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르만족의 일파인 작센족에 대한 내용은 앵글로색슨족 문서 참고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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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작센 자유주(Freistaat Sachsen)는 독일 동부에 위치한 주(州)로, 주도(州都)는 드레스덴. 최대도시는 라이프치히다.북쪽에는 브란덴부르크 주, 동쪽에는 폴란드, 남쪽은 체코, 서남쪽에 바이에른 주, 서쪽에는 튀링겐 주, 서북쪽에는 작센안할트 주와 이웃해 있다.
기타 주요 도시로는 츠비카우, 켐니츠 등이 있다.
면적은 1만 8,413 ㎢이며, 약 408만 명이 거주하고 있다.[2] 구 동독 지역 중 인구 밀도가 가장 조밀하고 산업화가 많이 진행된 지역이다.
2. 역사
2.1. 구 작센 (Altsachsen: ~ 1180년)
원래 작센(3세기~1180년)은 라인·엘베 두 강 사이의 오늘날의 니더작센 주와 홀슈타인, 그리고 북부 베스트팔렌에 해당하는 지역을 의미하며, 현재의 작센 주와는 관련이 없다. 엘베강 동쪽의 땅은 서로마 제국 말기에 일어난 게르만족의 대이동 이후에 슬라브화되었다가 나중에 중세 이후 동방식민운동으로 다시 독일화되었기 때문에 당시 작센은 북독일에 해당했다. 게르만족의 일파인 작센(Sachsen)족은 200년경부터 이 영역에 정주했다. 독일의 5대 부족 중 가장 북쪽에 위치했으며 바다와 접했기 때문에 해상으로의 진출과 무역도 활발했다. 5세기경 작센족(영어명 색슨족)의 일파가 브리튼 섬을 정복한 것도 바로 북해 연안을 근거지로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들이 잉글랜드를 정복하여 앵글로색슨족이 되었다. 앵글족과 색슨(작센)족이라지만 앵글족은 거의 사멸했고, 색슨족이 대부분이었다.[3]476년 서로마 제국 붕괴 후 여러 게르만 왕국들이 건설될 때, 작센족도 작센 왕국을 건설하였다. 이웃에 있는 메로빙거 왕조의 프랑크 왕국과는 느슨한 관계를 이어갔으나 인접국 관계인 만큼 수시로 전쟁이 벌어지기도 했다. 일찌감치 기독교화된 브리튼 섬의 앵글로색슨족이나 다른 게르만족들과는 다르게 여전히 전통적인 이교를 믿고 있었으며, 이르민술이라는 거대한 기둥 혹은 나무를 신성시했다고 한다.
7세기경 작센 왕국의 힘은 강성해졌고 이웃 프랑크 왕국과 자주 전쟁이 발생했다. 침공과 보복 침공 등으로 양국 간의 감정의 골이 크게 벌어졌다. 772년 프랑크 왕국의 카롤루스 대제 때 작센과 프랑크의 전쟁은 절정을 이루어 근 40년에 걸친 피비린내 나는 참혹한 전쟁이 이어진다. 상기한 이르민술도 이 전쟁 중에 파괴됐다고 한다. 이단 척결이라는 명분으로 작센과 전쟁을 했던 카롤루스는 점령 지역의 작센인들에게 가톨릭으로 개종을 강요했고 거부하는 이들은 모두 처형했다. 잔혹한 전쟁 끝에 작센의 인구가 격감할 정도가 된 800년 결국 작센은 프랑크 왕국에 병합되었지만, 작센인들은 810년까지 반란을 이어갔다.
카롤루스 대제는 810년 작센을 평정한 후 이곳을 프랑크 왕국의 하위 단위인 작센 공국으로 지정했다. 카를로스 대제 사후 베르됭 조약(843년)을 통해 동프랑크 왕국에 속하게 되었다. 동프랑크 왕국에서는 왕국의 하위 단위를 구성하는 독일의 5대 부족 공국 중 하나가 되었는데, 다른 4곳은 프랑켄, 바이에른, 슈바벤, 로트링겐이다. 899년 어린 루트비히 4세 유아왕이 즉위하자 주변의 슬라브족, 마자르족 등으로부터 외침이 이어졌는데, 국왕이 리더십을 발휘할 수 없는 상황에서 각 공국의 지도자들이 개별적인 지도력으로 외침을 막아내야 했다. 그결과 900년 이후 5대 부족 공국의 자치권이 크게 강화되었다. 911년 루트비히 유아왕이 후사를 남기지 못하고 죽으면서 카롤링거 왕조가 단절되었고, 5대 부족 공작들과 3대 주교령 주교들이 모여 차기 국왕을 선출하게 되었다. 이것이 선제후 제도의 기원이 되었다. 서프랑크 국왕 샤를 3세가 혈통을 이유로 왕위 계승을 주장했지만 5대 공작들은 이를 씹고 독일 부족 가운데서 차기 왕을 선출하기로 하고 프랑켄 공작 콘라트 1세를 새로 국왕으로 선출했다. 콘라트 1세에 이어 왕으로 선출된 이는 작센 공작 하인리히 1세였다. 하인리히 1세는 독일왕을 자칭했고 이에 독일 왕국이 공식적으로 시작되었다. 또한 동시에 작센 왕조(오토 왕조)가 시작되었다.
962년 작센 왕조 출신의 독일왕 오토 대제가 교황으로부터 대관을 받아 마침내 신성 로마 제국이 시작되었다. 황제 가문을 배출한 작센 공위는 신성 로마 제국에서 황제 다음가는 지위인 선제후 직위에서 세속 제후 중 첫 번째 서열이 되었다. 신성 로마 제국 성립 후에 작센은 크게 4개 지방으로 분류하여 서부는 베스트팔렌,[4], 동부는 오스트팔렌,[5] 북부는 노르트알빙기아,[6] 중부는 엥게른이라고 불렀다.[7]
작센 공작이자 독일 왕, 신성 로마 제국 황제였던 오토 대제는 황제가 되면서 작센 공위를 빌룽 가문의 헤르만에게 넘겨줬다(961년). 빌룽 가문 이후 작센 공위는 주플린부르크 가문을 거쳐 1142년 벨프 가문의 하인리히 사자공에게로 넘어갔다. 신성 로마 제국은 건국 초기 동쪽으로 영토를 확장하기 위해 지금의 안할트 지방에 크베들린부르크나 마그데부르크 등의 도시를 세우고 국력과 투자가 집중하였는데, 작센 공작들은 이런 분위기를 타고 동부로 확장을 모색했다. 특히 하인리히 사자공은 벤드족 등 엘베강 동쪽에 살던 슬라브족들을 격파하며 동쪽으로 적극적으로 진출하여 메클렌부르크와 포메른 공국까지 영토를 크게 확장했고 이곳에 도시를 건설하여 독일화하였다. 그 결과 작센 공국은 엘베강을 넘어 마이센과 드레스덴까지 닿았다. 황제보다 넓은 영토를 다스리게 된 하인리히 사자공은 선대 시절부터 라이벌이었던 호엔슈타우펜 가문의 프리드리히 1세 바르바로사 황제와 일평생 동안 권력 투쟁을 이어갔으나 1180년 황제에게 패하면서 제국 추방령을 받고 모든 작위를 박탈당하고 영지는 몰수당했다. 이로서 사자공의 작센 공국도 몰수되어 바르바로사 황제 측근들에게 분배되었고, 유서 깊은 중세 작센 공국은 공중분해되어 사라지고 말았다. 사자공의 추방 후 벨프 가문은 거의 모든 영지를 몰수당하고 아무런 작위도 없이 사자공 모친 소유의 약간의 사유지로 연명하는 처지로 전락하고 말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서 깊은 벨프 가문은 여전히 여러 제후들의 지지를 받고 있었다. 거의 가진 것이 없던 사자공의 아들 오토 4세는 모든 것을 빼앗아 간 바르바로사 황제의 손자를 제치고 황제로 선출되기까지 했다(1208년).
1235년, 제국의회에서 바르바로사 황제가 하인리히 사자공과 벨프 가문에 가한 가혹한 조치를 다소 완화하기로 결의했다. 그리하여 몰수된 영지의 일부가 벨프 가문으로 환수되어 브라운슈바이크-뤼네부르크 공국이 탄생하였고 이는 하노버 공국/선제후국/왕국으로 발전했다. 한편 구 작센 공국의 영지 중 일부는 베스트팔렌 공국[8]으로 이어졌다.
2.2. 현 작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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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 작센 공국은 원래 엘베강 서쪽에 있었으나 여러 차례에 걸쳐 동쪽으로 적극적인 진출을 시도했는데, 특히 구 작센의 마지막 지배자이자 전성기를 일궈낸 하인리히 사자공은 엘베강 동쪽으로 영토를 크게 확장했다. 1180년, 바르바로사 황제가 하인리히 사자공의 영지를 몰수하여 재분배하면서 로마 시대 이래 내려오던 유서 깊은 작센 공국은 공중분해되었다. 이후 구 작센 공국의 실질적인 후계자는 벨프 가문의 브라운슈바이크-뤼네부르크 공국(하노버 공국)이었으나, 1946년 니더작센 주가 만들어질 때까지 더 이상 작센이라는 명칭을 사용하지 않았다.
대신, 1180년부터 아스카니아 가문이 작센 공국이라는 이름을 가져가 사용했다. 구 작센의 영토를 최종적으로 재분배한 1235년의 제국의회에서 아스카니아 가문의 작센 공작 알브레히트 1세(Albrecht I., Herzog von Sachsen 1175~1260/61)가 구 작센 공국의 가장 동쪽에 있었던 땅인 라우엔부르크를 지배하게 되었다. 원래 안할트에서 출발한 아스카니아 가문은 구 작센의 동쪽 영토를 얻으면서 크게 성장했다. 아스카니아 가문의 영토는 3개의 지역으로 떨어져 있었는데, 홀슈타인의 남동부인 라우엔부르크의 북부, 안할트의 중부, 비텐베르크의 동부 3개 지역으로 분할되어 있었고, 북부는 하인리히 사자공이 새로 병합한 변경지역이었으며, 안할트와 비텐베르크는 아스카니아 가문의 본령으로 엄밀히 말하면 작센과는 무관했다. 안할트 백작이자 초대 브란덴부르크 변경백 알브레히트(Albrecht der Bär 1100~1170)[9]는 죽기 전 맏아들 오토에게 브란덴부르크를, 막내 베른하르트에게 안할트와 라우엔부르크 및 비텐베르크를 물려주었고, 베른하르트는 다시 맏아들 하인리히에게 안할트를, 차남 알브레히트[10]에게 비텐베르크와 라우엔부르크를 물려주었다. 작센계 아스카니아 가문의 영토는 지리적으로 너무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1260년 영토를 분할하여 북부는 작센-라우엔부르크로, 남부는 작센-비텐베르크로 나누어졌다. 이 두 분파는 황제 선출권 문제로 치열하게 경쟁하다 결국 1356년의 금인칙서에서 장자 계열이었던 작센-비텐베르크가 선제후로 인정받았다.
1422년 작센-비텐베르크 가문이 3대 5명만에 대가 끊기자 독일왕 지기스문트는 브란덴부르크의 호엔촐레른 가문[11]과 아스카니아 가문 작센-라우엔부르크계의 요청을 무시하고 후스 전쟁에서 자신을 도운 베틴 가문의 마이센 변경백 프리드리히 4세에게 작센-비텐베르크 공작위와 선제후 지위를 수여하면서 프리드리히 4세는 작센 선제후 프리드리히 1세가 되었다. 프리드리히 1세는 마이센 변경백의 영지를 구성하는 오스터란트[12], 라우지츠 등과 작센-비텐베르크를 합쳤고, 지금의 작센 주의 기원이 되었다. 현재의 작센주 문장도 베틴 가문의 깃발을 그대로 차용한 것이다. 프리드리히 1세의 아들 프리드리히 2세는 튀링겐 방백령까지 상속받아 베틴 가문의 모든 영지를 통합했으나 프리드리히 2세가 죽고 둘째 아들 알브레히트가 영지 분할을 요구하여, 1485년 라이프치히 조약으로 동생인 알브레히트가 마이센 변경백령과 북부 튀링겐을 상속받고 이는 작센 주로, 형인 에르스트가 작센 서부인 현재의 작센안할트의 비텐베르크와 남부 튀링겐을 상속 받아 이는 튀링겐 주로 이어진다.
이후 마르틴 루터의 등장으로 루터교회가 비텐베르크에서 시작되었다. 그러나 당시 시대의 현재의 작센 주 지역은 작센 선제후의 강력한 적대자였던 작센-마이센 공작 게오르크[13]의 영향으로 가톨릭 지역이었다. 무슨 말이냐면 마르틴 루터 시기엔 베틴 가문의 종가 에른스트 계열이 작센 선제후로서 비텐베르크에서 마르틴 루터를 보호했으나, 알브레히트 계열의 게오르크 공작은 사촌과 영지 분쟁으로 갈등관계인데다가 영지인 라이프치히 대학교[14]의 학풍이 보헤미아 왕국에서 얀 후스 시기 쫓겨난 가톨릭 성향의 독일인 교수 학맥으로 이어지다보니 개신교까 성향이 강했다. 따라서 현재 작센 주 지역은 종교 개혁 시기 강력한 개신교 적대세력이었다. 게오르크 공작은 자신의 후사인 동생 하인리히가 개신교로 개종했기 때문에 독일과 보헤미아의 왕이자 오스트리아 대공이었던 페르디난트 1세에게 영지를 증여하려 했으나 급사했고, 하인리히가 작위를 이어받자 하인리히의 아들인 모리츠는 아버지가 개신교로 개종했기에 영지를 물려받기 위해 개신교로 개종했다.
그러다가 1547년 루터 사후 신성 로마 제국 황제 카를 5세는 합스부르크 가문의 중앙집권화와 종교일원화 정책에 반발한 개신교 제후들이 맺은 슈말칼덴 동맹을 분쇄할 목적으로 슈말칼덴 전쟁을 일으켰고, 베틴 가문 알브레히트 계열의 수장이었던 모리츠는 자신이 작센 선제후가 될 목적으로 카를 5세의 동생이자 후계자인 페르디난트 1세와 동맹을 맺어, 작센 선제후국의 수도 비텐베르크 근처 뮐베르크 근처에서 베틴 가문 에른스트 계열의 6촌 친척이자 작센 선제후 요한 프리드리히 1세를 위시한 슈말칼덴 동맹군을 격퇴시켜, 에르스트 계열 베틴 가문이 갖고 있던 선제후의 지위를 빼앗고 비텐베르크에서 마그데부르크, 할버슈타트에 이르는 작센 지역(현 작센안할트)을 획득했다. 이는 1555년 9월 25일, 아우크스부르크 제국의회에서 에른스트계가 군말 없이 서명하면서 최종 확정되었다.
17세기 30년 전쟁이 발발하자 요한 게오르크 1세는 중립을 지키다가 페르디난트 2세가 복원 칙령을 발표하여 가톨릭 교회를 강화하려 하자 스웨덴 국왕 구스타브 2세 아돌프를 지지하였으나, 구스타브 아돌프가 뤼첸 전투에서 전사하고 뇌르틀링겐 전투에서 스웨덴군이 대패하자, 편을 바꾸어 가톨릭 편인 합스부르크 가문에 붙었다. 이에 스웨덴군의 보복으로 인해 많은 참화를 입긴 했으나 베스트팔렌 조약으로 보헤미아 왕국의 라우지츠를 차지하였으며 1697년에는 프리드리히 아우구스트 1세가 폴란드-리투아니아의 국왕으로 선출되면서 아들 대인 프리드리히 아우구스트 2세까지는 폴란드-리투아니아와 동군연합을 형성하였다.
1804년 선제후 프리드리히 아우구스트 3세는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에게 빌붙어 작센 선제후국을 작센 왕국으로 격상시켰다. 1806년엔 프로이센 왕국의 협박으로 나폴레옹에 맞서 전쟁을 선포했으나 프로이센이 예나-아우어슈테트 전투에서 참패하자 나폴레옹과 다시 손을 잡았고, 프로이센이 2, 3차 폴란드 분할에서 차지한 영토를 분리시켜 건국한 바르샤바 공국의 군주를 겸임했다.[15] 1813년 제6차 대프랑스 동맹 전쟁 이후 나폴레옹을 계속 지지한 대가로 1815년에 나폴레옹이 몰락하면서 영토의 북쪽(당시 작센 영토의 절반 이상)인 비텐베르크, 토르가우, 북부 튀링겐, 라우지츠 대부분을 프로이센에게 할양하고 신성 로마 제국을 대체한 독일 연방에 가입했다.
1866년 프로이센-오스트리아 전쟁에서 오스트리아 제국의 편을 들었고, 오스트리아가 패배하면서 남은 영토마저 프로이센에 합병될 위기에 처했다. 같이 오스트리아를 편들었던 하노버 왕국, 헤센 선제후국, 나사우 공국은 프로이센 왕국에 합병되었다. 그러나 작센은 프로이센이 너무 커지는 것, 또 완충지대를 잃어버리는 것을 경계한 프랑스와 오스트리아의 견제로 합병되는 것만은 면했다. 대신 프로이센 주도의 북독일 연방에 가입하면서 통일 독일 제국의 일부가 되었다.
제1차 세계 대전 말기인 1918년에 발생한 킬 군항의 반란의 영향으로 일어난 혁명으로 국왕인 프리드리히 아우구스트 3세 국왕이 퇴위하면서 현재의 명칭인 작센 자유주로 바뀌어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날 때까지 유지했다. 제2차 세계 대전 때는 드레스덴 공습 등으로 독일 본토 지역 중에 가장 많은 피해를 입었고, 이때를 기점으로 독일 내에서의 작센의 입지도 점점 줄어들었다.
전쟁이 끝난 후엔 소련군 점령지가 되었다. 새로 신설된 독일 - 폴란드 국경에 의거해 오데르 강과 나이세 강 동쪽 지역은 폴란드 인민공화국 영토가 되는 대신 강 서쪽의 슐레지엔 영토(대표적으로 괴를리츠)를 흡수하였다. 그래도 상실한 영토는 기존 영토 14,986km²에 비하면 142km² 로 1% 수준의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았다. 잃은 곳은 대표적으로 현 보가티니아 (구 Reichenau in Sachsen).
전체가 독일 영토에서 사라진 동프로이센과 96%를 상실한 슐레지엔, 절반만 잔류한 포메른과 1/4이 사라진 브란덴부르크에 비하면 폴란드에 흡수된 구 작센 지역은 매우 미미했다. 1952년에 이르러 동독 중앙정부가 주정부들을 해체하자, 드레스덴 관구와 카를마르크스슈타트 관구와 라이프치히 관구로 나뉘어졌으나, 1990년에 이르러 동서독 양국의 평화통일을 실행하기 직전에 주정부가 부활하였다. 그리고 통일 이후 영토 재편을 거쳐 지금은 18,449.90km²km² 가 되었으며, 동독 시절에 비하면 작센안할트 지방 쪽의 영토를 조금 더 가져와서 넓어진 편이다.
3. 행정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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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이 없고 바로 군으로 이루어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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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종교
종교 개혁 이후로[16] 제2차 세계 대전 전까지 대체로 개신교가 95%로 압도적으로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센 왕가의 종교는 가톨릭이었는데, 폴란드-리투아니아 국왕으로 선출되기 위해 18세기 말 선제후 프리드리히 아우구스트 1세가 가톨릭으로 개종했고 결국 2대에 걸쳐 폴란드-리투아니아의 국왕으로 선출되었다. 그러나 동독 공산 정권을 거치면서 국가 무신론의 영향으로 종교인구는 격감했고, 독일 재통일 이후로도 회복되지 않아 2011년 기준 무종교인이 72.6%에 달한다.5. 경제
지리적으로 산이 많고 남쪽으로는 체코와 국경선이라 할 수 있는 에르츠 산맥이 가로지르고 있지만 대체적으로 토지가 비옥하다. 토지가 비옥하여 밀·보리·과일·아마 등이 생산되며 마이센의 도자기,[17] 라이프치히의 인쇄와 모피제품, 자동차[18], 드레스덴의 담배와 자동차,[19] 글라스휘테에서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시계 회사들이[20] 자리하고 있다. 산악지대의 목재·가구·완구공업이 유명하고 대체적으로 은·석탄·구리·철·우라늄 등의 지하자원이 많이 매장되어 있다. 독일 재통일 이후 구 서독 지역에 비해 침체된 구 동독 지역에서 경제 사정이 가장 나은 편이다.6. 정치
작센 주의회의 원내 구성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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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기독교민주연합| 기독교민주연합 41석 ]] | [[독일 사회민주당| 사회민주당 10석 ]] | [[동맹 90/녹색당| 동맹 90/녹색당 7석 ]] | |||||||||
야당 | |||||||||||
[[독일을 위한 대안| 독일을 위한 대안 40석 ]] | [[자라 바겐크네히트 동맹| 자라 바겐크네히트 동맹 15석 ]] | [[좌파당(독일)| 좌파당 6석 ]] | [[자유 유권자| 자유 유권자 1석 ]] | ||||||||
재적 120석 | }}}}}}}}} |
[1] 직전 연정에서 주정부 새 연정이 꾸려질때까지 일상업무를 지속하는 관리정부 역할을 맡는다.
구 동독 지역이지만 1990년 통일 이후부턴 기독교민주연합(CDU)이 꾸준히 주지사를 배출한 지역이다. 덕분에 한때는 바이에른만큼이나 보수색이 강한 지역이라고 인식되었으나, 극우 반이슬람 단체 PEGIDA가 작센에서 시작한 후론 보수가 아니라 걍 극단주의가 판치는 막 나가는 곳이라는 인식도 생기고 있다. 이게 한두 번이 아닌 게 2004년엔 네오 나치 정당인 NPD에게도 9.2% 득표율, 12개의 의석을 준 적이 있다.
주의회 (2014년 선거) ,지역구+정당명부 의석수, | ||||||
여당 | 59 + 0 = 59석 (기민련) | 0 + 18 = 18석 (사민당) | ||||
야당 | 1 + 26 = 27석 (좌파당) | 0 + 14 = 14석 (대안당) | 0+ 8 = 8석 (녹색당) |
PEGIDA의 활약(?)과 더불어 2014년 주의회 선거에서 반이민 반난민 극우 포퓰리즘 정당인 독일을 위한 대안이 9.7% 득표로 14개의 의석을 가져가면서, 본격적으로 관광업에 타격을 받기 시작하고 있다. 드레스덴과 작센의 에르츠 산악지대는 안 그래도 많은 관광객들이 오던 지역인데 제노포비아가 판치는 지역으로 잘못 찍히면 관광업은 날라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급기야 2017년 연방 의회 선거에서는 정당투표 결과 독일을 위한 대안(AfD)이 CDU를 0.1% 차로 누르고[21] 작센 주에서 가장 많은 지지를 받기에 이른다. 특히 폴란드와의 국경 근처인 괴를리츠, 바우첸 일대는 AfD의 표밭이다. 2014년 주의회 선거와 비교해 불과 3년 사이 민심이 CDU에서 AfD로 대거 옮겨간 것이라 독일 연방 전체적으로 AfD가 많은 득표를 한 것과 더불어 작센주에서의 큰 약진에 많은 이들이 우려를 표하고 있다. 사실상
연방의회 (2017년 총선) , 정당득표율 / 지역구+정당명부 의석수, | ||
26.9% / 12+0 = 12석 (기민련) | 27% / 3+8 = 11석 (대안당) | 16.1% / 1+5 = 6석 (좌파당) |
10.5% / 0+4 = 4석 (사민당) | 8.2% / 0+3 = 3석 (자민당) | 4.6% / 0+2 = 2석 (녹색당) |
2019년 주의회 선거에서는 기민련이 득표율 하락 끝에 제1당을 유지하는 데 성공하지만, Afd 하나만으로 진보 3당 의석 총합을 앞서는(!) 결과가 나왔다. 자민당은 5% 득표에 실패해 원내진출에 실패했다. 결국 기민련은 대연정에 녹색당을 추가한
7. 기타
출산율이 2014년에 1.57명을 기록하여 독일의 다른 주들보다 출산율이 높은 지역이었던 적도 있었다. 그러나 2018년부터 서서히 감소하여 2022년에는 1.41명을 기록하여 오히려 출산율이 비교적 낮은 주에 속하게 되었다.1990년 이후 현재 통일 독일 영토의 최동단이 이 주에 위치해 있다. 작센 주 괴를리츠 구 소속의 나이세아우에(Neißeaue)가 바로 그곳. 또한 작센 주의 동부와 브란덴부르크 주의 동남부에 걸친 라우지츠 지역에는 서슬라브계 소수민족인 소르브인이 거주하고 있다. 이들은 슐레스비히홀슈타인의 덴마크계 민족과 더불어 독일 내의 단 둘인 소수민족이다. 세계대전 이후 강대국들에게 분할되기 전까지만 해도, 본래 독일의 영토는 현 폴란드의 그단스크(독일명 단치히)를 지나 현 러시아의 칼리닌그라드(독일명 쾨니히스베르크)와 리투아니아의 클라이페다까지 이르렀다. 때문에 지금도 작센, 튀링겐, 작센안할트 지방 방송의 이름이 '중부독일방송(Mitteldeutscher Rundfunk)'이다. 1945년 이전 독일의 최동단은 동프로이센 주 시르빈트(Schirwindt)(오늘날 러시아 칼리닌그라드주 쿠투조보(Кутузово))였다.
소련 붕괴 후 이주해 온 러시아인이 상당히 많고, 작센 주에 거주하는 노인들은 영어는 잘 못해도 러시아어는 상당히 잘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나 동독 때만 해도 공업 지대라 상당히 부유한 동네였는데, 독일 통일 후 공장들이 구 서독 지역으로 이전하거나 도산해서 낙후된 곳이 되었다. 브란덴부르크는 중심에 베를린이 있어서 발전이 가능했고, 메클렌부르크포어포메른는 해안 지대여서 무역이 가능한 반면, 작센은 바로 전통적인 공업지대인 체코와, 인건비가 싼 폴란드가 있으니 공장들이 경쟁에서 밀릴 수밖에 없었다. 다만 북부 독일이 일부 도시를 제외하면 독일에서 그렇게 부유하지는 않아 소득이 지금도 작센 주가 구 동독에서 가장 높은 편이고, 구 서독의 주에서도 북부의 슐레스비히홀슈타인이 소득이 가장 낮다. 그래도 슐레스비히홀스타인 주가 2~3천 달러, 2천 유로 정도 작센 주보다 더 소득이 높다. # 다만 새로 유치한 제조업도 있기에 경제가 그렇게 악화된 것만은 아니다.
8. 관련 문서
[1] 뒤쪽의 'e'는 강세가 없어서 'ㅔ'로 소리나지 않는다. 하지만 외래어 표기법에서는 그냥 'ㅔ'로 표기.[2] 인구가 가장 많던 1950년에는 5,682,802명을 기록하기도 했다.[3] 즉, 우리가 백인 하면 가장 먼저 떠올리는 현대의 영어권 백인 민족들 대부분이 독일계를 뿌리로 둔다.[4] 서쪽의 평지라는 뜻으로 현재 지명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에도 남아있듯이 빌레펠트와 파더보른, 뮌스터, 오스나브뤼크 등의 지역[5] 동쪽의 평지라는 뜻으로, 브라운슈바이크, 뤼네부르크 등을 일컬었다.[6] 현 홀슈타인 지역[7] 앵글로색슨 중 앵글로(Anglo)의 어원이다. 현재의 민덴, 하노버 일대,[8] 쾰른 선제후가 겸했다.[9] 1138~1142년에는 작센 공작이기도 했다.[10] 위에서 언급되는 작센 공작 알브레히트 1세[11] 아스카니아 가문, 바이에른 비텔스바흐 가문, 룩셈부르크 가문을 거쳐 1415년에 지기스문트가 호엔촐레른 가문에게 수여했다.[12] 지금의 라이프치히 주변 지역[13] 위에 나오는 작센 선제후 프리드리히 2세의 차남 작센 공작 알브레히트의 장남.[14] 애초에 라이프치히 대학교를 작센 선제후 프리드리히 1세가 후스 전쟁에서 쫓겨난 독일인 교수들과 학생들을 보호할 목적으로 세웠다.[15] 앞서 말한대로 작센 선제후는 바르샤바 공국의 전신인 폴란드-리투아니아의 왕위를 겸임한 적이 있었다. 폴란드-리투아니아 멸망 직전의 왕족이었던 포니아토프스키나 자신의 친척이 아닌 굳이 작센의 왕을 군주로 삼은 것은 작센을 프로이센 왕국과 오스트리아 제국 견제용으로 키워보려는 전략에 더해 바르샤바 공국이 폴란드-리투아니아의 부활로 비추어져 폴란드 분할에 참여했던 러시아 제국과 오스트리아를 자극하는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었다.[16] 사실 마르틴 루터가 종교 개혁을 일으켰던 비텐베르크는 현재의 작센 주가 아니라 작센안할트 주에 속하며 작센 선제후 직위는 마르틴 루터를 지지한 베틴 가문의 에른스트 계열에서 가톨릭을 믿다가 뒤늦게 개종한 베틴 가문의 알브레히트 계열에 찬탈당했다. 마르틴 루터가 활약한 비텐베르크는 비텐베르크 항복으로 알브레히트 계열로 넘어갔다가 1815년 빈 회의로 프로이센에 넘어갔다.[17] 유럽에서 최초로 백자를 만든 지역으로, 1708년 프리드리히 아우구스트 1세가 고용한 연금술사 요한 뵈트거가 백자를 생산한 이후, 마이센의 기술자들이 유럽 곳곳으로 퍼져 나가면서 유럽에 백자제조 기술이 퍼지게 되었다.[18] 2000년대에 포르쉐에서 카이엔을 생산하기 위해 라이프치히에 공장을 신설했으며, 현재는 파나메라와 마칸도 라이프치히에서 생산한다. 카이엔의 매출이 포르쉐 전체 매출에서 차지하는 위상이 보통이 아닌 만큼, 라이프치히와 작센 주의 세수에 큰 부분을 차지할 것이다. BMW도 라이프치히에 공장이 있으며, 이쪽에서는 1시리즈, 2시리즈, X1을 생산 중이다.[19] 여기에는 폭스바겐에서 개발한 F세그먼트 세단 페이톤 전체와 벤틀리 컨티넨탈/플라잉 스퍼의 플랫폼을 생산하며, 수제 공장이다. 공장 전 외벽이 철과 유리로 되어 있고, 바닥에는 캐나다산 단풍나무로 만든 원목 마루가 깔려있으며, 직원들은 가운을 입고 클래식이 나오는 헤드셋을 끼며 작업을 하며, 새들이 외벽에 부딪치지 않게 새들만 들을 수 있는 고주파 출력 장치를 설치했다고 한다.[20] A. Lange & Söhne, Glashütte Original, NOMOS, Mühle, Union, Bruno Söhnle 등.[21] 메르켈 총리 시절 CDU는 많은 난민들을 수용하며 이 지역 극우 세력한테 비난을 받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