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1-22 15:13:18

북시탈tv

북시탈tv
파일:북시탈tv 메인.png
멤버 김강유[1] 정하늘[2]
국적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직업 유튜버, 프리랜서
회사원 대학생
방송 시작일 2020년 2월 27일[3]
병역 북한 육군
상급병사 약초[4]
북한 육군
초급병사[5]
구독자 8.09만명 (2022년 8월 17일 기준)
조회수 11,673,276회 (2022년 8월 17일 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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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특징
2.1. 공통2.2. 김강유2.3. 정하늘
3. 영상 조회수 TOP 154.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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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북한 사회와 군에서 겪었던 다양한 경험담들과 에피소드들을 진실되고 재미있는 영상으로 찾아 뵙겠습니다.
유튜브 소개

2020년 2월 27일부터 북한 사회와 북한군에 관련된 영상을 업로드하는 군튜버.

채널 이름인 '북시탈tv'는 북한의 각시탈시탈을 합친 말이다.[6]

2. 특징

2.1. 공통

  • 둘 다 북한이탈주민 출신이며 군인 신분으로 비무장지대를 넘어 탈북한 매우 특이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 2020년 기준, 한국에 정착한 북한이탈주민의 수는 대략 2만 7천여명이나[7] 그 중 절대다수는 압록강이나 두만강을 건너 중국을 통해 빠져나오지, 남북한 사이 DMZ를 직접 통과하여 탈북한 사람의 수는 손가락으로 꼽을 수 있을 만큼 희귀하다. 북한의 우호국인 중국 쪽과 달리 군사대치 중인 휴전선은 감시가 심할 뿐만 아니라, 지뢰와 고압선 철조망 등 위험 요소들이 가득하기 때문이다.[8]
  • 일반적인 영상 촬영시엔 대한민국 국군육군공군구형 얼룩무늬 전투복 중고에서 명찰 등 부착물과 견장대를 제거하여 그냥 처음부터 견장대 없는 해군용 얼룩무늬 구해서 입으면 될 걸 사서 고생하였조선인민군 육군 하전사 계급장을 달고 출연한다. 게스트 초대시엔 보통 사복을 입는다. 예외적으로 TV러셀과의 합방에서는 러셀이 한국 육군 장교 출신이라는 이유 때문인지 저 유사 인민군 전투복(?)을 입고 나왔다. 국군 구형 얼룩무늬 전투복을 입은 것은 김정은 시대에 새로 지급된 북한 육군 전투복이 이를 흉내내서 만들어졌기 때문에 대체품으로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에서 위장무늬가 들어간 북한군 전투복을 볼 수 있으며, 대외적인 공개가 늦었고 보급의 문제가 있었을 뿐 북한군도 얼룩무늬를 육군에 꽤 오래전부터 지급해 왔다. 현역 군인이나 소집된 예비역이 아닌 사람이 현용 국군 디지털패턴 전투복을 착용하면 군복 및 군용장구의 단속에 관한 법률 위반이 되지만, 더 이상 사용되지 않는 구형 얼룩무늬 전투복은 법적으로 군복이 아닌 사복이기 때문에 아무 문제가 없으며, 현용 군복류라도 개인이 해당 군에 몸담았던 시절 지급받았거나 정당한 루트로 대여한 것 등을 문화 행사 등에 착용하는 것도 문제가 없다. 복귀 이후엔 군복을 입지 않고 있다.
  • 북한에서는 둘 다 중간 계층인 동요계층에 속했지만, 실제로 북한 내에서는 세부적인 계급이 워낙 많고 복잡해서 실질적으로는 출신 성분이 굉장히 좋은 편에 속했다고 한다. 둘 다 아버지가 당세포의 책임자인 세포비서였다. 당세포란 조선노동당 최하위 말단 기층조직을 유기체의 세포에 견주어 이르는 말로, 당세포는 보통 당원이 5명부터 30명까지 있는 단위에 조직하도록 되어있다. 북한군은 최전방에 복무하는 육군 민경 부대의 경우는 탈북을 최대한 막기 위해 출신 성분을 좀 따져 뽑기 때문에, 좀 어설프게 좋은 출신 성분이면 민경 부대로 갈 가능성이 크다.
  • 둘의 관계는 엄밀히 따지면 정하늘이 김강유보다 높다. 정하늘이 1살 연상에 군대도 정하늘이 1~2년 가량 일찍 입대했다. 다만 계급은 후술할 사유로 김강유가 진급이 더 빨라서 김강유의 계급이 더 높았다. 그렇다고는 하나 군대에서 나이와 입대 년도를 무시하고 오직 계급으로만 서열을 매기는 건 장교밖에 없으며 두 사람 다 사병이기 때문에 계급은 별 의미 없다. 반대급부로 둘 다 장교였더라면 되려 김강유가 정하늘보다 높은 게 되었을 것이다. 물론 탈북하여 북측에서는 군적이 말소되었고, 남측에서는 북한에서의 경력을 인정하지 않으니 양쪽에서 모두 그냥 민간인이 되어버린 현 시점에선 걍 농담 삼아 따질 뿐 크게 의미는 없다.
  • 두 사람의 이름은 모두 가명이다.
  • 둘 다 가짜사나이 2기에 지원했다.[9] 다만 탈북민들이다보니 보안상 문제로 둘 다 탈락했다.

2.2. 김강유

  • 북한 내에서 정치적으로 엄격히 관리되는 평양시[10] 출신이다. 게다가 원래 살았던 곳이 낡은 집이 많은 평양 변두리가 아니라 나름 아파트가 많은 동네다. 실제로도 집에 여러가지 가전제품이 구비되어 있었을 정도로, 먹고 사는 데는 크게 문제가 없었다고 한다. 한국 군대도 군복무 기간이 길때 말년 병장들을 작업 내보내 봤자 분대장들보다 고참이라 놀고 먹기 때문에 행보관이나 주임원사들이 농촌출신 병사들을 따로 잡아다가 열외 시켜서 더덕이나 도라지 산나물 캐오라고 많이 시켰다. 북에서는 뇌물바쳐서 하는 특례이지만 남한에서는 고생시키려고 하던짓.
  • 남한으로 따지면 특목고와 비슷한 북한의 교육시설인 금성학원에 다닌 경험이 있지만, 졸업은 못 했다고 한다. 참고로, 금성학원을 졸업하면 군복무를 3년만 하고 전역할 수 있는 특혜를 받는 것이 가능한, 엘리트만 갈 수 있는 곳이다.
  • 강원도 부근에서 복무했다고 한다. 2016년 9월 29일 탈북했으며, 탈북 당시 몸무게는 45㎏였다.

  • 북한 육군에서 '약초병' 이라는 매우 특이한 비상설보직을 배정받아 탈북 전까지 복무했다. 근무 중에 산에서 산삼을 발견했는데, 이를 몰래 숨겨두었다가 대대장, 보위부원, 안전부원 등에게 뇌물로 바치고 약초병 보직을 받았다고 한다. 약초병은 말 그대로 에 가서 약초 캐고 다니는 게 전부이며, 훈련을 비롯한 중대 활동도 거의 안 하고, 자신이 배속된 간부 한사람 외엔 누구의 지시도 받을 필요가 없기 때문에 고참 병사의 갈굼을 받을 일도 없고 그 간부도 약초만 잘 캐오면 그 이외에는 전혀 터치를 하지 않으므로 혼자 행동할 수 있어서 매우 편한데다가 같은 이유에서 간부와의 유착관계 덕분에 진급도 빠른 등 최고의 꿀보직이었다고 한다.[11] 심지어 군생활 하면서 여자친구도 사귈 수 있었다. 또한, 이런 보직이었기 때문에 탈북을 준비하는 것도 별 지장이 없었다. 약초 좀 캐주고 이런 유착관계가 형성되는게 좀 이상하게 들릴수도 있는데 이건 간부가 본인이나 주변에 몸이 아픈 사람이 있어서 그런게 아니라 그걸 장마당에 넘기면 거금을 벌 수 있기 대문이다. 즉 간부에게 떼돈을 벌어다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렇게 큰 편의를 봐주는 것이다.
  • 약초병 보직을 받기 전엔 자주포으로 복무했는데, 선임들과 자주포 연료를 빼돌려 팔아먹고 대신 물을 채워넣어서 눈속임을 한 적이 있는데, 이게 무려 6대나 된다고 한다. 구독자들은 "적 자주포 6대를 사용불능으로 만든 영웅에게 보로금[12]이 너무 짠 게 아니냐"는 우스갯소리를 하기도 했다.[13] 어떻게 이런 행위가 가능할까 싶겠지만, 북한군 사정상 예비 연료라는 게 존재하지않고, 그에 따라서 전시에 사용할 연료만 지급하기 때문에 애초에 기동 훈련조차 하지 못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평시엔 가동할 일이 없고, 빼돌려도 들키지 않았던 것이다. 물론 어디까지나 본인의 썰이므로 진실은 저 너머에...[14]
  • 탈북을 결심하고 그날 캔 큰 산삼을 팔려고[15] 무려 80리를 걸어서 금강군의 시장에 나갔다가 경무관한테 딱 걸리는 바람에 잠시 수감되었다고 한다. 이 때 절망에 빠져서 자살하려고 이전에 구매해뒀던 쥐약을 8봉지나 먹었다고 한다. 이전까지 간부들에게 잘 보이면서 군생활을 잘해왔는데, 이번 사건으로 인해 남은 군생활 6년 동안 엄청나게 시달릴 게 뻔했고 미안함이 겹쳐서 그랬다고 한다. 근데 운 좋게도 며칠 전에 전역했고 친하게 지냈던 소좌뇌물을 써준 덕에 처벌을 받지 않고 풀려났다고. 그래서 산삼은 소좌에게 선물로 주었고, 다음 날 곧 바로 탈북했다. 먹은 쥐약 때문에 언제 죽을지 모르는 상황이라, 의료기술이 발달한 한국이라면 충분히 자신을 살려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 곧바로 탈북했다고 한다. 막상 탈북하고 나서 건강검진을 받아보니 두드러기가 조금 난 걸 빼면 별 이상이 없었다고 하는데, 열악한 북한 사정상 그가 먹은 쥐약이 애초부터 불량품이거나 혹은 유통기한 초과로 변질되어 성능이 저하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 한국에 정착하고 6개월간 공부해 정치외교학과에 합격했으나 여타 탈북민과 학교 선배들의 만류로 그만두었다. 학비와 생활비를 벌면서 생활하기가 워낙 힘들고 막상 졸업해도 큰 메리트가 없다는 이유로 만류했는데, 실제로 정외과는 공시 준비할 거 아니면 그닥 취업에 득이 안 되는 학과다.
  • 2019년에 이제 만나러 갑니다에도 자주 출연한 바 있다. 이 때는 성을 빼고 강유라는 이름으로 출연했다.
  • 유튜버 까레라이스TV에 출연해 탈북 이전 정확한 고향 주소와 학력을 언급했다. 주소는 평양시 동대원구역 동신1동 37반, 학력은 동대원중학교 졸업. 북한은 중학교가 6년제라 고등학교가 존재하지 않는다. 한국인들이 서울을 그냥 서울이라고 하지 정식명칭인 서울특별시라고 꼬박꼬박 챙겨부르지는 않듯이 북한에서도 주소를 말할 때 직할시라는 표현은 쓰지 않으며, 본인도 '평양시'라고 언급했다.

2.3. 정하늘

  • 북시탈tv 로서 활동할 때는 항상 썬글라스를 착용하고 있기 때문에 김강유와 구분하기 매우 쉽다.
  • 함경남도 함흥시 출신이며 청소년 시절, 축구 선수로 활동했다. 하지만 북한 내 최고 엘리트 체육단인 4.25 체육단 입단에는 실패해서,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입대했다. 탈북을 한 지금도 축구를 좋아해서 조기축구팀에서도 매주 축구를 하고 있으며, 축구화를 모으는 것도 취미라고 한다. 북한에서는 축구화도 부유층들만 살 수 있는데, 한국에서는 축구화를 많이 구입 할 수 있어서 기분이 좋다고...
  • 2012년탈북을 했을 그 당시의 몸무게는 겨우 43kg의 저체중이었고 영양실조까지 걸렸지만, 대한민국에 정착한 현재는 60kg가 넘는다고 한다. 참고로 국정원에 인계되어 조사를 받고 하나원에서 생활하는 동안에 무려 40kg가 더 쪄서 당시 몸무게가 70kg도 훨씬 넘어갔었다. 빠르게 살이 찐 이유는 국정원 조사요원이 옆에서 "정선생? 이거 한 번 마셔볼래?" 라면서 얼음을 넣은 콜라를 한 번 마셔보라고 줬는데 너무나도 맛있어서 질리도록 많이 먹는 바람에 살이 쪘다고 한다. 그래서 나중에는 턱걸이같은 운동도 하면서 다이어트를 했다.#
  • 탈북 동기가 재미있는 게, 2011년 김정일이 사망하자 소식을 접하고 "그럼 조국통일은 어떻게 되는 건가?" 라며 멘붕에 빠져 탈북을 생각하게 되었다고 한다. 한국인의 입장에서야 '이게 무슨 소리인가?' 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무것도 모르는 채로 태어나 인격과 지성이 형성되는 어린 시절에 자신이 태어난 국가의 정부가 지정한 교육을 받으며 자라는만큼 세뇌의 영향을 강하게 받을 수 밖에 없다. 그나마 한국 등 선진국들이야 신문, TV, 라디오, 인터넷 등의 다양한 매체들로 개인이 알아서 새로운 정보들을 계속해서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에 국가 교육에 마냥 휘둘리지는 않지만, 북한은 그런 것이 일절 없는 폐쇄적인 사회이기 때문에 조선로동당이 지정한 교육 외의 다른 정보를 받을 길이 없으니 북한에서 나고자란 인민들은 정말 그 정보 외의 다른 정보를 전혀 모르는채로 평생을 살 수 밖에 없다. 즉 의외로 많은 수의 북한 인민들은 조선로동당의 악성선전대로 남조선에선 모든 사람들이 압제자 미국과 그들에게 충성하는 매국노들에게 구타와 모욕, 수탈 등을 수시로 당하며 헐벗고 굶주린다고 진심으로 믿고 있다는 이야기다.[16]
  • 그리고, 탈북을 결심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유투브 채널 주성하 tv에서 밝혔는데, 군생활이 너무 춥고 배고픈데다 구타까지 당하는 것이 힘들고 고된 것도 있었지만, 남한에서는 군복무가 2년 정도로 짧은데 북한에서는 10년 가까이 너무 긴 시간동안 군복무를 해야 하는 것이 불공정하다고 생각했고 마침 남한에서 날아온 삐라를 주워서 읽어보고 힘든 군생활이 싫어서 나가야겠다고 결심한 것이 계기였다. 그래서, 자신을 심하게 괴롭히던 나쁜 선임과 같이 보초 근무를 섰을 때 대낮부터 선임이 근무태만으로 "나 한 숨 잘테니까 누가 오면 깨워라." 라는 식으로 자고 있는 사이에 선임의 총과 총알까지 몰래 뺏어서 탈북했다고 한다. 그 나쁜 선임은 자신 때문에 총도 잃어버렸으니, 보나마나 당연히 강도높은 처벌을 받아서 죽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항상 자신을 못 되게 굴고 심하게 괴롭혔던 선임이라서 전혀 미안하지도 않다고 한다. 사실, 그 나쁜 선임의 가혹행위를 견디지 못한 것도 탈북을 선택했던 이유였으니 당연한 것이다. 그래서, 개인 유투브 방송에서 그냥 지나가는 식으로 그 선임에게 "너한테는 전혀 미안한게 없지만, 그저 알아서 무사히 살아있길 바란다. 억울하면 너가 한국으로 탈북해서 나랑 한 판 붙자." 같은 식으로 농담을 하기도 했다.#
  • 게다가, 정하늘 본인은 농민과 노동자 집안이고 최전방 민경부대에서 힘들게 춥고 배고픈 환경에서 군복무를 하고 있지만 자신과 같은 민경부대에서 군복무를 하는 병사들은 당 간부나 고위장교 집안 출신의 자식들은 단 한 명도 없었고 몰래 편한대로 빼낸다는 병역비리가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억울했다고 한다. 그래서 "잘 사는 놈들은 그저 따뜻한 평양에서 꿀이나 빨고 있구나!" 라는 생각에 너무 분노가 치밀었다고 한다. 게다가 어린 시절부터 장마당 세대라서 당으로부터 배급을 받은 것도 별로 없었던데다 너무 갑갑하고 경직된 북한의 사회환경 때문에 김씨 왕조에게 단 하나도 충성심이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김정일이 죽었을때도 억지로 우는 척을 하느라 힘들었다고...
  • 탈북할 때 휴전선을 건너온 만큼 어마어마하게 고생을 했다. 시기를 보면 태풍 카눈이 왔을 당시에 탈북한 것으로 추정되는데, 태풍 덕분에 전기철조망[17]들이 망가져서 수월하게 넘어갔지만 반대급부로 태풍 때문에 비무장지대에 있던 강이 어마어마하게 불어나서 원래 계획한[18] 곳으로 가지 못해 돌아가야 했으며, 북한 쪽의 철책을 넘어가자 본인의 상관이었던 소초장이 "하늘아!! 하늘아!!" 라고 외치는 소리가 계속 들려왔고 공포에 질려서 갈대밭에 몸을 숨기고 납짝 엎드려 있었는데 한참 뒤에 북한군의 "서라! 섯! 섯! 섯! 서지 않으면 쏜다!" 경고 구령이 근처에서 울려퍼졌고 결국 패닉에 빠져서 미친듯이 내달렸는데 직후 머리 1m 위로 실탄이 계속 날아오는 매우 공포스러운 경험을 하고는 다리에 힘이 풀려서 그 자리에서 널부러져 버렸다고 하는데, 본인이 키가 컸다면 그 실탄에 맞았을 것이라고 했다.
  • 사실, 북한군이 경고 구령을 외쳤다는 것 자체가 그 시점에서 이미 대상자의 위치를 어느 정도 파악하는데 성공했다는 뜻이다. 하지만 무성한 갈대밭 속에서 위장효과를 지닌 군복을 입고 있었기 때문에 은폐가 상당히 잘된데다가, 마침 날이 어두워져서 가시거리가 매우 짧아졌기 때문에 말 그대로 대략적으로만 파악했을 뿐이었고, 정확히 찾아낸건 아니였다. 게다가, 북한군도 지뢰 때문에 차마 깊숙히 쫓아갈 엄두가 안 났기 때문에 대략적으로 사격을 가한 것이다.
  • 이 지경까지 되자 정하늘은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거의 뜬 눈으로 밤을 지샜는데, 어느 순간 무언가가 자신에게 접근하는걸 감지하고 추격조가 찾아온줄 알고 본인이 소지한 수류탄 안전핀 중 한 개[19]를 뽑고난 뒤 언제든지 자폭할 준비를 한 채로 엎드려 있었다. 결국 뭔가가 인기척을 내면서 나타났는데 이 때 정하늘은 "아! 들켰다! 이제는 꼼짝없이 죽었구나!" 라고 생각했는데 그 때 나타난 것은 새끼 고라니였다고... 안도의 한숨과 울화통이 동시에 치밀어서 들고 있던 총으로 고라니를 쏴버릴까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총 소리를 내면 북한군이 추격해 올 것이 뻔했으므로 억지로 숨을 죽이고 참았다고 한다. 그런데 나중에 탈북 당시 옆 초소에서 근무하고 있던 장병이 그의 인스타그램으로 보낸 DM에 따르면, 북한군 추격조가 군견을 데리고 DMZ로 들어왔다는 사실을 나중에 알려줬다고 한다. 어떻게 보면, 고라니가 정하늘을 살렸다고 볼 수도 있다. 만약에 고라니가 없었다면 그대로 잠이 계속 들었을 것이고, 군견을 동원한 북한군에게 금방 발견되었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 그 이후 계속 남하하면서 남한 쪽의 철책 앞에서 항복의 표시로 가져온 흰색 비닐봉지를 흔들면서 귀순했다. 그리고, 남한 병사들도 똑같이 흰색 깃발을 흔들면서 싸울 의사가 없다는 것을 알려준 뒤 직접 다가와서 "귀순하러 오셨습니까?" 라고 물어봤다고 한다. 근데 젊은이 특유의 치기가 있다보니 자존심 때문에 비닐봉지를 꺼내들기 직전에 도망치느라 찢어진 옷을 남한 병사들에게 보여주기가 싫어서 귀순하기 직전에 다 찢어진 옷과 카라 깃을 꿰메고 다가가서 귀순 의사를 표시했다고 한다. 지금 생각해보면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그렇게 한시가 급한 상황에서 한가하게 바느질로 옷을 꿰맬 생각을 했다니 정말 미친 생각이었다고...
  • 처음으로 국군 병사들을 마주해서 귀순 의사를 밝힌 뒤 무장해제를 당했을 때, 상태가 좋은 군복으로 깔끔하게 입은 모습에 피부 혈색도 좋아보였고 제대로 된 소총까지 갖춘 중무장한 상태에다 자신보다 키도 크고 덩치도 더 큰 국군 병사들만 모여있는 모습을 보면서 완전히 심리적으로 압도당하는 기분이었다고 한다. 반대로, 자신은 삐쩍마른 43kg의 영양실조였던 상태였으니 더더욱 그랬을 것이다.#
  • 탈북할 때 AK 소총 1정과[20] 실탄, 수류탄[21] 등을 소지한 채로 탈북하였다. 다만 휴전선을 넘어 국군을 접하고 나서야 싸울 의지가 전혀 없다는 것을 어필하기 위해서 무기를 강에다 버렸다고 한다. 다만 이 무기들이 나중에 국군에 의해 회수됐는지 국정원에서 정보료 명목으로 추가적인 보로금을 더 받았다고 한다.
  • 황해도에서 군복무를 했으며, 정확한 복무지는 밝히지 않았지만 탈북 당시 귀순한 지역은 파주시였던 걸로 보아 아마도 개성시에서 복무를 한 것으로 보인다.
  • 머리가 긴 이유에 대해서는 "북한군에 복무했던 시절에는 머리를 기를 수가 없어서 머리를 길러보고 싶었는데, 탈북 후 머리를 기를 수가 있어서 머리를 기른 것" 이라고 언급했다. 사족이지만 북한은 군인이 아니더라도 매우 보수적인 사회 풍념상 장발 자체를 엄격히 단속하기 때문에, 북한에서 정상적으로 제대했을지라도 장발을 하긴 어려웠을 것이다.
  • 한국에 온 후 대학을 가기 위하여 아르바이트를 병행했는데, 이 때 해본 아르바이트가 셀 수 없이 많다고 한다. (카페 아르바이트는 안 해 봤다고 한다) 비 오는 날 배달을 하다가 미끄러져 택시 바퀴 밑에 들어간 적도 있고, 여름에 건설 현장에 나가서 바지에 소금이 생길 정도로 일을 했다고 한다. 지금은 프리랜서로 활동하고 있다고.
  • 대한민국으로 탈북해서 가장 좋은 점은, 어디든지 쉽게 여행을 갈 수 있다는 것과 무엇이든지 자유롭게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는 환경이 너무 좋다고 한다. 그리고, 북한과는 다르게 한국에서는 언제든지 전기를 쓸 수 있고 불빛이 밝다는 것이 놀랍다고 한다.#
  • 이름 모를 수상한 사람에게 재입북 제안을 받은 적이 있다. 단순 재입북도 정신이 나간 소리인데 스파이 활동까지 요구했다고 한다. 당연하지만 거절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런 상황이 일어났다는 것 자체가 그의 신상이 북한 측에 노출되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 2020년 9월 27일자 이제 만나러 갑니다 458회에 출연하였다. 녹화 당시 신변 보호를 위해 선글라스를 착용했는데 그냥 캐릭터가 되어버려서 북시탈에서도 계속 착용한다.
  • 엘리트 사촌형이 있었는데 군대에서 가혹행위로 인해 비참하게 동사했다고 한다. 책임자 처벌은 못 한 것으로 추정된다.
  • 최근에 결혼을 악속한 약혼자가 있다고 이야기 하였다. 그리고, 약혼자 덕분에 기독교에도 입교를 했다고 한다.
  • 강유에 이어 탈북민 출신인 주성하 동아일보 기자와 인터뷰를 했다.# 여기서 더 자세한 탈북 스토리가 공개되었다.
  • 외가 쪽에 러시아 쪽 혈통이 섞인 혼혈로 추측이 된다. 북한에서 ‘아이노코(혼혈)’[22]이냐는 말 역시 많이 들었다고 한다.

3. 영상 조회수 TOP 15

업로드 일자 영상 제목 조회수
2020.03.19 AK소총 메고 DMZ 넘어 온 북한군인의 탈북스토리 80만회
2020.07.31 왜 월북했을까? 월북하면 어떻게 될까? 탈북민이 말하는 월북! 51만회
2020.04.03 DMZ 넘어 온 현역군인들, 보로금 얼마나 받을까? 50만회
2020.09.08 (ENG SUB)What kind of food do North Korean soldiers eat? 북한군은 어떤 밥을 먹을까 38만회
2020.03.13 북한군 최전방부대 약초병 출신의 DMZ 넘은 탈북스토리 33만회
2020.03.22 북한군이 생각하는 한국군 33만회
2020.08.22 (ENG SUB)한국에서는 너무 흔해서 쓰레기 취급 당하지만 북한에서는 귀한 물건 TOP3 Rare items in North Korea. 32만회
2020.09.26 (ENG SUB)H.I.D 북파공작부대 전역하게 되면 받는 혜택들(Q&A) 31만회
2020.03.30 북한군출신이 알려주는 북한군생활 최악 TOP 5. 27만회
2020.03.05 DMZ를 넘어 온 탈북 군인들이 신기 했던 것들 26만회
2020.06.09 북한의 공개처형! 실제 이 정도일줄은... 24만회
2020.04.07 가장 많이 받았던 북한군 관련 질문 TOP3. 19만회
2020.04.05 10년 군생활하고 DMZ 넘어 온 북한군 출신 이광호씨 탈북스토리 19만회
2020.08.18 북한군 출신 가짜사나이2기 지원, 자기 소개 및 체력테스트 17만회
2020.09.02 (ENG SUB)가짜사나이 결과 알려 드립니다. 17만회

4. 여담

  • 정하늘은 탈북하고 나서 제주도로 건너가서 살 생각이었다고한다. 북한군 복무 당시 서울 불바다 같은 소리를 많이 들어서 전방에 속하는 서울에 살기 싫었다고 한다. 나중에 김강유와 함께 제주도를 방문하여 한라산 정상에 올랐는데, 북한군에서 복무할 당시 한라산에 대한 이야기를 하도 많이 들어서 감정이 굉장히 묘했다고 한다. 민경부대(GP)에서 복무하는 북한군인들은 정훈교육을 받을 때 "너희들은 추후 남조선을 해방하고 제주도 해안을 지키는 해안경비대가 될 것이다." 라는 선전선동을 정말 많이 듣는다고 한다. 한국 사람이 백두산, 금강산 같은 북한의 명산에 관심이 크듯이, 큰 섬이 없고 가장 남쪽이 남한 기준 최전방인 북한 사람들은 제주도한라산에 대한 관심이 굉장히 크다고 한다. 하지만, 이런저런 사정이 겹쳐서 서울에 정착했다고 한다. 다만 2020년 5월 17일자 라이브에 따르면 김강유는 고양시에 살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둘이 같이 살고 있으므로 현재는 고양시민인게 맞는듯 하다.[23] 주민등록증 인증이라 100% 첫 다짐과는 달리 정작 서울보다 북한에 더 가까운 동네에 살고 있다.
  • 하늘은 탈북 후 대학에 입학했는데, 친해진 부산출신 친구가 "군생활 어디서 했냐"고 물어보자 솔직하게 북한군이라고 했으나 전혀 믿지 않아서, 본인이 정말 북한군 출신이라는 걸 믿게 하는 데 1달이나 걸렸다고 한다.
  • 하늘은 북한 사투리를 가르치는 연기학원에 강사로 활동한 경력이 있다.
  • 하늘은 항상 선글라스를 끼고 출연한다. 신비주의 컨셉이라고 하는데, 본인이 말하길, 지금은 그냥 선글라스가 좋아서 끼는 것이라고 한다.
  • 반려견을 키우고 있다.
  • 영상편집은 같이 한다. 여러 편집자들이 문의를 했고 실제로 맡겨봤지만, 시간이 너무 오래걸려서 포기했다고한다.
  • 여타 북한이탈주민 출신의 사람들을 게스트로 섭외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경우 게스트가 북시탈 tv라는 채널 이름답게 (그리고 신변보호를 위해) 각시탈 가면을 쓰고 등장하는 경우가 있다.
  • 초기 영상들은 효과음이 너무 커서 이를 지적하는 댓글이 많았다. 현재는 이러한 피드백을 받아들여서 소리를 많이 줄였다.
  • 비정기적으로 라이브 방송을 진행하고 있다. 초기엔 먹방을 했지만 시청자들과의 소통이 힘들다는 이유로 현재는 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생각보다 라이브 방송 요청이 많아서인지 매주 주말마다 라이브 방송을 키는 경우가 많아졌다.
  • 나무위키 해당 문서의 존재를 알고 있으며, 직접 북한 사투리로 읽어주기도 했다. # 하지만, 이제는 북한 사투리로 말하는 것이 힘들어졌다고 한다.
  • 둘이 평상시에 있을 때는 사투리가 아니고 한국 표준어로 대화한다. 둘의 고향인 평양[24]과 함흥은 말투가 성조의 유무로도 차이가 나서 충청/전라도와 경상도 급으로 상당히 사투리가 다르고, 문화어라는 표준어 규범도 일각의 오해와 달리 두음법칙 정도를 빼면 한국 표준어와는 공부를 잘 한 사람이 아니면 맞춤법을 잘 안 지키는 사람과 구별이 힘들다. '할 것이다'를 '할것이다[25]', '되어'를 '되여'라고 쓰는 정도의 차이다. 탈북 이전의 북한 사회에서 현대 문물을 다루는 용어를 많이 접하지 않으니 한국 표준어가 더 편할 수도 았다. 가장 결정적으로 젊은 지방 사람들도 고향과의 연락 없이 수도권에 정착해도 유사한 모습이 있음을 생각할 수 있다.
  • 2022년 들어 영상 업로드 주기가 상당히 길어졌는데 강유가 집과 먼 직장을 다니기 시작하면서 독립했고, 그러다 보니 서로 만날 시간이 현격히 줄어들어 자연스레 업로드 주기도 길어졌다고 밝혔다. 거기에 하늘도 어느 영화의 북한 사투리 강사로 활동했고 단역으로 출연하기까지하며 지난 몇 달간 굉장히 바쁜 시기를 보냈다고 한다.


[1] 사진 왼쪽의 인물, 맨 얼굴.[2] 사진 오른쪽의 인물, 썬글라스 착용.[3] 유튜브 채널 개설일은 2015년 9월 3일이다. 이 당시에는 강유가 탈북하기 이전이었으므로, 하늘 명의의 채널로 추정됨.[4] 약초병이 무엇인지 궁금하다면 문단 참조.[5] 본인 피셜 셀프 전역이라고(...)[6] 한편, 밀리터리 버거 리뷰부터는 북한 시X 탈출이라는 그럴듯한 역두문자어가 언급된다.[7] 공식 통계는 3만 4천여명이지만 사망자 및 이민자를 제외하지않은 수치라 2020년 현재 한국에서 살고 있는 북한이탈주민은 2만 7천여명으로 추정된다.#[8] 본인이 직접 밝힌 바로는, 철책은 태풍으로 인해 파괴되어서 전기 자체가 안흘렀다고 한다. 그리고 막상 내려가봤더니 본인 키를 넘는 갈대밭이 있었고, 또 가시 덩쿨이 있을꺼라는 생각을 전혀 못했던지라 부상을 계속 입었다고 한다. 그리고 남한으로 내려가다가 상자 하나를 발견하고 남한에서 준 보급품인가 싶어 열어봤는데 그게 바로 목함지뢰였다고 한다! 만약 그 상자를 발견하지 못하고 그대로 밟았다면 그 순간 끝장이었던 것. 정말 천만다행이였다.[9] 정하늘 지원 영상, 김강유 지원 영상 참고.[10] 평양에는 상류층만 산다는 오해가 있으나 그것은 김씨일가가 있는 중심구역 쪽에 해당하고, 그 외 지역들은 재일교포 같은 정치적 하류층도 살며, 위성으로 보아도 흙수저가 살 법한 집들이 평양의 변두리에 많다. 어려울것 없이 같은 서울이라고 해도 강남 3구와 그 외 지역이 서로 차이가 나는걸 생각해보면 된다. 구룡마을 같은 케이스도 있고...다만 정치적 일탈이 발각되면 평양에서 추방당하는 것은 맞다. 그러나 김정은 정권에 들어서면서 점점 경제를 통제하기 힘들어지자 그 대안으로 장마당을 활성화시켜주었더니 여기에서 큰 돈을 만져서 평양 주민 못지 않은 부유한 물주들이 생겨나기 시작했으며, 이들 물주들은 설령 최하급 계층인 적대계층 출신이라고 해도 조선로동당거액의 기부금을 쾌척하여 로력영웅 훈장을 받고 신분을 세탁하는 것이 가능해짐으로서 이제는 돈만 있으면 얼마든지 평양 중심가에서도 살 수 있게 되었다. 오히려 지방에서 돈의 힘으로 자유롭고 즐겁게 살다가 평양으로 가면 삼엄한 감시와 통제에 시달려야 하기 때문에 평양을 기피하는 풍조까지 등장할 정도로 현재는 그 위상이 많이 바뀌었다.[11] 실제로 북한군은 일반 병사라면 5년간 복무해야 상급병사로 진급할 수 있으나 강유는 4년도 채우지 않고 진급했다.[12] 報勞金, 반국가단체나 그 관련 구성원으로부터 정보나 금품을 취득하여 수사 기관이나 정보 기관에 제공하였을 경우 지급하는 포상금.[13] 그런데 북한에서는 이게 너무나 흔한 일이기는 하다. 당장 강유도 혼자 한 게 아니라 선임들과 함께 했을 정도니...[14] 다만 이런 식의 군수품 횡령 이야기는 군 경험을 갖춘 탈북민들에게서 공통적으로 제기되는 주장이므로 신빙성이 높다고 할 수 있다.[15] 북한 돈한국에서도 사용되는 줄 알고 나름대로 정착자금 명목으로 생각했다고. 차라리 산삼을 그냥 가져오는 게 더 나았을 것이다.[16] 사실, 이것도 옛날 이야기이고, 장마당이 워낙 활성화되면서 상품뿐만 아니라 정보 또한 자연스럽게 유입되므로 이제 북한 인민들도 어디 두메산골 깡촌같은 곳에 고립되어 살고 있는게 아닌 이상 '남조선'이 자신들보다 더 잘먹고 잘산다는것쯤은 상식으로 알고 있다. 가령 지역에서 주름 좀 잡는다 하는 집은 자녀들끼리 결혼할 때 못해도 '남조선제 혼수'가 하나라도 없으면 바로 파혼할 정도로 남조선제 가전을 선호하며, '남조선제 식료품'을 먹고 나면 포장지나 박스 등을 버리지 않고 모셔두어서 방문객들에게 잘 보이는 곳에 비치하는 등 자신의 부를 과시하는 목적으로 남한 제품들을 이용하고 있다.[17] "평양 말고는 겨우 전구 하나 켜지도 못할 만큼 전기 사정이 궁핍한 북한이 무슨 전기철조망을 굴리냐?" 라고 생각할 수도 있으나 전기철조망으로 탈북을 막는다는 이야기는 이미 몇십 년 전부터 탈북자들이 공통적으로 "전기철조망은 있다" 라고 증언한 내용이고, 국군에서도 사실이라고 이야기를 할 정도로 검증이 된다. 심지어, DMZ에서 복무하던 인민군 장교 출신의 세계북한연구센터 안찬일 씨처럼 "지금부터 DMZ로 순찰을 갔다 올 테니까 오늘은 내가 돌아올때까지 전기를 켜지 말아라." 라고 부하들에게 명령한 뒤 그대로 되돌아오지 않고 탈북한 사례도 있었다. 애당초 체제를 선전하기 위한 김씨 부자 두 놈의 동상 및 사진에 백업 발전기까지 굴려가면서 불을 24시간 밝혀 대는 곳이니, 거꾸로 그 체제에서 이탈하는 일을 막아야 하는 중대 시설인 철조망에도 얼마 안 되는 전력을 아낌없이 쏟아붓는다고 생각하면 될 것이다.[18] 탈북을 결심한 이후 경계근무에 설 때만 되면 아주 열심히 전방을 주시하였는데, 그게 경계를 열심히 하려고 그런게 아니라 탈출 경로를 미리 파악하려고 열심히 전방을 주시했던 것이라고 한다...[19] 북한의 수류탄은 특이하게 안전핀이 2개 달려 있다.[20] 88식 보총으로 추정.[21] 전슬한대로 북한 수류탄은 안전핀이 두개인데 쫓아오는 북한군에게 잡힐 것을 대비해서 한 개는 미리 뽑아둔 상태였다고 한다.[22] 일본어 間の子에서 유래한 단어인데 이 단어는 한국어로 치면 튀기와 같은, 사람에게 쓸 수 없는 수준의 경멸조를 포함하는 단어이기 때문에 현대 일본어에서는 모욕하려는 욕설 용도 외에 더 이상 사용되지 않으나, 인권의식이 희박한 북한에선 아직도 별 생각 없이 쓰이는 모양. 게다가 함경도는 러시아와 인접한 지방이라서 평범한 사랑과 연관이 있을 수 있지만, 소련군 진주와 연관된 북한 주민의 암울한 역사와 연관이 있을 수 있다. 그나마 그런 사람이 예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었다는 것이 위안이다. # 인순이 같은 이야기가 북한 쪽에도 있었다. 정치적으로 매우 예민한 소재일 것이다.[23] 아니면 행정상 주소만 고양시고 실제로 서울에서 거주하고 있을 수도 있다. 현재 거주 중인 집이 하늘 명의라면 충분히 가능하다.[24] 평양에서도 평양은 표준어 규범인 '문화어'를 쓴다는 정치적 선전과 달리 평양 주민 스스로도 알게 모르게 평안도 사투리가 조금 쓰인다고 알려져 있다.[25] 의존 명사를 죄다 붙여 쓴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