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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KBO 총재 | }}}}}}}}} |
제11대 한국야구위원회 사무총장 | |
<colbgcolor=#001f63><colcolor=#fff> | |
출생 | 1949년 2월 18일 |
서울특별시 종로구 관철동 | |
사망 | 2016년 9월 8일 (향년 67세) |
서울특별시 송파구 삼전동 | |
묘소 | 국립서울현충원 제1충혼당 3층-303실-248호[1] |
국적 | [[대한민국| ]][[틀:국기| ]][[틀:국기| ]] |
학력 | 성동초등학교 (졸업) 대광중학교 (졸업) 성동고등학교 (졸업) 경희대학교 체육대학 (체육학 / 학사) 경희대학교 체육과학대학원 (사회체육학 / 석사[2]) |
신체 | 171cm, 78kg, B형 |
포지션 | 내야수 |
병역 | 대한민국 육군 제9보병사단 병장 만기전역[3] |
해설위원 | TBC 야구 해설위원 (1979~1980) KBS / KBS N SPORTS 야구 해설위원 (1980~2006, 2010~2014) |
경력 | 체육교사 KBO 규칙위원 (1998) KBO 상벌위원 (1999, 2003~2004) KBO 사무총장 (2006.5.8.~2009.3.31.) KBO 상벌위원장 (2007~2009) KBO 운영위원장 (2008~2009) |
본관 | 진주 하씨 |
보훈 | 참전유공자 (베트남 전쟁) |
종교 | 불교 (법명: 옥담) |
가족 | 배우자 강인숙 장녀 하승희(1978년생), 차녀 하태경(1979년생) 외손녀 3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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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야구 몰라요.
해설할 때 자주 쓰던 말버릇. 경기의 흐름이 변화무쌍해서 예측하기 힘들다는 뜻이고, 실제로도 그렇지만, 하일성이 해설자로 복귀하고 평이 떨어진 이후 "야구에 대해 진짜로 모른다는 자기고백 아니냐?"는 식으로 쓰였다. 이 말은 그의 인생에도 빗대어져 재평가를 받고 있다.
해설할 때 자주 쓰던 말버릇. 경기의 흐름이 변화무쌍해서 예측하기 힘들다는 뜻이고, 실제로도 그렇지만, 하일성이 해설자로 복귀하고 평이 떨어진 이후 "야구에 대해 진짜로 모른다는 자기고백 아니냐?"는 식으로 쓰였다. 이 말은 그의 인생에도 빗대어져 재평가를 받고 있다.
대한민국의 前 야구 해설위원 야구 사무총장, 체육교사.
본업이 따로 있음에도 불구하고 각종 방송 게스트로도 많이 나올 정도로 만담에 능하고 대중들의 인지도가 높았다. 2006년부터 2009년 4월까지 KBO 사무총장을 맡기도 했다. 허구연과 더불어 대한민국 야구 해설계에서 대중적인 인지도가 가장 높으며, 아직까지 방송 해설계에서 이 둘의 대를 이어 나갈 후계자는 아직 나오지 않고 있다고 평가한다. 2010년대 이후 세이버매트릭스의 확산과 함께 변화하는 야구관과 데이터에 기반한 좋은 해설을 보여주는 후배 해설자들이 다수 등장하면서 야구 팬 대부분이 오히려 하일성은 더 이상 야구해설자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평가했지만, 해설계에서 대표적인 인물로 봤을 때는 이 사람이다! 라고 떠오를법한 인물은 이 둘을 제외하면 없다. 실력적인 부분보다는 상징성의 측면에서 그 가치를 높게 평가받는건데, 재밌게도 허구연 역시 최근들어 비슷한 평을 듣고있다. 해설자는 그야말로 그 상황을 알기 쉽게 풀어서 설명해야 하는데 하일성과 허구연등 올드스쿨 계열의 해설자들은 맞던 틀리던 이런 모습에 익숙해서 라이트 팬들이 쉽게 야구를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런데 현재 해설자들은 기록을 달달 외워서 들려주는 유형이거나 유명선수 출신으로 이름값은 높고 특정 기술(타격이나 투구등)에 대해서는 박식하지만 정작 벌어진 상황에 대한 설명이 부족한 해설자들이 많다보니 아무 설명이라도 해주기를 기다리는 야구팬들 입장에서는 오히려 답답해하는 경우가 많다. 하일성과 허구연은 맞든 안 맞든 일단은 무슨 말이라도 떠들어 올드 시청자들의 궁금함을 해소해주는 스타일이라 환영받았다. 그나마 해설에 오래 몸 담은 이순철이 가능성이 있지만, 하일성과 허구연과 달리 프로로 성공한 선출이고, 프로 코치 감독 경력도 있다보니 해설경력이 차이가 많이 나고(허구연과 하일성은 30대 초중반부터 해설에 몸 담았다.), 시대변화와 더불어 해설자 하나만 온전히 하기 애매한 위치이다. 실제로 감독을 그만두고 해설자를 하던 중 코치를 하다가 돌아오기도 했고, 국가대표팀이나 KBO 내부단체 간부도 한다. 허구연과 하일성은 아예 다른 지도자 경력이 없던 건 아니나 해설자 경력에 비해 매우 짧거나 적으며, 전성기때는 해설만으로 유명해진 사람들이었다. 그에 반해 이순철은 지도자 겸 해설자 개념으로 일종의 반반 경력에 가깝다.
2016년 9월 8일 아침, 극단적인 선택으로 파란만장했던 생을 마감하면서 더 이상 그의 해설을 들을 수 없게 되었다.
2. 생애
2.1. 해설가가 되기 전
경상남도 함안군 출신인 아버지 하중원과[4] 서울토박이 집안 출신인 어머니 사이에서 무매독자 외동아들로 태어났다. 초등학생 때까지는 부족함 없이 자랐지만, 그의 행복은 오래 가지 못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부모님이 이혼을 한 것. 그 때문에 많은 방황을 했고[5] 당시 군 고급장교이던 아버지가 전방에 근무하는 통에 독자인 아들에게 신경 써주지 못한 사이 고등학교 때 하라는 공부 내지는 야구는 안하고 교내 폭력서클[6]의 두목 역할을 하며 퇴학 직전까지 갔다고 한다. 어머니를 떠나 아버지와 함께 지내게 된 하일성은 사실상 고아나 다름없었다. 아버지는 부대를 따라 거주지를 자주 옮겨야 했기 때문에 돌봐줄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어머니는 이혼 후 평소 알고 지내던 사람과 재혼했으며, 평소 '삼촌'이라고 부르며 따르던 분이 새 아버지가 된 것이다. 하지만 새 아버지와 함께 산 적은 없었다. 어머니와 새 아버지는 재혼 후 외국으로 나갔기 때문이다. 게다가 아버지도 얼마 후 재혼했으며, 재혼한 새어머니 사이에 이복 동생이 생겼다.[7] 하지만 아버지는 직업 특성상 부대를 따라 거처를 수시로 옮겨야 하였기 때문에 외할머니 슬하에서 자라게 되었다.
성동고 - 경희대학교에서 선수 생활을 했는데[8] 어머니의 간곡한 설득으로 마음을 잡고 야구와 공부에 전념하며 경희대학교에 진학했다. 그러나 부상으로 인해 일찍 야구선수 생활을 접고 대학 졸업 후 양곡종합고등학교에 부임하여 교편을 잡았다. 이후 환일고등학교로 전근을 갔는데, 얼마나 어렸을 때 사고를 쳤으면, 교사가 되자 어머니가 교감 선생님을 찾아가서 촌지를 줬다고 한다. 교감은 하일성을 불러 술 한잔 하면서 "이거 자네 어머니가 주신 돈으로 사는거야. 내 살다살다 교사 부모한테 촌지 받아보긴 처음이네." 라며 혀를 찼다고 한다. 그러나 제자들의 증언에 의하면 매우 엄한 체육선생님이었다고 하는 것으로 보아 교사로서는 문제 없던 인물이었던 듯. 당시 제자였던 사람의 증언에 의하면 방송 해설에서 하일성의 웃는 얼굴을 처음 봤다고 한다.
아내가 양곡종합고등학교 교사 시절 제자이다. 두시탈출 컬투쇼에서 남자는 끝까지 책임질 줄 알아야 해서 결혼했다고 말했다. 결혼 전 데이트할 때 계단에서 가위바위보를 해 오르내리는 놀이를 했는데, 평생 거칠게 막 놀았기 때문에 이걸 하고 있으려니 민망해서 미칠 것 같았다고 한다. 예전에 부인과 같이 나온 방송에서 '계단에서 가위바위보를 하게 될 줄은 몰랐다'며 웃으며 말했다. 부인이 고등학교 졸업 후 대학교에 진학하고 싶다며 결혼을 기다려 달라고 말하자, "너 없으면 나 어떻게 사느냐"고 설득해서 졸업하자마자 결혼했다고 한다.
베트남 전쟁에도 참전했다는데, 항구에 대기하고 있을 때 어머니가 돈가방을 들고 와서 높으신 분한테 주고 우리 아들 좀 빼 달라고 하는 걸 아버지가 뜯어말렸다고 한다. 대신 하일성한테 달러를 챙겨주면서 혹시 베트콩한테 잡히면 뇌물 주고 도망치라고 했다고. 그리고 은반지도 쥐어주었는데 베트남에서 물을 마시기 전 은반지를 물에 넣어 독이 있나 확인하라고 하셨다고 한다(반지 변색유무). 그래서 하일성 모친은 컬투한테 뇌물갑으로 놀림감이 되었다.
베트남에 가서 보급병으로 복무했는데 서류를 들고 미군들에게서 물자를 받아오는 역할이었다고 한다. 영어를 거의 몰랐지만 눈치로 의사소통해서 임무를 훌륭히 수행했다고 한다. 거기서 이름 때문에 미군들한테 김일성과 같은 집안 사람 아니냐며 오해를 샀다고 한다. 미국인들이 그의 이름이 '하', 성이 '일성'인 것으로 오해했기 때문이다. 후술하듯 2016년 사망 후 장지가 국립서울현충원인 이유가 이것이다.
2.2. 해설자 시절
환일고등학교에서 같이 체육교사 생활을 했던 배구해설가 오관영[9]의 추천으로 1979년에 동양방송 야구 해설을 시작하며[10] 해설계에 발을 들였고,[11] 이후 KBS에서 해설 커리어를 이어가면서 하일성은 한국에선 '야구해설하면 하일성' 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의 인지도를 쌓았다. 유수호 아나운서[12]와의 호흡은 아직도 레전드급. KBO 출범 2년차인 1983년부터는 아예 고등학교 교사직 까지 그만두고 해설가 활동에 올인하여 오늘에 이르렀다.해설가 초보 시절 선배인 김동엽으로부터 "이미 벌어진 상황을 설명하는 해설만 하지 말고 앞으로 벌어질 상황을 예측하는 해설을 해 봐라. 네가 자신이 있다면 과감하게 승부를 걸 필요가 있다"[13]라는 조언을 듣고 하일성 자신만의 해설 패턴을 만들었고, 그것이 야구팬들의 큰 호응을 얻으며 족집게, 하작두 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또한 1983년 한국시리즈 직전에 각 언론이 야구해설가들에게 결과 예상을 부탁했을 때, 대부분의 해설자들이 MBC 청룡의 우세를 예상했으나 하일성만이 해태 타이거즈의 우세를 예상해서 적중시켰고, 그가 국내 최고 야구해설가로서 입지를 굳히는 계기가 되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야구 몰라요"라는 야구 명언을 만들어 낸 장본인이며 자신이 예측하지 못한 방향으로 야구경기가 흘러가면 18번이 된 "야구 몰라요"라는 말 한 마디로 자신의 실수를 가릴 수 있는 훌륭한 방패로 써먹고 있다. 사실 이 방패를 꺼내들게 된 원인은 어느 한 경기에서 승부가 기울었다고 보여지는 9회말에 정규방송 관계로 방송을 끊게 되자, 당시 말공격 팀이 추격전을 시작한 상황이었음에도 불구, 경기 흐름상 앞서있던 초공격팀의 승리를 기정사실인 듯이 경기해설을 마무리 지어놨는데 나중에 집에 와서 보니 말공격팀이 역전극을 펼치면서 승리. 섣부른 예측과 단정으로 다음날 개쪽을 팔았던 게 원인이라고. 그래서 야구가 지상파에서 심심치 않게 중계되던 시절에 정규방송 관계로 중계방송이 경기 도중에 마무리되면, 아무리 한 팀이 일방적으로 앞서는 경기라고 해도 그날 경기에 대한 촌평을 남기면서 항상 이 말을 남겨서 쉴드를 치고 가게 되었다고 한다.[14]
(예) 오늘 경기 흐름으로 봐서는 XX가 이겼다고 봐야겠네요. XX가 4점을 앞서고 있는 상황에서 마무리에 XXX투수가 있고 9회에 OO이 하위타선부터 시작하거든요. 게다가 8회말에 OOO선수가 투런 홈런으로 쐐기를 박으면서 추격의 의지가 꺾였기 때문에 OO이 뒤집기는 힘들다고 봐야합니다. 하지만 야구 몰라요~, 경기는 끝나봐야 아는 겁니다.
또 하나의 명언은 X점차와 (X+1)점차는 틀리거든요. 문법상 '다르다'라고 해야 맞지만, 하일성은 많은 사람이 그러하듯 '다르다' 대신 '틀리다' 라는 단어를 더 자주 쓴다. 여기서 X에 해당하는 점수는 상황 당시의 점수에 따라 변한다...주로 뒤지고 있는 팀이 맹추격을 벌이는 상황에서 나온다. 특히 앞서고 있는 팀이 추격을 허용하다가 추가점으로 다시 점수차를 늘리는 상황이나, 뒤지고 있는 팀이 팀이 한방으로 동점을 만들 수 있을 정도의 점수차로 좁히는 상황서는 반드시 나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부분의 경우 X의 최댓값은 만루홈런 한방으로 경기를 동점으로 만드는 4이지만 간혹 난타전으로 진행되는 경우 "5점차와 6점차는 틀리거든요"까지는 나올 수도 있다. 아직까지 6점 이상에 대해서 위와 같은 해설을 들었다는 사람은 나오지 않고 있다.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 왜 틀린지에 대한 부연설명이 따라 나온다. 내용은 웬만큼 야구를 좋아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생각해낼 수 있는 상식적인 수준이다.
(예1) 아 여기서 OOO선수가 병살타로 기회를 날리네요. 경기 중반이고 여기서 한점만 내면 1점차인데 오늘 XXX투수 컨디션으로 봐서 1점차와 2점차는 틀리거든요. 1점차면 홈런 한방에 동점이 될 수도 있고, 주자가 출루하면 번트나 히트앤드런 등 다양한 작전을 구사할 수 있단 말이에요. 2점차면 주자가 누상에 나가도 강공을 쓸 수 밖에 없는 거에요. 선택의 폭이 좁아지니까 경기 후반으로 갈수록 아무래도 수비하는 쪽이 편해지죠. 왜 팀배팅을 안하고 여기서 욕심을 부렸는지 모르겠네요. 아무래도 혼자서 이 상황을 한꺼번에 해결하려고 한 게 아닌가 보여지네요.
(예2) 아 XXX투수 홈런을 맞고 3점차로 쫓기네요. 여기서 함부로 승부하지 말고 신중했어야죠. 3점차와 4점차는 틀리거든요[15] 4점차면 만루홈런을 맞아도 동점밖에 안된단 말이에요. 왜 굳이 잘 맞고 있는 OOO와 무리하게 승부를 해서 상대팀의 기를 살려주는지 이해를 할 수 없네요.
비슷한 표현으로 "주자가 N루와 N+1루에 있는건 틀리단 말이에요" 가 있다...물론 이 경우 붙어나오는 해설은 안타 한방이면 동점. 실책, 폭투...등등이 달려 나온다.
그리고
캐스터: 투아웃 주자 만루! 자 풀카운트 상황입니다!
하일성: 이 상황에서 투수가 던질 수 있는 구질은 몇 없어요. 빠른 직구 아니면 떨어지는 변화구로 상대 헛스윙을 유도해야 합니다.
캐스터: 투수 6구째!
하일성: 체인지업같은데요...
캐스터: 루킹 삼진!! 바깥쪽으로 아슬아슬하게 휘어지는 슬라이더로 루킹 삼진을 잡아내는 XXX선수 아 정말 대단합니다!!
하일성: 아~ 역(逆)으로 가네요. 여기서는 떨어지는 변화구로 헛스윙을 유도해낼 줄 알았는데, 슬라이더로 볼넷이라 생각하던 상대 타자를 가만히 삼진을 당하게 하네요. 역시 야구 몰라요.
하일성: 이 상황에서 투수가 던질 수 있는 구질은 몇 없어요. 빠른 직구 아니면 떨어지는 변화구로 상대 헛스윙을 유도해야 합니다.
캐스터: 투수 6구째!
하일성: 체인지업같은데요...
캐스터: 루킹 삼진!! 바깥쪽으로 아슬아슬하게 휘어지는 슬라이더로 루킹 삼진을 잡아내는 XXX선수 아 정말 대단합니다!!
하일성: 아~ 역(逆)으로 가네요. 여기서는 떨어지는 변화구로 헛스윙을 유도해낼 줄 알았는데, 슬라이더로 볼넷이라 생각하던 상대 타자를 가만히 삼진을 당하게 하네요. 역시 야구 몰라요.
투수 볼배합과 관련한 '역으로 가네요'를 즐겨 사용한다. 이 또한 본인이 틀린 것을 말 한마디로 때우는 셈이다. 또한 말이 긴 편이라 캐스터를 당황하게끔 만드는 경우가 있다. 대표적으로 이닝이 끝나고 광고가 나와야 할 타이밍인데도 계속 말을 이어나간다. 이런 상황에서 캐스터들은 반응해주지 않고 광고를 소환하는 것이 보통이다.
경기가 끝난 후 감독들의 인터뷰를 할 때에도 감독을 앞에 두고 본인 할 말(주로 결정타를 친 타자와 맞은 투수에 대한 평가)을 이어나가 감독과 아나운서를 뻘쭘하게 기다리게 할 때도 있는듯하다. 그의 이런 점은 아이 러브 베이스볼에서도 나타나서 마지막에 퀴즈의 정답을 공개할 때에도 왠지 모르게 보는 사람을 똥줄타게 만들 정도로 말을 길게 늘여서 결국 스탭롤이 절반쯤 지나서야 아나운서가 정답을 공개할 수 있었다.
하지만 괜히 해설계의 레전드가 아니라서 정확성 높은 예측을 자랑했다. 투수가 던질 구질과 코스 예측, 이에 따른 타자의 반응 등을 30초 전에 사전예고하는 모습을 빈번히 보였고, 특히 2006 WBC 때는 예상점수까지 맞히는 신기를 선보이며 '작두일성' 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그러나 감에 의한 해설을 하다 보니 상대적으로 데이터 야구에 대해서는 허구연에 비해 지식이 부족하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이런 견해에서 자주 끌어다쓰는 말이 하일성이 '김현수가 좌투수에게 강하다'는 개드립을 시전했다고 하는 것...인데 사실 이건 반만 맞는 말. 초년생 시절 장타툴을 키우기 전 김현수는 오히려 좌타자임에도 좌투수에게 강한 선수였다. 대표적인 예를 들면, 베이징 올림픽 일본전에서, NPB에서 좌타자 킬러로 통하던 좌투수인 이와세 히토키를 상대로 김현수가 대타로 투입됐을 정도[16]였으니(그리고 김현수는 안타를 쳐냈다). 그러다가 장거리 타자로 변모를 꾀하면서 타격포인트를 앞에 두고 스윙폭을 키웠고 그에 따라 좌투수 상대 타율이 떨어진 것이다. 하일성이 김현수를 보고 좌투수에 강하다고 했던 것은 과거였고 과거에 그말은 맞는 말이었다. 문제는 시간이 지난 뒤에도 그렇게 믿고 있다는 거다.
이 때문에 과거에는 원탑을 유지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오늘날에는 꾸준히 공부하는 상대적으로 젊은 해설자들에 비해서는 선호도가 상당히 떨어진 상황이다. 특히 위에서 말한 레퍼토리 말고는 해설이 진부해 야구를 좀 보는 사람에게는 호불호가 심하게 갈리는 스타일이다. 그래서 이런 개그도 나온다.
<적중왕 하일성甲>
못 맞히는 게 없는 일성甲
못 맞히는 게 없는 일성甲
노련하면 다 안타. 못 맞히는 게 없는 일성甲
못 맞히는 게 없는 일성甲
역시 못 맞히는 게 없는 일성甲 |
그외에도 2014년 8월 4일 LG와 넥센간의 경기에서는 "이제 변화구가 나오겠죠. (직구를 던지자) 아~ 역시 직구네요. 이럴땐 직구를 넣어야 적절하죠."라는 명언을 남기기도 했다.
자... 대단한 선수네요 증말 대단한 선수네요 밀어서 치네요... 역시 손민한선수가 슬라이더 피쳐거든요? 저... 절대 이거 시청자 여러분들이 오해하시면 안됩니다. 이제 강정호선수가 빠져있는 것이 심리적으로 박병호 선수가 좀 편한가봐요. (경기전에 물어봤을 때는 아니라고 하는데..) 편한 것 같은게 왜냐하면(예..) 자기를 쫓아오는 선수가 지금 경기를 못..못뛰고 있으니까 요때가 찬스다. 글쎄요.. 이건 시청자 여러분들이 오해하지 마세요 허허..(공교롭게도 강정호가 빠진 경기 바로 앞선 경기... 일요일 삼성전 경기부터 지금 홈런...) 지금 홈런포가 터져요... (홈런포가 터지기 시작했고 지금 타이밍이 정확하게 맞아...) 예... (가고 있거든요?) 혹시 또 강정호선수 팬들이 오해할까봐 그건 제가 양해말씀 구하고 하는 얘긴데...
목동야구장에서 열린 NC 다이노스와 넥센 히어로즈의 9월 5일 경기에서는 해설도중 박병호가 46호 홈런을 치자 위와 같은 발언을 해서 팬들에게 까이고 있다.
2014년 9월 7일 LG와 한화의 경기에서는 인필드 플라이가 수비를 위한 규정이라고 말하며, 정말로 야구를 모르는 것을 확인시켜줬다.[17] 이 경기 하나로도 왜 그가 해설자 자격이 없는지만 각인시켜줬다. 또한 이날 9회 말, 떨어지는 변화구에 약점을 보이지만 한때 30홈런을 날린 적도 있고 파워 하나는 진퉁으로 인정받고 있는 최진행 선수의 끝내기 홈런을 두고 생각지도 못한 선수라는 말을 네 차례나 반복하는 어이없는 해설을 보여주었다. 최진행 선수가 30홈런 시절의 폼을 일부 잃었고 2014시즌도 무릎 부상 등으로 컨디션 조절에 어려움을 겪어 왔으며 중요한 순간마다 클러치 능력 부재로 한화팬에게 아쉬움을 주었던 것은 사실이나, 야구 해설자라면 1군 경험도 제법 오래 된 중고참이자 꾸준히 홈런포를 쏘아올렸고 다른 툴들 보다 파워툴을 인정받는 선수의 홈런을 공갈포 취급해서는 안될 것이다. 차리리 "최근 최진행 선수의 클러치 능력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가 많았는데 결정적인 순간에 해줬네요"정도로 설명했어야 옳았다.
이뿐만이 아니라 일개 야구팬들마저 숙지하고 있는 사실도 모른다. 대표적인 예가 2014년 9월, LG전에서 박용택을 대뜸 1998년에 입단한 고졸출신 선수로 둔갑시키지 않나[18], KBO 사무총장까지 지냈다는 인간이 고양 원더스를 고양 윈더스라고 발음하기까지 하였다. 이쯤되면 평소에 공부를 하는지나 의심될 정도이다. 이 때문에 차라리 양준혁 해설이 낫다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왜냐하면 라디오볼에서도 언급된 사실이지만 양준혁은 말로 잘 전달을 못할 뿐이지 현장경험으로 인한 지식과 타격지론만큼은 매우 풍부하기 때문이다.
확실히 2005년까지의 하일성의 해설 능력에 대해 아무리 좋게 넘어가는 사람들도 해설현장을 떠났다가 돌아온 2010년부터는 매우 안 좋아한다.
결국 2014 시즌 후 KBS N 스포츠 측에서 이병훈과 같이 재계약하지 않고 KBS N 마이크를 놓는다.[19]
2014년 12월 16일에 박동희가 시사저널에 기고한 기사에서는 프로야구 중계에 새로 참여할 제5채널 측에서 영입할 지도 모른다는 관측이 있다고 한다. 오랜 해설 경력으로 30-60대 시청자층의 지지를 받아 호감도가 높다는 것이 그 이유다.
2014년 말 KBS와 계약 해지 이후에 새롭게 야구 중계에 참여하는 제 5채널의 영입설, 해설직 은퇴 등등 여러 설들이 오고가던 중, 2015년 1월 말부터 느닷없이 채널A나 TV조선를 위시한 몇몇 종합편성채널의 정치프로그램에서 정치 평론가로 출연하기 시작했다. 야구팬들의 대체적인 여론은 '야구도 잘 모르는 사람이 정치라고 잘 알겠느냐.'는 반응이다.
2015년 5월 20일부터 K STAR에서 이대호가 뛰고 있는 일본프로야구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의 홈 경기를 독점 생중계하게 되면서 해설을 맡게 되었다.
한편, 그의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서 새로이 부임한 송진우가 워낙 귀가 썩는 해설을 보여주는 데다가, 이용철이 갖가지 병크를 터뜨리면서 재평가받게 되었다.
2.3. KBO 사무총장 시절
<colbgcolor=#001f63> ▲ 2008 베이징 올림픽 결승전 직후, 야구대표팀 단장 자격으로 코칭스탭과 함께 찍은 사진[20][21] |
전국민적으로 유명한 해설자였기 때문에 한국 야구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사람 중 한 명이었으며[22], 신상우 총재 시절에는 이러한 영향력과 높은 인지도를 바탕으로 사무총장이 되었으나 막장 운영 덕에 신상우 총재와 함께 쌍으로 까였다.
2002년 한일 월드컵 열풍 때문에 야구계에서는 암흑기가 드리웠다가[23], 2006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으로 야구가 중흥기를 맞이하는 전환점을 마련했음에도 특별히 한 일이 없었다는 평가.
가장 큰 실책은 재임기간 동안 현대 유니콘스 매각 문제에서도 제대로 한 게 없다는 것이었다. 최악의 경우 7개 구단 체제가 될 뻔한 적도 있었다.[24] 다행히 현대의 선수단을 이어받은 히어로즈가 이장석의 역량으로 온갖 논란에도 불구하고 안정적으로 정착했다.
거기다 KBO 신인 드래프트에서 1차 지명 제도를 폐지함으로써 각 구단들이 아마야구에 투자를 하지 않게 되어 연고권 지역 내 유망주들의 씨가 말라버리는 최악의 전개로 치닫게 만들었다. 다만 1차 지명에 대해서는 하일성도 억울한 측면이 있는데, 하일성은 오히려 1차지명의 확대를 주장했던 사람이다. 구단들은 비용절감을 이유로 1차 지명 폐지를 주장해왔고, 하일성은 이와 반대로 1차 지명자를 3명까지 확대하려고 시도해왔다. 직전 드래프트와 달리 2006년에 있었던 드래프트에서 1차 지명자가 2명으로 늘어난 것은 바로 하일성이 강력하게 밀어붙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팜이 좋지 않은 구단들의 반대와 현대 유니콘스 매각의 걸림돌이 된다는 이유로 2008년 1명으로 줄고 2009년을 마지막으로 2010년에는 1차 지명이 없어졌다. 1차 지명 제도는 2013년에 부활했지만, 역시 지역 불균형 문제가 대두되면서 2022년부터는 다시 폐지되었다.
2.3.1. 넥센 돔구장 관련 발언
하일성이 KBO 사무총장으로 있었을 때, 프로야구 입성에 앞서, 이장석에게 고척 스카이돔 입주에 대해 약속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고척 스카이돔/문제점에서 봐도 알 수 있듯, 고척 스카이돔은 졸속추진의 결정체라서, 넥센 팬은 물론이고, KBO 리그 팬들 전체에게도 까이는 신세가 되었다.2.4. 사망
공식 영정 |
이후 그의 사연이 공개됐는데 자신의 소유였던 빌딩 매각 과정에서 지인에게 사기를 당해 돈은커녕 10억원의 양도세 등의 세금폭탄만 떠안게 된 뒤 빚을 갚기위해 4억여원의 사채를 끌어다 쓰는 등 힘들게 살았다고 한다.[26] #, # 이후에도 돈을 계속 빌린 것으로 추정되고 위의 사기 혐의로 피소된 건도 그 일환이 아니었나 추정된다. 아래 궁금한 이야기 Y 방영분을 보면 사기 혐의로 피소된 이후에 힘겹게 유지했던 삶의 의지를 서서히 놓지 않게 되었나 추정해 본다. 덧붙여 이 사연이 충격적이었던 것이 스스로 세상을 떠나기 직전까지 위에서 언급한 100억짜리 빌딩을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가 여전히 소유하고 있는 걸로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가 세상을 떠난 후에 KBO 측에서 직접 나서서 경기 전에 추모글을 전광판에 띄우고 묵념을 하기로 했다. 참조, 전광판에 뜬 추모글. 빈소는 서울 강동구 중앙보훈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되었고, 장례는 9월 10일 치러졌다. 장지는 국립서울현충원 충혼당으로 정해졌으며 위에 언급된 베트남전쟁 복무 경력을 반영한 듯. 여담으로 고인은 생전에 이미 베이징올림픽 야구대표팀 단장이라는 묘비명을 부탁한 바 있다.
궁금한 이야기 Y 2016년 9월 30일 방영분에서는 하일성이 극단적 선택을 하기 전 하일성의 소속사 대표 김 씨에게 마지막 유서가 담긴 봉투를 남겼다. 유서 내용에는 명예 실추로 인해 정신적으로 많이 힘들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고, 김 씨에게 수습을 당부하는 말도 적혀 있었다. 관련기사
3. 논란 및 사건 사고
3.1. 사기 혐의
2015년 11월 11일에 사기 혐의로 피소되었다. 지인에게 3,000만원을 빌린 후 변제를 차일피일 미루다 갚지 못해 결국 피소되었는데 조사 과정에서 계속 말이 바뀌는 걸 봐서는 처벌을 피하기 힘들 듯 하다. 일단 경찰에서는 검찰에 기소의견으로 송치한 상황이다.2016년 2월 26일 또 사기 혐의로 피소되었다는 기사가 나왔다. 검찰에 따르면 2014년 4월 김모씨에게 "NC 다이노스 김경문 감독과 잘 아는데 김 감독에게 부탁해 아들을 프로야구 구단에 입단시켜 주겠다"며 5,000만 원을 수수한 혐의를 받고 있다고 한다. 당시 하일성 본인은 돈을 받은 것은 사실이나 프로 구단 입단을 두고 받은 것은 아니라고 혐의를 부인했다.(관련기사)
4. 여담
KBO 일을 끝내고 해설로 복귀할 때 인터뷰에서 최고참인 자신이 어느 정도 받아야 후배들에게 욕을 먹지 않는다고 했다. 최고참인 하일성이 방송사에서 적은 돈을 받으면 후배들은 더 적은 돈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 그 이유다. 허구연도 거의 정확히 똑같은 말을 했다. 그렇게 많은 돈을 받아서 빌딩까지 샀었다.일개 팬들도 숙지하고 있는 선수의 데뷔연도나 기록도 전혀 모르는데다가, 명색이 KBO 사무총장까지 지냈다는 사람이 팀 이름도 제대로 외우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 이걸로도 까인다. 아마도 대수술을 3번(심장, 위, 담낭)이나 받았기에 수술 후유증 때문에 기억력 감퇴가 심해진 탓으로 보인다.[27] 하지만 이전에는 프로야구 중계를 주로 하던 때에도 고교야구중계를 종종하면서 일반인들이 모르는 고교선수들의 소개나 특징을 나오는 선수마다 줄줄이 설명해주던 사람이었다. 위 언급내용들은 그의 해설인생을 보자면 오히려 소수이고 진짜 기본도 모르는 사람이었다면 해설가로서 오래가지도 못했을 것이다. 괜히 해설 레전드가 된 것이 아니다.
한때 엄청난 골초였지만, 심근경색이 와서 죽을 고비를 넘긴 후[28]에는 금연했었다. 하지만 사무총장 시절부터 다시 피우기 시작했다.
꽤 잘 알려진 탈모인이다. 이 때문에 2000년대 중반에 가발 광고를 찍기도 했다. 아버지에게서 아들로 유전되는 '이모과다증'(귀속털과다증)이 있었다. 이 때문에 하일성의 사진에는 귀 바깥까지 털이 나온 모습이 보인다. 한 번은 털을 깎았더니 어머니가 장수털이라며 깎지 말라고 해 그 이후로는 깎지 않는다고 한다. 훗날의 일을 생각하면 심히 묘해지는 부분이다.
19살 때 친구 집에 놀러갔는데, 친구 아버지가 의사였다고 한다. 친구 아버지가 포경수술을 했냐고 물어 보길래 안했다니까 "이리와. 내가 해줄게." 해서 바로 병원 끌려가서 수술하고 나왔다고 한다.
1986년작 영화 이장호의 외인구단에서 야구 해설자 하일성으로 출연, 오혜성의 서부구단과 마동탁의 해태[29] 사이에 벌어지는 경기를 해설했다. 또한 2편에서도 특별출연했는데, 오혜성의 부상과 손병호 감독의 죽음 등으로 인해 뿔뿔이 흩어졌다가 다시 재결합한 외인구단과 마동탁이 진출했던 일본 프로팀과의 경기를 해설했다.
1980년대부터 KBO 사무총장 임명 직전인 2006년까지 가족오락관에 종종 출연했으며, 보통 1년에 2~3회 정도 출연했다. 2001년에는 축구인 신문선과 같이 출연하기도 했다.
2010년 1월 12일, 1 대 100에 1인으로 도전했으며 찬스도 안 쓰고 3단계에서 광탈했지만, 2단계에서만 무려 51명이 떨어진 덕분에 적립금 257만 원을 쌓았다. 인터뷰에서는 과거에 중계를 하다가 실수로 한일전에서 두 팀의 유니폼을 헷갈려 일본에 우호적인 편파중계를 했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82년 고교야구 교류전이었다. 조계현, 안성수, 류중일, 조양근 등이 주요 선수. 낮경기였고 중계석에 중계 모니터가 나오지 않아 헷갈린 상태에서정도영 아나운서와 함께 선공팀과 후공팀을 바꾸어 중계했다. 중계석에서 눈이 부셔 현장의 유니폼이 잘 구분되지 않았다고 한다. 시청자들은 당연히 화면에 투수와 타자의 유니폼이 명확히 보이는데 공수를 바꿔 거꾸로 중계를 했다. 1회초 정도가 진행되고 상횡을 파악해 사과방송을 했다. 1회초 중계 중 서울본사에서 연락이 와 쪽지가 전달됐는데 친선경기라 유니폼을 바꿔입었나 생각도 했었다고 한다. 큰 파문인데, 다행히 대한민국이 역전승을 했고 오히려 중계를 잘했다고 말했을 정도. 퀴즈쇼 사총사에서는 김성한, 김봉연, 이병훈과 같이 3대 영광의 사총사팀에 올랐다.
김태촌과 절친이었다고 한다. 예전부터 종종 언급을 했었고 김태촌이 세상을 떠나자 화환을 보내고 조문을 했다. 거기에 방송에서 김태촌이 청소년을 위하여 기부했다는 등의 호의적인 발언도 하자 아무리 절친이라지만 사회적 암이었던 김태촌이었던 만큼 이에 대하여 좋지 않게 보는 사람들이 많다.
2014년 8월 15일, 한화 이글스와 롯데 자이언츠의 경기에 경기 시작 시간인 6시가 되도록 나타나지 않았고 7시가 되어서야 도착했다. 일단 공식적인 해명은 고속도로에서 작은 추돌 사고가 나서 늦었다고 했는데, 대전광역시[30] 경기를 사직 경기로 착각하고 머나먼 부산광역시[31]를 다녀왔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2014년 들어서 하일성이 한창 삽질을 할 무렵에 터진 사건인지라 구장을 헷갈렸다는 루머가 나올 수밖에 없다.
KBO 사무총장직을 떠난 이후에는 생전 스카이엔터테인먼트라는 행사 및 공연섭외 업체를 운영하는 CEO로 겸업을 하였다. 행사뿐만 아니라 유명인사 강연 섭외도 같이 한 듯. 본인의 인맥이 상당한지라 이런 업체 운영이 가능한 듯 했다.
올드 야빠들에게는 굉장히 유명한 사기행위(?)가 하나 있다. 옛날 야구 중계 때 하일성이 "이제 다음 투수로는 아마 XXX가 올라올 것 같은데요."라고 발언하면 정말로 XXX가 올라와서 옛날 야구팬들은 하일성의 예지력을 찬양했는데, 사실 그냥 중계부스에서 몸을 푸는 투수를 보고 말한 것에 불과했다. 옛날엔 TV보다도 라디오 중심의 해설이 많았기에 이런 사기행위의 위력은 굉장히 컸다.
한때 서울 사투리로 지적받던 '하드랩두(하더라도)', '∼하걸랑요', '∼했그등요'[32][33] 등 말투를 완전히 버리지는 못했다. 대신 국어학자들의 조언을 받아들여 '∼라고 봤었을 때'(라고 볼 때) '이렇게 가져가야(이렇게 해야)' 등 비문 사용은 많이 고치기는 했다.
상기했듯이 해설위원이 되기 전에는 체육교사로 일했는데, 당시 제자들 중 유명인물로는 정두홍 무술감독,[34] 정치평론가로도 활약 중인 신율 명지대학교 교수[35] 등이 있다.
2010-2011 V리그 올스타전때 올드스타 경기 해설을 했었다.
야구게임 마구마구의 초기 해설자였다. 파트너는 권성욱. 또한 초기에는 프롤로그에서 내레이션으로 직접 게임 컨트롤을 가르쳐주기도 했다. 사망 후에도 음성은 삭제되지 않고 남아있다.
5. 가족오락관
※ 손미나 아나운서가 진행한 회차는 굵게 표시.- 1988년 12월 27일
- 1994년 11월 18일
- 1995년 1월 27일
- 1996년 11월 6일
- 1997년 2월 5일
- 1997년 12월 10일
- 1999년 1월 27일
- 1999년 9월 1일
- 1999년 12월 15일
- 2000년 10월 28일
- 2001년 8월 11일
- 2002년 3월 30일
- 2002년 8월 17일
- 2003년 2월 15일
- 2003년 7월 5일
- 2004년 1월 17일
- 2004년 7월 24일
- 2004년 9월 25일
- 2005년 1월 29일
- 2005년 6월 25일
- 2005년 11월 26일
- 2006년 2월 11일
- 2006년 4월 1일
6. 관련 문서
[1] 베트남 전쟁 참전용사 자격[2] 석사 학위 논문 : 투수의 선발 한계투구수에 관한 비교 연구 : 프로야구 선수단을 중심으로(1997).[3] 군번 11867065[4] 육사 9기 출신의 직업군인이었다. 군생활 중에 군납비리 사건에 연루돼 사형까지 선고받았으나, 감형을 받고 풀려났다. 말년에는 '하승백'으로 개명해 천주교에 귀의해 열성적으로 신앙 생활을 하다가 1986년 6월 경에 선종했다.[5] 1960년대에 이혼은 매우 드문 일이었던데다, 아버지는 육군 준장인 직업군인이고, 어머니는 이혼 후 외국으로 떠나버렸던 까닭에 외할머니 집에 맡겨져 있다가 외할머니 집을 나와 친구 집을 전전하며 기거하는 등 방황을 많이 했다고 한다.[6] 그냥 용어만 다른거고 일진을 말하는 것이다. 덧붙이자면 당시 서클 이름이 헤라클레스 였다고 한다.[7] 훗날 아버지가 사망했을 당시 유산은 모두 이복 동생한테로 갔다. 정작 본처 소생인 본인은 유산 상속 받는 것을 일체 거절했다고 한다.[8] 포지션은 내야수였다고 한다. 체육교사 이력 때문에 해설 초기에는 비선수 출신으로 아는 경우가 많았다.[9] 옛 배구팬이라면 누구나 다 아는 명 해설가였으며, 초대 고려증권 배구단 단장을 역임하였다. 배구해설을 30년간 하다가 1998년을 끝으로 일선에서 물러난 후 목회자로서의 길을 걷기도 하였고, 예일초등학교 교장을 역임하기도 하였다. 2018년 6월 25일 향년 79세를 일기로 별세하였다.[10] 당시 은행 업무와 TBC 해설위원을 겸하던 서동준이 한일은행 지점장으로 발령나면서 해설위원이 공석이 되었는데, 김성근이 그 대타로 들어왔다가 발음이 부정확한데다 "공이 이빠이 들어왔어요" 같은 일본식 표현을 하다가 바로 잘리고 하일성이 후임으로 들어온 것이다. 참고로 인천고 투수 출신으로 1950년대 인천 야구의 스타였던 서동준은 나중에 은행 고위간부를 지내는 등 금융계에서도 성공한 야구인으로 이름을 남겼다.[11] 해설가 데뷔 중계이던 1979년 6월 청룡기 고교야구 대회 경기 때 1회초부터 버벅대는 모습을 보이자 공수교대 타이밍에 당시 캐스터이던 조봉환 아나운서가 한잔 마시고 진정하라며 물컵을 건네길래 마침 목도 타던 차에 덥썩 원샷했는데, 마시고 보니 물이 아니라 소주였다고 한다. 하일성이 "아니 중계 중에 술을 먹이면 어떡합니까?!" 라고 버럭 하자 조봉환 캐스터는 "하형! 마셔둬요, 그게 약이 될겁니다" 라며 빙글빙글 웃었고, 그 말마따나 하일성은 술기운 덕분인지 해설이 술술 잘 나왔다고 한다. 비슷한 사례로 1950~1970년대 코미디계의 슈퍼스타였던 서영춘이 있는데 공연 경험이 일천하던 시절 무대 울렁증을 이겨내기 위해 소주를 마시고 무대로 올라갔다는 이야기가 있다. 믿기지 않겠지만 당시에는 운전면허 기능시험을 보기 전 소주 한잔으로 긴장을 풀었다는 어떤 일반인의 일화도 전해지던 시절이다.[12] 앞서 나온 오관영 해설위원과 유수호 아나운서는 KBS를 대표하던 배구 중계진이기도 했다. 배구중계 역시 전설이 아닌 레전드급. 그런데 정작 하일성 본인은 같이 중계를 해본 아나운서 중에 누가 제일 편하냐는 질문에 표영준 아나운서를 들었다. 유수호 아나운서나 표영준 아나운서나 야구중계에서는 둘다 레전드급 실력이나 유수호 아나운서는 중계 중에 자신의 야구지식을 곧잘 드러내면서 해설을 이끌고 가려는 경향이 있지만 표영준 아나운서는 자신의 야구지식을 되도록이면 드러내지 않고 자기의 말을 들어주는 서포터 역할에 충실했기 때문인 듯하다. 그렇다고 하일성이 유수호와 사이가 나쁘다는 건 아니다. 관련 기사.[13] 지도자로서는 다소 문제가 있었지만, 현장에서의 경험과 데이터를 바탕으로 한 해설 만큼은 호평을 받던 김동엽이었다.[14] 그의 방어 수단이었다고 할 수 있다.[15] MLB의 사례긴 하지만, MLB에서 최근 5년간 평균적으로 9회초 무사에서 세이브 요건을 충족하는 3점차에 등판시 홈팀 승률은 97%, 세이브 요건이 아닌 4점차때 홈팀 승률은 98%다. 의외로 3점차나 4점차나 크게 차이는 없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뒤집힐 확률로 따지면 2%와 3%가 되고 이는 1.5배나 되는 큰 차이이기 때문에 유의미하다고 볼 수 있다.[16] 당시 일본측 해설자는 그 상황을 보고 이와세를 정신적으로 흔들 목적도 있는 것 같다고 할 정도였다. 물론 김현수가 수위타자니까 좌우 안 가리고 잘 치겠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와세에게 좌타자를 낸다는 것은 그런 면까지 노린 것 아니겠느냐고 언급했는데, 그 정도로 일본에서 당시 이와세 상대 좌타 대타는 상상하기 어려운 미친 짓이었다.[17] 고의낙구로 일부러 떨어뜨려 상대 주자를 달리게 만들어서 억지로 병살처리하여 2개로 늘려버린다. 즉, 뜬공으로 잡을 아웃카운트 1개를 2개로 늘리면서 공격측의 불이익을 막아주는 규정을 수비를 위한 규정이라고 말해버린 치명적인 실수.[18] 이것도 반쯤만 맞는 말이다. 박용택은 98년 고졸우선지명을 받고 고려대에 진학, 대학을 졸업한 이후 2002년에야 LG에 입단했기 때문. 즉 '지명 방식'에 대한 얘기라면 맞는 말이지만 '입단 방식'에 대한 얘기라면 틀린 말이다.[19] KBS N측에 따르면 안치용, 조성환, 송진우 야구 선수 출신으로 해설위원을 새롭게 꾸리기 위한것이라고 했다.[20] 뒷줄 오른쪽 3번째가 하일성이다.[21] 자신의 묘비명을 '올림픽 야구팀 단장'으로 정했을 정도로, 그에게는 가장 자랑스러운 순간이었을 듯.[22] 1980~90년대에 각 구단 프런트와의 친분을 바탕으로 감독, 코치를 추천하는 등 팬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비화가 많다고 한다. 워낙 술을 좋아하고 친화력이 좋아서 프런트, 지도자, 선수를 가리지 않고 야구계의 마당발로 KBO 인맥의 시발점이자 종착점으로 평가하기도 한다.[23] 다만 축구계도 월드컵 효과를 받아먹지 못한 건 매한가지이다. 현재의 우수한 축구 인프라는 월드컵을 명분으로 정부나 각 지방자치단체에서 노력해서 확보된 것이지 축구계에서 노력해서 확보된 것이 아니며, 오히려 월드컵 4강이라는 엄청난 호재를 전혀 살리지 못해서 지금까지도 K리그는 관중동원이 잘 안 되는 상황이다.[24] 허나 현대 유니콘스 문서를 보면 알겠지만 이 당시 현대 문제는 생각보다 복잡했다. KBO가 어리숙한 모습을 보인 것은 맞지만, 이미 야구기금이고 뭐고 싹 다 유니콘스에 소진된 상황에 아무것도 한 게 없는 모기업 하이닉스가 버티는 상황에서 현대는 매각이 사실상 불가능했으며 히어로즈처럼 해체 후 재창단만이 답인 상황이었다.[25] 유두열이 사망한 지 1주일 만에 일어난 일이다. 장효조와 최동원도 1주일 간격으로 별세하였다. 비슷한 시기에 장성호 해설 위원이 선수 은퇴 낭독시에 유두열과 하일성을 언급하였다.[26] 그가 떠안은 빚이 하필이면 변제도 안되는 세금이라 무리하게 사채를 끌어다 쓴 것으로 추정된다.[27] 하지만 박용택의 경우 실제로 1998년 신인지명에서 고졸로 뽑혔는데 자신이 대학진학을 원하여 대학 졸업 후 2002년에 입단한 것이라는 점은 참고해야 한다.[28] 다만, 당시 이주일의 폐암 진단 소식의 임팩트가 더 강할 정도로 연예계가 더 떠들썩했을 정도여서 묻혔다. 당시 의사가 담배 다시 피면 진짜 죽을 수도 있다고 경고하듯이 얘기했다.[29] 이현세 원작 만화에서는 유성구단. 영화에서는 해태로, 유니폼도 그대로다.[30] 한화 이글스의 홈구장[31] 롯데 자이언츠의 홈 구장[32] 했거든요가 아니다. 했거등요 했그등요와 같이 콧소리가 들어간 느낌으로 등으로 말하는 것이 서울 방언이다.[33] 이 말투는 해설자 시절 송진우도 많이 썼다.[34] 스타 골든벨 초창기에 유명인 4명의 전직을 묻는 문제에서 하일성의 전직이 언급됐고, 정두홍이 직접 인증. 정작 하일성은 본인이 전직 체육교사였음을 잊는 바람에 틀리면서 탈락했다.[35] 고교시절 하일성이 무척 엄한 선생님이었다고 언급한 적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