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5-05-07 17:41:39

3당 합당


'''[[대한민국|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대한민국]]의 주요 정계개편'''
{{{#!wiki style="margin: 0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rowcolor=#ffffff> 1987년 1990년 1995년
통일민주당 분당 3당 합당 민주자유당 분당 새정치국민회의 창당
<rowcolor=#ffffff> 1997년 2003년 2007년
DJP연합 신한국당-통합민주당 합당 새천년민주당 분당 열린우리당 분당
2012년 <rowcolor=#ffffff> 2015년 2016년 2018년
통합진보당 3자 합당 새정치민주연합 분당 새누리당 분당 국민의당-바른정당 합당
2019년 <rowcolor=#ffffff> 2020년 2022년
바른미래당 분당 미래통합당 창당 민생당 창당 국민의힘-국민의당 합당
<rowcolor=#ffffff> 2023년 2024년
제3지대 신당론 정의당 분당 국민의힘 분당 더불어민주당 분당
<rowcolor=#ffffff> 2024년
새로운미래-미래대연합 통합 개혁신당 4자 통합 }}}}}}}}}
여당 민주정의당
(127석)
민주자유당
(216석)[1]
야당 통일민주당
(59석)
신민주공화당
(35석)
<colbgcolor=#003990><colcolor=#fff> 3당 합당
三黨 合黨
파일:3당 합당 발표.jpg
1990년 1월 22일, 3당 합당 발표 장면.
왼쪽부터 김영삼 통일민주당 총재,
노태우 대통령 (민주정의당 총재),
김종필 신민주공화당 총재.
원인 제13대 국회여소야대 정국 형성
결과 민주자유당 창당
제13대 국회의 여대야소 정국 형성

1. 개요2. 역사3. 평가
3.1. 긍정적 평가
3.1.1. 군부독재 청산에 기여
3.2. 부정적 평가
3.2.1. 국민 정서 괄시3.2.2. 지역주의 강화3.2.3. 민주 세력 분열3.2.4. 계파 갈등 촉발
4. 여담5. 관련 문서6. 둘러보기

1. 개요

<colbgcolor=#005ba6><colcolor=#ffc224,#ffc224>
대한뉴스 제 1785호 - 3당 합당 합동 기자회견
민주정의당통일민주당, 그리고 신민주공화당은 민주 발전과 국민 대화합, 민족 통합이라는 시대적 과제 앞에 오로지 역사와 국민에 봉사한다는 일념으로 아무 조건 없이 정당법의 규정에 따라 새로운 정당으로 합당한다.

노태우 당시 대통령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에 들어가야 한다.

김영삼 당시 통일민주당 총재
3당 합당( )은 1990년 1월 22일 발표되어 동년 2월 당시 집권 여당이었던 민주정의당과 야당이었던 통일민주당, 신민주공화당합당하여 거대 여당인 민주자유당이 탄생한 사건이다. 이 합당으로 만들어진 민주자유당의 후신들[2]은 지금까지도 대한민국 제1 보수 정당의 명맥을 잇고 있다.

3당 합당의 여파로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비롯된 여소야대는 약 2년 만에 도로 여대야소가 되었고, 김대중평화민주당은 유일한 원내 야당으로 남았으며 이전까지 호남 vs PK vs TK vs 충청도의 4자 구도로 이어져 왔던 지역 정치 구도가 순식간에 호남 vs 비(非)호남으로 단순화되면서 정치적으로 호남 지역이 상당 기간 고립되는 결과를 낳게 되었다.[3]

2. 역사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3당 합당/역사 문서
#!if (문단 == null) == (앵커 == null)
를
#!if 문단 != null & 앵커 == null
의 [[3당 합당/역사#s-|]]번 문단을
#!if 문단 == null & 앵커 != null
의 [[3당 합당/역사#|]]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3. 평가

3당 합당은 현재까지도 유지되고 있는 대한민국의 지역적, 이념적 정치 지형을 결정한 민주화 후 최대의 정계개편 사건이다. 이 사건으로 대한민국 정치독재 대 민주의 구도에서 초거대보수 vs 소수중도개혁, 사실상 호남포위 구도로 재정렬되었다.

보수정당들의 연합이라는 점에서 "보수 대연합"이라고도 하고 부울경을 대변하는 통일민주당, 대구경북을 대변하는 민주정의당충청도 지역을 대변하는 신민주공화당이 합당했다는 점에서 "호남 고립화"라고도 한다. 비호남 지역에서 이전까지는 존재하지 않았던 범보수 반민주당계 표심을 인위적으로 형성하여 범보수 표심을 확보한 정계 개편이다. 실제로 이 당시 만들어진 정치 구도는 범보수 다수연합을 장기간 유지하며 2020년대까지 지속적으로 이어지고 있어서 대한민국 정치사에서 중요한 변곡점 중에 하나다.

반대로 국민이 투표로 의사를 표현하는 민주주의의 본질을 깨뜨렸다는 부분에서 크게 비판받는다. 민주공화당-민주정의당으로부터 이어진 군사 독재 정권의 역사에 면죄부를 주고 국민의 투표로 처음으로 쟁취한 여소야대 정국을 인위적으로 여대야소로 바꿔 놓아 정치 권력을 위해 국민의 열망을 부정한 것이기 때문이다.

정치적 이해득실 측면에서는 성공적이라 보기 어렵다. 합당 당시 217석이라는 전무후무한 거대 정당이 되었으나, 합당 2년 만에 과반에 실패한데다 합당 5년째에 민자당의 한 축인 김종필계가 탈당하였다는 점에서 단기적으로 실패에 가깝다. 게다가 합당한 지 10년도 안 되어 정권교체가 이뤄졌기에 합당의 결과를 성공적이라고만 보기는 어렵다. 비록 대통령직은 내주었지만 제17대 국회를 제외하고는 범보수 반민주당 세력이 정치권에서 쭉 다수를 점했다는 부분에서는 성공적인 결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과반을 내 준 제17대 국회 이후 18대와 19대에서 한나라당새누리당이 단독 과반을 차지하였기에 이러한 구도는 깨지기 어려울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제21대 국회 이후로 3당 합당에서 배제된 평화민주당의 사실상[4] 후신이 단독 과반을 훌쩍 넘기면서 애초 구상했던 안정적인 초장기 집권은 커녕 의회 단독 과반 목표조차 달성하지 못한 셈이다.

3.1. 긍정적 평가

3.1.1. 군부독재 청산에 기여

속으로 ‘웃기지 마라, 내가 대통령 하면서 그렇게 더럽게 안 한다, 왜 (군부와) 동거를 하느냐’ 이렇게 생각하고 있었어요.

김영삼 전 대통령[5]
3당 합당이 과정은 순탄하지 못했으나 결과적으로 보면 김영삼이 민자당 당권을 먹고 대통령까지 되어 문민정부가 탄생하였고, 이로 인해 하나회 숙청 등 5공 세력의 상당수를 청산해내고 '역사바로세우기 운동' 등을 통해 쿠데타 명기 등 군부독재의 잔재를 많이 쓸어냈다는 점에서 그 공을 높게 평가하는 사람들도 있다. 즉, '호랑이 굴에 들어가서 호랑이를 잡았다'는 것. 이를 마냥 무시하기 어려운 것이, 하나회 숙청은 김영삼 개인의 능력과 더불어 민주계가 민정계를 밀어내고 민자당을 휘어잡았기에 쿠데타 없이 깔끔히 실행될 수 있었다. 만약 노태우 정부 이후 정권 교체를 통해 김영삼이나 김대중이 대통령이 되었다면 이를 우려한 하나회의 역공을 당할 수도 있었다.

3.2. 부정적 평가

우린 여기 함께 살고 있질 않나
양심과 정의가 넘쳐 흐르는 이 땅
식민 독재와 맞서 싸우다 감옥에 갔거나
어디론가 사라져간 사람들은 말고
하루 아침에 위대한 배신의 칼을 휘두르는
저 민주인사와 함께
우린 너무 착하게 살고 있질 않나

3.2.1. 국민 정서 괄시

국민이 만든 여소야대가 불편하다고 마음대로 바꾸려 해서는 안 된다. 이것은 민주주의를 크게 후퇴시키는 일이고 정치 윤리를 망치는 일이다.

김대중 당시 평화민주당 총재
당시의 여소야대 정국은 제13대 국회의원 선거를 통해 민주화의 발자취에 힘입어 마침내 국민들의 힘으로 이끌어 낸 정권 심판이었다. 그러나 3당 합당은 이러한 국민의 민주적인 의사 표현을 정면으로 배반하였고, 기백명의 정치인들의 야합을 통해 여대야소 정국으로 인위적인 정계 개편을 이룬 것이다. 즉, 국민이 선택한 정당이 정치 권력을 위해 국민의 뜻을 거스르고 민주주의를 퇴보시킨 사건이다. 3당 합당에 비판적인 언론에서는 이를 '정당 쿠데타'라는 표현으로 묘사하였다.

3.2.2. 지역주의 강화

3당 합당은 "지역주의를 고착화하고 특히 호남을 거의 따돌리기 수준으로 내몰았다"는 점에서 한국 정치 발전에 매우 악영향을 끼쳤다는 평을 받기도 한다. 사실 6월 항쟁 이후 198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여소야대 속에서 5.18 민주화운동 유혈 진압을 은폐하기 위한 정권 차원의 호남 비하 공작과 실례들은 많이 약화되었고 13대 대선에서도 노태우, 김종필, 김영삼, 김대중 모두 지역감정 유발 요소에 민감하게 반응하여 조심하는 모습을 보였다. 특히 양김은 몇몇 지역 충돌에 대해 정권의 공작으로 비판하면서 지역 유세를 자제하는 등의 모습도 보여주었는데 3당 합당 이후부턴 다시 지역주의를 자극하는 움직임이 정치권과 언론을 중심으로 제기되었다고 보는 분석도 있다.

3당 합당이 한국 정치에 미친 영향은 지금도 존재하는데 호남은 고립되고 PK와 TK의 연결고리는 강화되면서 소위 기울어진 운동장이라고 부르는 정치 구도가 꽤 오랜 기간 유지되었다. 그러다가 노무현 대통령 당선 이후 부울경이 어느 정도 보수세가 약화되면서 이 경향이 약해졌고, 이는 부산울산의 21대 총선과 22대 총선 결과로 증명할 수 있다.

3.2.3. 민주 세력 분열

파일:external/www.kgnews.co.kr/208184_32055_4218.jpg
일명 4자 필승론과 3당 합당은 민주 세력의 두 거목이었던 DJYS의 사이를 완전히 갈라 놓았고 이들이 뭉치지 못하고 당장의 권력에 눈이 먼 듯한 모습을 보임으로써 민주 세력의 정통성에 큰 오점을 남겼다. 그나마 4자필승론은 이후 양김의 후회와 반성, 이후 국회의 협공으로 어느 정도 무마라도 되었지만 이 사건은 갈등의 골만 깊어갔지 관계 개선 그딴 거 없었다. 때문에 이후 양김은 2009년 DJ 사망 직전 YS가 병문안을 가서 화해의 메시지를 전하기까지 무려 20여 년 가까이 냉랭하게 지냈다.

3.2.4. 계파 갈등 촉발

언론에서는 계파 갈등이 보수 진영 역량 약화의 가장 큰 원인이라면서, 현 보수 정당의 시초인 민주자유당 시절부터 계파간 편가르기식 정치가 이어졌다고 지적했다.

민자당 시기와 뒤이은 신한국당 시기에 민주계민정계김종필계 간에 심한 갈등으로 여러 차례 분당 위기를 겪었고, 실제로 민주계에 밀려난 인사들은 자민련, 새한국당, 통일국민당으로 탈당해서 나갔다.

또한 2000년대 중반부터 시작된 친이(친이명박)/비박(비박근혜)과 친박(친박근혜)계 간의 갈등도 그 뿌리는 3당 합당에 기인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언론에서는 "친이계와 친박계 모두 집권에 성공했으나 당의 혁신과 쇄신을 이끌지 못하고 계파에 매몰된 정치인들만 양산했다."고 비판했다. <머니투데이>계파 투쟁 골몰한 보수… 미래도 사람도 없다 #

그리고 박태균 서울대학교 교수는 3당 합당으로 탄생한 민주자유당은 여소야대를 극복하는 역할만을 했을 뿐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지 못했으며, 그 결과가 김영삼 정부 때의 IMF 사태와 박근혜 정부 때의 촛불항쟁이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진보 정당에 대해서도 3당 합당으로 기울어진 운동장에 놓인 진보 진영은 시민운동 진영과 결합했는데, 새로운 길을 모색하는 것처럼 보였으나 이후 "진보 진영을 통합할 수 있는 미래의 가치를 만들어내지 못했다"라고 지적했다.

4. 여담

  • 이 사건으로 당시 한국 정치학계는 발칵 뒤집혔다. 그나마 한국에 있던 정치학자들은 실시간으로 상황을 확인할 수라도 있었지 해외에 체류 중이던 한국 정치학자들은 사태 파악이 안 돼 한동안 혼란을 겪기도 했다. 당연하지만 인터넷도 없던 시절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당시 미국에 체류 중이던 모 교수는 3당 합당 발표 다음 날 (발표는 전날 오후에 있었으니까) 강의에 들어가서 "한국은 4개의 유력 원내정당 체제다"라고 설명했더니 한 학생이 "오늘 2개가 되었던데요?"라며 신문을 보여줘 기절초풍했다고 한다.
  • 변희재는 방송에서 3당 합당이 보수진영과 진보진영 모두를 망치게 한 원인이 되었다고 주장했다. 영상
  • 2020년 정병국 의원은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 당사에 걸린 이승만, 박정희, 김영삼 전 대통령의 사진을 떼자고 제안하면서, "당 대표실에 걸려있는 이승만, 박정희, 김영삼 전 대통령의 사진을 보고 굉장히 혼란스러웠다. 세 분이 당의 뿌리라는데, 그들은 극과 극으로 싸웠던 사람들이다."고 지적했다. #

3당 합당 발표
19△△년 1월 22일은 '3당 합당'이 발표된 날이다. 제13대 국회 의원 선거에서 야당의 의석수가 집권 여당보다 많은 이른바 '여소야대' 국면이 조성되었다. 하지만 국정의 주도권을 쥐려는 여당인 민주 정의당이 통일 민주당, 신민주 공화당 등 두 야당과 통합하여 과반수 이상의 의석을 차지하는 민주 자유당을 창당하였다.

6 · 15 남북 공동 선언이 발표되었다.
국가 재건 최고 회의가 조직되었다.
남북 기본 합의서가 채택되었다.
좌우 합작 위원회가 결성되었다.
운요호 사건이 일어났다. ||

5. 관련 문서

6. 둘러보기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5px 10px; border-left: 10px solid #0A84E9; border-right: 10px solid #0A84E9"
{{{#!wiki style="margin: 0 -20px -5px; min-height:calc(1.5em +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word-break: keep-all;"
<colcolor=#0A84E9,#ddd><colbgcolor=#f5f5f5,#2d2f34> 구성 인사
여당 민주정의당 민주자유당
정책 및 방향 범죄와의 전쟁 · 북방정책 · 제6~7차 경제 개발 5개년 계획 · 1기 신도시 · 정부 제3청사 건립· 대학수학능력시험 · 토지공개념 3법 · 1988 서울 올림픽 · 대전 엑스포 유치 · 서해안고속도로 · KTX-2 · 인천국제공항 · KLH · 의료보험 전 국민 확대 · 지역 할당제
평가 긍정적 평가 · 부정적 평가
타임라인
1988년 제13대 국회의원 선거 · 1988 서울 올림픽 · 1988 서울 패럴림픽 · 7.7 선언 · 광주민주화운동진상조사특별위원회 출범 · 2차 사법 파동 · 안산선 개통 ·오홍근 테러사건
1989년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 발족 · 우지 파동 · 임수경 방북 사건 · 문익환 방북 사건 · 황석영 방북 사건 · 서경원 방북 사건 · 전교조 출범 · 5.3 동의대 사태 · 이철규 의문사 사건 · 설인종 고문치사 사건 · 노무현 명패 사건 · 대한항공 175편 추락 사고 · 대전 직할시 승격
1990년 10.13 특별선언 (범죄와의 전쟁) · 경찰청/기상청/통계청 개청 · 가족계획 중단 · 3당 합당 · 이문옥 감사관 구속 사건 · 국군보안사령부 민간인 사찰 폭로 사건 · KBS 사태 · 영동고속도로 섬강교 버스추락사고
1991년 1991년 지방선거 · 남북기본합의 · 남북한 UN 동시 가입 · 한반도비핵화공동선언 · 연쇄 분신 파동 · 낙동강 페놀 유출사건 · 김부남 사건 · 이형호 유괴 살인 사건 · 대구 성서 초등학생 살인 암매장 사건 · 강기훈 유서대필 조작 사건 · 거성관 방화 사건 · 여의도광장 차량질주 사건 · 제7차 경제 개발 5개년 계획 발표 · 새만금 착공 · 수서지구 택지 특혜 분양 사건
1992년 제14대 대통령 선거 · 제14대 국회의원 선거 · 군 부재자투표 부정 폭로 사건 · 초원복집 사건 · 수요집회 개최 · 남한조선노동당 중부지역당 사건 · 김보은 양 사건 · 대덕연구단지 준공 · 경부고속철도 착공 · 수도권 신공항 착공
1993년 과천선 개통 ·우암 상가아파트 붕괴사고
별도 문서가 없는 평가 및 논란은 해당 주제 관련 문서를 참고
노태우 개인과 관련된 문서는 틀:노태우 참고
}}}}}}}}}}}}



{{{#!wiki style="margin:-10px"<tablebordercolor=#0A84E9><tablebgcolor=#0A84E9> 파일:노태우 투명.svg노태우
관련 문서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calc(1.5em +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word-break: keep-all;"
<colbgcolor=#f5f5f5,#2d2f34><colcolor=#0A84E9> 일생 일생 · 대통령 재임 시절 평가 · 개인적 평가 · 별명(보통 사람)
공약 범죄와의 전쟁 · 북방정책 · 한국예술종합학교
가족 아버지 노병수 · 막내작은아버지 노병상 · 배우자 김옥숙 · 딸 노소영 · 아들 노재헌 · 사위 최태원
관련 인물 전두환 · 김영삼
역대 선거 제13대 대통령 선거
사건사고 12.12 군사반란 · 5.18 민주화운동 · 3당 합당 ·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 구속 사건 · 1995년 노태우 비자금 사건
기타 신군부 · 하나회 · 민정계 · 민주정의당 · 민주자유당
별도 문서가 없는 평가 및 논란은 해당 주제 관련 문서를 참고
노태우 정부와 관련된 문서는 틀:노태우 정부 참고
}}}}}}}}} ||

{{{#!wiki style="margin:-10px"<tablebordercolor=#003990> 파일:YS투명.svg김영삼
관련 문서
}}}
{{{#!wiki style="word-break: keep-all; margin:0 -10px -5px; min-height:calc(1.5em +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5px -1px -11px"
<colbgcolor=#f5f5f5,#2d2f34><colcolor=#003990,#ddd> 일생 일생 · 평가
공약 금융실명제 · 역사바로세우기(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 구속 사건) · 하나회 숙청
발언 닭의 목을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 · 개가 짖어도 기차는 간다 · 대도무문
가족 조부 김동옥 · 아버지 김홍조 · 아내 손명순 · 아들 김은철, 김현철 · 손자 김인규
역대 선거 제13대 대통령 선거 · 제14대 대통령 선거
사건사고 김영삼 질산 테러 사건 · YH 사건 · 김영삼 총재 의원직 제명 파동 · 김영삼 단식 농성 사건 · 김영삼 보름달 사건 · 3당 합당 · 1997년 외환 위기
기타 문민정부 · 상도동계/YS키즈 · 삼김시대/양김 · 다른 정치인들과의 관계 · 사고 공화국 · YS는 못말려 · YS는 잘맞춰 · 사상과 신념 · 여담 · 어록
별도 문서가 없는 평가 및 논란은 해당 주제 관련 문서를 참고
문민정부와 관련된 문서는 틀:문민정부 참고
}}}}}}}}} ||

{{{#!wiki style="margin:-10px"<tablebordercolor=#1b5b40><tablebgcolor=#1b5b40> 파일:김종필-투명.svg김종필
관련 문서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word-break: keep-all;"
<colcolor=#1b5b40,#ddd> 일생 <colbgcolor=#fff,#1f2023>일생 · 평가
가족 아내 박영옥 · 형 김종락 · 형 김종익
역대 선거 제13대 대통령 선거
사건사고 사건사고 및 논란 · 5.16 군사정변 · 4대 의혹 사건
기타 중앙정보부 · 3당 합당 · DJP연합 · 삼김시대 · 신민주공화당 · 자유민주연합 · 청구동계 · 몽니 }}}}}}}}}

파일:민주자유당 심볼.svg파일:민주자유당 글자.svg파일:민주자유당 심볼2.svg
<colcolor=#fff>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word-break: keep-all"
<colbgcolor=#003990><colcolor=#FFFFFF> 역사 역사 · 3당 합당
전당대회 민주자유당/역대 전당대회
선거 1991년 지방선거 · 제14대 국회의원 선거 · 제14대 대통령 선거 ·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
비판 및 논란 군 부재자투표 부정 폭로 사건 · 초원복집 사건
대통령 노태우 · 김영삼
집권정부 노태우 정부 · 문민정부
관련 단체 여의도연구소
민주정의당 · 통일민주당 · 신민주공화당 · 신한국당 · 한나라당 · 자유한국당
기타 국제민주연합
관련 틀 역대 사무총장 · 역대 원내총무 · 역대 정책위원회 의장 · 제14대 대통령 후보 경선 · 제13대 국회의원
}}}}}}}}} ||

[1] 127+59+35=221석이지만 통일민주당 노무현, 이기택, 김광일, 김정길, 장석화 전 의원이 불참해 1990년 2월 9일 민주자유당 창당 당시 의석수는 216석이 되었다.이후 신민주공화당 출신 김현(1947) 전 의원이 탈당했고 무소속 유한열, 정몽준 전 의원이 입당했으며 재보선에서 문희갑이 당선되어 1990년 5월 제1차 전당대회 당시에는 221-6+3=218석이 되었다.[2] 민주자유당(1990~1995)-신한국당(1995~1997)-한나라당(1997~2012)-새누리당(2012~2017)-자유한국당(2017~2020)-미래통합당(2020)-국민의힘(2020~현재).[3] 수도권, 강원특별자치도, 제주특별자치도는 한 지역 정당에게 표를 몰아주는 경향이 약했고, 특히 강원도와 제주도는 예나 지금이나 인구가 상대적으로 적기 때문에 정치권에서 큰 관심을 못 받고 있다.[4] 평화민주당의 명목상 법적 후신은 더불어민주당이다.[5] 2009년 SBS '한국 현대사 증언' 방송에서 하나회 숙청을 회상하며 한 말이다.[6] 참고로 정답은 3번이다.[7] 참고로 위에서 합당에 반대했던 노무현 후보가 대통령으로 당선된 선거다.[8] 다만 부울경 등지에선 민주당 후보가 꽤 선전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