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서(晉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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棗據
생몰년도 미상
서진의 인물이며 자는 도언(道彥)으로 조조에게 둔전제를 건의한 조지의 손자.
예주 영천군 장사현 사람으로 본래 성씨는 극씨였지만 선조가 원수를 피해 고친 것으로 용모가 아름답고 문장에 뛰어났으며, 20세에 대장군부의 부름을 받았다가 산양령이 되어 뛰어난 정치를 했다.
상서랑으로 옮겨졌다가 상서우승으로 옮겨졌고 280년에 오나라 정벌을 하면서 가충의 종사중랑을 지냈으며, 돌아와서 황문시랑, 기주자사, 태자중서자 등을 역임하다가 태강 중에 50여 세로 사망했다. 시, 부, 론 등을 45수 남겼지만 난리로 인해 많은 작품이 사라졌다.
오나라 정벌 이전에 최초로 출사할 당시에 대장군부의 부름을 받았다고 하지만, 생년을 정확히 알 수 없기에 사마사, 사마소 두 사람 중에 누구의 부름을 받은 것인지는 알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