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프랑스어: Ukrainien français우크라이나어: українська франц
우크라이나계 프랑스인은 프랑스인 중에서도 우크라이나계 기원을 가진 프랑스인을 총칭한다.
2. 이민사
러시아 혁명 당시 러시아 제국 주민 상당수가 프랑스로 망명하는데, 이들 중에는 우크라이나인 역시 적지 않았다. 그러나 우크라이나계 프랑스인 관련한 연구 자료나 데이터는 충분하지 않은 편인데, 첫 번째로는 러시아 혁명 과정에서 미국으로 망명한 인구 상당수는 2차대전 전후하여 미국으로 재이민했기 때문이고, 두 번째로는 프랑스로 망명한 러시아 제국 신민들이 주로 귀족층이 많았고 우크라이나어를 모어로 사용하는 농민이나 소시민들의 프랑스 이민은 비교적 드문 사례였기 때문이다. 프랑스의 총리를 역임했던 피에르 베레고부아의 개인사 이외에 소련 해체 이전 우크라이나인들의 프랑스 이민 관련해서는 자세한 자료는 많이 남아있지 않다. 세 번째로는 우크라이나에서 프랑스로 이민한 인물 중에는 유대인 비중이 높았는데, 이들 중 우크라이나 민족주의자들의 수가 많지는 않았다는 점이다. 이들은 이민 간 현지에서 프랑스 유대인 정체성을 가졌지 우크라이나계 프랑스인 정체성을 가지는 경우는 드물었다. 네 번재는 프랑스가 인종이나 민족 관련한 통계를 따로 작성하는데 인색하다는 점이다. 우크라이나인들은 프랑스 사회에서 그냥 일반적인 유럽 백인으로 간주되지, 아랍계 프랑스인이나 프랑스 유대인[1] 마냥 특별히 상이한 문화를 공유하는 집단으로 인식되지는 않는다.1960년에는 프랑스 내 우크라이나계 난민들 중 우크라이나 그리스 가톨릭교회 신도들을 위한 성당이 필요하다는 요구가 제기되면서, 가톨릭 선교부 한 곳이 우크라이나 그리스 가톨릭교회 성당으로 변경되었다. 파리의 성 블라디미르 대성당이 그것이다. 해당 성당은 이후 프랑스 내 우크라이나인들의 모임터로 기능했는데 이들은 1978년에는 기금을 조성하여 해당 성당 근처에 미하일 리셴코의 동상을 세우기도 했다.
소련 해체 이후 우크라이나인들의 서유럽 이주 제한이 철폐되고, 신냉전 격화 이후 우크라이나인들의 유럽연합 입국이 상당부분 자유화되면서 상당수의 우크라이나인들의 프랑스에 이주노동자로 일하게 되었다.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10만여 명 가량의 우크라이나인들이 프랑스에도 난민으로 정착하였다.(프랑스어)[2] 이들 중 상당수는 전쟁 이후에도 우크라이나로 귀국하지 않고 프랑스에 시민권을 정착한 후 영구적으로 정착할 가능성이 높다.
3. 유명 인물
- 네스토르 마흐노
- 세르쥬 갱스부르 - 유대계
- 피에르 베레고부아# - 아버지가 러시아 내전을 피해 프랑스에 정착했다.
- 알레한드로 조도로프스키 - 칠레의 우크라이나계 유대인 가정에서 출생하여 프랑스에 정착
4. 관련 문서
[1] 우크라이나 유대인이 프랑스로 이주한 이후에도 유대교를 고수하는 경우는 제외[2] 한 편 프랑스에 체류/거주하는 우크라이나인들 중 일부가 전쟁 발발 직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당시 우크라이나군으로 자원하기도 하였다.(프랑스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