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서(晉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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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曹毗생몰연도 불명
동진의 인물. 자는 보좌(輔佐). 예주 초국(譙國) 출신. 삼국시대 위나라의 대사마 조휴의 현손자. 우군장군 조식(曹識)의 아들.
2. 생애
어릴 적부터 책과 사부(詞賦)를 좋아하였으며, 군(郡)의 효렴으로 살펴져 낭중에 제수받았다가 채모의 천거로 좌저작랑에 임명되었다. 이후 부친상을 당해 사직했고, 상을 모두 마친 후에 복직하여 구장(句章)의 현령으로 부임하였다. 그리고 얼마 뒤에 다시 중앙으로 돌아와 태학박사를 지냈다.당시 계양(桂陽) 사람 장석(張碩)이 기생 두란향(杜蘭香)에게 집착하는 일이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이를 알게 된 조비는 장석을 조롱하는 시 2편을 짓고, 두란향에 대한 노래 10편을 지었는데, 그 문체가 매우 빼어났다고 한다. 이 외에도 시부를 여럿 지어〈양도부〉(揚都賦)의 저작자로 유명한 유천에 버금간다는 평을 듣기도 하였다. 이후 여러 차례 승진하여 상서랑, 진군대장군 종사중랑, 하비태수를 역임했으나, 관직 생활을 하면서 자신의 명성이 기대치에 미치지 못 하는 것에 대한 해석으로 《대유》(對儒)라는 소설을 썼다.
조비는 계속 승진하여 관직이 광록훈에 이르렀지만, 이내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수서》 〈경적지〉에 따르면 그가 생전에 남긴 문집은 15권이고, 각종 시나 글까지 합치면 50여 개가 넘는다고 하나, 문집은 전란으로 전부 소실되었고, 몇몇 시만이 보존되어 지금까지 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