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라음악상 수상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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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어: El Sistema[1]
공식 명칭은 Fundación del Estado para el Sistema Nacional de las Orquestas Juveniles e Infantiles de Venezuela, 번역하면 '베네수엘라 국립 청년 및 유소년 오케스트라 시스템 육성재단' 이다. 약칭은 FESNOJIV.
공식 사이트
1. 개요와 약력
이 제도의 발안자는 경제학자인 호세 안토니오 아브레우(José Antonio Abreu)다. 음악가 집안에서 태어나 어릴 적부터 아마추어 관현악단인 라라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에서 바이올린 주자로 활동한 바 있고, 대학에서는 경제학과 통계학을, 음악원에서는 피아노와 하프시코드, 파이프오르간을 비롯한 건반 악기 전반의 연주법과 작곡, 지휘를 동시에 전공했다.당시 베네수엘라에도 물론 클래식 음악이 보급되어 있었고 프로 관현악단도 베네수엘라 교향악단과 술리아 교향악단 두 단체가 존재하고 있었지만, 대부분 상류층의 전유물이나 마찬가지였고 악단 단원들도 대다수가 외국인-특히 유럽인-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이 때문에 베네수엘라인 연주자들은 아무리 실력이 좋아도 악단 입단이 대단히 힘들었고, 심지어 음악 자체를 포기하고 다른 직업을 알아보는 경우도 대단히 많았다.
아브레우는 이러한 특정 계층 위주에 외국의 도움만으로 명맥을 잇던 베네수엘라 음악계를 일신하려고 했는데, 다만 궁극적인 목적은 클래식 음악의 세력 확장이기 보다는 일자리를 얻지 못하고 좌절하는 젊은 음악인들의 자립을 돕고, 더불어 뒷골목의 어린이나 청소년들에게 음악을 가르침으로써 범죄에서 벗어나게 하려는 것이었다.[2]
하지만 아브레우 자신만의 힘으로 이 원대한 계획을 실현하는 것은 불가능했고, 1975년 부터 자신의 뜻에 동감하는 후원자들의 지원을 부탁하고 청소년 연주자들을 그러모아 지하 주차장이나 공장, 성당 등에서 리허설을 하는 어려움 속에서 시작했다. 처음 모인 연주자들은 겨우 여덟 명에 불과했는데, 처음에는 베네수엘라의 젊은 음악인들 만으로 건실한 관현악단 하나를 만들어 보자는 목적과 함께 이 연주자들이 후배들을 기르고 돌보는 교사이자 행정가로 성장하도록 하는데 주력했다.
이렇게 해서 선배들이 후배들을 모아 가르치고 또 그렇게 교육받은 이들이 가르치고 하는 식으로 점점 숫자가 불어났고, 몇 년 지나지 않아 정규 관현악단을 만들 정도의 인원이 모이게 되었다. 1977년에는 최초의 청소년 악단이었던 호세 란다에타 국립 청소년 관현악단을 이끌고 스코틀랜드에서 공연했는데, 이 때 성공을 거두어 자신의 프로젝트를 국가 사업으로 확장시킬 수 있었다.
때마침 베네수엘라에서 대규모 유전이 발견되어 국가 예산이 급등하게 되었고, 아브레우는 이러한 상황을 적극 이용해 정부에 자신의 계획을 홍보하면서 예산 확보에 주력했다. 결국 거액의 정부 보조금이 이 계획에 들어가기 시작했고, 수도인 카라카스 외에도 베네수엘라 전역에 걸쳐 어린이/청소년 관현악단과 이 악단을 양성할 교사, 연주에 사용하는 악보와 악기 등의 교보재가 적극적으로 보급되기 시작했다.
아브레우는 이 공로로 1979년에 베네수엘라의 국가 음악상을 수상했고, 1995년에는 유네스코의 국제 청소년 관현악단과 합창단 조직망 발전을 위한 특별 대사라는 직함도 받았다. 2000년대 중반의 집계로는 프로젝트 개시 이후로 40만 명 이상의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지원을 받았고, 해마다 수혜자들의 숫자가 꾸준히 늘고 있다.
2010년 6월에 발표된 엘 시스테마 본부의 공식 통계에 따르면 베네수엘라 각지에 221개의 음악교육 센터(스페인어로 누클레오)가 개설되어 6000명의 음악 교사들이 활동하고 있고, 이들 누클레오를 기반으로 음악 입문 단계의 유아들을 위한 관현악단 112개, 취학 전 단계의 어린이 관현악단 83개, 어린이 관현악단 156개, 청소년 관현악단 145개 단체가 활동하고 있다. 이들 악단에 소속된 학생들의 숫자는 29만여 명에 달한다. 관현악 외에 학생들의 소모임으로 꾸려지는 실내악 단체들도 363개가 활동하고 있고, 육체적/정신적 장애를 가진 아이들을 위한 특수 음악교육 프로그램도 20개가 마련되어 있다.
성공 사례가 해외에도 전파되면서 1990년대 이후로는 베네수엘라 뿐 아니라 멕시코, 아르헨티나, 우루과이, 브라질, 칠레, 볼리비아, 페루, 콜롬비아, 파라과이, 코스타리카, 엘살바도르, 과테말라, 쿠바, 자메이카, 트리니다드 토바고 등 거의 모든 중남미와 카리브해 국가들에도 이 제도와 체계가 도입되고 있으며, 심지어 미국에서도 2009년 부터 보스턴 등 동부를 중심으로 '엘 시스테마 USA' 라는 이름으로 도입하기 시작했다.
2010년에는 설립자 아브레우가 서울평화상을 받았고, 비슷한 시기부터 한국에서도 비슷한 형태의 청소년 관현악단 창단 시도가 이루어졌다. 한국형 엘 시스테마를 표방하는 '꿈의 오케스트라' 사업이 문화체육관광부와 문체부의 산하 공공기관인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주관으로 이루어지고 있으며, 대한민국 교육부와 각 교육청에서도 학생 오케스트라 사업을 벌이고 있으나, 원본과는 조금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2. 운영 원리와 재정 지원
엘 시스테마의 운영 원리는 비교적 간단한데, 우선 관현악단이나 합창단에 들어가려는 아이들이 있으면 별도의 가입비 없이 베네수엘라 각지에 설립되어 있는 누클레오에 들어갈 수 있다. 오히려 음악을 배우는 데 들어가는 비용부터 공연 관람 혹은 참가비와 특별 세미나 같은 야외 활동비 등, 다른 영재교육 프로젝트에서는 참가자가 지불해야 하는 거의 모든 돈이 무상 지원된다. 관현악단의 경우 도난이나 파손 등의 위험 때문에 누클레오 내에서만 쓸 수 있다는 조건이 붙기는 하지만, 악기도 학생 개개인들에게 공짜로 주어진다.연습과 교육은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의 학교 수업 후에 평균 4시간 가량 이루어지며, 교사들의 지도 외에 선배들이 후배들을 지도하는 시간도 마련된다. 학생들은 대부분 소정의 오디션을 거쳐 관현악단이나 합창단 단원으로 편입되고, 합주와 합창 위주의 실기 교육을 받을 수 있다. 마약 사범이나 강도/절도 등의 범죄를 저지른 청소년들도 웬만한 중범죄자가 아닌 이상 참가할 수 있으며, 오히려 교화 효과를 보기 위해 소년원에까지 음악 교육을 위한 교보재와 강사를 적극 투입하는 등 참가를 권장하고 있다.
하지만 엘 시스테마는 다른 음악교육 프로그램들과 달리 음악인 양성이 궁극적인 목표는 아니고, 아이들과 청소년들에게 음악 교육을 통해 올바른 사회화를 유도하며 범죄와 마약 등의 위험 요소로부터 구해내는 것이 최선의 목표로 설정되어 있다. 그 만큼 음악적인 목표 뿐 아니라 건전한 사회 환경을 성취하는데 주력하고 있으며, 이 프로젝트에 참가하는 어린이와 청소년들의 90% 이상은 청소년 범죄에 노출되기 쉬운 저소득층 가정 출신으로 집계되고 있다.
2007년 부터는 일반 청소년 뿐 아니라 연령에 관계없이 범죄를 저지르고 교도소에 수감 중인 재소자들을 단원으로 하는 '교도소 교향악단' 들까지 운영하고 있으며, 이미 상당한 교화 효과를 보고 있다고 한다. 장애인을 위한 특수 음악 교육도 적극적으로 실시하고 있는데, 시각장애인 청소년들이 점자로 표기된 악보를 익혀 일반 청소년들과 함께 관현악단에서 연주하는 경우도 많다. 심지어 소리를 아예 들을 수 없는 농아 청소년들에게도 수어로 노래하는 법을 지도하는 마노스 블랑카스[3] 합창단 같은 장애인 음악 단체들도 엘 시스테마의 수혜를 받고 있다.
또 2010년대 초반에는 바로크~초기 낭만 음악 연주의 세계적인 추세인 시대연주에 부응해 시몬 볼리바르 청소년 바로크 관현악단도 창단했고, 자국의 민속음악을 전문으로 연주하는 시몬 볼리바르 아프로베네수엘라 악단과 시몬 볼리바르 라틴-카리브 악단, 과리코 주 알마 야네라 청소년 악단, 록 음악 전문 밴드인 시몬 볼리바르 심포닉 록 악단까지 계속 창단되면서 이 프로젝트를 굳이 클래식에 국한하지 않고 음악 장르 전반으로 확대하는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
이외에도 이들이 사용하는 악기의 제작과 수리를 전담하는 악기 관리 센터도 정식 부속 기관으로 운영되고 있으며, 관현악단 운영에 필요한 행정, 운송, 의료, 녹음/녹화, 자료 수집과 분류, 대내외 홍보를 위해 근무하는 직원들의 숫자도 계속 늘고 있다.
전국적인 프로젝트인 만큼 사업비 액수는 매우 높은데, 재단 발족 후 베네수엘라에 수립된 모든 정권에서 계속 거액의 예산을 배정하고 있을 정도로 국가가 쏟는 관심도 유별난 편이다.[4] 전체 운영비의 90%에 육박하는 정부의 지원금 외에도, 이 프로젝트에 관심을 가지고 지원하는 세계 각국의 기업이나 은행, 국제 기구 등의 지원금도 받고 있다. 그 중에는 베네수엘라와 영 좋지 않은 관계인 미국의 저명 인사들도 포함되어 있고, 이 프로젝트의 유명세가 전세계로 확대되면서 지원금 액수도 점점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3. 출신 유명 음악인들
물론 엘 시스테마가 전문 음악인의 육성이 최대 목표는 아니라고 해도, 이 과정에서 배출된 유명 음악인들도 상당수 있다. 음악인이 되기 위해 진로를 정하면 학생들은 오디션을 거쳐 계속 윗 단계의 전문적인 관현악단이나 합창단에 편입할 수 있고, 카라카스의 시몬 볼리바르 음악학교 뿐 아니라 각지에 개설된 음악원과 음악학교 등에서 전문적인 지도를 받을 수 있다. 엘 시스테마에 속하는 음악 교육 기관에서는 세계 각지에서 초빙된 강사들이 거의 무상으로 레슨을 해주고 있다.[5]가장 유명한 인물은 지휘자 구스타보 두다멜(Gustavo Dudamel)로, 수도 카라카스가 아닌 바르키시메토라는 소도시 출신이었지만 엘 시스테마에서 후원하는 바이올린 레슨 수업부터 시작해 불과 13세 때 고향 실내 관현악단 부지휘자가 되면서 지휘 이력을 쌓기 시작한 인물이다. 엘 시스테마에서는 연주 뿐 아니라 지휘도 그 나이 또래의 아이들이나 청소년들에게 하도록 권장하고 있는데, 두다멜도 예외는 아니어서 불과 17세 때 엘 시스테마를 대표하는 청소년 관현악단인 시몬 볼리바르 청소년 관현악단의 음악 감독에 발탁되었다.
두다멜은 2004년에 독일의 밤베르크 교향악단이 주관하는 구스타프 말러 국제 지휘자 콩쿠르에 참가했고, 여기서 우승하면서 세계적으로 유명해지기 시작했다. 같은 해 엘 시스테마를 다룬 '연주와 투쟁(Tocar y Luchar)' 이라는 제목의 다큐멘터리 영화가 국제 영화제에 입상하는 등 해외의 관심도 부쩍 높아지게 되었다. 두다멜은 2010년 현재까지도 시몬 볼리바르 청소년 관현악단 음악 감독을 맡으면서 스웨덴의 예테보리 교향악단 상임 지휘자와 미국의 로스앤젤레스 필하모닉 음악 감독을 겸임하는 등 한창 잘나가고 있다.
콘트라베이스 주자인 에딕손 루이스(Edicson Ruiz)도 엘 시스테마를 통해 전업 음악인으로 성장한 대표적인 인물이다. 루이스도 카라카스의 빈민가 출신으로, 가정을 버린 아버지 대신 슈퍼마켓에서 생계 유지를 위해 알바를 뛸 정도로 가정 형편이 좋지 않았다. 뒷골목 아이들과 어울리면서 점점 거칠게 행동하던 루이스를 보다 못한 이웃 사람들이 엘 시스테마에 참가시켜 보라고 권했고, 열한 살 때 가입한 루이스는 우선 비올라로 시작했다가 콘트라베이스로 바꿔 연주 활동을 시작했다. 루이스는 그 후 열다섯 살 때 미국의 인디애나폴리스 국제 콘트라베이스 콩쿠르에서 1위로 입상했고, 2년 뒤에는 세계구급 본좌 관현악단 중 하나인 독일의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정단원이 되었다. 10대 청소년 연주자가 베를린 필에 입단한 예는 지금까지 불과 세 번 뿐이었고, 그것도 창단 사상 최연소에 유럽이 아닌 남미 출신으로도 최초라서 화제가 되었다.
이외에도 전세계의 거의 모든 무황(리드 없는) 목관악기를 능란하게 다루는 것으로 유명한 플루트 주자 페드로 에우스타체(Pedro Eustache)[6] , 바이올린 주자 겸 지휘자인 에드워드 풀가르(Edward Pulgar), 오보에 주자 출신 지휘자인 나탈리아 루이스-바사(Natalia Luis-Bassa) 등이 엘 시스테마의 수혜자로 해외 활동을 활발히 하고 있는 음악인들로 손꼽힌다.
두다멜과 함께 국제적인 명성을 얻은 시몬 볼리바르 청소년 관현악단도 1990년대부터 미국 음반사인 도리안에서 음반을 취입하기 시작하면서 해외에 알려지기 시작했고, 2006년에는 메이저 음반사인 도이체 그라모폰에서 베토벤의 교향곡들을 담은 음반을 내놓아 화제가 되었다. 2014년 현재까지 두다멜의 지휘로 모두 여덟 장의 CD와 두 장의 DVD가 출시되었고, 대부분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이외에도 엘 시스테마에서 배출된 연주자들이 결성한 여타 단체들도 음반/영상물 업계에서 조금씩 주목을 받고 있다. 2003년에 금관악기와 타악기 주자들이 모여 만든 브라스 밴드인 베네수엘라 금관 합주단(Ensemble de Metales de Venezuela)은 창단된 지 4년 만에 베를린 필의 트럼펫 주자 출신인 토마스 클라모어의 지휘로 유럽 순회 공연을 개최해 호평을 받는 등 상당한 수준의 연주 실력을 보여주고 있다. 이 순회 공연 중 베를린의 콘체르트하우스에서 가진 공연 실황은 유로아츠의 DVD로 제작되었고, 한국에서도 구할 수 있다.
2012년에는 시몬 볼리바르 청소년 관현악단의 수석 현악 주자들인 알레한드로 카레뇨(제1바이올린), 보리스 수아레스(제2바이올린), 이스멜 캄포스(비올라)와 아이몬 마타(첼로)가 결성한 시몬 볼리바르 현악 4중주단(Cuarteto de Cuerda Simón Bolívar)이 도이체 그라모폰과 전속 계약을 맺었고, 이듬해 2월에 히나스테라와 드보르자크, 쇼스타코비치의 현악 4중주 작품들을 한 곡씩 골라 데뷰 앨범을 내놓았다.
2013년 1월에는 대규모 콘서트 밴드인 시몬 볼리바르 청소년 심포닉 밴드(Banda Sinfónica Juvenil Simón Bolívar)가 베네수엘라 금관 합주단을 육성한 바 있는 토마스 클라모어의 지휘로 독일 음반사 게누인(Genuin)에서 맘보와 팡파르!(Mambos y Fanfarria!)라는 제목의 데뷰 앨범을 내놓았다. 2014년 7월에는 전년도에 베네수엘라 국립 어린이 관현악단이 오스트리아의 잘츠부르크 음악제에서 사이먼 래틀의 지휘로 말러의 교향곡 1번을 비롯한 곡들을 연주한 실황 영상이 C Major를 통해 DVD와 BD로 발매되었다.
4. 비판
미디어에 비춰진 엘 시스테마는 장미빛으로만 포장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언론 포장과는 다른 어두운 이면이 많다는 증언과 비판이 나오고 있다. 영국 가디언지는 엘 시스테마의 이면에 감춰진 모습들을 폭로하면서 엘 시스테마를 절대적 폭압의 모델(model of absolute tyranny)이라고 직설적인 비판을 가했다.우선 엘 시스테마의 설립자 호세 안토니오 아브레우는 박애주의를 위해 이 단체를 만들었다고 주장하지만, 실제로는 정치적인 목적에서 창설했다고 한다. 또 엘 시스테마와 우고 차베스 정권과의 유착도 비판받는 점 중 하나다. 2007년 차베스는 misión(미션사업– 차베스가 1999년 취임한 이래로 '21세기 사회주의'를 실현한다는 명목으로 전개한 사회개혁운동사업)의 핵심 사업으로 엘 시스테마를 선정하여 이후 전폭적으로 지원해 왔다. 2010년부터는 아예 대통령부가 엘 시스테마를 관할하게 될 정도였다. 엘 시스테마는 차베스 정권의 정책적 지원으로 급성장하면서 정권 홍보를 위한 도구로 사용되어 왔으며, 국내외 언론으로부터 차베스 정권의 나팔수라는 비판을 받아왔다. 베네수엘라 야당은 엘시스테마는 차베스의 실정(失政)을 호도하는 정치쇼라는 비판을 가하고 있는 실정이다. # 또한 막대한 예산을 필요로 하는 베네수엘라의 엘 시스테마는 2000년대 고유가 시대의 혜택을 누렸던 원유 매장량 세계 1위 베네수엘라의 특수한 상황이 낳은 결과였다는 평가도 있다.
2010년말 현재 서구에서는 엘 시스테마의 프로파간다적 오용에 대한 비판이 크며, 엘 시스테마 측 역시 이러한 비판을 가장 큰 위험 요인으로 인식하고 있다.
엘 시스테마의 설립자 아브레우는 대외적으로 박애주의를 표방했던 것과 달리 실제 운영에 있어서는 매우 독재적인 모습을 보였다고 한다. 엘 시스테마는 지나친 규율을 강요하며 참여한 청소년들을 옥죄였다고 한다. 특히 엘 시스테마의 간판인 시몬 볼리바르 청소년 오케스트라는 강한 규율 때문에 '노예 오케스트라'라는 별칭으로까지 불린다고 한다. 또 엘 시스테마에서는 교사들과 학생들간의 폭압적인 수직적 상하관계가 형성되어 있다고 한다. 또 베네수엘라를 방문해 엘 시스테마를 참관하고 온 한 국내 여행객의 기행문에 따르면 어린 아이들이 종일 일어서서 연습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아이들이 의지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서서 연습을 시킨다는 것이다.[7] 그리고 엘 시스테마에 참여하는 학생들은 실제로는 부유층이나 중산층 이상 가정의 자녀들이 다수이며, 겉으로 선전되고 있는 것과 달리 빈곤층 출신은 별로 없다고 한다.
또 엘 시스테마 내에서 성적 학대 문제도 제기되고 있다. 엘 시스테마 교사들이 어린 여학생들을 성폭행하는 일이 심심치 않게 발생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엘 시스테마 특유의 권위주의적이고 강압적인 교육 방식이 여학생들이 성적 학대를 당하기 쉬운 여건을 만들고 있다고 한다.
게다가 최근 엘 시스테마는 경제적 이윤을 추구하는 집단으로 변질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시몬 볼리바르 청소년 오케스트라가 유명해지면서 이를 통한 경제적 이윤을 추구하는데 혈안이 되어 있으며, 이 악단의 수석 연주자들도 덩달아 많은 경제적 보상을 요구하여 엘 시스테마 설립 정신이 많이 변질된 상태라고 한다.
영국에서는 엘 시스테마에 대한 비판으로 El Sistema: Orchestrating Venezuela’s Youth(엘 시스테마: 베네수엘라 청소년을 조직하기)라는 책이 출판되었다.
2018년 이후 베네수엘라의 막장 경제로 인해 엘 시스테마 역시 커다란 위기를 겪고 있다. 유가가 떨어지고 마두로 정권이 국민 탈출을 막기 위해 포퓰리즘 정책을 펼치면서 엘 시스테마도 흔들리고 있으며, 창시자인 아브레우의 사후 간판 지휘자인 두다멜이 마두로와 대립각을 세우면서 두다멜은 엘 시스테마의 모든 행사에서 배제된 상태이다. 엘 시스테마의 어두운 그림자와 불안한 미래(경향신문)
5. 관련 매체
2004년에 발표된 '연주와 투쟁' 외에도 엘 시스테마를 다룬 다큐멘터리가 몇 종류 있다. 2008년에 독일의 ARD 산하 해외 담당 방송국인 도이체 벨레에서 제작한 텔레비전 다큐멘터리 '음악의 약속(Promise of Music)', 2009년에 유로아츠에서 제작한 다큐멘터리 영화 '엘 시스테마' 가 해외에서 취재해 제작한 영상물로 유명하다.특히 2007년 본 베토벤 음악제에 참가한 시몬 볼리바르 청소년 관현악단의 연습과 공연 과정을 담은 '음악의 약속' 은 도이체 그라모폰에서 공연 실황 영상까지 특전으로 수록한 DVD로 발매했고, 유니버설 뮤직 코리아에서 한글 자막을 첨부한 라이센스판으로도 쉽게 입수할 수 있다.[8]
'엘 시스테마' 는 2010년 봄에 EBS에서 축약판 형태로 방영한 뒤, 8월에 정식으로 한국에 개봉되었다. 같은 해 10월 말에는 한글 자막이 포함된 라이센스 DVD로도 출시되었다. 또 극장 개봉과 발맞춰 베네수엘라 언론인인 체피 보르사치니가 엘 시스테마 창설 30주년이었던 2005년에 집필했던 책도 '엘 시스테마, 꿈을 연주하다' 라는 제목의 한국어판으로 출판되었다.
[1] 번역하면 그냥 '제도(system)'. 하지만 베네수엘라에서는 이 단어만 이야기하면 어린이들과 청소년들의 음악 교육 프로그램과 그 프로그램을 관할하는 비영리 재단으로 바로 이해할 정도로 유명하다. 소위 '음악영재 교육 프로그램' 같은 것은 세계 각지에 존재하고 있지만, 이 프로그램은 음악영재를 키우는 것이 궁극적인 목적이 아니라는 큰 차이점이 있다.[2] 군대에서 사지방을 만들고 휴대폰 사용을 허용하자 폭력사건 등이 감소한 것과 비슷한 원리였다. 심심해서 갈굴 시간에 폰을 보니까. 청소년들이 무언가에 시간을 보내는 만큼 범죄에 노출, 범죄를 학습할 시간은 감소하고, '무언가'는 학원이나 야자일 수도 있지만 동아리, 스포츠, 게임, 아르바이트 등일 수 있다. 여기서는 음악인 셈이다. 3S 사업도 "시위할 시간에 영화보고 프로리그 봐라" 라는 측면에서 이와 비슷한 효과가 있다.[3] 하얀 손이라는 뜻의 스페인어. 공연 때 장갑을 끼고 수어로 합창하는 가창법에서 유래했다.[4] 다만 우고 차베스의 집권 초기에는 이 프로젝트가 지나치게 서구 친화적이라는 이유로 정부 지원이 끊길 뻔한 적도 있었다고 한다.[5] 한국에서도 서울시향과 부산시향, 대구시향의 상임 지휘자를 맡은 바 있는 곽승이 객원 지휘자와 지휘 강사 자격으로 정기적으로 초빙되고 있다.[6] 온갖 무황 악기는 웬만하면 다 다룰 줄 알아서 클래식 외에도 영화음악, 월드뮤직, 대중음악 등 다양한 장르에서 활동하고 있다. 야니와도 1995년 이래 자주 작업하고 있고, 인도와 중국에서 공연한 실황을 담은 Tribute에서도 연주를 들어볼 수 있다.[7] 엘 시스테마를 긍정적인 시각에서 기술하는 글에 이런 장면이 나올 정도이면, 외부인의 눈길이 닿지 않는 내부에서는 폭압적인 방식의 지도가 이루어지고 있을 가능성이 있음을 시사한다.[8] 이 DVD에 대해 영국 클래식 잡지인 '그라모폰' 에서는 '영국의 문화예술 담당 관료들은 이거 보면서 반성좀 해야 한다' 고 자국의 음악 풍토까지 까면서 호평하기도 했다. 흠좀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