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20 17:10:52

김정민(19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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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70731><colcolor=#ffffff> 김정민
Kim Jungm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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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가수 김정민 예전 프로필.jpg
본명 김정수 (金正洙, Kim Jung Soo)[1]
출생 1968년 10월 14일[2] ([age(1968-10-14)]세)
서울특별시 마포구 성산동[3]
국적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본관 김해 김씨 (金海 金氏)[4][5]
신체 181cm|72kg|B형
학력 동도공업고등학교 (졸업)
경원전문대학 (건축설비과 / 전문학사)
디지털서울문화예술대학교 (실용음악학 / 학사)
배우자 타니 루미코(1979년생)
자녀[6] 장남 김태양(2007년생)[7]
차남 김도윤(2008년생)[8]
삼남 김담율(2013년생)
반려동물 반려견 키키[9]
병역 대한민국 육군 병장 만기전역[10]
데뷔 1992년 7월 27일 드라마 4일간의 사랑 OST '그대 사랑안에 머물러' [11]
(데뷔일로부터 [dday(1992-07-27)]일, [age(1992-01-01)]주년)
종교 천주교 (세례명: 요셉)
소속사 실버스톤 엔터테인먼트
소속 그룹 MSG 워너비 (정상동기)
좌우명 고통이 없는 변화는 없다. 뿌리가 단단하면 언젠가 가지는 다시 핀다.[12]
별명 성산동호랑이[13], 김과장[14], 찬스맨[15], CD김정민[16]
팬덤 김정민과 친구들[17]
팬카페 파일:네이버 카페 아이콘.svg
링크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파일:유튜브 아이콘.svg
서명 파일:가수 김정민 사인.jpg

1. 개요2. 데뷔 과정3. 보컬4. 가수 활동
4.1. 1~3집4.2. 4, 5집4.3. 그 이후4.4. 앨범
4.4.1. 정규 앨범
4.5. 수상 경력
4.5.1. 시상식4.5.2. 가요 프로그램 1위
5. 출연 프로그램
5.1. 고정 출연5.2. 게스트
6. 출연 광고
6.1. 홍보
7. 미스터리 음악쇼 복면가왕
7.1. 31, 32회7.2. 261, 262회7.3. 경연곡 목록
8. 불후의 명곡 전설을 노래하다9. 보이스킹10. 여담11.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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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파일:kimjungmin.gif
대한민국가수배우.

2. 데뷔 과정

아마추어로 시작해서 상업 가수로 성공한 케이스처럼 보이겠지만, 의외로 원래 데뷔 전까지 가수의 꿈을 가져본 적이 없었던 사람이다. 물론 음악 쪽 활동은 했지만... 학창시절부터 기타를 좋아해서 대학 시절 록밴드에서 베이스 기타를 담당하던 연주가였고, 밴드에서도 보컬 쪽에 딱히 관심이 없는 사람이었다. 가수가 된 건 오히려 음악보다 그저 잘생긴 외모로 뽑힌 것으로, 일종의 길거리 캐스팅. 본인이 군대 가기 전까지 함께 활동해서 친했던 밴드 후배 김민우가 본인이 군대 간 뒤 상업 가수로 데뷔하여 인기를 얻었고, 1992년 군대를 제대한 직후에 친구에게 "그 김민우가 내 친한 대학 후배 겸 밴드 동생이었다"라고 자랑하면서 친구에게 "니가 산 김민우 음반에 김민우의 친필 사인을 받아주겠다"고 했고, 연락이 되어 그 친구와 함께 김민우를 사적으로 만나기로 했다고 한다.

그래서 당시 유명 가수와 음악 관계자들이 많이 다니던, 강남 신사동에 있는 유명 카페인 HQ카페라는 곳에서 김민우를 친구[18]까지 셋이서 만났는데, 하필 그 때 유명 음악 감독인 오진우 감독이 그 카페에 방문했다가 김민우를 보고 인사했다가, 같이 있던 김정민을 보고 외모에 반해 캐스팅한 것.

김정민의 말로는 오진우 감독이 그냥 "어 민우야 안녕, 그 친구들은 누구야"라고 하면서 다가왔고 김민우가 "아 네, 친한 선배 형이에요"라고 대답했는데, 오진우가 바로 앞까지 와서 김정민의 얼굴을 보자마자 눈을 전혀 떼지 못하며 잠깐 말을 더듬다가, 바로 "자네 가수할래?", "나랑 같이 하자"고 중간 대화 과정도 없이 무작정 캐스팅을 했다고 한다. 김정민은 처음에 처음 본 사람이 자신을 보자마자 "어... 너... 어...자네..."라고 말을 더듬으며 뚫어지게 쳐다보길래, 놀라면서도 속으로 '이 아저씨 왜 이러지? 어디서 본 사람이었나? 시비 거나?'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런데 캐스팅을 요구하자 더 놀랐다고. 그 이후 계약이 되어 보컬 연습에 몰입하여 데뷔했다고 한다.[19]

김정수라는 본명 대신에 김정민이라는 예명도 오진우가 지어주었고, 현재 김정민의 스타일인 짧은 숏컷이나 가죽, 데님 위주 패션도 데뷔 전 오진우가 정해준 설정이라고 한다. 물론 원래도 록을 할 때 가죽 옷은 즐겨 입긴 했었으나, 데님은 공연할때 본인이 즐겨입을 정도까지는 아니었고 헤어도 달랐다고 한다. 원래는 군대 가기 전까지 록을 하면서 머리를 기르는 장발을 좋아했었고, 심지어 입대 전 군대 갈 때가 된 밴드 친구들끼리 '군대를 가면 머리를 짧게 깎아야 하는데 록 정신을 잃어버리는 거 아니냐, 어쩔 것이냐'로 토론까지 했었을 정도라고.[20] 하지만 오진우를 만났던 당시는 제대 직후라 머리가 짧았고, 그 모습에 오진우[21]가 반했다고 한다. 주변 지인들에게 '정민이가 나랑 닮은 것 같다'며 진심으로 김정민을 좋아했다고 한다.

데뷔 이후 2년 간 아픔이 있었고, 결국 오진우 감독의 회사와 이별하게 되었는데, 그 이유는 TV는 사랑을 싣고에서 밝혀졌다. 경제적 문제였는데, 상세한 수익 분배 문제까지는 밝히지 않았지만, 김정민의 앨범이 실패한 것도 아니었고 얼굴도 어느 정도 유명해져서 유명세도 탔지만 경제 사정이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고 한다. 원래 집이 가난한 편에 속했기에, 부친과 모친이 그가 어릴 적부터 육체노동[22]을 해왔는데, 그가 데뷔 후 무려 2년이나 활동하고 나서도 여전히 부모가 계속 그런 일을 해야 할 정도였다고 한다.

그래서 점점 지쳐가던 그가 중간에 화가 나서 오진우에게 '형님, 저 차라리 막노동을 하겠습니다'라고까지 했었다고 한다. 그 정도이니 아마 1980년대 1990년대까지 한국대중가요계의 문제였던 불합리한 수익 배분 문제가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심지어 말만 그렇게 한 게 아니라 앨범 준비 중간에 김정민이 연락을 끊고 진짜로 며칠간 공사현장에서 막노동을 했었다고 한다. 어쨌건 그런 호소 후 돌아온 뒤에도 경제 사정이 나아지지 않자, 다른 음반 기획사들에서 김정민에게 러브콜이 왔고, 그 중 한 회사가 놀라운 수준의 경제적 보장을 약속하는 계약을 담보로 자신의 회사로 옮기라고 설득을 했고, 김정민이 3번이나 거절하긴 했으나, 김정민은 결국 그 회사가 포기하지 않고 연락을 시도하다가, 최종적으로 대놓고 거액의 계약금을 현금으로 보여주기까지 하여[23] 김정민의 마음을 움직였고, 결국 그 회사와 계약하며 오진우를 등지게 되었다고 한다.

오진우는 그 일로 큰 충격을 받아 우울증 증세[24]까지 보였고, 마음의 상처를 모든 주변인들이 다 눈치챘을 정도로 심하게 괴로워 했다고 하는데, 아무리 캐스팅과 데뷔를 다 총괄 감독한 은인이라고 하더라도 대중에 유명세를 탄 소속사 가수가, 경제 사정이 다른 가수들보다 더 힘들었던 것을 알고도, 상식적으로 당대의 분배 구조가 불합리했다는 것을 자기 자신도 잘 알면서도 특별한 조치도 없이 본인이 데뷔시켜 준 은혜와 남자끼리의 의리만 믿고 심한 가난을 견디기만 바랐다면, 과연 그것이 김정민의 배신일 뿐이라고 간주할 만한 일이라 보기는 쉽지 않다. 부모가 육체 노동을 지속했다는 걸 김정민 회사도 알고 있었다면 뭐... 어떻게 되었건 간에 두 사람은 방송을 통해서라도 재회해서 당사자들끼리 화해했으니까 다행스러운 일이기는 하다. 근데 10년도 아니고 20년이 더 넘어서 처음 만난 것이다

3. 보컬

대중적인 멜로디의 발라드를 부르면서도 허스키한 목소리와 목을 긁어서 지르는 스크래치 창법에 강한 샤우팅으로 자기만의 색깔이 강한 가수며 김민종과 창법이 유사하다. 히든싱어에서 이 두 사람의 모창을 한 강균성은 김민종의 창법은 포장도로, 김정민은 비포장도로라고 알기 쉽게 비교 분석을 했다. 또한 김정민의 오랜 팬 희철은 둘의 창법 차이를 정민이형은 직진형, 민종이형은 사선(45도)형이라고 설명했다.출처

목을 긁어서 지르는 스크래치 창법은 사실 비강을 이용해, 그니까 코를 이용해서 긁는 창법이다. 그래서 김정민이 노래를 부를 때 미간을 찡그리는데 이 찡그리는 힘으로 코를 긁는것. 이는 아마 김정민이 평소 축농증을 앓고 있어서[25] 코 막힌 소리를 내지 않기 위해 터득한 창법으로 보인다. 단 현재는 축농증 치료 수술을 받은 상태다.

다만 뮤지컬이나 일부 노래에서는 긁지 않고 담백한 창법으로 부르는 경우도 있다. 정확히 말하자면 긁기 시작한 때는 2집 <슬픈 언약식>에서부터고 1집 <그대 사랑안에 머물러>에서는 긁는 창법이 아니었다. 심지어 부캐인 김정수로 합류한 MSG워너비에서도 특유의 음색과 창법으로 인해 시청자들은 김정민이 발라드 그룹인 MSG워너비의 색깔과 맞을까 하는 우려를 했었지만, 그룹 미션에서 보여준 '인형'[26], 나를 아는 사람 녹음 당시에 평소 부르던 대로가 아닌 멤버들의 음색과 노래 색깔에 맞게 담백하게 부르는 모습에 특유의 창법을 고집하지 않고 내려놓을 줄 아는 겸손함에 젋은 팬이 증가하기도 했다.

4. 가수 활동

4.1. 1~3집

  • 1994년에 <그대 사랑 안에 머물러>라는 곡으로 데뷔했으며 가요톱텐에서는 10위까지 랭크되었다.
  • 1995년 9월 발매한 2집에서는 <슬픈 언약식>이 커다란 신드롬을 일으켰다. 이 때 그의 인기는 대단했는데 <슬픈 언약식>으로 가요톱10 골든컵 수상과 더불어서 각종 가요 프로그램에서 연속으로 1위를 수상했으며 후속곡인 <마지막 약속> 역시 3월 중순에 여러 방송사에서 1위를 차지하는 엄청난 기염을 토했으니 가히 신드롬적인 인기. 특히 1996년 가요톱텐은 치열한 대접전으로 골든컵 수상곡이 2곡 밖에 없었는데, 그 중의 하나가 김정민의 <슬픈 언약식>이었으니 대단한 인기라고 볼 수 있으며 특히 1996년 별들의 전쟁이 있던 시기에도 여러 번 1위를 차지하면서 큰 인기를 누렸다.[27][28]
  • 1996년 10월에 낸 정규 3집의 타이틀곡 <애인> 역시 1996년 11~12월에 나와서 H.O.T.의 <캔디>를 꺾고 1위를 여러 번 할 정도로 대히트 했으며 후속곡 <무한지애>가 롱런하면서, 역시 가요톱10에선 10위 권까지, MBC 인기가요 베스트 50에서는 1위 후보에 여러 번 올랐고, 삼속곡인 <굿바이 마이 프렌드>도 소소한 인기를 얻었으니 H.O.T. 같은 아이돌 시기 때 밀려서 주춤한다는 건 어불성설이다.[29]

4.2. 4, 5집

  • 1990년대 중후반까지만 해도 많은 여대생 팬들을 이끌고 다니는 등 인기가 높았다. 그 뒤 1998년에 4집으로 컴백해서 <비>와 <아모르> 등으로 활동했으며 이전과 달리 폭발적인 큰 인기는 얻지 못했지만, 그래도 가요 프로그램에서는 10위 권 안에 들면서 선전했다. H.O.T.젝스키스, S.E.S., 핑클, NRG, 신화가 등장하고 본격적인 아이돌 전쟁이 벌어지게 되었던 것도 이유 중의 하나나 아이돌에 기세가 밀렸어도, 애초에 181cm의 장신에 짧은 올백머리로 굵고 강렬하게 발라드를 부르는 남성 가수의 영역은 아이돌과는 다르다. 가난과 청소하시는 어머니의 뒷바라지, 오랜 무명 생활이라는 비하인드 스토리에 외모까지 갖춘 김정민은 미혼 여교사들의 이상형 1위로 꼽히는 등 실제 지지층도 20대 초반에서 30대 중반의 여성이었고 노래방용 발라드로 어울리는 노래가 많았기에 남성들에게도 많은 인기를 얻었다. 4집 컴백 때는 트레이트 마크인 짧은 머리에서 긴 머리 스타일로 변신[30]을 시도했는데 방송가에 센세이션을 일으킬 정도로 잘 어울렸다. 크리스마스 시즌에는 <From Christmas To Christmas>라는 옴니버스 앨범을 여러 동료 가수들(터보, 박상민, 박지윤, 포지션 등등)과 발매하며 <Yesterday>라는 곡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 2002년 5집으로 컴백했다. 5집의 경우 타이틀곡 <정상에서>의 뮤직비디오는 김정민의 완숙미가 느껴지는 앨범이며 러시아 내셔널 오케스트라가 세션으로 참여할 정도로 퀄리티에도 상당한 심혈을 기울였으나, 타이틀곡 '정상에서'의 뮤직비디오에 출연한 신현준손태영의 촬영 중에 손태영의 스캔들이 터졌고, 손태영의 애인이었던 주영훈과의 삼각관계로 이상하게 연결되면서 논란이 일파만파 커지게 되었다. 결국 이들을 주연으로 기획되어 촬영까지 마친 드라마타이즈 뮤직비디오 장면들이 대거 폐기되었고[31], 이 영향으로 타이틀곡 <정상에서>는 대중들 사이에서 김정민의 노래라는 본연의 느낌보다 신현준과 손태영이 썸을 타게 된 매개체라는 이미지가 덧씌워지며 음악의 높은 완성도가 빛을 바랬다. 그럼에도 김정민 개인에 대한 인기, 인지도는 여전했기 때문에 음악방송에서는 1위 후보에 오르는 등 선전했다.
  • 그 뒤 후속곡인 <마지막 사랑>이 좋은 반응을 얻은 덕분에 일찌감치 활동곡으로 변경하여 대중들에게 사랑을 받게 된다. '마지막 사랑'은 김정민 특유의 보이스가 러시아 내셔널 오케스트라의 웅장하고 애절한 감정을 느끼게 하는 멜로디와의 조화를 이룬 곡으로, 앨범이 발매된지 5년 후인 2007년에 다시 MBC 월화드라마 히트에서 1회:차수경(고현정)과 형사들이 선배 장용화 형사(최일화)를 특진시키기 위해 버팔로를 소탕하러 출동하는 장면, 6회:장용하 형사가 홍콩에서 인신매매 목적으로 삼합회 조직원들에게 억류된 (자신의 딸을 포함한) 10대 여성들을 구하기 위해 총격전을 벌이다 제압당하는 장면. 7회:삼합회 조직원들에게 인질로 잡혀 있다 막 풀려난 장용하 형사가 딸과 통화를 하는 장면, 곧이어 딸과 재회하며 서로 포옹하는 장면. 10회:김영두(김정민 본인)와 차수경이 통화하는 장면과 이어 김재윤 검사(하정우)가 정인희(윤지민)와 통화하는 장면 등에 흘러나오면서 비장, 감동, 아련한 분위기를 고조시키는 OST로 쓰였다.[32] '마지막 사랑'은 스카이라이프 애니원 TV 개국 이후 자투리 시간에 넣어주던 뮤직비디오의 음원으로 쓰이기도 했는데 그 뮤직비디오는 다름 아닌 열혈강호. 이는 2001년에 PC로 출시되었던 게임판의 주제곡을 김정민이 불렀던 인연이 있었기에 전혀 어색하지가 않았는데, 영상 자체방송국에서 게임 속 CG 영상과 마지막 사랑을 편집한 자체제작 뮤비였지만 오히려 게임 주제곡보다 더 잘 어울린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 또한 록 발라드 장르에서 벗어난 댄스곡인 '붐붐붐(2집)', '도날드 & 장군(5집)[33] [34]이라는 곡도 많은 사랑을 받았다.

4.3. 그 이후

  • 2003년에 6집 타이틀곡인 '원'이 10위 안에 들면서 선전했고 후속곡인 '내가 사는 이유'로 활동한 뒤 2005년에는 플라워의 고성진, 김우디와 함께 '리플레이'라는 일렉트로닉 밴드를 결성했으나 1집 이후로 활동은 없었다.
  • 2009년에는 정규 7집 'BEAUTIFUL MY LIFE'을 내고 활동을 했으며, 6집의 Restart의 가사를 수정하여 게임 트리니티 온라인의 OST로 쓰여졌다.
  • 2012년엔 소속사를 엠클라우드 엔터테인트먼트에서 잠시 양정승이 대표로 있는 "KIROY Y"로 바꾸면서 양정승과 함께 싱글 "Return:바라보다"를 냈다가 다시 2014년쯤 김슬기, 류덕환, 류승룡 등이 소속해 있는 필름있수다로 바꾸었다. 2016년 기준 이현우가 대표로 있는 H.W 엔터프라이즈다 소속이었다가 현재는 이현우, 권오중, 김형중 등과 함께 실버스톤 엔터테인먼트 소속이다.
  • 2016년에는 싱글 '먼 훗날에'를 발표하며 '제 2막'이라는 타이틀로 단독 공연도 가졌다. 최근에는(2017년 10월) 대학로에서 5일 동안 소극장 콘서트를 열었는데, 젊은 시절보다 오히려 더 안정된 보이스를 보여주며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
  • 2018년에는 싱글 '살고싶다'를 발표했는데 가수 박상민, 권선국이 참여한 'Bravo'도 함께 수록되어 있다.
  • 2020년에는 "Ma Melody', '최고의 날'이 수록된 싱글을 발표했다.
  • 2021년 12월 10일 싱글 앨범 '미치도록 그립다[35]'를 발매했다.
  • 2023년 11월 17일 영원(스카이 원곡)을 리메이크하여 발표하였다.

4.4. 앨범

4.4.1. 정규 앨범

  • 1집 그대 사랑안에 머물러 (1994. 06. 01)
  • 2집 4Love (1995. 11. 01)
  • 3집 Change (1996. 10. 01)
  • 4집 Jump 98 (1998. 03. 01)
  • 5집 The Greatest Love Song 2002 (2002. 02. 28)
  • 6집 2003 Reborn of Tiger (2003. 01. 24)
  • 7집 Beautiful My Life (2009. 09. 23)

4.5. 수상 경력

4.5.1. 시상식

연도 시상식 명 수상 부문
1996년 KBS 가요대상 올해의 가수상
1996년 SBS 가요대전 솔로 부문 수상
1996년 제7회 서울가요대상 본상
1997년 KBS 가요대상 올해의 가수상
1998년 제13회 대한민국 영상음반대상 골든 디스크 부문 SKC 인기 가수상
2003년 제2회 스타선행대상 스타 선행 대상
2021년 MBC 방송연예대상 베스트 팀워크상[36]

4.5.2. 가요 프로그램 1위

날짜 곡명 방송명 비고
1995.12.22 슬픈 언약식 MBC 인기가요 베스트 50 첫 1위
1996.01.05 MBC 인기가요 베스트 50
1996.01.07 SBS TV가요20
1996.01.10 KBS 가요톱텐
1996.01.12 MBC 인기가요 베스트 50 3주 연속 (Best of Best)
1996.01.14 SBS TV가요20 2주 연속
1996.01.17 KBS 가요톱텐
1996.01.24 KBS 가요톱텐
1996.01.31 KBS 가요톱텐
1996.02.07 KBS 가요톱텐 5주 연속 (골든컵)
1996.03.09 마지막 약속 MBC 인기가요 베스트 50
1996.03.16 MBC 인기가요 베스트 50
1996.03.17 SBS TV가요20
1996.03.23 MBC 인기가요 베스트 50 3주 연속 (Best of Best)
1996.03.24 SBS TV가요20 2주 연속
1996.03.27 KBS 가요톱텐
1996.11.16 애인 MBC 인기가요 베스트 50
1996.11.24 SBS TV가요20
1996.11.30 MBC 인기가요 베스트 50
1996.12.01 SBS TV가요20 2주 연속
1996.12.04 KBS 가요톱텐
1996.12.07 MBC 인기가요 베스트 50
1996.12.11 KBS 가요톱텐
1996.12.14 MBC 인기가요 베스트 50 3주 연속, 통산 4주 (Best of Best)
1996.12.18 KBS 가요톱텐 3주 연속

5. 출연 프로그램

5.1. 고정 출연

날짜 방송명 비고
2005.11.05 ~ 2006.04.15 KBS2 위기탈출 넘버원

5.2. 게스트

6. 출연 광고

6.1. 홍보

7. 미스터리 음악쇼 복면가왕

7.1. 31, 32회

2015년 11월 1일, 11월 8일에 걸쳐 방영 된 미스터리 음악쇼 복면가왕 16차 경연에서 자나 깨나 안전제일이라는 가명으로 참가해서 2라운드까지 진출했다. 당시 1라운드 상대 월미도 바이킹과 함께 듀엣곡으로 강인원, 김현식, 권인하의 <비오는 날의 수채화>를 불렀으며, 2라운드에서 자유로 여신상과 겨룰 때는 조정현의 <그 아픔까지 사랑한거야>를 불렀다. 정체를 밝힌 뒤에는 연예인 판정단들이 그가 숨겨왔던 특유의 스크래치 창법을 보여달라고 요청하자 특유의 명불허전 독보적인 창법을 완벽히 보여주면서 속을 뚫어줬으며 아이들에게 아빠가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서 나왔다고 밝혔다. 참고로 당시 추리하는 동안 그의 정체를 완전히 파악하지 못했던 케이윌은 그의 정체에 대해 유력 후보로 그를 포함해서 김민종, 박상민을 꼽았다.

7.2. 261, 262회

▲ 헤어진 후에 ▲ 내가 아는 한가지 ▲ 말리꽃
그로부터 5년이 지난 뒤인 2020년 6월 28일, 7월 5일에 걸쳐 방영 된 미스터리 음악쇼 복면가왕 131차 경연에서 오징어는 못생겼다는 편견을 버려! 잘생긴 목소리 오징어라는 가명으로 재도전해서 내 무대는 심심풀이 땅콩이 아니야! 고소한 목소리 땅콩, 뜯을까 말까~ 변치 않는 영원한 두근거림! 뜯지 않은 택배, 충성! 가왕석에 말뚝박겠습니다! 말년병장을 모두 차례대로 꺾고 우승하면서 가왕과 겨루는 등 맹활약을 펼쳤다. 정체를 밝힌 뒤에는 "중견 가수들이 꾸준히 활동을 하기 위해서 열심히 노력하는 중이다. 오늘도 오랜만에 신곡을 발표했다." 라면서 향후의 활동에 대해 관심을 주셨으면 좋겠다는 소감을 밝혔다.

참고로 베테랑 가수들의 대결이기에 가왕전 대결은 박빙이 예상되었으나 예상과는 달리 극단적으로 벌어진 표차에 의아해 하는 반응이 많았으며, 재밌는 점은 1라운드 상대가 2라운드 준비곡으로 부른 곡이 본인의 곡이다. 또한 당시 가왕은 첫 도전 때 본인과 마찬가지로 2번 엔트리에 배치되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7.3. 경연곡 목록

자나깨나 안전제일
EP. 방송 날짜 곡명 원곡자 VS. 득표수
16-1 2015년 11월 1일 비오는 날의 수채화 강인원, 김현식, 권인하 월미도 바이킹 56
16-2 2015년 11월 8일 그 아픔까지 사랑한거야 조정현 자유로 여신상 16
오징어는 못생겼다는 편견을 버려! 잘생긴 목소리 오징어
EP. 방송 날짜 곡명 원곡자 VS. 득표수 환산
131-1 2020년 6월 28일 헤어진 후에 Y2K 내 무대는 심심풀이 땅콩이 아니야! 고소한 목소리 땅콩 14 66
131-2 2020년 7월 5일 내가 아는 한가지 이덕진 뜯을까 말까~ 변치 않는 영원한 두근거림! 뜯지 않은 택배 18 85
131-3 말리꽃 이승철 충성! 가왕석에 말뚝박겠습니다! 말년병장 14 66
131-K 내 노래는 우아 우아 우아~해! 절대 시들지 않는 가창력! 장미여사 2 9

8. 불후의 명곡 전설을 노래하다

<rowcolor=#fff> 특집 곡명 점수 승패
팬미팅 무한지애[37] 391 1승 1패
정풍송 미워 미워 미워 - 1패
희망찬가 존재의 이유 376 1승 1패
박춘석 마음이 고와야지 - 1패
봄이 오는 소리 봄비 427[38] 1승 1패
김명곤 빙글빙글 - 1패
김희갑&양인자 하얀 목련 - 1패
불후의 짝꿍 비와 당신의 이야기[39] 405 2승 1패
노사연 만남 392 2승 1패
불후의 7인, 서로를 노래하다 흔들린 우정 - 1패
국민 애창곡 무조건 - 1패
사랑꾼 서시 [40] 1승 1패

9. 보이스킹

10. 여담

  • 가수로서의 활동이 하향세를 그리는 동안엔 주로 배우로서 연기를 했으며[41] 각종 시트콤이나 영화조연으로 자주 나왔다. 대표작은 KBS 2TV 일일시트콤 올드미스 다이어리, 영화 '언니가 간다' 등등. 대학로 연극에서 나오기도 했다. 연기 부문에서도 꽤 경력이 많다. 가장 최근 출연 작품은 가족끼리 왜 이래. 생각보다 준수한 연기 수준을 보였다고 한다. 그런데 올드미스 다이어리에 출연하던 무렵 그는 리플레이 활동도 하고 있었는데 몇몇 나이 어린 10대 팬들이 그를 본래 연기자인 것으로 오해해서 가수로 데뷔한다는 웃지 못할 해프닝이 벌어졌다.
  • 위기탈출 넘버원에서는 17회(2005년 11월 5일 방송분)부터 37회(2006년 4월 15일 방송분)까지 고정 게스트로 출연했다. 다만 19회(2005년 11월 19일 방송분)에는 출연하지 않았다. 김현철과 함께 5명 / 오구동성 공공의 답 / 선택 지워야 산다 체제로 바뀐 이후에도 계속 출연한 고정 게스트였다. 지워야 산다 당시에 별명이 찬스맨이었다. 이유는 지워야 산다에서 맨날 찬스를 썼기 때문이다. 이는 20회(2005년 11월 26일 방송분)부터 32회(2006년 3월 11일 방송분)까지의 별명이었고 33회(2006년 3월 18일 방송분)부터는 찬스 제도가 사라졌다.
  • 일본인 아내 타니 루미코(谷ルミコ)는 11살 연하이며 과거 일본 아이돌로 활동한 경력이 있다. 하로프로젝트의 전 멤버이며 모무스 & 헤이케 미치요 '여동생' 오디션 1위 수상자였다. 당시에는 미요시 치나츠라는 이름으로 활동했으며, 마술사 오펜 Revenge 엔딩곡을 불렀다. 다만 인기는 그리 많지 않았어서, 싱글 3장을 발표하고 활동을 중지했다. 재일교포 3세라는 루머가 있었지만 루미코는 트위터를 통해 일본 여권을 인증하면서 재일교포가 아닌 일본인이라고 밝혔다. 다만 루미코의 아버지가 재일교포 출신이며 일본으로 귀화했다는 점에서 루미코는 한국계 혼혈 일본인이기는 하다.[42] 일본 아이돌 출신답게 미모가 출중하고 오랜 한국 생활로 한국어도 유창하다. 과거 김정민과 함께 네이버 블로그를 운영했었다. 또한 일본식 가정요리 책을 출간한 적도 있다. 한국에서도 김정민과 함께 여러 방송에 출연했다. 2023년부터 아내는 둘째 아들, 셋째 아들과 함께 일본으로 이주하여 김정민은 기러기 아빠 생활을 하고 있다. 큰 아들은 광주 FC U18 소속의 축구 선수로 생활하고 있어서 광주에 거주 중이다.
  • 부인도 아이돌로 활동했어서인지 이상하게도 부인 루미코는 김정민이 노래 부르는 걸 무척 싫어한다고[43] 한다. 이유는 부인의 기준에서는 김정민이 노래 부를 때 음정이 잘 맞지 않는다고 하며, 그래서 김정민이 가진 모든 걸 사랑하는데 딱 한 가지 사랑할 수 없는 게 김정민의 노래라고 한다. 연애 시절이나 결혼 이후에도 부인 앞에서 노래 몇 번 불렀다가 음이 약간 틀릴 때마다 부인 루미코의 표정이 돌변하면서 엄청나게 화난 표정[44]을 짓더니 너무 싫어해서 평생 부인 앞에서는 노래를 안 부르기[45]로 했다고 한다. 부인은 사실상 자신을 노래에 소질 없는 사람으로 대우한다고 한다. 그 외에는 잘생겼고 매너도 좋기에 노래만 빼고 다 좋은 남편이라고 한다. 가수 남편에게 싫은 점 딱 하나가 노래라니... 김정민이 방송에 나올 때마다 수없이 직접 설명한 이야기인만큼 부인이 진짜 많이 싫어하는 듯 하다. 김정민의 말로는 부인에게 절대음감이 있고, 자신은 부인 음감의 기준에 맞아본 적이 단 한번도 없다고 한다. 그 외에도 문화 차이로 다툰 적[46]은 꽤 있지만, 문화 차이와 무관하게 크게 대립한 건 노래 하나였다고 한다.
  • 배우 김경남이 자신의 팬클럽에서 쓰는 여성 팬들용 애칭이 경숙이라고 하자 김정민이 갑자기 자신의 친누나 이름이 그거라고 밝혔다.
  • 2015년 9월 기준 근황으로는 종편에서 간간히 얼굴을 비추는 정도로 활동을 이어가는 것 같다.
  • 2015년 11월 14일 JTBC 히든싱어4에 출연했으며 오랜만에 가수로서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우승을 차지했다. 이 방송에서 본인이 한 얘기에 따르면 혈압 있는 사람들은 자신의 노래를 부르면 안 된다고 했다. 잘못하면 쓰러진다고...
  • K리그 광주 FC 홍보대사로 응원가도 만들었으며 2016년 6월 26일 광주 : 전북전 중계에 광주 유니폼을 입고 객원해설로 함께했다.
  • 장남과 차남은 유소년 축구선수로, 장남은 골키퍼, 차남은 포워드이다. 2019년 뭉쳐야 찬다 - 전설들의 조기축구에서 서울신정초등학교의 축구 선수로 출연했으며, 2021년에는 뭉쳐야 찬다 2에 중학생이 된 모습으로 다시 나왔는데 장남 김태양 군은 경북 지역의 축구 명문인 안동중학교로 진학했고, 차남 김도윤 군은 FC 서울의 U-15 팀인 오산중학교로 진학했다. 이때 아들들은 일일 코치, 김정민 본인은 킹콩FC(위 신정초 학부모 모임에서 출발했다고 함) 단장 겸 주장으로 출전했다. 이후 김도윤 군은 어머니와 동생과 함께 일본으로 이주하면서 국적을 대한민국에서 일본으로 변경하여 사간 도스 유스팀으로 이적했고, 2024년 현재 일본 U-17 대표팀에도 선발되었다.
  • 2020년 1월 31일 JTBC 슈가맨3 9화에서 재석팀 슈가맨으로 출연했으며 슈가송은 '슬픈 언약식'. 슈가맨에서 뮤지컬 맘마미아 때 불렀던 노래를 불러주었다.
  • 2021년 놀면 뭐하니? MSG 워너비 블라인드오디션에 출연한 도경완이 김정민 목소리와 비슷해 재조명이 되면서 급섭외가 되어 이승기라는 이름으로 직접 오디션에 참여해 녹슬지 않은 실력[47]과 나이가 믿기지 않는 동안 외모를 선보였다. 여담으로 출연자들 중 유일하게 음력 생일을 센다. 중년은 별 보러 가면 안 되나요?
  • 어린 시절 집이 가난했다고 한다. 어느 정도였냐면 그 흔한 어린 시절 사진 하나 없을 정도.[48][49] 심지어 당시 살던 동네에 가장 좋은 기와집이 있었는데, 어머니에게 입버릇처럼 '내가 나중에 커서 저 집 사줄게'라고 했는데, '슬픈 언약식'으로 히트하고 나서 실제로 그 집을 사 드렸다고 한다.
  • 본인피셜 우정 출연 전문이라고 한다. 커피프린스 1호점에서 맡았던 'DK'역도 우정 출연이었고, 심지어 최근 출연한 술꾼도시여자들에서 맡은 술집 사장 역 또한 감독과의 우정 출연이었다보니 출연료를 그렇게 많이 받지 않았는데, 알고보니 자신이 12회 중 무려 9회 동안이나 출연했다는 사실에 혹시 자신이 시즌 2에도 출연을 하게 된다면, 다음번엔 출연료를 제대로 챙겨줬음 좋겠다는 농담섞인 말을 하기도 하였다. 이후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시즌 2 첫 회 대본을 올린 것으로 보아 시즌 2에도 합류한 것으로 보인다.
  • 2021년 7월부터 2022년 12월까지 네이버 나우 '그때인가요' 채널에서 '모닝 샤우팅'이라는 라디오 프로그램을 오전 7시부터 9시까지 2시간 동안 진행했다. 광고나 형식등이 따로 없어 진행하기 편하다며 지상파 라디오 진행보다 훨씬 만족했다고 함..
  • 2000년대 초중반 인기를 끌었던 드로이얀 온라인의 고렙 유저였었다. 연예계 활동을 하는 틈틈히 했을 텐데도 서버 내에서 가장 강한 길드를 운영하며 공성전을 씹어먹고 다녔을 정도. 더불어 드로이얀 온라인의 공식 OST인 내가 가는 길도 김정민이 담당했다. 게임 OST로선 이례적인 인기를 끌며 현재까지도 숨겨진 명곡으로 종종 언급되는 편.
  • 김정민은 한 달 보험료로 600만원을 지출중이라고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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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보기: 역대 국내 음악 베스트 | 역대 국내 댄스 베스트 | 역대 국내 발라드 베스트 | 역대 국내 록발라드 베스트 | 역대 국내 록/얼터너티브 베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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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데뷔 당시 선배가수 김정수와 동명이라 김정민이라는 예명으로 활동을 시작했다. 그룹 MSG 워너비 활동시에는 본명 김정수를 부캐삼아 활동한다.[2] 음력 8월 23일. 생일을 음력으로 센다. 과거에는 1969년, 1970년생으로 활동했었다.[3] 태어날 적부터 성년이 되기까지 성미산 부근에서 살아왔고 현재도 마포구 토박이다. 망원동과 성산동 부근을 떠돌아다녔다고 한다. 부친이 무허가 흙집을 지었다고 한다. 그때는 성산동이 부유한 동네는 아니었는데, 동네에 몇개 있던 부자들 집 중 하나를 가수로 성공하고 부모님께 사 드렸다고 한다. 대신 나름 놀 때는 서대문구, 은평구에서도 놀았다는 듯 하다. 은평구 출신인 이상민, 탁재훈 등과도 아는 사이였다고 한다.[4] 삼현파 24세손, 수로 72세손 ○수(○洙) 항렬.[5] 본인 인스타 라이브 방송때 인증함.[6] 자녀들은 대한민국일본복수국적이다. 한국은 선천적 복수국적을 허용하지만 일본은 허용하지 않기 때문에 22세 전까지 하나의 국적을 선택해야 한다.[7] 광주 FC U18 소속의 축구 선수이다.[8] 2024년 어머니의 국적인 일본을 선택해 일본이름은 '타니 다이치' 이다. 일본에서 J리그 사간 도스 유스팀 소속의 축구선수 활동 중이며, 일본 U17 대표팀에도 발탁되어 골까지 넣었다. 자세한 내용은 일본 U-17 축구 대표팀 문서 참조.[9] 미운 우리 새끼 418회에서 이름 공개[10] 제17보병사단 출신(17사단 306 포병대대)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후 국방홍보원으로 전출된 것으로 보인다.#[11] 1992년 7월 27일 ~ 28일까지 방영 된 드라마 '4일간의 사랑' 삽입곡으로 데뷔했으며 '그대 사랑안에 머물러'가 타이틀 곡으로 수록 된 1집 데뷔 앨범은 1994년 6월 1일 발매 되었다.[12] 인스타그램 프로필 글귀.[13] 성산동에서 태어나 노래하는 모습이 남성적이고 눈빛이 강렬해서 붙여진 별명[14] 2000년~2002년 까지 방송된 동거동락 출연당시 붙여진 별명[15] 2005년 12월 당시 위기탈출 넘버원에서 찬스를 많이 쓴다고 해서 22회 시뮬레이션3에서 MC였던 강병규가 찬스맨이라는 별명을 붙여줬다. 이 별명은 2006년 초반까지만 사용했다가 점점 비중이 줄어들기 시작하더니 세트장이 개편된 33회부터는 찬스제도가 사라져서 이 별명은 사라지게 되었다.[16] 슈가맨 출연당시 라이브가 CD를 삼킨 듯 하다고 붙여진 별명[17] '이구아나', '정민지존'에 이어 현재 사용중인 팬덤명으로 '김정민을 사랑하는 친구들, 나와 함께하는 사람들'이라는 의미.[18] 김정민 말로는 그 친구도 친구들 사이에서는 잘생긴 걸로 유명했다고 한다. 그런데도 자기만 캐스팅됐으니 자기가 더 잘생겼다는 자랑[19] 오히려 아마추어 밴드에서 베이스를 칠 때는 사람이 부족할때 기타를 잠시 맡거나 한적은 있어도, 보컬 참여는 거의 안하는 편이었다고 한다. 따라서 노래연습을 하지 않았고, 노래연습은 오히려 캐스팅 되고 한 것.[20] 이는 동시대 로커들에게 굉장히 진지하고 나름 중요한 화두였다. 부활 보컬 출신 박완규는 김경호가 핑클 NOW를 리메이크했을 때 사석에서 어떻게 그게 로커가 할 짓이냐며 멱살을 잡았다고 할 정도... 2020년이라면 신선한 도전으로 받아들일 일이지만 그땐 그럴 수 없었다.[21] 그는 본인이 환갑이 훌쩍 넘은 나이에도 숏컷을 할 만큼 젊을 때부터 짧은 머리에 남자다워보이는 스타일을 좋아한다고 한다. 체격도 옛날 사람치고 170대 후반에서 180대 초반 정도로 상당히 큰 편이다.[22] 모친은 건물 청소를 하셨다고 했는데, 부친은 육체노동이라고만 했고 어떤 종류인지 밝히지 않았다.[23] 실제로 계약한 날 그 현금가방을 김정민이 직접 가져가게 했다고 한다.[24] 기획사 일을 접고 시간 제한이 없는 작곡일만 했다는 듯.[25] 히든싱어 출연 당시 아내 루미코가 언급한 사실이다.[26] 신혜성, 이지훈 원곡.[27] 나머지 하나는 클론의 <꿍따리 샤바라>.[28] 참고로 <슬픈 언약식>의 원제는 <우리 사랑을 위해>였다.[29] 특히 1996년 12월 3주차 가요톱텐에서는 H.O.T.의 <캔디>를 꺾고 1위를 했다. H.O.T.의 가요톱텐 첫 1위는 1997년 1월로 넘어간다.[30] 이게 상술된 오진우 사장과의 큰 갈등으로 소속사를 바꾼 뒤에 일부러 외모 설정까지 바꾼 일이었다.[31] 해당 부분은 김정민이 노래를 부르는 장면으로 교체되었다.[32] 드라마 연출을 맡은 유철용 PD가 직접 선곡했다.[33] 원곡은 일본 그룹 랫츠 앤 스타가 발표한 메구미의 사람(め組のひと).[34] 김정민은 원래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쓰여진 곡이라고 말했는데, 팬들을 위한 노래라고 한다. 원래 제목은 T.O.G로 하려고 했다가 '옛날 생각나서 좋잖아 ' 라는 한 마디에 제목을 도날드 장군으로 해버렸다.[35] 마지막 약속, 무한지애 등을 작곡한 하해룡 작사 고성진작곡[36] MSG 워너비 팀 단체 수상[37] with 홍경민.[38] 개인 최고 기록.[39] with 박상민.[40] 점수 비공개.[41] 그가 신인일 때 가수들의 연예오락 프로그램 출연이 많았고, 그는 그 중에서도 소위 "구른다"고 할만큼, 남자다운 이미지에 비해 많이 출연하는 편이었는데, 당시는 드라마타이즈나 극형식 개그가 많아서 김정민도 본의 아니게 신인시절 연기를 했었다. 연기자 꿈도 없던 사람이니 신인때는 연기력이 나쁜 편(당시는 김정민같이 진지한 이미지의 가수가 코믹 연기하러 나와서 발연기하는 게 또 하나의 개그 기믹이기도 했다. 인터넷이 발달하지도 않았지만 가수가 연기 못한다고 까이는 분위기 자체가 별로 없었다. 정극일때는 케바케였지만, 예능 드라마타이즈에서는 발연기도 아예 안 까였다고 봐도 된다.)이었지만, 잦은 예능 내 상황극 출연으로 수년 뒤 연기력이 자기도 모르게 단련되었는지 나아졌고 그때부터 정극연기도 도전하게 되었다.[42] 2014년 MBC 세바퀴에서 아버지가 재일교포라고 언급했다. 어머니는 보통 일본인이다. 아버지는 한국 방송에 잠시 출연했는데, 일본어로만 소통한 것으로 보아서 한국어는 전혀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 일본은 1984년생까지 아버지가 일본 국적인 경우에만 자녀에게 일본 국적을 부여했고, 루미코는 1979년생이기 때문에 아버지가 일본으로 귀화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43] 김정민은 당시 부인이 심하게 인상을 쓰면서 거의 혐오하는 거 같아서 속상했다고 한다. 부부싸움까지 갔다가 김정민이 포기했다고 한다. 물론 처음에 부인이 말을 한 게 아니라 본인이 따졌다가 싸웠다고.[44] 본인이 노래 끝나고 화가 나서 왜 그렇게까지 노려보냐고 따지며 화를 내자 부인이 김정민의 음을 지적했는데, 김정민이 인정하지 않고 화를 내자 계속 노려보던 부인이 알 수 없는 일본어로 뭔가를 말하고 나가서 무서웠다고 한다. 나중에 찾아보니 일본어 욕이었다고 한다. 당시 했던 말은 この野郎が였다고 하며, 직역으로는 "이 친구가" 정도지만 직역과는 다르게 실용 일본어에서는 싸울 때만 쓰는 심한 욕설(야쿠자 영화나 학교폭력물에서나 나온다.)이다. 한국어로 의역을 하자면 "이 XX가"에 가깝다.[45] 정확히는 부인이 제발 내 앞에서 부르지 말라고 해서 안 하는 거라고.[46] 부인이 먹으려고 사놓은 케이크를 부인이 없을 때 김정민이 "아직 안 먹었으니 안 먹나보다"하고 먹었다가 단순한 말다툼이 아니라 아예 크게 싸운 적이 있다고 하는데, 일본에서는 가족끼리도 특정인이 먹겠다고 정한 걸 허락 없이 먹는 것은 가족 윤리에서 용납할 수 없는 것이라고 하는 듯.[47] 최진영의 영원을 불렀는데, 잘 어울린다는 평이 많다. 사실 영원은 원래 김정민한테 올 노래였기 때문에 애초에 작곡가 고성진이 김정민에게 맞춰서 만든 노래라 특히나 본인 노래 같이 소화를 잘했다. 영원이 최진영에게 가게 된 건 둘이 같은 소속사였을 시절, 최진영이 배우로서의 하향세 때문에 간절한 상황이었는데 마침 소속사 사무실에 있을 때 영원의 데모 테이프 버전 음원을 들었다고 한다. 최진영 입장에서 너무 간절한 나머지 본인이 부르고 싶어서 선배인 김정민에게 간절하게 부탁한 끝에 양보 받았다고 한다.[48] MSG워너비 인스타그램에 멤버들의 과거사진이 공개되었을 때 어릴 때 사진이 공개된 다른 멤버들과는 달리, 지석진과 본인만 청년 시절 사진이 공개되었다. 이에 김정민이 자신의 사진이 공개된 피드에 어렸을 때 집안 사정이 좋지 않아 어린 시절 사진이 없다고 직접 댓글을 달았다.[49] 이후 찾았는지 자신의 SNS에 어린 시절 사진을 올렸다. 막내아들 담율이랑 똑같이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