까지 나올 수 있다.

노력도 방법이 잘못되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다시 말해, 제대로 성공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한 가운데 노력해야 성공할 수 있다. 노력을 하고는 있는데 잘못된 방향으로 노력하면 그건 개선(改善)이 아니라 개악(改惡)이다. 거인의 별 같은 스포츠 만화 문서에 이미 나와 있지만, 주인공의 근성을 지나치게 강조한 나머지 신체에 무리를 주는 잘못된 훈련법이 일반 대중들에게 전파되기도 했다. 이처럼 노력만을 너무 강조하다 보면, 방법의 효율성을 냉정히 검토하지 않으므로 잘못된 방법으로 노력만 하다가 자신의 재능을 제대로 꽃피우지 못하는 부작용도 생길 수 있다. 반대로, 적은 노력으로 더 큰 성과를 낼 수 있다면 '노력을 안 했는데 성공하는' 예외가 될 수도 있다(물론 노력이 겉으로 드러나지 않아 예외적으로 보일 수 있다). '열정은 쓰레기다'에서 언급된 '시스템' 역시 그러한 맥락에서 나온 발언 중 하나다.

이는 이른바 심정중심주의라는 이름으로 부를수 있는데, 어떠한 사실보다는 그를 받아들이는 사람의 마음을 더 중시하는 심리를 말한다.[7] 그 때문에, 젊은 세대에게는 “이렇게까지 열심히 했는데 실패한 건 어쩔 수 없잖아요. 내 심정 이해좀 해줘요.”라는 심정으로 공부하고, 부모들은 “내가 자식 대신 열심히 하면 언젠가 성공할거야”라는 인고의 착각이 발동하여, 한국의 젊은 세대는 밑도 끝도 없는 공부지옥, 노동지옥에 스스로를 밀어넣고, 부모세대는 자식의 성공을 위해 금욕적이고 기도하는 삶을 자처한다. 허나 그래봐야 아무리 노력해도 그 길 자체가 잘못되면 누구도 보답받지 못한다. 그런 성공 가능성도 없고, 노력에 대한 보상도 없는 무의미한 노오오오오력으로 많은 것을 잃고 난후 책임을 물으면 결국 남는 것은 “야, 내가 너 잘되라고 그랬던 거야 내 심정 알잖아.” 이런식으로 잘못된 선택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려 한다. 이런 시대착오적이고 비정상적인 결정을 강요하는 것이야말로 사회에 불필요한 것들만 쌓아가게 되는 것이다.

사실 노력드립의 치명적인 문제는 현대 사회에서는 부자나 사업가 같은 잘 살던 사람들도 운이 없으면 얼마든지 노숙자 같은 비참한 신세로 추락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이런 경우에도 노력을 안 했다고 비판할 수는 없다.서울역에서 16년 째 노숙을 하고 있는 박 모씨, IMF 당시 사업이 한순간 기울어 거리에 나앉은 서울대 출신 노숙인, 노숙자로 전락한 중국의 사업가 장위안천, 홀로 살던 노숙인 염씨의 사연

그래서 허영만 화백의 만화 에서도 "세상에 노력을 안 하고 사는 사람은 없다. 하다못해 길거리 노숙자들도 자기 나름대로 다 노력은 했다."라고 간접적으로 노력 드립을 비판했다. 또한 2019년에 개봉된 영화 기생충에서도 주인공 기택의 식구들은 모두 자기 나름대로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부잣집에 들어가 살려고 노력도 해 보았으나 모두 실패하고 결국 예전보다 더 가난한 상태로 추락하는 비참한 결말을 맞았다.

3. 특징

불황과 청년실업 문제가 지속되면서 경쟁의 중요성이 두드러졌고, 그 와중에 노력과 비하적 의미의 충(蟲)을 합성한 노력충이라는 신조어가 빈번히 쓰이고 있으나, 노력충은 원래는 노력하는 자를 비하하는 단어가 아니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현재의 의미로 변질되었지만, 처음에는 의지드립을 달고 다니는 사람들을 비꼬려고 쓰였다. 자조적 의미의 갓수가 자부심의 표현으로 쓰이는 것도 비슷한 사례다.

최초 발생지(?)는 (구)주식 갤러리로 알려져 있으며, 이후 만물일베설의 영향을 받아 일베 용어와 취급되는 상황이다. '노'자를 길게 늘려 말하는 게 고 노무현 대통령의 성을 따 비꼬는 듯한 어감 때문인 듯 하다. 하지만 최근 그런 인식은 많이 없어졌다.

본래 의미의 노력충에 한하여, 이들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 사회 구조적 문제를 간과 혹은 무시한다. 이런 경향이 있는 사람들은 사회의 문제도 모두 개인의 문제로 간주하곤 한다.
  • 사회적 문제 때문에 받는 피해에 반발하는 사람을 노력하지 않은 사람으로 간주한다. 이렇게 되면 반대 주장은 자연스럽게 묵살되고, 논쟁 자체가 불가능하다.[8]
  • 젊은 세대를 노력하지 않고 사치가 심하다고 일반화 하는 경향이 있다. 나이 든 사람이라면 "내가 그 나이 때는 그러지 않았는데"라면서 무용담을, 젊은 사람이라면 '나는 이러이러한 힘든 상황에서도 잠 안 자고 일을 이만큼 해가며 잘 극복했다'라고 자화자찬을 하기도 한다.
  • 성공담을 근거로 다른 사람들에게도 같은 노력을 강요한다. 결혼 안 하고, 허리띠 졸라매며 생필품과 식비까지 아끼면서 집을 사는 삶은 당사자에게는 의미있는 일이어도, 비인간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게다가, 현실에는 그렇게 노력해도 조건 자체가 안 맞는 사람이 넘쳐난다.
  • 자신의 이력을 공개하며 경력을 쌓으라고 강요한다. 하지만, SNL 코리아에서도 언급했듯 처음부터 스펙이 있는 사람이 어디있냐고 경력을 계속 강조하지만, 정작 처음부터 경력이 있는 사람은 없다.
  • 일부러 갑질을 하기 위한 의도로 노력만을 강요하는 경우도 있다. 실패나 보상 제공의 거부 등을 노력을 안 해서 그렇다는 식으로 몰아세워 자신의 이익(우월감, 정치질, 협상 결렬 등)을 챙기려는 식. 물론 현실의 일이 노력만으로 다 되는 것이었다면 지금과는 차원이 다른 세계가 되었을 것이다. 원나블[9] 죄다 재능/연줄 빨인건 감안하자.
  • 자신이 한 노력을 다른 이들도 할 수 있을거라 생각하고 환경적 차이를 무시하고 노력을 강요한다. 주로 지적 엘리트 중에서 이런 이들이 많다. 사실 고시를 패스하거나 한 등의 사람들이 기울인 정신적 노력은 일반인들의 갑절을 훨씬 넘는데, 이들은 평범한 사림들도 이런 노력을 할 수 있을거라 생각하고 재능, 집안환경 등을 모두 무시하고 이를 강요한다.
  • 노력충이면서 정작 타인의 노력을 제대로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아이러니하게도 노력충들은 보통 자만심은 높은데 식견은 좁아서 자기 기준으로 대단한 무언가를 하지 않은 대부분의 사람들을 노력하지 않은 사람으로 간주하고 이분법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예를 들어 운만 따라준다면 단기간에 많은 성과를 거둘 수 있는 주식, 펀드, 부동산 투기등에 관심을 가지는 것만 오로지 제대로 된 노력이라고 생각한다. 이들은 원인이나 과정 따위는 관심도 없고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는 결과주의의 광신도라고 봐도 무방하다.
  • 심정주의에 자연스럽게 경도되어 있다. 노력하면 언젠가 보답을 받을거라는 심정주의 태도는 그 방향이 잘못되어 절대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없음에도 노력하면 이루어질거란 헛된 착각을 심어준다.

어떤 사람이 노력을 하든 안 하든, 사회 구조적 문제가 존재한다는 사실은 변하지 아니한다. '그 사람이 노력을 하는가 하지 않는가' 에 초점을 맞춰 논의를 방해하는 것은 엄연한 논리적 오류이다.

사회가 공급할 수 있는 재화와 일자리는 한정되어있으며, 이를 얻기 위해 국민들끼리 경쟁을 해야하는 상황이다. 이미 안정적인 직업을 가지고 있는 기성세대를 제외한 미생들의 경쟁이 특히 심화하고 있고, 흔히 486세대로 일컫는 기성세대가 취업했을 때처럼 대학만 나와도 취업이 되는 세상은 이미 지나간지 오래고 앞으로도 대학만 나왔다고 취업을 할수는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 경쟁을 포기한 탈락자들을 책망하기도 어려울뿐더러, 사회는 성공한 소수만이 아닌 경쟁에서 밀려난 사람들도 수용할 수 있어야 하므로, 노력을 종용하기보다도 사회구조적 개혁이 필요한 시점이다. 그렇다고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고 사회만 책망하라는 소리는 아니다.

어떤 사회에서도 모든 사람이 평균 이상의 삶을 누리는 것은 당연히 불가능하며, 이상적인 자본주의 사회에서 어떤 사람이 더 좋은 삶을 누린다는 것은 즉 그 사람이 더욱 사회에 많은 가치를 창출했다는 의미이고, 역으로 이 기여->보상 구조가 정확히 잘 동작해야만 사람들에게 사회 발전에 대한 동기를 부여할 수 있다.

즉, 사회적인 문제점을 개선하는 방향의 논의도 반드시 필요함은 사실이다. 그런데 의지드립이나 꼬북이를 주로 읊어대는 사람들은 경쟁에서 뒤쳐진 이들이 도태되는 것이 정의라고 믿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학창시절의 성적은 이 연속적인 도전의 시작 단계일 뿐이고, 물론 이 단계애서의 결과에 따라 각자가 받는 보상이 달라지는 것은 당연하겠지만, 학창 시절의 성적 만으로 평생 꼬리표를 달고 사는 것 자체가 불합리한데다가, 계층이동의 문조차 닫아놓는다면 결국 사회는 침체될 뿐이다.

학창 시절은 학창 시절이고, 사회에 진출한 뒤에는 그와 관계 없이 새로운 경쟁이 개인의 능력에 따라 공정하게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물론 학창 시절에 노력하여 한 발 앞서 능력을 키우고 좋은 대학에 들어간 사람이 평균적으로 볼 때 차후의 경쟁에서도 유리하겠지만, 비록 좋은 대학을 나오지 않았더라도 차후에 노력하여 좋은 능력을 가진 사람이 홀대되어서는 안 된다. 이러한 사회 구조상의 문제는 분명히 존재하므로 이런 부분은 개선할 의지를 가져야 한다. 달리 말해, 당사자는 물론이고 사회도 노력의 효율을 높여야 한다.

4. 용어에 대한 비판

2010년도 초반부 이후 단순한 응원이나, 정정당당하게 노력으로 성공한 사례까지 전부 노력충이라면서 폄훼하고 무시하는 사례가 빈번해지다 못해 사실상 주류로까지 자리잡히고 있다. 노력으로 성공한 사례가 있으면 무조건 금수저 일가라고 단정짓거나 # 심한 경우는 '일단 타고나야 돼. 뭘 백날 삽질해봤자...' '오르지 못할 나무는 쳐다보지도 말라' '호랑이는 태어날 때부터 호랑이고, 토끼는 태어날 때부터 토끼인기라.' 될 놈은 된다, 내려갈 팀은 내려간다 같은 가치관이 아예 머릿속에 뿌리를 내려버리기도 한다.

실제로도 자질이 있는 사람이 성공했다. 무라타 유스케오바타 타케시, 아놀드 슈워제네거, 이만기, 조영남, 이문열[10]을 비롯한 인재들은 원래부터 될성부른 떡잎이었다. 천부적인 재능에 노력을 겸비했으니까,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실적이 나온다. 비유하자면 원래 예쁜 사람이 예쁘고 원래 튼튼한 사람이 튼튼한 것처럼. 그러나 J. K. 롤링 처럼 밑바닥부터 시작해 정상에 오른 경우도 있고[11], 개인 블로그에서 올리던 만화에서 시작해 높은 인기를 가진 대중적인 만화가로 자리잡은 조석이나, 한 명이 차린 회사의 인디 게임으로 시작해 큰 성공을 거둔 박용욱 같은 드문 케이스도 있다. 심지어는 가난해서 뻥튀기 팔던 사람이 대통령이 된 경우도 있다. 대신 실력과 운이 전부 따라준다는 전제가 필요하다.[12]

타인들이 흔히 말하거나 자신이 생각하는 성공한 삶의 표본대로 살아가지 못 해서 이에 대해 열등감을 가지거나 좌절로 인해 노력 자체에 대해 불신하게 되어 포기하는 경우도 있다. "어차피 본인은 노력해도 소용이 없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명문대 졸업이 아니라서, 늦은 나이가 되도록 취업에 실패해서, 승진에 실패해서, 결혼에 실패해서 등등. 물론 인생을 살면서 노력이 무색하게 실패하거나 좌절할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을 알아두자. 성공한 사람으로 평가 받는 사람들조차도 적잖은 수가 처참한 실패를 거듭한 경우가 부지기수라는 것을 말이다. 사람의 인생에서 정해진 답은 없으며 도중에 실패로 인해 좌절하거나 방황할 수도 있다. 성공한 사람들 중에서는 자신이 원했던 길도 아닌 현실의 상황상 마지못해 갔던 길이 성공한 사람들도 부지기수이다. 두 가지 예를 들어보면, J.K. 롤링조차도 이혼 이후 제대로 된 수입이 없어서 보조금을 타먹었고 해리 포터 시리즈도 작가 본인이 당장 돈이 필요했던지라 쓴 책이었는데 대박을 친 것이다. 백종원도 원래는 요식업은 돈이 쏠쏠하게 들어오는 부업 수준으로만 일하고 있었고 진짜 꿈은 세계를 누비는 무역업자였다. 실제로 목조 주택 사업 하면서 한해 매출 50억을 찍은 적도 있지만, 그 또한 IMF 크리에 사업 죄다 날려먹고 17억이나 되는 빚을 졌으며 그렇게 남은 게 요리 하나였다고 한다. 이처럼 백종원 정도의 본좌급 수완을 가진 사람도 자신의 노력과 열의에 상관없이 실패를 할 수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찢어지게 가난한 기초생활수급자들이나 사업 말아먹고 빚더미에 앉은, 우리가 소위 인생의 패배자들이라 보는 사람들 중에서도 제2의 J.K 롤링, 제2의 백종원이 될 자질이 있는 사람들도 있었을 것 이라는 섬칫한 결론도 나올 수 있다. 즉, 인생의 앞날은 진짜 아무도 모른다.

위 사례들 외에도 부모 세대의 경제력, 대표적으로 거주지에 따른 자식 세대의 학업성취도와 소득이 높다는 것을 증명하는 통계는 근 수십년간 세계적으로 아주 많이 나왔으므로 이미 이 자체는 부정할 수 없는 객관적 사실이다. 까놓고 말해 양극화 사회에서는 노력해 볼 기회조차도 없다. 미술 작품을 접해봐야 그림을 배울 생각을 하든, 스케치 연습을 하든, 비평가들의 책을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든 할 것 아닌가? 심지어 발달된 미디어 때문에 자신이 하고 싶은 것, 잘하는 것을 찾고도 제대로 배우지 못하는 현실 때문에 더욱 절망을 느끼는 경우도 많다. 즉 '양극화되는 사회'가 이런 노력 자체를 폄하하는 분위기를 낳고 있는 것.

거기에다 개개인의 개성과 다양한 상황, 조건등을 고려하지도 않고 구체성도 보이지 않는 그저 "죽을 만큼 피나는 노력"만 맹목적으로 할 것을 강요하는 한국 사회의 풍조 때문에 노력이라는 단어 자체까지 부정적으로 들리게 되는 것이 큰 문제다. 모든 사람이 죽도록 노력하는 것도 아니고 그럴 필요도 없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서 정신력 드립치면서 군부대 훈련에 참석시켜 마구 굴리는 중국 국가 대표 팀보다는 체계적인 맞춤형 훈련&휴식 시스템을 갖춘 유럽 축구팀들이 훨씬 우수한 성과를 낸 것만 봐도 무조건 남들이 많이 하니까 남들보다 뭔가 더 해야 한다, 즐거움 없이 죽을 만큼 힘들어야만 노력이다 혹은 남보다 무조건 성과가 나와야 한다는 식의 무식한 무한 경쟁은 사실상 도움이 안 된다. 그러므로 노력 항목에도 나와있듯 무작정 시간만 많이 들이기 보다는 스스로 깊이 사색할 시간도 투자하거나, 일상에서도 본인의 생활 패턴에 사소한 변화를 주는 등, 조금씩이더라도 현명하게 노력하는 자세도 필요하다.

다만 도전하는 분야가 어디이며 '성공'이라는 허들을 어디다 두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것도 사실이다. 위에서 예시로 가장 많이 사용된 예술, 스포츠, 사업 같은 분야는 사실 전국에서 최상위권 수십명이 갈라먹는 초경쟁구도이기 때문에 노력만으로 어떻게 할 수 없는 분야가 맞다. 하지만 세상에는 업계 평균치 실력만 되어도 벌 만큼 버는 분야도 있고 노력만으로도 개인적으로는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둔 사람도 있다.

노력을 한다고 해서 자신이 얻고자 하는 것을 반드시 얻는다는 보장이 없다는 것은 사실이다.[13] 또한 노력이 무색하게 처참한 실패를 거둘 수도 있다. 그러나 노력이 반드시 성공을 보장하지 않지만 이전 위치보다 더 성장하는 경우가 상당하기 때문에 실패를 한다고 해서 혹은 어떤 일을 시작하기 전에 실패할 가능성이 높아보인다고 해서 그대로 포기한다면 개인의 인생은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14] 물론 주변의 적절한 도움과 다양한 환경적 요소들이 필요하긴 하지만 이런 것들을 제대로 활용하려면 '그것을 꼭 고쳐야겠다'는 마음가짐이라도 잡아야 한다. 다시 말해, 자신의 삶을 조금이라도 바꾸고 싶다면 노력은 꼭 해야 한다. 노력과 사회에 대한 문제제기는 양립할 수 없는 것이 아니다.

물론 맹목적으로 노력만 할 것을 강요하는 것은 문제이다. "꼭 피땀 흘려서, 맹목적으로 죽을듯이 고생만 하는" 것이 노력이 아니다. 또한 모든 것을 신분 탓으로만 폄훼하며 최소한의 노력조차 안 하고 잘못된 선택을 한 것에 대해 본인 책임이 얼마나 있든 간에 국가와 사회는 그들을 도울 의무가 있다. 의지드립이나 치는 진짜 노력충들의 편견과는 다르게 '효율성'이라는 원초적인 경제 논리로만 따져봐도 난관에 처한 사회 약자들을 구제하려는 노력 없이 내버려두는 것은 범죄율 등의 위험 요소만 늘리는 제 발등 찍기와 다를 바 없다. 사소한 실수 정도를 넘어 흉악한 살인마나 테러리스트에게도 기회를 주는 것이 민주주의 국가다.

한편으로, 시간이 흐름에 따라 과학이 발전해나가면서 노력과 선천적 유전 사이의 연관성을 보여주는 연구결과들이 지속적으로 축적되고 있음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15] 사실 노력도 재능이라는 말은 늘 있어왔고 사람의 감정, 기질, 체질 등에서 유전의 비중이 크다는 것은 이전부터 알려져 있었지만[16] 계속되는 연구를 통해 이 연관성에 대한 설명이 갈수록 보강된다는 얘기.

이는 노력조차 순수하게 개인의 결심만으로 통제하는데 한계가 있음을 시사하며, 이렇게 의지로 바꿀 수 없는 선천적인 상한선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여기저기서 체감할 수밖에 없다 보니, 자연스럽게 노력충이란 말도 2020년대 들어 사실상 사어가 되었다. 관련 자기계발 책들이 차례차례 절판되고 그 자리를 힐링 관련 책들이 채우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몸으로 배워야 깨닫는 나라 특히 2024년 여러 자기개발 유튜버들의 성공팔이 논란이 터진 이후로는 더더욱.

5. 여담

이와 반대로 한 분야에서 재능을 타고 난 사람을 비하하거나 희화화할 때 사용하는 용어로 재능충이라 일컫는다. 사실 이라는 단어가 좋은 의미가 아니긴 하지만 비하보다는 부러움의 의미가 크다.

엄청난 노력으로 세계 최고의 농구선수가 됐던 코비 브라이언트 선수도 사실 재능을 타고난 건 사실이다. 키와 윙스팬은 원하는대로 키울 수 없으며, 농구 같은 운동을 한다고 해서 반드시 크는게 아니기 때문이다.

유럽의 복지국가들은 그 사람의 노력여부와 상관없이 인간다운 생활수준을 보장하도록 사회가 설계되어 있다.

마이클 샌델트럼피즘의 근본적 원흉으로 노력충들을 꼽았다. 물론 정확하게는 노력주의보다는 능력주의를 꼽은 것이지만, 샌델이 트럼피즘을 논하면서 능력주의를 비판하는 논조는 못 살고 저학력인건 전부 네 책임, 잘살고 고학력이어도 전부 네 덕분에 가까운 분위기를 꼬집는 것이라 노력충에 대한 비판에 가까운 편이다.

여기서 노력충들은 정작 트럼피즘의 실제 주인공인 도널드 트럼프가 집안이 부동산 재벌의 금수저 출신이었고 평생동안 아무것도 안 하면서 물려받은 재산으로 건물주나 하면서 놀고 먹고 살았어도 경제적으로 그렇게 큰 문제가 없었을 것이라는 것을 이율배반적으로 무시해버린다. 결국, 그렇게 찬양하던 노력충들의 안티테제나 다름없다.

노력충의 얄팍한 인식이 어제오늘만의 일은 아니었던지라 일제강점기 작가 채만식이 '치숙(1938)[17]'이라는 단편에 이미 노력만을 내세우는 주인공이 나온다.
"젠장, 아저씨두…… 요전 《낑구》[18]라는 잡지에두 보니까, 나폴레옹이라는 서양 영웅이 그랬답디다. 기회는 제가 만든다구. 그리고 불가능이란 말은 바보의 사전에서나 찾을 글자라구요. 아 자꾸자꾸 계획하구 기회를 만들구 해서 분투 노력해 나가면 이 세상 일 안 되는 일이 어디 있나요? 한번 실패하거든 갑절 용기를 내 가지구 다시 일어서지요. 칠전팔기 모르시오?"

"나폴레옹도 세상 물정에 순응할 때는 성공했어도, 그것에 거스르다가 실패를 했더란다. 너는 칠전팔기해서 성공한 몇 사람만 보았지, 여덟 번 일어섰다가 아홉 번째 가서 영영 쓰러지구는 다시 일어나지 못한 숱한 사람이 있는 건 모르는구나?"

"그래두 두구 보시우. 나는 천하 없어두 성공하구 말 테니…… 아저씨는 그래서 더구나 못써요? 일 해보기두 전에 안 될 줄로 낙심 먼저 하구……."

"하늘은 꼭 올라가 보구래야만 높은 줄 아니?"

원 마지막 가서는 할 소리가 없으니깐 동에도 닿지 않는 비유를 가져다 둘러대는 걸 보아요. 그게 어디 당한 말인고? 안 올라가 보면 뭐 하늘 높은 줄 모를 천하 멍텅구리도 있을까? 그만해 두려다가 심심하길래 또 말을 시켰지요.

소설 제목은 '치숙(어리석은 아저씨)'지만 실은 오히려 그 치숙이야말로 일제강점기 사회를 개혁하고, 자주독립 국가를 세우려는 독립운동가이고[19], 작중 주인공은 일제 강점이라는 사회 현실, 시스템에 대한 어떠한 문제 의식도 없이, 개인의 노력만을 금과옥조로 삼으며 부당한 체제에 아무 의심 없이 순응하는 인물이다. 신빙성 없는 어린 아이가 서술자인 작품이라 반어적 효과가 두드러지는 제목이 되었으며 이러한 점에서 문학성이 높게 평가되는 작품이기도 하다.

6. 관련 링크

7. 관련 문서



[1] 해당 만화는 아이돌마스터 신데렐라 걸즈 애니메이션의 23화를 패러디한 만화인데 노오력 부분이 잘려서 유명해지다 인터넷 뉴스까지 올라간 것을 결국 작가 본인도 알아버린 듯 하다.[2] 상식적으로 생각해서 한국의 경제구도는 소수의 대기업이 흥할 수밖에 없고, 대다수의 중소기업은 복지는 개판인데 요구하는 것은 많은 불균형이 이어져, 청년층은 워라밸이 보장되지 않는 중소기업 대신 자연스럽게 소수의 대기업이나 공기업 등을 지원하는데 이런 직장은 당연히 일자리가 부족하다. 결국 요구하는 경쟁력은 점점 높아져서 너도나도 노력을 하는 반면, 단순한 노력만으로 해결되는 사례는 점점 줄어드니, 자연스럽게 대다수의 노력이 보상을 못받게 되어 노력이 비꼬는 대상으로 변질되는 것이다.[3] 당장 맹목적인 노력만능론을 비판하는 논지인 이 문서조차 노력은 개인이 통제 가능한 요인으로 치부하고 있는 문단이 많다.[4] 한국에서는 예체능 분야에서 가족이 반대를 해도 그것을 이겨내고 성공하던 사례도 많다. 집안의 반대가 더 극심했으면 성공을 아예 못 했을 것이다.[5] 한국인들의 유전자가 수십년간 극적으로 바뀌지는 않았을 것이나, 한류 스타가 되어 성공할 수 있는 시기는 한정되어 있었다. 현재 성공하는 한류 스타는 60~70년대에 태어났다면 엔터테인먼트에 부정적인 시선에 공부를 하거나, 가난한 환경에 일찍 생계에 뛰어들거나, 잘해야 국내에서 성공한 배우나 가수가 되었을 것이다.[6] 사회를 보는 거시적 관점에서, 전자는 기능론, 후자는 갈등론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7] 예를 들면 식사 대접을 받다가, 초대자가 “더 드시겠어요?”라는 질문을 했을때 “아니요, 괜찮습니다.(라는 말을 하면, 서양 사람들은 정말로 안 먹어도 된다는 뜻이고, 한국인은 더 먹고 싶은데 체면상 거절하는거고, 그쪽에서 더 권한다면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인다는 뜻이다. 딱 봐도 후자의 뜻, 맥락이 더 길고 복잡하다. 그래서 서구를 저맥락 사회, 한국을 고맥락 사회로 구분한다. 한국인들의 말 한마디를 청자나 화자나 액면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기 때문에, 그만큼 의사소통에 장애가 온다.[8] 어느정도 경쟁에서 앞서있는 사람이 사회적 문제 때문에 피해받는 사람의 편을 들 경우에는 "요즘은 먹물든 것들도 다 좌경화돼서 조만간 적화통일되겠네..."같은 말을 들을 수 있다.[9] 원피스 : 작중 준 최강급 연줄,작중 최상급 유산 나루토 : 방계지만 어쨌든 인드라의 직계, 작중 최강급 유산, 블리치 : 작중 최상급 집안빨. [10] 거기다 무라타 유스케는 13살때 록맨 보스 공모전에 당선될 정도로 그림으로 이미 싹수가 보였다.[11] 하지만 J.K.롤링은 경제적으로만 밑바닥이었고 글쓰기 재주는 어렸을 적부터 좋았다.[12] 최상위까지 올라갈라면 노력만으로는 부족한게 현실이지만 이에 굴하지 않고 꾸준히 노력하는 것은 상당히 어렵기 때문에 노력만으로도 중간 내지 최상위보다는 아래급인 상위까지 다다를 수 있다. 열거된 사례 역시 노력뿐만 아니라 운, 재능이 같이 있었기에 가능한 사례이다.[13] 당장 죽어라 노력해도 부유해지기는커녕 계속 밑바닥 생활을 하는 워킹푸어라는 반례가 있다는 것이 그 예.[14] 사회에 대해 불평하지도 말고 오직 자신만 탓하라는 의미는 아니다. 그 사회를 향해 문제를 제기함으로써 바로잡게 만드는 것이 민주주의 정치의 근간이며 이 또한 일종의 노력이라고 할 수 있다.[15] 개인의 수면 시간에 따른 피로도, 감정 조절, 집중력, 체력 등의 요인들도 상당 부분은 유전에 의해 결정된다는 게 현재 의학계의 중론이다.[16] 신경계와 내분비계의 발달, 그리고 각종 신호전달을 매개하는 분자들의 합성부터가 핵산 염기서열 코드의 발현에 따라 이루어지는데 유전과 연관성이 클 수밖에 없다.[17] 痴叔, '어리석은 아저씨'의 의미[18] 《キング》(King). 1924년부터 1957년까지 현재의 고단샤(講談社) 계열에서 발행되었던 일본의 대중오락잡지. 고단샤에 의해 2000년대에 남성지로 반짝 나왔다가 2년만에 사라진 동명의 잡지와는 무관하다.[19] 물론 이 치숙 역시 정작 현실을 바꿔 나갈 생활력이 없다는 점에서 작중 비판의 대상이 되긴 하나, 주된 비판 대상은 역시 어린 주인공이다.[20] 본인은 건물주의 아들로 태어나 강남에서 자랐지만, 아버지가 돈 문제로 엄했다는 명분 하나로 누가 보면 거의 기초수급자로 자란 것으로 오해할 정도의 흙수저 코스프레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