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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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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서는 2001~2007년 미국의 부동산 버블로 인해 일어난 사건만을 서술하고 있습니다. 해당 사태로 인해 발생한 전 세계적인 금융 위기에 대한 내용은 대침체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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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발생 과정
2.1. 대략적인 요약2.2. 발단: 연준의 저금리 정책2.3. 부채담보부증권
2.3.1. 광풍의 확산2.3.2. 서브프라임을 잡아라
2.4. 막간: 연준의 금리인상2.5. 재앙의 시작2.6. 전조2.7. 연쇄 반응
3. 또 다른 원인
3.1. 투기에 취약해진 모기지론3.2. 라구람 라잔의 빈부격차의 심화 주장3.3. 국제적 불균형3.4. 닷컴 버블과 연준의 잘못된 통화 정책3.5. 잘못된 금융 시장의 시스템
4. 반응
4.1. 변론
5. 영향6. 관련 매체 및 자료
6.1. 영화
7. 관련 문서8. 둘러보기

1. 개요

경제 후퇴를 극복하기 위해 연방준비제도이사회(Fed)가 이자율을 그때그때 조정하는 것만으론 부족하며, 침체된 기업 투자를 상쇄할 만한 가계지출 증가를 유도하기 위해서 앨런 그린스펀 Fed 의장이 나스닥 버블 대신 주택 버블을 일으킬 필요가 있다.
폴 크루그먼(케인지언 경제학자), 2002년 8월 2일. 출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Subprime Mortgage Crisis)는 2001년부터 금융기관들과 부자들의 탐욕으로 본격적으로 시작된 CDO 시장의 확대와 그에 따른 서브프라임 주택담보대출의 확대, 미국 부동산 버블로부터 시작된 2007년에 발생한 제2차 세계 대전 종전 이후 미국 최대, 최악의 금융 위기다.[1]

테러와의 전쟁의 원인이 된 2001년 9.11 테러,[2] 2020~2022년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의 전 세계적 대유행,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함께 21세기 초 인류 역사의 흐름을 결정한 사건이다. 경제적으로는 대침체, 양극화, 현재까지 계속되고 있는 2010년대의 모든 경제 위기의 직접적인 원인이 되었으며[3] 정치적으로는 이 사건 하나만으로 팍스 아메리카나의 종말을 알리고 신냉전의 도화선이 되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또 극단주의, 반동주의, 반민주주의 정치 세력이 대공황 시대인 1930년대 이후[4] 다시 세계적으로 기를 펴기 시작하는 등 2010년대~20년대 사회 혼란, 더 나아가서 세계화의 흐름에 균열을 일으킨 신냉전 구도 형성의 도화선이 된 대사건으로 평가된다.

서브프라임(Subprime)은 은행의 고객 분류 등급 중 비우량 대출자[5]를 뜻하며 모기지(Mortgage)는 주택담보대출을 뜻한다.[6] 그러니까 쉽게 말하자면 부동산 버블로 부동산 가격이 굉장히 높아지자 신용 불량자에게 주택담보대출을 막 퍼주다가 발생한 대참사라는 것이다.

2. 발생 과정

2.1. 대략적인 요약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를 아주 쉽게 설명한 영상

경제학 용어가 생소한 사람이 본 문서를 읽으면 약간 읽기 힘들 수도 있어 미리 간단하고 피상적으로만 요약하였다.
닷컴버블 붕괴와 아프간/이라크 전쟁 이후 미국 연방준비제도는 경제 활성화를 위해 저금리 정책을 편다. 그로 인해 대출이 늘고 주택 가격이 급상승했다. 주택 가격의 인상 속도가 이자율보다 높아지자 사람들은 "대출을 못 갚는 일이 생기더라도 담보인 주택을 팔아 버리면 돈을 벌 수 있겠군"이라고 생각했다. 은행도 돈을 갚을 능력이 거의 없는 신용 불량자에 가까운 사람들까지 대출을 해줘서 집을 사게 만들었다. 하지만 집을 살 사람(대출할 사람)이 줄어들자 집값은 폭락했다. 집으로 대출을 갚을 수 없자 서브프라임 대출을 받은 많은 사람들이 담보로 잡힌 주택을 포기한다.[7] 이를 시작으로 돈을 빌려준 은행과 대출 증서를 기초로 한 투자 상품도 전부 망했고 그로 인해 달러화의 가치와 미국 경제가 망하여, 연쇄적으로 세계 경제가 망했다.
더 쉽게 말하면 이렇다.
경제정책 변화로 집값이 빠르게 상승했다. 빚을 내서 집을 샀음에도 집값 상승으로 얻는 이익[8]이 내야 되는 대출 이자보다 훨씬 커졌다. 너도나도 막 빚을 내서 집을 사며 투기가 시작되었고 금융기관과 투자은행들은 이 대출 채권을 증권 형태의 금융 상품으로 팔아먹었으며 이를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 각지의 금융기관에서 사들였다. 하지만 경제 상황의 변화와 정책 변경으로 집값이 폭락하자 다같이 망했다.
아예 한 줄 요약을 하자면 이렇다.
집값이 폭등하고 상승세가 계속될 거라 보고 아무에게나 돈을 무분별하게 펑펑 빌려줬으나 좋다고 받아간 사람들과 기업들은 집값이 폭락하자 다 망했다.

세부 골자는 다르지만 큰 틀에서 보자면 대한민국에서 1997년 외환 위기 이후 정부에서 경제 활성화를 위해서 규제를 대폭 완화하자 카드 회사들이 심지어 신용 불량자한테까지 신용카드를 발급하였고 이후 카드 사용액을 갚지 못한 개인 파산이 급증하면서 2002년 가계 신용카드 대출 부실 사태가 터지고 경제 위기가 엄습한 것과 똑같은 과정이다. 사실 버블이 다 비슷비슷하게 터진다.

하지만 본 사태의 피해 규모와 영향은 카드대란에 비해 압도적으로 컸다. 카드대란은 그 영향이 대한민국 혹은 그와 경제적으로 밀접한 주변국 정도에 ‘과소비를 한 개인과 집단에 대한 경제적 타격’이 주 영향이었다면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는 미국에서 시작되어 전 세계 경제를 단숨에 밑바닥으로 끌어내렸기 때문이다. 이는 지금까지도 전 세계 경제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경제학자들은 이를 대공황에 이은 대침체로 분류하고 있다.

일본도 똑같이 터졌었다. 일본의 고도 성장으로 촉발된 부동산 가격 상승은 더 많은 사람들을 부동산 시장으로 몰리게 했고 은행은 끝없이 오르는 자산 가격에 근거해 부동산 담보 대출을 더 적극적으로 한다. 이로 인해 풀린 자금은 시장을 더욱 가열시키고 어느 순간 도쿄에 있는 빌딩 하나가 미국의 빌딩 수십 수백채 가격이 된다. 이 때 나온 유명한 말이 '도쿄를 팔면 미국을 살 수 있다'는 농담 아닌 농담. 사람들은 슬슬 가격이 정상이 아니라고 판단하고 시세 차익을 챙기기 위해 부동산을 처분하기 시작한다. 매도세가 강해진 시장에서 가격은 정체되고 분위기는 반전한다. 어느 순간 가격은 하락하기 시작하는데, 그냥 하락으로 끝나는게 아니다. 최고조에 달한 부동산을 하락장 초기에 처분한 사람들이야 이익을 보겠지만, 가격이 내려가리라 판단한 시장에서 더 이상 대출을 받아서 거품 낀 가격에 부동산을 사려하는 사람은 없었다.

즉, 시장의 기대가 부동산 하락에 몰리고 매도 물량을 받아줄 신규 매수자의 유입이 차단된 것. 이런 상황에서 필요에 의해 부동산을 산 사람이 아닌 투자(투기)를 위해 대출을 받아 부동산을 보유한 사람들은 손실을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 서둘러서 부동산을 매각하게 되고 가격 하락은 더욱 가속된다. 부동산 가격의 상승만을 믿고 무리한 대출을 받은 사람들과 대출을 해준 은행 모두 당연히 담보 가치 하락으로 큰 손실(말이 손실이지 부도가 나고 쫄딱 망하는 것)을 입게 되고 일본 경제의 버블은 결국 터지고 만다.

이러한 일이 1980년대에 발생했는데, 본질적으로 똑같은 일 (부동산 상승에 대한 탐욕적 믿음과 부실 대출)이 21세기 금융 리더인 미국에서 일어난 것이다. 이런 버블의 경우 은행이 대출을 그냥 정상적으로 해준게 아니라 부실 대출을 경쟁적으로 했다는 스토리가 꼭 들어간다. 애초에 미칠듯한 가격 상승은 그에 걸맞은 미친 유동성 공급이 있어야 하는데 이러한 역할은 당연히 미친 (...) 은행이 한 것이다. 1980년대 일본 거품경제 부동산 항목에 나와있듯이 당시 일본 대출의 LTV가 무려 200퍼센트 (...) 라는 정신나간 상황이었다[9]. 즉, 부동산이 오를 것이라고 미리 예상하고 10억인 건물에 대해서 20억 대출을 해줬다는 것. 부동산 가격이 오르는건 고사하고 정체만 되어도 어떤 대참사가 올지 삼척동자도 알 수 있는 부실대출 과잉의 시대였던 것이다. 미국 금융권은 이짓거리를 21세기에 그대로 반복한 것이다. 인간의 욕심이 얼마나 사람을 눈멀게 하는지 알 수 있는 역사의 반복.

2.2. 발단: 연준의 저금리 정책

2001년 당시 연방준비제도이사회[10]의 의장이었던 앨런 그린스펀의 한 마디에서부터 시작되었다. 당시 대부분의 투자자는 안전하면서도 수익이 보장된 투자처로서 미국 국채를 이용해 수익을 얻었다. 그러나 Fed, 특히 그린스펀은 그것을 결코 좋게 보지 않았고 다음과 같은 발언을 한다.
FOMC[11]는 충분한 경제적 성장을 촉진할 필요가 있는 이상, 매우 협조적인/조절적인 정책을 고수할 준비가 되어있습니다.
The FOMC stands prepared to maintain a highly accommodative stance of policy for as long as needed to promote satisfactory economic performance.
이 말이 별 것 아닌 것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그린스펀은 미국 국채에 대한 정책을 바꿀 것을 시사한 것이었고 이 말의 뜻은 쉽게 말해서 다음과 같았다.
이제는 여러분이 미국 국채로 돈 버는 것을 못 봐주겠으니, 다른 데로 가시오.

2.3. 부채담보부증권

이 발언 직후 전 세계의 투자은행과 펀드매니저들은 그동안 놀고 먹기나 다름없었던 미국 국채 돈줄이 막힐 것이라고 직감하고 새로운 저위험 고소득 투자처를 찾기 시작했다. 결국 그들이 찾아낸 것은 CDO(부채담보부증권)이었다. 당시 CDO는 40% 정도의 수익률을 안정적으로 보장하고 있었고 90% 이상의 채무자들은 성실하게 빚을 갚아나갈 수 있는 상태였기 때문에 CDO는 매우 이상적인 투자처였다. 애초에 집을 담보로 삼는 모기지(주택담보대출)는 갚지 않으면 곧바로 노숙자가 되기에 모기지를 갚지 않는 사람은 없다는 인식이 있었다. 안 갚아도 집이 은행에 넘어가니 손해볼 장사는 아니었다.

CDO는 간단하게 말하면 여러 사람의 주택담보대출을 모아서 만든 증권이라고 할 수 있다. 은행은 당신의 저당권을 담보로 채권을 발행함과 동시에 유동성을 확보한다. 은행은 손쉽게 원금을 확보하게 된다. 당신이 대출금을 은행에 갚으면 그 이자가 투자자에게 가는 구조였다. 은행은 더욱 많은 자금을 유치할 수 있었다. 그 돈으로 다른 파생에 투자하고 투자자들은 돈을 벌 수 있는 시스템이었다.[12]

구체적인 작동 기전은 이렇다. 은행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돈을 주택 구입자에게 대출해 줌으로써 이자 수입을 얻는다. 그럴 경우 주택 구입을 위해 모기지론을 쓴 사람은 채무자가 되고 은행은 채권자가 된다. 은행은 자신의 돈이 일정 기간 동안 묶이는 대신 상환이 완료되면 이자 수입을 얻는다. 다만 여기서 미국의 모기지론의 특수성을 하나 알아야 할 게 있는데 미국은 담보를 유지하고 채권자를 바꾸거나 매각한뒤 원금을 바로 상환하고 채무를 청산하는 행위인 Mortgage Refinancing(우리말로는 재융자라고 한다)이 제도화가 잘 돼 있다. 땅떵이가 크고 이직, 진학 등의 사유로 도시, 주를 넘나들면서 이사를 하는 경우가 잦다 보니 집 한 채 평생 끌어안고 채무를 상환한다는 개념의 현실성이 낮기 때문에 이를 배려하기 위해 생겨난 건데 서브프라임 론 같이 초기 상환액이 낮은 상품을 활용한 투기를 조장하기 매우 쉬운 환경을 조성하는 데 일조했다.[13]

여기서 파생상품을 설계하는 사람들이 머리를 굴렸다. 모기지론 이용자에게 대출해 줌으로써 묶인 돈을 어떻게든 다시 활용할 수 있는 상태로 만들어서 다른 사람에게 대출해 줄 수 있다면 적은 돈으로도 많은 이자 수입을 얻을 수 있기에 은행은 파생상품 설계자와 손을 잡고 ABS라고 이름붙여진 자산유동화증권을 발행했다. 관련 문서를 읽다 보면 ABS가 아닌 MBS라는 용어가 나오는데 ABS가 뜻하는것은 자산유동화증권이고 MBS가 뜻하는 것은 모기지유동화증권이다. 모기지가 은행 입장에서 채권이자 자산이라는 것을 생각한다면 둘이 실질적으로 같은 용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정확히는 MBS가 ABS의 부분집합이다.

ABS는 말 그대로 은행의 '자산'인 담보대출을 '유동화' 즉 묶이지 않은 상태로 만들어 회수하기 위해 발행된 '증권'이었다. 은행은 자사가 보유한 모기지론을 한데 끌어모아 커다란 집합을 만들었고 이를 몇 등급의 트란셰로 나누어 증권화시켰다. 요컨대 제일 신용도 높은 등급의 트란셰에 속한 ABS를 구입하면 낮은 이자 소득을 얻지만 실물인 모기지집합에 속한 대출의 채무불이행률이 100퍼센트에 근접하지 않는 이상 손해를 보지 않게 설계되었으며 제일 낮은 등급의 트란셰에 속한 ABS를 구입하면 채무불이행률이 조금만 높아져도 손실을 입지만 높은 이자를 얻을 수 있게 설계되었다.

즉, 은행에 빚을 진 채무자들에게 돈을 걸고 채무자들이 돈을 잘 갚으면 돈을 따고 그렇지 않으면 돈을 잃는 그야말로 경제 논리에 의해 돈놓고 돈먹기가 이루어지는 인간 경마나 다름 없는 것이 'ABS'라고 볼 수 있다. 경마가 말마다 배당률이 다른 것처럼 ABS도 성실하게 잘 갚는 채권자들은 배당이 낮았고 신용 불량자에 가까울수록 배당률이 높았다.

2.3.1. 광풍의 확산

ABS의 도입으로 은행은 대출한 자금을 증권으로 만들어 불특정 다수의 투자자한테 팔아넘기는 것이 가능해졌고 은행은 그렇게 얻어낸 자금을 다시 열심히 대출해주기 시작했다. 자연히 대출해 주고자 하는 자금이 늘어나서 이자율은 낮아졌고 시중에는 많은 돈이 풀려 자산가격이 폭등하기 시작했다. 자산 가격이 폭증하자 이는 마치 세이가 주장했던 '세이의 법칙', 즉 공급이 수요를 창출한다는 주장과 합치되는 것처럼 보이는 현상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너도나도 돈을 빌려 '자산'을 구입하고자 한 것이었다.

급기야 미국 시중 은행들은 폭증하는 대출 수요를 감당하기 위해 ABS를 한단계 더 굴려서 새로운 파생상품을 만들어냈다. CDO, 즉 부채담보부증권이 그것이었다. CDO는 각기 다른 지역에서 대출된 모기지론을 실물자산으로 하는 ABS들 중 가장 등급이 낮은 고위험 트란셰를 전국에서 끌어모아 집합화한 이후 다시 트란셰를 나누어 발행한 것이었다. 아무리 낮은 등급의 트란셰에 속한 고위험 ABS라고 할지라도 특정 지역에서라면 모를까 전국적으로 한꺼번에 부도가 일어난다는 것은 수학적으로 가능성이 낮다고 당시에는 평가되었다. 즉 고위 트란셰에 속한 CDO는 부실화될 가능성은 한없이 낮으면서 그 기초가 되는 고위험 ABS의 높은 수익률을 함께 가진 마법의 상품으로 바뀌었다.

당연히 투자자들은 이 있을 수 없는 로우리스크 하이리턴 상품에 열광했다. 미국 은행들이 발행한 CDO는 미국뿐만 아니라 세계 각지의 투자자들의 돈을 끌어모았다. 은행은 CDO의 발행으로 큰 돈을 벌 수 있게 되었기에 CDO의 준거가 되는 고위험 ABS를 많이 만들어내려고 하였고 고위험 ABS를 많이 만들어내기 위해 결국 해서는 안 될 짓인 서브프라임 등급의 대출을 양산하기로 결정했다.

잠시 미국의 주택담보대출의 등급을 이야기하자면 아래와 같다.
  1. 재산과 수입이 안정되어 있는 고객에게 주는 Prime 등급(우량)
  2. Prime에 비해 채무불이행 위험도가 높지만 돈을 갚을 능력은 있다고 판단되는 Alt(alternative)-A 등급
  3. 돈을 갚지 못할 확률이 높다고 보는 서브프라임(SubPrime) 등급(비우량)

광풍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미국의 주택담보대출은 당연히 '프라임(Prime)' 대출이 주를 이루고 있었다. 이는 'Verified Income, Verified Assets(확실한 수입, 확실한 재산)'이 있는 사람에게만 주어진 주택담보대출로서, 회수율이 매우 높지만, 새로운 고객은 매우 적은 타입의 대출 방식이었다. 경제는 '신용'으로 굴러가는 만큼 신용이 좋은 개인, 즉 프라임 등급에게 대출이 잘 되는 것은 상식이었다. 하지만 위에서 설명한 기현상으로 인해 미국 은행들이 '서브프라임 등급의 고객'에 매력을 느끼는 역전현상이 발생하고 말았다. 돈이 서브프라임 등급에 몰리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서브프라임 등급 고객에게 은행들이 매력을 느끼게 된 것은 갑자기 '신용'이라는 요소가 필요없어진 게 아니라 그걸 가지고 파생상품을 만들어 투기와 돈놀이를 하기 위한 잘못된 이유 때문이었다. 정상적인 경제 활동이 아니었기 때문에 결국 나중에 대참사로 돌아오게 된 것이다.

2.3.2. 서브프라임을 잡아라

2001년부터 2년간은 그럭저럭 서브프라임에 목숨 걸지 않아도 프라임 등급 대출만으로도 CDO를 판매할 수 있었다. 하지만 2003년이 되자 거의 모든 프라임 대출 대상자는 이미 모기지를 쓰고 있거나 쓸 생각이 없는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은행은 새로운 CDO를 새로운 투자자에게 발급해야 했고 그러기 위해서는 새로운 고객이 필요했다.

새로운 고객을 유치하기 위해 은행은 해서는 안 될 '서브프라임' 대출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물론 서브프라임 계층은 당연히 빚을 갚을 능력이 거의 없는 사람들이었지만 당장 대출 실적 올리지 않으면 잘리는 판에 정말 양심적인 사람들을 제외한 나머지 은행원들이 그런 걸 신경쓸 리 없었다.

처음 서브프라임 대출이 활성화되기 시작했을 때 은행들은 'Verified Income, Verified Assets(수입 증명, 자산 증명)'를 'Stated Income, Verified Assets(수입 명시, 자산 증명)'로 조금 완화했다가 'Stated Income, Stated Assets(수입 명시, 자산 명시)'라는 말도 안 되는 정책으로 방향을 바꾸었다. 바뀐 규정에 따르면 새 고객은 자신의 금융 재산을 증명할 엄청난 양의 서류를 제출할 필요가 없었다. 그저 자신에게는 빚을 갚을 만한 충분한 수입이 있다고 서류에 명시하기만 하면 되었고 은행은 고객의 재산 목록을 조사하지 않고도 돈을 빌려주기 시작하였다. 이게 무슨 뜻이냐면 무소득 무자산 노숙자가 서류에 10억짜리 아파트 1채 보유 및 연봉 1억 5000만원의 소득이 있다고 적고 집을 넓히겠다고 10억 추가대출을 요청해도 은행에서는 아무런 증빙서류를 받지도 않고 명시된 것만 믿고(정확히는 그냥 대충 넘겨버리고) 10억 대출을 해 줬다는 말이다.

심지어 돈맛을 알고 모여든 중국과 신흥 국가들의 자금들마저 CDO로 몰려들기 시작하자 완화된 기준으로도 부족하게 되었다. 더욱 많은 모기지가 필요했다. 그러자 새로운 모기지가 절실히 필요했던 은행들은 비장의 카드를 꺼내들었다. 마침내 No Income, No Asset(NINA) 대출이 시장에 나온 것이다. 이전의 서브프라임 대출 제도도 이미 재산목록과 수입을 거짓으로 적어도 되는 소위 묻지마 대출상품이 된 지 오래인 판에 이 대출 상품은 고객에게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았다. 그냥 신청만 하면 재산이나 수입 없이도 은행은 대출을 해 주었다.

물론 은행이 미쳐서 아무 이유도 없이 배짱을 부려댄 것은 아니었다. 당시 정부의 한 가구 한 주택 정책[14] 기조 하에 연준은 기준금리를 낮게 유지하고 있었고 은행들도 계속 저금리를 유지할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그 한 가구 한 주택 기조 때문에 주택 시장에 붐이 일어서 주택 가격은 지속적으로 상승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서브프라임 등급의 사람들이 집을 사는데 그 사는 집을 담보로 잡고 대출을 시작한 것이다. 앞으로 집값은 계속 상승할 것으로 보이는 만큼 현재 집값의 100%까지 빌려준다고 하더라도 집값이 오른다면 담보 가치가 더 높은 것이므로 은행들은 미친 듯이 돈을 빌려주기 시작한 것이다.

은행들이 얼마나 대출 심사를 대충 했는지 보여주는 일화 중 기절초풍할 게 하나 있다. 한창 NINA 대출이 성행할 때 오하이오에서는 죽은 사람 23명이 대출을 받았다. 살아 있는 사람이 그들의 이름을 도용한 것인데 은행은 상대방이 본인인지 확인도 하지 않은 것이다. 영화 빅쇼트에도 기르는 애완견 이름으로 돈을 빌린 케이스가 나온다. 여기까지 보면 알겠지만 '묻지마', ‘무조건’으로 수억원짜리 금융거래가 다량으로 이루어진 시점에서 이미 정상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당연하지만 이 따위 엉터리 장난질이 영구적으로 지속될 수는 없었고 누구도 모르는 새 이 위험한 돈놀이는 파국으로 치닫고 있었다.

2.4. 막간: 연준의 금리인상

주택시장을 중심으로 인플레이션이 가속화되자, 연준은 물가를 잡기위해 매우 빠른 속도로 금리를 인상하기 시작했다. 이때 부동산과 관련 파생상품 돈잔치는 끝났어야 했다. 하지만 주담대를 상환하지 않는 멍청이는 없으니 ("what idiot doesn't pay their mortages?") 모기지 기반 채권 및 파생상품의 리스크는 여전이 매우 낮으며 ("Rock solid") 오히려 변동금리 모기지 기반 MBS들은 기준금리가 오르니 이에맞춰 이율이 더 치솟는다는 결론이 나와서 자본이 유출되기는 커녕 더 유입되면서 버블은 걷잡을수 없이 커지고 만다.

2.5. 재앙의 시작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던 파티는 마침내 미국의 집값이 주춤하면서 대재앙으로 끝나 버리고 말았다.

사실 집값이 영원히 폭등한다면 파티도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이지만 그것은 수학적으로 가능하지 않다. 은행 이자의 '이율\'은 총액에 대한 정률이다. 즉 5퍼센트의 이율이라면 1만 달러를 빌리면 500 달러, 1백만 달러를 빌리면 5만 달러의 이자 비용이 발생하는 것이다. 하지만 집값의 '상승률'은 성격이 다르다.

자산가격인 집값은 시장에 풀린 자금의 총액에 정비례한다. 즉 부동산 시장에 풀린 자금이 M일 때 가격이 10만 달러였던 집은 시장에 M이 추가로 유입되어 총액이 2M이 될 경우 20만 달러가 된다. 이 경우 집값의 상승률은 100%가 되는데 이 상태에서 시장에 M이 또 유입되어 총액이 3M이 되면 그 집은 20만 달러에서 30만 달러로 이전과 달리 50%만 증가한다. 증가율을 100%로 유지하기 위해서는 2M을 쏟아부어 총액을 4M까지 올려야 하며 4M이 된 이후에도 100%를 유지하려면 8M까지 올려야 한다.

다시 말해 동일한 정도의 상승률을 유지하기 위해서 필요한 통화량은 자산가격이 커지면 커질수록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게 된다.

자산 가격 버블이 붕괴하지 않으려면 자산 가격의 상승률이 이자율보다 높거나 같아야 한다. 한창 CDO 붐이 불기 시작하던 미국 부동산 자산 폭등의 초창기에는 미국 전역과 전 세계에서 투자자들이 몰려들어 시장에 투자자금을 유입시켜 시간당 통화량 증가율, 즉 집값 상승률은 은행 이자보다 훨씬 높았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많은 투자자가 몰려들어도 기하급수적인 통화량 증가는 불가능했고 집값의 상승률은 결국 점점 낮아질 수밖에 없었다. 은행 이자율은 크게 변하지 않는 와중에 말이다. 따라서 자산가격 상승률이 이자율보다 낮아지게 되는 시점이 오는 것은 필연적이었다. 정책의 문제도, 경제의 문제도 아닌 수학의 문제다.

그 날이 도래하자 미국 전역에서 채무불이행률이 폭증하기 시작했다. 이전까지는 대한민국 카드대란의 원흉이었던 '돌려막기'마냥 모기지도 돌려막기로 버티고 있었는데 이에 한계가 오고 만 것이다.

채무불이행률이 폭증하고 기초가 되는 모기지론이 걸레가 되기 시작하자 은행은 더 이상 기초자산인 모기지를 생산해 낼 수 없었고 새로운 모기지를 만들지 못하니 새로운 ABS와 CDO를 발행할 수 없게 되어 이를 매개로 공급되던 통화는 더 이상 미국의 주택시장에 공급되지 않았다. 심지어 통화량은 오히려 불이행자의 담보자산을 처분하는 과정에서 은행으로 회수되어 급격하게 쪼그라들기 시작했다. 당연히 통화량의 축소는 자산가의 축소를 불러오고 자산가의 축소는 더 많은 부실과 통화량의 재축소를 유발했다. 이는 당연히 미국 전국에서 일어난 현상이었고 이 현상은 CDO의 기초가정 즉 '미국 전역에서 불이행률이 한꺼번에 폭증하는 것은 가능성이 매우 낮다는 가정'을 송두리째 뒤엎어 버리고 말았다.

이는 뻔한 이야기였다. 모든 지역에서 한꺼번에 불이행률이 폭증하지 않을 것이라는 가정에 기초해서 만들어진 CDO는 모든 지역에서 한꺼번에 불이행률이 폭증하자 죄다 휴짓조각이 되어 버렸다. 감당하지 못할 빚을 진 투기꾼들과 돈을 빌려준 은행과 혼돈에 발을 담가 통화량 증가에 일조한 투자자들은 차례차례 무너지기 시작했고 경제 위기가 시작되었다.

또 서브프라임 모기지라는 상품에는 또 다른 복병이 있었으니 다름아닌 이자. 계약 체결 이후 처음 1-2년간은 비교적 합리적인 6% 정도의 금리로 상환하다가 티저 기간이 만료되면 갑자기 복리 12~20%급으로 폭등한다. 6%와 20%의 차이가 얼마 안 될 것 같지만 억 단위의 담보 대출인 만큼 한 달에 내야 하는 돈이 몇 배로 뛰니 채무를 이행하던 사람들도 튈 수밖에 없었던 것.[15]

버블이 터지기 얼마 전에 나와서 크게 주목받진 못했지만 마이너스 대출 상품[16]도 나왔다! 이건 월 납입금이 이자보다도 작아서 시간이 지날수록 잔금이 늘어나는 미친 물건이었다. 그래서 붙은 별명이 수어사이드 모기지(suicide mortgage). 당연히 단기 시세 차익을 노리는 투기꾼들에게나 적합한 상품이었고 은행들도 “집값은 항상 오른다”는 확신에 가까운 전망이 있었기 때문에 이러한 상품들을 팔 수 있었다.

이렇게 미쳐 돌아가는 상황 속에서도 은행원들은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이는 몇 가지 이유가 있었다. 일단 CDO 자체가 워낙 새로운 투자법이라는 문제였다. 아직 깊게 연구되지 않은 투자법이었고 은행원들이 가지고 있던 컴퓨터 모델은 모두 오래된 자료에 기초한 것이었다. 즉, Prime 시절에 모은 데이터에 근거해 작성되었다.

당연히 그런 모델이 서브프라임을 이용한 CDO에는 맞지 않았지만 은행원은 시뮬레이션의 결과를 계속 믿었다. 시뮬레이션은 CDO는 절대로 실패하지 않는다는 투자자들의 심리적 근거가 되었고 실제로도 서브프라임의 성적표는 그렇게 나쁘지 않았다. 서브프라임 계층의 고객들도 프라임 계층 같이 그럭저럭 돈을 갚아나가서 프라임만큼은 아니지만 60~80%의 서브프라임 고객들은 돈을 성실히 갚고 있었다.[17]

하지만 사람들은 몰랐다. 1차 기초 자산인 서브프라임 모기지 채권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MBS를 기초 자산으로 CDO-0를 만들고 CDO-0과 CDO-0의 기초 자산인 MBS를 기초로 CDO-1을, 그리고 이런 식으로 CDO-2, CDO-3... 같이 기초 자산의 족보가 뒤엉킨 파생 상품에 대한 위험 분석과 관리가 슈퍼컴퓨터로도 불가능할 지경에 다다랐다는 걸 말이다.[18]

2.6. 전조

연준에서도 이러한 상황으로 주택 가격이 이례적인 속도로 오르고 있었음을 미리 인식하긴 하였다. 2004년 1월 그린스펀은 투자자들이 리스크를 과소평가는 상황을 언급하며 자산 가격이 올라가는 속도가 심상치 않다고 언급하였으나 아직은 버블이라고 표현해도 좋을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2005년 6월에는 주택 가격의 버블이 존재한다고 보는 측과 존재하지 않는다(또는 버블이 있더라도 리스크가 관리 가능하다)고 보는 사람이 양쪽으로 나누어졌다. 버블이 존재한다고 보는 사람들은 주택 가격이 임대료보다 훨씬 더 빠르게 상승하고 있음을 지적했지만 반대로 그런 상승에 입지 등의 이유가 있으며 주택 가격이 설령 잘못되었더라도 연준의 정책으로 충격을 조절할 수 있음을 주장한 사람들이 있었다. 그리고 대체로 리스크를 과소평가한 사람들이 더 많았다. 동년 잭슨 홀 컨퍼런스에서 모기지 리스크를 주장한 학자들이 몇 명 있었으나 시장은 그들의 의견에 귀 기울이지 않았고 주택 가격은 2004년에 16%, 2005년에 15% 상승했다.

그러나 2007년 상황은 완전히 바뀌었다. 2006년에 미국 주택 시장의 거품은 최고조에 도달했다. 거품 규모는 약 2조 달러였던 것으로 추산된다. 언제, 어떻게 정확히 시작되었는지는 모르지만 사람들이 주택 가격이 너무 높다는 것을 차차 알아차리기 시작했다.

당시 서브프라임 계층의 사람들은 "만약 일이 없다면 지금까지 떡상한 집을 팔아서 돈을 갚으면 되지!"라고 생각하고 있었고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해서 빚을 갚았다. 원래 미국의 담보 시스템은 대출을 갚지 못하면 담보로 잡힌 해당 부동산만 포기하면 된다. 즉, 집만 날리면 되고 설령 대출금이 남아도 마저 갚을 필요는 없다. 은행이 고객의 다른 자산을 건드리지 못하도록 법으로 정해져 있는 시스템이므로 어느 정도는 이런 식으로 빠져나갈 수 있었다.[19]

2.7. 연쇄 반응

거품이 꺼지자 떨어진 집값으로 대출금을 갚기가 불가능하게 되었고 다수의 서브프라임 고객이 채무불이행, 즉 디폴트를 선언했다. 거품이 꺼지자 경제도 서서히 불황에 빠지기 시작했고 일자리도 줄기 시작했다. 무리해서 집을 산 사람들은 위기에 처했다. 애초에 자산 시장의 특성이 그렇다. 갑자기 매물이 늘어나면 매도세가 급물살을 타며 매물이 늘어남에 따라 가격도 미친 듯이 꺼진다.[20] 이 때문에 반대의 경우도 맞지만 이미 반대의 경우가 끝나고 매물이 증가하기 시작한 시점이었다.

모든 일이 도미노처럼 진행되었다.

즉, 집값이 떨어졌다.
→ 서브프라임 계층이 모기지(주택담보대출)로 빌린 빚을 갚지 못하게 되었거나 일부러 안 갚게 되었다.[21]
→ CDO의 수익률이 떨어지다 못해 마이너스를 기록하기 시작했다.
→ 서브프라임에 투자되었던 수조 달러의 돈이 하늘로 날아가기 시작했다.
→ 투자자들이 다급히 자신들의 돈을 빼내기 시작했다.
→ CDO들은 우량자산에서 부실자산으로 변모해 대부분의 자산을 CDO로 가지고 있던 투자은행과 금융기관은 공황에 빠졌다.

마침내 2008년 9월 다량의 CDO를 가지고 있던 리먼 브라더스의 파산을 시점으로 미국의 경제에 크게 의존하던 몇몇 나라는 아예 경제가 자빠지기도 하면서 전 세계적인 불황이 시작되었다.

- 2008년 9월 14일: 리먼 브라더스가 파산을 신청.
- 2008년 9월 15일: S&P 500 지수가 4.7% 하락하여 1,192.70로 마감.
- 2008년 9월 16일: FED, 기본 금리를 동결. (2.00%)
- 2008년 9월 29일: S&P 500 지수가 8.8% 하락하여 1,106.39로 마감.
- 2008년 10월 8일: S&P 500 지수가 18.2% 하락하여 899.22로 마감. FED, 금리를 50bp 인하. (1.50%)
- 2008년 10월 14일: FED, 금융 기관에 유동성을 제공하여 시장 안정화를 시도.
- 2008년 10월 29일: FED, 금리를 50bp 인하. (1.00%)
- 2008년 11월 24일: S&P 500 지수가 801.20까지 빠짐.
- 2008년 11월 25일: FED, 특별 대출 프로그램을 발표하여 중소기업과 소비자 대출에 대한 자금 공급 확대.
- 2008년 12월 2일: 버냉키 FED의장, 2008년 12월 2일 MBS 등 총 6,000억 달러의 자산매입 계획 발표 (QE1)[22]
- 2008년 12월 16일: FED, 금리 50bp 인하 (0.25%) + QE1 공식화
- 2009년 3월 9일: S&P 500 지수가 666.79까지 빠져서 역대 최저치 기록.

3. 또 다른 원인

아시아 각국의 1997년 외환 위기와 2000년대 초반의 9.11 테러닷컴 버블의 붕괴로 인한 통화정책[23]과 정부 정책의 실패, 그리고 그 뒤의 시장의 붕괴[24]까지 초래하는 상황을 본다면 1929년의 대공황과 상황이 비슷하고 실제로 작은 공황이라는 주장도 있을 정도다. 다만 수요와 공급의 조절 실패가 아닌 부동산의 무분별한 대출로 말미암은 사태라는 점에서 경제적 파장은 대공황에 비하면 매우 약한 편이다. 물론 이 사건으로 각국의 여러 금융이나 건축 회사가 박살나거나 큰 타격을 입고 세계 경제 불황의 원인이기도 한 만큼 절대적인 사건의 타격이 '약하다'고 볼 수는 없지만 최소한 대공황처럼 세계 단위로 모두 다 함께 쫄딱 망한 건 아니니 말이다.

3.1. 투기에 취약해진 모기지론

미국의 모기지론은 세계 그 어느 곳에서도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관대하고 파격적인 조건을 갖춘 대신 승인받기 까다로운 편에 속한다. 모기지론이 타 국가들의 주택담보대출과 제일 차별되는 부분은 재융자(refinancing)가 쉽다는 거다. 미국은 한 가족이 평생 동안 한 도시는 고사하고 한 주에서 생활을 한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에 주담대가 걸려있는 집을 팔고 그 현금으로 채무를 청산하거나 다른 금융기관이 담보물을 매입한 뒤 팔아 주고 차액만큼 다시 빌려주는 시스템이 굉장히 잘 돼 있으며 이런 식으로 일찍 갚거나 은행을 바꾸면 한국에서는 보통 위약금 명목으로 조기상환에 대한 페널티를 물리는 반면 모기지는 오히려 남은 이자의 일부를 면제(!)해 준다.[25] 이를 잘 이용하면 꾸준히 상환하여 낮아진 LTV(담보대비 부채비율)와 상환을 통해 쌓인 신용기록을 이용해 금리가 높을 때 집을 샀더라도 금리가 낮아졌을 때 더 좋은 조건의 대출로 갈아탈 수 있다는 엄청난 메리트도 생긴다.

물론 그 대신 모기지론은 승인조건이 까다롭다. 보유한 자산과 월 실소득을 깐깐히 따져서 소득수준 이상의 대출은 반려하고 신용등급이 낮으면 기준금리의 2, 3배 이상의 이자율을 때리기도 한다. 사람, 지역, 경기 상황따라 케바케이긴 하나 전미 평균은 보통 기준금리 +2~3%고 신용등급과 (대출액 대비) 자산/소득수준이 어정쩡한 사회초년생의 경우 +5% 정도다. 예시를 들자면 통상적인 기준금리 3%를 기준으로도 모기지론은 보통 5, 6%면 매우 좋은 금리로 쳐주고 첫 집을 구매하는 30대 초중반에게 8%면 선방했다고 볼 정도다.[26] 신용등급이 낮거나 학자금, 자동차 대출 등 다른 채무들까지 물려있으면(3% 기준금리 기준) 12, 심하면 15%가 나오기도 한다. 참고로 위에서 말한 +2~5%대의 "좋은 금리"를 받으려면 보통 원금의 최소 20~30% 정도는 먼저 내고 30년 기준 남은 월 상환액이 월소득의 25% 내외거나 이하여야 한다.

이런 까다로운 심사조건과 살인적인 금리도 감내하고 주담대를 내는 이유는 일찍 끊어서 조금씩이라도 상환하다가 경기가 좋아졌을 때 상기한 refinancing을 통해 더 좋은 조건의 대출이나 아예 새 집으로 갈아탈 수 있기 때문이다. 서브프라임도 시작은 경기가 좋을 때 신용이 나쁘거나 여타 조건이 애매한 사람도 (현실적인 자기 수준을 넘긴) 집을 산 뒤 티저기간에 적당히 올랐을 때 팔고 진짜 내집의 모기지 다운페이먼트 종잣돈을 마련하라는 취지도 있었다. 쉽게 말해 경기 좋을 때 좀 못 사는 사람들도 투기해서 집 마련할 기회는 줍시다라는 뜻. 그리고 실제로 이런 기회를 통해 성공한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그런데 이 서브프라임 모기지는 아무런 제약이 없었다. 돈이 많던 없던 집을 두 채건 세 채건 투기를 할 수 있었다. 아무리 취지가 좋다고 한들 아무런 제약 없이 무차별적으로 빌려주는건 현금시장의 공급과 주택시장의 수요를 무한대로 키우는 버블을 키우는 꼴이었고 실제로도 그렇게 됐다.

3.2. 라구람 라잔의 빈부격차의 심화 주장

라구람 라잔은 폴트라인에서 빈부격차의 심화가 위기의 원인 중 하나라고 주장했다.

이 빈부 격차의 원인에 관해서 레이건 시절의 규제 완화[27] 등 여러 원인을 이야기했으나 가장 큰 것은 미국의 교육 불평등 내지는 숙련 편향적 기술 진보(Skill-biased technical change)라고 주장했다.[28]

이에 더해 그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해 미국 정부가 근본적인 해결책을 내놓지 못하고 정치적 차원에서 부동산 대출을 쉽게 해주는 식의 땜질 처방에만 의존한 게 문제였다고 평했다.

이 부동산 대출은 빌 클린턴 정부의 '서민용 주택 확대' 정책과 부시 정부의 '한 가정 한 집' 정책의 이름으로 2008년 거품 붕괴 때까지 계속됐다. 똑같은 정책을 이름만 다르게 붙여 시행해 왔던 것이다. 정치적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진 결과다. 이처럼 양당이 아무 불협화음 없이 추진한 정책은 주택 정책이 유일한데 이는 근본적으로 빈부 격차에서 촉발되었다. 금융규제법처럼 정부에 더 많은 권한을 부여해 규제를 강화하겠다는 정책도 근시안적이다. 이 문제에 한해서는 민주당과 공화당이 둘 다 공범이라고 책에서 거론한 바 있다.

빈부격차가 경제문제를 일으킨다는 것은 사실 너무나도 직관적으로 자명한 이야기라 새삼스러울 것이 없다. 경제학 원론을 배울 때 우리는 경제학이란 희소한 자원을 배분하기 위해 존재하는 학문이며 가격이란 그 자원을 분배하는 기제라고 배운다. 즉 모두가 가질 수 없는 유한한 자원의 경우 제일 필요한 사람부터 분배되어야 하며 그것을 해 주는 것이 수요와 공급의 법칙에서의 가격이라는 것이다. 해당 자원을 제일 필요로 하는 사람이 제일 높은 가격을 제시하고 해당 자원이 있어도 좋고 없어도 좋은 사람은 낮은 가격을 제시할 것이기에. 그런데 이 모델은 빈부격차 상황을 가정하면 그 설명력이 저해된다. 딸 결혼식에 올릴 수백억대 케이크를 주문할 정도로 부유한 재벌과 돈이 없어 굶어죽어가는 사람을 가정해 보자. 재벌은 특정 재화에 낮은 효용을 보인다고 하더라도 가난한 사람보다 높은 가격을 지불할 용의가 있을 것이며 그 결과로 식량자원이 가난한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것이 아니라 재벌의 딸 결혼식 케이크에 금칠하는 데 쓰이는 비효율이 발생한다.

3.3. 국제적 불균형

이외에도 일본, 독일, 나아가 한국, 중국 등 신흥국들이 수출 증대를 꾀하면서[29] 미국과의 무역 관계에서 오랫동안 흑자국이 된 것 역시 문제로 본 바 있다.[30] 이러한 국제적 문제는 1990년대 후반의 아시아 금융위기 이후 더 심화되었는데 한국, 중국 등 여러 국가들이 오랫동안 달러를 비축해 두고 자본을 미국에 과잉 공급하게 되면서 미국 경제의 가해자가 되었다고 한 바 있다.[31]

이러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의 재발을 막기 위해 라구람 라잔은 이러한 국가들, 특히 중국이 미국과의 무역에서 지나치게 흑자를 보려는 태도를 경계하고 자국 내의 내수로 이를 대체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3.4. 닷컴 버블과 연준의 잘못된 통화 정책

보통 자본이 유입되는 것이 이론적으로 볼 때 무조건 나쁜 것은 아니다.

그 이유 중 하나로 자본이 유입되더라도 특정 분야로 지나치게 집중되어 해당국의 경제를 비교적 교란하지 않고 그것이 기술 발전이나 산업화 등에 쓰인다면 그것은 얼마든지 경제 성장에 기여하므로 그러하다는 점을 들 수 있다. 그러나 당시 미국의 경우 유입된 해외 자본이 부동산 등의 분야에만 몰려서 자국 경제를 교란한 바 있다.

그 원인으로 거론된 것이 닷컴 버블이다. 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있었던 닷컴 버블로 인해 제조업, 서비스업 시장의 이자율이 하락해 해당 산업에 투자를 많이 하지 못했고 그로 인해 연준의 금리 하락에 따라 시장에 풀린 돈이 고스란히 부동산으로 몰리게 되는 현상이 발생했다.

그리고 금리 하락 시 다시 해당 시장이 투자를 늘리게 될 거라는 것과 90~2000년대 내내 시중에 돈을 풀다가 금리를 재인상하기 시작한 시점을 잘못 잡은 연준, 마지막으로 그러한 위험을 무시하고 부동산 시장 광풍을 즐긴 금융계 역시 책임이 있다고 지적했다.[32]

다만 이 경우에서 연준이 금리를 인상한 것을 비판하는 건 지나치게 결과론적인 비판이다. 당시 연준은 이러한 리스크를 거의 인식하지 못했거나 인식하고 있더라도 금융 시장 안에서의 비교적 작은 규모의 리스크로 인식하고 있었다. 그 시점에서 연준에게 더 가시적인 위협은 적정 수준을 지나치게 넘어선 인플레이션율이었다. 금리 인상으로 인한 모기지론의 위협은 가능성이 높아 보이지도 않았고 일어나더라도 충분히 제어 가능한 수준으로 보였다. 하지만 계속된 인플레이션은 당장 손을 쓰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위험 수위에 있었으며 만약 연준이 금리를 끌어올리지 않았으면 서브프라임 모기지론이 아니라 인플레이션으로 인한 문제가 터졌을 가능성도 있다.

연준이 위험을 과소평가한 것이 잘못이라는 비판도 가능하겠지만 그 시스템을 직접 만든 투자은행들조차 어느 정도의 위협인지 제대로 평가하지 못하고 있었던 상황에서 연준이 어느 수로 그 리스크를 제대로 평가하겠는가? 그 상황에서는 좀 더 급해보이는 위험에 손을 쓰는 것이 합리적인[33] 선택이었다.

3.5. 잘못된 금융 시장의 시스템

거기에 더해 금융 기관의 잘못된 인센티브와 시스템 역시 지적하고 있다. 가령 금융 기관의 경우 지나치게 고수익 고위험 수익을 추구하도록 보수 구조가 짜여졌으며 투명성이나 기타 구조적 요인 역시 지적되었다. 이에 대해 라잔 교수는 그렇다고 금융시장을 정부의 힘으로 제한해서는 안 되고 보다 시장 자유를 유지하면서[34] 금융 기관에 대한 특권이나 보조금 폐지,[35] 온건한 규제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와 관해서 책임성 문제도 들 수 있다. 이는 정확히는 금융 시장 상품 구조와 관련된 것이다.

부동산 시장의 각종 금융 상품은 예를 들자면 이런 식으로 형성된다.
  1. 사람들이 부동산 대출을 위해서 자금을 빌린다. 원칙적으로 여기서만 끝난다면 은행이 대출 상환 여부 감시에 책임이 있음은 명약관화하다. 다만 아래와 같은 파생 상품이 일을 키웠다.
  2. 은행 등 금융사는 이런 대출 자금을 가지고 얻은 담보나 채권을 근거로 증권을 발행한다(MBS; Mortgage Backed Securities).
  3. MBS는 위험도 등등에 따라 여러 가지로 분류된다. 그리고 금융사는 이런 MBS를 수익, 위험 등등 취향에 따라 선별하여 포트폴리오를 구성한다. 이렇게 대출채권 등등으로 이루어진 포트폴리오를 CDO(Collateralized Debt Obligation)라고 한다.
  4. 그리고 그런 CDO를 근거로 또 채권, 즉 파생 상품이 발행된다. 그 중에는 아예 대놓고 위험만 떼어서 거래하는 CDS라는 상품도 있다. 즉, 부동산 담보 대출과 관해서 특정인의 채권채무 관계와 엮였고 그 채무 이행을 감시해야 할 필요가 있는 관련 금융사들은 여럿이 된다.

그런데 원래 책임자가 여럿이면 대체로 그런 의무 수행은 남들에게 떠넘기고 자기는 방관하는 책임성 문제가 생기게 마련이다. 따라서 부동산 대부자금 채무 이행에 대해서도 채권자인 금융사들은 책임자가 여럿이니 방관하게 된다. 더군다나 많은 금융사들은 기업이나 가계에도 대출을 함은 물론 자기들끼리도 서로 대출을 해 주고 있어 서로 얽혀 있으므로 어느 한 쪽이 터지면 공동으로 피해를 본다. 즉, 각종 파생 상품은 개인의 위험을 제거하는 데는 기여했을지 몰라도 구조적 위험은 취약하게 만들었다고 볼 수 있다. 정부의 고려는 이런 금융 시장의 기술적 구조에 미치지 못했던 것이다.

4. 반응

미 하원에서 공화당이 구제금융을 부결시켰을 때 시카고 대학교를 비롯해 6개 대학의 교수진들은 구제 금융을 반대하는 서명을 했다. 이외에도 가령 하버드 대학교의 로버트 배로 교수[36]는 경기 부양을 위한 정부의 적자 재정을 반대한 바 있다. 신자유주의진지하게 따르는 사람들은 확실히 신자유주의 원칙에 충실했다는 걸 본다면 신자유주의 전체의 도덕적 해이라고 보기엔 무리가 있긴 하다.[37] 더불어 간혹 엉뚱한 사람이 신자유주의자라는 오명을 쓰는 경우도 있다. 가령 맨큐는 비록 공화당 시절에 부시 밑에서 벼슬을 얻었지만 연방 정부가 서브프라임 사태의 촉발에 관여한 정황은 없었으며[38] 정작 맨큐 본인은 케인즈를 부활시켰다는 평을 받는 새케인지언이다.[39]

다만 이런 학자들이나 평소 신념이 투철한 사람들 외에 비교적 신념이 덜 투철하고 대세에 영합한 기회주의자들이 재계에 적지 않았다. 가령 서브프라임 사태에 직접 책임이 있는 자들은 정작 죽은 사람의 명의를 도용해서 돈을 빌리려고 해도 조사도 똑바로 안 하고 빌려주는 등 삽질을 알아서 한 주제에 신자유주의 원리대로라면 파산하고도 남았어야 하지만 이들은 정부의 지원금을 받아 연명했다. 그리고 그 지원금을 기업 살리는 데만 제대로 써도 봐줄까 말까인데 그 지원금으로 보너스 파티를 벌이는 추태까지 보여주었다. 결국 열받은 미국인들은 민주당버락 오바마를 대통령으로 뽑으면서 친월가, 즉 친금융 정부는 싫다고 대놓고 선언하게 된다. 그리고 오바마 이후 당선된 도널드 트럼프조 바이든도 친금융 성향은 아니다. 트럼프는 금수저 출신이긴 해도 사업 잘 해서 더 크게 성공한 인물인 만큼 친기업 성향일지언정 친금융 성향은 아니었고 바이든은 잘 알려진 대로 오바마 라인이라서 정책 면에서는 말 그대로 오바마 Mk-II라고 봐도 무방한 인물이다.

유명 철학가인 슬라보예 지젝은 자신의 저서인 '처음에는 비극으로, 다음에는 희극으로'에서 이러한 행태에 대해 호황일 때는 자본의 사회화와 규제를 미친 듯이 까며 저항하던 자본가들이 막상 위기에 닥치자 그토록 질색하던 (구제금융으로 대표되는) 자본의 '사회화'를 구걸하는 모습을 보인다며 비꼬았다. 실제로 밀턴 프리드먼은 "사기업은 자유시장 경제의 위험한 존재들이며 자유에 찬성하지만, 정작 자기들이 필요할 때마다 정부 개입을 원한다."고 비꼰 바 있다. 그 뒤 이들의 행태를 비판하는 용어로 '이익의 사유화, 손실의 사회화'라는 말이 생겨났다.

애초에 자본가들은 이익집단에 불과하니 당연한 일이다. 자본가들이 무조건 시장 친화적이라면 툭하면 "수입품 때문에 우리 산업 다 망해요"라고 징징거리며 "관세 올려주세요" 같은 이런 말들을 할 리가 없다. 이건 프리드먼까지 갈 필요도 없고 자유방임주의의 근거 이론을 제창한 애덤 스미스부터 지적한 내용이다. 다들 한 번쯤은 들어 본 '보이지 않는 손'의 역할을 가장 먼저 보여준 그 당사자조차도 '국가가 해야 하는 최소한의 역할'은 무시하지 않았다. 저 보이지 않는 손을 강조한 이유도 '정부는 상공업자들과 유착해서 독과점을 조장하지 말고, 보이지 않는 손이 작동하도록 자유롭게 경쟁하도록 감시하라'는 것. 즉 정부의 역할은 이런 사악하고 욕심 많은 이익집단이 필요 이상의 부를 축적하여 사회를 경직시키는 것을 막는 것이다.

4.1. 변론

자본가들에게 구제금융을 허가해 준 연준이나 정부, 의회를 비판할 수도 있지만 이들 입장에서도 달리 선택지가 없는 게 구제금융을 내주지 않았다간 나라가 망하게 생겼으니 어쩔 수 없기도 했다. 당시 분산되어 있었던 위험이 점점 증폭되면서 모인 타격이 덮친 기업들은 금융뿐만 아니라 제조업, 민간 금융 등에도 막대한 영향력이 있는 회사들이었다.

분명 원칙대로라면 망하게 놔두는 게 맞지만 그렇다고 그냥 아무것도 안 하고 방치했다간 미국의 근간산업들의 숨통을 끊어놓는 일격이 될 수 있었고 대공황기에 비해 훨씬 긴밀하게 연결된 세계 경제 체계 하에서 그런 대타격은 전 세계의 경제를 다 같이 망하게 할지도 모르는 일이었으며 심지어 전간기대공황처럼 장차 세계의 평화를 위협하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40] 따라서 정부와 연준 입장에선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는 구제금융이기도 했다. 아주 좋은 예가 일본의 잃어버린 10년, 20년, 30년이다. 물론 '애초에 망하기엔 너무 덩치가 커져 버린 놈들을 그대로 놔뒀던 것부터가 위험했다'는 주장도 있지만 이건 앞서 말한 것처럼 애덤 스미스도 지적한 다른 문제다. 그래서 미국에서도 시간이 지난 뒤에는 구제금융 자체는 필요악이었다고 평가하고 있다.

다만 어떤 변명도 불가능한 구간은 저 구제금융을 받고 난 다음의 행적이다. 일의 책임은 명백하게 자신들에게 있고 그러면서도 평소의 행태를 싹 버리는 모습까지 보여가며 구제금융을 받으려고 했으며 어쨌든 망하게 했다간 심하면 다 같이 망할 판이라고 해 줘야 하는 쪽에서 구제금융을 해준 것까지는 공리주의적 측면에서 어쩔 수 없었다고 쳐도 저걸 받고 나서 자성하여 더 잘 해 보려는 노력이 아니라 보너스 파티나 벌이는 추태를 보인 것은 누가 봐도 정상이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구제금융이 나빴다기보다는 월가나 자본가는 구제금융 후 자성, 자숙, 책임에 대한 통감이 부족했던 것이 연준, 정부, 의회는 그런 그들을 구제금융해 주면서도 통제할 노력이 부족했던 것이 진짜 문제였을지도 모른다.

5. 영향

파일:2008_financial_crisis.jpg 파일:Lehman_Brothers_bankruptcy.jpg
절망하는 뉴욕증권거래소 직원 파산한 리먼 브라더스

금융 시장이 얼어붙고 주택 가치가 폭락을 겪었으며 이로 인해 달러화의 가치가 급락했고 미국 경제가 전체적으로 불경기가 되면서 미국을 상대로 무역을 해서 큰 이익을 얻던 국가들이 타격을 입었다. 이후 대침체를 비롯한 여러 경제 문제들의 근본 배경이 되었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위기 때마다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사람들은 있었고 영화 빅쇼트의 주인공 마이클 버리를 비롯한 몇몇 투자자들이 공매도 및 저점매수로 많은 이익을 보았다.

그 외에도 대공황 때는 대통령부터 펀더멘털만 외치다가 결국 대통령이 프랭클린 D. 루스벨트로 교체된 후에야 제대로 대응한 것과는 달리 이미 비슷한 사태를 한 번 겪어 봐서 초기 대응도 대공황에 비해 신속했으며 1차대전 이후라는 최악의 상황에서 오직 미국에만 집중되었던 대공황 시기와는 달리 상당한 경제 호황 이후 처음부터 전 세계에 어느 정도 충격을 분산시키면서 발생했다는 점 등 변수는 상당히 많은 편이다. 이런저런 이유로 인해 타격이 줄어서 3차대전으로 안 갔다는 평도 있다.[41]

'시장에 맡겨놓으면 된다'는 신자유주의 경제 패러다임에 또 한 번 큰 충격을 가한 변환점이 되었다. 은행은 잘 나갈 때는 "국가 규제 따위는 다 없어도 된다. 그런 거 없이도 시장은 잘 굴러간다(laissez faire)"라고 주장하더니만 정작 서브프라임 폭탄이 터지자 "우리 망하면 경제도 다 망하니까 국회님 돈 좀 지원해 주세요!" 라며 징징거렸다. 애초에 이 사태는 제대로 검증되지 않은 투자 모델을 소위 최고급 엘리트 집단이라고 불리는 거대은행에서 어떤 의문도 없이 받아들인 시점에서 문제가 생긴 것이다. 이런 작자들이 평소에는 가난한 사람이나 타인을 향해 "죽을 힘을 다해서 혼자서 생존하도록 노력하라"거나 "네가 망하는 것은 100% 너의 책임"이라고 외치고 다녔다. 그야말로 내로남불의 극치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사태의 원흉 중 하나라고 볼 수 있는 여러 금융 기업은 미국 정부에서 준 어마어마한 수준의 지원금으로 임원들 보너스를 줬다. 그리하여 일어난 것이 월가 점령 시위. 그러나 별로 변한 것도 없고 피해는 보통 사람들이 당하면서 금융 엘리트들과 부자들은 몇 명의 극소수 예외를 제외하고는 "그때는 참 당황했지" 정도로 넘어갔다.[42]

이 외에도 다들 주목하지는 않았지만 경제학계에서는 다른 식으로 영향을 받았다. 시카고 학파는 새케인즈 학파 등이 주시하는 금융 부문을 다소 경시하고 실물 부문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 사태에서는 금융 부문이 경제에 크게 영향을 미친 반면 실물 부문에서는 경제에 별 영향을 주지 않은 바 있다. 따라서 금융부문에 대해 이전보다 경제학자들이 더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주장이 세를 얻게 되었고 특히 부동산 같은 자산 시장에 대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는 소리가 커졌다.

게다가 화폐시장을 통해서가 아니라 직접적으로 실물시장에 영향을 미치는 비상식적 통화정책[43]이나 금융 가속도 효과[44] 등이 재조명되었다는 점 역시 이번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의 영향이다.

미국 내 공무원의 인식도 바뀌었다. 한국이 외환위기를 경험하기 전에 그랬던 것처럼 미국도 이 위기를 겪기 전까지는 공무원이 그리 선호도가 높은 직업이 아니었다. 대놓고 "나는 공무원 따위는 안해"라는 사람들도 많았으니 말 다했다. 그리고 공무원으로 뽑히는 것도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게다가 2006년 전에는 회사들도 버블로 번창했고 이런 회사들에 취직하면 공무원직보다 수입이 더 좋았었다.

하지만 버블이 터진 뒤 많은 회사들이 문을 닫거나 직원 해고로 지출을 줄이는 방식으로 버티려고 하면서[45] 많은 실업자들이 생겨났고 이들을 고용할 수 있는 회사는 없었다. 이로 인해 어디서 구직하면 한 자리에 몇 백명씩 지원하는 현상이 일어닜다. 그때의 급박한 상황을 말하자면 입문 단계의 프로그래머를 구하는데 지원한 사람들의 반 이상이 그 분야에서 매니저급 경험자였다. 워낙 일자리가 없으니 자기가 해고되기 전의 월급의 반도 못 받는 일이라도 닥치고 해야 할 지경이었고 그나마도 워낙 경쟁률이 높아서 구직은 거의 불가능했다.

그 결과 2008년 이후 사람들의 생각이 바뀌어서 너도나도 월급은 적지만 안정적인 공무원을 선호하게 되는 현상이 일어났으며 공무원 시험에는 많은 사람들이 몰리고 경쟁률도 꽤 높다. 자본주의의 종주국인 미국에서 역으로 공무원 선호 풍조가 일어난 것이다.

정리하자면 서브프라임 사태는 단순한 경제위기가 아니라 미국인들의 사고와 삶의 방식을 바꿔 버린 사건이라고 볼 수 있다. 조금 더 와닿게 설명하자면 한국인에게 있어 IMF 외환위기에 버금가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될 정도다.[46]

특히 지표적인 부분에서 경제 회복은 충분히 이뤄졌지만 일반인들이 체감하는 삶의 질은 그 사태 이전으로 돌아가지 못했기에 모기지 사태 이후에도 그 여파는 여전하다. 그나마도 시간이 지나 상처가 아무는 듯 보였지만 코로나 사태그 상처가 다시 덧나서 결과적으론 일반인들의 삶은 더 나아지긴커녕 후퇴해 버렸다.

결국 10년도 더 지났음에도 여파는 여전하고 사람들의 정신적 훼손 또한 여전하다. 이는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미국에서 여전히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와 관련한 다큐, 영화, 출판물 등의 저작이 활발히 이뤄지는 것을 보면 이 사태가 미국인들의 머리 속에 얼마나 큰 충격으로 자리잡았는지 알 수 있다.

6. 관련 매체 및 자료

  • 벤 버냉키, <연방준비제도와 금융위기를 말하다> (원제 Federal reserve and the financial crisis), ISBN 9788994142326
  • 벤 버냉키, <행동하는 용기: 경제위기와 그 여파에 대한 회고> (원제 The Courage to Act), ISBN 9788972916024[47]
  • 티모시 가이트너, <스트레스 테스트> (원제 Stress Test), ISBN 9791195275564[48]
  • 헨리 폴슨, 벤 버냉키, 티모시 가이트너, <위기의 징조들> (원제 Firefighting), ISBN 9791191328042
    리먼 브러더스 사태 당시 미국 경제 사령탑이었던 세 사람[49]의 금융 위기 대처 과정과 그로 인해 얻은 교훈을 서술한 책이다.
  • 빅 숏
  • 사우스 파크의 시즌 13 3화 'Margaritaville'에서 패러디했다. 이 에피소드는 1시간 미만 애니메이션 부문으로 에미상을 수상했다.
  • KBS 다큐:미국발 금융위기 한국을 덮치다(2008.09.21 방송)

6.1. 영화

7.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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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미국 역사상 최대 규모의 최악의 경제 위기는 매우 유명한 1929년대공황이었지만 90년 이상 지난 일이어서 21세기에는 대침체가 훨씬 와닿는다. 이 사건의 여파가 끝나지 않은 2020년 초유의 바이러스 사태로 인해 대봉쇄가 터지기까지 했다.[2] 테러와의 전쟁으로 인하여 미국의 국력이 적잖게 소모되었고, 명분 없는 전쟁을 일으키고도 초강대국 미국이란 이유로 흐지부지 넘겨버린 유엔의 권위도 상당부분 실추되었다. 이는 신냉전의 발생에 큰 영향을 주었다. 결국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이후 러시아남오세티야 전쟁에 참전하는 등 신냉전의 서막이 오르기 시작하였다.[3] 이 사건이 워낙 큰 사건이기 때문에 사건 발생 이후의 경제 침체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사건이라고 말할 정도이다. 2022년 우크라이나 전쟁과 코로나19로 인한 스태그플레이션으로 세계적으로 금리를 인상하기 이전까지 약 15년간 초저금리 시대였지만 위축된 경제 심리로 인하여 이 풀린 돈이 내수시장을 활성화시키기는커녕 전부 부동산, 암호화폐에 들어갔다. 물론 이 사건 자체가 부동산 버블이 터지며 발생하였지만 그 여파로 현대 경제사 최초로 20년이 다 되어가도록 극심한 경기침체가 이어진 것은 물론 코로나19로 스태그플레이션까지 겹치며 상황이 더욱 악화되었다.[4] 1930년대에는 나치즘 등의 전체주의 사상이 제1차 세계 대전, 대공황 등 경제위기를 바탕으로 나타났으며 소련공산권 국가들이 본격적으로 권위주의화된 것도 이 시기다.[5] 영어에서 'Sub'는 보통 '아래'라는 의미를 갖는 접사이고 'Prime이 '우수한'의 뜻으로 신용도가 높은 고객을 뜻한다.[6] 여담으로 mortgage라는 단어는 옛 프랑스어 mort(죽음)+gage(맹세)에서 유래된 단어다. 즉, 직역하면 죽음의 맹세라는 뜻이 된다. 과거에는 대출의 담보가 자기 자신이었기 때문이다.[7] 미국은 담보의 매각액이 대출액보다 적더라도 담보만 넘기면 상환의 의무가 사라진다. 즉 담보가 있는 이상 갈음할 수 있다. 그러니까 지금 빚이 얼마든 담보로 갖고 있던 물건만 넘기면 이후에 돈을 갚을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아이러니한 것은 이 제도는 대공황 이후 서민들을 위해 혹시나 대공황이 와서 집을 잃더라도 채무 관계가 종결되도록 만들어진 제도라는 것이다.[8] 이게 어느 정도 올랐냐면 미연방 주택기업 감독청에 따르면 2002년부터 2006년까지 집값 상승률은 미국 전체 평균이 50.53%에 달했다. 네바다, 플로리다, 메릴랜드 주는 상승률이 80%에 육박했고 가장 상승률이 높았던 캘리포니아는 무려 103.2%에 달했다. 집을 구매했다가 몇 년 뒤에 판매하면 그 차액만큼을 얻을 수 있고 대출이자 따위를 한참 상회하기 때문에 시중에 풀린 돈이 주택 투기에 몰려들었다. 은행들은 마구잡이로 주택 담보 대출을 내줘서 이 현상을 부채질했다. 더 나아가서 대출 채권을 증권 형태로 다른 금융기관이나 투자자에게 판매했다. 결과적으로 버블이 붕괴됐을 때 대출자(주택소유자)와 대출업체만의 문제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관련된 모든 기업, 투자은행, 금융기관에 이르기까지 연쇄적인 위기로 확산되었다.[9] LTV는 loan to value, 즉, 가치에 대한 담보 비율. 보통 한국이나 미국에서 사회 초년생이 주택담보대출을 받는 다면 집값의 70-80프로 정도까지 대출을 해주게 되어있다. 1억이 집값이면 8천만원을 은행이 대출을 해주고 매수자가 최소 2천만은 직접 지불해야 한다는 말. 그런데 LTV가 200퍼센트라는 말은 1억이 집값인데 2억을 대출 해준다니 상식적으로 말이 안되는 상황이다.[10] 약자 Fed. 미국 달러를 발행하는 미국의 금융정책기구.[11] 연방 공개 시장 위원회, Federal Open Market Committee[12] 지금도 보통 P2P금융에서 주로 볼 수 있다. 여러 사람들의 신용대출을 모아 일정 금액을 모집한 다음 은행이 빌려주는 형식의 투자가 그렇다.[13] 초기 금리가 낮고 대출에 제한이 없다면 누구든지 그냥 집을 사서 티저기간이 끝나기 전에 팔아 버리고 시세차익을 챙긴다는 생각을 가지기 쉽기 때문이다. 좀 과격하게 말해 한국의 일반적인 인식은 서브프라임은 그냥 “신용 불량자한테까지 빌려주다가 금융계가 줄도산한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실제로는 “주거 실수요가 바닥나서 MBS로 돈놀이가 힘들어진 금융계가 대놓고 개나소나 투기하라고 만든 대출 상품으로 버블을 더 키우다 다같이 망한”이야기에 더 가깝다.[14] 이 시기가 부시 정부 시기이긴 하지만 클린턴 시기에도 그랬다. 사실 공화당민주당 상관 없이 국민이 백야드와 차고가 있는 집을 가지는 것은 공인된 아메리칸 드림이고 그것을 가능하도록 정책을 펴는 것은 정부의 의무처럼 여겨졌다. 문제는 부채질을 너무 해서 결국 활활 다 타 버렸다는 것이다.[15] 다만 모든 서브프라임 채무자들이 티저 기간이 끝나면 상환액이 급상승한다는 사실을 모르고(=모기지 브로커에게 사실상 사기/강매당하고) 대출을 받은 건 아니었다. 채무자나 채권자나 티저기간이 끝날 쯤이면 자산가치가 원금과 이자를 합친 금액을 아득히 초과할 것이라고 생각했고 집값이 오르면 제3자에게 팔고 채무를 조기상환하고 챙긴 차익으로 다른 집을 더 좋은 조건에 사거나 높아진 담보비율+원금 상환율을 레버리지로 더 좋은 대출상품으로 갈아탄다는 생각이었다. 영화 빅쇼트에서 집 3채와 콘도 하나가 있다고 언급하는 스트리퍼도 저금리 티저기간을 이용해서 매입한 자산을 적절한 시기에 팔아서 청산한 뒤("브로커가 얼마든지 Refinancing 할 수 있다고 했어요") 차익을 챙기겠다는 투기를 벌인 것이고 이런 식으로 주택시장은 이미 공급이 실수요를 아득히 초과한 매우 위험한 상황이였다. 이는 당연히 저금리+자산가 급등이라는 초호황 상황이 말 그대로 수십년간 지속될 것이라는 안일한 생각이 빚어낸 참극이다.[16] Negative amortization이라고 한다.[17] 비극적이게도 서브프라임 사태로 가장 피해를 많이 입은 사람들이 이 성실한 중산층 고객들이었다. 은행의 권유로 대출 받아서 겨우 내 집 마련했는데 한순간에 집은 뺏기고 빚더미만을 떠안은 채 거리로 내몰리게 되었다. 설상가상으로 이어진 경제 불황으로 실직까지 하는 경우도 많았기 때문에 피해자들이 바닥 없는 막장으로 추락하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이후 가장 성업하게된 곳 중 2개에 전당포와 (집에서 쫓겨난 사람들의 물건을 보관하는) 창고업이 꼽히는 것을 보면 미국 중산층이 받은 타격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18] 이 사태를 소재로 한 영화 빅 쇼트에서는 이런 n차 CDO를 카지노에서 블랙잭 카드 게임을 직접 하는 플레이어와 딜러 중 누가 이길지 내기하는 주변의 구경꾼들의 내기에 또 다른 사람들이 내기를 하는 방법으로 예를 들어 실감나게 설명하였다. 셀레나 고메즈가 카지노 딜러와의 블랙잭 도박에 돈을 건다.(MBS) 그걸 구경하던 뚱뚱한 남자와 마른 남자가 '셀레나 고메즈가 돈을 딸 것인가 잃을 것인가'를 가지고 내기를 한다.(0차 CDO) 안경 쓴 여자와 안경 쓰지 않은 남자가 '뚱뚱한 남자가 돈을 딸 것인가 잃을 것인가'를 가지고 내기를 한다.(1차 CDO) 옆에 있던 사람들이 '안경 쓴 여자가 돈을 딸 것인가 잃을 것인가'를 가지고 내기를 한다.(2차 CDO) 이런 행위가 계속 반복되면 결국 정확히 누가 누구에게 돈을 걸었는지 알 수 없게 되고, 결국 셀레나 고메즈의 게임 결과라는 사소한 원인이 나비효과가 되어 대부분이 돈을 잃게 된다.[19] 이것을 유한책임 담보대출이라고 한다. 즉, 대출에 대한 상환 책임이 최악으로 치닫더라도 그 담보로 한정된다는 뜻. 이와는 다르게 한국의 대부분의 금융권 주택담보대출은 무한책임으로 이뤄진다.[20] 매물(공급)이 늘어나서 가격이 하락세를 보이기 시작하면 돈을 모아놓고 집을 사려던 사람들(즉 예비 구매자)도 '앞으로 집값 떨어질 거 같은데 좀 기다려볼까?' 하는 생각에 렌트를 하며 구매를 미루기 때문에 수요가 싹 말라 버린다. 특히 집처럼 평범한 사람이 평생 벌어야 사는 물건은 더더욱 구매자 입장에선 신중할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부동산은 주식이나 채권보다는 폭락의 속도가 훨씬 더디지만 대신 모멘텀이 엄청나서 한 번 꺼지기 시작하면 돌이킬 수 없는 경우가 많다.[21] 담보인 집이 갚을 대출액보다 싸졌기 때문이다. 위에 서술했듯이 미국은 집 담보 대출을 받은 후 디폴트 선언을 하면 집을 은행이 가져간다. 다만 다른 자산들은 건들지 못한다. 이런 상황에서 당신이 10억 원의 집 담보로 7억 원을 대출받았다고 하자. 그런데 집값이 1억이 되었다면 집을 팔아 1억을 갚고 남은 6억을 직접 일해서 갚는 것보다 디폴트를 선언하고 집만 압류당하고 끝내는 게 훨씬 싸게 치인다. 디폴트 선언 시 담보였던 집만 가져가고 그 이외에는 건들지 못하기 때문. 갚을 돈이 있더라도 돈을 쓸 필요없이 디폴트 선언을 해 버리면 마찬가지로 집만 압류당하고 끝난다. 하지만 은행의 입장에서는 은행이 대출해 줬던 7억 원은 1억 원의 집으로는 갚지 못한다. 결국 은행은 6억의 손실이 발생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경우가 한둘이 아니고 수많은 사람들이 이래 버리니 손실이 쌓이고 쌓여 결국 은행은 파산을 향하게 된 것이다.[22] 출처 - https://www.kif.re.kr/KMFileDir/129532707946662500_110623-2.pdf[23] 덤으로 밀턴 프리드먼은 평소에는 그린스펀의 재량적 통화정책을 깠는데 죽기 직전에 그린스펀의 통화정책을 보고 '어쩌면 그린스펀이 옳았을지도...'라고 하다가 죽었다. 그런데 정작 프리드먼이 죽고 난 뒤 일이 터졌다.[24] 여기서 나온 것이 금융 가속도 효과다.[25] 사실 이건 MBS를 통해 유동화가 쉬워서 돈을 일찍 먼저 주는 것을 싫어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26] 기준금리가 거의 마이너스를 찍던 코로나 사태 초기의 평균 모기지 금리가 3%였다. 연준이 5%대로 올리고 나선 7~8%를 횡보하고 있다.[27] 다만 레이건 시기의 규제 완화가 오늘날 불평등이 발생한 원인의 1/3, 1/4 정도라고 했다. 원인 중 하나지만 결정적이지는 않다는 것이 라구람 라잔 교수의 견해다.[28] 빈부 격차 심화가 주로 저소득층의 인적 자본 축적을 절대적으로건 상대적으로건 저해하여 경제에 악영향을 끼칠 가능성에 대해서는 그레고리 맨큐, 밀턴 프리드먼 등의 학자들도 인정한다.[29] 경제학에서 순수입은 순자본유출과 동치로 여겨진다. 즉 한국이 미국에 수출해서 얻은 금액은 미국에서 한국으로 자본이 빠져나간 것과 거의 동일한 금액이라는 이야기.[30] 특히 한중일은 팔아도 팔아도 끝이 없는 블랙홀이나 다름없는 미국 소비 시장에 어마어마한 공산품을 수출해 급성장한 나라들이다.[31] 단, 한국 등이 달러를 잔뜩 비축해 둔 건 한국의 1997년 외환 위기의 피에 사무친 경험과 그걸 보고 덩달아 겁 먹은 중국 등이 외환 보유고를 끌어올리는 데 목숨을 걸어서 그렇다. 그리고 1997년 외환 위기를 기회삼아 한국을 포함한 전 세계 여러 국가들의 사회 시스템을 신자유주의 방식의 불균형을 강제함으로써 총체적으로 쑥대밭으로 만들어놓으며 이를 이용해 미국 헤지펀드의 배를 불린 것은 당시 IMF 총재였던 미셸 캉드쉬, 그리고 그 뒤에 있었던 미국 정부였다. 당연히 한 번 뼈저리게 당한 이들이 두 번 당하지 않기 위해 외화를 비축하고 그 결과로 국제적 불균형이 생겼고 이것이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를 일으켰다는 것이며, 다시 말해 남의 나라의 경제를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쑥밭으로 만들어놓은 IMF, 미 연방정부, 그리고 헤지펀드들의 공작이 없었다면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역시 애초에 일어나지도 않았을 일이라는 걸 자백하는 셈이다. 다만, 한국 역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를 어떠한 피해도 없이 넘길 수 있었다는 것은 아니고, IMF 이후로 쌓아둔 외환 보유고를 탈탈 털며 코스피가 반토막나는 대가를 치르고 중국과의 수출을 증가시키는 방향으로 버텨낸 것이다. 물론 피해가 다른 나라들과 비교하면 적었던 것은 맞고 이를 당시 이명박 정부의 성과라고 말할 수는 있으나 대처 과정에서 경제적으로 많은 내상을 입었던 것 역시 사실이다. 이런 사태를 겪으면서 18대 대선의 화제가 된 부분이 바로 경제민주화였다.[32] 사실 경제학자들이 전부 위기를 예측하지 못한 것은 아니다. 로버트 실러 같은 경우가 이런 위기를 예측한 대표적인 케이스다. 그리고 라잔 역시 그린스펀을 까면서 금리 인하로 시중에 돈을 푸는 것이 미국 경제에 사망 플래그가 될 것이라는 사실을 예측한 바 있다. 구체적으로 살피자면 부동산 시장이 거품인지 아닌지의 여부는 당시의 경제학 수준에서도 예측이 아예 불가능한 건 아니었다. 당시의 경제학자들이 놓친 것은 그 부동산 거품이 복잡한 파생 상품이라는 도화선을 타고 세계 경제에 얼마나 큰 폭발을 가져올지였다.[33] 이용 가능한 정보를 모두 사용하여 미래를 예측하는 것을 의미한다. 모기지론의 리스크에 대한 올바른 정보는 당시 상황으로선 '합리적 선택'의 고려 대상이 아니다.[34] 정부 역시 막연히 선한 존재라고 하기 어려우며 오히려 정부와 금융기관이 이를 이용해 서로 이득을 취할 수 있기 때문이다.[35] 과보호는 시장경제를 위협하므로 망할 기관은 망하게 해야 한다.[36] 리카도 대등정리로 유명하며 이 양반의 포지션은 대략 경상북도 출신 민주당계 정당 정치인 내지 전라남도 출신 보수정당 정치인마냥 케인지언의 본거지인 하버드 대학에서 시카고 학파 계열인 새고전학파(New classical, 신고전학파(Neo classical)와 전혀 다르다.)에 속한 사실상 유일한 교수다.[37] 사실 원칙대로면 신자유주의는 금융기관을 포함한 기업의 파산도 자유시장의 일부이니 정부에서 개입하지 않는 것이 맞다고 말한다. 오히려 케인지언 쪽이 아무리 잘못한 것이 있더라도 거시적인 경제와 몰락의 굴레를 막기 위해 구제금융을 행해야 한다고 본다. 좀 삐딱하게 보자면 정부의 금융계 구제를 불공정하고 일종의 기득권간의 정경유착이라고 비판하는 시선은 신자유주의와 동일한 입장에서 케인즈적 정책을 파기하자고 주장하는 셈으로 여길 수도 있다.[38] 물론 그걸 막으려 개입한 정황도 없으므로 이런 측면에서는 까여도 무방하다.[39] 다만 성향은 온건 공화당이다. 그런데 역사적으로 시카고 학파 사람들보다는 케인지언들이 연방 정부에 더 잘 들어갔다. 그게 소위 시장친화적이라는 공화당 시절에도 그랬다.[40] 그리고 만약 그런 식으로 흘러갔다간 '대공황 이후 최악의 경제위기'가 아니라 '인류 역사상 최악의 경제위기', ‘인류 마지막 경제위기’가 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당장 코로나 19 사태가 터지자 대공황 이래 최악이라는 말까지 나왔는데 그가 10년 일찍 터질 뻔했다는 얘기니 리먼 브라더스가 파산했을 때 다음 타겟으로 지목된 AIG를 미국 정부가 구원하지 않았으면 AIG를 통해서 전 세계 모든 보험 시장이 폭발(Burst)할 뻔했다. 당시 AIG는 전 세계 모든 재보험 시장에서 독보적인 1위였는데 재보험은 보험사가 드는 보험이기 때문이다. AIG는 재보험 리스크를 감당하기 위해 CDOMBS 사업에 목을 맸다. 그런데 CDO와 MBS가 폭발했으니 AIG가 망했으면 그야말로 전 세계 모든 보험사들이 AIG의 손실을 다 떠안아서 같이 폭발해 버렸던 것이다.[41] 대공황 이후 미국 증시는 고점 회복에 25년이 훨씬 넘는 세월을 필요로 했지만 서브프라임 사태는 고점 회복에 단 2년도 걸리지 않았다.[42] 허나 신용도 없는 상황에 은행의 꼬드김에 넘어가 막무가내로 대출을 받은 사람들도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인간의 탐욕은 예나 지금이나 위험한 존재다. 다만 사채업자들에게 잔뜩 빚을 지고 인생 망치는 것도 본인 선택에 따른 누구 탓할 수 없는 자초한 결과이지만 그래도 그것을 예방하려고 사회 운동을 하고 구제 정책을 펴는 것처럼 이 역시 대다수의 소시민이 금융권의 감언이설에 놀아나지 않도록 정부가 미리 대비하고 알리기는커녕 전부 다 잘 될 것처럼 위험성을 감추며 대출 받아서 집을 사라고 부추겼다는 점에서 분명히 직접적인 책임이 있다. 부동산이 깊게 개입되어 있다는 점까지 일본 버블 경제가 꺼질 때와 정말 여러모로 똑같다.[43] 이 개념 자체는 이전부터 있었지만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를 계기로 새롭게 조명을 받았다. 대표적으로 버냉키의 무제한적 양적 완화나 아베노믹스가 해당된다.[44] 경기 침체로 인해 은행이 망할 경우 다른 은행이나 기업에 악영향을 줌으로써 경기 침체를 가속화.[45] 그리고 이래봤자 얼마 버티지 못하고 망한 회사들도 부지기수다.[46] 만약 IMF를 겪어 보지 않았다면 주변의 연장자들에게 당시의 참혹함에 대해 물어보도록 하자. 가정재정의 악화로 인한 이사와 자살의 일상화, 중산층 붕괴 등 IMF 외환위기 당시 겪은 대한민국 서민들의 삶은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를 겪은 미국인의 삶과 유사함을 알 수 있다. 한국도 IMF 이전에는 9급 공무원은 할 거 없는 사람이나 하던 직업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상전벽해 수준.[47] 2006년부터 2014년까지 연방준비제도 이사회였던 벤 버냉키의 회고록이다. 아래의 책과 함께 읽으면 좋다.[48] 금융위기 당시 뉴욕 Fed의 행장이었고 오바마 1기 정부의 재무장관을 지닌 티모시 가이트너의 회고록이다. 금융위기 당시 구제금융에 대해 비판이 상당했는데 이에 대해 연대기 순으로 자세히 구성되어 있고 흡입력도 있는 책이니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에 대해 관심 있는 사람은 읽어볼 만 하다(664페이지).[49] 미국 재무장관이었던 헨리, 미국 연준의장이었던 벤, 뉴욕연방준비은행 총재였던 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