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color=gold><colbgcolor=#003366> 베르쿠트 특수경찰대 Cпеціальний підрозділ міліції громадської безпеки «Беркут» Специальное подразделение милиции общественной безопасности «Беркут» | ||||||
창설일 | 1992년 1월 16일 | |||||
소속 | 우크라이나 밀리치야 | |||||
규모 | 약 4,000명 | |||||
참전 | 유로마이단 혁명 | |||||
위치 | 우크라이나 키이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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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우크라이나의 폭동진압경찰이었다.2. 역사
우크라이나가 소련에서 독립한 이후의 혼란기에 여러 치안 문제 해결을 위해서 1992년 내무부 산하 밀리치야 소속으로 창설되었다. 한국으로 치면 경찰기동대지만 SWAT 업무에 투입될 때도 있다. 주요 업무는 대 테러 작전과 소요 진압으로, 총인원은 약 4000여명에 이른다. 우크라이나에 존재할 때는 친러 성향 혹은 여당인 지역당원의 가족으로 골라서 배치했고 덕분에 친러 성향인 야누코비치에게 충성을 다했다.
이런 숫자와 창설 목적 때문에 정권 유지 수단으로 활용되었고, 유로마이단 시기에는 빅토르 야누코비치 우크라이나 전 대통령의 근위대로 취급을 받았다. 아무리 특수부대라지만 일반 진압경찰과 눈에 띄게 달랐는데, 노골적으로 시위대를 적대적으로 대하며 과도한 폭력을 휘둘렀다. 어느 정도였냐 하면 적십자에서 나온 자원봉사자뿐만 아니라 한국으로 치면 119 구급대원에 해당하는 103 응급구조대한테도 고무총탄을 쏘고 진압봉으로 구타하는 만행을 저질렀을 정도.[1] 사실상 이 자들이 유로마이단 사태의 과격성을 부채질한 원흉이자 야누코비치 몰락의 단초를 제공했다고 봐야한다.
그래서 이후 우크라이나 정부는 베르쿠트를 해산했다.
이후 베르쿠트의 일부는 신규 정부에 협력하였고, 100여 명이 키이우의 유혈 진압을 사과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해체 이전부터 사직서를 제출하거나 무기를 들고 탈주하는 형태로 이탈하는 대원들도 있었으며 러시아 역시 여권을 발급하여 이들을 도왔다. 결국 2014년 크림 반도가 완전히 러시아에 넘어간 후 내무부에서 복무하게 해준다는 콜로콜체프 러시아 내무장관의 제안을 받아들여 대부분의 대원들과 장비는 러시아 내무부에 편입되었다. 일부는 도네츠크 인민공화국, 루간스크 인민공화국 내무부에 합류했다. 도네츠크에서는 유리 시보코넨코 돈바스 지역 수장이 자유 돈바스에 합류해 국가수반 선거에 출마하기도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