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000><colcolor=#fff> 무장친위대 집단지도자 카를 프리드리히 그라프 폰 퓌클러-부르크하우스 Carl Friedrich Graf von Pückler-Burghauß | |
이름 | Carl Friedrich Graf von Pückler-Burghauß, Freiherr von Gröditz 카를 프리드리히 폰 퓌클러-부르크하우스 백작, 폰 그뢰디츠 남작 |
출생 | 1886년 10월 7일 |
독일 제국 프로이센 왕국 슐레지엔주 프리들란트[1] (現 폴란드 오폴스키에주 코르판코프) | |
사망 | 1945년 5월 12일 (향년 58세) |
체코슬로바키아 제3공화국 라코비체 | |
복무 | 독일제국군 슈투름압타일룽 독일 국방군 슈츠슈타펠 질서경찰 |
계급 | 독일제국군 대위 슈투름압타일룽 소장 (여단지도자) 독일 국방군 소령 슈츠슈타펠 무장친위대 중장 (집단지도자) 질서경찰 소장 |
주요 참전 | 제1차 세계 대전 제2차 세계 대전 |
주요 서훈 | 철십자 훈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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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독일 제국 시절 행적
퓌클러-부르크하우스는 1886년 오버슐레지엔의 프리들란트에서 프로이센군 소령 프리드리히 폰 퓌클러-부르크하우스 백작과 엘라 폰 쾨펜 백작부인의 아들로 태어났다. 퓌클러-부르크하우스는 독일제국군에 입대하여 제1차 세계 대전에 참전하였다. 대위로 예편하고 1931년까지 독일 국가인민당에서 활동했다.3. 나치 행적
SA대령 폰 퓌클러-부르크하우스 |
국방군 군복의 폰 퓌클러-부르크하우스 |
4. 제2차 세계 대전
SS소장 폰 퓌클러-부르크하우스 |
SS상급대장 쿠르트 달루게와 폰 퓌클러-부르크하우스 |
5. 최후
1945년 5월 7일 모든 독일군은 항복하라는 명령을 받았지만 페르디난트 쇠르너 원수는 퓌클러-부르크하우스에게 미군에게 항복하기 위해 서쪽으로 이동하라고 명령했다. 민간인들도 그의 부대에 합류했지만 미군에게 항복을 거절당했고, 5월 11일 소련군이 도착하자 슬리비체 전투를 벌였다. 수천명의 사상자가 발생했고 5월 12일 퓌클러-부르크하우스는 항복 문서에 서명하고 자살했다.[1] Friedland in Oberschlesien