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05 12:43:36

정의윤/선수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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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마추어 시절2. LG 트윈스 시절
2.1. 2011 시즌2.2. 2012 시즌2.3. 2013 시즌2.4. 2014 시즌2.5. 2015 시즌
3. SK 와이번스-SSG 랜더스 시절
3.1. 2015 시즌3.2. 2016 시즌3.3. 2017 시즌3.4. FA3.5. 2018 시즌3.6. 2019 시즌3.7. 2020 시즌3.8. 2021 시즌
4. 은퇴5. 연도별 주요 성적

1. 아마추어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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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고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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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사자기 전국고교야구대회 70주년 기념 현역 All-Star
in 2016 동아일보

OF / 휘문고

OF / 덕수고

OF / 부산고

SS / 휘문고

2B / 북일고

3B / 유신고

RHP / 야탑고

LHP / 안산공고

1B / 선린상고

C / 성남고


부산고 시절 성남고의 박병호와 더불어 오른손 괴물로 불릴 정도로[1] 잠재력을 인정받은 우타거포 후보였다. 당시 감독은 조성옥, 1년 선배로는 장원준,박근홍, 입학 동기로는 이왕기가 있다. 어느 정도였나 하면, 8888577의 효과로 2차 전체 1라운드 1픽을 가지고 있었던 롯데 팬들이 정의윤을 지명할 줄 알고 미리 꼴레발을 떨었는데, 막상 롯데는 정의윤이 아닌 마산용마고 투수 조정훈을 지명하는 바람에 그 당시 많은 롯데 팬들이 롯데 스카우트들을 비난할 정도였다.

2. LG 트윈스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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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그 전설의 사진. 왼쪽부터 이성열, 박병호, 박경수, 정의윤.[2]

2005년 드래프트에서 2차 1라운드로 지명되어 LG트윈스에 입단한다. 당시 LG는 오승환을 지명할 수 있었음에도 정의윤을 지명하여 오거정(오승환 거르고 정의윤)이라 불리게 된다. 이는 다음해 류거나류거이와 함께 전설의 드래프트로 남았다. 입단 당시 계약금 2억3천만원에 연봉 2천만원[3]의 계약내용으로, 1차 박병호와 함께 팀의 홈런타자 기대주였다.

하지만 LG 트윈스에 입단한 이후로는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4] 박병호와 정의윤이 같이 LG 트윈스에 입단했을 때 LG팬들은 우리도 제대로 된 거포를 두 명이나 가지는구나 하면서 대단히 기대를 많이 했다. 아울러 이순철이 남긴 유산이기도 하다.

데뷔 시즌에 300타석 넘게 들어서면서 0.242 타율에 8홈런을 기록하면서 나름대로 괜찮은 성적을 올리며 그 후를 기대하게 했지만…. 그 후는 현시창. 2005시즌 초 정의윤에 대한 기사

그렇다고 2군에 보내면 2군을 초토화시키고 오니 기용을 안 할 수도 없고 막상 1군 올리면 또 삽질을 하니 코칭스텝을 많이 헷갈리게 하는 선수였다. 암흑기6668587667 시절 LG 트윈스에는 팬들한테는 유일한 희망이지만, 정작 1군에선 개삽만 푸던 2군 본즈들이 수두룩했는데 박병호와 정의윤이 양대산맥이었고, 그 뒤에 이성열박경수가 있었으며, 나중에는 트레이드로 서동욱까지 가세했다. 이 5명은 LG 트윈스에선 끝끝내 터지지 않았다...그리고 2015년 정의윤을 마지막으로 모두가 LG 트윈스를 떠난 상태이다.

특히 정의윤은 해가 갈수록 맞추는데만 급급해서 장타가 급감하면서 팬들에게 더더욱 까였다. 물론 아예 맞추지도 못하는 박병호보다 조금 나아 보였지만….

더군나 신인드래프트 당시 정의윤의 뒤에 지명된 선수들이 다름아닌 오승환[5], 윤석민, 정근우였으니. 2005년도 신인지명은 LG 트윈스에게 통한의 드래프트다.

2006년 8월 16일 롯데와의 홈경기에서 9:7로 뒤진 9회말 2사만루에서 나승현을 상대로 끝내기 3타점 3루타를 쳐 9회 최다점수차 역전승의 주인공이 되기도 했다.

2.1. 2011 시즌

2009~10년 2년간 상무에서 병역을 해결하고 2011 시즌에 복귀하였다. 때마침 부임한 박종훈 감독이 정의윤을 양아들로 입적하면서 좌우놀이에 의거해서 시즌 초부터 중용되었나 타율과 장타율이 똑같을 정도로 맞추는데만 급급하고 수비에서는 정줄을 놓는 수비에 수줍은 어깨까지 선보이며[6] LG 팬들의 폭력성을 시험하였다.

안타 중에 2루타 이상의 장타가 한 개도 없었다. 이쯤되면 인내심의 한계를 시험하는 중인 셈이었다. 그렇다고 2군 보내면 2군을 초토화시켜버리니 기대를 버릴수도 없었다.

여담이지만 일본프로야구를 대표한 강타자였던 키요하라 카즈히로가 2011년 LG 스프링캠프에 잠시 들러 타자들을 지켜보던 중 정의윤을 극찬했는데 백업선수라는 말을 듣고 "저 선수가 정말 후보란 말인가? 당장 일본에 와도 주전으로 뛸 수 있을 것이다"#하고 놀랐다고 한다. 그 전해 마무리캠프에 타격 인스트럭터로 왔던 켄 그리피 시니어는 '정의윤을 보고 호세 칸세코를 보는 것 같다고 했을 정도였으니…그의 기대치와 현실이 얼마나 다른지를 보여준 예.

그렇게 삽질을 거듭하면서 틀렸어 이제 꿈이고 희망이고 없어라고 하는순간... 페이크다 이 병신들아 하면서 5월 14일 15일 넥센전에서 연달아 멀티히트를 기록하며 2할 조금 넘던 타율을 0.260까지 끌어올렸다. 더군다나 5월 14일에는 시즌 첫 2루타를 터뜨리며 장점인 장타가 슬슬 터지는 게 아닌가 하는 팬들의 설레발이 나왔다.

5월 24일 두산 베어스전에서 4타수 무안타를 기록하면서 마지막에 대타로 나와 트리플 악셀을 한 서동욱과 함께 역전패의 원흉으로 찍히고 말았다. 그러나 5월 25일 경기에서 4타수 3안타를 기록하면서 두산마운드를 초토화 시키는데 역할을 했다. 5월 26일 경기에서도 2안타를 기록하면서 타율을 2할9푼까지 끌어올렸는데 5월 타율이 0.375였다.

컨텍은 점점 틀이 잡혀가는 타격을 하는 정의윤이지만 팬들과 구단의 기대치는 이정도가 아니었다. 장거리 타자로써의 매리트를 기대하고 있는데 아직까지 홈런이 없다는 게 걸리는 점이었다. 무조건 홈런을 노린다기 보다도 어느정도 장타를 노리는 적극적인 타법도 생각해봐야 할 듯했다.

KIA 타이거즈전에서 찬스에서 찬물을 끼얹는 타격에 주자없을 때만 안타를 쳐서 욕을 제대로 먹었지만 6월 3일 롯데 자이언츠전에서 3안타 경기를 했다. 거기에 재치있게 데드볼을 맞아서 득점에 공헌했다. 이러다 3할도 노려볼 기세였다.

6월 10일 KIA전에서 군산 야구장에서 최희섭만루 홈런볼을 잡으려다 콘크리트 같은 펜스에 부딪혀서 골로 갈뻔했지만 골절이 아니라서 계속 출장했다. 고통을 참고 뛰려고 했으나 이진영의 복귀와 갑작스럽게 찾아온 꿀맛같은 5경기 연속 우천휴식, 여기에 조만간 이대형까지 복귀하게 되어 몸을 추스를수 있게 되었다. 어쨌든 생각보다는 짧은 공백 이후 복귀를 했는데 팀과 같이 Down하는 타격을 보였다

복귀 후인 6월 중순부터 한동안 스마트폰 어플리케이션인 하이 데어[7]에 중독되다시피한 모습을 보였는데[8] 당시 팀 그리고 본인의 성적이 좋지 않아서 하이데어를 자제해줄 것을 요청하는 팬의 계정을 차단해가면서까지 이용하는 등의 태도를 보여서 하데윤이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다.[9] 예전에는 싸이질만 늘상 한다고 "싸이윤"이라는 별명도 있었던 정의윤이다.

아는 사람만 아는 2011년 8월 8일 청문회(라 쓰고 10명 정도가 모여 "정신차리고 야구해라" 시전)에서 일부 팬들이 "하이 데어 좀 그만하세요"라는 이야기를 하자, 그 팬들에게 "술 드셨어요?"라며 응수했고, 눈에서 레이저를 쏘면서 가더니 잠시 후 야구 방망이를 든 이동현을 대동하고 등장하는 모습[10]을 보여 후기를 본 팬들에게 비난을 받았다.

그런데 당일 있었던 팬들의 행동이 야구팬들에게 비난을 받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후기를 읽은 팬들이 글에 언급된 다른 선수들의 케이스가 신뢰성이 있는지로 의문을 제기한 반면 이 케이스는 "걔는 그랬을 것 같다"는 반응이 나오면서 하데윤은 신나게 욕을 먹었다.

그도 그럴 것이 다음날 기자와 인터뷰에서 좋게 대응해도 달가운 반응을 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한 단 소리가 "야구 못한 게 죄죠".# 이때문에 하이데어 논란으로 이미지도 좋지 않은 판에 팬들의 실망만 커지고 있다.

저 소리를 한 당일 정의윤은 대타로 들어서자마자 바로 범타로 물러섰고, 그 다음날 팀이 시즌 내 한 이닝 최다 득점을 뽑는 타선의 화력을 보이는 와중에도 대타로 나와 삼진으로 물러났다.

스윙 메커니즘이 장타가 나오기 힘들다는 게 본사람들의 평이고 그나마 되던 똑딱이도 안되면서 타율은 0.260 대까지 떨어졌다. 그후 2군으로 떨어졌다. 정의윤은 2011 시즌을 93경기 출장 242타수 62안타(타율 0.256), 23타점, 32삼진으로 마무리했다. 100경기 가까이 나오고도 23타점밖에 안되니, 까놓고 말해서 발 느린 이대형이나 다름없는 무쓸모라는 평이 많았다. 뭐 이 시기 정의윤이 그리 느린 건 아니다만...

2.2. 2012 시즌

시즌 전 김무관 코치가 타격코치로 부임하는 만큼 기대하는 팬들도 많다.

4월 29일 사직 야구장에서 열린 롯데 자이언츠와의 경기에서 처음으로 1군 경기에 출전하여 3타수 1안타 2피삼진을 기록했다. 이 1안타로 정의윤LG 트윈스 타선과 강민호에게 까임방지권을 선사하였다. 이날 경기에서 LG 트윈스셰인 유먼을 상대로 스코어 0:5, 무4사구 완봉패를 당하는 동안 정의윤의 1안타가 팀의 유일한 안타였으며 강민호는 탈삼진 상황에서 공을 놓치면서 스트라이크 낫아웃으로 주자를 출루시켰다. 만약 정의윤의 안타가 없었다면…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6월 28에 잠실 야구장에서 열린 KIA 타이거즈전에서 팀이 스코어 4:0으로 지던 2회말 1사 주자 없는 상황에서 드디어 많은 팬들이 그토록 바라던 홈런을 쳤다! 2007년 7월 4일 두산 베어스전 이후 5년만의 홈런이었다. 이날 정의윤은 5타수 3안타(2루타 2개 포함) 1홈런 2타점 2득점으로 맹활약하고 타율을 .297까지 끌어올렸지만, 팀은 13:8로 져서 6연패를 하고 말았다.

5월에 부진했지만 6월에는 40타수 13안타로 타율 .325, 2루타 6개, 홈런 1개를 기록할 정도로 괜찮은 타격을 선보였다.

7월 8일까지 3할을 유지하면서 LG 트윈스 갤러리에서도 잘 안 까이고 찬양받는 타자로 등극했다. 일명 의윤신.

그런 와중에서 이대형과 함께 트레이드설이 계속 돌았으나 김기태 감독은 트레이드설을 강력히 부인했다.[11]

그리고 최종성적은 타율 0.283 출루율 0.324 장타율 0.395 27타점 2홈런[12]. 19득점으로 이전에 비해 가능성을 보여준 시즌이 되었다.

2.3. 2013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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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찬규 물벼락 사건 도중.

본격 LG의 새로운 4번타자! 그래도 개인 첫 100안타를 기록하며 나름대로 발전한 모습을 보인 것이 위안이라면 위안이 될 것이다.

2.4. 2014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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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의 활약을 기대한 팬들에게 규정타석도 못 채우고 타고투저에서 타율 0.264를 기록하며 배신감을 안겨 주었다. 나아진 점이라면 거의 대타로 나와 7홈런을 때렸다는 것과 끝내기만 2개를 쳤다는 것. 힘은 계속 붙는 중이라는 걸 입증했다. 참고로 이 7홈런은 한 시즌 개인 최다 홈런에 거의 근접한 기록이다.

2.5. 2015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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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SK 와이번스-SSG 랜더스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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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2015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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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레이드 직후 SK 소속으로 첫 대타 출전하는 모습.

후반기 SK의 난세영웅으로 활약하며 SK의 5강을 하드캐리했다.

3.2. 2016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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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 첫 100타점 달성을 달성하며 탈쥐 출신 비룡 2호와 함께 SK의 영웅이었으나 갈수록 슬럼프로 아쉬운 모습을 보여줬다.

3.3. 2017 시즌

개막 이후 안타는 커녕 출루도 한번 못한 채 부진하였지만 4월 2일 경기에서는 드디어 첫 안타를 홈런으로 때려냈다! 그 이후에 1안타밖에 더 못 때려냈다는 게 함정 하지만 이 홈런이 바로 2017년피어밴드가 26이닝 동안 실점한 유일한 케이스여서 재평가를 받았다.

4월 9일 경기에서는 5타석 3타수 1안타 2삼진 1볼넷 1몸에맞는볼을기록했다.

4월 15일 경기에서는 8회초에 대타로 출전, 윤규진의 초구를 받아쳐 좌측담장을 넘어가는 홈런을 기록했다. 시즌 2호. 그리고 홈런을 작렬한 후 덕아웃으로 돌아가 힐만 감독에게 펀치를 날렸다. 이 날의 백미 장면[13].

한화전을 기점으로 타격감이 서서히 올라오기 시작했는지, 4월 18일 넥센전에서도 4타수 2안타의 멀티 히트를 때려냈다. 팀에 있어서도 선수 개인에 있어서도 긍정적인 부분.

4월 21일 두산 베어스 전에서는 1타수 1안타, 2볼넷에 1득점을 기록하여 승리에 기여했다. 8회에 볼넷을 골라 출루. 곧바로 대주자로 교체되지 않고 주자로서 그대로 포지션을 유지하는 것에 의하해하는 팬들이 많았으나,[14] 희생번트와 진루타로 3루까지 간 정의윤이 박승욱의 스퀴즈로 홈을 밟아 역전시키면서 모두를 깜짝 놀라게 만들었다. 예전에 비해 감소한 주루 플레이 때문에 설마 정의윤을 3루에 두고 스퀴즈를 하겠느냐, 싶었는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정의윤이 홈에 들어온 이후 두산 내야진은 눈에 띄게 당황하는 모습을 보였고, 이후 SK는 연이은 스퀴즈와 작전으로 빅이닝을 만들어냈으니 팀이 역전승을 거두는데 한 몫 단단히 거든 셈이 되었다.

4월 23일 두산 베어스전에서는 4회말 1대 4로 뒤진 상황에서 한점을 따라가는 인정 2루타를 기록했다.

4월 25일 LG 트윈스전에서는 한동민의 홈런 이후 김동엽이 연속 안타로 치고 나가자, 곧바로 김동엽을 홈에 불러들이는 적시타로 빅이닝을 만들어내는데 일조했다.

5월초 한화 이글스와의 주중 3연전에서는 3, 4일 이틀 연속으로 투런 홈런을 기록하며 시즌 3, 4호를 차례로 기록했다.

결국 부진으로 인하여 5월 21일 1군에서 말소됐다. 새로 등록된 선수는 최승준.

6월 14일 1군에 등록돼 6번 지명타자로 출전했다. 복귀 첫 타석에서 1타점 적시 2루타를 때렸다

6월말 엄청난 타격감으로 3할을 넘겼으나 2할 8푼~9푼에서 놀고 있다.

시즌 초반 부진을 뒤로하고 날이 갈수록 뜨거운 타격감을 보이기 시작했다. 8월 27일 기준으로 타율은 2할 9푼에 홈런 12개를 기록하고 있는 중. 5강 경쟁에 속 타는 SK팬들의 입장에서는 한동민이 시즌 아웃, 김동엽로맥이 부진한 마당에 최정까지 부상으로 나서지 못하고 있는 판이니 정의윤이라도 살아나주기를 바라고 있다.

시즌 종료 후의 최종 성적은 타율 0.321 112안타 15홈런 45타점 44득점. .367의 출루율과 .496의 장타율로 나쁘지 않은 수준을 기록하였다.

3.4. FA

2017시즌을 마치고 FA 자격을 얻게 되었다.

시즌 초반 부진과 부상으로 인해 출장 경기가 많지는 않았으나, 그래도 0.321의 타율과 15홈런, 0.863의 OPS를 기록하였다. 일부 SK 팬들은 4번 타자로써 역할로는 미흡해서 FA 자격을 얻더라도 비싸게 부르면 굳이 잡지 말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하지만 정의윤만큼의 4번 타자를 찾기도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LG시절은 몰라도 SK시절에는 매년 3할 타율에 8할5푼 OPS, 15홈런이 보장되는 선수가 되었기 때문이다.

이 와중에 뜬금없이 MLB 사무국에서 정의윤의 신분조회를 요청했다. 야구팬들도 황당하다는 반응이 대다수. 정의윤 본인 의사와 상관없이 MLB 사무국으로부터 신분조회요청을 받은 것을 MLB 진출을 추진하려는 것으로 알고 정의윤을 조롱하는 반응도 있었다.[15]

12월 7일, 4년 29억원에 SK 잔류했다. FA 금액은 요즘같은 인플레 시대에 혜자 계약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특히, 보장금 17억에 옵션 12억이라 거의 절반 가까이가 옵션이어서, SK 프런트에서 엄청나게 후려친 것이다. 선수 본인에게는 상황이 많이 안좋았던 모양. 썰에 의하면 삼성 라이온즈에서 영입을 시도했다가 모종의 사정으로 영입을 포기하였고, 결국 갈 곳이 없어져 후려친 가격에 잔류를 할 수밖에 없었다는 썰이 있다.[16] 다만 FA 거품에 부정적인 팬덤들은 이게 정상적인 계약이라며 정의윤이 잘하길 바라는 중. 이런 옵션이 많은 계약은 선수 입장에서 자존심이 상할 법도 하지만 오히려 동기부여가 될 수도 있다. 말 그대로 계약기간동안 성적으로 보여주면 돈 더 주겠다는 것이므로 서로에게 윈-윈일 수 있는 것.

12월 22일, 라디오볼에서 SK의 담당기자 정세영의 말에 의하면 계약을 했지만 생각보다 적은 규모에 실망해 있는듯 하다. 2016 후반기 정도의 성적을 옵션으로 내놓은듯 한데, OPS만 따져도 0.969. 쉽지 않은 기준이다. 다만 정의윤 본인이 제시한 기준이라고.

2020년 7월 들어 에이전트 수수료를 미납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수수료 지급을 거부한 이유는 표면적으로 'FA 협상 과정에서 에이전트의 역할이 미미했다는 이유'인데 기사의 인터뷰 내용을 보면 실질적으로 선수가 마이너스 옵션의 개념을 이해하지 못한 게 아닌가 추정된다. 즉, 보장금 17억에 옵션 12억이라고 알고 있었으나 옵션 12억 부분이 성적에 따라 받을 수도 있지만 성적이 안나오면 못받는 게 아니라 심지어 역으로 깎일 수도 있는 플러스마이너스 옵션이라는 것이다. 이 경우 실질적으로 보장금 7억에 옵션 22억에 해당하는 계약에 해당한다. 처음에는 선수가 계약의 내용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계약을 승인했다가 정확한 내용를 알고 나서 에이전트 수수료 지급을 거부한 게 아닌가 추측된다.

2022년 5월 유튜브 이영미의 셀픽쇼에 출연하여 FA에 관한 이야기를 했는데 마이너스 옵션이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했다고 한다. 정의윤 본인이 언급한 내용으로는 옵션을 모두 달성하려면 4년 내내 골든글러브 급의 성적을 기록해야 한다고 했다. 만약 당시로 돌아가면 FA 신청을 하지 않았을 거라고.. 일반적으로 선수들이 FA 계약을 체결하면 안정감을 얻는 반면 정의윤은 마이너스 옵션으로 인해 오히려 역효과가 난 케이스로 보인다.

결국 옵션 12억원은 한푼도 못 받았으며, 보장된 연봉도 온전히 다 못 받았다고 한다.[17]

3.5. 2018 시즌

4월 3일 KIA 타이거즈와의 홈경기에서 시즌 자신의 마수걸이 홈런을 2점 홈런으로 신고했다.

5월 4일 롯데와의 경기에서 슬라이딩으로 2루에 들어오려고 시도했는데, 이를 공을 가진 채로 가로막아 태그하던 앤디 번즈의 글러브가 벗겨지는 일이 벌어졌다. 첫 판정은 아웃이었으나 번복되었다. 근거규정이 없는 것도 아니고[18][19][20] 판정에서도 세이프 판정이 나왔으므로 규칙 상으로는 문제가 없으나, SK 팬덤에서도 이겼으나 좀 찝찝하게 이겼다는 의견들도 여럿 나오고 있다. 롯데가 좀 억울해 보이기는 하지만 규칙이란게 결국 경기 진행을 위해 애매한 상황에서도 어느 한쪽을 들도록 만들어진거라 공격측의 고의성이 있는 행동이 들어가지 않는 이상 받아들여야 했다.

점점 타격감이 좋아지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5월 8일 NC 전 부터 출장 때마다 안타는 때려내고 있다. 타구 질도 좋아 한동안 정의윤의 2군행을 외치던 SK 팬들도 일단 정의윤은 두고 보자는 여론으로 선회했다. 3차전에서 오랜만의 홈런도 신고했다.

그리고 귀신같이 친정팀 LG 트윈스를 만나서 부활한다. 5월 13일에 3:0으로 앞서고 있는 5회말에 정진기 대신 대타로 들어섰는데, 2사 만루 상황에서 좌익수 플라이로 물러나며 공격의 맥을 끊어버려서 이대로 실망만 안기고 끝나나 싶었는데... 7회 말 다시 찾아온 만루 찬스에서 고우석을 상대로 시즌 5호이자 7:0으로 달아가는 만루홈런을 날리며 '하필 정의윤이냐'하던 SK 팬들을 모두 갸우뚱하게 만들었다. 나쁘지 않았던 타구질이 결국 홈런으로 연결된 것. 이걸로 끝이 아니라 8회 말에는 본인과의 트레이드 상대였던 여건욱을 상대로 3점 홈런까지 터뜨리며 연타석 홈런을 신고한다. 혼자 멀티 홈런에 7타점을 적립하며 게임을 완벽하게 가져오는데 1등 공신이 되었다.

이후에도 6월 10일 9회에 정우람을 상대로 동점타를 치는 등 뜬금 활약하긴 했지만 이내 다시 부진한 모습을 보인 끝에 6월 13일에 말소되었다.

2군에서 26경기 100타수 39안타의 성적을 내고 8월 10일 다시 1군으로 돌아왔다.

9월 5일 넥센 히어로즈전 2점차로 뒤진 9회말 주자 1루 상황에서 승부를 원점으로 만드는 홈런을 때려냈다. 그 상황에 놀란 관중석에 어린이 한 명이 감동해서 울어 버리는 일이 있었다. #영상 구단 직원에게 소식을 들은 후, 사인 배트를 선물했다고 하며 (기사), 아이는 배트를 안고 잤다고... (캡쳐) 이 어린이는 나중에 넥센과의 플레이오프 1차전 시구까지 하게 되며, # 구장 올라가는 길에 사진이 실린다든지, # 2019년 트레일러 영상에 올라온다든지 # 여러 번 출현하고 있다.

9월 28일 인천 SK행복드림구장에서 열린 NC 다이노스와의 시즌 최종전에서 4번 지명타자로 선발 출장해 1회 1사 1,2루에서 상대 선발 구창모를 상대로 좌측 담장을 넘기는 3점홈런을 기록해 시즌 10호로 SK 이적 후 4년 연속 두자릿수 홈런을 기록했다.

9월 28일 인천 SK행복드림구장에서 열린 롯데 자이언츠와의 시즌 최종전에서 4번 지명타자로 선발 출장해 2회 선두타자로 등장해 상대 선발 김원중을 상대로 좌측 폴대를 맞쳐 시즌 11호 솔로홈런을 기록했다.

10월 9일 왼쪽 옆구리 근육통으로 말소됐다. 대신 올라온 선수는 윤정우.

10월 27일 넥센과의 플레이오프 1차전 시구자에 위에 서술된 김유현 어린이가 시구에 나서며 정의윤 본인이 공을 받아주는 훈훈한 장면을 연출했다. 본 경기에선 5번 지명타자로 선발출장해 3타수 1안타 1득점을 기록했다.

10월 30일 넥센과의 플레이오프 3차전에서 대타로 나와 주자만루에서 바뀐 투수 오주원을 상대로 5구 직구 타격으로 1-2.. 3루수 병살타아웃을 당했다.

11월 7일 두산과의 한국시리즈 3차전에 선발로 나와[21] 두 번째 타석에서 중월 안타를 치고 김성현의 희생번트로 2루까지 진루했으나 강승호가 우익수 쪽 뜬공을 쳤을 때 뇌주루를 시전하면서[22] 더블 아웃이 됐다. 팀이 끝까지 이겼으니 망정이지 뒤집혔다면 진짜 패배의 원흉이 됐을 뻔했다. 안타 친 다음 타석에는 3루수 실책으로 출루했는데 두산 3루수 허경민이 던진 송구가 목덜미 뒤쪽을 맞는 바람에 김재현과 교체됐다.

11월 10일 한국시리즈 5차전에 7번타자 좌익수로 선발출장해 3타수 3안타로 맹활약을 펼쳤다.

11월 12일 한국시리즈 6차전에 선발로 나와 첫타석 2루타, 두번째 타석에서도 안타를 쳐내며 5연타석 안타를 기록, 후속타자 강승호의 투런홈런에 기여했다. 이후에 팀이 승리하며 생애 처음으로 한국시리즈 우승반지를 거머쥐었다.

한국시리즈 종료 후 가고시마 마무리캠프에 참가했다.

3.6. 2019 시즌

지명타자 자리를 두고 최승준, 남태혁 등과 경쟁을 할 것으로 보인다. 두 시즌 연속 전반기 부진, 후반기 폭발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데 경쟁에서 승리하려면 시즌 내내 2017, 2018 시즌 후반기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플로리다에서 열린 1차 스프링캠프에 참가했으며 오키나와에서 열리는 2차 스프링캠프에도 참가했다.

4월 4일 진명호를 상대로 마수걸이 홈런을 기록하는 등 5타수 3안타 3타점 1홈런 1득점으로 맹활약했다.

4월 5일 기준으로 타율 0.400(30타수 12안타) 1홈런 6타점 2득점 6볼넷 출루율 0.500 장타율 0.633 OPS 1.133을 기록하며 식물이 타선에서 김강민과 고군분투 중이다.

4월 27일 수원 케이티 위즈 파크에서 열린 kt wiz와의 경기에서 윌리엄 쿠에바스를 상대로 5회 1사 주자없을 때 초구 131km 커터를 공략해 좌측담장을 넘기는 홈런을 쳐 개인통산 100번째 홈런을 기록했다.

5월 4일 롯데전에서 홈런 포함 5타수 2안타 2타점 2득점으로 활약했다.

5월 9일 한화전에서 9회말에 스윙을 하다가 무릎에 부상을 입었으나, 풀카운트 접전 끝에 안타를 만들어냈다.[23] 당시 SK는 야수 엔트리를 모두 소진해서 대타를 쓸 수 없었던 것으로 보이며, 대주자로 올라온 투수 이승진과 교체되었다. 그리고 다음날 10일 종아리 근육이 미세파열되 1군에서 말소되었다.

5월 31일 1군에 복귀했고, 당일 한화전에서 결승 2점 홈런을 때려냈다.
6월 20일 KIA전 5대0으로 끌려가던 7회초에 따라가는 투런 그리고 8회초에는 2사 만루에서 극적인 3타점 싹쓸이 동좀 적시 2루타를 터뜨리며 개인통산 1000안타까지 달성했으나 김택형의 미친 롤코짓으로 패배하면서 빛이 바랬다.

8월 14일 손목 통증으로 말소됐다.

8월 31일 복귀해 LG와의 2연전에서 10타수 4안타 1홈런 3타점 2득점을 기록해 그동안 부진했던 SK타선에 큰 활약을 하였다.

시즌 후 호주에서 열리는 유망주 캠프에 자진해서 참가했다.

3.7. 2020 시즌

5월에는 코너 외야와 지명타자 자리를 오가며 주전으로 출장했으나 6월 들어서 외야수로 최지훈이 자리를 잡아 좌투 상대 약점을 보이는 정진기와 플래툰으로 주로 출장했다.

그러나 장타가 실종되고 타격도 잘 맞지 않는 모습을 보이다가 결국 7월 11일 말소되었다. 이후 등록되지 못하다가 8월 18일부로 확장엔트리가 시행되었으나 여전히 1군에 올라오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8월 25일부로 1군 엔트리에 등록되었다. 콜업된 당일 롯데 자이언츠전에서 7회초 동점상황 2사 만루에서 대타로 기용되어 싹쓸이 2루타를 기록하며 팀 승리의 주역이 되었다.

올시즌 홈런이 6월 16일 kt전 홈런이 유일하다. 만약 이대로 유지된다면 SK 이적 이후 처음으로 10홈런 미만 시즌이 된다. 그 동안 정의윤이 준수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지만 어느덧 나이가 만 서른넷이라 에이징 커브가 시작되어도 이상할 것은 없다.

결국 타율 0.241 1홈런 20타점이라는 커리어 로우를 기록했다. 심지어 LG 시절보다도 성적이 안 좋다.

3.8. 2021 시즌

시즌 시작 전 SK 이적 이후 줄곧 써왔던 등번호 37번을 10번으로 변경하였다.[24] 지난 시즌 부진으로 인한 분위기 쇄신 차원인 것으로 추측된다. 아직 SK에는 명확한 지명타자 자원이 없는 상황이기에 이번 시즌 또한 기회는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2월 말 부산고 선배이자 한국야구 역사상 최고의 타자로 꼽히는 추신수가 갑작스럽게 오게 되면서 주전 경쟁 전망이 불투명해졌다. 다만 추신수좌상바 기질을 보이는 만큼 좌투수가 나오는 날에는 기회를 받을 가능성이 있다.

5월 5일 어린이날에 6회 오준혁의 대타로 나서 첫타석에는 병살을 쳤지만, 그 다음 타석에서 결정적인 그랜드슬램을 때려냈다. 여담으로 이날 정용진 SSG 구단주가 아이들이랑 함께 직관을 왔는지라 야구 커뮤니티에서는 구닮주가 역전만루홈런을 때렸다는 발언이 대폭발했다. 정의윤이 묘하게 정용진과 좀 닮았기 때문이라고.

5월 6일에도 홈런을 쳐서 이틀 연속 홈런을 기록했다. 다만 타선은 침묵하였고, 이 점수만이 SSG가 이 경기에서 낸 유일한 점수였다.

5월 9일, 키움 히어로즈와의 더블헤더 경기에서는 4번타자로 기용되었다. 1차전에서 2루타를 치며 최정을 홈으로 들여보냈다.

5월 11일, 롯데 자이언츠와의 1차전 1:4로 지고 있는 상황에서 홈런을 치며 추격의 불씨를 살렸다.

5월 26일, kt전에서 고영표에게 1점홈런을 뽑아내 1:1로 만들었다. 난세영웅이 홈런으로 위기를 알리듯 타구가 장외로 넘어갔으며, 5시간이 가까이 되는 접전을 벌이는 경기가 되었다.

6월 19일 한화전 5점차에서 뒤진 상황에서 다시 조금씩 따라잡을 수 있는 가능성을 보였다.

6월 19일 한화전에서 1타점 적시타를 치며 난세영웅의 면모를 보였다. 5점차에서 뒤진 상황에서 다시 조금씩 따라잡을 수 있는 가능성을 보였다. 거기에다가 신정락의 초구를 공략하여 홈런을 때리며 6회 4타자 연속 홈런의 마무리를 맡으며 대활약했다.

6월 30일 삼성전 더블헤더 2차전에서 또 홈런 쳤다. 지고 있었는데 홈런 쳐주고 장지훈이 4이닝 퍼펙트로 잘 막고 역전도 했다.

7월 1일 삼성전 10회말 대타로 나와 오승환을 상대로 강한 타구를 날렸으나 우익수의 호수비로 뜬공으로 물러났다.

가끔씩 플루크 타격과 평범한 수비를 하며 있는듯 없는듯 기생하며 엔트리에 살아있었으나, 허리부상 문제로 1군에서 말소되며 외야 유망주인 김규남으로 대체되었다.

결국 10월 31일 방출되면서 지금까지 가장 좋은 기록을 남겼던 팀과 작별하게 되었다. SK-SSG에서 최종적으로 쌓은 기록은 639경기 타율 0.293 88홈런 332타점.

4. 은퇴

방출 후 인터뷰에서는 아직 현역 연장 의지가 있음을 밝혔다. # 그러나 에이징 커브를 확실히 겪고 있기 때문에 정의윤을 영입할 구단이 있을 가능성은 높지 않다.

실제로 방출 이후 외야수 뎁스가 두터운 LG 트윈스, 젊은 선수들 위주로 팀을 꾸려나가며 리빌딩을 하기로 선언한 한화 이글스를 제외한 모든 팀에 전화를 돌렸지만 현역 연장을 위해 응해준 팀이 없던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이후 이영미의 셀픽쇼, 스톡킹, JTBC 최강야구 등에 출연하는 등 방송계의 콜이라도 받으면 어디든지 달려가고 있다. (공식적으로 현역 은퇴 발표는 하지 않은 상황) 최강야구에 출연하면 교체될 선수가 없어 풀타임 보장이 된다는 얘기를 하는걸 보면, 그만큼 야구에 대한 갈증이 있던 것으로 보인다. 그 외에도 니퍼트가 운영하는 용인 빅드림 베이스볼 아카데미에서 지도자로 활동하기도 했다.

5. 연도별 주요 성적

역대 성적
<rowcolor=#ffffff> 연도 소속팀 경기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삼진 출루율 장타율 wRC+
2005 LG 106 314 .242 76 10 3
(5위)
8 42 41 3 21 69 .288 .369 76.1
2006 82 239 .259 62 8 1 6 26 28 1 18 39 .311 .377 101.7
2007 88 193 .280 54 8 1 3 20 22 2 11 22 .316 .378 88.7
2008 38 78 .192 15 1 0 0 3 8 0 11 13 .292 .205 40.3
2009 군 복무(상무)
2010
2011 93 242 .256 62 9 0 0 23 13 3 21 32 .312 .293 65.5
2012 81 233 .283 66 18 1 2 27 19 2 16 34 .324 .395 104.3
2013 116 367 .272 100 15 5 5 47 42 5 34 45 .332 .381 93.6
2014 97 261 .264 69 14 0 7 38 29 5 26 40 .328 .398 85.6
<rowcolor=#ffffff> 연도 소속팀 경기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삼진 출루율 장타율 wRC+
2015 LG / SK 91 259 .320 83 14 0 14 51 38 5 35 46 .397 .537 145.6
2016 SK-SSG 144 576 .311 179 32 1 27 100 68 2 35 76 .347 .510 109.8
2017 112 349 .321 112 16 0 15 45 44 0 28 61 .367 .496 119.7
2018 73 217 .272 59 9 0 11 38 27 1 21 29 .335 .465 94.9
2019 110 380 .282 107 24 0 13 59 44 0 36 60 .342 .447 116.1
2020 76 187 .241 45 5 1 1 20 13 0 13 38 .286 .294 51.6
2021 62 165 .230 38 2 0 7 24 21 0 11 37 .275 .370 67.3
<rowcolor=#373a3c> KBO 통산
(14시즌)
1369 4060 .278 1127 185 13 119 563 457 29 337 641 .330 .417 9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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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롯데 자이언츠 코치 시절 대신중학교 학생 정의윤을 만났는데 그때 중학생 정의윤이 사직 야구장에서 홈런을 쳤다"는 김용희 전 SK 감독의 증언이 있을 정도다. 사직 야구장은 외야 펜스가 워낙 높아서(4.8m) 타구 발사 각도를 높이지 않으면 홈런이 나오기 힘든 구장 중 하나다. 알루미늄 배트였겠지만 그래도 중학생이 사직 야구장 담장을 넘겼다는 것은 퍼올리는 파워나 재능이 애초부터 상당했다는 것으로 볼 수 있다.[2] 여담으로 사진에 있는 정의윤을 제외한 선수들이 kt wiz로 갔는데, 박씨 선수 2명은 선수로 뛰고 있으며, 이성열은 3번의 트레이드로 두산넥센한화에서 선수로 뛰었으며, 2021년에 은퇴해 한화 전력 분석원을 1년동안 하였으며, 방출 통보를 받아, kt wiz 2군 코치로 재직 중이다.[3] 1982년 출범 당시 600만원이었던 KBO리그 최저 연봉은 1995년 1000만원, 2001년 1500만원, 2004년 1800만원, 2005년 2000만원, 2010년 2400만원, 2015년 2700만원, 2021년 3000만원으로 조금씩 상승했다. 대신 2020년대 현재 1군 등록이 된 최저연봉 계약자들은 2군이나 부상휴식 재활군 등 1군이 아닌 기간에는 원래대로 3000만원을 받되, 1군에 등록되면 1군 등록일수만큼 5000만원을 특정 비율로 나눈 돈을 받는다. 즉 1군 붙박이가 되면 계약한 최저연봉보다 많은 돈을 받는다.[4] 그런데 사실 조정훈도 포텐 터뜨리기 직전까지는 리니지에 심취하고 야구 실력은 시원찮아서 롯데 팬들을 애태우는 존재였다. 심지어 조정훈이 연봉을 아덴으로 달라고 했다는 뜬소문까지 있었다.[5] 그러나 오승환은 고교와 대학 시절 2차례의 부상 경력 때문에 각 팀 스카우터들이 모두 지명을 망설이는 상황이였다. 심지어 드래프트 당시 삼성 수석코치 선동열폼이 엉망이라면서 지명을 반대했는데, 고교 시절부터 오승환을 지켜본 삼성 스카우터들이 우겨서 지명했다고 한다. 참고로 선동열이 오승환 거르고 뽑으려던게 다름아닌 윤석민이다. 오거정을 시전한 엘지 스카우터들과 선동열은 명백히 다른 케이스다![6] 꽤 가까운 거리에서 플라이잡고도 보살을 못시켰다. 이쯤되면 소녀어깨 인증.[7] Hi There. 간략히 표현하자면 스마트폰 버전 싸이월드. 지금의 시점으로 보면 트위터에 좀 더 가깝긴 하지만. 추가 기능으론 어플리케이션에 가입되어있는 사람들에 한정해 자신과 가까운 곳에 있는 사람들이 누가 있는지 확인 가능하며, 대화와 쪽지를 보낼 수 있는 어플리케이션. 그러나 실상은 즉석 만남 도우미. 어플리케이션의 부정적인 기능이 자리잡혀 있고, 그러다 보니 많은 이용자들의 이용 목적은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김상수정인욱이 2011년에 하이데어를 하고 있다가 팬들에게 딱 걸려서 김평호 코치의 트위터에 제보했고, 이에 곧바로 김평호 코치의 강력한 지시로 하이데어를 탈퇴한 사건이 있었다. 이 사건으로 김평호 코치는 "소통왕"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참고로 싸이월드는 이용자들에게 욕을 죽도록 듣고 난 후 2012년 가까이 되어서야 모바일 앱이 나왔다.[8] 과장이 아니고, 경기 시간과 이동 시간 정도를 제외하면 거의 하루 종일 접속해 있었다.[9] 선수 사생활의 경우 프라이버시로 지켜져야하는 게 사실이긴 하지만, 당시 팀 성적은 DTD를 밟고 있던데다가 본인의 타격페이스도 슬럼프였기때문에 야구에 집중하는 모습이 절실했는데 현실은.... LG 트윈스 팬의 청문회나 몇몇 팬들에 의한 이야기에 따르면 현재는 하이데어를 탈퇴했다고 한다.[10] 아이러니 한 상황인게, 이 시점 전까지 이동현 싸이 홈페이지 제목은 "할 말 있으면 내 앞에서"였다. 이 부분은 이동현 항목 참조.[11] 정확하게는 KIA의 손영민, 김희걸이대형, 정의윤의 2:2 트레이드 카더라다. 설령 물밑작업이 이루어졌다 하더라도 이 당시 손영민이 사생활 문제를 일으킨 바람에 무산되었을 가능성이 크다.[12] 이 홈런중에 1개는 2012시즌 최강의 불펜인 박희수에게 친 홈런이다![13] 사실 힐만 감독과 사전에 조율되었다고 한다. 자세히 보면 힐만 감독이 정의윤이 덕아웃에 돌아오자, 먼저 쳐달라는 듯이 가슴을 내민다.[14] 아마 백업 야수 중 빠른 주자가 없어서 그랬을 가능성이 높다.물론 정의윤 주력이 이적 후 크게 감소한건 맞지만 투수를 대주자로 쓸 정도로 그렇게 느린발은 아니다.[15] 신분조회라는 것은 MLB 구단에서 관심을 가지는 선수에 대해 MLB 사무국에 KBO에 해당 선수의 신분(보류상황) 정보를 요청하는 것이다. 당연히 선수 본인의 해외 진출 의사와는 상관 없는 이야기이다.[16] 옵션이 많이 붙은 이유는 계약년수가 문제였는데 처음에는 SK가 3년 계약을 제시했으나 정의윤이 4년 보장을 희망하여 결국 4년 계약을 맺은 대신 옵션의 비중을 높였다.[17] 보장된 연봉을 다 받지 못한 이유는 아마도, 2018년과 2020년에 1달넘게 1군 엔트리에 말소된 적이 있어서 이에 해당하는 고액연봉자 감액 규정에 따라 감액되었을 가능성이 크다.[18] 주자의 거친 플레이에 의해 공을 떨어트린 것도 인정하는 이상 정상적인 슬라이딩으로 인해 공을 놓친 것을 주자의 책임으로 돌려 아웃시킬 수는 없는 법이다.[19] 야구규칙 7.08 주자 아웃 (c)항 -볼 인 플레이 중에 주자가 베이스에서 떨어져 있다가 태그당하였을 경우에서 주2 - 야수가 주자를 태그하려고 할 때 주자도 아웃당하지 않으려고 거친 플레이를 하는 경우가 많아 야수와 주자가 부딪쳐 야수가 공을 떨어뜨렸을 경우 태그 뒤에 공을 확실히 쥐고 있지 않은 것이 되므로 주자는 아웃되지 않는다. (중략) 야수가 태그한 뒤 얼마 동안 공을 보유해야 하는가는 오로지 심판원의 판단에 맡긴다(2.15 포구 참조)[20] 2.15 포구 - 포구를 분명히 하기 위하여 야수들은 그가 분명히 공을 잡고 있다는 사실이 인정될 만큼 충분히 오랫동안 공을 잡고 있어야 하며, 공을 손이나 글러브에서 떼는 것은 자발적이고 분명한 의도를 가진 것이어야 한다.[21] 생애 첫 한국시리즈 선발 출장.[22] 정수성 주루코치가 2루에 멈추라고 신호를 보냈는데 이를 못 보고 무작정 뛰다가 귀루하지 못해서 횡사했다.[23] 타석에서 스윙할 때마다 주저앉는 모습을 보여주었고, 간신히 안타를 만들어 낸 뒤에도 1루까지 거의 뛰어가지 못했다.[24] 함께 SK로 넘어왔던 최승준이 썼던 번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