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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810000> 北京大学 베이징대학 | 북경대학 Peking University | ||
대학 정보 | ||
<colcolor=#fff> 정식 명칭 | <colcolor=#810000,#fff> 北京大学 | |
설립 연도 | 1898년 ([age(1898-01-01)]주년) | |
국가 | [[중국| ]][[틀:국기| ]][[틀:국기| ]] | |
연혁 | 1898년 : 경사대학당( 京師大學堂 )1902년 : 경사대학( 京師大學 )1912년 : 북경대학( 北京大学 )1938년 : 서남연합대학 1946년 : 북경대학( 北京大学 ) | |
소재 | <colbgcolor=#810000><colcolor=#fff> 옌위안 | 베이징시 하이뎬구 이허위안루 5번 北京市海淀区颐和园路5号 [1] |
의학부 | 베이징시 하이뎬구 쉐위안루 38번 北京市海淀区学院路38号 | |
다싱 | 베이징시 다싱공업개발구 진위안루 24번 北京市大兴工业开发区金苑路24号 | |
분류 | 국립대학, 종합대학 | |
소속 | 중화인민공화국 교육부 | |
총장 | 공치황 ( 龚旗煌 )[2] | |
당위서기 | 하오핑 ( 郝平 )[3][4] | |
조직 | 기구 | 계열(학과) 68개 학부생 전공 125개 |
학과 | 1급 학과 18개 2급 학과 25개 | |
재학 | 학부 | 16,372명 (2020년) |
대학원 | 29,741명 (2020년) | |
직원 | 교직원 | 3,401명 (2020년) |
행정 | 11,337명 (2020년) | |
상징 | 마스코트 | - |
색상 | 베이다훙 ( 北大红 ) | |
링크 | 웹사이트 | |
SNS | | | | | | | | |
위치 | ||
베이징대학 소개 영상 |
캠퍼스 사진 |
로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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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베이징대학 미명호(未名湖) |
중화인민공화국 수도 베이징시 하이뎬구에 위치한 중국에서 가장 유구한 교육부 직속 국립 종합대학이다. 전국중점대학교이자 211공정과 985공정에도 속한다. 당위서기와 총장은 모교 출신 하오핑과 공치황. 중국 정부에서 직접 총장과 당위서기를 임명·해임한다. 칭화대학과 더불어 중국의 학문을 이끌어가는 양대 쌍두마차다.[5]
약칭은 베이다(北大, 북대)이며[6] 대한민국에서는 베이징대학 혹은 한국 한자 독음 그대로 북경대학이라고 부른다. 1898년 경사대학당(京师大学堂)이라는 이름으로 설립되었다. 1912년 국립북경대학으로 교명이 개칭되었고, 1937년 칭화대와 창사에서 합병되어 국립임시대학을 구성했다가 1938년 쿤밍으로 이전했다. 1946년에 중화민국 정부에 의해 북경으로 복귀하였고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설립 후 1952년 중국 교육부에 의해 종합대학으로 승격되었다. 2000년에는 베이징의과대학을 합병해 작금의 교학 체계에 이른다.
북경대는 동북아시아와 중화권의 대표적 대학 중 하나이며 QS-PKU 2024년에는 QS 세계 대학 랭킹 기준 전세계 17위를 차지했다.
1.1. 교명 관련
이 대학교의 명칭에 대해서 한자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을 중심으로 오해가 존재하는데 한국인들이 베이징대학을 칭할 때 사용하는 언론과 일상에서의 보편적인 명칭인 북경대학 역시 대한민국 외래어 표기법상 정확한 표현이다. 국립국어원에 따르면 북경과 베이징, 상하이와 상해, 도쿄와 동경 등 오래전부터 내려오는 명칭은 한국식으로 적는 것을 완전히 허용한다.국립국어원 북경/베이징(외래어)의 바른 표기 고등학생 이상이라면 북경과 베이징이 같은 의미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으나 초등학생이나 중학생들 같은 경우에는 다른 곳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간혹 있다.한국어로 약칭은 북경대(北京大) 세 글자이고 베이징대라고 줄여 부르는 경우는 드물다. 사실상 '베이징대'라고 北京의 중국어 원음 발음 '베이징' + 한국어 '대(大)' 발음으로 줄여서 부를 바에 중국어로 베이다(北大)라고 말하는게 훨씬 편하기 때문이다. 베이징대라고 표기하는 경우는 있어도 한국인 사이의 회화에서는 '북경대'라는 약칭의 사용률이 압도적으로 많다. # ## # # 북경대 한국유학생들은 중국어 약칭인 베이다(北大)를 차용하여 "북대"라고 줄여서 부르기도 한다.
영어로는 베이징 대학(Beijing University)이 아닌 페킹 대학(Peking University)이라고 표시한다. 이는 베이징의 영어표기가 우정식 병음에서 병음으로 바뀌기 전에 만들어진 대학이라 그렇다. 오늘날에는 도시 베이징은 중국 현지음을 표현하는 병음에 따라 거의 Beijing으로 표기하지만[7] 베이징대학의 영어명칭은 청나라 시절부터 이미 굳어진 고유명사라 계속해서 Peking University로 표기하고 있다.[8] 다만 이해를 돕기 위해 Peking (Beijing) University 이런 식으로 병기하는 경우도 많이 있다. 과잠에도 Peking Univ. 으로 표기를 한다. 공식 영문 약칭은 PKU이며, 중국어 약칭인 베이다(北大)를 차용해 Beida라고 줄여서 부르기도 한다. 구글에 Beida를 검색한 결과
별명은 옌위안(燕园)이다. 현재 베이징대학의 메인 캠퍼스가 위치한 곳이 예전 옌징대학(燕京大学)의 캠퍼스인데 여기의 연(燕)자에 원(园)을 더해서 유래되었다. 상세 내용은 하기의 역사 항목 참조.
2. 평가
2.1. 세계랭킹
상술하였듯 2024년 기준 QS 세계 대학 랭킹 17위, 세부적으로는 2020년 기준 QS 현대언어학(Modern Languages) 랭킹 9위, 지리학 랭킹 14위, 화학 랭킹 15위, 재료공학 랭킹 16위, 자연과학 랭킹 17위, 컴퓨터공학 랭킹 19위등을 기록하고 있는 종합 대학교이다. U.S. 뉴스 & 월드 리포트 기준 68위를 기록 중이다.평가기관 | 국제 랭킹 종류 | 2021 | 2020 | 2019 | 2018 | 2017 |
QS | QS World University Rankings | 23위 | 22위 | 30위 | 38위 | 39위 |
QS Asian University Rankings | 5위 | 5위 | 9위 | 9위 | ||
QS BRICS University Rankings | 2위 | 2위 | 2위 | 2위 | ||
THE | THE World University Rankings | 24위 | 31위 | 27위 | 29위 | |
THE Asian University Rankings | 2위 | 5위 | 3위 | 2위 | ||
ARWU | Academic Ranking of World Universities | 53위 | 57위 | 71위 |
2.2. 중국인 재학생들의 수준
북경대는 합격률 기준 전세계에서 가장 들어가기 어려운 대학 TOP14라고 한다. 2019년 자료에 의하면 합격률은 13.07%이고 지원자는 19,320명, 합격자는 2,525명 정도였다고 한다. # 한 해 가오카오 응시생이 천만명이 넘으니 북경대의 중국인 학부생은 중국 전체 수험생 중 상위 0.03% 수준이라고 볼 수 있다. 대학원 입시의 경우, 수백만명에 달하는 입학시험(考研) 응시생 중 약 3만명이 북경대에 응시하여 이 중 2천명만이 합격할 만큼 북경대 학석박 모두 입학이 매우 어렵다.[9] 유학생은 베이징대학/유학생 입시를 참조.중국 내 명문고가 아닌 일반 고등학생들이 북경대에 입학하려면 각 지역마다 차이가 있으나[10] 보통 진(镇)[11]이나 구(区)[12]에서 중국 수능 가오카오 수석·차석·3등 정도로 해야 한다.
넷이즈(왕이) 신문에 의하면 시(市)에서 중국 수능격인 가오카오 성적 1-3위 안에 들면 북경대나 칭화대 합격이 쉬울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사실 이것은 오해라고 한다. 도시별로 천차만별로 도시 장원을 해도 같은 구에 있는 인민대에 갈까말까한 경우도 있다고 한다. 따라서 규모가 큰 도시가 아니면 시에서 1등을 해도 가기 어려운 경우가 부지기수다. 북경대에 합격하기 위해선 가장 첫번째로 타고난 천재적 학습능력과 두번째로 인내심, 세번째로는 운이 중요하다고 한다.
북경대나 칭화대학 합격명단에 이름을 올렸을 경우, 출신 고등학교에서 현수막을 설치해주고 고등학교 명예의 전당에 당연히 이름이 올라간다. 특히 중국 대학에 진학시키기 어려운 지방의 평범한 고등학교에서 북경대나 칭화대 합격자가 있을 경우에는 후배들에게 소식이 널리 알려진다. 지역 매체 인터뷰는 물론 방송 타는 것도 어렵지 않다. 주변 이웃들의 갑작스러운 축하 전화, 학부모들의 질투와 시기(또는 경외심), 공부비법 물어보는 사람, 각종 강연회에 초청받아 공부 비법 전수 등등 대학교 입학 전 많은 호사를 누릴 수 있다. 실제로 동네에서 잔치를 열어 축하해주기도 한다.[13] 근래 교육부의 지침에 따라 보통고등학교학생모집전국통일고시 수석으로 고등학교를 홍보하는게 금지되면서 매체나 방송에 타는 현상은 현저히 줄어들었지만, 출신 고등학교의 전설급 인물이 되는 건 여전하다.
대신 인민대부중같은 곳이나, 헝수이중학(衡水中学)같은 스파르타식 고등학교같은 경우, 매년 몇백명의 학생을 양성하기 때문에 베이징대학이나 칭화대학에 붙었더라도 가문의 영광이 될진 몰라도 고등학교 명예의 전당에 이름이 올라가는 것으로 그칠 뿐 특별한 대접을 받진 않는다.
매년 중국 대입시험인 보통고등학교학생모집전국통일고시를 치르는 학생이 900만 명에서 1,000만 명을 웃도는데 그중 장원을 해서 대학교 자유이용권을 가진 학생들이 지원하는 곳이 칭화대학이나 베이징대학이며, 2019년 베이징 보통고등학교학생모집전국통일고시 100% 반영 기준 750점 만점에 이과 680점, 문과 665점 이상이 입학 신청이 가능한 "마지노선"이다. 일부 지역은 750점 만점에 700점을 넘어야한다. 이보다 1점이라도 낮으면 예비에 이름이 올라가거나 추가 합격을 기대해야한다.[14]
물론 특기생제도로 체육특기생이나 미술특기생이 가끔 들어오기는 하지만 이들마저도 국제대회 수상경력 또는 국가대표급이 되어야 어느 정도 가산점을 받고 들어오는 것이다.
3. 역사
3.1. 1949년 이전
1898년 7월 3일 변법자강운동의 일환으로 설립되었다. 처음에는 경사대학당(京師大學堂)이란 이름으로 지어졌다.1912년 신해혁명으로 청나라가 무너지면서 중화민국이 들어서고 현재의 명칭으로 바뀌게 된다. 1917년 차이위안페이가 교장으로 취임하며 자유, 민주적인 학풍을 강조하고 체육을 중시하는 등 학교에 대대적인 개혁을 주도했으며, 이로써 베이징대학은 역사상 최고의 전성기를 맞이하게 된다. 또한 1920년 중국 대학 최초로 여성을 정식 학생으로 받아들였다. [15]
1919년 5.4운동에 재학생들이 적극 참여했다. 이 영향으로 현재 베이징대학의 공식 개교기념일은 5월 4일로 지정되어있다.
1935년 12.9 운동에 참여했으며 1937년 7월 루거우차오 사건이 일어나자 교수진 전원이 연명으로 항전을 호소했다. 이어 베이핑-톈진 전투로 베이핑(北平)[16]이 함락되자 중화민국에 의해 칭화대학, 난카이대학과 함께 창사임시대학(长沙临时大学)라는 이름으로 연합하여 창사(长沙)로 임시로 이전한다. 1938년에 세 학교는 쿤밍으로 다시 옮기며 창사임시대학은 국립서남연합대학(国立西南联合大学)으로 개칭한다.
1946년 10월 전쟁이 끝나자 베이징대학은 다시 베이핑으로 돌아온다. 당시 단과대학은 여섯 개로 예술, 자연과학대학, 법학, 약대, 공대, 농학이었다. 학생수는 3천명 규모였다.
3.2. 1949년 이후
중화인민공화국 건립 이후, 1952년 마오쩌둥에 의해 전국적인 소비에트 연방식의 대학개편이 단행되었다. 이 때 베이징대학은 기존 홍러우(红楼)에서 옌징대학(燕京大學)[17]이 있던 곳으로 학교 부지를 옮겼다. 그러면서 옌징대학과 칭화대학의 인문계열과 자연과학계열 학과와 교직원이 베이징대학으로 흡수되고, 반대로 옌징대학과 북경대의 공대는 칭화대학으로 흡수되고, 농대는 북경농업대학(北京农业大学)[18]으로, 법대는 북경정법학원(北京政法学院)[19]으로, 의대는 북경의학원(北京医学院)[20]으로 분리되는 등 과정을 거쳐 베이징대학은 순수 인문, 사회과학, 자연과학 대학이 된다.1965년 해서파관 사건으로 직격타를 맞았으며 문화대혁명 때 홍위병들이 최초로 조직되어 이곳을 점거했다.
1989년 천안문 6.4 항쟁 당시 베이징사범대학(北京师范大学)과 베이징대학 학생들이 시위의 주축이 되었다. 하지만 다들 알다시피 공산당의 입장에서는 6.4항쟁이 워낙에 흑역사인지라 이 여파로 1989년 베이징대학의 가오카오 컷트라인을 푸단대학보다 낮추었으며, 89학번부터 92학번 신입생들은 모두 1년동안의 군사훈련을 받아야했다.
1990년에 들어서 211공정, 985공정 등 중국 정부가 주도하는 일류대학 건설 프로젝트 일환에 들어갔다.
1998년에 개교 100주년을 맞이하여 기념관과 대형 도서관을 신축하였다.
2000년 4월 3일, 1952년 대학개편 당시 분리된 베이징의과대학(北京医科大学)과 합병되었다. 또한 공과대학, 예술대학등 학과를 신설하면서 베이징대학은 인문학, 예술학, 자연과학, 사회과학, 공학, 의학 등을 모두 갖춘 종합대학이 되었다.
2018년 개교 120주년을 맞이하였으며, 당시 시진핑이 방문하여 교내에서 큰 화제를 모았다.
4. 상징
북경대학교는 공식적으로 교훈을 지정하지 않았다===북경대학의 자유, 민주, 다원화적 정신을 몇글자로 요약하는건 불가능하다는게 정설이다. 이외에도 상징 동물, 식물, 꽃 등 역시 없는데, 이는 중국의 대부분 대학들의 공통사항이므로 크게 특이한건 아니다.
4.1. 교표
루쉰이 설계한 최초 교표 | 서남연합대학 교표 | 80년대 교표 | 현 교표 (2007년 제정) |
4.2. 교가
공식으로 인정된 교가는 없으나, 비공식 교가(代校歌)가 사실상 공식 교가 역할을 한다. 제목은 "옌위안칭(燕园情, 연원경)". 작사 저우바오핑(周宝平), 작곡 멍웨이둥(孟卫东).붉은 누각에 눈이 날리고, 한때의 영웅들, 선현들이 이미 썼던, 애국, 진보, 민주, 과학 (爱国进步民主科学).
옛날 긴 이별을 회상하며, 양관은 천 겹 (阳关千叠),
미친 듯이 노래하며 밤을 경쟁하고, 산하를 정리하며 백 년 약속을 기다린다 (收拾山河待百年约).
우리는 강남(중국)과 국경 북쪽에서 왔으며, 도시와 시골에 애정을 쏟는다 (我们来自江南塞北,情系着城镇乡野);
우리는 바다 끝과 하늘 끝으로 걸어가며, 삼산오악을 가리킨다 (我们走向海角天涯,指点着三山五岳).
우리는 오늘 동풍과 복숭아 꽃처럼, 청춘으로 숙제를 완성한다 (我们今天东风桃李,用青春完成作业);
우리는 내일 거목이 숲을 이루며, 중화를 세계에 놀라게 할 것이다 (我们明天巨木成林,让中华震惊世界).
연못에 대한 애정은 천천히 이어지며, 젊은이의 마음을 묻는다 (燕园情,千千结,问少年心事),
눈에는 미명의 물, 가슴에는 황하의 달이 있다 (眼底未名水,胸中黄河月)
옛날 긴 이별을 회상하며, 양관은 천 겹 (阳关千叠),
미친 듯이 노래하며 밤을 경쟁하고, 산하를 정리하며 백 년 약속을 기다린다 (收拾山河待百年约).
우리는 강남(중국)과 국경 북쪽에서 왔으며, 도시와 시골에 애정을 쏟는다 (我们来自江南塞北,情系着城镇乡野);
우리는 바다 끝과 하늘 끝으로 걸어가며, 삼산오악을 가리킨다 (我们走向海角天涯,指点着三山五岳).
우리는 오늘 동풍과 복숭아 꽃처럼, 청춘으로 숙제를 완성한다 (我们今天东风桃李,用青春完成作业);
우리는 내일 거목이 숲을 이루며, 중화를 세계에 놀라게 할 것이다 (我们明天巨木成林,让中华震惊世界).
연못에 대한 애정은 천천히 이어지며, 젊은이의 마음을 묻는다 (燕园情,千千结,问少年心事),
눈에는 미명의 물, 가슴에는 황하의 달이 있다 (眼底未名水,胸中黄河月)
红楼飞雪,一时英杰,
先哲曾书写,爱国进步民主科学[22]。
忆昔长别,阳关千叠,
狂歌曾竞夜,收拾山河待百年约。
我们来自江南塞北,情系着城镇乡野;
我们走向海角天涯,指点着三山五岳。
我们今天东风桃李,用青春完成作业;
我们明天巨木成林,让中华震惊世界。
燕园情,千千结,问少年心事,
眼底未名水,胸中黄河月。
先哲曾书写,爱国进步民主科学[22]。
忆昔长别,阳关千叠,
狂歌曾竞夜,收拾山河待百年约。
我们来自江南塞北,情系着城镇乡野;
我们走向海角天涯,指点着三山五岳。
我们今天东风桃李,用青春完成作业;
我们明天巨木成林,让中华震惊世界。
燕园情,千千结,问少年心事,
眼底未名水,胸中黄河月。
베이징대학 2019년 본과 졸업식 (2019) |
베이징대학 아카펠라 동아리(北京大学阿卡贝拉清唱社)에서 부른 아카펠라 버전 (2016) |
5. 베이징대학/학과
자세한 내용은 베이징대학/학과 문서 참고하십시오.6. 학사 제도
자세한 내용은 베이징대학/학사 제도 문서 참고하십시오.7. 캠퍼스 및 부속시설
자세한 내용은 베이징대학/캠퍼스 및 부속시설 문서 참고하십시오.8. 대학 생활
자세한 내용은 베이징대학/대학 생활 문서 참고하십시오.9. 출신 인물
북경대는 중국 대학이므로 당연히 동문은 중국인 위주이다. 다만 1993년 한중수교이후 북경대를 졸업한 한국인이 2022년 기준 이미 1만명을 넘어섰고 2005년부터 북경대 한국 교우회가 총장 축사를 받고 정식으로 활동중이다. Peking University (Beijing University) Korea라는 페이지가 있었으나 2023년 기준 사라졌다.- 중국인
- 보시라이: 한때 충칭의 성장(省長)이었으나 현재는 대몰락. 후진타오를 도청하려고 한 간 큰 사내.
- 리커창: 前 중국 총리. 한때 시진핑에 이어 서열 2위.
- 하오핑: 前 북경대 총장, 현 북경대 당위서기
- 공치황: 現 북경대 총장
- 자오러지: 공산당 중앙기율검사위원회 서기. 서열 6위.
- 천궁보: 1920년 철학과 졸업.
- 취추바이: 중국공산당 임시 중앙위원회 총서기.
- 타오시성: 법학과 졸업.
- 로지행: 광고학과 졸업. 前 베이징 텔레비전 기자, 現 성우.
- 린리궈: 물리학과 졸업.
- 투유유: 1951년에서 1955년까지 베이징의학원(北京医学院)[23] 약학과를 다녔다. 말라리아 치료제를 연구해 2015 노벨생리의학상을 수상했다.
- 우지한: 심리학, 경제학 전공. 비트코인 캐시의 아버지, 채굴업체인 비트메인의 ceo로서 코인계에서 엄청난 영향력을 지니고 있다.
- 리셴위: 조선족. 군인.
- 리옌훙: 전자계산학과 졸업. 바이두 창립자. 2018년까지 베이징대학에 1300억원을 기부했다.
- 리스스: CCTV 아나운서.
- 주이: 체육특기생. 2022년 873명의 우수체육특기생중 유일하게 북경대에 배정받았다.
- 동화: 중국의 웹소설 작가이자 영화 기획자. 대표작은 보보경심.
- 딩리런: 제17대 체스 세계 챔피언, 법학부 졸업.
- 외국인
- 정수일: 아랍어과 수석 졸업. 역사학자, 인류학자, 문화학자. 조선족 출신 북한 간첩으로, 체포된 후 옥중에서 전향서를 제출하고 사면되었다. 이후 한국문명교류연구소를 설립하여 소장으로 연구활동에 전념하고 있다. 간첩으로 활동하던 당시 "무함마드 깐수"라는 이름으로 활동하였다.
- 이상은: 철학부 졸업. 고려대학교 철학과 교수. 4.19 혁명때 교수단 시위를 주도하였다.
- 구천서: 국제정치학 전공. 前 대한민국 국회의원.
- 김영호: 국제학부[24] 졸업. 더불어민주당 제20, 21대 국회의원(서대문구 을).
- 최민정: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차녀이며 북경대 졸업 후 해군 장교로 복무하고 중국계 기업에서 근무한 다음 SK 입사.[25]
- 한민용: 예술학, 경제학 전공. 졸업후 JTBC 기자, 주말앵커로 근무하고 있다. 최근 홍콩 시위와 관련한 인터뷰에서 유창한 중국어 실력을 보여주었다. #
- 히밥: 사회학 전공. 아프리카TV 베스트 BJ이자 먹방 크리에이터.
- 마크 리퍼트: 중국어 석사 취득. 미국의 외교관으로 주한 미국대사를 지냈다. 주한 미국대사로 첫 해이던 2015년 피습당해 화제의 중심에 선 인물이 되었다.
- 저스틴 선: 역사학 전공. 가상화폐 시가총액 10위에 든 트론의 창시자이자 現 그레나다 WTO 주재 외교관.
- 윤영덕: 국제정치학과 박사 취득. 더불어민주당 21대 국회의원.
- 쭝궈아재: 중국과 관련된 컨텐츠를 찍거나, 중국의 제품 광고를 보고 직접 리뷰하는 유튜버.
9.1. 전, 현직 교수진/직원
- 차이위안페이: 대학 총장.
- 후스: 철학과 교수, 대학 총장 역임.
- 뤄원간: 법학과 교수.
- 구멍위: 독문과, 법학과, 경제과 교수.
- 웡원하오: 지질학 교수.
- 타오시성: 사회과 교수.
- 리스쩡: 생물학과 교수.
- 우징헝: 학감.
- 마오쩌둥: 1910년대 후반에 도서관 보조사서로 일했다.
10. 정보
- 북경대가 중국 최초의 대학이라는 주장이 북경대 관련 언급은 물론이고 역사 관련 서술에서도 많이 보이지만 이는 오류다.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직후 역사학에 대한 연구가 미비한 상황에서 정치적인 이유로 북경대를 띄워주기 위해서 만들어낸 신화로 중국 최초의 대학은 1888년 개신교 선교단체가 만들어낸 상하이성요한대학교(1952년 폐교되고 학부는 다른 학교에 흡수통합)이다. 국립으로 한정지어도 1895년 북양대학당에 밀린다.
- 칭화대학과의 라이벌 구도가 매우 강하다. 두 학교의 재학생들은 서로를 隔壁(거비, 직역하면 바로 옆 이웃이란뜻)[26]이라고 부르며, 매일 어떤식으로든 꼬투리를 잡아 서로를 까내리기 바쁘다. 하지만 북경대 출신 교수가 칭화대에서 강의를 하고 칭화대 출신 교수가 북경대에서 강의를 하는 상황도 많기 때문에 칭화대랑 북경대의 네임벨류나 레벨 비교는 사실상 무의미하다. 심지어 상기에 언급된 것 처럼 2022년 가을학기부로 같은 하이뎬구 소재의 북경대, 칭화대, 북경외대 3개교(校) 간의 강의도 부분 공유하기로 결정되었다. 북경대 학부생이 칭화대 학번을 부여받는 것도 가능해졌다.
- 중국은 국가 차원에서 동절기때 북방 지역에 난방을 일괄 공급하는데, 베이징의 경우 매년 11월 15일 공급을 시작하지만 베이징대학, 칭화대학, 베이징 동물원 이 3곳만 예외로 보름 일찍 공급한다고 한다.
- 교내 전체 구역이 금연이다. 교내 어디에서도 담배를 팔지 않으며, 금연 문구가 써있는 재떨이[27]가 캠퍼스 내에 드문드문 있다.
- 학부생은 견습당원까지 포함할 경우 15%가 공산당원이며 연구생 및 교수들은 절반 정도가 공산당원이다. 본 대학은 다른 211, 985공정 종합대학과 비교해도 당원비율이 특별히 높지는 않은 편이다.
10.1. 국제 교류 협정
- 북경대는 영국 런던 정치경제대학교(LSE) 석사 복수학위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
- 북경대 광화관리학원(光华管理学院) MBA와 미국 아이비 리그 코넬 대학교 MMH 석사 복수 학위를 취득 가능하다. # 다만 미국 대학 학위 등 미국과의 교류협정은 미국과 중국 교육부 지침상 많이 감소하고 있는 추세다. 2020년대 들어서 중단 및 폐지된 것도 많다.
특별전 「북경대학과 와세다대학 1882-1921 와세다대에서 배운 근대 중국의 선구자들」 개최[28] |
북경대와 오랜 교제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중국 공산당의 창시자 중 한 명인 리다자오(李大钊)를 비롯한 중국의 초기 혁명가들이 와세다(早稻田)대에 유학했고, 북경대 전 총장 천자이(陳嘉洱) 원사, 현 당서기 민웨이팡(閔維方) 교수, 총장 쉬즈훙(許智宏) 원사 등이 와세다대에서 명예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2005년 북경대학 신문망
- 북경대는 와세다대학(早稲田大学)과 학사, 석사, 박사 복수학위 프로그램을 제공하여 와세다와 가장 교류가 많은 대학이다. 북경대 신문[29] 1982년 학술협정을 체결해 복수학위 등을 활성화하고 2003년부터는 공동명의의 연구도 지속 진행하고 있을만큼 협력관계를 구축했다. 북경대 국관 공식 자료 북경대 국관 공식 기사
- 북경대 와세다 프로젝트: 해당 프로젝트는 매년 학교에서 15명의 학부생을 선발하여, 3학년 때 일본의 와세다대학으로 파견하여 1년 동안 학습하게 하며, 4학년 때에는 북경대로 복귀하도록 한다. 동시에 와세다 대학 역시 많은 학부생을 국제관계학원(国际关系学院)으로 파견하여 교환학생으로 활동하게 한다. 졸업 시에는 북경대와 와세다대학의 두 학사 학위를 수여받게 된다. 또한 중일 협력 석사생 양성 계획과 와세다대학과의 복수 박사 학위 프로그램도 운영되고 있다. 따라서 북경대-와세다는 학석박 학위 전부를 대상으로 복수학위를 제공한다. 중국청년신문 기사: 북대 조도전 연합 배양 학생 소후 기사 일본 정부 문부과학성 자료
- 고려대학교까지 한중일 3국 협력 사무국의 주도로 한중일 북경대-고려대-와세다대 3개교 간 CAMPUS Asia ENGAGE를 구성하여 학석박 교류도 활성화되어 있다. 중문 한자로는 아주교원(亚洲校园)이라고 한다. # 그 외 CAMPUS Asia 내 ASEAN 국가 난양이공대학과도 교류가 많다. 매일경제: 한중일 대학생, 공동교육 프로그램으로 ‘학위 취득 가능’ 고려대학교 기사
- 영국의 퀸 메리 런던 대학교와 컴퓨터공학 복수 석사학위를 운영중이다.
- 캐나다의 퀸스 대학교의 스미스 경영대학과 복수 학위를 운영중이다.
[1] 서문의 위치.[2] 북경대 물리학과 79학번[3] 북경대 역사학과 78학번[4] 전임 총장이다[5] 한편 중국 정부 베이징교육부는 2022년 가을학기부로 칭화대학(清华大学), 본교 북경대학(北京大学), 자매학교 북경외대(北京外大) 상기 동(同) 베이징시 하이뎬구 소재 3개교 간의 본과 (학부) 과정을 부분 공유하기로 결정했다. 칭화대는 40개 우수과정, 294명, 북경외대는 13개 우수과정, 29명. 총 323명의 북경대생이 칭화대와 북경외대에서 강의를 수강하게 된다. 단, 북경대의 4년제 학사 재학생만 칭화대와 북경외대에서 강의를 수강 가능하며, 교환학생 등은 수강이 불가능하다. 베이징대학 수강신청 시스템에서 칭화대 강의를 신청하는데 성공한 북경대생은 칭화대로부터 수강 전용 학번을 부여받는다. 칭화대와 북경외대 모두 블렌디드 강의 형식으로 온오프라인 강의가 병행되었으나 2023년부로 전면 대면 강의를 실시한다. 베이징대학 교무처: 칭화대 베이징외국어대학 부분 우수 과정 본교 본과생 대상 개방 수강에 대한 통지(清华北外部分优质课程面向我校本科生开放选课的通知)[6] 대만 타이베이의 국립타이베이대학(国立台北大学)의 약자도 이렇게 쓰고 일본에서 홋카이도대학(北海道大学)을 호쿠다이(北大)로 줄여쓰는 한자이기도 하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중국에서 北大라고 쓰면 베이징대학이라고 생각하고 대만에서 北大라고 쓰면 국립타이베이대학이라고 생각하고 일본에서 北大라고 쓰면 홋카이도대학이라고 생각한다.[7] 리처드 도킨스 같은 경우엔 자신이 옛 사람이라며 페킹이란 표현을 고집한다.[8] 비슷하게 칭화대는 현대 중국어 병음은 Qinghua지만 Tsinghua University라고 표기를 하고, 한국의 예를 들자면 부산(Busan)에 있는 부산대학교도 Pusan National University라고 적고, 경북대학교(Kyungpook National University), 전남대학교(Chonnam National University)도 마찬가지이다.[9] 중국에서는 대학원이 학부의 필수 연장선이라는 인식이 강해 대부분 학사 졸업생이 대학원 진학을 준비한다. 자세한 내용은 대학원 문서 참조.[10] 중국 대학 입시의 지역별 할당제 때문. 보통고등학교학생모집전국통일고시 문서 참조.[11] 명목상으로는 우리나라 동(洞) 또는 면(面)급에 해당하는 행정단위이나, 중국은 시(市) 하나의 규모가 어마어마하기 때문에 (예를들면 충칭시같은 극단적인 사례) 하위 행정구역인 진 역시 인구로는 몇십만 이상이 거주하는 지역이니 규모로 따지면 우리나라 시(市)급 이상이다.[12] 우리나라의 일반구에 해당하는 단위이며, 역시 인구가 몇십만에서 백만급(!)이다.[13] 각 성(省)급의 장원이 되면은 유력매체에서 사진과 출신 고등학교, 점수를 정리한 후 공개하며 이들이 지원한 대학교까지 또는 대학교 졸업 후 행보까지 지속적으로 쫓아 보도한다. 그냥 입지전적인 인물로 만들어주는 것이다.[14] 서울대와 북경대의 학부 정원은 약 16,000명으로 거의 비슷하지만 우리나라 수험생은 연간 50만명 수준인데 반해 중국 수험생은 연간 1,000만명에 달한다.[15] 같은 해에 남경고등사범학교에서 먼저 여성을 학생으로 받아들였으나, 남경고등사범학교는 "대학교"가 아니었다.[16] 베이징의 구 명칭. 한국식 한자음으로 북평.[17] 1919년에 세워진 미국과 영국 계열의 그리스도교 대학이며 1949년 사실상 폐교되었다. 1952년까지 교직원과 학생이 일부 남아있었다.[18] 현재 중국농업대학(中国农业大学).[19] 중국정법대학(中国政法大学)의 전신.[20] 1985년 베이징의과대학(北京医科大学)로 개명.[21] 흔히들 루쉰을 소설가로만 알고있지만 그는 잡지나 소설 표지도 직접 디자인할 정도로 미술적 조예도 상당히 깊다. #[22] 간혹 이 8글자(애국, 진보, 민주, 과학)를 비공식 교훈으로 쓰기도 하는데, 그리 널리 인정되진 않았다.[23] 現 베이징대학/의학부(北京大学医学部)의 전신. 1952년 베이징의학원으로 분리되었으니 입학 당시에는 북경대생이었다.[24] 現 국제관계학원(国际关系学院)[25] 아버지 최태원 씨도 북경대 명예이사로 2007년부터 베이징포럼에 초청되었고 남편도 중국계 미국인일 정도로 중화권과 인연이 깊다.[26] 지도를 보면 알겠지만 실제로 두 학교는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다. 물론 서로 완전히 붙어있는건 아닌데다가 북경대 동문에서 칭화대 서문까지의 거리<칭화대 서문에서 기숙사, 강의동이 밀집한 구역까지의 거리일 정도로 칭화대가 워낙 크기 때문에 말만 "옆집"이지 실제로는 둘 사이를 두 다리로 오가려면 매우 무리다.[27] 아무래도 완전히 담배를 금지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판단해서인 듯.[28] 대학 측에 의하면, 북경대와 와세다대학 간의 교류 역사는 유구하며, 1905년에 와세다대학이 중국인을 위한 교육 기관인 ‘청국 유학생부’를 설립한 시기부터 북경대와 와세다대 양교는 사람을 통한 연결고리를 갖기 시작했다. 해당 전시에서는 와세다대학과 북경대의 우호 역사를 오쿠마 시게노부를 비롯한 인물들의 중국관, 청나라 유학생부의 교육, 20세기 초 와세다에서 유학하고 중국의 근대화 및 북경대의 성립과 발전에 기여한 인물들(쑹자오런, 리다자오, 첸쉰퉁, 주시주, 탕쭝비 등)의 세 가지 시각에서 해석했다. 또한 오쿠마에게 보내진 쑨원의 서한, 주시주 등의 졸업 앨범, 탕쭝비 등이 글을 남긴 졸업 기념 책 『홍적첩』 등, 와세다대학이 소장한 중국 혁명가 및 개혁자들의 귀중한 자료도 함께 소개했다. 해당 전시는 북경대 총장이 직접 참관하고 # 북경대 교관(역사관), 북경대 국제합작부(협력부)가 관여했다. #[29] 중화권 국립 북경대 및 북경외대 총서기, 총장을 역임한 하오핑이 2023년 직접 북경대에서 와세다대학 교수진에게 명예박사 학위를 수여하는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