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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당 | 민주정의당 (127석) | → | 민주자유당 (216석)[1] |
야당 | 통일민주당 (59석) | ||
신민주공화당 (35석) |
<colbgcolor=#003990><colcolor=#fff> 3당 합당 三黨 合黨 | |
원인 | 제13대 국회의 여소야대 정국 형성 |
결과 | 민주자유당 창당 제13대 국회의 여대야소 정국 형성 |
1. 개요
<colbgcolor=#005ba6><colcolor=#ffc224,#ffc224> |
대한뉴스 제 1785호 - 3당 합당 합동 기자회견 |
민주정의당과 통일민주당, 그리고 신민주공화당은 민주 발전과 국민 대화합, 민족 통합이라는 시대적 과제 앞에 오로지 역사와 국민에 봉사한다는 일념으로 아무 조건 없이 정당법의 규정에 따라 새로운 정당으로 합당한다. 노태우 당시 대통령 |
김영삼 당시 통일민주당 총재 |
3당 합당의 여파로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비롯된 여소야대는 약 2년 만에 도로 여대야소가 되었고, 김대중의 평화민주당은 유일한 원내 야당으로 남았으며 이전까지 호남 vs PK vs TK vs 충청도의 4자 구도로 이어져 왔던 지역 정치 구도가 순식간에 호남 vs 비(非)호남으로 단순화되면서 정치적으로 호남 지역이 상당 기간 고립되는 결과를 낳게 되었다.[3]
2.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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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하십시오.3. 평가
3당 합당은 현재까지도 유지되고 있는 대한민국의 지역적, 이념적 정치 지형을 결정한 민주화 후 최대의 정계개편 사건이다. 이 사건으로 대한민국 정치는 독재 대 민주의 구도에서 초거대보수 vs 소수중도개혁, 사실상 호남포위 구도로 재정렬되었다.보수정당들의 연합이라는 점에서 "보수 대연합"이라고도 하고 부울경을 대변하는 통일민주당, 대구와 경북을 대변하는 민주정의당과 충청도 지역을 대변하는 신민주공화당이 합당했다는 점에서 "호남 고립화"라고도 한다. 비호남 지역에서 이전까지는 존재하지 않았던 범보수 반민주당계 표심을 인위적으로 형성하여 범보수 표심을 확보한 정계 개편이다. 실제로 이 당시 만들어진 정치 구도는 범보수 다수연합을 장기간 유지하며 2020년대까지 지속적으로 이어지고 있어서 대한민국 정치사에서 중요한 변곡점 중에 하나다.
반대로 국민이 투표로 의사를 표현하는 민주주의의 본질을 깨뜨렸다는 부분에서 크게 비판받는다. 민주공화당-민주정의당으로부터 이어진 군사 독재 정권의 역사에 면죄부를 주고 국민의 투표로 처음으로 쟁취한 여소야대 정국을 인위적으로 여대야소로 바꿔 놓아 정치 권력을 위해 국민의 열망을 부정한 것이기 때문이다.
정치적 이해득실 측면에서는 성공적이라 보기 어렵다. 합당 당시 217석이라는 전무후무한 거대 정당이 되었으나, 합당 2년 만에 과반에 실패한데다 합당 5년째에 민자당의 한 축인 김종필계가 탈당하였다는 점에서 단기적으로 실패에 가깝다. 게다가 합당한 지 10년도 안 되어 정권교체가 이뤄졌기에 합당의 결과를 성공적이라고만 보기는 어렵다. 비록 대통령직은 내주었지만 제17대 국회를 제외하고는 범보수 반민주당 세력이 정치권에서 쭉 다수를 점했다는 부분에서는 성공적인 결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과반을 내 준 제17대 국회 이후 18대와 19대에서 한나라당과 새누리당이 단독 과반을 차지하였기에 이러한 구도는 깨지기 어려울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제21대 국회 이후로 3당 합당에서 배제된 평화민주당의 사실상[4] 후신이 단독 과반을 훌쩍 넘기면서 애초 구상했던 안정적인 초장기 집권은 커녕 의회 단독 과반 목표조차 달성하지 못한 셈이다.
3.1. 긍정적 평가
3.1.1. 군부독재 청산에 기여
속으로 ‘웃기지 마라, 내가 대통령 하면서 그렇게 더럽게 안 한다, 왜 (군부와) 동거를 하느냐’ 이렇게 생각하고 있었어요. 김영삼 전 대통령[5] |
3.2. 부정적 평가
우린 여기 함께 살고 있질 않나 양심과 정의가 넘쳐 흐르는 이 땅 식민 독재와 맞서 싸우다 감옥에 갔거나 어디론가 사라져간 사람들은 말고 하루 아침에 위대한 배신의 칼을 휘두르는 저 민주인사와 함께 우린 너무 착하게 살고 있질 않나 정태춘, 《아, 대한민국...》 中 |
3.2.1. 국민 정서 괄시
국민이 만든 여소야대가 불편하다고 마음대로 바꾸려 해서는 안 된다. 이것은 민주주의를 크게 후퇴시키는 일이고 정치 윤리를 망치는 일이다. 김대중 당시 평화민주당 총재 |
3.2.2. 지역주의 강화
3당 합당은 "지역주의를 고착화하고 특히 호남을 거의 따돌리기 수준으로 내몰았다"는 점에서 한국 정치 발전에 매우 악영향을 끼쳤다는 평을 받기도 한다. 사실 6월 항쟁 이후 198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여소야대 속에서 5.18 민주화운동 유혈 진압을 은폐하기 위한 정권 차원의 호남 비하 공작과 실례들은 많이 약화되었고 13대 대선에서도 노태우, 김종필, 김영삼, 김대중 모두 지역감정 유발 요소에 민감하게 반응하여 조심하는 모습을 보였다. 특히 양김은 몇몇 지역 충돌에 대해 정권의 공작으로 비판하면서 지역 유세를 자제하는 등의 모습도 보여주었는데 3당 합당 이후부턴 다시 지역주의를 자극하는 움직임이 정치권과 언론을 중심으로 제기되었다고 보는 분석도 있다.3당 합당이 한국 정치에 미친 영향은 지금도 존재하는데 호남은 고립되고 PK와 TK의 연결고리는 강화되면서 소위 기울어진 운동장이라고 부르는 정치 구도가 꽤 오랜 기간 유지되었다. 그러다가 노무현 대통령 당선 이후 부울경이 어느 정도 보수세가 약화되면서 이 경향이 약해졌고, 이는 부산울산의 21대 총선과 22대 총선 결과로 증명할 수 있다.
3.2.3. 민주 세력 분열
|
3.2.4. 계파 갈등 촉발
언론에서는 계파 갈등이 보수 진영 역량 약화의 가장 큰 원인이라면서, 현 보수 정당의 시초인 민주자유당 시절부터 계파간 편가르기식 정치가 이어졌다고 지적했다.민자당 시기와 뒤이은 신한국당 시기에 민주계와 민정계 및 김종필계 간에 심한 갈등으로 여러 차례 분당 위기를 겪었고, 실제로 민주계에 밀려난 인사들은 자민련, 새한국당, 통일국민당으로 탈당해서 나갔다.
또한 2000년대 중반부터 시작된 친이(친이명박)/비박(비박근혜)과 친박(친박근혜)계 간의 갈등도 그 뿌리는 3당 합당에 기인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언론에서는 "친이계와 친박계 모두 집권에 성공했으나 당의 혁신과 쇄신을 이끌지 못하고 계파에 매몰된 정치인들만 양산했다."고 비판했다. <머니투데이>계파 투쟁 골몰한 보수… 미래도 사람도 없다 #
그리고 박태균 서울대학교 교수는 3당 합당으로 탄생한 민주자유당은 여소야대를 극복하는 역할만을 했을 뿐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지 못했으며, 그 결과가 김영삼 정부 때의 IMF 사태와 박근혜 정부 때의 촛불항쟁이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진보 정당에 대해서도 3당 합당으로 기울어진 운동장에 놓인 진보 진영은 시민운동 진영과 결합했는데, 새로운 길을 모색하는 것처럼 보였으나 이후 "진보 진영을 통합할 수 있는 미래의 가치를 만들어내지 못했다"라고 지적했다.
4. 여담
- 이 사건으로 당시 한국 정치학계는 발칵 뒤집혔다. 그나마 한국에 있던 정치학자들은 실시간으로 상황을 확인할 수라도 있었지 해외에 체류 중이던 한국 정치학자들은 사태 파악이 안 돼 한동안 혼란을 겪기도 했다. 당연하지만 인터넷도 없던 시절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당시 미국에 체류 중이던 모 교수는 3당 합당 발표 다음 날 (발표는 전날 오후에 있었으니까) 강의에 들어가서 "한국은 4개의 유력 원내정당 체제다"라고 설명했더니 한 학생이 "오늘 2개가 되었던데요?"라며 신문을 보여줘 기절초풍했다고 한다.
- 3당 합당으로 태어난 민주자유당은 훗날 신한국당으로 당명을 변경하고 통합민주당과 신설합당해서 한나라당을 만들고 새누리당 → 자유한국당으로 당명을 변경했다가 두번째로 미래통합당으로 신설합당하였고 다시 국민의힘으로 당명을 변경하면서 한국의 제1보수정당으로 지금까지 존재하고 있다.
- 2020년 정병국 의원은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 당사에 걸린 이승만, 박정희, 김영삼 전 대통령의 사진을 떼자고 제안하면서, "당 대표실에 걸려있는 이승만, 박정희, 김영삼 전 대통령의 사진을 보고 굉장히 혼란스러웠다. 세 분이 당의 뿌리라는데, 그들은 극과 극으로 싸웠던 사람들이다."고 지적했다. #
- 2025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중 한국사 영역에서 출제되었다.[6]
3당 합당 발표
19△△년 1월 22일은 '3당 합당'이 발표된 날이다. 제13대 국회 의원 선거에서 야당의 의석수가 집권 여당보다 많은 이른바 '여소야대' 국면이 조성되었다. 하지만 국정의 주도권을 쥐려는 여당인 민주 정의당이 통일 민주당, 신민주 공화당 등 두 야당과 통합하여 과반수 이상의 의석을 차지하는 민주 자유당을 창당하였다.
① 6 · 15 남북 공동 선언이 발표되었다.
② 국가 재건 최고 회의가 조직되었다.
③ 남북 기본 합의서가 채택되었다.
④ 좌우 합작 위원회가 결성되었다.
⑤ 운요호 사건이 일어났다. ||
5. 관련 문서
- 3김시대
- 4자필승론
- 기울어진 운동장
- 청명계획
- DJP연합
- 적의 적은 나의 친구
- 1991년 연쇄 분신 파동
- 주요 선거
- 제14대 대통령 선거 - 3당 합당의 영향과 당내 힘겨루기에서 승리한 정치인 김영삼을 대통령에 당선시킨 선거.
- 제14대 국회의원 선거 - 정주영이 창당한 통일국민당의 돌풍 속에 여당이 과반확보에 실패한 선거.
- 제15대 국회의원 선거 - 김영삼, 김대중, 김종필이 영남,충청,호남을 기반 두고 지역구도가 발생한 선거.
- 제16대 국회의원 선거 - 김대중의 동진정책이 시도되었으나 영남의 민심이 정권심판론을 꺼낸 한나라당에 표를 몰아주어 영남에서 의석을 내지 못했고 의회 과반수 확보에도 실패한 선거.
- 제16대 대통령 선거 - 오래 지속되었던 지역구도가 완화되고 대신 세대구도가 발생하기 시작한 선거.[7]
- 제4회 지방선거 & 제17대 대통령 선거 - 노무현 정부의 대한 정권심판론에 유권자들이 호응하여 열린우리당과 대통합민주신당이 참패하고 호남을 제외한 모든 지역에서 한나라당이 압승을 거둔 선거다.
- 제20대 국회의원 선거 - 경상도에서 민주당계 의원이, 전라도에서 보수정당 의원이 상당수 당선되어 공고한 지역구도가 약화된 듯한 모습을 보여준 선거.
-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 - 문재인 정부의 첫 평가전이며 대구광역시, 경상북도, 제주특별자치도를 제외한 모든 지역에서 압승하며 부울경에서 처음으로 민주당이 압승하며 자유한국당을 TK 자민련으로 만들어 버린 선거다.
- 제21대 국회의원 선거 - 경상도에서 다시 미래통합당의 비율이 높아지고 수도권과 전라도 그리고 제주도에서는 민주당이 싹쓸이를 해 3당 합당에 따른 영호남 지역구도가 부활한 선거.[8]
- 제20대 대통령 선거 - 영호남 지역구도가 완전히 부활한 선거이자 청년 한정으로 남녀 성별 구도가 생긴 선거.
- 제22대 국회의원 선거 - 직전 총선과 비슷한 구도가 이뤄진 선거
- 민주노동당-국민참여당-새진보통합연대 합당 - 민주노동당과 국민참여당, 그리고 진보신당에서 진보대연합을 위해 탈당한 새진보통합연대의 합당, 이쪽은 진보대연합이다.
- 대안신당-바른미래당-민주평화당 합당 - 민주평화당과 여기서 갈라진 대안신당, 그리고 바른미래당 잔류파들의 합당. 3당 합당이 보수대연합이였다면, 통합진보당 창당이 진보대연합이라면 이쪽은 중도대연합이다.
- 새로운선택-개혁신당-원칙과 상식 합당 - 개혁신당과 새로운선택, 원칙과 상식 계열 무소속이 개혁신당으로 합당한 사건. 정의당 출신, 민주당 출신, 국민의힘 출신이 같이 있다는 점에선 진정한 한 지붕 세 가족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이쪽은 제3지대 대연합이다.
6.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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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27+59+35=221석이지만 통일민주당 노무현, 이기택, 김광일, 김정길, 장석화 전 의원이 불참해 1990년 2월 9일 민주자유당 창당 당시 의석수는 216석이 되었다.이후 신민주공화당 출신 김현(1947) 전 의원이 탈당했고 무소속 유한열, 정몽준 전 의원이 입당했으며 재보선에서 문희갑이 당선되어 1990년 5월 제1차 전당대회 당시에는 221-6+3=218석이 되었다.[2] 민주자유당(1990~1995)-신한국당(1995~1997)-한나라당(1997~2012)-새누리당(2012~2017)-자유한국당(2017~2020)-미래통합당(2020)-국민의힘(2020~현재).[3] 수도권, 강원특별자치도, 제주특별자치도는 한 지역 정당에게 표를 몰아주는 경향이 약했고, 특히 강원도와 제주도는 예나 지금이나 인구가 상대적으로 적기 때문에 정치권에서 큰 관심을 못 받고 있다.[4] 평화민주당의 명목상 법적 후신은 더불어민주당이다.[5] 2009년 SBS '한국 현대사 증언' 방송에서 하나회 숙청을 회상하며 한 말이다.[6] 참고로 정답은 3번이다.[7] 참고로 위에서 합당에 반대했던 노무현 후보가 대통령으로 당선된 선거다.[8] 다만 부울경 등지에선 민주당 후보가 꽤 선전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