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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덕궁 옥류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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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창덕궁_후원권역_옥류천.jpg
<colbgcolor=#bf1400> 옥류천[1]
문화재청에서 제작한 옥류천 권역의 3D 입체 영상
파일:정부상징.svg 대한민국 사적 제122호 창덕궁
<colbgcolor=#bf1400> 창덕궁 옥류천
昌德宮 玉流川
소재지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99 (와룡동 2-71번지)
조성 1636년}
1. 개요2. 물줄기
2.1. 창경궁의 금천?
3. 역사4. 구조5. 여담

[clearfix]

1. 개요

창덕궁 후원의 가장 안쪽 골짜기에 있는 시내이자 폭포이다.

2. 물줄기

옥류천을 흐르는 물은 북악산 응봉 자락에서 발원한 계곡물과 창덕궁 안에서 발원한 물이다. 이 물은 창덕궁 동북쪽으로 빠져나가 성균관의 서쪽을 흐르는 흥덕동천으로 합류했다.#[2]

2.1. 창경궁의 금천?

창경궁의 금천 역시 이름이 옥류천(玉流川)이다. 이름이 같아 이 옥류천이 창경궁 옥류천과 같다고 착각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둘은 완전히 다르다.# 창경궁 옥류천은 창덕궁 후원의 연경당 서쪽과# 부용지#, 관람지 권역#에서 발원하여 춘당지를 거쳐 창경궁 동남쪽으로 빠져나간다. 이후 계속 남쪽으로 흘러 종로 5, 6가동을 거쳐 지금의 예지동 광장시장 인근에서 청계천과 합류한다. 현재는 창경궁 경내를 제외한 전 구간이 복개되었다.

3. 역사

파일:동궐도 옥류천.png
<colbgcolor=#bf1400> 〈동궐도〉의 옥류천 구역
조선 초, 중기에도 들이 휴식처로 사용한 듯 하나 확실한 기록은 없다. 지금의 모습은 1636년(인조 14년)에 조성한 것이다. 이후 마지막 임금 순종까지 이곳을 휴식 공간으로 활용했다.

4. 구조


파일:소요암.png}}} ||<width=500>
파일:창덕궁 옥류천.jpg
||
<colbgcolor=#bf1400> 소요암[A]. 오른쪽 사진에서 소요암에 파인 U자 형 홈을 볼 수 있다.
계곡이 흐르는 곳에 소요암(逍遙巖)이라는 큰 바위를 두었다. 소요암 위에 U자 형 홈을 파서 물길이 바위 한바퀴를 돌게 만든 다음, 물길이 끝나는 지점에서 바위를 수직으로 깎아 폭포처럼 물이 떨어지게 만들었다. 일종의 인공폭포이다. 이 물길을 이용해 임금이 신하들과 같이 유상곡수연(流觴曲水宴)을 하기도 했다. 유상곡수연은 물에 술잔을 띄우고 마시며 술잔이 자기 앞에 오기 전에 를 짓는 놀이이다.[4]#

  • 비류삼백척(飛流三百尺)

    날아 흐르는 물이 300척이요 전하 과장이 심하시옵니다[5]


    요락구천래(遙落九天來)

    멀리 떨어지는 물은 구천에서 내리네


    간시백홍기(看時白虹起)

    볼 때 흰 무지개 일고


    번성만학뢰(翻成萬壑雷)

    골짜기마다 번개 소리 가득 하네



    소요암에 새긴 숙종의 시 #

    소요암에 인조가 옥류천(玉流川)이란 글을 써서 새겼다. 그리고 그 옆에 인조의 증손자 숙종이 위에 있는 오언절구시[6]를 새겼다.

파일:옥류천 어정.png}}} ||
<colbgcolor=#bf1400> 옥류천 어정[A]
옥류천 주변에 여러 정자를 세워 풍류 공간으로 꾸몄다. 소요정, 농산정, 취한정, 청의정, 태극정이 있다. 그리고 옥류천 물줄기 중 창덕궁 발원 지점에 우물을 만들어 어정(御井)으로 사용했다.

5. 여담


[1] 사진 출처 -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2] 서반수천(西泮水川)로도 불렀다. 이 물은 흥인지문 안쪽에서 청계천과 만났다. 현재는 복개되었다.[A] 왼쪽 사진 출처 - 문화유산채널: 문화유산여행 〈창덕궁 후원 옥류천을 찾아서〉.[4] 이 밖의 관련 유적으로는 경주신라시대에 유상곡수연을 즐겼던 유적 포석정이 있다.[5] 300척이면 요즘 단위로 대략 97m 정도이다. 당연히 옥류천 폭포가 저 길이일 리는 없고(...) 그만큼 장엄하다는 표현으로 보면 된다.[6] 구 하나 당 글자 5개씩인 4줄의 한시(漢詩).[A] [8] 음력 10월.[9] 관우사당. 혜화문 안쪽에 있었으며 창덕궁과 가까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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