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0-03-12 06:49:14

붕괴 후 혼란기

1. 설명2. 관련 어록3. 붕괴 후 혼란기의 예시
3.1. 현실 예시
3.1.1. 역사상 예시3.1.2. 한국 인터넷상에서의 예시
3.2. 창작 예시
4. 같이보기

1. 설명

"독재정권 붕괴 후의 공백이 테러세력 키웠다"

사회적으로 부패한 정권이 봉기, 혁명, 쿠데타, 반란 또는 전쟁에서의 패배 등으로 붕괴되고 나니 막상 부패정권 붕괴 후의 사회가 거의 헬게이트 수준으로 더 혼란스러워지고 급기야 막장화되는 현상. 또한 그런 혼란스러운 시기를 가진 시대나 기간을 지칭한다. 국가 지도자들에게는 이를 어떻게 수습하는가에 따라서 작게는 높은 지지율로 재선에 성공해서 정치생명을 연장시킬 수 있고 크게는 독재자가 될 기반을 마련할 수 있다.

특히 이런 혼란상에 대한 반작용으로 "예전의 독재정권이 그립다거나 무질서하고 무능한 민주주의보다는 차라리 독재가 낫다."라는 반응이 나오기도 하는데, 이러한 독재에 대한 향수는 결국 예전의 독재자와 별 다를 바 없거나 최악의 경우 오히려 이전 정권이나 혼란기보다 더 폭압적인 새로운 독재자의 출현으로 귀결되는 경우가 많다.[1] 또한 반대로 독재자가 집권하고 있던 때에는 그나마 정권의 탄압으로 억눌려있었지만 독재정권 붕괴 후 고삐가 풀려버린 극단주의 세력들이 상술한 혼란을 틈타 창궐하는 경우도 있는데, 독일 제국 붕괴 후 등장한 나치당, 아랍의 봄 후 등장한 ISIL, 동구권과 소련 붕괴 후에 동유럽과 러시아에서 준동한 네오 나치 등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대부분 온건론자들은 이런 아이러니한 상황을 설명하면서 급진적인 상황을 자제하거나 기피하는 이유를 거론하며 역설하기도 한다. 어찌됐든 혼란을 통제할 수 있는 체제/중앙권력이 있는 것이 무정부 상태나 무질서와 혼돈보다는 낫다는 것. 이러한 견해를 지닌 대표적인 사상가로는 토머스 홉스가 있다. 이러한 체제/중앙정권을 일거에 무너뜨려 그로 인한 막대한 후폭풍을 감당하는 것보다는 체제 내에서 점진적인 개혁을 하는 게 낫다는 것이 온건론자들의 주장이다.

또한 국가적으로 일부 극악 범죄자를 대놓고 죽이는 걸 주저하는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한데[2], 그나마 하나로 뭉쳐서 관리하기 쉬웠던 범죄 세력이 지도자의 사망과 조직의 붕괴로 분열되면 관리하는데 더 큰 어려움이 생길 수도 있기 때문이다.[3]

국가권력 붕괴로 인해 생기는 혼란의 원인중 하나는 이 틈을 노려서 진출하는 외세의 국내정치 개입이다. 옛 식민지에서 독립 이후 혼란기가 초래된 것과 독재정권 또는 권위주의 정권 종식과 민주화 이후에 생겨난 혼란기의 경우, 전자에 대해서는 식민제국이었던 국가들에게 상당한 책임이 있고 후자에 대해서는 과거의 독재정권 또는 권위주의 정권과 그 주역이 된 세력들에게 상당한 책임이 있다. 특히 전자의 경우를 가지고 "그것봐라, 너희들은 통치할 능력 없어서 우리한테 관리받아야 하는데 쓸데없이 독립해서 그 꼴이 났잖느냐[4]"고 사실을 호도하며 비웃는[5] 식민제국 출신 국민들[6]이 상당히 많다. 그뿐만 아니라 식민통치로 식민지였던 지역이 근대화 및 선진화 되었고 식민지화 이전보다 경제적으로 풍요로워졌다는 식민지 수혜론[7]식민사관을 주장하고 있는 판이다. 이것은 사실이 아니며 비꼬기이자 정신승리이다.

아이러니하겠지만 이렇게 되면 그 식민제국 대다수도 반박못할 요소가 몇가지 있는데 가령 프랑스프랑스 대혁명이 일어나 부르봉 왕가가 몰락했다. 하지만 그 이후 공화국 체제의 정부는 엄청난 숙청을 했으며 수십년간 전쟁이 이어졌다. 결국 나폴레옹의 전제정이 들어선 이후 다시 부르봉 왕가가 돌아왔다. 영국의 경우 청교도 혁명으로 찰스 1세가 처형되고 공화정이 들어섰지만 공화정 체제도 영 좋지 않아 다시 왕정복고가 이뤄졌다. 하지만 결국 각각 프랑스와 영국에서 민주주의가 자라나는 과정중 하나가 되었다. 러시아러시아 혁명으로 로마노프 왕조가 몰락한 후 적백내전이 일어났지만 소련 체제는 그래도 후술하겠지만 그 시절을 그리워하지 않는 사람은 마음이 비었다고 할 정도로 러시아에서는 나름대로는 호평듣는 시대다. 미국은 어떠한가? 미국 독립전쟁의 결과 미국은 독립국이 되었지만 처음 세워졌을 때만 해도 오늘날의 초강대국은커녕 미국 선원들이 영국 해군에 나포되어 강제로 해군에 징집될 정도였다. 하지만 미국은 결국 세계 초강대국이 되었다. 스페인도 이사벨 2세가 혁명으로 퇴위한 이후 알폰소 12세 즉위 전까지 혼란스럽긴 했지만[8] 그래도 알폰소 12세가 즉위해 나름대로 혼란이 수습되었다. 이사벨 2세 때만 해도 내란이 두 번, 쿠데타가 15번, 헌법 개정이 6번, 개각이 41번이 일어났지만 알폰소 12세 때는 펠리페 2세 사후 계속 내리막길을 걷던 스페인이 간만에 좀 상승세를 보이던 시기였다. 이 모두 제국주의 국가들이었으며 어떠한 굵직한 사건 후 혼란기가 왔다. 하지만 그런 이유로 그것들 모두를 폄하하긴 어렵다. 오히려 그것들을 잘 극복한 국가들은 이전만큼 나가거나 이전보다 더 잘나갔다. 길게 갈 것 없이 한국만 해도 해방 후 혼란이 극심했지만 그래도 그걸 다 이겨내고 선진국으로 성장했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비슷한 뉘앙스로 일베저장소 같은 과격성향 사이트를 바로 없애자는 극단적인 여론이 갑작스럽게 나올 때마다, 일부에서는 진짜로 사라지면 그 사이트 과격성향을 가진 네티즌들이 전국구로 분산돼서 혼란이 일어날 것을 염려하기 때문에 반대여론을 내세우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얼마 안 가 그런 일들이 진짜로 일어나기도 했다.[9]

게다가 한반도의 통일반대하는 사람들이 주장하는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한데, 만약에 북한체제가 무너져서 흡수하는 통일을 맞이한다면 후에 일어나는 여러가지 문제점들이 동반되기 때문이다. 심하면 북한에 내전이 벌어지면서 대한민국에 불똥이 튈 수도 있다.[10]

2. 관련 어록

그러나 혁명의 목적이 자유의 확립이고 반란의 목적은 해방이라는 것을 염두에 둔다면, 정치학자는 최소한, 훨씬 조용하게 진행되는 제2단계의 혁명과 헌법 제정을 손상시키면서까지 제1단계의 갑작스런 반란과 해방 운동, 전제정에 대한 봉기를 강조하기 쉬운 역사가의 함정을 어떻게 피할 것인지 알아야 할 것이다. 역사가가 부각하는 이야기의 극적 측면들은 모두 제1단계에 포함되는 것같이 보이기 때문이며, 아마도 해방 운동의 소요가 아주 종종 혁명을 좌절시켜왔기 때문이다. 역사가는 이야기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이러한 유혹에 빠지기 쉽고, 그 유혹은 훨씬 더 유해한 이론과 긴밀한 관계를 가진다. 이 이론이 담고 있는 내용에 따르면, 반동 세력에게서 나온 헌법과 헌법을 제정하려는 열기는 그 국가의 혁명 정신을 진정으로 표현하기는커녕 실제로는 혁명을 좌절시키거나 혁명의 완전한 발전을 저해했다고 한다. 그 결과―충분히 논리적이게도―혁명 과정의 진정한 정점인 미국 헌법은 반혁명의 실질적 결과로 이해된다. 근본적인 곡해는 해방과 자유를 구분하지 못한데 있다. 반란과 해방 운동이 새롭게 획득한 정치적 자유를 헌법에 담지 못한다면, 반란과 해방보다 더 무익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왜냐하면 "도덕, 재산, 군대의 규율은 모두 헌법이 부재한 상황에서는 실효를 갖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존 애덤스)"
한나 아렌트, <혁명론>(홍원표 역) 241쪽
젭 부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중동 정책 실패가 극단주의 무장단체인 IS가 발호하는 결과를 낳았다. 질문을 받아달라."

아이비 지드리히: "당신의 주장은 틀렸다. IS를 키운 것은 오바마 대통령이 아니라 이라크 전쟁이 끝난 후 이라크군을 해산하기로 결정한 당신 형이다. 3만여명의 병사들이 해산되면서 직업도, 수입도 얻지 못했지만 무기에는 접근할 수 있는 상태로 내버려졌다."
2015년 5월 14일 네바다주 리노에서 타운홀 미팅 형식의 간담회에서 오갔던 대화. ##
"제 3제국을 부정한 당신들이 그 수십배의 학살극을 벌이겠다고?" 이부분은 현실에도 자주있는일이죠.. 기존체제를 부정하고 혁명을 일으킨 쪽이 오히려 기존체제와 비슷해지거나 오히려 막나가는일 말이에요[11] 현실에 빗대는건 쫌 그러니...픽션에 빗대면 아ㅋ.... 멩ㅅ...되겠습니다...
하우스키퍼 19화에 등장한 베스트댓글 #
위기는 옛것이 죽어가고 새것은 태어나지 못하는 상황에서 일어난다. 이러한 공백기에는 여러 가지 치명적인 징후들이 나타난다.
The crisis consists precisely in the fact that the old is dying and the new cannot be born; in this interregnum[12] a great variety of morbid symptoms appear.
안토니오 그람시
해방정국, 그랬다. 해방은 곧 사회의 혼란으로 이어졌다.
야인시대나레이션 대사

3. 붕괴 후 혼란기의 예시

3.1. 현실 예시

3.1.1. 역사상 예시

붕괴 후 혼란 끝에 새로운 독재자가 집권한 경우 ★ 표시

3.1.2. 한국 인터넷상에서의 예시

3.2. 창작 예시

이 문서에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문서가 설명하는 작품이나 인물 등에 대한 줄거리, 결말, 반전 요소 등을 직·간접적으로 포함하고 있습니다.

4. 같이보기



[1] 무력으로 독재 정권을 뒤엎으려면 군대에 상당히 의존하게 된다. 그런데 군대라는 조직은 복종을 요구하는, 상당히 비민주주의적인 조직이다. 독재자가 된 영웅도 어찌보면 이런 현상과 관련이 있을지도 모른다.[2] 다른 이유는 죽은 범죄자를 신적 존재나 순교자로 만들어서 죽었지만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일이 벌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 예시로 사담 후세인 전 이라크 대통령이 있다. 미국은 실제로 이런 상황을 우려해 죽이지 않으려했지만 그가 시아파 정권 하에 사형당했기에 반군이 집결하는 계기가 되었다.[3] 이 경우를 창작물에서 보여주는 예시가 고스트 리콘 와일드랜드엔딩 1이다.[4] 내전, 난민, 빈곤, 비리, 무법지대, 독재, 동족상잔, 분단.[5] 서구 선진국과 일본을 비롯한 식민제국 출신 중에서 이슬람 근본주의 준동과 중국의 패권주의, 북한 정권의 악행, 흑인 우월주의 창궐, 제3세계 출신 이주자들과 난민들 중 몇몇의 범법행위등을 이유로 이슬람 문화권과 중화권, 한반도, 아프리카를 비롯한 제3세계는 독립해선 안되고 오히려 (반)식민지 상태로 남았어야 했다며 주장하는 경우도 있다.[6] 주로 서구 선진국과 일본 출신.[7] 자신의 선조들이 착취당한 적이 있는 식민지였던 국가 출신 국민들 대다수의 시점에서 보면 식민제국에서 주장하는 식민지 수혜론은 틀린 주장이다.[8] 약 1년동안 공위 상태인 데다가 새 왕이 된 아마데오 1세는 스페인에 도착하기도 전 지지자인 프림 수상이 암살당해 즉위한지 얼마 안가 다시 이탈리아로 돌아갔다. 여기에 그 이후 수립된 제1 공화국은 존속기간이 고작 10개월이었음에도 대통령이 네번이나 바뀐건 덤[9] 애초에 과격성향의 커뮤니티라고 해서 이들이 진짜로 어떤 계획을 가지고 조직적으로 사회 내에 혼란을 일으키지 않는 이상 사이트에 제재를 가할 이유는 없다. 아니, 있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이러한 행동이 진짜로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것이기 때문. 비슷하게 디시위키 역시 마찬가지라고도 볼 수 있다.[10] 하지만 설령 남한 사람들이 반대한다 하더라도 북한 사람들의 찬성으로 흡수통일은 불가피할 가능성이 더 높다.[11] 이는 독재자가 된 영웅의 개념과 거의 일치한다.[12] (국가·조직 등에서 신임 지도자가 취임하기 전의) '최고 지도자 부재 기간'을 가리킨다. 어원은 '왕과 왕(regnum) 사이(inter-)'.[13] 다만 이 대립은 해방 직후의 분위기에 초를 치는 거대한 일 때문에 갑작스럽게 폭발적으로 커지게 된다.[14] "4.19혁명 이후의 사회적 혼란 때문에 군사 혁명이 필요했다"라는 쿠데타 옹호논리 때문에 제2공화국 시기가 혼란스러웠다는 식의 역사 서술이 적지 않은데, 제2공화국 시기가 그 전후 시기(1공화국 말기, 혁명 후 ~ 3공화국 초기)보다 더 혼란스러웠다는 증거는 없다. 물론 집권 민주당이 당내 파벌 싸움 등을 하기는 했지만, '정파 대립'과 '사회 혼란'은 전혀 다른 문제. 제2공화국 시기의 각종 경제 활동이나 사회 활동은 정상적으로 이뤄졌고, 정부의 행정 시스템도 별 문제 없이 작동했다. 즉 군부의 개입이 필요할 정도의 심각한 사회적 혼란은 없었다.[15] 이 역시 내전이나 치안상의 혼란까지는 없었다. 정치적으로는 혼란이 있었으나, 역시 군부시절이 더 나았다는 근거는 못 된다.[16] 일부 소련 시절을 지낸 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소련 시절에는 일을 하지 않아도 돈을 받을 수 있었다고 회상을 했다. 어찌보면 "소련을 그리워하지 않는 사람은 가슴이 없는 사람이다. 소련 체제가 돌아오기를 바라는 사람은 머리가 없는 사람이다."라는 이야기도 괜히 탄생한게 아닐 것이다. 또한 8월 쿠데타 역시 막상 소련이 해체되면서 체제가 바뀌고 나니까 쿠데타의 실패가 안타깝다는 재평가도 나왔다.[17] 재스민 혁명으로 독재정권이 축출된 이후에 민주주의 정체가 안정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튀니지는 제외.[18] 체르넨코 정권 시절에 당시 농업부 장관 역임 중이었던 미하일 고르바초프가 "농업 상황이 처참한 지경입니다. 1917년부터 말이지요."라고 발언했다. 이때는 1985년이다! 치르넨코가 6살일때부터 71살이 되어 죽을때까지다.[19] 고우영 십팔사략에서는 "그래도 춘추전국시대에는 낭만이라도 있다"라며 한탄해하는 장면이 있을 정도다.[20] 고우영이 만화 십팔사략을 집필할 때에 자문을 구했던 중국 쓰촨대학 역사 교수조차 "일일이 파고들 것 없이 이건 그냥 넘어가라"고 했을 정도다.[21] 실제로 아프리카 등의 제국주의 시절 피지배국들은 지배국이 남겨둔 영토, 국경, 문화 ,종교등의 잔재 때문에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고 내전등의 분쟁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22] 이들 중에는 힌두교뿐 아니라 이슬람을 믿는 사람들도 있었다. 반면 원주민들인 피지인들은 영국의 영향으로 크리스트교로 개종한 사람들도 있었거나 이들의 전통 신앙인 토속신앙을 유지하는 경우도 많았다.[23] 이 악플러의 난입으로 인한 여파로 디시에서 갑신왜란이 터지고, 각 갤러리들 사이에서 세계대전이 무려 세 차례나 일어났다.[24] 단 이 경우에는 그 악플러이런 결과를 유도하기 위해 철저히 계획대로 저지른 만행에 가깝다. 그래서 일부에서 그 악플러의 뒤에 이런 구체적인 계획을 세워준 또 다른 배후세력이 있을 거라는 가설을 내놓기도 했다. 한편 갑신왜란 역시 한동안 이 악플러가 배후일 것이라는 이야기도 나왔다.[25] 덤으로 다른 사이트까지 포함시키자면 나지완홈런으로 야갤에서 다시 막장화와 분쟁이 일어나면서 원래 마토메 사이트 역할을 했던 '일베저장소'로 몰려 오늘날의 막장 사이트로 타락하게 되었다.[26] 사실상 이 문제가 터지게 되는 결정적인 기폭제가 된 사건이다.[27] 이를 지켜본 일부 위키러들이 차라리 리그베다 시절이 더 나았다고 말할 정도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리그베다 위키에서 진작에 욕먹고도 남을 비판 여론이 나무위키가 여시사태 등을 기점으로 인지도가 급성장해서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게 되며 크게 등장하고 있다. ### 이 때문에 아예 처음부터 리그베다 위키와 나무위키를 엿먹이기 위해 오래전부터 계획해서 2015 여성시대 대란과 함께 연계해서 계획했다는 음모론까지 등장했다.[28] 다만 미러링이란 단어는 메르스 갤러리에서 처음으로 등장했다.[29] 상술했다시피 여기에 덤으로 나무위키의 문제점들도 엉뚱하게도 이 대란을 기점으로 갑작스럽게 급증하게 된다.[30] 오죽하면 이런 상황에 8년이나 활동한 스파이더맨도 당황스러웠는지 킹핀을 잡아넣으려고 혈안이 됐던 자기가 설마 피스크를 그리워하는 독백을 할 줄 몰랐다는 식으로 말할 정도였다.[31] 다만 킹핀은 체포되기전에 온갖 범죄와 악행을 일삼았기에 스파이더맨과 경찰로서는 체포하지 않을수가 없었다. 오히려 킹핀이 체포된후 뉴욕의 경찰과 수사기관들이 제대로 된 대처를 하지 않다가 그틈을 타 악당들이 활개치기 시작해 뉴욕이 혼란에 빠지고 스파이더맨이 고생하게 된 것. 특히 교도소도 킹핀에 대한 관리가 얼마나 부실했는지 킹핀이 교도소에서 전화로 부하들에게 지시를 하여 범죄를 저지르고 있었던것이다.[32] 실제로 위에서도 언급됐다시피 지배국의 지배를 받은 피지배국이 지배국의 점령에 대한 영향과 잔재로 분열이 되면서 내전이 일어나는 경우가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