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2-26 10:57:30

서태지/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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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사회 참여3. 오타쿠4. 팬 사랑과 역조공5. 연예인들의 연예인6. 기타

1. 개요

서태지의 여담을 정리한 문서.

2. 사회 참여

"제가 어렸을 때부터 들었던 음악이 록 음악인데요. 록 음악에는 항상 저항 정신이 들어 있잖아요. 잘못된 게 있으면 음악이나 예술을 통해서 고칠 수 있는. 그런데 1집 낼 때는 사실 경황이 없었어요. 그냥 서태지와 아이들이라는 댄스팀을 만들어서 음악적인 관심을 많이 보인 반면에, 가사적인 측면에서는 그다지 사회적 비판이라든지 사회 참여를 별로 못 했어요. 그런데 저희가 이제 나이가 좀 들면서 여유로워지기도 하고요, 그런 영향이 있기 때문에, 꼭 사회 비판적 음악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1995년 12월 17일 방영된 추적 60분에서의 인터뷰 내용
  • 딱히 소셜테이너, 폴리테이너로 분류되지는 않지만[1], 소소하게나마 사회 현안에 대해 메시지를 드러낸 적이 있었다. 2003년에 덕수궁 터에 미국 대사관을 짓는다는 계획이 알려지자, 문화연대를 비롯한 30여 개 시민 단체에서 반대 운동을 벌였는데, 당시 7집 앨범을 구상 중이던 서태지도 동참한 것. 서태지는 공식 홈페이지에는 덕수궁터 내 미대사관 신축 반대 배너를 띄워 서명 운동에 협조했다. 또한 그해 12월 13일 광화문 사거리에 열린 공연에는 당시 서태지컴퍼니 소속이었던 밴드 피아가 노개런티로 출연했는데, 여기에 서태지 컴퍼니는 회사 차원에서 거리 공연에 필요한 장비 등을 지원했다고 한다. 링크 결국 덕수궁 터에 미국 대사관을 짓는다는 계획은 없던 일이 되었다.
  • 2003년 3월에는 이라크전과 파병을 반대하는 서명 운동에 동참하고 성명서도 냈다. 기사 다만 활동 기간이 아니었으므로, 성명서는 원타임의 송백경이 대신 나와서 읽었는데, 전문은 다음과 같다.
    세계평화를 파괴하는 명분 없는 전쟁을 반대합니다.

    우리는 이미 6.25전쟁을 통해 죽어간 수많은 생명들과 살아도 삶의 기쁨을 느끼지 못하는 수백만의 이산가족의 비극과 슬픔을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사상 유례 없는 전 세계적인 반전여론 앞에서도 평화 및 외교적 해결을 버리고 행해진, 수많은 희생자를 남기는 이라크 전쟁은 전 인류에게 인간다움과 평화에 대한 신념을 앗아가고 있습니다.

    어떠한 명분도 수없이 많은 민간인들과 어린이들을 죽음으로 내모는 전쟁을 정당화 할 수 없으며 그 누구도 미국 행정부에게 죄 없는 이라크의 많은 생명을 빼앗을 권리를 주지 않았습니다.

    부시 미국 행정부는 즉시 이라크에 대한 군사행동을 중단하여 이라크 국민들이 전쟁의 불안과 공포에서 하루 빨리 벗어나도록 하여야 할 것입니다.

    저는 전 세계 60억 인구에게 정의에 대한 믿음과 세계평화에 대한 신뢰를 깨뜨리는 부시 미국 행정부의 이라크 침공을 반대하며 반전평화를 염원하는 전 세계인들의 행렬에 동참하고자 합니다.

    부끄러운 전장 앞에 대한민국 젊은이의 파병을 반대합니다.

    특정국가의 자국이기주의가 빚어낸 침략전쟁에서 대다수 국민의 여론과는 반대되는 한국정부의 파병계획에 반대합니다.

    대한민국은 침략전쟁을 부인한다고 명시한 헌법을 준수하여 정부는 더 이상 국익을 명분으로 이라크전에 대한 굴종적인 지지를 통해 후손에게 부끄러운 역사를 남기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정부는 단 한 사람의 대한민국 젊은이도 당당하지 못한 외교의 희생물로 내몰아서는 안 될 것이며 2002년 월드컵 당시 세계에 널리 보여준 우리 민족의 저력이 강대국의 침략전쟁에 대한 무조건적 지지라는 부끄러운 현실로 가려지지 않도록 하여야 할 것입니다.

    저는 대다수 국민이 반대하는 미국의 명분 없는 전쟁에 대한 지지 및 이라크 전쟁파병 계획을 즉시 철회하기를 촉구합니다.

    저는 한국대중음악인의 한 사람으로서 이라크 국민들을 죽음으로 내몰고 세계평화를 위협하는 이라크전쟁을 반대하며, 반전평화운동을 펼치는 문화인의 대열에 서서 그들과 행동을 함께 할 것임을 분명히 합니다.


    2003년 3월 25일 서태지
  • 이러한 행적 때문에 당시엔 뜬금없이 일각에서 반미 가수로 인식되어[2], 2004년에 미국 영주권을 포기한 것을 그런 의도로 해석하는 기사가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냥 영주권을 갱신하지 않은 것뿐이었다고 한다. 당시 일본에 머물고 있어서 굳이 미국 영주권을 갱신할 필요를 못 느꼈다는 것. 기사.
  • 한편, 당시 정치권에서는 서태지가 어떤 정당을 반대하는지를 밝힐까 봐 걱정했다고 한다. 한나라당이재오 의원은 연예인이 대중에게 미치는 영향력을 경고하면서 문화 전략을 잘 짜야 한다고 주장했다. 기사.
  • 김대중 전 대통령이 서태지의 팬을 자처했다. 문화 대통령이라는 별명도 그가 붙여 준 것이며, 서태지와 아이들 3집 콘서트 당시엔 화환을 보냈다. 또한 대통령 취임식에 초청까지 했으나 서태지는 정중히 거절했다고 한다.[3] 이처럼 여러 번 만남을 거절해 오다 김대중 대통령 퇴임 이후인 2004년에야 처음으로 만났다. 대통령 당선 전과 재임 시기에 만나는 것은 아무래도 민감하게 받아들여질 수 있기 때문에 신중한 태도를 취한 것이었다.
  • 이 때문인지 서태지는 좋아하는 책이나 영화에 발언도 홍보에 이용될 수 있다며 극도로 말을 아끼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다만 2010년대 이후 들어서는 영화 라이프 오브 파이를 감명 깊게 보았고 이를 계기로 원작 소설도 읽었다며 소설 파이 이야기를 추천하기도 했다.
  • 1996년에 개원한 한국 최초의 장애인 전문 치과 병원에 기부한 사실이 20년 만에 알려졌다. 기사.
  • 2014년 겨울을 목표로 신해철, 이승환 등과 함께 사회 참여를 논하는 합동공연을 실제로 추진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이를 주도하던 신해철이 의료과실로 사망하며 이 공연은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만약 성사되었으면 세기의 무대라고 할 만한 라인업이 되었을 것인데, 언급된 사람 모두 공연에 일가견이 있는 뮤지션들인지라, 아쉬워하는 팬들이 많다.

3. 오타쿠

오타쿠다. 그것도 빼도박도 못하게 아이들 시절부터 자기 기타에 닥터 슬럼프 코믹스 1컷을 붙여놓았고, 7집 당시 다큐에서 화장실에 원피스 만화책이 쌓여있었다. 심지어 이나중 탁구부괴짜가족을 좋아한다고.[4] 그외에도 시간나면 이것저것 보긴 하는 듯. 7집 당시 영상물을 보면 강 장관 절교해라면서 20세기 소년 대사를 패러디하는 모습도 나온다. 8집 수록곡 <틱탁> 프로모션 때는 마침 20세기 소년이 영화화되어 한국에 개봉할 시기여서 공동 프로모션을 하기도 했다. 뮤직비디오에 20세기 소년 관련 이미지를 사용하였고, 영화 상영관에선 상영 전 뮤직비디오를 먼저 틀어주는 방식으로 협력했다.
평소부터 RC에 대한 애정을 숨기지 않고 아낌없이 표현한 것으로 유명하다. 영상물을 보면 꼭 나오는 장면이 RC를 가지고 노는 장면이라 해도 될 정도. 서태지와 아이들 시절부터 즐겨온 취미생활이며, 2004년 블라디보스톡 때는 배에서 원격 조종으로 RC를 하기도 했다. 다만 지금은 육아 때문에 잠시 휴업 중이라고.
UFO, 미스터리, 특촬물 덕후이기도 하다. 사실 80~90년대에 어린이용으로 많이 나왔던 책에 이러한 이야기들이 많았다. 이는 음악의 소재가 되거나 프로모션에 활용되기도 했다. 5집 수록곡 <테이크 1>은 외계유입설[5]에서 모티브를 얻어 만든 곡이라고 밝힌 적이 있었고, 장장 30분에 이르는 애니메이션 뮤직비디오까지 나왔다. 또한 6집 수록곡 <울트라맨이야>는 특촬물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면서 이 세상의 모든 오타쿠를 위한 응원가이기도 하다. 서태지컴퍼니 내의 레이블인 괴수대백과사전 또한 1980~90년대에 각종 괴수물에 대한 내용이 적혀 발매된 책자의 이름 괴수대백과에서 따온 이름[6]. 특히 8집은 모아이, 버뮤다 삼각지대 같은 유명한 미스터리 떡밥을 집대성한 앨범이었다.
만화 말고도 RC, 자동차[7], 오토바이, 음향장비, 장난감[8] 등 재력과 덕력을 고루 갖추고 골고루 다 소화하는 능덕이다. 한번 손을 대면 완전히 자기 것으로 만들고 말겠다는 기질이 강한 데다 손재주도 좋은 편이라 타고난 훌륭한 오타쿠다.
7집 다큐에서 서태지의 일본 내 자택 촬영을 했는데, 서태지가 만든 프라모델들을 보고 촬영 스태프가 "만드는 걸 좋아하시나봐요?"라는 질문에 서태지는 "음악도 만드는 건데요, 뭘. 다를 거 없죠."라고 대답하는 장면이 나온다. 음악도 그렇고 창작 활동 자체에 흥미가 많은 걸로 보인다.
서태지와 아이들 멤버 중 가장 친했던 양현석 또한 이런 성향에 어느 정도 물든 걸로 보인다. 힐링캠프 양현석 편에서 자신의 사무실을 공개했는데, 각종 로봇과 히어로물 피규어에 둘러싸여 있어 MC들이 당황하기도 했다. 사실 서태지 주변 사람들 중 많은 사람들이 오타쿠거나 그런 성향을 가지고 있다.

4. 팬 사랑과 역조공

1993년부터 경호업체 'TRI인터내셔널'이 서태지를 경호하고 있다. 이 업체의 김성태 대표는 서태지를 경호하면서 겪었던 일들을 책으로 엮어 내기도 했다. 기사

그런데 이 책이 나오기 훨씬 이전에도 팬 경호와 관련된 각종 에피소드들이 인터넷에서 회자되었다. 대표적인 것을 꼽자면 경호업체와 계약할 때 팬 경호 조항을 넣었다고 한다. 절대로 팬을 폭행해서는 안 되며, 존댓말을 써야 한다는 내용이라 한다. 콘서트 전날에 팬들이 밤을 새고 있는 것을 알고 경호 업체를 보내 지켜주기도 했다고. 이를 갈무리한 블로그 글

재산 목록 1호는 팬들이 보낸 종이학이라고 한다. 2015년 3월 1일에 열린 앙코르 콘서트에서 언급했다. 이미 2007년에 데뷔 15주년을 맞아 팬들이 보낸 종이학을 전시하기도 했다. 이처럼 일찍이 과도한 조공은 받지 않았다.

1995년도 3월, 잡지 인터뷰에서 20년 후에 팬을 만난다면 커피를 사겠다고 한 적이 있었다. 링크 이 약속을 지키기 위해 데뷔 20주년이 되는 해에 커피 역조공을 했다.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2012년 12월에 영등포 CGV THX관에서 <서태지 특별 상영주간> 동안 서태지 공연 실황을 상영했는데 이 시기에 맞춰 6층 카페 건물을 빌려 서태지 카페를 운영한 것. 음반이나 티켓 등 서태지 팬이라는 증표를 보이기만 하면 아메리카노를 무료로 제공했다. 종이컵은 서태지 팬덤의 상징인 노란색이었는데, 서태지가 직접 그린 그림이 들어갔다. 카페 내부 인테리어에도 서태지의 일러스트가 들어갔다고 한다.#

이 이벤트는 서울을 비롯해, 대구광역시, 부산, 광주, 제주까지 전국적으로 진행되었다. 12월 3일엔 대구시민운동장 주변, 5일엔 광주무등경기장 주변, 7일엔 부산사직종합운동장 주변, 제주도는 3일부터 7일까진 제주도 조안스튜디오에서 커피 버스를 운영했다.
파일:external/mimgnews1.naver.net/IE001523802_STD_59_20121203194806.jpg

2014년 12월 24일에는 평창동 자택으로 팬 300명을 초대하는 평창동 원정대 이벤트를 열었다. 기사 팬들에게 손수 포장한 선물 주머니를 나눠 주었는데, 기본 아이템은 여러 종류의 과자와 홍삼액, 핫팩이며, 여기에 서태지 브릭, 케토톱, 기타 피크 등이 랜덤으로 들어갔다.

이 이벤트는 2016년 2월에 방영된 MBC 예능 프로그램 능력자들에 서태지 능력자로 출연한 김홍기 씨가 방송에서 언급했다. 해당 방송 동영상

방송에는 안 나왔지만, 팬들이 쓴 후기을 보면, 집 앞에 푸드트럭을 세워 두고 율무차, 커피 등을 나눠 주었다고 한다. 인원이 많은 관계로 집 마당에서 팬들을 맞았기 때문에 마당 곳곳엔 난로를 설치했다. 즉, 자택 마당에서 진행한 팬미팅인 셈.

그런데 일부 인터넷 커뮤니티에선 이를 악의적으로 왜곡하여, 팬들을 추운 데 밖에서 기다리게 하고 꽁꽁 언 초코파이만 던져 주었다는 내용으로 둔갑했다. 사실, 당시에도 그리 화제가 되지 않은 일이었으나, 일부 어그로꾼이 뒤늦게 거론하기도 하며, 이를 무비판적으로 자기 블로그에 퍼 가 조회수를 올리려 하는 블로거도 있으니 주의를 요한다. 일설에 따르면, 서태지의 팬이었지만 그가 결혼한 뒤 안티로 돌변한 일명 뭉클이 이벤트 당첨자 중에 포함되어 악의적인 왜곡 글을 인터넷에 퍼뜨렸다고 한다. 이 자는 나중에 익명제 사이트로 옮겨가 악의적인 소문을 퍼뜨리고 다닌다고 한다. 팬덤 뒤에 숨으려고 팬코스프레하며 악의적인 루머를 퍼뜨리고 다니는 인간들이 있는 정황이다. 사람이 사람 좋아하는 게 뭔지도 모르는 주제에 팬코스프레를 하니까 당연히 들키는 경우가 많다. 디시인사이드 서태지갤러리에서도 들통나서 글 삭제를 하는 경우가 많았다. 진짜 팬이 아닌 팬코의 정황이 있으므로 이것은 팬덤을 비롯해 서태지를 이미지 살인하는 사기 행위이므로 확인을 꼭 하는 것이 필요하다.
2019년 12월 25일에 서태지 컴퍼니에서 5년 만에 평창동 원정대 현장 동영상을 공개했다.

2008년 무렵 메이크어위시 재단에서 백혈병에 걸린 남자 고등학생의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 서태지에게 연락을 취했고, 서태지가 이 소원을 들어주었다고 한다. 기사 서태지를 만난 고등학생은 백혈병이 완치되고 기타리스트가 되는 꿈을 이뤘는데, 그 소년이 오랜 기간 할로우 잰의 기타리스트로 활동했던 서한필이다.[9] 링크

5. 연예인들의 연예인

1990년대와 2000년대에 어마어마한 파급력으로 문화 대통령 소리를 들었던 사람이라서, 현재 활동하는 연예인들 중에서도 서태지의 팬들이 어마어마하게 많다. 그리고, 연예인들뿐만 아니라 유명인, 셀럽, 공인들도 포함하는데 어린 시절에 서태지를 TV에서 보고 자란 아이들의 영원한 우상이기도 하다. 자타공인 연예인들의 연예인이라고 할 수 있다.
  • 고아성: '바닷길 선발대'에 나와 서태지의 노래를 틀어 김남길과 함께 부르면서 팬심을 드러냈다.
  • 검정치마: 미국에서 활동을 하던 조휴일은 어렸을 때부터 동경해왔던 서태지의 족적을 따라 한국에서의 활동을 계획했고, 2008년에 진행된 인터뷰에서도 서태지를 가장 좋아하는 국내 가수로 꼽았다. 2017년 음감회에서는 함께 작업해보고 싶은 아티스트로 서태지를 꼽았다.
  • 김남길: 2014년 인터뷰에서 지금도 좋아한다고 언급했다. 그리고 2020년 10월, tvN 채널에서 방영중인 '바닷길 선발대' 2화에서 고아성과 마찬가지로 'Heffy End'가 최애곡임을 밝히고 'MOAI'나 '너와 함께한 시간 속에서'를 들으며 가사 하나 놓치지 않고 부르는 등 팬심을 꾸준히 보여주었다. 이후 2023년 6월 10일 자신의 팬 콘서트에서 'Heffy End'를 커버하며 여전한 팬심을 보여주었다. 직캠
  • 김선혜: 남도형의 블루클럽 원신 감우 뽑기 방송에 출연 당시 크리스말로윈 뮤직비디오에 마녀 역으로 출연했었으나 정작 본인은 서태지를 만나지 못해 아쉬웠다고 하며 팬임을 밝혔다.
  • 김생민: 연예가 중계에서 20년 동안 리포터로 근속하며 서태지와의 인터뷰를 전담했다. 스스로 밝히길 변치않는 팬이라고 한다. 서태지도 김생민과의 인터뷰를 선호하며, 김생글씨 라고 별명을 지어주기도 했다. 하지만 최근 김생민이 과거 성추행 미투로 인해 연예계 생활을 불명예로 마감했기 때문에 차후 서태지 리포터가 누가 될 지 의문이다.
  • 김대중: 서태지를 젊은 세대를 대표하는 메신저라고 높이 평가하였고 서태지 역시 그의 통일관을 지지하여서 교류가 있었다. 서태지가 주장하던 음반사전심의제 철폐 노력도 기울였다. 서태지와 아이들 해체 당시에는 팬들이 김대중에게 청원들을 보내자 이를 달래는 글도 썼다. 2004년 서태지의 7집 앨범 활동기에는 김대중 도서관에서 만남을 가지고 서태지는 자신의 싸인 CD를 선물했다. 현재도 김대중 도서관에 가면 서태지의 싸인CD를 볼 수 있다. 김대중이 사망했을 때에는 음악인 서태지의 이름으로 조화 화환을 보냈다.
  • 김영은(성우): 초등학교 3학년부터 10년 넘게 골수팬이였다. 현재는 불명.
  • 김재중: 컬투쇼에 출연했을 때 유튜브에 가장 섭외하고 싶은 게스트로 서태지를 꼽았다.16:10부터
  • 김현중(1986): 무릎팍도사에서 밝히길, 서태지의 '울트라맨이야'를 듣고 '저 사람이 되어야겠다'라는 생각과 함께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성당 밴드부에서 베이시스트를 했다고 한다.링크 [10]
  • 김혜리(평론가): 서태지 팬클럽에서 활동할 정도로 팬이었다. 또한 자신이 진행하는 김혜리의 필름클럽에서 가끔 서태지 얘기를 꺼내곤 한다.
  • 김희철: 1990~2000년 음악을 소개하는 프로 "이십세기 힛트송" 중 서태지 노래가 나오면 서태지 코스프레를 할 정도로 팬이며, 한때 드라마를 같이 했던 이은성에게 대놓고 형수님이라고 칭한다.
  • 권상우: 서태지가 공연했던 2014 MAMA에 참가했었는데, 레드카펫 인터뷰에서 서태지 선배님 무대 보러왔다고 밝힘.
  • : 서태지와 아이들 1집 시절 출연한 인간시대를 보고 팬이 되었다고 밝혔으며, 자신의 만화인 낢이 사는 이야기에서 열성팬임을 여러 차례 인증[11]했다.
  • 데니 안: 자신의 팬이 서태지를 욕하자 정색하며 화냈다는 얘기가 유명.
  • 디핵: 엑스재팬히데와 함께 서태지의 노래에서 많은 걸 느꼈다고 밝혔다.# 그리고 인스타에서 서태지를 팔로우하고 있다.
  • 문근영: 모 잡지와의 인터뷰에서 팬이라 밝혔다.
  • 산다라박: 필리핀 떠나기전 한국생활 할 때 '서태지'보고 부러워서 가수데뷔를 꿈꿔왔다. 자신의 꿈은 "여자 서태지가 되고 싶다." 발언하였다.
  • 박찬우(축구해설가): 과거 음악 평론가 경력이 있던 만큼 서태지에 대해 많은 애정을 드러낸 바 있다. 히든풋볼에서는 아예 서태지 특집을 다루기도 했다.
  • 박형철(법조인): 서태지 팬클럽 부회장 출신으로 '하여가'를 잘 부른다고 하며 팬클럽 가입 약관을 만들었다고 한다.
  • 배성재: 본인이 진행하는 배성재의 텐에서 수 차례 팬심을 과시한 바 있다. 이종범 작가와 같이 서태지 노래 월드컵 코너를 진행하기도 했다. 가장 좋아하는 곡은 '환상 속의 그대'.
  • 봉태규: 과거 서태지의 <시대유감>이 심의에 걸려 방송이 금지되자 방송사 심의실에 전화해 "서태지 노래를 아느냐"며 따졌다고 한다. 서태지가 은퇴했을 때 펑펑 울었다고 한다.#
  • 성시경: 매우 열렬한 팬이었다고 밝힌 바 있다. 성시경 특유의 직설적이고 소신있는 성격을 보면 당연할지도. 이 인연으로 2013년 그의 곡 〈너에게〉를 리메이크했다. 서태지 곡 중 최초의 케이스이다.[12]
  • 성유리: 서태지가 던지는 껌을 받기 위해 몸을 던진 적이 있다고 섹션TV 연예통신에서 밝혔다.
  • 손호영: 위에 소개된 데니 안과 마찬가지로 유명한 팬이다. 카뮈의 《페스트》를 원작으로 한 스토리에 서태지의 음악을 사용한 뮤지컬 〈페스트〉에 주연으로 나와 성공한 덕후가 되었다.
  • 슈가(방탄소년단): 방탄소년단 멤버들 중 가장 서태지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본인 피셜로 인증했다. 2017년 9월 21일에 방송된 두시탈출 컬투쇼에서 언급했다. 해당 방송 20분 무렵부터 나온다. 신보 기자회견에서 최근 참여했던 서태지 25주년 콘서트에 대한 질문에 함게 할 수 있어서 너무나도 영광이었다고 밝히기도. 방탄소년단은 서태지의 데뷔 25주년 기념으로 서태지와 아이들의 대표곡인 'Come Back Home'을 커버하기도 했다. 멤버들 모두가 서태지 25주년 공연에 출연해 Come Back Home을 불렀고, 멤버 중 정국은 서태지와 같이 하여가를 부르기도 할 정도.
  • 신화 멤버들: 신혜성은 2001년에 SBS 도전천곡에서 난 알아요를 불렀으며, 김동완은 자신이 텐텐클럽 MC를 맡았을 때 신화 멤버들과 아카펠라로 이 밤이 깊어가지만 리믹스 도입부를 재현하기도 했다. 이민우는 최근까지도 2014년 9집 컴백 콘서트, 25주년 기념 콘서트에 꾸준히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전진도 "이십세기 힛-트쏭"에 출연해 〈난 알아요〉 춤을 췄고, 지금도 서태지 노래를 간간히 듣는다고 한다.
  • 심은경: 서태지의 SHOW 광고에 함께 출연하였고 8집 활동 총정리 DVD인 398에서는 덕심이 가득한 내레이션을 맡았다. 최근에도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서태지 노래를 업로드한 바 있다.
  • 안톤 숄츠: 현 독일 공영방송 ARD 소속 기자. 90년대에 한국에 왔었을 때 서태지와 아이들을 알고 좋아했다고 한다. 링크 2019년 6월에 모 언론사에서 열린 외신 기자 포럼에서는 지속가능한 한류를 위해 〈교실이데아〉 같은 사회적 현상을 다룬 콘텐츠가 많이 나와야 한다는 조언도 했다. 링크
  • 요시키(X-Japan): 2009년 내한공연 전에 섹션TV와의 인터뷰에서 한국에서 좋아하는 가수는 서태지라고 답하며 '훌륭한 뮤지션이고 기회가 된다면 같이 작업해보고 싶다'고 밝혔다.기사#
  • 양동근: 어렸을 때 가장 좋아했던 가수와 노래로 서태지의 컴백홈을 꼽았다.해당 기사 본인 노래인 '흔들어'에도 컴백홈의 가사를 오마주했고, 복면가왕에 출연했을 때도 '컴백홈'을 불렀다.해당 무대
  • 유아인: 꽤 오래된 팬이다. 전국투어 때도 목격된 바가 있다.
  • 윤진서: 서태지의 7집 활동 뮤직비디오들에 출연했다(로보트, Heffy End, Live Wire). 뮤직비디오 비하인드를 보면 7집 앨범에 싸인을 받고 어린아이처럼 좋아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2007년 15주년 기념 공연에서는 MC를 맡았다.
  • 윤하: 미니홈피에 8집 컴백스페셜 본방을 놓쳤다고 슬퍼하는 글을 올리기도 했으며, 데뷔 초 녹음 일정 때문에 2008 ETPFEST 관람을 하지 못하게 되자 그 티켓을 코팅해서 책갈피로 썼을 정도로 아쉬워했다. 이후 2009 ETPFEST때 섭외 제안이 오면서 서태지로부터 '기특하다'는 칭찬을 받자 자신의 존재를 선배님께 각인시킨 것 같아 뿌듯했다고 훗날 인터뷰에서 밝혔다. 윤하의 4집 수록곡 'No Limit'은 서태지를 좋아해서 나온 곡이다. 25주년 기념 리메이크 앨범에도 참여하였는데, 본인이 직접 Take Five를 선택하여 커버하였다.[13]
  • 엘디큐(LDQ): 비가비광대를 작곡한 대한민국의 VOCALOID 프로듀서. 가장 좋아하는 가수로 서태지를 꼽았고 X(트위터)에서도 팬심 가득한 트윗으로 종종 언급한다.
  • 이무진: 유희열의 스케치북에 출연했을 때 서태지의 팬이라고 밝혔고 '모아이'를 어쿠스틱 버전으로 편곡해서 불렀다. 또한 리무진서비스 100회 특집에서 가장 섭외하고 싶은 게스트로 서태지를 꼽았다.
  • 이은결: MBC의 능력자들에 출연하여 팬심을 인증했다. 서태지 능력자로 나온 일반인도 기억을 못 하는 예전 TV방송에서의 율동도 기억하고 있었고, 서태지와 아이들 2집의 수록곡 '너에게'의 엔딩 연호까지 알고 있었다.
  • 이적: 이적의 텐텐클럽을 진행할 때 서태지의 신보가 임박하자 공개 출연 요청 게시판까지 개설하며 팬들에게 참여를 촉구하기도 했으며, 결국 서태지가 출연하자 신이 나서 진행했었다. 정말 만나뵙고 싶었다고 기쁨에 겨워서 진행.
  • 이정현: 연예계로 데뷔한 이유가 서태지를 만나기 위해서였다고.
  • 이준기: 서태지의 8집 컴백때 특별 프로그램에서 인터뷰어로 나와 팬심을 과시했다. 미니 콘서트와 ETP에 초대해달라는 말에 서태지는 그래도 줄을 서야 하며 표를 사서 오라고 화답했다.
  • 종현: 크리스말로윈 음원 공개 전 자신의 트위터에 노래 가사인 '긴장해 다들'을 올려 홍보하기도 했다링크. 생전 샤이니 아시아투어에서는 팀 동료 태민과 함께 <인터넷 전쟁>을 커버해 공연한 바 있다.
  • 임형주: 소격동에 대해 트윗을 올렸다. 링크
  • 지코: 롤 모델이었던 서태지와 한 무대에 섰다. 2014년 MAMA 때 서태지와 함께 <컴백홈>을 공연했고, 이때 일은 자신의 솔로 앨범 수록곡 가사에도 언급했다.
  • 젝스키스: 멤버 전원. 심지어 이재진양현석이 매제임에도 서태지와 아이들에서 서태지를 제일 좋아했다고 밝혔다.
  • 창모: 인스타 라이브에서 가장 콜라보하고 싶은 아티스트로 서태지를 꼽았으며 널 지우려 해, 라이브와이어, 너에게 등 서태지의 곡을 피아노로 연주하는 팬심을 과시했다. 이 후에서 인스타 스토리에 서태지컴퍼니를 태그하는 등 정성을 보이기도. 결국 서태지의 샘플링 허락을 받아 정규 2집 타이틀곡 '태지'에서 'Come Back home'을 샘플링했다.
  • 최강희: 싸이월드 미니홈피 한켠에 서태지의 사진만 따로 올려놓는 게시판이 있었다.
  • 최송현: 자신의 SNS에 팬심을 과시해왔으며, 2008년 ETPFEST 기자회견에서는 사회를 맡아 '16년 만에 서태지를 만나게 돼서 꿈을 이루었다.' 라고 밝히기도 했다. 2012년에 팬들을 대상으로 서태지컴퍼니에서 주최한 클럽행사 '마지막 축제'에도 팬의 자격으로 참가하였다.
  • 최태성: 트위터를 통해 팬임을 인증했다. 후에 인스타그램에도 서태지와 관련된 내용을 올리기도
  • 타블로: 자신의 라디오에서도 서태지의 노래를 선곡하기도 했고, 미국 생활 당시 하여가를 듣고 다녔으며, 박명수의 라디오에 출연했을 때는 "사전 심의제도가 아직도 있었다면 에픽하이는 앨범을 내지도 못했을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너무 감사한 분이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또한 본인 라디오에서 서태지의 팬이 보낸 ETPFEST 섭외 축하 꽃다발을 자랑하기도 했다.
  • 하현우: 서태지가 최초로 방송한 V Live에 진행을 맡아 함께 출연했는데 방송이 아닌 개인 팬미팅을 하고 갔다. 스스로도 팬심으로 진행해서 팬들의 말들을 잘 전해드리지 못한 거 아닌가 걱정하기도 했다. 2017년 9월 2일 진행되는 서태지 25주년 공연에 오프닝 게스트로 참가하기도 한다.
  • G-DRAGON: 지드래곤도 서태지의 광팬이다. 이 인터뷰를 포함해 여러 매체에서 서태지에 대한 존경심을 표현했으며, 빅뱅의 2집 미니앨범에 수록된 <Crazy Dog>은 서태지와 아이들의 <환상속의 그대>를 샘플링한 곡이다. 2019년 나이키와의 콜라보레이션 신발 런칭 인터뷰에서 어릴 적 TV에서 본 서태지가 신은 신발을 보고 언젠간 나도 내가 신발을 직접 디자인 하고 싶다고 밝힌 바 사실상 성덕의 길을 걷고 있는 인물이라고 볼 수 있다.
  • H.O.T.: 멤버 전원. 특히 문희준은 서태지 콘서트에서 여러 차례 목격담이 존재하며, H.O.T. 해체 이후 록 음악을 시도한 솔로 초기 행보가 서태지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결과이다.
  • NELL: 멤버 전원. 이 때문에 서태지가 본인들을 서태지컴퍼니에 영입했을 때 서태지가 본인들의 우상이라 기뻤다고 밝혔다.
  • Pia: 멤버 전원.
  • 김도형(잔나비): 친척 누나들 영향으로 어린 시절 서태지에 입문. 어릴때 부터 서태지 팬임을 라디오기사를 통해 밝혔다 브이라이브를 통해 팬들에게 10월4일을 연주하기도 했으며, 서태지의 울트라맨이야를 들으며 스키를 타다 사고난 이야기는 잔나비 팬들에게 유명하다.

6. 기타

외가가 독립운동가 집안이라고 한다. MBC 인간시대에서 다룬 서태지 다큐멘터리에 따르면, 서태지의 외증조부가 조선시대 말기 고종 황제를 보필했던 육군 대장이었다고 한다.링크 일제강점기가 시작된 뒤로는 독립 운동을 했다는데, 전처였던 이지아친일파의 후손이었던 탓에 어떤 언론에서는 두 사람의 결별을 '독립 투사의 후예와 친일파 후예의 이별'이라는 자극적인 제목으로 다뤘다고도 한다.#
  • 반면 친가 선조에 친일파도 있다는 주장도 제기되었으나 이는 사실이 아니다. 서태지의 셋째 할아버지인 정희석이 해방 전에 소속되었던 경성후생실내악단이 조선총독부 산하 기관이라는 이유로 그런 주장이 제기되었는데, 민족문제연구소에서 편찬한 친일인명사전에는 올라 있지 않다. 2008년에 친일인명사전 명단이 언론에 공개된 적이 있었는데, 검색해 보면 이중에 포함되어 있지 않음을 알 수 있다.
  • 이는 친일의 기준이 지속성, 반복성, 자발성인데, 정희석의 경우는 여기에 해당되지 않기 때문이다. 정희석은 연세대 음대 학장을 지냈으며 국내에서 오케스트라를 맨 처음 만든 음악가로, 1944년에 재편성된 경성후생실내악단(京城厚生室內樂團)의 이사장 현제명(玄濟明) 아래 김원복·윤기선·이흥렬·이규용·나운영·정영재·김영애·이종태 이상의 단원과 함께 활동하였다. 만약 자발성이 있는 친일이었다면, 비밀리에 항일 운동을 펼쳤던 절친 김순남을 일제에 고발하였을 가능성이 높은데, 오히려 해방 이후에 김순남과 함께 활동하였다. 당시, 정희석은 20대였는데, 저 당시에 20대였던 사람들이 사회적으로 지위가 높은 것은 아니었으므로, 자발적으로 이러한 단체에 참여했다고 보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 물론 민족문제연구소의 객관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주장이 일각에서는 있지만, 인터넷상에 나도는 친일파 명단의 신뢰성은 그보다 더 심각하다. 이로 인해 피해를 본 분이 김수환 추기경. 이분은 일제 강점기에 일본군에 복무했다는 이유로 친일파라는 소문이 돌았지만 강제징집이었고, 단순히 일본과 관련된 기관에 몸담았다는 이유로 친일파라면 대한민국에 남아나실 어르신들이 없다. 또한, 민족문제연구소에서 작성한 명단은 무려 수 만 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올라 있어, 일각에서는 친일의 기준을 너무 넓게 잡았다는 비판을 제기하기도 한다. 즉, 명단을 확대했으면 확대했지, 좀처럼 축소하지는 않는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서태지가 대한민국 국민 중에서 최연소 운전면허 취득자라고 한다. 서태지는 '빨리 면허 따고 싶어서.'라고 말하기도 했다. 한편으로는 당시 긴머리가 흔치 않던 시절이라 긴머리를 하고 대중교통을 타면 사람들의 시선이나 어른들의 한마디가 불편해서 빨리 자동차를 몰고 싶었다고 발언한 적도 있다. 당시 서태지는 필기와 실기를 먼저 통과한 후 도로주행 시험을 1990년 자신의 생일, 즉 2월 21일 아침 첫 시험자로 미리 예약했다. 그리고 한 번에 통과해서 서태지는 만 18세가 되는 생일 아침에 운전면허에 최종합격하였다.[14]
영화 가필드에 출연하였다.#
몽골의 힙합 그룹 루미노가 서태지 아이들의 컴백홈과 원타임의 쾌지나 칭칭나네를 섞어 요상한 곡을 만들어 냈다. 듣기 서태지는 이후 사후 승인을 해줬다관련기사
2008년 GM대우 토스카광고를 찍어 컴백 전에 소소한 이슈를 끌고 다녔다. 그런데 2015년 초에 있었던 9집 마무리공연에 람보르기니 디아블로[15]를 끌고와 토스카는 그새 팔아 치운 거냐는 의견이 많았으나,아직까지 잘 타고 다닌다고 한다.[16][17]
1980년대 인기 드라마 수사반장 중 한 에피소드 '서태지' 라는 인물이 등장한다. 연기한 사람은 박영규이며, 겁탈을 당한 부인의 원수를 갚는 내용이다. 이곳에서 다시 볼 수 있다.
가수 원미연의 3집 수록곡인 '그대 내 곁으로'는 서태지에게 받은 노래다. 2014년에 소격동을 부른 아이유와 더불어 서태지가 곡을 준 단 둘뿐인 여자가수. 다만 아이유는 일종의 콜라보레이션이었으니 조금 경우가 다르긴 하다. 다만 원미연은 생각만큼 그 노래가 히트하지 못해 서태지에게 미안한 마음을 갖고 있다는데 반 농담삼아서 자기가 무리하게 랩까지 소화해서 잘 안 된 것 같다고 언급했다. 당시에는 방송여건상 랩도 본인이 직접 전부 불러야 했었다고 한다.
가수 허니의 'X라는 아이'라는 곡이 서태지와 아이들 은퇴 전 극비리에 작곡한 곡이란 이야기가 있으나, 전혀 아니다. 원래 따로 작곡된 노래에 서태지가 약간의 조언과 가이드용 랩 데모 8마디만 만든 것.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서태지의 음성이 실린 버젼은 이 데모 테이프에서 유출된 것이다.# 허니의 기획사 직원들이 서태지와 아이들 매니저였던 최진열을 비롯해 전부 서태지와 연관된 사람들이어서 극비리에 도와줬다고 한다.
서태지와 아이들로 활동할 때, 그의 매니저가 이동 중인 차 안에서 당시로서는 일반인은 홍콩 영화에서나 보던 수백만 원대의 비싼 초창기 휴대폰을 직업상 사서 사용하는 모습을 보게 된 서태지가 호기심에 그게 얼마냐고 물었다. 특별히 자신에게 말을 먼저 걸거나, 뭔가 일 외적으로 다른 일에 호기심을 보이지 않던 서태지의 이례적인 행동에 장난기가 발동한 매니저는 서태지에게 "야, 이거 만 원도 넘어. 살래?"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그리고는 말없이 웃던 서태지는 일주일 뒤 그 다음 번 매니저와 함께 차에 타게 되자 매니저에게 진짜로 만 원을 주면서, "그거는 나 주고 형은 이걸로 새 거 하나 사"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렇게 20대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세상물정에 어둡고 악기 구매할 때 물건 값 흥정도 못 해서 항상 다른 사람이 나서서 해야했다고 한다. 서태지와 아이들 활동 시의 수익을 분배할 때에도 액수를 묻지도 않은 채 항상 "부모님에게 보내 달라"라고 부탁했다고 한다. 돈도 거의 가지고 다니지 않아 별명이 서크루지였다.
  • KBS의 토크쇼인 해피투게더에 출연했을 때 가장 친한 지인으로 알려진 락커 김종서도 함께 출연했었는데 그의 말에 따르면, 치약을 쓸 때 치약을 돌돌 말아 쓰는 걸로도 모자라 아예 치약의 속을 열어서 잔여 분량까지 모조리 쓸 정도로 검소하다고 한다. 그렇지만 지인들에게 쏠 때는 확실히 쏜다고 하며 김종서, 그리고 매니저와 함께 인도 여행을 갔을 때 일행들이 지갑을 아예 꺼내지 못하게 하면서 여행 경비를 일체 본인이 부담하였다고 한다. 또 서태지 본인이 말하길 40대에 접어든 나이에도 불구하고 은행에 단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으며 세금은 어떻게 내는지, 계좌 이체는 어떻게 하는지에 대해 전혀 몰라서 재산에 관련된 일은 늘 아버지께 맡겼었다고 한다. 맡겨놓고 있다가 필요하면 카드 받아서 쓰는 식으로 경제 활동을 해왔다고. 근래에 들어와서야 인터넷 뱅킹 하는 방법을 배웠다고 한다.

<컴백홈>을 패러디한 <컴배콤>이란 곡이 있었다. 음치가수 컨셉으로 데뷔한 개그맨 이재수의 작품이었는데, 서태지가 음악 저작권 협회를 탈퇴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서태지는 이재수의 음반을 내 준 라인음향을 상대로 고소했다. 고소 사유는 일반인이 생각하는 것과 달리 코믹한 컨셉으로 패러디한 것 때문이 아니라, 원작자의 동의 없는 발매. 즉 저작권 침해 문제 때문이지만 서태지에 대한 오마쥬라는 라인음향의 주장이 어그로를 끈 탓도 있다.[18]
서태지는 리메이크곡이 없는 이유에 대해 자신의 음악을 팬들과 자신만 공유하고 싶기 때문이라고 직접 밝혔다. 가끔 YG엔터테인먼트서태지컴퍼니 소속 가수들이 라이브나 방송에서 서태지의 곡을 리메이크하다가, 최초의 레코딩 버전 리메이크로 빅뱅이 서태지와 아이들 4집의 '필승'을 빌렸다. 후에 응답하라 1994 OST에서 리메이크가 성사되어 성시경이 서태지와 아이들 2집의 너에게를 불렀다. 발라드곡을 발라드 가수가 부른 격. 성시경은 내레이션에 특히 신경을 많이 썼다고 전해지는데 2016년 4월에 우리동네 음악대장복면가왕에서 하여가를 리메이크 해서 불렀는데 이 역시 정말 이례적으로 리메이크를 허락받았기에 성사되었다. 9집 이후에는 리메이크 앨범이 따로 나오거나 한 방송을 통째로 서태지 리메이크로 채우는 등 관대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다만 서태지가 그 동안 리메이크에 유독 엄격했던 것은 이런 이유도 있겠지만 더 깊이 들어가보면, 서태지는 상술했다시피 서태지 이재수 고소사건으로 자신의 노래를 리메이크하고 무단으로 상업적 활동까지 한 저작권 피해를 겪었는데, 그러면서도 자신의 창작물의 저작권은 제대로 지켜주지 않으면서도 돈은 돈대로 징수하는 한국음악저작권협회에 실망해 탈퇴까지 했다. 심지어 서태지가 음저협에서 탈퇴한 이후에도 음저협은 저작권료를 챙기는 양아치짓을 벌이다가 서태지측에게 소송을 당하기도 했다. 결과는 12년간의 소송 끝에 서태지측의 승소로 끝났다. 이렇듯 한국에서 대중 문화의 2차 창작이나 그에 따른 상업적 활동이라는 개념이 제대로 자리잡기도 전인 2000년대 초에 리메이크에 엮인 사건에 워낙 크게, 그것도 일찍 데였다 보니 자신의 노래를 리메이크해 상업적으로 이용하는 것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일 수도 있다. 당연히 개인이나 소규모 록밴드가 자신의 노래를 리메이크해 유튜브에 올리거나 소규모 공연장에서 연주하는 것 등 작은 규모는 눈 감아준다.
스튜디오에서 보드 장갑에 보드복을 입고 노래를 하는 등으로 우리 나라에 생소하던 스노보더의 복장과 문화를 소개하여 스키장에서 마이너였던 보더들이 스키를 누르고 대세로 올라게는 계기가 되게 하였다. 심지어 스노보드 종목인 프리스타일이란 이름의 곡도 있다. 세계적인 스노보드의 유행이 서태지가 등장한 때와 겹친 영향이 더 크지만, 서태지와 아이들도 하나의 기폭제가 되어 주었다. 실제로 서태지와 함께 시나위에 있던 김종서, 이주노[19]는 우리 나라 스노보드와 스케이트보드 쪽에서 거의 1세대다.
노래 가사에서 알 수 없는 가사[20]가 많이 나온다. 서태지와 아이들 시절에는 그래도 몬더그린 수준이었지만 솔로 데뷔 이후에는 음악 스타일 자체가 연주의 비중을 보컬과 비등하거나 혹은 그 이상으로 중시하는 성향이 강해지면서 자연스레 가사가 잘 안들리는 경향도 더 강해졌다. 가사를 외우거나 가사집을 보지 않고 그냥 노래만 들으면 가사를 알아듣기 힘들 정도. 그래서 한때 팬들에겐 그런 구절들이 무슨 말인지, 무슨 뜻인지 해석하는 것도 유행하기도 했다. 예를 들자면 좀 많은데, 2집의 죽음의 늪 후렴구 가사 중 '피하지 않겠어' 뒤에 나오는 가사나, 3집의 교실 이데아에서 '그걸로 족해 족해'이후 가사집에 적혀있지 않은 목소리[21], 마찬가지로 3집 수록곡 널 지우려 해의 마지막 부분에서 서태지가 부르는 정체 불명의 노래, 6집 인터넷 전쟁에서의 후렴구의 코러스로 들어가는 스크리밍 등, 심지어는 5집의 Take 3처럼, 가사집을 보지 않으면 가사가 전혀 들리지 않는 곡까지 있다. 게다가 Take 1의 경우 15년 일겅 남탕 콘서트에서 의미 불명 가사[22] 에 관한 팬의 질문에 서태지 본인이 직접 답을 했는데 원래 우리 말로 녹음을 하였으나 외계어로 바꿔서 불렀다고 한다. 여기에 대한 의미는 자신만이 알고 있으며 죽을 때까지 안 알려줄 거라고 한다.[23]
서태지와 아이들 시절 서태지는 트로트곡을 만들어 부른적이 있다. 전체 부분을 공개하지는 않았지만 1집 때 방송 프로그램이나 콘서트에서 한, 두 소절 부른적이 있으며 1.5집 에서도 Rock & Roll Dance 마지막 부분에서 서태지가 해당 노래를 부른다. 가사는 아래와 같다.
그대가 없으면 나는 외로워
그대가 없으면 나는 외롭지지지
지금부터 그대에게 사랑을 고백할 거야~[24]
이렇게 그는 트로트에도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으며 결국 서태지와 아이들 4집 1번트랙 Yo! Taiji! 에서 뽕기 충만한 트로트락을 선보이기도 했다.
데뷔 초기부터 위천공으로 고생을 많이 했다고 한다. 그래서 회식이나 술자리에선 술은 그냥 혓바닥에 할짝거리는 정도로 그쳐야 했다고. 공개적인 행사에서 샴페인을 마실 때도 샴페인 거품을 앞니로 깨물기만 하고 마는 모습도 보여주었다.[25] 너무 힘들 때는 한 끼 식사를 우유로 때워야 했다고 한다.
병역에 관해서는 여러 말들이 많은데, 1994년말 연예인 병역 비리를 내사한 경찰의 중간 발표에 따르면 '서태지는 성격장애로 면제, 이주노는 피부과이상(문신)과 정신장애로 면제, 양현석은 병명미상으로 의병제대'를 한 의혹이 링크 있다고 했다. 하지만 한달 후에 무혐의로 내사를 종결했다. 링크
  • 이 말은 후술할 모 국회의원정치인 자녀와 연예인의 군면제 비율이 높은 게 수상하다면서, 거짓 병명을 대고 병역을 기피한 게 아니냔 의혹을 제기하여 경찰이 부랴부랴 수사를 했으나 병역을 기피했다는 증거를 찾지 못해 무혐의로 내사 종결을 했다는 것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일련의 보도의 핵심 내용은 성격이상이 확인됐다는 게 아니라, 고의로 병역을 기피했다는 증거가 나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결론은 서태지와 아이들은 병역 비리를 저지르지 않았다는 것이다.
  • 당시 서태지는 병역비리를 단정한 보도에 대해 불쾌감을 토로하며 언론중재위원회에 제소할 것까지 고려했으나 흐지부지되었다.[26] 사실 지금 기준으로 보면 수사가 끝나지도 않은 상태에서 단정적으로 보도하는 것은 무죄 추정의 원칙을 어겼다는 점에서 문제가 많다. 다만, 무혐의란 것만 알려지고, 제시된 병명이 실제로 확인되었는지는 알려진 바가 없어서 이를 두고 여러 말이 오가고 있다.
  • 일단 서태지는 성격장애를 시인한 적이 없으며, 인터뷰나 소속사 보도 자료를 통해 고교 중퇴 학력과 위장병으로 면제되었다고 밝혔다. 2003년 동아일보 기사를 보면 서태지컴퍼니측에서 단호하게 성격장애는 어불성설이라 말한 것이 확인된다. 링크링크 2 실제로 90년대 초반 고등학교 중퇴자들이 대기를 타다가 보충역(5급) 판정을 받는 사례가 있었다.
  • 이런 논란이 있으면 진단서가 공개되지만, 저 당시에는 병무청 자료 보관부터가 허접해서 수사에 어려움이 많았다고 한다. 당시 수사 상황을 보도한 기사만 봐도, 컴퓨터에 입력한 자료가 없어 병무청이 난색을 표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게다가 병무청에 보관된 징병 관련 서류의 보관연한이 겨우 3년이라 자료 확보에도 어려움이 많았다고 한다. 그럼에도 경찰이 끈질기게 수사 협조를 요청하자 마지못해 협조를 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이 기사를 작성한 기자도 경찰 수사가 변죽만 울리다 끝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런 탓에 같은 시기에 나온 보도라 하더라도 매체에 따라 면제 사유가 다르게 나온 경우도 있었다. 여담이지만, 심지어 어느 연예인의 경우, 자신이 그런 이유로 면제되었는지 몰랐다고 깜짝 놀라기도 했다. 약 4년 후 수사 당시 상황을 회고한 1998년 6월 29일자 국민일보 이경희 기자에 따르면, "가수 서태지가 만성위염으로, 탤런트 배용준이 약시로, 영화배우 박상민이 교통사고에 의한 아킬레스건 부상으로 면제대상자로 인정됐다."라고 언급했으며, 1994년 당시 수사는 사전조사 불충분과 특혜와는 거리가 먼 대상자를 문제삼는 바람에 유야무야됐다고 설명했다. 기사 어느 기사가 맞는지는 각자 판단하도록 하자.
  • 항간에는 머리를 기르고 신검을 받아 성격장애 판정을 받았다는 소문도 돌지만, 이는 1970년대에 태어난 2차 베이비붐 세대의 면제율이 높은 것을 그 다음 세대들이 오해하여 나온 루머일 가능성이 높다. 군 입대 정원은 청년 인구수와는 무관하게 60만 명으로 항상 정해져 있었고, 이들이 20대였던 1990년대 초에는 지금 기준대로라면 현역을 가야 할 사람들이 방위병으로 전출되거나 그것도 넘쳐나면 군면제 받는일도 흔했다.[27] 1990년대 초 방위 유머가 유행했던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실제로 통계청 자료에서도 1972년 출생자가 한국에서 세 번째로 많다고 나와 있다. 소위 '평발이라 면제됐다.', '시력이 너무 안좋아서 방위됐다.'가 현실이었다. 여기에 더해 서태지 본인이 인터뷰 등을 통해 밝힌 5급 판정 사유는 그냥 위장질환 수준이 아니라 위천공이다. 즉, 위에 구멍이 난 것이다. 실제로도 집안의 가족력이며 6촌 형인 신해철 역시 이 질병을 앓다가 의료사고로 사망했다.
  • 2020년대에 들어서는 이해가 안 갈 일이지만, 1990년대까지는 청년인구의 비율이 높았던데다가 복무기간도 2020년대 비하면 길었던 시절이라 신체적, 정신적인 조건을 까다롭게 따져서 군대를 내보냈기에 2020년대 기준으로는 2급이나 3급 판정을 받을만한 사람도 당시에는 방위병이나 상근예비역, 공익근무요원으로 선발되는 것이 일반적이었고, "서류면제"라고 해서 별 시답지 않은 이유로 면제되는 경우도 있었다. 심지어 장애인이 아님에도 근시라서 면제된 경우도 있었다. 이렇다 보니, 학력 미달이나 빈곤, 삼대 독자에 해당되는 사람이 면제가 되었다면 그려려니 하고 넘어갔고, 외아들이라도 특정 조건을 충족하면 6개월만 방위복무하는 경우도 엄연히 존재했기에 세부적인 면제 사유는 신경 쓰지 않았을 가능성도 있다. 그런 이유로 1950년대 후반에서 70년대 초반의 범 베이비붐 시대 출생자들은 병역 비리 여부를 쉽게 판단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으며, 5급 판정이라고 해서 신체나 정신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단정하기도 어렵다. 저 당시 5급이면 지금은 3~4급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 게다가, 청년 인구가 감소한 2020년대에도, 과거 방위에 해당되는 사회복무요원이 대기를 하다가 면제 판정을 받는 일이 간혹 있다. 2018년 12월에 나온 이 기사에 따르면, 병무청 신체검사 4급 보충역 등급을 받고 사회복무요원 소집을 기다리는 청년은 기사 작성 당시 시점으로 5만 8천 명인데, 지방자치단체, 소방서, 경찰서 등 공공기관이 내년에 소집할 사회복무요원은 3만 5천 명에 불과해 어쩔 수 없이 2만 3천 명은 2019년도에 소집되지 못하고 자동 면제되었다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현역 가기엔 애매한 사람들을 예전에는 방위로 돌렸는데, 방위도 수요가 한정되어 있다 보니, 남아도는 사람들이 면제가 되었던 것이다.
  • 그래서 당시 기사[28]에도 저학력으로 보충역 판정을 받은 것은 비난할 일이 아니라며 병역 기피가 아니라고 단언하는 발언이 나오기도 했다.
  • 당시 병역 비리 수사는 당시 민주당 소속이었던 강창성 의원이 국정감사에서 연예인과 정치인 자녀의 면제 비율이 너무 높다고 지적한 것을 계기로 갑작스럽게 이뤄졌다. 앞서도 언급되었듯이, 이미 보관 연한을 넘겨 자료가 폐기된 상황에서 1980년대 자료까지 부랴부랴 찾는 소동이 빚어진 게 이 때문이다. 그리고 이로 인해, 여러 연예인들이 마녀사냥을 당했다. 심지어 방위로 복무한 연예인이나 불우한 가정사로 면제된 연예인까지 싸잡혀서 소환되었다. 이 기사에서 강창성 의원이 언급한 탤런트 손 모씨는 누가 봐도 이 분이다. 이 분 문서에도 나오듯이, 당시 법으로 사생아는 자원입대조차 불가능했다. 군 출신이라는 강창성 의원이 사생아의 병역면제를 문제 삼은 것이다(...)
  • 그런데, 정작 강창성 의원 본인의 아들도 저 당시에 병역 면제를 받았다. 이는 김대업의 폭로로 불거진 이회창 아들 병역 비리 논란을 계기로 밝혀진 사실로, 강창성 의원 아들의 면제 사유 또한 이회창 아들과 동일하게 체중미달이었다. 게다가 이후 밝혀진 사실에 따르면 김대업이 조작을 한 것으로 드러나 이회창 아들의 병역 비리는 무혐의로 결론이 났고, 자연히 다른 정치인들 아들의 병역 논란도 묻혔다.

주위 인물과 팬들의 성화로 지금은 담배를 안 피운다고 한다. 중2 때 흡연을 시작했다가 고1 때 끊었다고 이야기한 적이 있지만, 완전히 끊지는 못한 것 같다. 자신의 컨텐츠에 대해 철저하게 관리하는 성격탓에 흡연장면이 노출되지는 않았지만, 8집 뮤직비디오의 촬영과정을 담은 다큐에서 자신의 테이블에 담배를 올려놓은 모습이 아주 잠깐 나오는 등 약간의 정황이 확인되었고, 이번 남탕, 여탕, 혼탕을 주제로 한 클럽공연(일겅) 때 전자담배를 피우는 퍼포먼스를 시전하여 팬들에게 충공깽과 심쿵을 선사하였으나 수년 전에 완전히 끊었으며 전자담배 연기는 단순 수증기라고 밝혔다. 최수종쇼에서도 담배 피우는 모습을 주변 사람들이 보기 싫어한다고 말했는데, 사실은 건강에 나빠서(하희라의 질문)가 아니라 뻐끔거리기 때문이라고[29].
사촌동생 강현구는 강개토라는 예명을 가진 싱어송라이터로 활동 중이다. 서태지의 영향인지 강개토 역시 본인 음악의 작사, 작곡, 편곡, 연주, 엔지니어링 등 모든 작업을 혼자서 소화한다. 본래는 서태지가 6집 발매 직전 강현구도 미국으로 건너와 있었던 상태라 서태지가 귀국하면 베이시스트를 맡기로 했으나, 귀국 날짜가 달라진 탓에 못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때 당시 서태지에게서 베이스를 선물 받았다고 한다.[30] 개토네이션이라는 밴드를 결성해 디지털 싱글을 중심으로 7장의 앨범을 발매하며 활동하는 중이다. 초창기에는 얼굴이 공개되면 괜히 서태지와 엮여 오해를 살까봐 가면을 쓰고 활동했으나[31] 현재는 가면을 벗은 상태. 결혼식 때는 서태지가 그에게 축하화환을 보내어 화제가 되기도 했다. 발매 하는 음악 대부분은 음원 순위 10위권에 랭크 되었으며, m.net 및 곰 tv 뮤직비디오 실시간순위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삼성, 웅진, 두산, 신한, 우리 등 다수의 기업체 음악작업을 진행했으며, '광고음악의 장르가 신세대들의 소비심리에 미치는 영향'이라는 논문을 발표하기도 했다. 현재는 여러 음악 콘텐츠 제작자로서의 활동은 물론 대학교 실용음악과 학과장으로 재직 중이다.
유머를 자주 구사한다. 그런데 그 유머들이 하나같이 썰렁하고 재미가 없다. 오죽하면 팬들조차 노잼이라고 까고 있는 중. 그런데 더 심각한 건 본인은 개그를 좀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얼굴은 속여도 유머감각은 못 속이는 50대 아재답다.

데뷔가 워낙 오래된지라 서태지와 가까이 있어보고 싶어서, 닮고 싶어서 등의 팬심으로 연예인이나 방송계 직종 등에 종사하는 서빠들이 꽤 존재한다. 덕분에 메이킹 영상 등을 보면 스텝들 중에 싸인을 받거나 실물을 봐서 헬렐레한 모습을 보이는 장면이 자주 등장한다. 연예인들에게도 "연예인들의 연예인'"소리를 들을 정도다.
우스갯소리로, 서태지가 컴백하면 음악 평론가들도 같이 컴백한다는 소리가 있다.

서태지가 출연한 광고 중에 서태지 본인의 목소리로 녹음되지 않은 광고가 있다. 당시 은퇴 후에 미국으로 떠난 뒤여서 미처 녹음을 할 수 없어 대역이 대신 녹음했다고 한다. 당시 대역을 맡은 사람은 KBS2 스펀지의 권재영 PD로, 2004년 2월 21일 방영분에서 드러났다.
자신의 단독 공연에 돈을 아끼지 않고 투자하여 매 공연마다 기록적인 수준의 물자가 투입된다. 공연 시장의 규모가 해외에 비해 많이 작은 편인 한국에서 전폭적인 투자 없이는 해보기 힘든 실험들을 시도할 수 있기 때문에 서태지가 컴백할 때마다 업계의 노하우가 새로 쌓인다고 할 정도. 비단 음향만이 아니라 연출에서도 황당한 요구를 해오는 클라이언트 때문에 골머리를 앓다가 어떻게든 만들어내는 경험이 공연 업계 전반으로 확산된다고 한다.[32]
서울토박이 집안 출신이다. 구한말 시절인 증조부 때부터 대대로 서울특별시 종로구 일대에 살았다고 한다.[33] 그래서인지 다른 가수들과 다르게 특유의 단어인 서울사투리들이 나오는 경우가 종종 있다.
과거 신해철, 기타리스트 탑과 스키장에 놀러갔는데 쉬고 싶다던 신해철을 부추겨 신해철이 상급자 코스에서 스키를 탔고, 결국 팔이 빠지는 부상을 입게 된 적이 있다. 당시 신해철이 응급실에 누워 괴로워하고 있을 때 서태지가 밖에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신해철을 구경했고[34] 그를 발견한 신해철이 급분노해 "저 XX가 서태지다!"라고 외칠 뻔 했다고 한다. 링크
굉장한 동안이다. 1972년생으로 2023년 기준으로 50대 초반으로 접어들었지만 양현석(1970년생)이나 이주노(1967년생)는 그 나이대에 비슷해[35] 보이는데 서태지만 아직까지 나이에 비해 매우 젊어보인다. 물론 40대에 들어서는 표정에 따라서 살짝 나이 든 모습이 나오기는 한다. 그래도 40대로는 절대 안 보인다. 이승환, 이선희와 함께 대표적인 동안 뮤지션 중의 한 명이다.
2018 제1차 남북정상회담의 환송식에서 '발해를 꿈꾸며'가 송출되었다. 평화통일을 기원하는 가사말과 김대중 전 대통령이 생전 좋아하던 노래 중 하나인 것이 큰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최근 자신이 살던 평창동 자택을 팔고 이사를 간 것으로 보인다.[36] 이후 서태지 본인이 2019년 크리스마스 안부글을 통해 이사한 것이 맞다고 이야기했다.
동(東)태지의 모아이가, 서(西)태지의 Human Dream를 꺾어 패배를 안긴 적이 있다.
양현석과 마찬가지로 '다르다'와 '틀리다'를 구분하지 않고 '틀리다'로 얘기한다.
1995년 2월에 문화 평론가 이동연 교수와 진행한 인터뷰에서 자신의 음악에 전위주의가 존재하느냐는 질문에 대해, 전위주의를 따른 전위음악은 기존의 음악적인 상식을 완전히 깨는, 화성이나 비트, 리듬 따위의 기본적인 음악의 구성요소들을 완전히 해체하는 형식이라 본다며, 그런 의미에서 아직 자신의 음악을 포함한 우리 대중음악에 온전한 전위주의는 없는 것 같다고 밝혔다. 앞으로 그러한 전위주의를 해 보고 싶은 마음은 많이 갖고 있다고 한다.[37]
2002 ETPFEST에 히데를 섭외하였고[38] 이에 생전 고인이 꿈꾸던 해외 진출의 꿈을 이뤄줬다며 유족들은 서태지에게 감사의 인사와 함께 고인의 기타 옐로우하트를 선물했다.[39]
머틀리 크루성공한 덕후이다. 머틀리 크루의 드러머 토미 리는 서태지가 만든 록 페스티벌인 이티피 페스티벌을 통해 내한하기도 했다. 다만 머틀리 크루드러머로서가 아니라, 자신의 밴드를 이끌고 내한한 것이다. 또한 2019년에는 머틀리 크루의 'girls girls girls' 뮤비를 보고 동경하던 바이크 면허를 땄다고 밝히기도 했다.
스매싱 펌킨스에 대해서는 오랫동안 여러 경로로 팬심을 밝혀 왔다. 링크 5집에서 스매싱 펌킨스 스타일의 얼터너티브 락인 Take Five를 선보이는 것을 시작으로 2001년 공식 홈페이지 서태지 닷컴을 오픈했을 때 ‘아이 앰 원’, ‘제로’, ‘서티-스리’ 등을 추천하기도 했으며, 2004년 배철수의 음악캠프에 출연했을 때는 “빌리 코건의 프로젝트 밴드 즈완의 ‘리릭’이라는 곡을 즐겨 듣는다”며 “스매싱 펌킨스는 나에게 꾸준하게 음악적인 자극을 주는 밴드”라고 말했다. 2010년 스매싱 펌킨스 내한 공연 때는 서태지컴퍼니가 후원사로 나서기도 했다.14년도에 9집 발매 전 업로드 된 잭 오랜턴 사진의 떡밥과 우연히 겹쳐져 '9집은 스매싱 펌킨스 풍의 얼터너티브 록 장르다. 스매싱 펌킨스와 콜라보다.' 등의 소문이 돌았던 것은 덤.[40]
기타 제작가 박민병은 어린 시절부터 서태지의 팬이었다. 서태지에게 헌정할 목적으로 12년 동안 건조한 목재로 제작한 기타는 서태지 라이브 공연에서 TAKE THREE를 연주하는 데 쓰였다. 박민병은 아픈 몸을 이끌고 공연에 참석했다.
서태지와 아이들 시절 수익배분이 꽤 화제가 되었다. 서태지와 양현석이 공통적으로 말한 부분은 활동 수익이 4:3:3 이었고 음반 수익은 서태지 본인이 밝힌바로는 6:2:2였다.# 이주노 말에 의하면 전체 수익의 절반은 서태지가, 나머지 절반을 자신과 양현석이 나눠가졌다고 한다.#[41] 혜자도 이런 혜자가 없다 온라인에서는 전설의 수익 배분이라고 불리는데, 그도 그럴 것이 서태지와 아이들이라는 그룹 자체가 하나부터 열까지 서태지 없이는 돌아가는 그룹이 아니었고 활동 수익은 그렇다 쳐도 음반에서 양현석과 이주노의 기여도를 생각하면 8:1:1이었어도 할 말이 없을 거라는 것.[42] 덕분에 서태지는 이 방면에서는 '보살'이라는 반응을 얻었다. 한편으론 그렇게 90년대 당시 몇십억을 벌고도 그 돈을 다 날린 이주노에 대해 안타깝다는 반응도 있었다. 서민 출신 양현석이야 알다시피 YG 엔터로 욕은 먹어도 사업은 성공했다.
파일:attachment/적절하게방한_1.jpg

전 프로게이머 김대기가 그와 닮은꼴이어서 그런지 서태지 관련 합성이 많다. 해당 사진의 원본은 2000년 8월 29일, 서태지가 김포국제공항[43]을 통해 미국에서 귀국하는 모습이다.


또한 서태지의 노래인 모아이를 적절히 개사해서 부른 영상인 서대기 - 적절하니 MV는 2008년에 디시 힛갤에 올라갔다.
2020년대 기준 10대들에게는 교과서로 접한 인물이다. 의 유튜브 채널 시즌비시즌에 언급되었다. 링크 관련 기사 중학교 역사 교과서에 서태지가 등장했다는 기사도 있다.
2022년 6월 13일, 강남 논현동의 9호선 언주역 인근 본인 소유 빌딩을 400억원에 매각했다. 이 빌딩은 2002년에 50억에 매입하여 2005년에 45억원을 들여 신축했는데, 20년만에 300억원 정도의 차익을 거둔 셈이다. 링크 부동산 업계에서는 서태지를 부동산 투자에 일찍 눈을 떠 성공한 몇 안되는 연예인 중 한 명으로 평가했다. 다만 이 건물이 서태지컴퍼니 사옥과 연습실이 있었던 곳이기 때문에 일부 팬들 사이에서는 갑작스러운 건물 매각 소식에 불안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하지만 여전히 그의 사이트는 여전히 활성화 중이기에 건물을 이전한 것일 뿐 회사를 아예 처분한 것은 아니다. 현재 서태지컴퍼니 업무는 서태지컴퍼니의 김민석 이사가 차린 스포트라이트라는 회사에서 맡고 있는데, 이 회사의 사무실은 마포구에 있다.[44] 이후 서갤 등에서 종로 묘동 건물도 매각했다는 루머가 나왔다.
서태지가 타던 것으로 추정되는 람보르기니 디아블로 차량이 매물로 올라왔다.해당기사, 매물링크
과거 서태지와 아이들 활동 당시 마약에 빠질뻔 한 적이 있었다고 한다. 당시 일부 가수들이 마약의 유혹에 빠졌을 때 서태지도 멋도 모른체 마약의 유혹에 빠질 위기에서 김종서"태지야! 안돼!! 그건 가짜음악이야!!!!" 라고 일침을 가하여 그때 정신을 차리면서 마약의 유혹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고 한다. 인생의 길라잡이가 되어준 김종서에게 지금도 늘 고마움을 느낀다고...
평창동 자택을 매각 후 서태지가 김포에 거주한다는 소문이 존재했으나 평창동 자택 등기부 등본을 조회해보면 서태지 부모님이 김포 아파트로 이사를 한 것이며 서태지가 부모님과 김포에 거주한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서태지를 잘 아는 한 연예 관계자는 "서태지 역시 한국에서 자녀교육이 힘들다고 판단했다. 서태지, 이은성의 딸이라는 꼬리표를 단 채 살아야 하는 딸의 미래를 위해 한국에서의 삶을 정리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2024년 12월 24일 오랜만의 근황 소식을 알렸다. 아빠로서 "딸이 만 10세, 곧 사춘기 올 듯…혼자 문닫고 들어가"라며, 요즘 딸이 바이올린에 빠졌다고 밝혔다. #


[1] 오히려 이 분류는 서태지가 아니라 대놓고 노무현의 선거 유세에 참여까지 했었던 6촌 형 신해철에게 더 어울리는 분류이다.[2] 애초에 서태지가 미국 랩을 한국 대중음악계에 가져왔던 이력을 생각해보면 반쪽짜리 논리다. 당시 미국인도 이라크 전쟁 반대하는 사람들은 꽤 많았다.[3] 한편 마이클 잭슨이 김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했다.[4] 재미있게도 괴짜가족 주인공 고테츠의 한국판 이름은 변태지.[5] 외계유입설은 프랜시스 크릭의 가설에서 비롯됐다. 기사 왓슨과 함께 DNA 구조를 밝힌 노벨생리학상 수상자 그 사람 맞다.[6] 괴수들 특유의 킹왕짱 먼치킨스런 이미지 때문인지 자신의 레이블 (괴수인디진)내의 뮤지션들 또한 그런 킹왕짱 먼치킨 뮤지션이 되길 바란다는 의미까지 포함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들은 굇수들이 되었다.[7] 본인 소유로 람보르기니 디아블로를 가지고 있었다[8] 당시 일본 자택을 촬영한 다큐에서 고가의 에어소프트 전동 소총도 볼 수 있다.[9] 2022년 연말까지 활동한 뒤 탈퇴했다.[10] 서태지 역시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시나위에서 베이시스트로 활동했기 때문이다.[11] 첫 장면에서 나오는 핸드폰이 서태지폰이다. 알람도 해당 기기에 수록된 서태지가 직접 녹음한 줄리엣 알람.[12] 후에 해피투게더에 출연하며 밝힌 바로는 서태지 역시 성시경의 팬이라서 허락해줬다고 한다.[13] 처음에는 워낙 좋아하는 트랙이기도 해서 편곡을 세게 가고 싶었지만, 선배님이 왜 자신에게 리메이크를 맡겼을까를 생각해보며 본인의 목소리에 맞게 말랑한 사운드로 바꾸었다고 밝혔다.[14] 출처 서태지 아카이브[15] 배우 박상민이 타는 차종과 동일한 모델이다.[16] 참고로 2대 중 한 대는 서태지가 08년 ETPFEST에서 관객 경품으로 내놓았다고 한다.[17] 일단 나름 차덕후답게 다양한 차를 소유하고 알려져있지만, 많은 매니아들에게 익숙한 것은 6집과 7집 당시에 타고 다녔던 에쿠서라 불리는 현대 에쿠스다. 물론, 토서카로 알려진 토스카를 소유한 뒤에 에쿠서의 행방은 묘연하다. 평창동 자택 혹은 서태지컴퍼니 건물 주차장에 있겠으려니 하고 추측만 무성하다.[18] 여담으로 라인음향은 10대 소년들로 구성된 밴드인 더 이스트라이트를 상대로 갑질을 한 그 기획사가 맞다. 이름만 바뀌었을 뿐 동일 회사이다.[19] 이주노의 소속가수 영턱스 클럽의 멤버 송진아는 심지어 이주노의 영향 때문에 스노우 보드에 빠져 나중에 가수 때려치고 스노우보드 선수가 되었음.[20] 잘 안 들리든지, 아니면 분명히 가사는 가산데 가사집에 적혀있지 않다.[21] 팬들과 방송, 그리고 음악 사이트에선 '내 사투로 내가 늘어 놓을래'로 단정지었다.[22] 티라키소리모올라키솔졉이라 들린다.[23] 다만 5집 Seo Tai Ji 앨범에 대한 이해가 어느 정도 필요하다. 개인적으로(특히 정신적으로) 매우 힘들었을 당시에 만든 앨범이었기 때문. 그 때문인지, Take 5를 자주 셋리스트에 올리기는 하나, 나머지 곡들을 셋리스트에 잘 안올리려고 하고 특히 Take 3는 Quiet night 투어에서야 첫 라이브가 나왔고, 방송 등에서도 5집에 관련된 이야기는 잘 안 하려고 한다. 게다가 실제 5집 전후 상황은 이지아와 관련된 문제가 얽혀있기 때문에 더더욱 이야기 하기가 어려운 것이 맞다고 볼 수 있으며 그에 대한 내용을 암호같은 느낌으로 적절히 표현해 가사로 만든 것으로 볼 수 있다. 즉, 아무리 매니아들이 Take 1에서 외계어로 바꾼 가사의 원 가사를 알았다고 하더라도, 오히려 실망할 가능성이 크다.[24] 마지막 줄은 3집 <다른 하늘이 열리고> 콘서트에서 추가로 불렀다. "야으야으" 에 가깝게 바이브레이션을 넣으면서 끝낸다.[25] 그러나 전 매니저 최진열의 증언으로 서태지와 아이들 시절 어려운 자리에서도 체면을 생각해서 술잔을 입에 대는 시늉이라도 하라고 했는데도 절대로 입에 대지 않았다고 한 것 보면 위가 안 좋아서라기보다 술에 취하는 것 자체를 싫어하는 걸로 보인다.[26] 폐간된 음악잡지 <뮤직라이프> 1995년 2월 호 또는 3월호에서 담당 기자가 언급했다.[27] 사실 이게 정상이다. 지금 한국의 청년 인구수는 대폭 줄었음에도 여전히 과거 병력 수준을 똑같이 유지하기 위해서 정말로 신체 및 정신적으로 문제있는 사람들까지 현역, 아무리 못해도 공익으로 전부 끌고가려는 무리수를 두는 것이다. 전세계적으로 징병제가 유지되는 국가중에서 한국만큼 기를 쓰고 전부 끌고가려는 혹독한 시스템을 유지하는 국가도 드물다.[28] 기자 본인의 기사를 갈무리한 블로그이다.[29] 담배연기를 들이마시지 않고 입안에 고인 것을 뱉어낸다는 뜻. 매니저였던 최진열 씨도 같은 말을 했다. 을 참은 채 입만 벌렸다 다물었다 하면 비슷한 모습이 나온다.[30] 서태지가 이전부터 사용해오던 빨강색의 베이스 기타라고 언급했다. 아마도 잭슨인 듯 하다.[31] 다른 개토네이션의 멤버들도 얼굴에 페인팅을 하였다.[32] 대표적인 예시로 2008 ETP의 등장씬에 쓰인 캡슐에만 어마어마한 돈이 들어갔다고 한다. 2009 ETP에는 2008에 쓰인 캡슐을 다시 쓰기 위해 보수하는데도 또 다시 어마어마하게 들어갔다고 한다.[33] 이와 비슷한 케이스로 같은 서울토박이 집안 출신인 손석희 앵커, 김태영 前 국방부장관, 성우 고 장세준 등이 있다.[34] 본인 말에 의하면 신해철을 보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신해철을 보고 몰려드는 사람들의 반응을 구경하고 있었던 것이라고(...)[35] 양현석서태지와 아이들 시절엔 노안이라는 말이 많았다. 얼굴이 젊을 때보다 많이 안 늙어서 지금은 노안까지는 아니다. 반대로 서태지는 데뷔 당시에도 동안인 편이었지만 늙는 건 양현석처럼 굉장히 느리고 적게 늙었다.[36] 무한도전에 나온 그 집 맞다[37] 이 인터뷰는 같은 해에 출간된 <새로운 유토피아를 꿈꾸며>에 실려 있다. 기존 인터뷰에 없었던 내용이 본인 피셜로 언급되니, 관심이 있다면 대형 도서관을 통해 찾아보길 바란다.[38] 파타와 히스도 Dope Headz라는 밴드의 멤버로 참석했다. 후기 영상을 보면 서태지와 대화를 나누는 파타를 볼 수 있다.[39] 요시키가 LUNATIC FEST 무대에서 옐로우 하트를 들고 나오는 영상이 공개되면서 다시 유족들에게 돌려준 것으로 보인다.[40] 실제로 9집은 신스팝 스타일의 일렉트로니카 락이였으며 크리스말로윈의 후반부에 나오는 'Oh My Jack O lantern was fake' 라는 비밀가사를 통해 서태지가 해당 떡밥을 통해 낚시를 했었다는 걸 보여준다.[41] 서태지와 아이들 음반 정보를 보면 알겠지만 거의 95%가 서태지가 혼자 다 했다. 그래서 양현석, 이주노 역시 이 부분에 대한 불만은 없었다고 한다.[42] 그나마 양현석은 '널 지우려 해'와 '이 밤이 깊어가지만' 작사에 참여했지만 이주노는 그마저도 없어서 서태지가 나눈 6:2:2가 얼마나 보살급 배분인지 알 수 있다. 그래도 춤은 이주노가 만들지 않았나? 게다가 서태지는 편곡에다가 음반 매니지먼트, 마케팅까지 혼자 다 했다. 사실 초기 기획사와 수익 배분 때문에 갈라선 서태지였던만큼 이런 부분에선 꽤 통 큰 양보를 한 것으로 보인다.[43] 첫 번째 사진의 '인천공항 국내선 2청사'는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다. 인천국제공항은 2018년에 개장한 제2터미널은 있어도 인천국제공항에 따로 마련된 국내선 터미널은 없다. 애초에 저 짤의 원본이 되는 서태지의 6집 활동을 위한 귀국 당시에는 인천공항 자체가 없었다. 해당 사진의 배경 또한 김포국제공항 국제선 청사이다.[44] 비활동기이므로 업무가 없어서 사무실 규모를 줄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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